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희연은 이제 열여섯 살 밖에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찬모와 시녀를 빼면 주위에 여자가 별로 없었다. 어릴 적에 유모도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여자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을 배우기보다는 교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강시를 제련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때문에 남녀 간의 문제에도 무지했다. 지금처럼 보통사람이라면 뜨악했을 강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이러고 있다가 그녀의 유모가 보고 기겁하여 도망쳐 버린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였다. 그래서 유모나 시녀가 자주 바뀌는 한 이유가 되었고, 이런 엽기적인 그녀에게 배속된 시녀들도 살갑게 대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런 남녀 간의 관계에는 더욱 무관심하게 되었다.
담희연이 철이 들 무렵, 천의전이란 명칭을 천부사교라고 바꾸고 본격적인 세력 확장이 시작하면서 교주인 아버지와 약간 소원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아버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고, 이젠 교주가 애지중지하며 직접 관리하던 강시를 몰래 빼내서 도망쳤던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교주가 갑자기 새장가를 들려고 했는데 그 상대가 희연이 제일 싫어하던 화련당의 당주인 진수연이란 게 문제였다.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뛰어가 난리를 쳤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없게 되자 이렇게 도망쳐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잠시 바람이나 쏘이면서 아버지의 뜻을 꺾어 보려던 것이 의외로 아버지가 추격대까지 파견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추격대를 피해 이리저리 떠돈 것이 벌써 두 달째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파에는 천부사교의 이런 문제가 각 지방에 세력 확장을 위한 분타를 설치하기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천사교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거짓 정보였다. 실제로 분타를 세운 곳도 있었기 때문에 정파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희연의 도피행이 양양으로 향하자 천사교는 양양에 분타를 세운다는 소문을 냈던 것이다.
‘에고,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못을 빌까? 아니야… 그 여우가 아빠를 충동질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참 이 강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지내면서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네!’
희연은 몸을 돌려 강시의 가슴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복면을 벗겼다.
‘와, 잘 생겼네! 약물에 오랫동안 담겨있었는데도 이렇게 깨끗하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다니 놀라워…!’
천사교에서는 강시를 제련할 때 살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약물에 오랫동안 담가둔다 그래서 살빛이 약물에 찌들어 푸르죽죽하게 변하게 된다. 때로는 약물에 불어서 살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허였게 뼈가 들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강시의 얼굴은 약간 부른 빛이 감돌긴 했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그런대로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희연은 강시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바로 그때 강시의 눈꺼풀이 열리며 희연의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어어…! 이, 이럴 수가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어!’
‘어라, 이애는 누구야? 예쁘게 생겼네! 간호사인가? …그런데 머리모양하고 복장이 좀…, 아! 맞다, 중국이지!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군. 근데 중국 병원의 간호사의 옷은 이렇게 화려한가? 머리모습이 꼭 북경 박물관에서 보았던 당나라 미인도와 똑같군! 아니 송나라였던가! 하여간 고급 병원인가보군. 헌데 이 아가씨가 남의 얼굴은 쓰다듬고 난리야?’
정민은 유일하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간호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라, 왜 그렇게 놀란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리야. 하기야 내가 눈동자를 움직인다는 것이 놀랄 일은 놀랄 일이겠지. 헤헤, 그러고 있으니까 되게 귀엽네!’
‘어, 이것 봐라, 강시 주제에 웃으려고 하네! 호호, 눈이 매력적인데…. 그냥 뽑아가지고 목걸이를 만들면 어떨까? 아냐, 그럼 다시 썩은 생선 눈깔처럼 될 꺼야. 그렇지! 집에 돌아가 썩지 않게 하는 약물에 담그면 이대로 유지 될 거니, 집에 돌아가면 만들어 봐야겠다.’
희연의 생각을 정민이 알았다면 이 여자 앞에서 다신 눈을 뜨고 싶지 않겠지만 다행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정민은 어떻게 하든 눈으로 신호를 보내어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았다.
‘어, 이놈 보게! 눈을 깜박이네. 에잇!’
희연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손가락을 바로 세워 찌르려는 동작을 취했다.
‘앗, 뭐야!’
‘헤헤, 심했나!’
이렇게 둘은 호젓한 지붕위에 얼굴을 맞대고 넘치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희연은 강시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문득 코를 찌르는 이상한 향기를 맡고 정신을 몽롱해 짐을 느꼈다. 잠시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가로젓던 희연은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정신을 놓아 그대로 강시의 얼굴에 코를 박았다.
