세월이 흐르면서 천마가 일으켰던 피의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옅어지면서 천부 역시 그렇게 무림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혈의맹’이라는 흑도의 무리가 다시 피바람을 일으키자 약관 이 십 세를 갓 넘긴 무명의 사내가 천부의 이름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혈의맹을 무너뜨리고 무림의 안녕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으니 혈의맹을 물리친 사내는 곧 들이 닥칠 또 다른 피바람을 경고하며 그에 대비하여 무림의 힘을 비축하고 후진 양성을 위한 정파 무림 공동의 무관을 설립하기를 주창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사내의 무위가 워낙 강하였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천부무관이라는 정파연합의 후진 양성을 위한 무관이 설립되었다. 무관이 설립되고 오년동안은 그런대로 조용하게 넘어갔다. 그 오년동안 사내는 명리에는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후진양성에 온 힘을 다했다. 그 결과로 천부무관 출신들이 어느 틈엔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무림의 각 방파와 세가들은 천부무관을 견제하려들었다. 사내는 그런 견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신은 무관의 최고 자리인 총사직을 내놓고는 단순한 교관으로 후진양성에만 힘을 쏟았고, 새로운 총사자리는 소림과 무당의 지지를 받은 남궁세가의 현가주의 동생인 남궁일연이 맞게 되어 천부무관을 둘러싼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다시 삼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사내가 경고 했던 또 다른 피바람의 징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사내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무림의 각파의 수뇌들이 비밀리에 모여 회합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사천의 당가에서 한 통의 서찰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사파의 한 인물이 비밀리에 사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혹시 사파의 함정이 아닐까하는 격론이 일었으나 결론은 사내에게 진위를 직접 묻는 것으로 내려졌다.
사내는 사파에서 온 서찰을 읽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파의 요청대로 무언가를 적어 인편에 보냈다. 중간에 다시 서찰을 가로채어 읽어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사내가 직접 방문하여 사파의 요구대로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크게 놀란 사람들이 결국 사내에게 몰려가서 다그치자 사내는 간단히 대답했다.
“곧 닫칠 위협은 정파와 사파를 따질 것 없이 중원의 무림 모두가 멸문을 당할 수 있는 큰 위협이 될 것이요. 그러니 그들에게도 나의 것을 나누어줄 것이요. 한 사람의 힘이 라도 더 해야 하는 이때에 나는 정사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이 한 마디는 정파 무림의 수뇌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사내에게 지도를 받은 무림인들의 무공을 펼치는 실력의 향상은 문자 그대로 눈부신 것이었다. 결코 사내가 가진 천부의 무공을 전수 받는 것이 아니지만, 원래 소속된 문파의 무공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에, 각 문파가 가진 기본을 착실하게 닦은 자들에게는 그와의 단 한 번의 대련만으로도 얻는 것이 많았다. 그런 그가 비록 사내가 사파의 주된 세력을 꺾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또 발호할지 모르는 눈에 가시 같은 사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격론은 강경파인 사천 당가의 주장대로 사파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사내의 무공을 폐하고 가두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가의 가주는 모두가 속내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천부의 무공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들 적절히 이용하여 온건파들을 설득했다. 사내가 가지고 있을 천부의 무공 비급에 욕심이 난 정파수뇌들은 결국 사내를 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쥐가 필요했다. 거듭된 숙의 끝에 소림의 장문인인 공상대사가 전면에 나섰고 사천 당가의 비전인 독을 이용하여 일단 중독 시킬 계략을 꾸몄다. 그러나 그 계획은 사내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사내는 천명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무형지독에 중독되고도 금방 해독해내는 믿을 수 없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슬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듯이 무형지독에 중독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동파 출신으로는 드물게 명궁으로 이름이 높았던 철궁 마충의 활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합공에 조금씩 상처를 입은 것이 쌓이다보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회복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천부무관이 있는 개봉에서 시작된 쫓고 쫓기는 긴 여정이 이어져 송과 요의 국경을 넘었고 다시 여진족의 영토 깊숙한 장백산까지 어느덧 오천리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군!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잡겠다고 파리 떼처럼 달려든 네놈들 때문에 이 먼 곳까지 달려오게 되었어. 그대들은 보이는 가, 저 장백산의 웅혼한 기상을! 난 이곳 장백에서 스승님을 처음 뵈었다. 나의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갔다가 여진족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가던 길이었지. 그 때 스승님이 지나시다가 날 구하고 제자로 거두어 주셨다. 그리고는 환웅의 구슬을 내게 물려 주셨지. 그리고 너희가 탐내는 이 책도 역시 내게 물려주셨지.”
사내가 잘 움직여 지지 않는 왼손을 움직여 자신의 품에서 죽간으로 엮인 두루마리를 꺼냈다. 사내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이들의 숨이 일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그들의 귀에 그렇게 들렸다.
