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가비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를 홱 돌아봤다. "......!!" 나를 바라보는 가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들었을 리가 없는데...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들었다면.....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 들었다면...완전 개쪽에다가 왕창피인데.. 장담컨대 다시는 가비 얼굴 보러 이렇게 달려오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절대로, 다시는 가비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는데 또 의심이 되고 있었다. 가비가 내 말을 들었을 것 같은 아주아주 불길한 느낌 말이다! 가비는 자신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내뱉더니 내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주춤거리면서도 힐끔 가비의 손바닥을 훔쳐봤다. 가비의 손바닥에 조그맣게 올려진 그것은 바로... 계란 껍질이었다! "그..그게 왜 거기 있는 거지?아...아..하하하~! 참 신기하네!" 호탕하게 웃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가비의 눈빛을 봐서는 그냥 넘어갈 듯인 안 느껴졌다. ..가비, 의외로 소심한 거 아냐?.. 지금까지 봐온 가비의 표정은 무표정, 상처입은 듯한 우수어린 표정, 약간은 반항끼를 가득 머금은 표정이 전부였다. 90%는 멍한 무표정이었다. 아니, 멍한 표정의 대명사는 아마도 베이비가 아닐까.. 뭐 여하튼 지금처럼 가비의 거칠은 눈빛은 처음이었다. 그깟 계란 껍질 하나 때문에!(설마 내 말 들어서 저럴 리는 없지 않겠어~?)저렇듯이 눈빛이 거칠어지다니! 얼른 수첩에다가 끄적거려서 가비 앞으로 내밀었다. - 정말 미안. 그 놈의 계란 껍질이 왜 거기 들어가 있지-0-;?? 하하! 정말 미안. 내가 나중에 다시 만들어서 줄께.- 가비가 다 읽은 듯 싶자 잽싸게 도시락을 가져가려 했지만, 도시락을 꼬옥 쥐고 있는 가비의 손에 더더욱 힘만 들어가는 것 같았다. "......?" 이 의미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를 한번 째릿 하더니 가비는 다시 묵묵히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미안하면서도 다시 내 김밥을 맛있게 먹어대는 가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웃음이 스물스물 나왔다. 턱을 괴고 베실베실 쪼개는 내 모습을 가비가 자꾸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마도...정신쪽으로 조금 문제가 있는 애로 보지 않나 싶다. "너는 먹는 것도 어쩜 그렇게 이쁘게 먹니?" 김밥 하나하나를 먹어대는 가비, 정말 예쁘게 먹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굉장히 조용하고 깔끔하게.. "내가 그래서 너 좋아하나보다~그치?" "......" 가비는 대답이 없었다. 김밥만 열심히 먹고 있었다. ..대답할 리가 없지.. "가비 널 좋아한다는 생각해본 적 한번도 없었거든. 사실 몇 번이나 봤다고 널 좋아하겠어~ 안그래? 가비 너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나 지금까지 남자한테 관심가져본 적 한번도 없어, 진짜 맹세해! 그러니까 뭐 지금 널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여간 진짜 내가 널 좋아하는 거라면 넌 내 첫사랑이라구!" 괜시리 들을 수 없는 고백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쑥쓰러운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가비가 흠칫하며 날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무안해진 나.. 다시 빙그레 웃으며 가비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제서야 다시 김밥을 집어먹는 가비. "야, 무안하게 그렇게 쳐다보면 어떻게 해? 얼굴 빨개져서 죽는 줄 알았네.." 나의 혼잣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가비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마음 아픈 그 사실이 다행이었다. 마음 편히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하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나에게 좋은 대답을 해줄 사람은 절대 없으니까... "내가 왜 널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 줄 알아? 널 처음 만나기 전에 진짜 또라이 같은 애를 하나 만났거든." 갑자기 베이비가 떠오르자 황당함과 함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세상에 그놈이 처음 보자마자 나한테 뚱땡아!하는 거 있지! 그 말 듣는 순간 머리에서 스팀이 화악~!하고 솟아오르는 데 하늘이 노래진다는 의미를 그때서야 알았다니까! 그래, 사실 내가 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살이 약간 더 붙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처음 본 사이인데 그럴 수가 있어? 지가 내 몸의 두께에 보태준 거 있냐고! 키만 멀대같이 커서는 안봐도 훤해, 분명히 속은 텅 비었을 거야! 아마 나랑 맞짱 뜨면 일 분 안에 나한테 k.o. 당할 걸? 압사로 말야.. 근데 생긴 것은 진~~짜 예쁘게 생겼어. 