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관계-(4)백조와 슈퍼 아저씨 그 녀석

瓚禧200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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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




 

(4)백조와 슈퍼 아저씨 그 녀석



“에이!”


영효가 들고 있던 볼펜을 탁 소리가 나게 벽으로 던져버렸다. 그녀의 손에 의해 내동댕이쳐진 볼펜은 댕그르르 굴러 옷장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말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4년 동안 뒷전이었던 공부가 한 순간에 잘 될 리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것마저도 기억에서 가물거릴 지경이었다.


“이렇게 해서 시험은커녕 시험 발꿈치도 못 보겠네.”


자포자기한 말투로 중얼거리며 영효가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 이런 어려운 공부를 그동안 상현은 어떻게 했던 것일까? 놀아달라는 영효의 칭얼거림에도 단숨에 달려왔던 그였다.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도 조금 어려워진 집안에 도움이 되겠다, 새벽까지 주유소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주간 보다 시급이 더 세다는 말에 낮에는 학교, 저녁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생활을 1달 넘게 했던 남자였다.) 꼬박 꼬박 아침에 그녀를 데리러 집까지 와 주었던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독종이었으며, 책임감 있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여 현모양처를 장래희망으로 생각했었다. 그와의 결혼 이외 영효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사대 아이들이 피터지게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도, 영효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상현에게 맛있는 도시락을 안길까?였다. 남들이 여자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말 할 때도, 향후 내 직업은 현모양처가 될 것이라며 큰 소리 뻥뻥 치던 것이 엊그제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미치도록 상현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잊겠다, 잊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수천수만 번 되뇌어도 5년간 함께 했던 그와의 기억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머리를 흔들수록 그는 끈질기게 그녀를 쫓아다녔다. 여자는 방안 한 귀퉁이에 처박혀 있다시피 한 곰 인형을 노려보았다. 꽉 쥔 주먹으로 곰 인형의 오른쪽 턱을 향해 강한 어퍼컷을 날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에 대한 그리움이 커 져갈수록 그에 대한 미움도 덩치를 더 해갔다.


“단 것이 미치도록 필요한 날이군.”


영효는 책상 의자에 걸려있던 노랑색 카디건을 들고 밖으로 향했다. 항상 자주 가는 단골 슈퍼로 향하는 동안에도 온통 그녀의 머릿속은 상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의 놀이터 마냥 수시로 들락거리며 영효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기억들이었다. 머리는 온통 딴 사람이 지배하고 있는데 몸은 주인의 의지대로 착실히 슈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슈퍼 앞에서 영효는 슈퍼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이 길은 돼지 슈퍼로 가는 길이었고, 아무리 딴 생각에 가득 차서 걸었다 하더라도 눈감고도 올 수 있는 길을 잘못 들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영효의 눈앞에 떡 하니 보이는 간판은 돼지 슈퍼의 간판이 아니었다. B&G마트라는 노란색 간판에 검은색 글씨가 그녀의 눈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일주일이 넘도록 돼지 슈퍼를 들리지 않았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왕창 사 놓은 사탕과 초콜렛이 남아있었기도 했지만,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은 그녀로써는 힘든 기억들이어서 세상으로 나오기가 겁이 났었다.


“주인이 바뀐 건가?”


중얼거리며 영효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전에 돼지 슈퍼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사탕과 초콜렛이 있는 코너로 돌아간 영효는 미친 듯 단것들을 손에 집어 들었다. 상현의 결혼식 이후, 아니 상현의 이별 통보이후 살포시 보이던 식탐들이 그의 결혼식 이후 극대화되어 그녀를 덮치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5개 이상의 초콜렛과 10개 이상의 츄파춥스를 입에 달지 않고서는 살수가 없었다. 상현에 대한 집착을 사탕과 초콜렛으로 풀고 있던 그녀였다. 적어도 츄파춥스와 초콜렛을 오물거릴 때만큼은 상현의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깐.


“여기 계산이요!”


들고 있던 사탕 봉지들과 츄파춥스, 그리고 초콜렛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많이 사셨네요. 만 삼천 오백 원입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작은 지갑을 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 만 원짜리 두 장이 곱게 들어있었는데 한 장 밖에 없는 게 아닌가? 영효가 사라진 만원의 행방을 좇는 동안, 그녀가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던 초콜렛과, 사탕들은 하얀 비닐봉투에 곱게 담겨져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돈이 모자라네요. 이건 안 살게요.”


영효가 황급히 비닐봉투의 내부를 휘저어 사탕 봉지 몇 개와 초콜렛 몇 개를 꺼냈다.


“그냥 가져가요!”


영효가 고개를 들어 그제야 주인을 쳐다보았다. 영효 앞에 파란색 스포츠 웨어를 입고 서 있는 상한이 서 있었다.


