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 중에 행운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제대 후 저는 집에 한푼을 가져다 쓰지 않고 오로지 제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강지처는 못잊는 법인데 저에게는 조강지처인 그녀가 또다시 나를 떠날 려고 합니다.
지금으로 부터 6년전 저는 학교에 2학년으로 복학을 했죠! 남달리 유머 감각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저는 학교안에서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전에 첫사랑의 상처때문에 다시는 여자를 생각하지 않고 공부만 하리라는 맘에 여자를 사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Feel이 꽂히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때 이 친구 나이가 19살이었죠.
같은과 CC가 된 사이라 제가 거의 동생 다루듯 데리고 다녔습니다. 많이 챙겨주고 아껴줄려고 노력 했었죠. 학교 다니던 순간은 저희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주중에는 아르바이트다 야간에는 도서관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저에게는 그애가 더 없는 위안이었습니다. 통닭을 먹으며 강변을 걷는 것도 낭만이었고 같이 있는 순간이 좋았던 시절 이었습니다.
문제는 졸업과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졸업을 할때 저는 토익점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영어 공부가 필요했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나 접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토익 강사분이 딱한 제 사정을 들으시고 수업료도 받지 않고 교재도 그냥 주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용돈도 조금 주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성공하리라 맘 먹었던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희 사촌 형님도 저의 처지를 아시고 100만원을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힘이 났습니다. 반드시 이분들께 성공해서 보답하리라.
때는 월드컵에 온나라가 들썩들썩하던 2002년 6월 4강 문턱에 치러진 스페인전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홍명보의 킥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 근방에 그 친구는 저에게 많이 투정을 했었습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거의 눈치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홍명보가 킥을 하는 순간 모두가 얼싸 안고 눈물을 흘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도 물로 기뻤죠! 그래서 순간 우리 애인을 안을까 어쩔까 하다가 아차 만일 내가 세게 안으면 이친구가 화를 낼게 뻔한데 생각에 친구와 포옹을 했죠!
뒤에서 눈물을 글성이는 여친! 그날 남들은 월드컵 4강에 환호성을 올리며 거리를 뛰어 다닐때 저는 골목 한 구석에서 여자친구와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별의 발단은 이근처 부터 였죠.
토익 시험점수가 어느정도 나오고 하반기 채용 공고가 하나둘씩 떴던 지난 초 가을 9월 쯤 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귀에는 토익 Leastening Tape을 꼽고 그 친구 집에 갔습니다. 가까운 백화점에서 만났을때 그 친구가 갑자가 우산을 같이 쓰다 자기가 비가 많이 맞는 다면 화를 내는 거였어요. 평소에 그애는 우산을 같이 쓸때 제가 들면 자기가 많이 맞는다며 자기가 우산을 들었습니다. 그날따라 저에게 들라고 하더니 비를 맞자 반응이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저도 다혈질이었습니다. 사실 화를 잘 내는 편이 었죠.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얼어버렸습니다. 나의 이 어려운 상황, 오직 하나만 보며 돌진하는 저돌적인 성격, 여러가지 털털하게 다니는 모습 모두가 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노가대 뛰어서 사준 반지를 저에게 주는 여친.
정말 순간 하늘이 노라고 세상이 싫었습니다. 돌려주는 반지를 길에 던져 버렸습니다. 반지를 주워 다시 집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타는 그녀!
저는 순가 어떻게 그런 힘이 났는지 모릅니다. 버스 정류장을 하나를 전력 질루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잡았죠.
잡아타고 그녀가 내리자 저는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 나 곧있으면 면접 보러 가야 한다. 제발 날 버리지 말아주라! 합격 해서 너 행복하게 해주겠다.
전 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독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낙오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눈물이 없습니다. 제발 그순간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다면 깨끗히 잊어 버렸을지 모릅니다. 저는 비에 흠뻑젖은 몸으로 그녀에게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며 무릎 끓고 빌었습니다. 그녀는 동네 챙피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외면하며 가려 했습니다. 저는 다시 잡았죠.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다라면 아까 그 반지를 다시 손에 끼워 주었습니다. 기다려주라며~~~~~
그녀의 집앞에 까지 우산을 씌워주며 약속했습니다.