예쁘게 생겼다고 여자같이 생긴 게 아니고 뭐 그냥 만화주인공같이 신비스럽고 분위기 있게 생겼다고 해야할까? 이런 얼굴이 실제로도 존재하는구나~.. 생각했지 뭐. 근데 생긴 거는 진짜 믿을 게 못된다니까.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고 어이 없고, 기가 차고...또라이 같고, 으으으~~ 말을 말아야지!" 베이비에 대해서 말을 하자니 끝이 없었고, 괜한 넋두리 같아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괜시리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서 땅바닥에 끄적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베이비 걘 말이야.. 꼴에 드라마 본 것은 있어서 나한테 이 안에 나 있냐?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베이비 꿀밤을 시원하게 한반 먹이면서 감히 가비가 있는데..라고 생각했거든. 정말 나도 몰랐어. 그래서 아아~ 내가 가비를 좋아하고 있구나..생각했지. 외모 잘난 애들은 자기 스스로가 안다고 하잖아. 그래서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것도 걸리고.. 물론 난 절대 걸릴 수 없는 병이지만 말야. 가비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병이란 말이야~~~ 너랑은 제대로 대화 한번 못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가비 너 진짜 무지무지 멋지다? 정말 멋져! 다른 사람들 눈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베이비보다 가비 너가 훨씬 더 멋져 보인다~~ 나한테 가비 넌....왕자님이야.." 혼잣말을 끝내고 마악 고개를 가비에게 돌렸을 때, "으아아아아악~!" 어느새 김밥을 다 먹었는지 턱을 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가비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노..놀랬잖아.." "......" "니가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내 말 다 들은 것 같아서 나 지금 무지 쪽팔려." "......" 수첩에다가 잽싸게 끄적거려서 다시 가비에게 내밀었다. - 내가 무슨 말했는지 궁금하지? 너에 대해서 말한 거 아니야. 그냥 고민도 많고 걱정거리고 많아서 혼잣말한 거야. 나 원래 혼잣말 무지 잘하거든. 그렇다고 절대 이상한 애는 아니야아~~-0-- 라고 적어놨지.. 사실 모두 다 가비한테 한 말이었는데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갑자기 수첩에 가비가 끄적거리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첩을 받아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가비한테 대답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쉼호흡을 크게 내쉬고 수첩을 봤다. -알아- 정갈한 두 글자. 따악 두 글자였지만, 별 의미 아닌 두 글자였지만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벌떡 일어났다. 가비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수첩을 끄적거려 가비에게 내밀었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아르바이트 가야되거든. 내일 또 보는 거야, 내일은 계란 껍질 없이 김밥 맛있게 만들어올게, 안녕!- 손을 휘이휘이 저으며 놀이터에서 벗어났다. ..알아.. 가비의 글씨가 계속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말도 어쩜 그렇게 멋지고 깔끔하게 하는지! "저 왔어요~!"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편의점 문을 열면서 힘차게 외쳤다. 오늘은 정말 나에게 힘이 넘쳐나는 날이니까. "어머~ 화봉이 왔니?" 어라? 오늘따라 서희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부드러웠다. "어? 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서희와 계산대 바로 옆에 어디서 났는지 의자에 앉아있는 베이비가 있었다. "뚱땡이~" 저 놈의 새끼가... 날 보자마자 대뜸 뚱땡이라고 반갑게 외치더니, 바로 서희에게 비잉 돌아서 앉는 베이비. 베이비의 얼굴을 본 서희의 표정. 완전히 행복함으로 녹아서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앙큼한 표정만 보이더니.. "너 퇴근하고 할 일 있어?" "어?" "퇴근하고 약속 있냐구." "약속? 없어!" 설마 베이비 저 놈, 저 앙큼쟁이 여우한테 데이트 신청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사실 뭐 나랑 관련 있는 놈은 아니지만 베이비가 저렇게 여자 보는 눈이 없다면 정말 내가 말려줘야 할 듯 싶었다. 나중에 혹시 또 만나게 되면 다 말해줘야지.. 서희가 어떤 여잔지 말이다. "퇴근하고 나서 할 일 정말 없지?" "응!" 정말 힘차게 대답하는 서희의 동그란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번뜩이는 것을 난 보았다. "그럼 한시간 반만 돈 좀 더 벌어라, 알았지? 뚱땡아, 가자!"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와버린 베이비. 얼떨결에 편의점 밖으로 덩달아 끌려나온 나 이화봉. "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나 노래방 가고 싶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 알바해야한단 말야!" "나랑 한시간만 놀자, 쟤 시간 많대잖아."