“어?”

“나머지는 제가 사지요.”


영효의 놀란 탄성을 뒤로 하고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여기에 있어요?”

“왜 여기에 있겠어요?”

“말장난 하고 싶은 심정 아니에요. 왜 있는 거냐고요.”

“인수했어요. 돼지 슈퍼 인수 했어요.”

“아..........”


단골 슈퍼를 인수 한 사람이 전 남자친구와 결혼한 여자의 전 남자친구라니. 여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여자에게 남자는 비닐 봉투에 담긴 초콜렛과 사탕들을 보며 ‘페닐에틸아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가 보죠?’ 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영효는 며칠 전 초콜렛에 들었던 성분이라고 자신이 가르쳐 준 말을 떠올렸다. 기억력이 비상한 남자인 것 같았다. 남자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정말 요 며칠 동안은 페닐에틸아민이라는 성분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마약처럼, 초콜렛에든 그것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술로 풀고, 어떤 사람은 운동으로 풀고, 어떤 이는 먹는 걸로 푼다는데 그 쪽은 먹는 걸로 푸는 타입이군요.”

“그럼 그쪽은 운동으로 푸는 타입인가요?”


영효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어떻게 알았냐?’라는 표정으로 변했다. 표정하나는 정말 다양한 남자였다. 남자의 표정에 영효가 어깨를 으쓱 올리며 ‘전번 보다 더 탔고, 스포츠 웨어를 입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우와. 정말 관찰력이 대단하네요.”


남자의 태도에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그렇게 오버해 가면서 칭찬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그의 태도에 여자는 저 남자가 날 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때 꼬마 계집아이 하나가 아이스크림을 그에게 내밀어 보이며 천원을 내밀었다.


“어? 혜지네? 머리 했어? 우와. 정말 예쁘다.”


남자는 조금 전 여자에게 했던 것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말했다. 남자의 말에 혜지라는 여자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대로변을 향해 뛰어갔다.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버릇인 것 같아 여자는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정말 이거 그냥 가지고 가요?”

“네. 제 선물이라고 생각하시고, 앞으로 우리 B&G마트 많이 애용해 주세요.”


남자가 제법 사장 티 나는 말투로 말했다. 남자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팔목에 비닐봉투를 걸었다. 비닐봉투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팔목에 걸려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향해 작게 목례를 하고 슈퍼를 나섰다. 슈퍼 앞 작은 도로 앞에서 여자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출입문에 고개를 빼꼼히 내민 남자가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영효는 그에게 작게 손을 흔든 다음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요!”


한 순간에 일어났다. 그녀가 바닥에서 붕 떠버린 것도, 그녀의 팔에서 기분 좋게 달랑거리던 비닐봉투가 날아가 바닥에 떨어진 것도, 남자의 ‘조심해요!’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의 신의 속도라고 말해도 될 만큼 빠른 속도로 상한은 영효를 향해 달려갔다. 바닥에 솜 인형처럼 제 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영효의 몸을 안고 그녀를 흔들었다.


“이봐요. 영효씨! 정신 좀 차려 봐요!”


상한의 목소리에도 영효는 눈을 뜰 줄 몰랐다. 상한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친 악마 같은 노란색 외제차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때 차에서 내린 남자가 빨던 담배를 아무렇게나 던지며 ‘씨발, 재수가 없으려니깐.’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중얼거리는 입 모양을 노려보고 있던 상한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린 것은 영효가 차에 치인 것만큼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한의 주먹에 남자의 얼굴이 획 젖혀졌다.


“야! 너 잘 들어! 지금은 영효씨가 다쳐서 내가 이정도 하는데, 사람을 쳐서 저 지경으로 만들었으면 최소한 미안합니다 내지는 죄송합니다 는 말 먼저 하는 게 예의야. 그리고 그렇게 앉아 담배 끝이 다 타들어 갈 때 까지 빨고 있을 게 아니라, 먼저 내려서 상대방이 얼마나 다쳤는지 알아보는 게 예의라고. ‘씨발, 재수가 없으려니깐.’ 이라는 말을 내 뱉기 전에 그 짧은 순간 넌 그렇게 했어야 했어. 그게 기본적인 사람으로써의 예의라고! 이 빌어먹을 자식아!”


상한은 이제 갓 20살이 넘어 보이는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다시피 영효에게로 끌고 갔다.


“자! 아까 내가 한 말 들었지? 이제 네가 뭘 해야 겠냐?”


상한이 거칠게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영효를 쳐다보다 그녀를 번쩍 안고 그의 차에 태웠다. 조수석에는 상한이 앉은 채, 그의 노란색 외제차가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눈을 뜬 영효의 눈앞에 제일 먼저 보인 사람은 상한이었다.


