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도 휴대폰 간이 충전기가 핸드백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히 집 밖에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책상 서랍을 다 뒤집어 엎고, 책장이니 책상이니 침대까지 내 놓고 구석구석 찾고, 거미줄처럼 얽힌 전기줄도 다 뽑아서 방 대청소까지 끝내도록 도대체가 나타날 생각을 않는다. 처음 네가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사나, 이 육중한 충전기를 매일 들고다녀야 하나 한숨만 깊었었다. 오기로 오기로 오기로.. 찾고 또 찾고 또 찾고... 집에만 들어오면 온 방안을 뒤집어 놓곤 했었는데 일주일, 열흘... 서른 날 .. 이제 미련할만큼 했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봐야 머리는 산발이 되고, 손톱에는 꼬장꼬장 때가 덮수룩하고, 우격다짐으로 CD장과 오디오 사이에 쳐넣은 머리통은 조금만 고개를 돌리다가도 퉁 퉁 박히기만 할 뿐이다, 더는 찾지 않기로 한다. 아니, 않기로 한다느니 보다는 찾으마고 마음이 동하지 않게 된다. 가방 한쪽을 차지한 한 주먹거리의 충전기도 생각해보면 썩 나쁠 건 없다. 오늘도 버스를 탄다. 3 4 1 2 습관처럼 두리번 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래나 듣자, 이어폰을 꺼내려는데 툭- 떨어지는 충전기. 빗물이 우중우중 고여있는 버스 바닥의 흔적을 고스란히 묻힌 충전기에 짜증이 확 쏠린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다시, 너를 찾아봐야겠다. 아마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 즈음엔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 다짐을 한다. 감히 '추억'이라고 명명해 놓은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지는 것은 아니지, 내 몸의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서 다만, 불쑥 쏟아지는 것. 비가 오는 날, 실수로 떨어뜨린 휴대폰 충전기로부터도 오고 무심코 지나가는 타인의, 뒤로 눌러쓴 야구모자로부터도 온다. 살아있었구나, 아직 거기 살아있었구나, 자꾸만 발등을 두드리는, 게릴라 놀이라도 하듯 첨벙대는 추억이란...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사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랫말과, 노랫말 따라 호흡을 고르던 이야기들이 온 몸에 가시돋는다. 금방 찾겠지 생각해선지 특별히 기억은 나지 않는 어느 날 휴대폰 밧데리를 잃어버렸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은 쉽게 되찾아지지 않는다. 다만 펜 한자루라도 그네들은 아주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에겐 더 인색하기만 하다. 가끔, 각자 살자고 먹은 마음에는 이미 그네들을 지운 듯이 살고 있는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며 혹은 나타나기도 할 뿐. 지나간 것은, 더욱이 잃어버린 것은 잠시, 혹은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자주 저리다. 버스의 차체가 주저앉아도 좋을만큼 가라앉는다. 추억의 무게가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는 하지만, 생각건대, 그 이의 이마에는 조글조글한 나이테가 수북하거나 아프게 미루어 둔 것이 추억이 된 전례가 없는 사람이다. 스므살의, 잃어버린 시계침들만 와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직 벌목하고 싶은 거목들이 무성히 숲을 이루고 있는 가슴에는 그 무게가 틀림없이 버거운 날이 있다. 핸드폰 밧데리는 정말 어디 갔을까. 미련 곰팅이, 이제는 전혀 있을 법하지도 않은 오만 군데까지 두리번거린다. 찾겠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알아들으라고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알아들으라는 듯이 알아듣지도 못할 의사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방 안을 뒤집어 놓고 찾는 객기는 부리지 않겠다 마음 먹으면서도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감출 수 없는 미련 아닌 미련. 어쩌면 삶인가도 싶다. 추억, 이따금씩 돋아서 숨을 쉴 때마다 쓰라린 너를 나는 어릴 때,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던 눈깔사탕이기 보다는 그렇게 버거운 혓바늘이라고 한다. 삶의 여운을 나누기에는 너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아직 나는 너를 맘 편히 원망하는 중이다.
