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관계-(19) 난 내 식대로 사랑한다!

瓚禧200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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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



 

(19) 난 내 식대로 사랑한다!



 영효의 집을 나와서도 주혁은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차가운 벽에 기대서, 혹시나 영효가 다시 나와 자신을 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헛된 망상을 품으며 한 시간 가량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영효는 나오지 않았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힘겹게 서 있던 영효의 얼굴이 자꾸만 그의 기억을 괴롭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이 그를 힘들게 했다.


‘아파서, 쓰러져 있는 거 아닐까?’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기억은 검은 구름처럼 그를 덮쳤다. 혹시나 영효가 아파서 쓰러지지는 않았을까? 어디가 아픈지, 몹쓸 병은 아닌가? 한번 이어지기 시작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휩쌌다. 주혁은 다시 영효의 집으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뜩 걸음을 멈추었다.


‘이만 나가 줬으면 좋겠어........... 이만............ 이만........... 우리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를 힘들게 했던, 영효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그를 잡아 끌어당겼다. 지금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를 본다면, 그녀의 말들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 변주혁! 너 언제부터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렸냐?…….병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건 지금 영효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주혁은 영효의 집 앞을 맴돌다 발걸음을 돌려, 세워진 차로 달려가 B&G마트로 거칠게 차를 몰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영효에게 필요한건, 슈퍼 아저씨일 것이다.


“젠장!”


주혁의 하얀 주먹이 핸들위로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인정은 되지만, 가슴이 미치도록 아프고 아렸다. B&G마트에 도착하자, 꼬마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있는 상한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편안해 보이는 남자.


‘영효에게 진짜로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남자가 아닐까?’


겁이 났다. 지금 상한에게 가, 영효가 아프다는 것을 그리고 영효의 간호를 부탁하는 것이 어쩌면 평생 후회할 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영효를 영원히 상한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생각이 거기에 까지 미치자 덜컥 겁이 났다. 누구에게도 그녀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때, 주혁의 차를 발견한 상한의 그의 차창을 두들겼다. 지이잉- 부드럽게 내려가는 차창 너머로 부담스러운 상한의 얼굴이 보여, 주혁은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 보러 온 거 아니야?”

“아닙니다!”

“그래? 난 또 나보러 온 줄 알고..........”


아니라는 주혁의 말에 바로 몸을 돌려가 버리려는 상한의 옷자락을 잡았다. 왜?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상한을 보며 주혁이 물었다.


“알고 있었죠?”

“웬 존댓말? 언제부터 그렇게 싸가지가 좋았다고?”

“그래! 나도 안 어울리는 거 알거든? 알고 있었지?”

“뭘 묻고 싶은 거야?”

“매형과 영효의 사이!”


주혁의 물음에 상한은 고개를 돌려 작게 끄덕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묻자........ 영효 사랑 하냐?”


주혁의 물음에 상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아무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이 무슨 의미인지를 찾으려 주혁은 그를 더욱더 자세히 노려보았다.


“그걸 내가 너한테 말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냐?”

“있어! 만약 네가 영효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렇다면, 난 더욱더 분발 할 테니깐.”

“그 말은 너도 영효를 사랑한다는 거냐? 참, 너 아주 웃긴 놈이구나? 영효한테 그런 상처를 줘 놓고서,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서 이제 와서 사랑한다? 그럴 자격이 있는 녀석이냐? 남매가 어쩜 그렇게 똑같냐? 이기적인 것 하나는 지독히도 닮았군!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게 지켜주고  보살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당사자에게 아프고 힘겨워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갖지 못해 안달들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던 말건, 남매가 똑같이 다른 사람 상처 받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군!”


그동안 쌓인 것을 상한이 모조리 주혁에게 토해 놓았다. 상한의 빈정거림을 알면서도 주혁은 말이 없었다. 상한의 생각대로라면 이렇게 말하면 분명 주먹 하나라도 날아와야 할 성격일 텐데. 예상외로 가만히 있는 주혁이 이상해 상한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난 내식대로 사랑해. 참고 기다리고 이해하는 사랑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랑도 있는 거야. 난 내식대로 사랑할거다.”