“일어 난 거야?”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긴. 갑자기 자동차가 들이 받는 바람에 이렇게 붕 떴다가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고. 십년감수 할 뻔 했어. 내가......”


영효의 물음에 상한이 기다렸다는 듯 몸짓 발짓 다 해가며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말에 여자는 그제야 ‘내가 교통사고를 당했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이봐, 그냥 교통사고가 아니라 이렇게 붕 떴다가 이렇게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는 심각한 교통사고라고!”


상한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영효를 보며 말했다. 흥분한 그를 향해 여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 어린아이 같은 남자였다. 저렇게 몸짓 발짓 다 하지 않아도 알 일을 남자는 굳이 그렇게 행동으로 보여야만 그녀가 수긍할 분위기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여자의 눈에 병실 구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눈 두덩이는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는 그녀를 쏘아 죽일 듯 쳐다보는 남자를 여자가 쳐다보았다. 여자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하자, 상한이 말했다.


“저 녀석이 널 친 그 놈이라고.”


상한은 분이 풀리지 않는 다는 말투로 재빨리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병실 구석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서서 영효의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괜찮겠지.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 때문에 난 내 인생을 망쳤고 말이야.”


남자의 눈빛에는 적대감이 가득했다. 비꼬는 말투로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여자가 쳐다보았다. 여자의 표정을 보던 남자는 ‘제길.’짧게 욕지거리를 내 뱉고는 탁 소리가 나게 병실 문을 닫고는 사라졌다.


“저 자식. 정말 싸가지가 없네. 지네 부모가 잘살면 다야? 분명 집에서 오냐 오냐 하고 키운 똥강아지 같은 녀석일 거야.”


상한이 투덜거리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속에는 곱지 않은 그의 심정이 잘 들어나고 있었다. 상한의 투덜거림에 여자는 상한을 쳐다보았다. 정말 이상한 남자였다. 주리의 결혼식에서 보다, 이 일에 더 열이 받는 모양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친구한테 버림 받은 일 보다 이게 더 심각한 일인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근데 가게는 어떻게 하고 온 거예요?”

“아차! 가게!”


상한이 자신의 이마를 툭 치며 그제야 생각났다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가 봐요.’라는 영효의 말에 남자는 손살 같이 병실을 빠져나갔다. 썰물처럼 빠져 나간 남자의 빈자리에서 여자는 혼자 병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연한 옥빛으로 칠해진 시멘트벽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교통사고라서 그런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온 몸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마치, 너 아프길 기다렸다는 듯,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바늘로 콕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면서, 아까 영효를 적대감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상한이 앉았던 둥근 원형 의자에 걸터앉은 남자가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영양실조란다. 영양실조. 그것 때문에 한 이삼일은 입원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뭐 교통사고랑은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내 실수니깐. 입원비는 내가 내지.”


남자는 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그 더러운 기분에 영효의 멀뚱한 표정을 마주하고 앉아있자니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오늘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고, 그녀로 인해 그의 인생은 지금 꼬여가고 있었다. 패션쇼 시작 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그렇게 밟아대지 않으면 펑크를 낼 수도 있는 중요한 상황이었다. 결국엔 이런 맹한 계집애 때문에 펑크가 나긴 했지만. 생각 할수록 억울한 마음에 남자는 지금이라도 벽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나라 최고의 디자이너 장 선생님의 패션쇼였다. 그 패션쇼에 선 사람에게 연예계 진출은 따 논 단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 패션쇼를 위해 일년간 피나는 워킹연습을 해 댔다. 죽으나, 사나 그 패션쇼만 생각하며 보낸 세월이 일년이었다. 그 패션쇼만 무사히 마치면 연예계진출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부모님의 역정도 조금 잠잠하게 재울 수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지금 앞에 맹하니 쳐다보고 있는 호빵 같은 계집애만 아니면 말이었다. 뭐 패션쇼? 그래. 자신의 실수로 펑크 낸 거니깐. 그런 거니깐. 누굴 탓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더 화가 나는 것은 앞에 앉아 있는 계집애의 병명이 고작 ‘영양실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었다. 어디가 부러진 것도 아니고, 몸에 탈이 난 것도 아닌 계집애 때문에 그 중요한 패션쇼와 자신의 인생을 저당 잡혔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눈두덩에 자리 잡고 있는 멍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에이전시에서 한 소리 할 것은 물론이고, 자기 관리 부실하다는 이야기 까지 들을 게 뻔했다. 남자는 이것이 꿈이길 간절히 빌 따름이었다.


“영양실조라…….하긴 제가 요즘 못 먹긴 했죠.”

“닥쳐! 네 그깟 영양실조에 내 인생이 대단히 꼬이고 있는 중이니깐, 그딴 소리 하려거든 닥치고 있어. 그렇지 않으면 여자라고 봐주고 있는 내 인내심의 끈이 끊어져 버릴 테니깐.”