잃어버린 시계침이 자라는 숲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도 휴대폰 간이 충전기가 핸드백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히 집 밖에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책상 서랍을 다 뒤집어 엎고,
책장이니 책상이니 침대까지 내 놓고 구석구석 찾고,
거미줄처럼 얽힌 전기줄도 다 뽑아서 방 대청소까지 끝내도록
도대체가 나타날 생각을 않는다.
처음 네가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사나, 이 육중한 충전기를 매일 들고다녀야 하나 한숨만 깊었었다.
오기로 오기로 오기로.. 찾고 또 찾고 또 찾고...
집에만 들어오면 온 방안을 뒤집어 놓곤 했었는데
일주일, 열흘... 서른 날 ..
이제 미련할만큼 했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봐야
머리는 산발이 되고, 손톱에는 꼬장꼬장 때가 덮수룩하고,
우격다짐으로 CD장과 오디오 사이에 쳐넣은 머리통은
조금만 고개를 돌리다가도 퉁 퉁 박히기만 할 뿐이다,
더는 찾지 않기로 한다.
아니, 않기로 한다느니 보다는 찾으마고 마음이 동하지 않게 된다.
가방 한쪽을 차지한 한 주먹거리의 충전기도
생각해보면 썩 나쁠 건 없다.
오늘도 버스를 탄다.
3 4 1 2
습관처럼 두리번 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래나 듣자, 이어폰을 꺼내려는데
툭- 떨어지는 충전기.
빗물이 우중우중 고여있는 버스 바닥의 흔적을 고스란히 묻힌 충전기에
짜증이 확 쏠린다.
오늘 퇴근하자마자 다시, 너를 찾아봐야겠다.
아마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 즈음엔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 다짐을 한다.
감히 '추억'이라고 명명해 놓은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지는 것은 아니지,
내 몸의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서
다만, 불쑥 쏟아지는 것.
비가 오는 날, 실수로 떨어뜨린 휴대폰 충전기로부터도 오고
무심코 지나가는 타인의, 뒤로 눌러쓴 야구모자로부터도 온다.
살아있었구나, 아직 거기 살아있었구나, 자꾸만 발등을 두드리는,
게릴라 놀이라도 하듯 첨벙대는 추억이란...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들과,
사람들과 함께 부르던 노랫말과,
노랫말 따라 호흡을 고르던 이야기들이 온 몸에 가시돋는다.
금방 찾겠지 생각해선지 특별히 기억은 나지 않는 어느 날
휴대폰 밧데리를 잃어버렸다.
한 번 잃어버린 것은 쉽게 되찾아지지 않는다.
다만 펜 한자루라도 그네들은 아주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에겐
더 인색하기만 하다.
가끔, 각자 살자고 먹은 마음에는
이미 그네들을 지운 듯이 살고 있는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며 혹은 나타나기도 할 뿐.
지나간 것은, 더욱이 잃어버린 것은
잠시, 혹은 아주 오래도록 그렇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은 자주 저리다.
버스의 차체가 주저앉아도 좋을만큼 가라앉는다.
추억의 무게가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는 하지만,
생각건대, 그 이의 이마에는 조글조글한 나이테가 수북하거나
아프게 미루어 둔 것이 추억이 된 전례가 없는 사람이다.
스므살의,
잃어버린 시계침들만 와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직 벌목하고 싶은 거목들이 무성히 숲을 이루고 있는 가슴에는
그 무게가 틀림없이 버거운 날이 있다.
핸드폰 밧데리는 정말 어디 갔을까.
미련 곰팅이,
이제는 전혀 있을 법하지도 않은 오만 군데까지 두리번거린다.
찾겠다기 보다는 어디선가 알아들으라고
내가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알아들으라는 듯이
알아듣지도 못할 의사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방 안을 뒤집어 놓고 찾는 객기는 부리지 않겠다 마음 먹으면서도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감출 수 없는 미련 아닌 미련.
어쩌면 삶인가도 싶다.
추억,
이따금씩 돋아서 숨을 쉴 때마다 쓰라린 너를 나는
어릴 때, 누구에게도 뺏기기 싫던 눈깔사탕이기 보다는
그렇게 버거운 혓바늘이라고 한다.
삶의 여운을 나누기에는 너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아직
나는 너를 맘 편히 원망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