상한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주절거리던 주혁이 급하게 차를 배서 다시 영효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백미러 너머로 어리둥절해 보이는 상한의 얼굴이 멀어져 갔다.


‘사랑하니깐 가지고 싶은 거잖아. 난 내 식대로 사랑한다. 내식대로의 사랑은 겁내지 않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만큼 죽도록, 후회 없이 그 순간만큼은 그 순간이 끝인 것처럼 사랑하는 거다! 그래 변주혁! 그게 네 방식의 사랑이잖아! 부딪치자!’


영효의 집까지 무서운 속도로 차를 몰아, 도착한 주혁은 영효의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열려진 문 너머로 멍한 표정으로 힘겹게 기대어 앉아있는 영효의 모습이 보였다. 주혁이 나가고 줄곧 그대로인 모습이었다. 그런 영효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속에서 울컥 하고 무언가가 올라왔다. 바보 같은 여자. 그가 나간 문하나 잠그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을 만큼 힘들면서 자존심 하나 굽힐 줄 모르는 여자. 가늘게 뜬 눈 사이로 주혁을 보고는 영효의 표정이 눈에 띄일 정도로 급격히 변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눈빛. 그런 영효의 표정을 무시하고 주혁이 안으로 들어가 영효의 몸을 끌어안았다.


“병원에 가자! 이렇게 아파서는........... 나한테 뭐라고 말 할 수도 없잖아. 그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거라고!”


주혁의 말에 영효는 입술만 달싹일 뿐 이었다. 그런 영효의 입술을 향해 주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영효가 작은 목소리로 ‘밥을 못 먹어서 그런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영효의 그 한 마디에 주혁이 주방에서 왔다 갔다 거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영효는 소파에 누워, 주혁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서투른 칼질로 야채를 썰고, 음식을 만드는 주혁의 모습을 보자, 영효는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을 느꼈다. 신기한 일이었다.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던 눈물은 어느새 말라 눈가에 붙어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뜨면 자동으로 주르르 흐르던 눈물샘이 말라 버린 것인가? 영효는 팔을 들어 눈가를 매만졌다.


“기운 쓰지 말라니깐! 그대로, 그대로 죽은 듯 누워만 있으라고!”


주혁이 들고 있던 국자로 영효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혁의 야단에 영효는 손을 슬며시 내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팔을 내리는 영효의 행동에 그제야 주혁이 다시 칼을 잡고, 간간히 간을 보았다. 그 일렬의 행동들을 하면서도 영효를 가끔 감시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 남자는 아까 내가 한 말들을 기억이나 하는 걸까?’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치 상현과 부딪힌 일이나, 조금 전 자신이 퍼 부은 말들 따위는 들은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주혁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영효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주혁이 작은 반상을 들고 거실로 와 영효의 앞에 내려놓았다. 주혁이 차려온 상을 쳐다보았다. 간장종기 하나와 야채죽. 어설프게 썰어 크기마저 삐뚤삐뚤한 죽속에 야채들이 춤추고 있었다. 어설픈 솜씨였다. 음식이라고는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의 손길.


‘날 위해서 요리를 한 거니? 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한 거니?’


“어서 먹어봐. 영광인줄 알아! 이래 뵈도 손에 물 한번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란 몸이라고!”


남자가 으쓱거리며 영효에게 말했다. 영효가 간신히 기운을 짜 내어 수저를 들었다. 서툰 솜씨로 만든 야채죽은 제법 맛이 있었고, 간만에 음식물을 넣어주자, 영효의 속은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한번 음식 맛을 들인 장기들은 더 넣어 달라 아우성이었다. 주혁이 만든, 정성어린, 그 야채죽을 싹싹 긁어 비우고 나서야 영효는 힘이 도는 걸 느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물 이외 그 어떤 것도 먹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것이 벌써 일주일. 기운이 없을 만도 했다.