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구! 난 너랑 틀리단 말야! 너랑 놀아줄 시간 없다구! 난 내 생활비 모두 내 스스로 벌어야 해, 그거 알아! 단돈 천원이 아깝고 한시간이 아깝단 말야! " 갑자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베이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야.. 얼마면 돼." 이 놈의 새끼.. 열 받아 죽겠는데 또 드라마 흉내내네.. 베이비는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았다. "이제는 원빈이냐, 지금 너랑 장난할 기분 아니라구!" 편의점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베이비. "나 노래방 가고 싶어. 같이 가자, 뚱땡아." "싫어!" 그때 갑자기 편의점 문이 열리더니 서희가 튀어나왔다. "승현아,....!!!"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자, "뛰어!" 라고 갑자기 외치더니 내 손을 덥썩 잡고 뛰어가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난 얼떨결에 베이비와 함께 열심히 뛰고 있었다. 아아~~~ 난 몰라! 희미하게 서희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십분 뛰었을까..십오분 뛰었을까. 드디어 멈춘 베이비. 숨이 목까지 차 올라 헉헉대는 나와 달리 베이비는 숨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너..헉헉!.. 진짜..헉헉.. 진짜 죽을..헉." 숨 좀 돌리고 겨우 몸을 일으켜 베이비를 바라봤다. 시원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베이비의 풍성한 머리를 부드럽게 휘날리고 있었고, 멀쩡하게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베이비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비 너어..." 맑고 예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베이비를 보자, 너무도 선하게 웃고 있는 베이비를 보자, 베이비의 투명한 볼 한쪽에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를 보자, 나는 결국 또 무너져 버렸다. "따악 한시간이다." "야호옷!" 한숨을 푸욱 내쉬며 결국 오케이를 해버렸고, 더더욱 신나하며 내 손을 덥썩 잡고 또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베이비. "으아아아~~ 그만 좀 뛰라구!!" 베이비의 맑은 웃음소리와 굵직한 나의 비명소리가 시원한 바람과 섞이어 거리 안을 울려퍼지고 있었다.
뚱땡아!뚱땡아!-13
갑자기 가비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나를 홱 돌아봤다.
"......!!"
나를 바라보는 가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들었을 리가 없는데...왜 저러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들었다면.....그럴 리는 없지만 정말 들었다면...완전 개쪽에다가 왕창피인데..
장담컨대 다시는 가비 얼굴 보러 이렇게 달려오지 못한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절대로, 다시는 가비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는데 또 의심이 되고 있었다.
가비가 내 말을 들었을 것 같은 아주아주 불길한 느낌 말이다!
가비는 자신의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내뱉더니 내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주춤거리면서도 힐끔 가비의 손바닥을 훔쳐봤다.
가비의 손바닥에 조그맣게 올려진 그것은 바로... 계란 껍질이었다!
"그..그게 왜 거기 있는 거지?아...아..하하하~! 참 신기하네!"
호탕하게 웃으며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지만
나를 빤히 바라보는 가비의 눈빛을 봐서는 그냥 넘어갈 듯인 안 느껴졌다.
..가비, 의외로 소심한 거 아냐?..
지금까지 봐온 가비의 표정은 무표정, 상처입은 듯한 우수어린 표정, 약간은 반항끼를 가득 머금은 표정이 전부였다.
90%는 멍한 무표정이었다.
아니, 멍한 표정의 대명사는 아마도 베이비가 아닐까..
뭐 여하튼 지금처럼 가비의 거칠은 눈빛은 처음이었다.
그깟 계란 껍질 하나 때문에!(설마 내 말 들어서 저럴 리는 없지 않겠어~?)저렇듯이 눈빛이 거칠어지다니!
얼른 수첩에다가 끄적거려서 가비 앞으로 내밀었다.
- 정말 미안. 그 놈의 계란 껍질이 왜 거기 들어가 있지-0-;?? 하하! 정말 미안. 내가 나중에 다시 만들어서 줄께.-
가비가 다 읽은 듯 싶자 잽싸게 도시락을 가져가려 했지만,
도시락을 꼬옥 쥐고 있는 가비의 손에 더더욱 힘만 들어가는 것 같았다.
"......?"
이 의미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를 한번 째릿 하더니 가비는 다시 묵묵히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미안하면서도 다시 내 김밥을 맛있게 먹어대는 가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웃음이 스물스물 나왔다.
턱을 괴고 베실베실 쪼개는 내 모습을 가비가 자꾸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마도...정신쪽으로 조금 문제가 있는 애로 보지 않나 싶다.
"너는 먹는 것도 어쩜 그렇게 이쁘게 먹니?"
김밥 하나하나를 먹어대는 가비, 정말 예쁘게 먹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굉장히 조용하고 깔끔하게..
