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도 느낄 수없는 어둠 속에서 의식은 살아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어둠에 적응이 된 정민은 의식 속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오감을 포함하여 외부의 모든 것으로 부터 완벽한 단절 상태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때때로 배고픔이란 것을 느끼면서 자신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지않았다면 식물인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어 처음에는 크게 절망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이 되고 보니 머리가 아주 맑아졌다. 정민은 어둠속에 갇혀 지내면서 예전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들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되새기는 재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정민은 집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자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으려고 했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었다. 머릿속의 책들 중에는 때때로 읽은 기억이 없는 한자로만 쓰인 책도 가끔씩 떠올랐고 한자로 쓰인 어려운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이건 의학 서적인가? 기니 혈이니, 순 이런 것만 적혀있군. 그러고 보니 만홧가게에서 봤던 무협만화에서 이런 글이 있었던 것 같은 데… 그럼 무공이 적혀있는 비급인가?’
정민은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용을 풀어보는 재미만 즐겼지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난세월 읽었던 책들을 되새김질 하다 보니 다시 볼만한 책들이 슬슬 동이 나기 시작했다. 읽을거리가 바닥을 들어내자,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커다란 둥근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실제로는 선과 점으로 이루어져 글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떠올려서 조각 맞추듯 배열을 따라 움직이는 재미와 함께 머리가 복잡하고 맑지 못할 때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하게 되었다.
정민은 그렇게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고 있다가 어느 날 인가 밝은 빛을 느꼈다, 보인 게 아니라 느낀 것이다.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이상하고 기분 나쁜 소리에 따라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주 그런 일이 있게 되자 차츰 익숙해지면서 이것이 재활훈련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소리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기분 나쁜 소리 이외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냥 재활중이니 곧 온전한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민의 몸이 처음에는 단순하게 윗몸을 일으키고 눕는 크고 단순한 동작에서 걷고 무언가를 손에 집고 휘두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자 소리에 이끌려 걷는 일이 많아 졌다. 정기적으로 입을 통해 끈끈한 액체가 공급되었지만 맛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인지는 몰랐다. 단지 그 액체를 먹고 나면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고, 몸에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오호, 내가 아직은 소화기능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미음을 주는 거로군. 그럼 내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후후후!’
정민은 기분이 좋아져 더욱 아무리 들어도 기분 나뿐 소리였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소리에 더욱 적극 적으로 몸이 움직이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때때로 움직일 때 혹시 날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느낌이 드는 때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소리가 이끄는 대로 적극 호응했다. 그렇게 소리에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다 보니 정교한 손가락 움직임도 가능해 졌고 어느 순간 신호에 따라 젓가락으로 무언가를 짚어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일도 쉽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리가 들릴 때의 일이고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정민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으로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사천에 있는 성도와 양양성의 거리는 말을 달려도 최소 오일은 걸려야 되는 거리였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강호 무림의 소문은 빨랐다. 게다가 사천 제일의 당문의 세력권 안을 비집고 들어선 현진방이란 존재는 그리 녹녹하지 않은 세력이었다. 떠도는 말로는 현진방의 방주가 화산파의 속가 제자였기 때문에 화산파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리 큰 도움은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게다가 화산파가 괜히 당가의 신경을 건드리면서까지 자파의 속가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현진방을 도울 수 없을 것이 타당하다하겠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현진방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세력은 아니란 말이 된다. 그렇게 당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방파로 존재하던 현진방이 하룻밤 사이에 천사교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번에도 그 삿갓 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고수에게 싹쓸이 당했겠군!”
“그러고 보니 그자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 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이곳 양양에도 천사교의 분타가 세워질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나도 그 천사교에나 가입할까?”
“그만 하게나! 자네 목숨이 두세 개라도 되는 거야. 가뜩이나 칼 밥 좀 먹는 다는 사람들은 천사교 이야기만 나오면 칼을 빼들고 설치는데, 자네도 당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나야 이 양양성 뒷골목에서 코 묻은 돈이나 몇 푼 챙기는데,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나 가질까. 으응,… 으~핵!”
마달이라 불린 사내는 어느 틈엔가 자신의 목에 다가온 싸늘한 예기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으나 그래도 강단아 있는 자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목을 자극하는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려했다.
“감히 예가 어디라고 그 극악무도한 무리의 이름을 입에 담느냐?”
조용하지만 상대의 기를 제압하는 힘이 실린 소리에 마달은 순간이나마 혼이 저 만치 외출을 하고 온 상태가 되었다.