‘뭐, 뭐야! 이, 이 아가씨가 미쳤나. 이건 성희롱이야~!’
“여기까지 도망치실 게 뭐람.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계셔서 다행이군. 야, 이 강시는 관에 넣고, 소교주님을 모실 마차를 준비해라. 최대한 빨리 길을 잡아 교주님의 결혼식 전에 본교로 귀환한다!”
검은 야행 복으로 온몸을 감싼 흑의대주 감숙은 정신을 잃고 강시위에 엎드려져있는 희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여간 이 말썽꾸러기도 여인이 되어가는군. 형수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나저나 오연 그놈이 내가 없는 틈에 딴마음을 먹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형님은 너무 사람을 잘 믿는 게 탈이야. 오연, 이번에 돌아가면 네놈의 검은 속내를 밝혀 내손으로 목을 따고야 말겠다!’
감숙이 희연을 안고 지붕을 내려가자 흑의대원들이 달려들어 강시를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이번엔 검은 옷을 입은 의사인가? 근데 인상들이 왜 이리 더러워. 꼭 범죄형들만 모아놓은 거 같잖아. 어라 저놈은 뺨에 칼자국이, 그리고 이놈은 애꾸…! 으악, 사장 놈이 보내온 킬러들이구나! 사, 사람 살려!’
정민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니 발버둥 치려했지만 눈동자와 눈꺼풀만 열심히 움직이는 극렬하지 못한 아주 미미한 저항밖에는 하지 못하며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윽고 좁은 관에 뉘어지고 관 뚜껑이 닫히자 정민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갇히게 되었다.
정민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처음 의식이 깨어나서 겪은 어둠은 무섭긴 했지만 살아났다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어둠은 죽음을 예고하는 어둠이었기에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제기랄 이럴 때는 기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더 정신이 말똥말똥해가지고서야…, 맞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살 방법을 찾느냔 말이야! 어떤 놈이 만든 속담인지…, 어이구!’
정민은 계속 빠져드는 공포의 늪 속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오기 위해 딴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잘되지 않았다. 결국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둥근 바위에 새겨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상한 문양을 따라 가상의 걸음마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잘 되지 않았지만 차츰 문양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갈 수 있게 되자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정민은 그렇게 관속에 갇혀 공포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어딘지 모를 곳이 아닌 죽음을 향한 여행일지도 모를 여정을 밟고 있었다.
드디어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소교주님, 정신이 드십니까?”
‘으응, 감 아저씨! 그럼…, 에~앵 잡혔네! 이대로 가면 아빠한테 되게 혼날 텐데, 어쩌면 좋아! 참, 피리?’
결국 희연은 일어나 앉았다. 덜컹거리던 마차가 멈추자 마차 문이 열리며 흑의대원이 도열해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교주님, 내리시지요!”
“감 아저씨, 제발 소교주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냥 옛날처럼 ‘희연아’하고 불러줘요!”
“그건 안 됩니다! 소교주님은 교주님을 뒤를 이어 천부사교의 2대 교주가 되실 귀하신 몸입니다.”
“에이, 또 그 얘기…! 난 싫다고요. 아저씨나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뜩이나 오연대주가 엉뚱한 맘을 먹고 있는데, 이렇게 소교주님이 사적인 감정에 자꾸 휘둘리면 앞으로 교를 통솔하시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하들이 보고 있습니다. 소교주님은 그렇게 쉬운 분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오연 대주를 비롯한 딴생각을 먹고 있는 무리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쳇, 알았어요! 어험, 음, 음! 감숙대주, 앞장서시오!”
“후후! 네에, 소교주님!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호호호, 낮 간지러워라! 그냥가요, 감 아저씨!”
희연은 감숙을 향해 혀를 날름하고는 그대로 뛰어내려 객잔으로 뛰어갔다. 이미 해는 떨어졌고 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객잔에는 선발대가 이미 손을 썼는지 희연일행을 위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희연은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다. 그것도 느긋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하는 식사는 천부사교를 떠나면서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9
한님(환웅(桓雄))의 구슬 - 9 - 내글[影舞]
담희연은 이제 열여섯 살 밖에 되질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찬모와 시녀를 빼면 주위에 여자가 별로 없었다. 어릴 적에 유모도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여자로서 갖추어야 될 덕목을 배우기보다는 교내에서 아버지와 함께 강시를 제련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 때문에 남녀 간의 문제에도 무지했다. 지금처럼 보통사람이라면 뜨악했을 강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이러고 있다가 그녀의 유모가 보고 기겁하여 도망쳐 버린 사건은 너무나 유명한 일화였다. 그래서 유모나 시녀가 자주 바뀌는 한 이유가 되었고, 이런 엽기적인 그녀에게 배속된 시녀들도 살갑게 대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런 남녀 간의 관계에는 더욱 무관심하게 되었다.
