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벽의 명령을 받은 우서진은 사태수습을 위해 급히 밖으로 나갔고, 화령은 월아의 부측을 받으며 겨우 의자에 앉아서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유벽은 눈짓으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장하걸을 물러가게 하였다.
“화령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느냐?”
“아니요!”
“으흠, 그럼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겠구나?”
“네!”
화령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유벽은 딸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10년 전 자신을 남기고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유벽이 무림맹에 보낼 물자를 우송하는 표행에 따라 나섰다가 수적들의 습격을 받고 물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자신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때 사경을 헤매는 자신을 살려준 의원이 주원이었는데, 방금 전 우서진에게 말한 주 노인이 바로 그였다.
유벽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말이 공개구혼이지 딸의 배필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별채에 있는 정체모를 사내가 딸아이를 실망 시키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자신의 내력도 모른 채 유벽의 목숨을 구했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경도 뚜렷하지 않은 - 그때 근 일 년 동안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 자신을 지켜주었고 결혼까지 했다. 그 뒤로 자신의 신분이 밝혀져 관계가 좋아지긴 했지만, 결혼 초 처가에서 쫓겨나 고생한 기억은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의 고생으로 몸이 약해져 아내는 늘 병을 달고 고생을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것도 운명이라는 것이군!’
“좋다, 만에 하나 그놈이 그 속에서 살아서 나온다면, 무림인이라면 누구도 무시 못 할 고수를 만들고, 장사치라면 이 유가장의 반을 주고, 유생이라면 최고의 선생을 붙어 과거를 보게 하여 너에게 걸맞은 배필이 되도록 해주겠다.”
화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 그게…!”
빨개진 딸의 얼굴을 쳐다보며 먼저 떠난 아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얘야,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별채에 나가 보자구나!”
“네!”
별채로 가는 길 곳곳에는 호위무사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서있었고, 일부는 침입자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니고 있었다. 장주 유벽의 모습이 나타나자 호위무사들의 우두머리인 방중선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나오셨습니까, 장주님!”
“상황이 어떻소?”
“아주 안 좋습니다. 독무가 워낙 짙어 별체안의 상태를 살필 수 가 없습니다. 일단은 내공이 출중한 자들로 강기 막을 쳐서 독무가 퍼지는 것을 막는 있지만, 그것도 한 시진 이상을 버티긴 힘듭니다.”
방중선의 말을 듣고 유벽의 얼굴이 굳어졌고, 화령은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에 그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으흠, 누가 독을 풀었는지는 알아냈소이까?”
“외부로 부터의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최근에 침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혹시 내부인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글쎄요, 그것도 좀…. 저 정도의 독무를 만들어낼 정도의 인물이라면 일신에 지닌 내력이 일 갑자를 넘는 자란 이야기인데, 그런 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의 이목을 숨기며 지내긴 어렵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저를 속일 정도라면 내력이 이 갑자에 필적한다는 소리인데 그건 전 강호를 뒤져 모두 모아도 이십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제가 알고 있는 인물들이고, 그들 중에 독을 쓰는 자들은 두, 셋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저 독무가 사라져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겠군요?”
“네, 장주님!”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묵묵히 듣던 화령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 장주님 그냥 듣기만 하십시오. 저안에 사람이 있다면 이미 독에 중독되어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아무래도 화령 아가씨가 저 안에 있는 손님에 대한 생각이 각별한 것 같아 이렇게 장주님께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방중선의 전음을 듣고 유벽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리고, 안에 있는 손님의 신분을 조사했지만 아직까지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단지 회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사를 하던 중에, 저의 이목을 끄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도 근처 객잔에서 하루 밤사이에 백오십여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 혈사가 발생하였는데, 그 근처에 살고 있던 한 나무꾼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여자를 업고 쫒기는 젊은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물론 손님하고는 인상착의가 다르지만 그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조사를 해보고 자세히 보고 드리겠습니다.
