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는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보았다. 벌써 일분에 10번도 넘게 시계를 쳐다본 것 같았다.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시계만 올려다보는 주리를 상한의 어머니인 성란이 힐끔거리다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텅 빈 거실에서 상한을 기다리는 주리의 표정은 연신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 여자의 직감. 그 직감은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만 발동이 걸리고 그 직감은 10에 7,8개는 맞아 떨어진다. 특히 여자의 직감은 남자의 바람에 가장 적중한 확률을 나타낸다. 주리는 요즘 남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주 늦게 오는 것만 해도 그렇고,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설마 영효일까?’
주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헤어질 때조차, 끝끝내 이유를 밝히지 않고 매정하게 차 버렸던 상현을 영효가 호락하게 받아 줄 리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혹시 하는 여지가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전화를 해 보았지만, 6시에 나가셨다는 허무한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현관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상현이 들어왔다. 상현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집에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버릇.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 같아 주리는 기분이 나빴다.
“왔어요?”
나쁜 감정을 애써 숨기며 주리가 상현의 서류 가방을 받아들려 할 때, 상현이 거칠게 가방을 뒤로 빼 버렸다. 순간 목표물을 잃은 주리의 손이 허공에 맴돌아 있었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주리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현명한 일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부터가 잘 못 된 것이란 말인가? 남편이 오길 기다리고,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음식을 만들고, 퇴근 하는 남편의 옷가지를 받아들고 서류 가방을 받아주는 소소한 행복을 바란 자신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일까? 주리는 등을 내 보이고 가는 상현에게 ‘등보이지 마! 그렇게 냉정하게 날 외면하지 마!’ 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억눌렀다. 행여나 그녀가 그런 소리를 뱉어 버리면 그의 마음이 상할까. 그녀는 항상 위험한 곡예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와 결혼 하고 나서 는 것이라고는 기다림과, 참을성이었다. 그와 결혼하고 느낀 것은 주리가 재촉하면 할수록 그는 더 멀어져 간다는 진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등을 보다 흐르려는 눈물을 삼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음식은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주리는 국을 데우고 상을 차렸다. 정성스레 그의 수저를 올려놓고 방으로 향했다. 방 안쪽 욕실에서 소란한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여보 식사하세요.”
여자의 소리에 시끄럽던 물줄기 소리가 딱 멈추었다. ‘여보 식사하세요.’ 여자가 한 번 더 욕실에 있는 남자를 향해 외쳤다. 분명 시끄럽던 물줄기 소리도 멈추었는데 남자는 말이 없었다. 들었을 텐데. 고의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 상현의 태도에 여자는 한숨을 내 쉬었다. 주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상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수 분후 상현이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욕실을 나왔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남자, 오랜 시간동안 가슴으로만 사랑했던 남자. 그런 그를 영효에게서 빼앗아 왔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상현만 빼앗아 오면 그가 분명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어이없는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발 돌아 봐 달라 그의 발치에서 빌며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돈으로 상현과 결혼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쯤은 여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로써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현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돈으로라도 그녀가 가진 모든 것으로라도 남자를 옭아매고 싶었다. 그럼 분명 행복해 질 줄 알았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감에 몸서리가 쳐 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현실뿐이었다.
“식사 하라는 소리 못 들었어요?”
“아니. 들었어.”
차라리 못 들었다 라고나 해 주지. 여자는 안타까웠다. 남자의 무뚝뚝한 태도. 그러면서도 여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 주지 않는 매정한 남자.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연일 일관적으로 행동하는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 여자는 안달했다.
“그런데 왜 대답하지 않아요?”
“피곤해.”
여자와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남자의 팔을 주리가 황급히 부여잡았다. 남자의 단단한 팔을 잡았다고 느낄 때, 남자가 매섭게 여자의 손길을 뿌리쳤다.
“왜 이래!”
“얘기 좀 해요. 도대체 뭐가 불만이에요? 네? 내가 당신에게 못하나요? 그래요?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를 알려 준다면.......”
“그러는 너는 뭐가 문제야? 너 해달라는 대로 됐잖아. 네 뜻대로 난 네 남편이 되었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행복한 부부인양, 금슬 좋은 부부인양 연극하고 있잖아. 착실한 네 남편이 되어 살아가고 있잖아! 근데 뭐가 불만이야!”