몇일 후 연락이 없는 그녀의 문자 " 나같이 나쁜애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하면서 문자가 오더군요. 그래서 공부하다 그길로 학교로 찾아 갔습니다. 평소에 저는 카리스마로 뭉쳐서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학생들 동원력도 좋아 과대를 했을때 동원력도 좋았죠.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서 지금 생각하면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자는 저를 정말 냉정히 뿌리 치더군요. 오기로 끌어내어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그말도 다 거짓이었으며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줄 아느냐며~~~ 그리고 이제 오빠 잊었어~~~~. 그때 네가 했던 행동들 전부 오빠랑 헤어질려고 한거야~~~ 몰랐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럼 니가 그랬던게 다 나를 기만한것이냐?
그녀는 그렇지 않으면 오빠가 나를 놔줄 것 같으냐?
정말 학창시절 의지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저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정말 사랑했다! 하며 볼을 만지며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 뒷모습에는 정말 증오하는 바람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그 배신감~~~~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을 잠을 자지 못했으며 메일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폐가 헐어 병원치료를 받았으며 초취해져만 갔습니다. 공부하라며 준 120만원은 모두 술 담배값으로 탕진하고 저는 다시 돈 한푼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3개사의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러 가야 했던 그때 저는 시련의 아픔에 자신이 없어 면접에 모두 낙방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녀가 증오스러울만도 한데 그래도 머리속에 생각이 났습니다.
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친구는 다른 과 대학원 생의 깔끔함에 반해 사귀었었다는 군요.
저는 툴툴 털었습니다. 일단 자격증을 맞기고 돈을 받아 공부를 다시 시작 했습니다. 물론 생각은 나지만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외로웠지만 생각이 많이 났지만 저는 계속 달렸습니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연말 정말 크리스 마스 이브에 면접보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운지 좋게 서류통과를 한 저는 우리과 4명의 선후배들과 함께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보고 나서 면접비를 모아 선후배 간에 술을 한잔 했죠!! 같은 취업 준비생들 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 그때 동기들이 어디에서 나타 났는지 합석을 하게 되고 그친구중에 한명이 그애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잊고 지냈지만 다시 한번 맘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죠. 정말 사랑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친구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자기도 나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며~~
저는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시 만난 날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시 잡은 두손을 놎히기 싫었습니다. 그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러다 그친구가 우리 안됀다며 그냥 돌아서려는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럼 우리 밥이나 먹자고 이야기 하고 밥 먹으면서 정말 니가 싫다면 여기서 깨끗히 잊을테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도 나를 많이 생각 했었다고 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뛸듯이 기뻣습니다. 다시 만나 잘해보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대학원생과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도 예전에 나와 같이 그렇게 냉정히 멀어지는 그녀의 희생양은 아닌지?~~
그러다 그해 3월 입사 시헙에 합격할때 그애는 기쁜 마음 뒤로 내가 떠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었습니다. 저는 이해 시켜주고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라며 이야기 했습니다.
다시 만나며 그리 원만했던 것 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집에서 부모님은 형편이 어려워 신경써주지 못한 맏아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며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새끼 얼마나 훌륭한데 그년이 뭔데 내새끼를 아프게 하냐며 우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용서 하셨습니다. 문제는 저희 아버지 이셨죠. 이떤 설명 할 것 없이 저희 아버지는 알아주는 주먹세계의 대부이셨습니다. 배신을 한 자는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비슷한 저희 여동생도 저랑 그 이후로 말을 잘 안합니다.
그래도 저는 잘 풀어나갈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 돈 드려 산 선물을 그친구가 사준 것 처럼 해서 부모님 드리고 그집에도 찾아가 인사드리고 제가 근무하는 지방의 각종 특산물을 사다가 드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저는 양가의 화해 우리의 행복한 결실을 위해 노력하려 했습니다.
작년 여름쩍부터 제 여친은 저처럼 토익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취직 시험에 비해 거쳐야 할 관문도 많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다른 길을 권했지만 잘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 한 것입니다.