"내가 그래서 너 좋아하나보다~그치?"
"......"
가비는 대답이 없었다.
김밥만 열심히 먹고 있었다.
..대답할 리가 없지..
"가비 널 좋아한다는 생각해본 적 한번도 없었거든.
사실 몇 번이나 봤다고 널 좋아하겠어~ 안그래?
가비 너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나 지금까지 남자한테 관심가져본 적 한번도 없어, 진짜 맹세해!
그러니까 뭐 지금 널 좋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하여간 진짜 내가 널 좋아하는 거라면 넌 내 첫사랑이라구!"
괜시리 들을 수 없는 고백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쑥쓰러운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가비가 흠칫하며 날 바라봤다.
순간적으로 무안해진 나..
다시 빙그레 웃으며 가비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제서야 다시 김밥을 집어먹는 가비.
"야, 무안하게 그렇게 쳐다보면 어떻게 해? 얼굴 빨개져서 죽는 줄 알았네.."
나의 혼잣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가비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지금 나에게는 마음 아픈 그 사실이 다행이었다.
마음 편히 내 속을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어떤 대답도 듣지 못하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나에게 좋은 대답을 해줄 사람은 절대 없으니까...
"내가 왜 널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 줄 알아?
널 처음 만나기 전에 진짜 또라이 같은 애를 하나 만났거든."
갑자기 베이비가 떠오르자 황당함과 함께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세상에 그놈이 처음 보자마자 나한테 뚱땡아!하는 거 있지!
그 말 듣는 순간 머리에서 스팀이 화악~!하고 솟아오르는 데 하늘이 노래진다는 의미를 그때서야 알았다니까!
그래, 사실 내가 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살이 약간 더 붙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처음 본 사이인데 그럴 수가 있어?
지가 내 몸의 두께에 보태준 거 있냐고!
키만 멀대같이 커서는 안봐도 훤해, 분명히 속은 텅 비었을 거야!
아마 나랑 맞짱 뜨면 일 분 안에 나한테 k.o. 당할 걸? 압사로 말야..
근데 생긴 것은 진~~짜 예쁘게 생겼어.
예쁘게 생겼다고 여자같이 생긴 게 아니고 뭐 그냥 만화주인공같이 신비스럽고 분위기 있게 생겼다고 해야할까?
이런 얼굴이 실제로도 존재하는구나~.. 생각했지 뭐.
근데 생긴 거는 진짜 믿을 게 못된다니까.
얼마나 엉뚱하고 황당하고 어이 없고, 기가 차고...또라이 같고, 으으으~~ 말을 말아야지!"
베이비에 대해서 말을 하자니 끝이 없었고, 괜한 넋두리 같아서 말을 잠시 멈추었다.
괜시리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서 땅바닥에 끄적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베이비 걘 말이야.. 꼴에 드라마 본 것은 있어서 나한테 이 안에 나 있냐?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서.. 베이비 꿀밤을 시원하게 한반 먹이면서 감히 가비가 있는데..라고 생각했거든.
정말 나도 몰랐어.
그래서 아아~ 내가 가비를 좋아하고 있구나..생각했지.
외모 잘난 애들은 자기 스스로가 안다고 하잖아.
그래서 왕자병, 공주병이라는 것도 걸리고.. 물론 난 절대 걸릴 수 없는 병이지만 말야.
가비 너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 병이란 말이야~~~
너랑은 제대로 대화 한번 못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가비 너 진짜 무지무지 멋지다? 정말 멋져!
다른 사람들 눈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베이비보다 가비 너가 훨씬 더 멋져 보인다~~
나한테 가비 넌....왕자님이야.."
혼잣말을 끝내고 마악 고개를 가비에게 돌렸을 때,
"으아아아아악~!"
어느새 김밥을 다 먹었는지 턱을 괴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가비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노..놀랬잖아.."
"......"
"니가 그렇게 보고 있으니까 내 말 다 들은 것 같아서 나 지금 무지 쪽팔려."
"......"
수첩에다가 잽싸게 끄적거려서 다시 가비에게 내밀었다.
- 내가 무슨 말했는지 궁금하지? 너에 대해서 말한 거 아니야.
그냥 고민도 많고 걱정거리고 많아서 혼잣말한 거야. 나 원래 혼잣말 무지 잘하거든.
그렇다고 절대 이상한 애는 아니야아~~-0--
라고 적어놨지..
사실 모두 다 가비한테 한 말이었는데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
갑자기 수첩에 가비가 끄적거리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첩을 받아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가비한테 대답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쉼호흡을 크게 내쉬고 수첩을 봤다.