남자는 상당히 화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고함 소리보다 그 낮은 목소리에 위압감이 더 든다는 것을 남자가 알고 있는 것일까? 남자의 말에 여자가 말했다.


“지금 내 탓을 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영양실조라고는 하지만,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병원신세를 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요. 그리고 지금 내가 삭신이 얼마나 아픈 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아씨. 말하다 보니깐 기분 나쁘네! 너 몇 살인데 나한테 말 놓고 지랄이야! 지랄이!”


영효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말을 쏟아내었다. 물론 그 말에는 그동안 상현에 대한 화풀이가 섞여 있긴 했지만, 자신의 앞에 싸가지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자에게는 그런 대접도 황송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태도에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몇 살이냐?”

“내 나이 묻기 전에 네 나이 밝히는 게 예의 아니야?”


영효가 애써 화를 억 누르며 대꾸했다. 여자의 말에 남자가 짧게 ‘난 20살.’이라고 나이를 밝혔다. 남자의 말에 영효가 ‘뭐? 스무우 사알?’이라고 말하며 남자를 비꼬기 시작했다.


“야! 아씨! 박영효 성격 많이 죽었네. 이제 20살 밖에 안 드신 놈에게 반말 찍찍 얻어듣고. 인생 우울하다, 우울하다 하니깐 진짜 바닥으로 기어 다니는구나.”


영효가 억울한 표정으로 침대를 턱턱 쳐가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런 영효의 모습을 남자는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그러나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영효는 아예 눈물 까지 글썽 글썽 거리면서 애꿎은 침대를 툭툭 쳐댔다.


“인생 살아서 뭐해. 죽어야지……. 죽어야지…….더 살아서 뭐할꼬.”


여자의 말투는 흡사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투와 비슷했다. 항상 ‘더 살아서 뭐하누. 죽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시던 할머니와 비슷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쿠쿡…….쿡......”


한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멈출 줄 몰랐다. 터지길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웃음은 키득거림에서 박장대소로 이어졌다.


“풉…….하하하하하하”

“큭…….큭…….킥킥킥”


조용하던 병실에 남자와 여자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침대를 쳐가며 웃고 있었다. 한참을 낄낄거리며, 웃기에 열중하던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진짜 웃기는 여자네. 왜 웃어? 큭”

“그러는 너는 왜 웃는데..풉...”


영효가 남자의 말에 냉큼 대꾸했다. 왜 웃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호방하게 웃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다시는 웃을 일이 없을 것 같던 그녀의 인생에서 이렇게 어이없게 웃음보가 터져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여자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 오늘 기분 완전 꽝이었거든? 당신 때문에 오늘 일년 동안 준비했던 내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이상한 시추에이션이거든. 근데 말이지. 화가 나야 하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 좀 웃기네?”

“나도 사실 이렇게 웃을 때가 아니거든? 남자친구한테 차인지도 얼마 안됐고, 남자친구가 결혼하는 것 까지 본 입장에서 볼 때, 이렇게 웃을 때는 아닌 시추에이션이거든? 근데 말이지. 좀 웃기네?”


영효가 남자의 말에 질세라 그의 말을 맞받아치며 말했다. 여자의 말에 남자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환한 얼굴이었다. 잘생긴 이목구비 하며, 훤칠한 키가 청바지에 하얀색 티 하나 걸쳐 입었을 뿐인 남자의 외모를 더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 남자의 잘 생긴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영효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생길 정도였다.


‘무슨 사내자식이 저렇게 예뻐? 완전 이상한하고 쌍벽을 이루는 외모구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니깐 꽃미남들에게 둘러싸이네. 쩝. 내 주제를 알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여자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늘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남자가 작은 의자에서 일어나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우와. 정말 크다…….’


“아까 같이 있던 남자는 어디 간 거야? 나 가봐야 하는데?”

“가봐. 어차피 나 혼자 있어도 되는걸. 근데 말이야. 너 사뿐히 말을 확실히 놓아버린다? 죽을래?”

“너 같은 땅꼬마한테 죽임을 당할 정도면 세상 살지도 않아. 간다. 이틀 뒤에 한 번 더 보자.”

“뭐어? 땅 꼬오마아?”


남자는 여자를 남겨두고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뒤늦게 화가 난 영효가 베게를 출입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베게가 그 싸가지 없고, 못된 녀석의 등에 맞았으면 좋았을 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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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적음 맘 상할라고 했었는뎅^^*

 

아침에 출근 하기 전에 한편씩 올릴께요~

 

리플 꼭 다시는거 잊지 마세요-ㅁ-)^ 리플 안달아 주심 소심한 A형 까뜩 맘상한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회사에 한글깔리면 그때 부턴 무한으로 따따다닥 올릴께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