유벽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검은 독무에 싸여있는 별채 쪽을 쳐다보았다. 별채 쪽에는 십여 명의 호위무사가 주변을 둘러싸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지금 별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화령은 속이 탔다. 처음 봤을 때 한눈에 반했다는 말이 딱 맞을 만큼 호감이 갔고, 배안 선실에서 꼬박 이틀 동안 곁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다. 그리고 집에 온 후로는 아버지와 주변의 눈을 의식해 특별한 손님을 위한별채에 그를 묵게 했지만 자신의 거처보다는 그가 누워있는 별채에 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꼬박 닷새 동안, 눈 한번 뜨지 않고 혼수상태로 지내는 사내의 곁을 지키면서 더욱 끌리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몽땅 빠져 있어 처음에는 약간 이상하게 보였지만 머리는 금방 자랐다. 오늘 아침에 보았을 땐 거의 한 치나 자라 있었다. 그리고 백옥같이 깨끗한 피부와 가끔 몸에서 내뿜는 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책에서 보았던 환골탈태한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장하걸이 교응방의 소방주 위진호의 청혼을 거절하는 방책을 내놓았을 때 자신 있게 공개구혼을 제안했던 것이다.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가 환골탈태한 무림의 고수라면 교응방의 망나니 소방주쯤은 쉽게 물리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말은 더욱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맘이 놓였었다.
“장주님, 주 노인이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이곳으로 모셔오도록 하라.”
“네! 지금은 중독된 호위무사를 살펴보시고 계신데, 곧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강기 막을 치고 있는 무사들의 얼굴에서 지친 모습이 짙어질 때 쯤 주원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주 의원님!”
“허, 유 장주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소이까? 약초를 구하느라 며칠 집을 비웠었는데 그사이 중환자가 있다고 연락을 주셨더군. 그 환자는 어디에 있소?”
그동안 화령은 일각이 여삼추 같은 시간을 초조하게 보내다가 주원이 나타나자 곧 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요? 방금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분이 저안에 있어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화령의 눈을 보고 주원은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화령의 손을 잡았다.
“허허, 아가씨 큰 걱정하지 마시오. 곧 저 독무를 중화시킬 해독제가 도착할 것이니. 내가 가진 재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주 의원님, 서둘러 주십시오. 사위가 될지도 모를 놈이 저안에 있습니다.”
“허, 벌써 아가씨도 시집갈 나이가 되셨군. 먼저 간 분이 기뻐하시겠소이다. 허허허!”
잠시 후, 하인들이 끙끙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커다란 단지와 화약심지가 달린 대나무 통 십여 개를 들고 나타났다.
“의원님 이걸 어디에 놓을 까요?”
“이 앞에 놓게나. 수고 했네!”
주원은 대나무 통에 단지에 있는 액체를 조심스럽게 채우고는 밀랍으로 막아 새지 않게 했다. 일각 정도가 지나자 모두 열두 개의 대나무 통이 만들어 졌다. 멀리서 별채를 지켜보던 방중선이 주원을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 방 사범! 인사가 늦었군. 그래 아직도 총각 딱지 뗄 생각이 없는가?”
“참, 주 노야야 말로 새장가를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혈색이 더 좋아진 걸 보니 이번 행로에서 회춘약이라도 구해 드신 모양입니다.”
“거참, 말하는 꼬락서니하곤…. 농담그만하고, 자네 똘마니들에게 이거 하나씩 나누어 주시게나!”
“이게 뭡니까?”
“뭐긴, 저 독무를 중화시킬 약통이지. 조심하라고들 해, 잘못하면 오늘밤 마누라를 안아 주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방중선은 일상이 되었는지 묵묵히 죽통을 받아들고 돌아서더니 호위무사들을 불러 모아 죽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잘 듣게나. 저기 독무에 둘러서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동시에 심지에 불을 붙이고 던져 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 몸을 숨기도록 하게. 파편에 맞으면 중요한 것 떼 주고 병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강기 막을 치고 있는 친구들도 같이 피하도록 하는 거 잊지 말고 전하게. 괜히 다쳐가지고 날 귀찮게 하면 그거 떼서 강아지 정력제나 만들 거니까!”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주원은 말이 걸었다. 그나마도 화령이 곁에 있어서 입조심을 하고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심한 말이 한없이 튀어 나왔을 것이다. 주원의 말이 끝나자 방중선은 대나무를 들고 있는 호위무사들에게 불씨를 소지하게 한, 그들을 후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주원의 신호를 기다렸다.
한님(桓雄)의 구슬 - 21
한님(桓雄)의 구슬 - 21 - 내글[影舞]
유벽의 명령을 받은 우서진은 사태수습을 위해 급히 밖으로 나갔고, 화령은 월아의 부측을 받으며 겨우 의자에 앉아서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유벽은 눈짓으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장하걸을 물러가게 하였다.
“화령아,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느냐?”
“아니요!”
“으흠, 그럼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겠구나?”
“네!”