“어이구, 나리!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면 저항하지 않고 무조건 빌고 또 빌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뒷골목의 생존법칙을 교과서적으로(?) 실천해왔기에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마달은 주위사람이 쳐다보기에 애처로움 넘어 민망할 정도로 굽실거리며 목숨을 구걸 했다. 마달이 이렇게 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 몰랐던 칼을 빼어든 자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결국 칼을 거두며 한마디 주위를 주는 선에 서 마무리를 지은 사내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마달은 뒤도 안돌아보고 객점을 빠져나와 골목을 향해 뛰었다. 마당의 곁에 있던 자도 덩달아서 뒤를 따라 뛰어나가자 객점에는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제기랄, 하필 화산파 자식들이 그곳에 있을 줄은 몰랐네!”
“후, 아직 목이 붙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자, 잠깐!”
“또, 뭐야? 오호, 땡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기름진 먹이 감이로군.”
마달의 눈에 들어온 먹이 감은 물론 금방 성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어린 티가 팍팍 나는 여자와 대로 엮어 만든 삿갓에 면사를 드리운 키가 큰 젊은 사내이었다. 사내는 사실 얼굴이 가려져있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소녀가 앞장서서 걷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젊을 거라 마달과 친구가 지레짐작한 것이다. 둘 다 칼을 들고 있었지만 겉으로 들어난 모습으로 볼 때 그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말쑥한 비단옷에 대장간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검을 그저 장식으로 들고 있는 것처럼 허술하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을 굳혔다.
그러나 마달은 이미 객점에서 혼이 난 후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달은 땅바닥에서 작은 돌 두 개를 집어 들고는 주먹으로 사람을 패는 것을 빼고는 유일한 특기인 돌팔매질을 살려 걸어오는 두 사람을 향해 던졌다.
조금이라도 무공을 익혔다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돌팔매 짓이었지만 두 사람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심지어 삿갓 쓴 사내는 중심을 잃고 쓰러질 듯 비틀 거리다 곁에 있던 소녀가 붙잡아 주는 바람에 겨우 중심을 잡았다. 소녀는 돌이 날아온 방향을 가늠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덩치 큰 사내 둘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는 급히 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어허, 동생!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초행길인 것 같은데 이 오빠가 길안내를 해주지. 자, 따라 오라고, 후후후!”
“흥, 난 당신 같은 오빠를 알지 못하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시지요! 우리는 급히 갈 곳이 있는 몸이니 그대들의 도움을 필요 없소이다.”
제법 당찬 소녀의 대답에 마달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긴장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렀게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에 다시 소녀와 키 큰 사내를 살폈으나 무림인들이 가지는 기세를 느낄 수 없었다. 때문에 곧 안심하고 더욱 노골적인 수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후후! 동생은 이곳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래서 이렇게 알려주는 거야. 누구나 이 양양성 주작대로를 지나려면 이 오빠에게 통행세를 내야 된다는 성주님의 포고령이 내려졌단 말이야. 그러니 통행세를 내고 가도록 해라.”
어이없는 수작이었지만 어린 소녀는 그냥 돈을 내어주고 끝낼 요량인지 고개를 끄떡이며 마달에게 물었다.
“그래요, 전 몰랐어요! 얼마를 드리면 되지요?”
의외로 소녀가 순순히 나오자 수작을 걸었던 마달이 어리둥절해졌다. 마달이 머뭇거리자 그 옆에 서있던 친구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은자 닷 냥!”
“그래요! 좀 비싸지만 드려야지요, 성주님의 포고령이라니까.”
소녀가 너무나 순순히 대답을 하고 품속에 손이 들어가자 두 사람은 긴장했다. 혹시 몸에 숨기고 있는 암기라도 발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그것이 쓸 때 없는 염려였다는 것을 깨닫고 맥이 탁 풀렸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대에서 금화와 은전들이 소녀의 한 손에 싸였고, 또 다른 손으로 은자 닷 냥을 세어 마달 앞으로 내밀었다.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4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4 - 내글[影舞]
시간의 흐름도 느낄 수없는 어둠 속에서 의식은 살아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어둠에 적응이 된 정민은 의식 속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오감을 포함하여 외부의 모든 것으로 부터 완벽한 단절 상태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때때로 배고픔이란 것을 느끼면서 자신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죽지않았다면 식물인간이 되었으리라 생각되어 처음에는 크게 절망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이 되고 보니 머리가 아주 맑아졌다. 정민은 어둠속에 갇혀 지내면서 예전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내용들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을 되새기는 재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정민은 집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자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으려고 했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었다. 머릿속의 책들 중에는 때때로 읽은 기억이 없는 한자로만 쓰인 책도 가끔씩 떠올랐고 한자로 쓰인 어려운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이건 의학 서적인가? 기니 혈이니, 순 이런 것만 적혀있군. 그러고 보니 만홧가게에서 봤던 무협만화에서 이런 글이 있었던 것 같은 데… 그럼 무공이 적혀있는 비급인가?’
