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들려오는 능리의 목소리가 이유를 알 수없는 공포에 얼어붙은 범천의 경직을 풀어주었다. 범천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소년의 눈빛에서 헤어 나와 뒤를 돌아보았다. 능리는 범천의 갑작스런 방문에 난감하여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가 싶더니 범천을 그냥 지나쳐 붉고 흰 갑옷의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능리는 범천에게 등을 보인 채 서서 작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소년에게 무엇인가를 한참 설명하는 것 같았지만 소년의 입은 그 가면에 가려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아 대답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소년은 동상같은 부동의 자세를 풀고 천천히 걸어 뒷뜰로 사라졌다. 걸을 때 마다 고양이들의 주검이 흔들흔들 박자를 맞추었다.
능리는 돌아선 채 범천을 대면할 자신감을 얻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범천은 그녀의 어깨가 크게 올랐다 내려가는 것을 보고 능리가 착잡한 심경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방문이 그녀에게 큰 무례가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특이한 차림과 분위기의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이미 그를 그냥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능리가 당혹감을 숨기고 여전한 웃음을 띈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 미리 연락을 주시지 않으시고요?"
" 아...그래."
범천은 미안함과 궁금함이 교차하여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곧 북궁의 비밀스러운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미안함을 넘어서자 범천은 성급하게 물었다.
" 능리! 방금 저......"
" 왕자님,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능리는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범천의 눈에 그녀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지쳐보였다.
차를 마시며 범천은 능리의 눈치를 살폈지만 능리에게서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천제의 유모로 제황성에서 입지가 확고한 능리가 왜 이런 버려진 곳에서 죄인처럼 갇혀 살고 있는지, 또 좀전에 만난 괴상한 소년은 누구인지 범천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능리는 범천에게 그 동안의 근황이나 최근 황가의 일 등 소소한 일상만을 늘어 놓았다. 범천은 인내심 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내내 초조해보였다. 잠깐의 침묵이 찾아온 순간에 능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 왕자님,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능리를 따라 범천이 나온 곳은 북궁의 뒷뜰 입구였다. 입구에 서서 범천은 잡초와 나무가 무성한 앞뜰과 다른 황량한 뒷뜰의 정경에 놀랐다. 뒷뜰은 키가 낮은 잡초가 듬성듬성 깔려 있었고 작은 흙무덤이 군락을 이루고 솟아 있었다.
그리고 갓 만들어진 듯 젖은 흙더미 뒤에는 조금 전에 만났던 그 소년이 퍼져 앉아 멍하니 무덤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소년은 망자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음울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막 뒷뜰 입구로 나서는 자신들을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보고도 관심이 없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무덤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저 분이 제가 모시는 황자님이십니다. 전하의 제 5황자이시지요."
능리가 밝히는 비밀에 범천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능리를 쳐다보았다. 능리는 고개를 틀어 범천을 마주보며,
" 제가 지금까지 왕자님께조차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능리는 미안함 마음을 이런 말로 대신했다.
" 능리,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야. 하지만....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군."
능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
" 돌아가신 제 1황비 마마의...황자이십니다."
범천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고백이었다. 천계에서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도대체 누가 있을 것이란 말인가.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굉장한 소동끝에 제 1황비의 자리에 오른 이계 여자의 돌연한 죽음이 천제의 이름에 오점을 남겼고, 불미스러운 의문으로 그 소문이 매장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뱃속의 아이는 그녀와 같이 죽어 태어나기도 전에 영원한 죽음으로 묻혔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공인된 사실이었다.
능리는 슬픈 목소리로 그녀와 천제만이 알고 있는 비극을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 그....그랬군. 그런 것이었군...."
범천은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탄식하듯 말했다. 능리는 한숨을 내쉬며,
" 불쌍한 분이십니다. 그리고....두려운 분이십니다."
" 두려워?"
그는 그녀의 얼굴에 진심으로 공포가 스치는 것을 읽어냈다.