상현이 거칠게 수건을 바닥으로 내 팽겨 치며 여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참고 참았던 불만이 표출되었다. 남자의 거친 눈빛에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원한 것은 금슬 좋은 부부인양이 아니라 진짜 금슬 좋은 부부라고요.”
“그래? 그거 욕심이 너무 거하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 한 것 만해도 난 치가 떨리게 싫을 지경이거든. 그러니깐 집에서 만큼은 서로 남처럼 살자. 귀찮게 하지 말고. 서로 헛된 기대를 하고 살면 더 힘들다는 거 아직도 모르겠어?”
상현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하던 여자는 그 차가운 기운이 몸속으로 스멀스멀하게 기어 들어오는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자고 상현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서로 아껴 주며 사는 행복을 바랬었다.
‘내 욕심이 정말 지나친 건가요?’
또다시 등을 내 보이고 방을 나가 버리는 무정한 남편의 등이 여자를 힘들게 했다. 방을 나갔던 남편은 새벽 3시가 다 되서야 들어왔다. 주리는 상현의 부스럭거리며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잠자리 가져요.”
수치스러웠다. 적어도 여자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주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남자는 여자의 손끝하나 건들이지 않았다. 마치 여자를 느끼지 못하는 목석처럼. 여자의 말 한마디에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올라왔다. 그 흔한 애무 한번 없이 여자의 마른 숲 사이로 남자가 들어왔다. 습관적인 잠자리. 사랑이 전혀 존재 하지 않는, 다만 의무감 하나로 행한다는 기분을 여실히 드러내는 남자의 행동.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여자는 스스로 위로 하며 아픈 가슴의 상처를 치유했다. 다음날 상현이 출근 하고, 여자는 바로 집을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갖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만 가지면 그 책임감 끝내주는 남자도 자신을 돌아봐 주리라. 주리는 그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이를 빨리 가지려고요. 방법이 없나요?”
“검사를 해 봅시다.”
몇 가지 검사가 끝나고, 일주일 뒤로 검진 날짜를 잡았다. 되도록 하루라도 빨리 그와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부인의 손을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에스코트해 진료실로 들어가는 부부를 보며 여자는 시큰거리는 눈을 수없이 깜박였다. 눈물은 자신이 느끼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때 맞춰 나와버린다.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로 가득차오르려는 눈을 애써 껌벅거리며 여자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만 가지면, 상현이도 다감한 남편의 자리로 돌아올 거야. 지금은 그의 자존심 때문에 날 밀쳐내는 것이지. 절대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여자는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터득해 가며 애써 마음을 도닥였다.
집에 돌아온 주리는 전화를 들어, 상현의 학교로 전화를 넣었다. 시부모님의 종합검진에 대해 할 이야기도 있고, 되도록 시시콜콜한 내용들도 그와 함께 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가 끈질기게 그에게 관심을 요하면 언젠가는 눈길이라도 한번 주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당부의 말도 해야지.’
“네, 신성고등학교입니다.”
“네. 여기 박상현 선생님 댁인데, 박상현 선생님 계시나요?”
“아, 박 선생님 사모님이신가보네요? 조금 전에 집에 들어가신다고 퇴근 하셨는걸요?”
“아, 네.”
상대편 남자의 말에 주리는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늦게 집에 들어와서 걱정스러웠는데 일찍 들어올 모양이었다. 여자는 일어나 황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모두 부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리라. 여자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은 남편과 호사스럽게 와인 한잔 부딪히며 그동안 서운했던 것을 털어놓아야지. 분명 마음 착한 상현은 이해해 주리라. 어제는 기분 안 좋은 일 때문에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 내었으리라. 여자는 자신 스스로 합리화 시켜가며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상한 관계-(13) 처음부터 어긋난 만남
이상한 관계
(13) 처음부터 어긋난 만남
주리는 초조하게 시계를 쳐다보았다. 벌써 일분에 10번도 넘게 시계를 쳐다본 것 같았다.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시계만 올려다보는 주리를 상한의 어머니인 성란이 힐끔거리다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텅 빈 거실에서 상한을 기다리는 주리의 표정은 연신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 여자의 직감. 그 직감은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만 발동이 걸리고 그 직감은 10에 7,8개는 맞아 떨어진다. 특히 여자의 직감은 남자의 바람에 가장 적중한 확률을 나타낸다. 주리는 요즘 남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자주 늦게 오는 것만 해도 그렇고,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설마 영효일까?’