“어때? 이제 좀 기운이 나는 거야?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루 세끼라는 기본적인 공식은 유치원 때부터 배운 게 아니냐고. 유치원도 안 나온 맹꽁이인거야? 도대체 얼마나 안 먹으면 그렇게 기운이 없어지는 건지, 난 그게 더 궁금해진다.”


정말 저 남자는 그 기억들을 잊어버린 것일까? 악다구니 치고, 화냈던 조금 전의 상황들은 모두 잊어버린 걸까?


“나 엄청 웃기지 않아?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다니……. 나도 내가 낯설어.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다니, 아마도 내 안에 내가 엄청 많았나봐. 쿡.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멍하니 앉아있는 영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주혁이 물었다. 바로 코가 닿아 버릴 듯 가까이 있는 주혁의 얼굴을 보자니, 영효는 가슴이 또 미친 듯 고동쳤다. 가슴 뛰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 소리가 조용한 거실을 맴돌다 주혁의 귓가로 들어갔다.


두 근- 두 근- 두 근- 두 근-


빠른 심장 고동소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백만 번 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한 심장 뛰는 소리. 심장이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영효의 두근거리는 심장의 뛰는 소리를 듣다가 주혁이 가만히 영효의 손을 들었다.


“가슴이 뛰네……. 내 가슴도 뛰어…….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것 보다 훨씬 정확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아?”


주혁의 탄탄한 가슴에 붙들려 있는 영효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정말 자신의 심장과 똑같이 뛰고 있었다. 재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는 듯이. 영효의 심장처럼, 그의 심장도 고동치고 있었다. 알아달라고, 알아달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관계 이런 이상하고 어색한 관계........ 정말인지 싫다. 영효의 머릿속에서는 어서 그를 내치라고, 다시 한 번 고통스럽게 그를 만들라고, 모진 소리라도 내 뱉으라고 말 하고 있지만, 영효의 입술은 움직일 생각조차 없었다.


‘말해야 해. 자꾸 그에게 휘둘려서는 안 돼. 또 그렇게 힘든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 참이야? 정말 그럴 셈이야?’


“이만 가줘. 너랑 같이 있는 것……. 나 부담스러워......”

“부담스럽다고? 이봐, 거짓말 그만 쳐. 네 가슴이 이렇게 답하는데, 이렇게 고동치면서 뛰는데 뻔한 거짓말 칠 거야? 그럴 거니? 날 봐! 날 똑바로 봐봐.”

“아니, 가슴이 착각하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야! 넌 날 사랑하는 거야. 네 가슴이 그렇게 말하잖아. 다른 건 몰라도 가슴은 심장은 거짓말 못해!”


주혁이 잡은 어깨가 부담스럽게 조여 왔다. 영효가 그가 부여잡은 어깨를 뿌리치려 할 때, 그가 말했다.


“아니야! 됐다. 네 대답 듣고 싶지 않아. 안 들을래. 난 그냥 내 식대로 사랑할 거야. 난 내 식 대로 할 거야.”


주혁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 따위는 듣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들어. 그래도 들어야 해. 너랑 나 설사 잘 된다고 그거 얼마나 우습니? 이상하잖아. 안 그래?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관계, 나 그런 거 이제 안할 거야. 힘들어서 이제 사랑 같은 것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깐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좋아. 지금은 너 힘드니깐 그냥 갈게……. 하지만, 나포기 안 해. 포기 ......... 안한다.”


그 말을 남긴 채, 주혁은 영효의 집을 나가버렸다. 탕- 닫히는 현관문만이 그가 나간 것을 영효에게 전할 뿐이었다.


“나 이제 정말 행복해 지고 싶어. 더 이상 힘들기 싫어. 아프기도 싫고, 상처 받기도 싫어. 난 그래서……. 그래서 네가 싫어......”


영효는 웅크리고 앉아 주혁이 듣고 있는 듯, 아직도 그가 그 자리에 서 있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