화령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유벽은 딸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10년 전 자신을 남기고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유벽이 무림맹에 보낼 물자를 우송하는 표행에 따라 나섰다가 수적들의 습격을 받고 물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아내는 자신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때 사경을 헤매는 자신을 살려준 의원이 주원이었는데, 방금 전 우서진에게 말한 주 노인이 바로 그였다.
유벽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말이 공개구혼이지 딸의 배필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별채에 있는 정체모를 사내가 딸아이를 실망 시키지 않기만을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자신의 내력도 모른 채 유벽의 목숨을 구했고,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배경도 뚜렷하지 않은 - 그때 근 일 년 동안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 자신을 지켜주었고 결혼까지 했다. 그 뒤로 자신의 신분이 밝혀져 관계가 좋아지긴 했지만, 결혼 초 처가에서 쫓겨나 고생한 기억은 생각날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의 고생으로 몸이 약해져 아내는 늘 병을 달고 고생을 하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것도 운명이라는 것이군!’
“좋다, 만에 하나 그놈이 그 속에서 살아서 나온다면, 무림인이라면 누구도 무시 못 할 고수를 만들고, 장사치라면 이 유가장의 반을 주고, 유생이라면 최고의 선생을 붙어 과거를 보게 하여 너에게 걸맞은 배필이 되도록 해주겠다.”
화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 그게…!”
빨개진 딸의 얼굴을 쳐다보며 먼저 떠난 아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얘야, 이러고 있지 말고 어서 별채에 나가 보자구나!”
“네!”
별채로 가는 길 곳곳에는 호위무사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서있었고, 일부는 침입자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이곳저곳을 살피며 다니고 있었다. 장주 유벽의 모습이 나타나자 호위무사들의 우두머리인 방중선이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나오셨습니까, 장주님!”
“상황이 어떻소?”
“아주 안 좋습니다. 독무가 워낙 짙어 별체안의 상태를 살필 수 가 없습니다. 일단은 내공이 출중한 자들로 강기 막을 쳐서 독무가 퍼지는 것을 막는 있지만, 그것도 한 시진 이상을 버티긴 힘듭니다.”
방중선의 말을 듣고 유벽의 얼굴이 굳어졌고, 화령은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에 그 자리에 쓰러질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으흠, 누가 독을 풀었는지는 알아냈소이까?”
“외부로 부터의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최근에 침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혹시 내부인의 소행이란 말입니까?”
“글쎄요, 그것도 좀…. 저 정도의 독무를 만들어낼 정도의 인물이라면 일신에 지닌 내력이 일 갑자를 넘는 자란 이야기인데, 그런 내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의 이목을 숨기며 지내긴 어렵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 저를 속일 정도라면 내력이 이 갑자에 필적한다는 소리인데 그건 전 강호를 뒤져 모두 모아도 이십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제가 알고 있는 인물들이고, 그들 중에 독을 쓰는 자들은 두, 셋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 저 독무가 사라져야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있겠군요?”
“네, 장주님!”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묵묵히 듣던 화령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더욱 짙게 내려앉았다.
- 장주님 그냥 듣기만 하십시오. 저안에 사람이 있다면 이미 독에 중독되어 완전히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겁니다. 아무래도 화령 아가씨가 저 안에 있는 손님에 대한 생각이 각별한 것 같아 이렇게 장주님께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방중선의 전음을 듣고 유벽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 그리고, 안에 있는 손님의 신분을 조사했지만 아직까지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단지 회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조사를 하던 중에, 저의 이목을 끄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도 근처 객잔에서 하루 밤사이에 백오십여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 혈사가 발생하였는데, 그 근처에 살고 있던 한 나무꾼이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게 여자를 업고 쫒기는 젊은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물론 손님하고는 인상착의가 다르지만 그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조사를 해보고 자세히 보고 드리겠습니다.