" 황자님은 처음부터 죽음을 안고 태어나셨습니다. 죽음에 맞닿은 탄생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천성적으로 피와 살육이 주는 죽음의 느낌에 익숙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저 무수한 흙더미는 무덤입니다. 저 분이 자기 손으로 죽인 무수한 동물들의 무덤...."
" 아까의....새끼 고양이!"
범천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능리는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도대체 어째서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죽인 거지?"
" 어미가 죽은 새끼들이었습니다. 어미없는 새끼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굶거나 천적에게 먹힐 바에 고통없이 죽는 것이 낫다는 게 황자님의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능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 늘 반복되는 일이에요. 친구가 없어 쓸쓸하신 듯하여 구해다 드린 강아지가 감기로 앓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저 분의 본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무덤을 만드시라 설득할 뿐입니다. 자신의 목숨조차 의미가 없는 분께 생명의 귀함같은 건 이해 못할 부분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그 뒤 저는 설명을 멈추었습니다."
범천은 양 손으로 능리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그는 그녀가 굳이 가지않아도 될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그녀말고도 많을 터였다. 황자의 잔인성이 언제 자신을 겨누게 될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의 곁에 남으려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능리,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해도 되겠어? 나는 당신이 저 괴물같은 황자를 떠나길 바래."
" 왕자님...."
능리는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 처음부터 잘못이었어. 이계의 여자가 제황성에 들어선 것 부터가 말이야. 그 더러운 피가 황가의 피와 섞인 그것이 잘못인거야. 그 더럽고 천한 피는 재앙을 몰고 올거야. 그리고 그 재앙은 능리에게 제일 먼저 닥칠거라고. 능리가 잘못될 수 있어!"
하지만 능리는 고개를 내 저었다. 범천은 답답했다.
" 천제 전하의 수치이자, 최대의 오점이 바로 이계의 여자를 맞이하신 것과 저 괴물같은 황자를 살려두기로 한 결정이 될거야."
" 왕자님. 그만하시어요. 그런 말을 들으려 밝힌 비밀이 아닙니다."
범천은 꼼짝않고 무덤 사이에 앉아 있는 초율을 한 번 훔쳐보고는,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 태어난 것부터 저주는 시작된 거야. 그 저주의 씨를 아마 모두에게 퍼뜨릴걸세. 능리....제발 늦기 전에 벗어나."
능리는 고개를 저었다.
" 죽은 어머니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바둥대던 황자님을 본 순간, 저는 그게 제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거두어 보필할 분이시라는 것을요.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범천은 하얗게 질려 초율을 올려다 보았다. 그 공포스럽던 작은 소년이 장성하여 이제 그 저주를 자신에게 몰고 온 것이었다. 그는 그 때 북궁으로 찾아간 그 순간에 자신에게 저주가 달러붙었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저주였다. 초율은 몸을 숙여 침대 위에 놓인 범천의 호신용 칼을 집어 들었다.
" 그래. 나는 저주의 씨앗이다. 하지만 너에게 저주를 몰고 온 것은 네 혓바닥이다."
초율의 칼이 목에 닿는 순간, 범천의 머릿 속에는 엉뚱한 의문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 왜.....내 눈에는 황자의 머리칼이 은빛으로 보이는거지? 그는 흑발이 아니었던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리한 비에 멀리서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옵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흰 쌀밥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배가 고파지네요.^^
초율이 제 5황자도 되었다가 제 4황자가 되었다가 하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복주라는 초율의 죽은 이복형 기억하세요? 그 황자가 죽기 전에는 5황자였기 때문입니다.내일이 또 즐거운 토요일이군요.
초율(礎律) 제 65화
" 마..맙소사, 왕자님!"
