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효는 새삼 자신이 왜 세상을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의문의 최초 발생일은 병원 퇴원 후 이틀째 처음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효가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은, 요리와 십자수 뜨개질 그 외에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배워놓은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같은 과 동기들은 벌써 세상의 쓴 맛을 보고 있다며, 가끔 영효에게 신세 한탄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학교 교사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런 문자와 소식들을 접할 때 마다 영효는 왜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상현으로 정했던 것일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의 캠퍼스 생활은 온통 상현이었다. 상현과의 결혼이 인생의 목표였고, 그에게 맞는 현명한 여자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진로를 정해서 그런지, 영효는 캠퍼스 생활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같은 과 동기들이 학점을 더 잘 받으려 동분서주 하는 사이, 영효는 강남에 위치한 신부수업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남들이 리포트 쓰느라 정신없는 사이, 영효는 김치 담그기, 뜨개질하기, 십자수, 다도, 시부모 공경 등의 강의를 들으며 대학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영효를 보며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요즘 남자들은 다 약아 빠져서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는 별로야. 뭐 처음엔 집에서 살림 하는 여자가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어려운데 맞벌이 안하고는 살기 힘들어. 그러니깐 너도 상현이만 보면서 신부수업 하지 말고, 공부 하란 말이야. 교사 되면 공부하면서 시간 많으니깐 집안일에도 소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너 그러다 만약에 상현이랑 잘못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 허비한 인생 어디서 보상 받을 거야?’
그 당시 그런 말을 지껄인 친구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방방 뛰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 싶었다. 왜 단 한번도 상현과 틀어질 일은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어쩜 영효는 안심하고 있었고,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와 결혼 하고, 당연히 시부모 공경하며 알콩 달콩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현을 위해 배워두었던 효과적인 다림질 방법은 써먹을 곳이 없었고, 그를 위해 배워두었던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의 요리들은 먹을 사람이 없어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에는 도무지 흥미가 없었다. 뒤 늦게 임용고시를 준비 하고는 있지만, 두꺼운 책은 보기만 해도 두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영효는 머리를 까치집으로 만들어 버리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잘잘한 꽃무늬들이 3D 그래픽으로 펼쳐져 그녀를 잠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거의 눈꺼풀이 감기고, 슬슬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그녀의 귓가에 한동안 울리지 않던 그녀의 핸드폰이 신명나게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뭐해? 아참, 누구세요냐고는 묻지 마.]
상대편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발랄했다. 그녀가 아는 상한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었지, 이렇게 발랄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자가 기억을 헤 집고 들어가 남자의 목소리의 출처를 찾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누군지 그새 까먹은 거야? 참, 인생 판타스틱 하다. 어떻게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냐? 그래서 세상 살기나 하겠어? ]
여자가 미처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해 내기도 전에 남자는 여자를 향해 신랄하게 퍼부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영효였다.
“뭐 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 주혁이야. 이 땅꼬마야.]
주혁이라는 말에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기억 상 이 부잣집 똥강아지 녀석은 그녀가 이길 수 없는 적수였다. 여자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남자가 ‘너 쫄았지?’라고 그녀를 빈정대며 놀렸다.
“에이!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왜 전화해서 염장 지르고 지랄이야! 지랄이!”
[쿡, 그렇게 나와야지 땅꼬마답지. 기분 안 좋으면 내가 풀어 줄께. 지금 당장 강남으로 와.]
남자는 위치를 대충 설명해 준 다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자의 전화에 방방 뛰며 남자의 흉을 잔뜩 보던 영효는 결국 그의 말을 더듬어 가며 그가 오라던 곳으로 향했다. 그가 설명해준 건물을 찾으면서도 연신 영효는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가는 것은 단지 심심해서라고. 그 똥강아지 녀석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여자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제대로 찾은 신형 건물 앞에 우뚝 섰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건물의 외관은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 되었다.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 건물은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묘한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건물 앞에서 여자는 서성였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남사스럽다. 가자.’
고개를 저으며 여자는 발걸음을 돌렸다.
“뭐야? 그냥 갈 참이야?”
여자가 뒤를 돌아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나왔는지, 남자가 영효를 보며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남자는 찢어진 청바지에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 남방차림이었다. 눈매를 강조한 파란색 아이섀도 때문에 그의 훤칠한 외모가 도깨비처럼 보였다. 갑작스런 남자의 모습에 여자가 한 두 걸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 무서워? 어서 들어가자! 시작하겠다.”