토익공부를 하면서 알고 지냈던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일 남친이 공부 어떻게 잘되냐며 신경 써주고 전화해서 짜증내도 바로 끊어주고~~
짜증내면 바로 뭐 해주고~~~
제때제때 뭐 잘 갖다 받히고(목걸이, 팔찌, 옷, 등등)
참고로 전는 그녀가 원하는 걸 사주고 싶지만 이상한거 사왔다며 꾸사리를 먹기를 일수지~~
고마워 소리를 한번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같이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줍니다.
여러모로 신경써주는 남친에 비하면 하잘 것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죠.
저는 그렇게 살려거든 차라리 노예시장에서 종을 하나 데려다 놓는게 낮지 않냐라는 이야기르 ㄹ농담삼아 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잘 기억합니다. 특히 이렇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순간에는~~
몇달전 저는 스토킹을 당했습니다. 몇번 친구들과 석여서 본 여자가 좋다며 결혼하자는 걸 때네느라 정말 애먹었죠. 그때 결혼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에 결혼이야기를 좀 많이 했습니다. 그게 아마 그친구에게는 스트렛 였던것 같습니다.
때는 또 그녀가 입사 필기 시험을 준비할 때 였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하루에 전화 한통 씩 결혼이야기를 했죠? 하지만 그녀가 제게 확답을 주었더라면 아마 저도 집요하게 이러지는 않았겠죠.
몇일 후 그녀의 낙방 소식이 들리고 그녀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의 친구들을 동원했었죠.
그녀는 냉담 그 자차였습니다.
내가 밉다며 보기도 싫다는 거였습니다. 미안하다며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결혼을 해야 겠다고 맘 먹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하지만 니가 확답만 줘도 나는 물러섰을 것이다.
저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가 바라는 데로 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던 선물을 사주고 가고 싶은 곳을 데려가고 평소에 그녀가 좋아하진 않지만 꽃을 배달 해주었습니다.
떠나더라도 후회 없이 하기 위해~~~
저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석달 정도 지난 어느날 그녀는 다시 싸늘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날 평소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였습니다.
그녀의 속에 있는 맘을 들었죠.
자기는 자기 잘 챙겨주는 남자가 좋다.
완벽한 남자가 좋다.
오빠는 많이 부족하다 지금껏 내가 챙겨주긴 했지만 너무 부족하다.
등등
난 그때같이 비굴하긴 싫었습니다.
난 많이 변하려고 노력했고 너를 위해 내가 했던것에 대해 부족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어쩔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2주가 흐른 어느날 싸늘한 말투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같이 무시하는 투로 전화하는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ㅅ브니다.
그녀의 대답
"그럼 존중해주는 다른 사람 만나"
"예전에 오빠가 나한테 정이 많이 들어 같이 산다고 했지? 난 나만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아. 오빠 집에 가면 나 이뻐 해줄 것 같지도 않고 오빠랑 오손도손 살 자신도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을 곡해 시키는데 일각연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했는데 그말을 인용할 줄은 추오도 몰랐습니다.
전에도 이런면이 많은 친구 였지만 정말 이런면은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저는 나쁜것은 빨리 잊어버리지만 이친구는 기억해 뒀다 두고두고 괴롭히지요. 실수는 죽음입니다
" 그래 알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만나서 정리하자"하고 끊었습니다.
저는 배신당한 마음에 직장 친구들과 소주를 혼자 3병을 마셨습니다.
다음날에 피를 토하더군요!
결국엔 저만 손해 였습니다.
그주 니가 원하는 장소 시간 이야기 하라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친구는 미안하다며 주위에 상황이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자기가 연락을 한다며~~~
그러고 2주가 지났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알 수 없지만 그 애 성격에 거의 자기가 결론 지으면 바뀌지 않으며 또한 이런이야기를 함부러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젠 멀어 진 마음을 알수 있는거죠.
두번째 헤어지고자 하는 여친 어떻게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고민 고민 하다가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자 이렇게 글 올립니다.
진실된 내용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허심탄회한 답변 부탁 드립니다.
저는 소위 잘나간다는 국내 3위권 안에 드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 중에 행운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겠지만 제대 후 저는 집에 한푼을 가져다 쓰지 않고 오로지 제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조강지처는 못잊는 법인데 저에게는 조강지처인 그녀가 또다시 나를 떠날 려고 합니다.