주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헤어질 때조차, 끝끝내 이유를 밝히지 않고 매정하게 차 버렸던 상현을 영효가 호락하게 받아 줄 리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혹시 하는 여지가 자꾸만 고개를 쳐들었다. 벌써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전화를 해 보았지만, 6시에 나가셨다는 허무한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때, 현관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상현이 들어왔다. 상현은 항상 저런 식이었다. 집에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손으로 열쇠를 따고 들어오는 버릇.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인 것 같아 주리는 기분이 나빴다.
“왔어요?”
나쁜 감정을 애써 숨기며 주리가 상현의 서류 가방을 받아들려 할 때, 상현이 거칠게 가방을 뒤로 빼 버렸다. 순간 목표물을 잃은 주리의 손이 허공에 맴돌아 있었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주리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현명한 일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무엇부터가 잘 못 된 것이란 말인가? 남편이 오길 기다리고,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음식을 만들고, 퇴근 하는 남편의 옷가지를 받아들고 서류 가방을 받아주는 소소한 행복을 바란 자신의 욕심이 너무 과한 것일까? 주리는 등을 내 보이고 가는 상현에게 ‘등보이지 마! 그렇게 냉정하게 날 외면하지 마!’ 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억눌렀다. 행여나 그녀가 그런 소리를 뱉어 버리면 그의 마음이 상할까. 그녀는 항상 위험한 곡예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와 결혼 하고 나서 는 것이라고는 기다림과, 참을성이었다. 그와 결혼하고 느낀 것은 주리가 재촉하면 할수록 그는 더 멀어져 간다는 진리였다. 여자는 남자의 등을 보다 흐르려는 눈물을 삼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를 위해 만들어 놓은 음식은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주리는 국을 데우고 상을 차렸다. 정성스레 그의 수저를 올려놓고 방으로 향했다. 방 안쪽 욕실에서 소란한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여보 식사하세요.”
여자의 소리에 시끄럽던 물줄기 소리가 딱 멈추었다. ‘여보 식사하세요.’ 여자가 한 번 더 욕실에 있는 남자를 향해 외쳤다. 분명 시끄럽던 물줄기 소리도 멈추었는데 남자는 말이 없었다. 들었을 텐데. 고의적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 상현의 태도에 여자는 한숨을 내 쉬었다. 주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상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수 분후 상현이 젖은 머리카락을 털며 욕실을 나왔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남자, 오랜 시간동안 가슴으로만 사랑했던 남자. 그런 그를 영효에게서 빼앗아 왔지만 그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상현만 빼앗아 오면 그가 분명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어이없는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제발 돌아 봐 달라 그의 발치에서 빌며 애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분명 돈으로 상현과 결혼 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쯤은 여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로써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현을 영영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돈으로라도 그녀가 가진 모든 것으로라도 남자를 옭아매고 싶었다. 그럼 분명 행복해 질 줄 알았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감에 몸서리가 쳐 질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현실뿐이었다.
“식사 하라는 소리 못 들었어요?”
“아니. 들었어.”
차라리 못 들었다 라고나 해 주지. 여자는 안타까웠다. 남자의 무뚝뚝한 태도. 그러면서도 여자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 주지 않는 매정한 남자. 자신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연일 일관적으로 행동하는 남자의 마음을 잡으려 여자는 안달했다.
“그런데 왜 대답하지 않아요?”
“피곤해.”
여자와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몸을 돌리는 남자의 팔을 주리가 황급히 부여잡았다. 남자의 단단한 팔을 잡았다고 느낄 때, 남자가 매섭게 여자의 손길을 뿌리쳤다.
“왜 이래!”
“얘기 좀 해요. 도대체 뭐가 불만이에요? 네? 내가 당신에게 못하나요? 그래요?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요? 문제를 알려 준다면.......”