남자는 여자의 의사 따위는 물어보지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건물 안에는 밖에서 흐르던 위압감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축하 화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가운데는 커다란 무대가 있었고,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비눗방울들과 안개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혀 놓고, 눈을 찡긋거리며 ‘조금 있다 보자. 그냥 갔다가 걸리면 너 죽는다.’ 라고 말하며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자는 난데없는 상황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촌스러운 차림으로 앉아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여자들은 다들 드레스 차림이었고, 남자들은 턱시도나 양복차림이었다. 청바지에 티 하나 입고, 동네 슈퍼 옷차림으로 온 사람은 영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동질감에서 어긋난 여자의 옷차림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대 놓고 쳐다보지 않고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더 기분 나빠 영효는 괜히 발끝을 툭툭 차고 있었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다들 저런 자만감에 도취되어 있지. 똑 같은 인간이고, 똑 같은 사람인데 마치 자신들만 우월한 종자들인 것처럼. 기분 나쁘네.’
여자는 자신이 그런 말을 대 놓고 퍼 부울 만큼의 용기가 없는 것에 대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이윽고, 사회자의 쇼 시작을 알리는 멘트와 함께 실내는 일순 조용해 졌다. 조용한 실내 사이로 사이버틱한 기계음과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기계음과 피아노는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루어 색다른 음색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비눗방울들이 둥둥 떠다니고, 무대 바닥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때 모델들이 저마다 자신의 옷을 자랑하며 무대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워킹 하는 그들의 옷차림과 외모 그리고 몸매를 보느라 영효의 눈이 쉼 없이 돌아갔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주간의 연애가 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잠깐 잠깐씩 패션쇼를 보여준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와서 보는 것과, 대중 매체를 통해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영효는 처음 갔던 룰라의 콘서트 장에 떠올랐다. 가수와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외쳐 부른 노래들, 함께 뛰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어깨동무를 할 만큼 동질감을 느낀 것들, 그리고 처음 겪어본 가슴 터질 듯한 흥분 감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영효의 앞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본 낯선 감정보다도 흥분감이 그녀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음악이 낮은 저음으로 바뀌면서 그가 나타났다. 살이 다 보일정도로 난도질을 한 청바지차림의 그가 무대 중앙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청바지 하나만 걸친 그의 모습에 영효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그러다 조금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살짝 살짝 비치는 그의 맨 몸이 보였다.
‘비실 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몸 좋네.’
남자의 몸매는 적당한 근육들로 탄력 있어 보였다. 탄탄한 구릿빛 가슴 때문에 청바지의 매력이 더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 같았으나, 영효의 눈에는 남자의 튼튼한 가슴만이 보일 뿐이었다. 짧은 순간 벌어진 손가락 사이의 그녀의 눈동자와 주혁의 눈동자가 한데 엉켰다. 그의 눈빛에 여자는 순간적으로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남자가 들어가고 난 후, 다른 모델들의 환상적인 워킹이 계속되는 사이에도 여자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자의 시선들이 맴돌고 있었다.
‘진짜, 미쳤어. 미쳤다고. 걘 20살이야. 이제 막 겨 다니기 시작한 어린애 데리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 거야. 정신 차려. 박영효.’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그때, 남자가 다시 무대에 섰다. 남자 한 사람만으로도 무대가 꽉 찼고, 그 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부잣집 도련님쯤으로 생각했던 남자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고,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아는 남자였다. 폼으로 모델 일을 하는 나부랭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여자는 남자를 향한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에 반하는 힘차고 당당한 워킹과 포즈들, 여자는 남자를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있었다. 패션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한 시간이 십 분같이 흘러가버린 듯 덧없었다. 끝난 패션쇼장을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동안에도 영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온다던 남자는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갈 때 까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씨. 사람 밍숭 맹숭하게 앉혀 놓고 뭐하는 짓이야.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똥강아지 녀석.”
남자를 향한 동경의 눈빛은 패션쇼 막을 내림과 동시에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여자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의 무례한 행동에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똥강아지라는 거 나보고 하는 말이야?”
