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Over the Rainbow(제1부)

나뤼2005.06.21
조회287

“웃을 줄 몰라요?”

“모르는데요”

“말할줄은 아네요?”

“그러네요”

“나랑 말하기 싫은가요?”

“그런데요”


하루 종일 종종 걸음으로 바빠 죽을꺼 같은 희채를 쫓아 다니면서 질문 세례를 퍼부어 대는 인혁이 성가시다 못해 이제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멈추어선 희채가 인혁을 노려 보았다.


“그럼 이제 말 안하고 그냥 따라만 다니믄 안될까요?”

“이봐요. 나 바쁜거 안 보여요? 이런 의미없는 전쟁 그만 합시다”


매몰차게 돌아서서 가는 희채를 인혁이 불러 세웠다.

짜증 게이지가 폭팔해 버린 희채는 머리 속에 멍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죄다 집어 던지며 희채는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제발 부탁인데요..나 좀 그냥 둘래요? 제발 부탁이거든요.”


울먹이며 소리치는 희채에게 놀라 인혁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눈물을 닦아가며 서류를 주섬주섬 챙기는 희채를 보며 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리저리 체크하면서 다니는 희채를 인혁은 구석에 기대어 서서 눈짓으로만 그녀를 쫓았다.

인혁의 눈에 희채는 눈은 뜨고 있지만 속에 텅빈 사람 같아 보였다.

한참후, 대충 마무리를 지은 스태프들이 하나둘씩 퇴근을 했고, 희채도 가방에 서류를 챙거들고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일이 끝난 이시간이 희채는 너무 싫었다.

생각하기 싫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면 비워내야 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면 정말 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한참을 걷던 희채는 벤취를 발견하고는 털썩 주저 앉았다.

역시나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고이고 코 끝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는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눈물이 고이지 않게 해 그 느낌을 피하려 희채는 버릇처럼 하늘을 올려다 보고 긴 아주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가라앉는 이 순간에도 넌 나영이랑 행복하겠지?

야~ 윤무결 나영이를 보면서 웃음이 그 미소가 나오니?”


눈을 가득 매운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다.

희채는 눈을 꼭 감고 고여 있던 눈물을 다 흘려 내렸다.

다시 눈을 뜬 희채는 눈앞 허공에 떠 있는 맥주캔을 보고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돌아 보니 인혁이 맥주캔을 내밀고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어의없고 성가시게 살아요?”

“신선하잖아요?”


맥주캔을 받아든 희채는 한모금 쭉 들이켰다.

말없이 두 사람은 맥주캔을 하나둘씩 비워 갔다.

취기가 오른 희채가 계속 눈물을 쏟아 내며 말을 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해서 힘든게 아니예요.

내가 힘든 이유는 빌어먹을 그에 대한 내 마음이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예요...

아니 어쩜 아직도 내 심장이 그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실연당했어요?”


인혁의 말이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라며 희채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실연이 아니예요...

원래 내꺼 였단 말이죠...

태어날때부터 내 옆에 있었거든요...

내꺼 였는데 도둑 맞았어요.

근데 그 사람의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약을 먹였나 봐요...

내가 떠나고 나니 자기 사랑이 변하더래요.”


인혁은 희채와 눈을 마주치며 맥주 한 캔을 쭉 비워냈다.

그리고는 캔을 구겨 들고 휴지통에 골인 시켰다.


“버려요..이렇게...”

“바보 아니예요? 버릴수 있음 진작에 버렸죠..

근데 말이죠...

눈물이 멈추지가 않아요...

제 정신이 들어보면 눈물이 벌써 흐르고 있어요...”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혁이 일어나 그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손을 뿌리치고 희채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희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잠시후 벌떡 일어나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인혁은 희채의 가방을 챙겨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희채는 팔을 벌리고 뛰어다니며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봐요! 거기 성가신 사람. 비요...이 비 너무 좋지 않아요..?

난 전생에 레인맨이였나봐요..비가 이렇게 좋을수가 없어요.

그때 귀찮게 생각했던 구름을 못되게 버렸거든요

그래서 지금 생에서 그 구름과 비를 너무 그리워 하는 거예요.”


희채는 넘어갈 듯이 까르르 거리며 비를 맞았다.


“그렇게 웃을줄도 아네요?”

 

희채는 인혁이 얄밉게 흘겨 보았다.

그러자 인혁은 희채에게 다가가 희채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소리쳤다.


“오늘만 지금 이 순간만 미쳐 보자구요.”


두 사람은 소리를 질러대며 쭉 뻗은 길을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다음날 무대 뒤에서 인혁은 열심히 고개를 쳐들고 희채를 찾았다.

저만치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희채를 발견한 인혁은 기다렸다는 듯 희채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다녔다.

희채는 원상복귀가 되어 있었다.

연신 싱글거리는 인혁을 무시한채 일에 집중을 하려 했지만 역시나 인혁이 거슬렸다.

인혁을 돌아보고 희채는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만두고 인혁을 지나쳐 무대 앞으로 돌아갔다.

인혁은 일이 끝날 때까지 구석에 앉아 희채를 기다렸다.


일을 마치고 나오던 희채는 구석에 앉아 졸고 있는 인혁을 발견했다.

그러나 무시하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잠시후 다시 돌아온 희채가 인혁을 깨웠다.


“이봐요?”


깜짝 놀라 깨어난 인혁은 벌떡 일어났다.

희채는 돌아서 아무말없이 앞서 걸어 나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희채는 어제의 그 벤취에 앉았다.