유벽은 고개를 끄떡이고는 검은 독무에 싸여있는 별채 쪽을 쳐다보았다. 별채 쪽에는 십여 명의 호위무사가 주변을 둘러싸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다. 지금 별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화령은 속이 탔다. 처음 봤을 때 한눈에 반했다는 말이 딱 맞을 만큼 호감이 갔고, 배안 선실에서 꼬박 이틀 동안 곁을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다. 그리고 집에 온 후로는 아버지와 주변의 눈을 의식해 특별한 손님을 위한별채에 그를 묵게 했지만 자신의 거처보다는 그가 누워있는 별채에 에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꼬박 닷새 동안, 눈 한번 뜨지 않고 혼수상태로 지내는 사내의 곁을 지키면서 더욱 끌리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몽땅 빠져 있어 처음에는 약간 이상하게 보였지만 머리는 금방 자랐다. 오늘 아침에 보았을 땐 거의 한 치나 자라 있었다. 그리고 백옥같이 깨끗한 피부와 가끔 몸에서 내뿜는 기는 예사롭지 않았다. 책에서 보았던 환골탈태한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장하걸이 교응방의 소방주 위진호의 청혼을 거절하는 방책을 내놓았을 때 자신 있게 공개구혼을 제안했던 것이다. 자신의 나이 또래로 보이는 사내가 환골탈태한 무림의 고수라면 교응방의 망나니 소방주쯤은 쉽게 물리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말은 더욱 그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맘이 놓였었다.
“장주님, 주 노인이 도착하셨습니다.”
“어서 이곳으로 모셔오도록 하라.”
“네! 지금은 중독된 호위무사를 살펴보시고 계신데, 곧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강기 막을 치고 있는 무사들의 얼굴에서 지친 모습이 짙어질 때 쯤 주원이 나타났다.
“어서 오십시오, 주 의원님!”
“허, 유 장주님, 그동안 별고 없으셨소이까? 약초를 구하느라 며칠 집을 비웠었는데 그사이 중환자가 있다고 연락을 주셨더군. 그 환자는 어디에 있소?”
그동안 화령은 일각이 여삼추 같은 시간을 초조하게 보내다가 주원이 나타나자 곧 그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요? 방금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분이 저안에 있어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화령의 눈을 보고 주원은 온화한 미소를 띠우며 화령의 손을 잡았다.
“허허, 아가씨 큰 걱정하지 마시오. 곧 저 독무를 중화시킬 해독제가 도착할 것이니. 내가 가진 재주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주 의원님, 서둘러 주십시오. 사위가 될지도 모를 놈이 저안에 있습니다.”
“허, 벌써 아가씨도 시집갈 나이가 되셨군. 먼저 간 분이 기뻐하시겠소이다. 허허허!”
잠시 후, 하인들이 끙끙대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커다란 단지와 화약심지가 달린 대나무 통 십여 개를 들고 나타났다.
“의원님 이걸 어디에 놓을 까요?”
“이 앞에 놓게나. 수고 했네!”
주원은 대나무 통에 단지에 있는 액체를 조심스럽게 채우고는 밀랍으로 막아 새지 않게 했다. 일각 정도가 지나자 모두 열두 개의 대나무 통이 만들어 졌다. 멀리서 별채를 지켜보던 방중선이 주원을 알아보고 다가와 인사를 했다.
“어, 방 사범! 인사가 늦었군. 그래 아직도 총각 딱지 뗄 생각이 없는가?”
“참, 주 노야야 말로 새장가를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혈색이 더 좋아진 걸 보니 이번 행로에서 회춘약이라도 구해 드신 모양입니다.”
“거참, 말하는 꼬락서니하곤…. 농담그만하고, 자네 똘마니들에게 이거 하나씩 나누어 주시게나!”
“이게 뭡니까?”
“뭐긴, 저 독무를 중화시킬 약통이지. 조심하라고들 해, 잘못하면 오늘밤 마누라를 안아 주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방중선은 일상이 되었는지 묵묵히 죽통을 받아들고 돌아서더니 호위무사들을 불러 모아 죽통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모두들 잘 듣게나. 저기 독무에 둘러서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동시에 심지에 불을 붙이고 던져 놓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 몸을 숨기도록 하게. 파편에 맞으면 중요한 것 떼 주고 병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강기 막을 치고 있는 친구들도 같이 피하도록 하는 거 잊지 말고 전하게. 괜히 다쳐가지고 날 귀찮게 하면 그거 떼서 강아지 정력제나 만들 거니까!”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주원은 말이 걸었다. 그나마도 화령이 곁에 있어서 입조심을 하고 있지 그렇지 않았다면 더 심한 말이 한없이 튀어 나왔을 것이다. 주원의 말이 끝나자 방중선은 대나무를 들고 있는 호위무사들에게 불씨를 소지하게 한, 그들을 후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주원의 신호를 기다렸다.
“노야, 준비 끝났소. 신호를 주시오.”
“그놈 참! 무뚝뚝한 건 30년이 넘도록 똑같으니 그러니 장가를 못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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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