남자는 화장이 지워진 말끔한 얼굴에 진 청바지에 깊은 브이넥 흰 티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 스니커즈로 마무리 한 남자의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남자가 입으니 같은 옷차림이라도 모델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었다. 남자의 깊은 브이넥 사이로 보이는 적당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근육들을 만져 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참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넌, 넌 맨날 나한테 땅꼬마라고 하잖아.”
“그거랑 네가 나한테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똥강아지랑 나랑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잖아. 넌 땅꼬마 맞잖아. 키가 그렇게 작으니깐, 난 그래도 막무가내로 별명을 짓지는 않아.”
“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널 똥강아지라고 부르니깐 냅두셔. 그게 싫으면 너도 날 땅꼬마라고 부르질 말던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럼 내가 왜 널 똥강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거야 내가 똥강아지와 전혀 1%만큼의 연관성도 없으니깐 그렇지!”
“난 있어 보여!”
영효의 말에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자의 눈썹 사이로 그러진 내 천자를 무시 하고, 여자는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땅꼬마.”
남자의 기분 좋은 목소리
가 텅 빈 건물을 울리며 메아리 쳤다.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멈추어 서 남자를 팩하니 쏘아 보았다. 멈추어 선 영효를 향해 주혁이 걸음을 옮기며 여자에게 말했다.
“네가 뭐라고 하던 난 땅꼬마라고 부를 거야.”
“난 너보다 밥도 많이 먹었고, 너보다 살아도 더 살았어. 노인 공경을 할 줄 알아야지.”
“그래서 네가 노인이라는 거야? 이렇게 꼬부랑 할망구인거야?”
남자가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는 흉내를 내 보이며 여자를 향해 반문했다. 185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남자가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꼬부랑할망구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여자는 웃음보가 터져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쿡…….쿡…….풉....푸하하하하 너, 너 진짜 웃긴다.”
여자의 매서운 손바닥이 남자의 구부정하게 구부린 어깨 위로 사정없이 내리쳐 졌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여자의 웃음이 조금 진정이 되자, 남자가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누굴 패면서 웃어대냐? 쪼그마한 게 손은 진짜 맵네.”
주혁은 앞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찔끔 흐른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영효를 바라보았다. 연상은 자신의 체질이 아니지만, 앞에 있는 땅꼬마 같은 계집아이는 왠지 끌렸다. 영효에게 주혁은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무슨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손으로 닦냐? 자, 이것 써.”
영효는 남자가 내민 손수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칠칠치 못해. 자, 이걸로 닦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꽃비를 내리던 날,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는 여자를 향해 그렇게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이었다. 여자는 순간 상현의 기억을 떠 올리다가, 앞에 서 있는 주혁을 바라보았다. 우연이었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 올리게 만든 것에 대해 주혁을 질책하고 싶었다.
우두커니 남자가 내민 손수건을 바라보던 여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비처럼 똑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져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처럼 똑똑 떨어져 아스팔트위로 선명한 위치를 만들었다. 여자의 갑작스런 눈물에 주혁은 손수건으로 여자의 눈물을 닦아 주며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너, 나 당황하라고 일부러 우는 거지? 그치? 아씨. 미치겠네. 왜 울고 그래. 응? 울지 마. 응? 울지 말라고. 그만 울어. 나 여자들 우는 거 정말 싫단 말이야! 우리 울지 말고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말하자.”
남자의 손수건을 받아든 영효는 주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주혁을 보고 있자니, 입술에 웃음이 슬금슬금 맺히려 하고 있었다. 여자의 작은 웃음을 발견한 주혁이 언제 당황하고, 언제 어쩔 줄 몰라 했냐는 얼굴로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얼레리 꼴레리. 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심지난대요.”
어린애 같은 어조로 놀려 대며 도망가는 남자를 잡으려 영효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좁은 병실에서는 어떻게든 한 두 대는 때릴 수 있었지만, 넓은 건물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리 길이 차이는 여실히 들어나고 있었다. 벌써 저만치 도망가 여유를 부리며 여자를 향해 낼름 혀를 내미는 남자를 보다 영효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 정신연령 제로 같으니라고. 노인네 놀려 먹으니깐 좋아? 좋아?”
다리를 피고 앉아 통통 때리는 영효의 곁으로 주혁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얼마나 운동을 안했으면, 고거 뛰고 이렇게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
“언제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백 미터 달리기는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는 처음이야.”