-알아-
정갈한 두 글자.
따악 두 글자였지만, 별 의미 아닌 두 글자였지만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벌떡 일어났다.
가비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수첩을 끄적거려 가비에게 내밀었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아르바이트 가야되거든. 내일 또 보는 거야,
내일은 계란 껍질 없이 김밥 맛있게 만들어올게, 안녕!-
손을 휘이휘이 저으며 놀이터에서 벗어났다.
..알아..
가비의 글씨가 계속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말도 어쩜 그렇게 멋지고 깔끔하게 하는지!
"저 왔어요~!"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편의점 문을 열면서 힘차게 외쳤다.
오늘은 정말 나에게 힘이 넘쳐나는 날이니까.
"어머~ 화봉이 왔니?"
어라?
오늘따라 서희의 목소리가 유난히도 부드러웠다.
"어? 너?"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서희와 계산대 바로 옆에 어디서 났는지 의자에 앉아있는 베이비가 있었다.
"뚱땡이~"
저 놈의 새끼가... 날 보자마자 대뜸 뚱땡이라고 반갑게 외치더니,
바로 서희에게 비잉 돌아서 앉는 베이비.
베이비의 얼굴을 본 서희의 표정.
완전히 행복함으로 녹아서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앙큼한 표정만 보이더니..
"너 퇴근하고 할 일 있어?"
"어?"
"퇴근하고 약속 있냐구."
"약속? 없어!"
설마 베이비 저 놈, 저 앙큼쟁이 여우한테 데이트 신청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사실 뭐 나랑 관련 있는 놈은 아니지만 베이비가 저렇게 여자 보는 눈이 없다면 정말 내가 말려줘야 할 듯 싶었다.
나중에 혹시 또 만나게 되면 다 말해줘야지..
서희가 어떤 여잔지 말이다.
"퇴근하고 나서 할 일 정말 없지?"
"응!"
정말 힘차게 대답하는 서희의 동그란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번뜩이는 것을 난 보았다.
"그럼 한시간 반만 돈 좀 더 벌어라, 알았지? 뚱땡아, 가자!"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을 잡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와버린 베이비.
얼떨결에 편의점 밖으로 덩달아 끌려나온 나 이화봉.
"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나 노래방 가고 싶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 알바해야한단 말야!"
"나랑 한시간만 놀자, 쟤 시간 많대잖아."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구! 난 너랑 틀리단 말야! 너랑 놀아줄 시간 없다구!
난 내 생활비 모두 내 스스로 벌어야 해, 그거 알아! 단돈 천원이 아깝고 한시간이 아깝단 말야! "
갑자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베이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야.. 얼마면 돼."
이 놈의 새끼.. 열 받아 죽겠는데 또 드라마 흉내내네..
베이비는 너무 드라마를 많이 본 것 같았다.
"이제는 원빈이냐, 지금 너랑 장난할 기분 아니라구!"
편의점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내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베이비.
"나 노래방 가고 싶어. 같이 가자, 뚱땡아."
"싫어!"
그때 갑자기 편의점 문이 열리더니 서희가 튀어나왔다.
"승현아,....!!!"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자,
"뛰어!"
라고 갑자기 외치더니 내 손을 덥썩 잡고 뛰어가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난 얼떨결에 베이비와 함께 열심히 뛰고 있었다.
아아~~~ 난 몰라!
희미하게 서희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십분 뛰었을까..십오분 뛰었을까.
드디어 멈춘 베이비.
숨이 목까지 차 올라 헉헉대는 나와 달리 베이비는 숨 한번 흐트러지지 않았다.
"너..헉헉!.. 진짜..헉헉.. 진짜 죽을..헉."
숨 좀 돌리고 겨우 몸을 일으켜 베이비를 바라봤다.
시원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베이비의 풍성한 머리를 부드럽게 휘날리고 있었고,
멀쩡하게 서서 활짝 웃고 있는 베이비가 눈에 들어왔다.
"베이비 너어..."
맑고 예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베이비를 보자, 너무도 선하게 웃고 있는 베이비를 보자,
베이비의 투명한 볼 한쪽에 움푹 들어가는 보조개를 보자, 나는 결국 또 무너져 버렸다.
"따악 한시간이다."
"야호옷!"
한숨을 푸욱 내쉬며 결국 오케이를 해버렸고,
더더욱 신나하며 내 손을 덥썩 잡고 또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베이비.
"으아아아~~ 그만 좀 뛰라구!!"
베이비의 맑은 웃음소리와 굵직한 나의 비명소리가 시원한 바람과 섞이어 거리 안을 울려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