담희연이 철이 들 무렵, 천의전이란 명칭을 천부사교라고 바꾸고 본격적인 세력 확장이 시작하면서 교주인 아버지와 약간 소원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아버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고, 이젠 교주가 애지중지하며 직접 관리하던 강시를 몰래 빼내서 도망쳤던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교주가 갑자기 새장가를 들려고 했는데 그 상대가 희연이 제일 싫어하던 화련당의 당주인 진수연이란 게 문제였다. 결혼 소식을 듣자마자 뛰어가 난리를 쳤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수 없게 되자 이렇게 도망쳐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잠시 바람이나 쏘이면서 아버지의 뜻을 꺾어 보려던 것이 의외로 아버지가 추격대까지 파견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추격대를 피해 이리저리 떠돈 것이 벌써 두 달째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파에는 천부사교의 이런 문제가 각 지방에 세력 확장을 위한 분타를 설치하기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건 천사교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거짓 정보였다. 실제로 분타를 세운 곳도 있었기 때문에 정파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희연의 도피행이 양양으로 향하자 천사교는 양양에 분타를 세운다는 소문을 냈던 것이다.
‘에고,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못을 빌까? 아니야… 그 여우가 아빠를 충동질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참 이 강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지내면서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네!’
희연은 몸을 돌려 강시의 가슴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복면을 벗겼다.
‘와, 잘 생겼네! 약물에 오랫동안 담겨있었는데도 이렇게 깨끗하게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다니 놀라워…!’
천사교에서는 강시를 제련할 때 살이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약물에 오랫동안 담가둔다 그래서 살빛이 약물에 찌들어 푸르죽죽하게 변하게 된다. 때로는 약물에 불어서 살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허였게 뼈가 들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강시의 얼굴은 약간 부른 빛이 감돌긴 했지만 살아 있는 것처럼 그런대로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기하게 생각한 희연은 강시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바로 그때 강시의 눈꺼풀이 열리며 희연의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어어…! 이, 이럴 수가 눈동자가 움직이고 있어!’
‘어라, 이애는 누구야? 예쁘게 생겼네! 간호사인가? …그런데 머리모양하고 복장이 좀…, 아! 맞다, 중국이지!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군. 근데 중국 병원의 간호사의 옷은 이렇게 화려한가? 머리모습이 꼭 북경 박물관에서 보았던 당나라 미인도와 똑같군! 아니 송나라였던가! 하여간 고급 병원인가보군. 헌데 이 아가씨가 남의 얼굴은 쓰다듬고 난리야?’
정민은 유일하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간호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라, 왜 그렇게 놀란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리야. 하기야 내가 눈동자를 움직인다는 것이 놀랄 일은 놀랄 일이겠지. 헤헤, 그러고 있으니까 되게 귀엽네!’
‘어, 이것 봐라, 강시 주제에 웃으려고 하네! 호호, 눈이 매력적인데…. 그냥 뽑아가지고 목걸이를 만들면 어떨까? 아냐, 그럼 다시 썩은 생선 눈깔처럼 될 꺼야. 그렇지! 집에 돌아가 썩지 않게 하는 약물에 담그면 이대로 유지 될 거니, 집에 돌아가면 만들어 봐야겠다.’
희연의 생각을 정민이 알았다면 이 여자 앞에서 다신 눈을 뜨고 싶지 않겠지만 다행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정민은 어떻게 하든 눈으로 신호를 보내어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았다.
‘어, 이놈 보게! 눈을 깜박이네. 에잇!’
희연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손가락을 바로 세워 찌르려는 동작을 취했다.
‘앗, 뭐야!’
‘헤헤, 심했나!’
이렇게 둘은 호젓한 지붕위에 얼굴을 맞대고 넘치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정(?)을 쌓아가고 있었다. 희연은 강시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가 문득 코를 찌르는 이상한 향기를 맡고 정신을 몽롱해 짐을 느꼈다. 잠시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가로젓던 희연은 별로 버티지도 못하고 정신을 놓아 그대로 강시의 얼굴에 코를 박았다.
‘뭐, 뭐야! 이, 이 아가씨가 미쳤나. 이건 성희롱이야~!’