“요즘 여자들도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웰빙 몰라? 웰빙? 운동을 해서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 지는 법이라고. 그렇게 나태해가 살면 안 좋아. 쯧쯧, 그러니깐 노인네라는 소리를 듣는 거지.”
남자의 종알거리는 잔소리에 여자는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뚝한 콧날이 영효의 뭉툭한 콧날과 비교되어 보였다. 여자가 콧날을 눌러 올리고 있자,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낮은 콧날 매만져 봤자, 올라가겠어?”
“이래 뵈도 동양적인 외모시라고. 뭐 왕년엔 나도 날린 얼굴이셔. 왜 그러셔.”
“그 오서방 같은 말투 좀 안할 수 없어? 그리고. 왕년에 안 날린 사람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나 참, 살다 살다 너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턱도 없는 자만 감으로 가득 차 있는 여자는 처음이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뭐 뱃보 하나는 인정한다.”
“뭐어? 너 진짜 죽고 싶은 거야?”
“그래도 그 낮은 콧날 하나는 마음에 든다. 뭉툭해서 ........할 때 찔리지는 않겠군.”
“뭘 해?”
남자의 들리지 않게 얼버무린 말이 궁금해 여자가 남자를 쳐다며 물으려 할 때, 그때였다. 남자의 보드라운 입술이 여자의 마른 입술을 덥친 것은.
-이상한 관계-(6) 똥강아지와 땅꼬마
이상한 관계
(6) 똥강아지와 땅꼬마
영효는 새삼 자신이 왜 세상을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의문의 최초 발생일은 병원 퇴원 후 이틀째 처음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영효가 잘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 것은, 요리와 십자수 뜨개질 그 외에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배워놓은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같은 과 동기들은 벌써 세상의 쓴 맛을 보고 있다며, 가끔 영효에게 신세 한탄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학교 교사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런 문자와 소식들을 접할 때 마다 영효는 왜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상현으로 정했던 것일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의 캠퍼스 생활은 온통 상현이었다. 상현과의 결혼이 인생의 목표였고, 그에게 맞는 현명한 여자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일찍 진로를 정해서 그런지, 영효는 캠퍼스 생활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같은 과 동기들이 학점을 더 잘 받으려 동분서주 하는 사이, 영효는 강남에 위치한 신부수업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남들이 리포트 쓰느라 정신없는 사이, 영효는 김치 담그기, 뜨개질하기, 십자수, 다도, 시부모 공경 등의 강의를 들으며 대학 생활을 했던 것이었다. 그런 영효를 보며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요즘 남자들은 다 약아 빠져서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는 별로야. 뭐 처음엔 집에서 살림 하는 여자가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어려운데 맞벌이 안하고는 살기 힘들어. 그러니깐 너도 상현이만 보면서 신부수업 하지 말고, 공부 하란 말이야. 교사 되면 공부하면서 시간 많으니깐 집안일에도 소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너 그러다 만약에 상현이랑 잘못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 허비한 인생 어디서 보상 받을 거야?’
그 당시 그런 말을 지껄인 친구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방방 뛰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 싶었다. 왜 단 한번도 상현과 틀어질 일은 생각하지 못했었는지. 어쩜 영효는 안심하고 있었고,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와 결혼 하고, 당연히 시부모 공경하며 알콩 달콩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현을 위해 배워두었던 효과적인 다림질 방법은 써먹을 곳이 없었고, 그를 위해 배워두었던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의 요리들은 먹을 사람이 없어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에는 도무지 흥미가 없었다. 뒤 늦게 임용고시를 준비 하고는 있지만, 두꺼운 책은 보기만 해도 두 눈이 감길 지경이었다. 영효는 머리를 까치집으로 만들어 버리고 바닥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잘잘한 꽃무늬들이 3D 그래픽으로 펼쳐져 그녀를 잠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거의 눈꺼풀이 감기고, 슬슬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그녀의 귓가에 한동안 울리지 않던 그녀의 핸드폰이 신명나게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뭐해? 아참, 누구세요냐고는 묻지 마.]
상대편 남자의 목소리는 상당히 발랄했다. 그녀가 아는 상한의 목소리는 낮은 저음이었지, 이렇게 발랄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여자가 기억을 헤 집고 들어가 남자의 목소리의 출처를 찾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누군지 그새 까먹은 거야? 참, 인생 판타스틱 하다. 어떻게 기억력이 그렇게 나쁘냐? 그래서 세상 살기나 하겠어? ]
여자가 미처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해 내기도 전에 남자는 여자를 향해 신랄하게 퍼부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영효였다.