뒤에서 들려오는 능리의 목소리가 이유를 알 수없는 공포에 얼어붙은 범천의 경직을 풀어주었다. 범천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어 소년의 눈빛에서 헤어 나와 뒤를 돌아보았다. 능리는 범천의 갑작스런 방문에 난감하여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가 싶더니 범천을 그냥 지나쳐 붉고 흰 갑옷의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능리는 범천에게 등을 보인 채 서서 작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소년에게 무엇인가를 한참 설명하는 것 같았지만 소년의 입은 그 가면에 가려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마저 들려오지 않아 대답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소년은 동상같은 부동의 자세를 풀고 천천히 걸어 뒷뜰로 사라졌다. 걸을 때 마다 고양이들의 주검이 흔들흔들 박자를 맞추었다.
능리는 돌아선 채 범천을 대면할 자신감을 얻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범천은 그녀의 어깨가 크게 올랐다 내려가는 것을 보고 능리가 착잡한 심경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방문이 그녀에게 큰 무례가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특이한 차림과 분위기의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이미 그를 그냥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능리가 당혹감을 숨기고 여전한 웃음을 띈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 미리 연락을 주시지 않으시고요?"
" 아...그래."
범천은 미안함과 궁금함이 교차하여 제대로 대꾸하지 못했다. 곧 북궁의 비밀스러운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미안함을 넘어서자 범천은 성급하게 물었다.
" 능리! 방금 저......"
" 왕자님,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능리는 먼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범천의 눈에 그녀의 뒷모습이 전에 없이 지쳐보였다.
차를 마시며 범천은 능리의 눈치를 살폈지만 능리에게서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천제의 유모로 제황성에서 입지가 확고한 능리가 왜 이런 버려진 곳에서 죄인처럼 갇혀 살고 있는지, 또 좀전에 만난 괴상한 소년은 누구인지 범천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능리는 범천에게 그 동안의 근황이나 최근 황가의 일 등 소소한 일상만을 늘어 놓았다. 범천은 인내심 있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내내 초조해보였다. 잠깐의 침묵이 찾아온 순간에 능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 왕자님, 저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능리를 따라 범천이 나온 곳은 북궁의 뒷뜰 입구였다. 입구에 서서 범천은 잡초와 나무가 무성한 앞뜰과 다른 황량한 뒷뜰의 정경에 놀랐다. 뒷뜰은 키가 낮은 잡초가 듬성듬성 깔려 있었고 작은 흙무덤이 군락을 이루고 솟아 있었다.
그리고 갓 만들어진 듯 젖은 흙더미 뒤에는 조금 전에 만났던 그 소년이 퍼져 앉아 멍하니 무덤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소년은 망자에게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음울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막 뒷뜰 입구로 나서는 자신들을 보지 못했는지 아니면 보고도 관심이 없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무덤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저 분이 제가 모시는 황자님이십니다. 전하의 제 5황자이시지요."
능리가 밝히는 비밀에 범천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능리를 쳐다보았다. 능리는 고개를 틀어 범천을 마주보며,
" 제가 지금까지 왕자님께조차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능리는 미안함 마음을 이런 말로 대신했다.
" 능리, 당황스러운 건 사실이야. 하지만....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군."
능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어,
" 돌아가신 제 1황비 마마의...황자이십니다."
범천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실로 어마어마한 고백이었다. 천계에서 이런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도대체 누가 있을 것이란 말인가. 자세한 내막은 몰랐지만, 굉장한 소동끝에 제 1황비의 자리에 오른 이계 여자의 돌연한 죽음이 천제의 이름에 오점을 남겼고, 불미스러운 의문으로 그 소문이 매장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뱃속의 아이는 그녀와 같이 죽어 태어나기도 전에 영원한 죽음으로 묻혔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공인된 사실이었다.
능리는 슬픈 목소리로 그녀와 천제만이 알고 있는 비극을 그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 그....그랬군. 그런 것이었군...."
범천은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탄식하듯 말했다. 능리는 한숨을 내쉬며,
" 불쌍한 분이십니다. 그리고....두려운 분이십니다."