정민은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내용을 풀어보는 재미만 즐겼지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난세월 읽었던 책들을 되새김질 하다 보니 다시 볼만한 책들이 슬슬 동이 나기 시작했다. 읽을거리가 바닥을 들어내자, 의식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커다란 둥근 바위에 새겨진 글씨들- 실제로는 선과 점으로 이루어져 글씨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을 하나하나 풀어보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떠올려서 조각 맞추듯 배열을 따라 움직이는 재미와 함께 머리가 복잡하고 맑지 못할 때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하게 되었다.
정민은 그렇게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내고 있다가 어느 날 인가 밝은 빛을 느꼈다, 보인 게 아니라 느낀 것이다.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이상하고 기분 나쁜 소리에 따라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두 번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주 그런 일이 있게 되자 차츰 익숙해지면서 이것이 재활훈련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쁜 마음으로 소리에 몸을 맡겼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기분 나쁜 소리 이외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냥 재활중이니 곧 온전한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정민의 몸이 처음에는 단순하게 윗몸을 일으키고 눕는 크고 단순한 동작에서 걷고 무언가를 손에 집고 휘두르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자 소리에 이끌려 걷는 일이 많아 졌다. 정기적으로 입을 통해 끈끈한 액체가 공급되었지만 맛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인지는 몰랐다. 단지 그 액체를 먹고 나면 밥을 먹은 것처럼 배가 불렀고, 몸에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오호, 내가 아직은 소화기능이 완벽하지 못하니까 미음을 주는 거로군. 그럼 내 몸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후후후!’
정민은 기분이 좋아져 더욱 아무리 들어도 기분 나뿐 소리였지만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소리에 더욱 적극 적으로 몸이 움직이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때때로 움직일 때 혹시 날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느낌이 드는 때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몸으로 회복되는 것만을 생각하고 소리가 이끄는 대로 적극 호응했다. 그렇게 소리에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다 보니 정교한 손가락 움직임도 가능해 졌고 어느 순간 신호에 따라 젓가락으로 무언가를 짚어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일도 쉽게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소리가 들릴 때의 일이고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정민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으로 몸을 아예 움직일 수 없었다.
양양성의 번화한 거리에는 북방에서 연일 들려오는 요나라의 전쟁 소식으로 민심이 뒤숭숭했지만 시장과 객점은 나름대로 활기가 넘쳤다.
“이보게 마달, 소식 들었는가?”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식?”
“사흘 전, 성도에 터를 잡고 있던 현진방이 천사교에게 당했다고 하더군!”
사천에 있는 성도와 양양성의 거리는 말을 달려도 최소 오일은 걸려야 되는 거리였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강호 무림의 소문은 빨랐다. 게다가 사천 제일의 당문의 세력권 안을 비집고 들어선 현진방이란 존재는 그리 녹녹하지 않은 세력이었다. 떠도는 말로는 현진방의 방주가 화산파의 속가 제자였기 때문에 화산파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그리 큰 도움은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게다가 화산파가 괜히 당가의 신경을 건드리면서까지 자파의 속가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현진방을 도울 수 없을 것이 타당하다하겠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현진방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세력은 아니란 말이 된다. 그렇게 당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방파로 존재하던 현진방이 하룻밤 사이에 천사교에 의해 멸문을 당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이번에도 그 삿갓 쓰고 면사로 얼굴을 가린 고수에게 싹쓸이 당했겠군!”
“그러고 보니 그자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 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이곳 양양에도 천사교의 분타가 세워질 거라는 소문이 있던데…. 나도 그 천사교에나 가입할까?”
“그만 하게나! 자네 목숨이 두세 개라도 되는 거야. 가뜩이나 칼 밥 좀 먹는 다는 사람들은 천사교 이야기만 나오면 칼을 빼들고 설치는데, 자네도 당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나야 이 양양성 뒷골목에서 코 묻은 돈이나 몇 푼 챙기는데, 누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나 가질까. 으응,… 으~핵!”