“뭐 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 주혁이야. 이 땅꼬마야.]
주혁이라는 말에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기억 상 이 부잣집 똥강아지 녀석은 그녀가 이길 수 없는 적수였다. 여자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자 남자가 ‘너 쫄았지?’라고 그녀를 빈정대며 놀렸다.
“에이!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왜 전화해서 염장 지르고 지랄이야! 지랄이!”
[쿡, 그렇게 나와야지 땅꼬마답지. 기분 안 좋으면 내가 풀어 줄께. 지금 당장 강남으로 와.]
남자는 위치를 대충 설명해 준 다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자의 전화에 방방 뛰며 남자의 흉을 잔뜩 보던 영효는 결국 그의 말을 더듬어 가며 그가 오라던 곳으로 향했다. 그가 설명해준 건물을 찾으면서도 연신 영효는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가는 것은 단지 심심해서라고. 그 똥강아지 녀석이 보고 싶은 게 아니라고.’
여자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다잡으며 제대로 찾은 신형 건물 앞에 우뚝 섰다. 건물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건물의 외관은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 되었다. 온통 유리로 되어있는 건물은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묘한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건물 앞에서 여자는 서성였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미쳤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남사스럽다. 가자.’
고개를 저으며 여자는 발걸음을 돌렸다.
“뭐야? 그냥 갈 참이야?”
여자가 뒤를 돌아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나왔는지, 남자가 영효를 보며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남자는 찢어진 청바지에 화려한 꽃무늬 프린트 남방차림이었다. 눈매를 강조한 파란색 아이섀도 때문에 그의 훤칠한 외모가 도깨비처럼 보였다. 갑작스런 남자의 모습에 여자가 한 두 걸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 무서워? 어서 들어가자! 시작하겠다.”
남자는 여자의 의사 따위는 물어보지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건물 안에는 밖에서 흐르던 위압감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축하 화단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가운데는 커다란 무대가 있었고,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비눗방울들과 안개들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혀 놓고, 눈을 찡긋거리며 ‘조금 있다 보자. 그냥 갔다가 걸리면 너 죽는다.’ 라고 말하며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자는 난데없는 상황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촌스러운 차림으로 앉아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여자들은 다들 드레스 차림이었고, 남자들은 턱시도나 양복차림이었다. 청바지에 티 하나 입고, 동네 슈퍼 옷차림으로 온 사람은 영효 한 사람 뿐이었다. 그들은 동질감에서 어긋난 여자의 옷차림을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대 놓고 쳐다보지 않고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그들의 눈이 더 기분 나빠 영효는 괜히 발끝을 툭툭 차고 있었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다들 저런 자만감에 도취되어 있지. 똑 같은 인간이고, 똑 같은 사람인데 마치 자신들만 우월한 종자들인 것처럼. 기분 나쁘네.’
여자는 자신이 그런 말을 대 놓고 퍼 부울 만큼의 용기가 없는 것에 대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이윽고, 사회자의 쇼 시작을 알리는 멘트와 함께 실내는 일순 조용해 졌다. 조용한 실내 사이로 사이버틱한 기계음과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기계음과 피아노는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루어 색다른 음색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비눗방울들이 둥둥 떠다니고, 무대 바닥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그때 모델들이 저마다 자신의 옷을 자랑하며 무대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으로 워킹 하는 그들의 옷차림과 외모 그리고 몸매를 보느라 영효의 눈이 쉼 없이 돌아갔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한주간의 연애가 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잠깐 잠깐씩 패션쇼를 보여준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와서 보는 것과, 대중 매체를 통해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영효는 처음 갔던 룰라의 콘서트 장에 떠올랐다. 가수와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외쳐 부른 노래들, 함께 뛰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어깨동무를 할 만큼 동질감을 느낀 것들, 그리고 처음 겪어본 가슴 터질 듯한 흥분 감들. 그 모든 것이 지금 영효의 앞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본 낯선 감정보다도 흥분감이 그녀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음악이 낮은 저음으로 바뀌면서 그가 나타났다. 살이 다 보일정도로 난도질을 한 청바지차림의 그가 무대 중앙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청바지 하나만 걸친 그의 모습에 영효는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려버렸다. 그러다 조금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살짝 살짝 비치는 그의 맨 몸이 보였다.