“후후, 너희들의 욕심이 이것에 있음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네놈들처럼 욕심에 눈이 어두워 곳 들이닥칠 피바람을 보지 못하는 놈들은 이것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말을 마친 사내는 갑자기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죽간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장백산의 흰 봉우리를 향했다. 사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쉽사리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할 때 사내는 두루마리를 들고 장백산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 어리석은 제자가 사부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천기를 누설 하였습니다. 그 벌로 이렇게 저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천기를 누설한 죄로 사부께서 가신 선도를 따르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부가 계신 선계까지 와서 마지막 문안을 드리게 된 것만으로도 여한은 없습니다.”
큰소리로 외친 사내는 다시 큰절을 한 다음 자신을 둘러싼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너희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도록 하겠다. 이 비급에 적힌 내용은 너희들이 아무리 익히려하더라도 환웅의 구슬이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
사내는 말을 끝내자마자 두루마리를 움켜쥐었고 이어 두루마리는 한줌의 재로 화했다.
“저, 저런!”
“아미타불!”
“무량수불!”
아쉬움 섞인 외마디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고, 이어서 무리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오천리길을 쫓아와서 이젠 손에 잡힐 듯 했던 천부의 무공이 한 줌의 재로 화했던 것이다.
“하하하! 아쉬운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의 춤을 잘 보도록 하여라. 너희가 좁쌀만 한 깨우침이라도 있다면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번뇌 속을 헤어나지 못하리라.”
말을 마친 사내는 한 바탕의 춤을 추었다. 그 사내의 춤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의 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내의 춤은 조용히 끝을 냈고. 그와 함께 사내의 숨도 멈추었다. 사실상 오천리길을 추격하면서 무공의 깊이가 높지 않은 자들은 모두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한 달간 사내의 종적을 놓치지 않고 싸워가며 쫓아온 자들은 거의 한 문파의 장문인이나 장로이상의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 추격대를 조직했을 때의 이천여 명 중에 마지막 까지 남은 자들은 불과 삼십 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내의 마지막 춤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들의 눈과 얼굴에는 후회와 회한의 빛을 감추지 못했고 사내의 시신은 건들지 않고 말없이 돌아 섰다. 아니 몇몇이 그가 말한 환웅의 구슬을 찾기 위해 그의 몸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그가 쓰던 검만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것도 곧 버려졌다. 그들은 그가 항상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검일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대장간이나 찾아가서 은자 반냥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흔해빠진 천강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우리의 끝없는 욕심이 아까운 인재를 헛되이 보내게 되었구려!”
“…!”
“무량수불!”
하나둘 무림인들이 제갈 길을 찾아가고 마지막 남은 사내의 시신은 공상대사와 몇몇 소림 승들에 의해서 수습되어 작은 봉분 속에 묻혔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몇몇 무림인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웅의 구슬을 찾기 위해 장백산을 이 잡듯 뒤졌지만 그 어느 곳에도 발견하지 못했고, 얼마 되지 않아 희미한 기억 속으로 묻혔다.
이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지난 뒤에 천부정검 정민이 실종되었다는 천부무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고, 천부무관은 그의 공적을 기리고 정파 무림의 보루로서 또한 무림의 성지로 선포되었다. 천부무관에서는 일 년에 한번 그가 실종된 날, 실제로는 죽은 날에 전도유망한 자들을 선발하여 입관식을 열게 되었고, 천부무관에 든다는 것은 무림에서 인정을 받는 출세의 보증 수표가 되었다.
눈을 뜨다.
정민은 변함없이 앞으로 걸어가며 희뿌옇게 외부 형태만 보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물체를 팔을 휘둘러 멀리 쳐냈다. 아니 정민은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카롭게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의 높낮이와 길고 짧음에 따라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고, 가끔씩 소름이 돋는 느낌을 느끼곤 했는데, 그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상관없이 몸이 알아서 움직여 그 원인을 제거해버렸다.
정민이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 곳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눈앞에 붉은 빛을 띤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정민은 신기하게 생각하고 바위를 살펴보다 우연히 만진 한 곳에서 강한 전기 충격 같은 것을 받고는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다시 돌아 왔을 때는 문자 그대로 암흑 속에 버려졌다는 느낌뿐이었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고 신체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어 그저 컴컴한 어둠속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조차도 헷갈리고 있었다.