마달이라 불린 사내는 어느 틈엔가 자신의 목에 다가온 싸늘한 예기에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으나 그래도 강단아 있는 자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목을 자극하는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려했다.
“감히 예가 어디라고 그 극악무도한 무리의 이름을 입에 담느냐?”
조용하지만 상대의 기를 제압하는 힘이 실린 소리에 마달은 순간이나마 혼이 저 만치 외출을 하고 온 상태가 되었다.
“어이구, 나리! 그저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네!”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면 저항하지 않고 무조건 빌고 또 빌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한 뒷골목의 생존법칙을 교과서적으로(?) 실천해왔기에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마달은 주위사람이 쳐다보기에 애처로움 넘어 민망할 정도로 굽실거리며 목숨을 구걸 했다. 마달이 이렇게 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 몰랐던 칼을 빼어든 자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결국 칼을 거두며 한마디 주위를 주는 선에 서 마무리를 지은 사내는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마달은 뒤도 안돌아보고 객점을 빠져나와 골목을 향해 뛰었다. 마당의 곁에 있던 자도 덩달아서 뒤를 따라 뛰어나가자 객점에는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제기랄, 하필 화산파 자식들이 그곳에 있을 줄은 몰랐네!”
“후, 아직 목이 붙어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자, 잠깐!”
“또, 뭐야? 오호, 땡잡았다. 오랜만에 보는 기름진 먹이 감이로군.”
마달의 눈에 들어온 먹이 감은 물론 금방 성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어린 티가 팍팍 나는 여자와 대로 엮어 만든 삿갓에 면사를 드리운 키가 큰 젊은 사내이었다. 사내는 사실 얼굴이 가려져있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소녀가 앞장서서 걷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젊을 거라 마달과 친구가 지레짐작한 것이다. 둘 다 칼을 들고 있었지만 겉으로 들어난 모습으로 볼 때 그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말쑥한 비단옷에 대장간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검을 그저 장식으로 들고 있는 것처럼 허술하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을 굳혔다.
그러나 마달은 이미 객점에서 혼이 난 후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달은 땅바닥에서 작은 돌 두 개를 집어 들고는 주먹으로 사람을 패는 것을 빼고는 유일한 특기인 돌팔매질을 살려 걸어오는 두 사람을 향해 던졌다.
조금이라도 무공을 익혔다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돌팔매 짓이었지만 두 사람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심지어 삿갓 쓴 사내는 중심을 잃고 쓰러질 듯 비틀 거리다 곁에 있던 소녀가 붙잡아 주는 바람에 겨우 중심을 잡았다. 소녀는 돌이 날아온 방향을 가늠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덩치 큰 사내 둘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걸 발견하고는 급히 발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어허, 동생!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나? 초행길인 것 같은데 이 오빠가 길안내를 해주지. 자, 따라 오라고, 후후후!”
“흥, 난 당신 같은 오빠를 알지 못하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시지요! 우리는 급히 갈 곳이 있는 몸이니 그대들의 도움을 필요 없소이다.”
제법 당찬 소녀의 대답에 마달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긴장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저렀게 당당하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에 다시 소녀와 키 큰 사내를 살폈으나 무림인들이 가지는 기세를 느낄 수 없었다. 때문에 곧 안심하고 더욱 노골적인 수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후후! 동생은 이곳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래서 이렇게 알려주는 거야. 누구나 이 양양성 주작대로를 지나려면 이 오빠에게 통행세를 내야 된다는 성주님의 포고령이 내려졌단 말이야. 그러니 통행세를 내고 가도록 해라.”
어이없는 수작이었지만 어린 소녀는 그냥 돈을 내어주고 끝낼 요량인지 고개를 끄떡이며 마달에게 물었다.
“그래요, 전 몰랐어요! 얼마를 드리면 되지요?”
의외로 소녀가 순순히 나오자 수작을 걸었던 마달이 어리둥절해졌다. 마달이 머뭇거리자 그 옆에 서있던 친구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은자 닷 냥!”
“그래요! 좀 비싸지만 드려야지요, 성주님의 포고령이라니까.”
소녀가 너무나 순순히 대답을 하고 품속에 손이 들어가자 두 사람은 긴장했다. 혹시 몸에 숨기고 있는 암기라도 발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그것이 쓸 때 없는 염려였다는 것을 깨닫고 맥이 탁 풀렸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대에서 금화와 은전들이 소녀의 한 손에 싸였고, 또 다른 손으로 은자 닷 냥을 세어 마달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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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