지금으로 부터 6년전 저는 학교에 2학년으로 복학을 했죠! 남달리 유머 감각 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저는 학교안에서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전에 첫사랑의 상처때문에 다시는 여자를 생각하지 않고 공부만 하리라는 맘에 여자를 사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Feel이 꽂히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때 이 친구 나이가 19살이었죠.
같은과 CC가 된 사이라 제가 거의 동생 다루듯 데리고 다녔습니다. 많이 챙겨주고 아껴줄려고 노력 했었죠. 학교 다니던 순간은 저희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주중에는 아르바이트다 야간에는 도서관 주말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저에게는 그애가 더 없는 위안이었습니다. 통닭을 먹으며 강변을 걷는 것도 낭만이었고 같이 있는 순간이 좋았던 시절 이었습니다.
문제는 졸업과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졸업을 할때 저는 토익점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영어 공부가 필요했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나 접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토익 강사분이 딱한 제 사정을 들으시고 수업료도 받지 않고 교재도 그냥 주면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용돈도 조금 주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없이 성공하리라 맘 먹었던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희 사촌 형님도 저의 처지를 아시고 100만원을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힘이 났습니다. 반드시 이분들께 성공해서 보답하리라.
때는 월드컵에 온나라가 들썩들썩하던 2002년 6월 4강 문턱에 치러진 스페인전 승부차기 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홍명보의 킥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 근방에 그 친구는 저에게 많이 투정을 했었습니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거의 눈치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카페에서 홍명보가 킥을 하는 순간 모두가 얼싸 안고 눈물을 흘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저도 물로 기뻤죠! 그래서 순간 우리 애인을 안을까 어쩔까 하다가 아차 만일 내가 세게 안으면 이친구가 화를 낼게 뻔한데 생각에 친구와 포옹을 했죠!
뒤에서 눈물을 글성이는 여친! 그날 남들은 월드컵 4강에 환호성을 올리며 거리를 뛰어 다닐때 저는 골목 한 구석에서 여자친구와 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별의 발단은 이근처 부터 였죠.
토익 시험점수가 어느정도 나오고 하반기 채용 공고가 하나둘씩 떴던 지난 초 가을 9월 쯤 저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귀에는 토익 Leastening Tape을 꼽고 그 친구 집에 갔습니다. 가까운 백화점에서 만났을때 그 친구가 갑자가 우산을 같이 쓰다 자기가 비가 많이 맞는 다면 화를 내는 거였어요. 평소에 그애는 우산을 같이 쓸때 제가 들면 자기가 많이 맞는다며 자기가 우산을 들었습니다. 그날따라 저에게 들라고 하더니 비를 맞자 반응이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저도 다혈질이었습니다. 사실 화를 잘 내는 편이 었죠.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순간 얼어버렸습니다. 나의 이 어려운 상황, 오직 하나만 보며 돌진하는 저돌적인 성격, 여러가지 털털하게 다니는 모습 모두가 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노가대 뛰어서 사준 반지를 저에게 주는 여친.
정말 순간 하늘이 노라고 세상이 싫었습니다. 돌려주는 반지를 길에 던져 버렸습니다. 반지를 주워 다시 집으로 가는 방향의 버스를 타는 그녀!
저는 순가 어떻게 그런 힘이 났는지 모릅니다. 버스 정류장을 하나를 전력 질루로 달렸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잡았죠.
잡아타고 그녀가 내리자 저는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 조금만 참아달라 나 곧있으면 면접 보러 가야 한다. 제발 날 버리지 말아주라! 합격 해서 너 행복하게 해주겠다.
전 독한 사람이었습니다. 독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낙오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눈물이 없습니다. 제발 그순간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다면 깨끗히 잊어 버렸을지 모릅니다. 저는 비에 흠뻑젖은 몸으로 그녀에게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며 무릎 끓고 빌었습니다. 그녀는 동네 챙피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외면하며 가려 했습니다. 저는 다시 잡았죠.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다라면 아까 그 반지를 다시 손에 끼워 주었습니다. 기다려주라며~~~~~
그녀의 집앞에 까지 우산을 씌워주며 약속했습니다.