희채는 손에 들고 있던 봉지를 뒤적거려 맥주를 꺼내 옆자리에 놓고 또 하나를 꺼내 시원하게 한모금 들이켰다.


“오늘은 내가 한잔 사죠...”


옆에 앉은 인혁도 벌컥이며 맥주를 마셨다.


“왜 그렇게 성가셔요?

내 기억에는 그쪽에게 돈을 빌린 적도 없고 또, 책 잡힐 일 한적은 역시 없는거 같은데...?“

“일하고 있는 그쪽을 보고 있으면 속이 텅빈 사람 같애요.

유체이탈이 된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 같단 말이죠.“


희채는 아무말없이 그냥 맥주만 홀짝거렸다.


“그러다 일이 끝나면 영혼이 돌아온 것 같은데 무지하게 힘들어 보였어요.

그러던 당신이 재미있다..나중에는 궁금해졌고..

지금은 언젠가 당신이 쓰러질꺼 같아서 그때 내가 받쳐주고 싶어서 따라다니는 거예요.“

“쓸데없는 호기심에 위험한 관심이네요.”

“그런가요?”

“그리고 작업하는 방식 치고는 너무 고전적이예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죠.”


한 캔을 비운 희채는 캔을 구겨 휴지통에 골인을 시켰다.

인혁도 같이 피식 웃으며 골인을 시켰다.


“왜 그렇게 울어요?”


희채가 인혁을 쳐다보자.


“울잔아요...아니 항상 울어요 눈이...”

“신경끄시죠”

“당신이 날 인식하기 전부터 당신을 알고 있었어요.

오디션을 보러온날 당신을 처음 봤죠.

오디션장 안에서 창밖으로 비를 보면서 싱글거렸었는데...

그때 당신은 기분 좋게 내리는 빗소리 같앴는데...

그 다음에 당신을 만났을때 당신은 우울하게 내리는 빗소리 같더군요.“


희채의 머리 속으로 한국에 귀국하기 전 있었던 오디션이 생각이 났다.

한 여류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위해 오디션을 했었다.

그 때 희채는 스텝으로 연수중이였다.


“그 쪽 한국 사람이죠?”

“이제야 물어 보시는군요. 강인혁이라고 합니다.”


인혁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희채는 악수를 받으며 그를 보았다.

유심히 보자 눈빛이 아주 멋있는 남자였다.

고개를 내리자 그의 길고 쭉 뻗은 손가락이 멋진 손이 눈에 들어 왔다.

 

“관심 가져 주시는 것 황공 무지로 소이다인데요.

그냥 일 적으로만 만났으면 좋겠네요.

부담스럽습니다.“

 

희채는 일어서 택시를 잡고 가버렸고 인혁은 사라지는 택시의 꽁무니가 사라질때까지 그 곳에 서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더 이상 인혁은 희채를 따라 다니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마주칠 때도 가벼운 목례 정도가 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리허설 날이 되었다.

리허설을 마친후 희채는 불이 꺼진 무대 귀퉁이에 걸쳐 앉았다.

언제나 생각했던 것이지만 불이 꺼진 무대는 참 서글펐다.

어둠이 눈에 익자 관객석 저 끝에 누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가 인혁임을 알았다.

어둠속에서 그가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 왔다.

눈앞에 그가 인혁임을 확인하자 반가움이 그녀 마음을 가득채웠고 그녀는 그 마음이 당황스러워 시선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오늘은 맥주 말고 와인 어때요?”


와인을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인혁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쭈뻣거리던 희채가 무대에서 내려 가려하자 인혁이 희채의 팔을 잡아 세우고는 말했다.


“자꾸 도망갈래요? 안잡아 먹을께요.

내일은 드디어 당신이랑 나랑 같이 하는 첫작품이잔아요.

축배 정도는 들게 해줘요.“


와인을 반병쯤 비운후 인혁은 무대위에서 위킹을 해 보였다.

그러다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고 핸드폰을 꺼내 들고 부드러운 왈츠 한곡을 틀었다.

그리고 희채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청했다.

노래가 끝날때까지 두 사람은 무대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음악이 끝나자 희채가 인혁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오래간만에 진짜 오래간만에 마음이 편안해 졌어요.”


빈 와인잔에 와인을 채우고 희채에게 건냈다.


“들어줄수는 있어요. 언제나...”


무대 바닦에 주저 앉은 희채는 와인잔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때 그 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 갔었어요.

한국에 그 사람이 있거든요.

귀국하자마자 그 사람을 찾아 갔는데요.

그 사람이 아주 낯설게 변해 있었어요.

반갑게 아주 반갑게 안아줄줄 알았는데...

내가 쪽지 한 장 달랑 써놓고 그렇게 떠날줄은 몰랐데요.

그래서 막 화가 나다가 억울하다가 그랬데요.

그렇게 시간을 보냈데요.

그리고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 이것이였어요.

당신이 떠나고 나니 내 사랑이 변하더이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그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요.”

“이제는 틀렸어요. 약혼을 했더라구요. 내 고등학교 동창이랑...”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와인을 마셨다.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네요.

세상이 이렇게 공허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을 데리고 오는 거였는데...“

“왜 그랬어요?”

“그사람을 사랑하지만 난 무대도 사랑했어요.

그 사람은 날 이해하고 기다려 줄줄 알았죠...

천벌 받은거예요. 나...“


인혁은 희채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인혁의 어깨에 기댄 희채는 훌쩍였다.


“울어요, 실컷.. 내가 당신 눈물 다 받아 줄테니까...”

 

희채는 그에게 기대어 오래간만에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