‘이거야, 죽으면 불지옥 속으로 빠진다고 하더니 다 거짓이로군. 그냥 어둡기만 하잖아! 아니, 아니야! 여긴 암흑지옥 일거야.’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3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3 - 내글[影舞]
세월이 흐르면서 천마가 일으켰던 피의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옅어지면서 천부 역시 그렇게 무림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혈의맹’이라는 흑도의 무리가 다시 피바람을 일으키자 약관 이 십 세를 갓 넘긴 무명의 사내가 천부의 이름으로 혜성처럼 나타나 혈의맹을 무너뜨리고 무림의 안녕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으니 혈의맹을 물리친 사내는 곧 들이 닥칠 또 다른 피바람을 경고하며 그에 대비하여 무림의 힘을 비축하고 후진 양성을 위한 정파 무림 공동의 무관을 설립하기를 주창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사내의 무위가 워낙 강하였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천부무관이라는 정파연합의 후진 양성을 위한 무관이 설립되었다. 무관이 설립되고 오년동안은 그런대로 조용하게 넘어갔다. 그 오년동안 사내는 명리에는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후진양성에 온 힘을 다했다. 그 결과로 천부무관 출신들이 어느 틈엔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무림의 각 방파와 세가들은 천부무관을 견제하려들었다. 사내는 그런 견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신은 무관의 최고 자리인 총사직을 내놓고는 단순한 교관으로 후진양성에만 힘을 쏟았고, 새로운 총사자리는 소림과 무당의 지지를 받은 남궁세가의 현가주의 동생인 남궁일연이 맞게 되어 천부무관을 둘러싼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했다.
다시 삼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사내가 경고 했던 또 다른 피바람의 징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사내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무림의 각파의 수뇌들이 비밀리에 모여 회합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사천의 당가에서 한 통의 서찰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사파의 한 인물이 비밀리에 사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혹시 사파의 함정이 아닐까하는 격론이 일었으나 결론은 사내에게 진위를 직접 묻는 것으로 내려졌다.
사내는 사파에서 온 서찰을 읽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파의 요청대로 무언가를 적어 인편에 보냈다. 중간에 다시 서찰을 가로채어 읽어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사내가 직접 방문하여 사파의 요구대로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크게 놀란 사람들이 결국 사내에게 몰려가서 다그치자 사내는 간단히 대답했다.
“곧 닫칠 위협은 정파와 사파를 따질 것 없이 중원의 무림 모두가 멸문을 당할 수 있는 큰 위협이 될 것이요. 그러니 그들에게도 나의 것을 나누어줄 것이요. 한 사람의 힘이 라도 더 해야 하는 이때에 나는 정사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이 한 마디는 정파 무림의 수뇌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사내에게 지도를 받은 무림인들의 무공을 펼치는 실력의 향상은 문자 그대로 눈부신 것이었다. 결코 사내가 가진 천부의 무공을 전수 받는 것이 아니지만, 원래 소속된 문파의 무공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에, 각 문파가 가진 기본을 착실하게 닦은 자들에게는 그와의 단 한 번의 대련만으로도 얻는 것이 많았다. 그런 그가 비록 사내가 사파의 주된 세력을 꺾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또 발호할지 모르는 눈에 가시 같은 사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격론은 강경파인 사천 당가의 주장대로 사파에게 도움을 주기 전에 사내의 무공을 폐하고 가두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가의 가주는 모두가 속내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천부의 무공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는 심리들 적절히 이용하여 온건파들을 설득했다. 사내가 가지고 있을 천부의 무공 비급에 욕심이 난 정파수뇌들은 결국 사내를 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쥐가 필요했다. 거듭된 숙의 끝에 소림의 장문인인 공상대사가 전면에 나섰고 사천 당가의 비전인 독을 이용하여 일단 중독 시킬 계략을 꾸몄다. 그러나 그 계획은 사내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사내는 천명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무형지독에 중독되고도 금방 해독해내는 믿을 수 없는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슬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듯이 무형지독에 중독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동파 출신으로는 드물게 명궁으로 이름이 높았던 철궁 마충의 활이 그의 어깨를 꿰뚫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합공에 조금씩 상처를 입은 것이 쌓이다보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회복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천부무관이 있는 개봉에서 시작된 쫓고 쫓기는 긴 여정이 이어져 송과 요의 국경을 넘었고 다시 여진족의 영토 깊숙한 장백산까지 어느덧 오천리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군!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잡겠다고 파리 떼처럼 달려든 네놈들 때문에 이 먼 곳까지 달려오게 되었어. 그대들은 보이는 가, 저 장백산의 웅혼한 기상을! 난 이곳 장백에서 스승님을 처음 뵈었다. 나의 아버지와 함께 고려에 갔다가 여진족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끌려가던 길이었지. 그 때 스승님이 지나시다가 날 구하고 제자로 거두어 주셨다. 그리고는 환웅의 구슬을 내게 물려 주셨지. 그리고 너희가 탐내는 이 책도 역시 내게 물려주셨지.”
사내가 잘 움직여 지지 않는 왼손을 움직여 자신의 품에서 죽간으로 엮인 두루마리를 꺼냈다. 사내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이들의 숨이 일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그들의 귀에 그렇게 들렸다.