‘비실 할 줄 알았는데 은근히 몸 좋네.’
남자의 몸매는 적당한 근육들로 탄력 있어 보였다. 탄탄한 구릿빛 가슴 때문에 청바지의 매력이 더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 같았으나, 영효의 눈에는 남자의 튼튼한 가슴만이 보일 뿐이었다. 짧은 순간 벌어진 손가락 사이의 그녀의 눈동자와 주혁의 눈동자가 한데 엉켰다. 그의 눈빛에 여자는 순간적으로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남자가 들어가고 난 후, 다른 모델들의 환상적인 워킹이 계속되는 사이에도 여자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자의 시선들이 맴돌고 있었다.
‘진짜, 미쳤어. 미쳤다고. 걘 20살이야. 이제 막 겨 다니기 시작한 어린애 데리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 거야. 정신 차려. 박영효.’
여자는 자신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그때, 남자가 다시 무대에 섰다. 남자 한 사람만으로도 무대가 꽉 찼고, 그 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부잣집 도련님쯤으로 생각했던 남자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고,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아는 남자였다. 폼으로 모델 일을 하는 나부랭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여자는 남자를 향한 눈을 잠시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잔잔한 음악에 반하는 힘차고 당당한 워킹과 포즈들, 여자는 남자를 연예인처럼 동경하고 있었다. 패션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한 시간이 십 분같이 흘러가버린 듯 덧없었다. 끝난 패션쇼장을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동안에도 영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온다던 남자는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갈 때 까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씨. 사람 밍숭 맹숭하게 앉혀 놓고 뭐하는 짓이야.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똥강아지 녀석.”
남자를 향한 동경의 눈빛은 패션쇼 막을 내림과 동시에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여자는 여자를 기다리게 하는 남자의 무례한 행동에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똥강아지라는 거 나보고 하는 말이야?”
남자는 화장이 지워진 말끔한 얼굴에 진 청바지에 깊은 브이넥 흰 티를 입고 있었다. 하얀색 스니커즈로 마무리 한 남자의 옷차림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지만, 남자가 입으니 같은 옷차림이라도 모델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고 있었다. 남자의 깊은 브이넥 사이로 보이는 적당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는 근육들을 만져 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참으며, 남자에게 말했다.
“넌, 넌 맨날 나한테 땅꼬마라고 하잖아.”
“그거랑 네가 나한테 똥강아지라고 부르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똥강아지랑 나랑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잖아. 넌 땅꼬마 맞잖아. 키가 그렇게 작으니깐, 난 그래도 막무가내로 별명을 짓지는 않아.”
“나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널 똥강아지라고 부르니깐 냅두셔. 그게 싫으면 너도 날 땅꼬마라고 부르질 말던가!”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럼 내가 왜 널 똥강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거야 내가 똥강아지와 전혀 1%만큼의 연관성도 없으니깐 그렇지!”
“난 있어 보여!”
영효의 말에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자의 눈썹 사이로 그러진 내 천자를 무시 하고, 여자는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땅꼬마.”
남자의 기분 좋은 목소리
가 텅 빈 건물을 울리며 메아리 쳤다. 남자의 목소리에 여자는 멈추어 서 남자를 팩하니 쏘아 보았다. 멈추어 선 영효를 향해 주혁이 걸음을 옮기며 여자에게 말했다.
“네가 뭐라고 하던 난 땅꼬마라고 부를 거야.”
“난 너보다 밥도 많이 먹었고, 너보다 살아도 더 살았어. 노인 공경을 할 줄 알아야지.”
“그래서 네가 노인이라는 거야? 이렇게 꼬부랑 할망구인거야?”
남자가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지팡이를 짚는 흉내를 내 보이며 여자를 향해 반문했다. 185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남자가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꼬부랑할망구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여자는 웃음보가 터져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쿡…….쿡…….풉....푸하하하하 너, 너 진짜 웃긴다.”
여자의 매서운 손바닥이 남자의 구부정하게 구부린 어깨 위로 사정없이 내리쳐 졌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여자의 웃음이 조금 진정이 되자, 남자가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누굴 패면서 웃어대냐? 쪼그마한 게 손은 진짜 맵네.”