몇일 후 연락이 없는 그녀의 문자 " 나같이 나쁜애 만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하면서 문자가 오더군요. 그래서 공부하다 그길로 학교로 찾아 갔습니다. 평소에 저는 카리스마로 뭉쳐서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학생들 동원력도 좋아 과대를 했을때 동원력도 좋았죠.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서 지금 생각하면 개망신을 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자는 저를 정말 냉정히 뿌리 치더군요. 오기로 끌어내어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그말도 다 거짓이었으며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줄 아느냐며~~~ 그리고 이제 오빠 잊었어~~~~. 그때 네가 했던 행동들 전부 오빠랑 헤어질려고 한거야~~~ 몰랐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그럼 니가 그랬던게 다 나를 기만한것이냐?
그녀는 그렇지 않으면 오빠가 나를 놔줄 것 같으냐?
정말 학창시절 의지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저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정말 사랑했다! 하며 볼을 만지며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 뒷모습에는 정말 증오하는 바람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그 배신감~~~~
저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일주일을 잠을 자지 못했으며 메일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폐가 헐어 병원치료를 받았으며 초취해져만 갔습니다. 공부하라며 준 120만원은 모두 술 담배값으로 탕진하고 저는 다시 돈 한푼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3개사의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면접을 보러 가야 했던 그때 저는 시련의 아픔에 자신이 없어 면접에 모두 낙방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녀가 증오스러울만도 한데 그래도 머리속에 생각이 났습니다.
뒤 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친구는 다른 과 대학원 생의 깔끔함에 반해 사귀었었다는 군요.
저는 툴툴 털었습니다. 일단 자격증을 맞기고 돈을 받아 공부를 다시 시작 했습니다. 물론 생각은 나지만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외로웠지만 생각이 많이 났지만 저는 계속 달렸습니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연말 정말 크리스 마스 이브에 면접보는 회사도 있었습니다. 운지 좋게 서류통과를 한 저는 우리과 4명의 선후배들과 함께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면접보고 나서 면접비를 모아 선후배 간에 술을 한잔 했죠!! 같은 취업 준비생들 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 그때 동기들이 어디에서 나타 났는지 합석을 하게 되고 그친구중에 한명이 그애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잊고 지냈지만 다시 한번 맘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죠. 정말 사랑했었다.
다음날 아침 그 친구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자기도 나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며~~
저는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시 만난 날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다시 잡은 두손을 놎히기 싫었습니다. 그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러다 그친구가 우리 안됀다며 그냥 돌아서려는 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럼 우리 밥이나 먹자고 이야기 하고 밥 먹으면서 정말 니가 싫다면 여기서 깨끗히 잊을테니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도 나를 많이 생각 했었다고 하면서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뛸듯이 기뻣습니다. 다시 만나 잘해보리라 생각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그 대학원생과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도 예전에 나와 같이 그렇게 냉정히 멀어지는 그녀의 희생양은 아닌지?~~
그러다 그해 3월 입사 시헙에 합격할때 그애는 기쁜 마음 뒤로 내가 떠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었습니다. 저는 이해 시켜주고 나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라며 이야기 했습니다.
다시 만나며 그리 원만했던 것 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집에서 부모님은 형편이 어려워 신경써주지 못한 맏아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며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 새끼 얼마나 훌륭한데 그년이 뭔데 내새끼를 아프게 하냐며 우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용서 하셨습니다. 문제는 저희 아버지 이셨죠. 이떤 설명 할 것 없이 저희 아버지는 알아주는 주먹세계의 대부이셨습니다. 배신을 한 자는 용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격이 비슷한 저희 여동생도 저랑 그 이후로 말을 잘 안합니다.
그래도 저는 잘 풀어나갈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제 돈 드려 산 선물을 그친구가 사준 것 처럼 해서 부모님 드리고 그집에도 찾아가 인사드리고 제가 근무하는 지방의 각종 특산물을 사다가 드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저는 양가의 화해 우리의 행복한 결실을 위해 노력하려 했습니다.
작년 여름쩍부터 제 여친은 저처럼 토익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다른 취직 시험에 비해 거쳐야 할 관문도 많고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다른 길을 권했지만 잘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 한 것입니다.