“그러는 너는 뭐가 문제야? 너 해달라는 대로 됐잖아. 네 뜻대로 난 네 남편이 되었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행복한 부부인양, 금슬 좋은 부부인양 연극하고 있잖아. 착실한 네 남편이 되어 살아가고 있잖아! 근데 뭐가 불만이야!”
상현이 거칠게 수건을 바닥으로 내 팽겨 치며 여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참고 참았던 불만이 표출되었다. 남자의 거친 눈빛에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원한 것은 금슬 좋은 부부인양이 아니라 진짜 금슬 좋은 부부라고요.”
“그래? 그거 욕심이 너무 거하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 한 것 만해도 난 치가 떨리게 싫을 지경이거든. 그러니깐 집에서 만큼은 서로 남처럼 살자. 귀찮게 하지 말고. 서로 헛된 기대를 하고 살면 더 힘들다는 거 아직도 모르겠어?”
상현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하던 여자는 그 차가운 기운이 몸속으로 스멀스멀하게 기어 들어오는 것만 같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런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자고 상현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서로 아껴 주며 사는 행복을 바랬었다.
‘내 욕심이 정말 지나친 건가요?’
또다시 등을 내 보이고 방을 나가 버리는 무정한 남편의 등이 여자를 힘들게 했다. 방을 나갔던 남편은 새벽 3시가 다 되서야 들어왔다. 주리는 상현의 부스럭거리며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우리 잠자리 가져요.”
수치스러웠다. 적어도 여자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 주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남자는 여자의 손끝하나 건들이지 않았다. 마치 여자를 느끼지 못하는 목석처럼. 여자의 말 한마디에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올라왔다. 그 흔한 애무 한번 없이 여자의 마른 숲 사이로 남자가 들어왔다. 습관적인 잠자리. 사랑이 전혀 존재 하지 않는, 다만 의무감 하나로 행한다는 기분을 여실히 드러내는 남자의 행동. 여자는 입술을 꽉 깨문 채,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다.
‘조금만 참자. 주리야. 아이만 생기면, 아이만 생기면 상현이도 달라질 거야. 그럴 거야.’
여자는 스스로 위로 하며 아픈 가슴의 상처를 치유했다. 다음날 상현이 출근 하고, 여자는 바로 집을 나섰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갖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이만 가지면 그 책임감 끝내주는 남자도 자신을 돌아봐 주리라. 주리는 그 실낱같은 기대감으로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이를 빨리 가지려고요. 방법이 없나요?”
“검사를 해 봅시다.”
몇 가지 검사가 끝나고, 일주일 뒤로 검진 날짜를 잡았다. 되도록 하루라도 빨리 그와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산부인과에서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부인의 손을 부여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히 에스코트해 진료실로 들어가는 부부를 보며 여자는 시큰거리는 눈을 수없이 깜박였다. 눈물은 자신이 느끼기에 적절한 타이밍에 때 맞춰 나와버린다.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로 가득차오르려는 눈을 애써 껌벅거리며 여자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이만 가지면, 상현이도 다감한 남편의 자리로 돌아올 거야. 지금은 그의 자존심 때문에 날 밀쳐내는 것이지. 절대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여자는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터득해 가며 애써 마음을 도닥였다.
집에 돌아온 주리는 전화를 들어, 상현의 학교로 전화를 넣었다. 시부모님의 종합검진에 대해 할 이야기도 있고, 되도록 시시콜콜한 내용들도 그와 함께 해야 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녀가 끈질기게 그에게 관심을 요하면 언젠가는 눈길이라도 한번 주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조금 있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당부의 말도 해야지.’
“네, 신성고등학교입니다.”
“네. 여기 박상현 선생님 댁인데, 박상현 선생님 계시나요?”
“아, 박 선생님 사모님이신가보네요? 조금 전에 집에 들어가신다고 퇴근 하셨는걸요?”
“아, 네.”
상대편 남자의 말에 주리는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늦게 집에 들어와서 걱정스러웠는데 일찍 들어올 모양이었다. 여자는 일어나 황급히 주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모두 부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리라. 여자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은 남편과 호사스럽게 와인 한잔 부딪히며 그동안 서운했던 것을 털어놓아야지. 분명 마음 착한 상현은 이해해 주리라. 어제는 기분 안 좋은 일 때문에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 내었으리라. 여자는 자신 스스로 합리화 시켜가며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