" 두려워?"
그는 그녀의 얼굴에 진심으로 공포가 스치는 것을 읽어냈다.
" 황자님은 처음부터 죽음을 안고 태어나셨습니다. 죽음에 맞닿은 탄생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천성적으로 피와 살육이 주는 죽음의 느낌에 익숙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 같아요. 저 무수한 흙더미는 무덤입니다. 저 분이 자기 손으로 죽인 무수한 동물들의 무덤...."
" 아까의....새끼 고양이!"
범천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능리는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도대체 어째서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죽인 거지?"
" 어미가 죽은 새끼들이었습니다. 어미없는 새끼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굶거나 천적에게 먹힐 바에 고통없이 죽는 것이 낫다는 게 황자님의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능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 늘 반복되는 일이에요. 친구가 없어 쓸쓸하신 듯하여 구해다 드린 강아지가 감기로 앓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저 분의 본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무덤을 만드시라 설득할 뿐입니다. 자신의 목숨조차 의미가 없는 분께 생명의 귀함같은 건 이해 못할 부분이란 걸 알게 되었지요. 그 뒤 저는 설명을 멈추었습니다."
범천은 양 손으로 능리의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그는 그녀가 굳이 가지않아도 될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그녀말고도 많을 터였다. 황자의 잔인성이 언제 자신을 겨누게 될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의 곁에 남으려는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능리,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해도 되겠어? 나는 당신이 저 괴물같은 황자를 떠나길 바래."
" 왕자님...."
능리는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 처음부터 잘못이었어. 이계의 여자가 제황성에 들어선 것 부터가 말이야. 그 더러운 피가 황가의 피와 섞인 그것이 잘못인거야. 그 더럽고 천한 피는 재앙을 몰고 올거야. 그리고 그 재앙은 능리에게 제일 먼저 닥칠거라고. 능리가 잘못될 수 있어!"
하지만 능리는 고개를 내 저었다. 범천은 답답했다.
" 천제 전하의 수치이자, 최대의 오점이 바로 이계의 여자를 맞이하신 것과 저 괴물같은 황자를 살려두기로 한 결정이 될거야."
" 왕자님. 그만하시어요. 그런 말을 들으려 밝힌 비밀이 아닙니다."
범천은 꼼짝않고 무덤 사이에 앉아 있는 초율을 한 번 훔쳐보고는,
"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 태어난 것부터 저주는 시작된 거야. 그 저주의 씨를 아마 모두에게 퍼뜨릴걸세. 능리....제발 늦기 전에 벗어나."
능리는 고개를 저었다.
" 죽은 어머니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바둥대던 황자님을 본 순간, 저는 그게 제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거두어 보필할 분이시라는 것을요. 저는 떠나지 않습니다."
범천은 하얗게 질려 초율을 올려다 보았다. 그 공포스럽던 작은 소년이 장성하여 이제 그 저주를 자신에게 몰고 온 것이었다. 그는 그 때 북궁으로 찾아간 그 순간에 자신에게 저주가 달러붙었다고 생각했다. 피할 수 없는 저주였다. 초율은 몸을 숙여 침대 위에 놓인 범천의 호신용 칼을 집어 들었다.
" 그래. 나는 저주의 씨앗이다. 하지만 너에게 저주를 몰고 온 것은 네 혓바닥이다."
초율의 칼이 목에 닿는 순간, 범천의 머릿 속에는 엉뚱한 의문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 왜.....내 눈에는 황자의 머리칼이 은빛으로 보이는거지? 그는 흑발이 아니었던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리한 비에 멀리서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옵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흰 쌀밥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배가 고파지네요.^^
초율이 제 5황자도 되었다가 제 4황자가 되었다가 하는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복주라는 초율의 죽은 이복형 기억하세요? 그 황자가 죽기 전에는 5황자였기 때문입니다.내일이 또 즐거운 토요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