주혁은 앞에서 여전히 웃는 얼굴로 찔끔 흐른 눈물을 닦아 내고 있는 영효를 바라보았다. 연상은 자신의 체질이 아니지만, 앞에 있는 땅꼬마 같은 계집아이는 왠지 끌렸다. 영효에게 주혁은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무슨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손으로 닦냐? 자, 이것 써.”
영효는 남자가 내민 손수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칠칠치 못해. 자, 이걸로 닦아.’
벚꽃이 흐드러지게 꽃비를 내리던 날,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는 여자를 향해 그렇게 곱게 접힌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이었다. 여자는 순간 상현의 기억을 떠 올리다가, 앞에 서 있는 주혁을 바라보았다. 우연이었지만, 슬프도록 아름다운 기억들을 떠 올리게 만든 것에 대해 주혁을 질책하고 싶었다.
우두커니 남자가 내민 손수건을 바라보던 여자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비처럼 똑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져 자신만의 영역을 만든 눈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봇물처럼 똑똑 떨어져 아스팔트위로 선명한 위치를 만들었다. 여자의 갑작스런 눈물에 주혁은 손수건으로 여자의 눈물을 닦아 주며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너, 나 당황하라고 일부러 우는 거지? 그치? 아씨. 미치겠네. 왜 울고 그래. 응? 울지 마. 응? 울지 말라고. 그만 울어. 나 여자들 우는 거 정말 싫단 말이야! 우리 울지 말고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말하자.”
남자의 손수건을 받아든 영효는 주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주혁을 보고 있자니, 입술에 웃음이 슬금슬금 맺히려 하고 있었다. 여자의 작은 웃음을 발견한 주혁이 언제 당황하고, 언제 어쩔 줄 몰라 했냐는 얼굴로 여자를 향해 말했다.
“얼레리 꼴레리. 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심지난대요.”
어린애 같은 어조로 놀려 대며 도망가는 남자를 잡으려 영효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좁은 병실에서는 어떻게든 한 두 대는 때릴 수 있었지만, 넓은 건물에서 남자와 여자의 다리 길이 차이는 여실히 들어나고 있었다. 벌써 저만치 도망가 여유를 부리며 여자를 향해 낼름 혀를 내미는 남자를 보다 영효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 정신연령 제로 같으니라고. 노인네 놀려 먹으니깐 좋아? 좋아?”
다리를 피고 앉아 통통 때리는 영효의 곁으로 주혁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얼마나 운동을 안했으면, 고거 뛰고 이렇게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
“언제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백 미터 달리기는 고등학교 체력장 이후는 처음이야.”
“요즘 여자들도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웰빙 몰라? 웰빙? 운동을 해서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 지는 법이라고. 그렇게 나태해가 살면 안 좋아. 쯧쯧, 그러니깐 노인네라는 소리를 듣는 거지.”
남자의 종알거리는 잔소리에 여자는 남자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뚝한 콧날이 영효의 뭉툭한 콧날과 비교되어 보였다. 여자가 콧날을 눌러 올리고 있자, 남자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낮은 콧날 매만져 봤자, 올라가겠어?”
“이래 뵈도 동양적인 외모시라고. 뭐 왕년엔 나도 날린 얼굴이셔. 왜 그러셔.”
“그 오서방 같은 말투 좀 안할 수 없어? 그리고. 왕년에 안 날린 사람 있음 나와 보라고 그래. 나 참, 살다 살다 너처럼 아무것도 없는데 턱도 없는 자만 감으로 가득 차 있는 여자는 처음이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뭐 뱃보 하나는 인정한다.”
“뭐어? 너 진짜 죽고 싶은 거야?”
“그래도 그 낮은 콧날 하나는 마음에 든다. 뭉툭해서 ........할 때 찔리지는 않겠군.”
“뭘 해?”
남자의 들리지 않게 얼버무린 말이 궁금해 여자가 남자를 쳐다며 물으려 할 때, 그때였다. 남자의 보드라운 입술이 여자의 마른 입술을 덥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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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가 좀 늦었죠?
오늘도 날씨가 좋을 것 같더라구요. 기분 좋은 하루 되시구요~ 리플 다시는거 아시죠? 한마디씩 달아주심 큰 힘이 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