토익공부를 하면서 알고 지냈던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매일 남친이 공부 어떻게 잘되냐며 신경 써주고 전화해서 짜증내도 바로 끊어주고~~
짜증내면 바로 뭐 해주고~~~
제때제때 뭐 잘 갖다 받히고(목걸이, 팔찌, 옷, 등등)
참고로 전는 그녀가 원하는 걸 사주고 싶지만 이상한거 사왔다며 꾸사리를 먹기를 일수지~~
고마워 소리를 한번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같이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줍니다.
여러모로 신경써주는 남친에 비하면 하잘 것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죠.
저는 그렇게 살려거든 차라리 노예시장에서 종을 하나 데려다 놓는게 낮지 않냐라는 이야기르 ㄹ농담삼아 했습니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잘 기억합니다. 특히 이렇게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순간에는~~
몇달전 저는 스토킹을 당했습니다. 몇번 친구들과 석여서 본 여자가 좋다며 결혼하자는 걸 때네느라 정말 애먹었죠. 그때 결혼을 해야 겠다라는 생각에 결혼이야기를 좀 많이 했습니다. 그게 아마 그친구에게는 스트렛 였던것 같습니다.
때는 또 그녀가 입사 필기 시험을 준비할 때 였습니다.
저는 아무 생각없이 하루에 전화 한통 씩 결혼이야기를 했죠? 하지만 그녀가 제게 확답을 주었더라면 아마 저도 집요하게 이러지는 않았겠죠.
몇일 후 그녀의 낙방 소식이 들리고 그녀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의 친구들을 동원했었죠.
그녀는 냉담 그 자차였습니다.
내가 밉다며 보기도 싫다는 거였습니다. 미안하다며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결혼을 해야 겠다고 맘 먹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하지만 니가 확답만 줘도 나는 물러섰을 것이다.
저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고 그녀가 바라는 데로 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원하던 선물을 사주고 가고 싶은 곳을 데려가고 평소에 그녀가 좋아하진 않지만 꽃을 배달 해주었습니다.
떠나더라도 후회 없이 하기 위해~~~
저는 이렇게 마음 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석달 정도 지난 어느날 그녀는 다시 싸늘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날 평소와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였습니다.
그녀의 속에 있는 맘을 들었죠.
자기는 자기 잘 챙겨주는 남자가 좋다.
완벽한 남자가 좋다.
오빠는 많이 부족하다 지금껏 내가 챙겨주긴 했지만 너무 부족하다.
등등
난 그때같이 비굴하긴 싫었습니다.
난 많이 변하려고 노력했고 너를 위해 내가 했던것에 대해 부족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어쩔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2주가 흐른 어느날 싸늘한 말투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같이 무시하는 투로 전화하는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했ㅅ브니다.
그녀의 대답
"그럼 존중해주는 다른 사람 만나"
"예전에 오빠가 나한테 정이 많이 들어 같이 산다고 했지? 난 나만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아. 오빠 집에 가면 나 이뻐 해줄 것 같지도 않고 오빠랑 오손도손 살 자신도 없어"
이런 식으로 말을 곡해 시키는데 일각연이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했는데 그말을 인용할 줄은 추오도 몰랐습니다.
전에도 이런면이 많은 친구 였지만 정말 이런면은 저와는 맞지 않습니다. 저는 나쁜것은 빨리 잊어버리지만 이친구는 기억해 뒀다 두고두고 괴롭히지요. 실수는 죽음입니다
" 그래 알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만나서 정리하자"하고 끊었습니다.
저는 배신당한 마음에 직장 친구들과 소주를 혼자 3병을 마셨습니다.
다음날에 피를 토하더군요!
결국엔 저만 손해 였습니다.
그주 니가 원하는 장소 시간 이야기 하라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친구는 미안하다며 주위에 상황이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자기가 연락을 한다며~~~
그러고 2주가 지났습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알 수 없지만 그 애 성격에 거의 자기가 결론 지으면 바뀌지 않으며 또한 이런이야기를 함부러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젠 멀어 진 마음을 알수 있는거죠.
어찌됐든 순수한 마음을 또한번 기만 했습니다.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때 주위에 멋진 남자가 있는듯 합니다. 물론 예상이지만~~
이젠 노아주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연락을 기다리진 않지만 하루 하루 갈수록 전화기가 손에 가네요!
헤어지더라도 상처없이 해어지고 싶습니다.
이상 긴글 읽어 주신 점 감사하고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