“후후, 너희들의 욕심이 이것에 있음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네놈들처럼 욕심에 눈이 어두워 곳 들이닥칠 피바람을 보지 못하는 놈들은 이것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말을 마친 사내는 갑자기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죽간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장백산의 흰 봉우리를 향했다. 사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이 쉽사리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할 때 사내는 두루마리를 들고 장백산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 어리석은 제자가 사부의 유언을 지키지 않고 저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천기를 누설 하였습니다. 그 벌로 이렇게 저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천기를 누설한 죄로 사부께서 가신 선도를 따르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부가 계신 선계까지 와서 마지막 문안을 드리게 된 것만으로도 여한은 없습니다.”
큰소리로 외친 사내는 다시 큰절을 한 다음 자신을 둘러싼 사람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너희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도록 하겠다. 이 비급에 적힌 내용은 너희들이 아무리 익히려하더라도 환웅의 구슬이 없다면 소용이 없는 것.”
사내는 말을 끝내자마자 두루마리를 움켜쥐었고 이어 두루마리는 한줌의 재로 화했다.
“저, 저런!”
“아미타불!”
“무량수불!”
아쉬움 섞인 외마디가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졌고, 이어서 무리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오천리길을 쫓아와서 이젠 손에 잡힐 듯 했던 천부의 무공이 한 줌의 재로 화했던 것이다.
“하하하! 아쉬운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두 눈을 크게 뜨고 나의 춤을 잘 보도록 하여라. 너희가 좁쌀만 한 깨우침이라도 있다면 얻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번뇌 속을 헤어나지 못하리라.”
말을 마친 사내는 한 바탕의 춤을 추었다. 그 사내의 춤을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의 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내의 춤은 조용히 끝을 냈고. 그와 함께 사내의 숨도 멈추었다. 사실상 오천리길을 추격하면서 무공의 깊이가 높지 않은 자들은 모두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한 달간 사내의 종적을 놓치지 않고 싸워가며 쫓아온 자들은 거의 한 문파의 장문인이나 장로이상의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처음 추격대를 조직했을 때의 이천여 명 중에 마지막 까지 남은 자들은 불과 삼십 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사내의 마지막 춤을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들의 눈과 얼굴에는 후회와 회한의 빛을 감추지 못했고 사내의 시신은 건들지 않고 말없이 돌아 섰다. 아니 몇몇이 그가 말한 환웅의 구슬을 찾기 위해 그의 몸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그가 쓰던 검만을 가져갔다. 그러나 그것도 곧 버려졌다. 그들은 그가 항상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검일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대장간이나 찾아가서 은자 반냥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흔해빠진 천강검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우리의 끝없는 욕심이 아까운 인재를 헛되이 보내게 되었구려!”
“…!”
“무량수불!”
하나둘 무림인들이 제갈 길을 찾아가고 마지막 남은 사내의 시신은 공상대사와 몇몇 소림 승들에 의해서 수습되어 작은 봉분 속에 묻혔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자신들이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몇몇 무림인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웅의 구슬을 찾기 위해 장백산을 이 잡듯 뒤졌지만 그 어느 곳에도 발견하지 못했고, 얼마 되지 않아 희미한 기억 속으로 묻혔다.
이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지난 뒤에 천부정검 정민이 실종되었다는 천부무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고, 천부무관은 그의 공적을 기리고 정파 무림의 보루로서 또한 무림의 성지로 선포되었다. 천부무관에서는 일 년에 한번 그가 실종된 날, 실제로는 죽은 날에 전도유망한 자들을 선발하여 입관식을 열게 되었고, 천부무관에 든다는 것은 무림에서 인정을 받는 출세의 보증 수표가 되었다.
눈을 뜨다.
정민은 변함없이 앞으로 걸어가며 희뿌옇게 외부 형태만 보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물체를 팔을 휘둘러 멀리 쳐냈다. 아니 정민은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카롭게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이끌려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의 높낮이와 길고 짧음에 따라서 몸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고, 가끔씩 소름이 돋는 느낌을 느끼곤 했는데, 그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상관없이 몸이 알아서 움직여 그 원인을 제거해버렸다.
정민이 발을 헛디디고 떨어진 곳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눈앞에 붉은 빛을 띤 거대한 바위가 있었다. 정민은 신기하게 생각하고 바위를 살펴보다 우연히 만진 한 곳에서 강한 전기 충격 같은 것을 받고는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다시 돌아 왔을 때는 문자 그대로 암흑 속에 버려졌다는 느낌뿐이었다. 보이거나 들리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냄새도 맡아지지 않았고 신체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 없어 그저 컴컴한 어둠속에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조차도 헷갈리고 있었다.
‘이거야, 죽으면 불지옥 속으로 빠진다고 하더니 다 거짓이로군. 그냥 어둡기만 하잖아! 아니, 아니야! 여긴 암흑지옥 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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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