“여기까지 도망치실 게 뭐람. 그래도 아무 탈 없이 계셔서 다행이군. 야, 이 강시는 관에 넣고, 소교주님을 모실 마차를 준비해라. 최대한 빨리 길을 잡아 교주님의 결혼식 전에 본교로 귀환한다!”
검은 야행 복으로 온몸을 감싼 흑의대주 감숙은 정신을 잃고 강시위에 엎드려져있는 희연을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면서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여간 이 말썽꾸러기도 여인이 되어가는군. 형수님이 살아계셨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나저나 오연 그놈이 내가 없는 틈에 딴마음을 먹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형님은 너무 사람을 잘 믿는 게 탈이야. 오연, 이번에 돌아가면 네놈의 검은 속내를 밝혀 내손으로 목을 따고야 말겠다!’
감숙이 희연을 안고 지붕을 내려가자 흑의대원들이 달려들어 강시를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이번엔 검은 옷을 입은 의사인가? 근데 인상들이 왜 이리 더러워. 꼭 범죄형들만 모아놓은 거 같잖아. 어라 저놈은 뺨에 칼자국이, 그리고 이놈은 애꾸…! 으악, 사장 놈이 보내온 킬러들이구나! 사, 사람 살려!’
정민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아니 발버둥 치려했지만 눈동자와 눈꺼풀만 열심히 움직이는 극렬하지 못한 아주 미미한 저항밖에는 하지 못하며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윽고 좁은 관에 뉘어지고 관 뚜껑이 닫히자 정민은 다시 칠흑 같은 어둠속에 갇히게 되었다.
정민은 밀물처럼 밀려오는 공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처음 의식이 깨어나서 겪은 어둠은 무섭긴 했지만 살아났다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어둠은 죽음을 예고하는 어둠이었기에 극도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제기랄 이럴 때는 기절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더 정신이 말똥말똥해가지고서야…, 맞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살 방법을 찾느냔 말이야! 어떤 놈이 만든 속담인지…, 어이구!’
정민은 계속 빠져드는 공포의 늪 속에서 조금이라도 빠져나오기 위해 딴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잘되지 않았다. 결국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둥근 바위에 새겨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상한 문양을 따라 가상의 걸음마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잘 되지 않았지만 차츰 문양에 따라 한걸음, 한걸음 따라갈 수 있게 되자 마음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정민은 그렇게 관속에 갇혀 공포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어딘지 모를 곳이 아닌 죽음을 향한 여행일지도 모를 여정을 밟고 있었다.
드디어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소교주님, 정신이 드십니까?”
‘으응, 감 아저씨! 그럼…, 에~앵 잡혔네! 이대로 가면 아빠한테 되게 혼날 텐데, 어쩌면 좋아! 참, 피리?’
희연은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자신의 품을 뒤졌다.
“후후, 이걸 찾으시나요? 이건 본교에 도착하면 돌려 드리죠!”
희연은 뜨끔했다. 하지만 우선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그만, 일어나세요! 객점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새벽에 출발할 겁니다. 하루 종일 굶었으니 뭔가 드셔야지요.”
- 꼬르륵!
“하하하!”
“에이, 감 아저씨는 늘 이런 식이야!”
결국 희연은 일어나 앉았다. 덜컹거리던 마차가 멈추자 마차 문이 열리며 흑의대원이 도열해있는 모습이 보였다.
“소교주님, 내리시지요!”
“감 아저씨, 제발 소교주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냥 옛날처럼 ‘희연아’하고 불러줘요!”
“그건 안 됩니다! 소교주님은 교주님을 뒤를 이어 천부사교의 2대 교주가 되실 귀하신 몸입니다.”
“에이, 또 그 얘기…! 난 싫다고요. 아저씨나 하세요!”
“자꾸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뜩이나 오연대주가 엉뚱한 맘을 먹고 있는데, 이렇게 소교주님이 사적인 감정에 자꾸 휘둘리면 앞으로 교를 통솔하시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하들이 보고 있습니다. 소교주님은 그렇게 쉬운 분이 아니란 것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오연 대주를 비롯한 딴생각을 먹고 있는 무리들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쳇, 알았어요! 어험, 음, 음! 감숙대주, 앞장서시오!”
“후후! 네에, 소교주님!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호호호, 낮 간지러워라! 그냥가요, 감 아저씨!”
희연은 감숙을 향해 혀를 날름하고는 그대로 뛰어내려 객잔으로 뛰어갔다. 이미 해는 떨어졌고 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객잔에는 선발대가 이미 손을 썼는지 희연일행을 위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희연은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었다. 그것도 느긋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하는 식사는 천부사교를 떠나면서 한 번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