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12. 13. 14. 끝)

은하철도 200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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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12. 13. 14. 끝)


그녀는 신의 딸이었다.



12.


제 정신이 돌아온 그녀에게 새벽에 야참을 먹으러 나가자고 그날 사온 두툼한 오리털 파커를 꺼내 주었다. 서랍장에서 청바지를 찾아 입으며 그녀는 몸이 말라서 허리가 헐렁하다고 말하며 방긋 웃었다. 밖의 기온은 차가웠지만 바람 한 점 없었다. 둘이 팔짱을 끼고 골목을 나와서 번화한 거리를 향했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매달리듯 걸었다. 긴 머리를 말아 올리고 머리까지 뒤집어 쓴 파커에 달린 모자를 깊숙이 눌러주었다.

“몸이 무척 허약해졌으니 감기를 조심해야지.”

그녀는 힐끗 나를 올려다보더니 눈부신 듯 웃었다. 무척 행복감에 사로잡힌 표정이었고 움직이는 몸짓은 안정되어 보였다. 진정 이 여자가 내가 죽을 때까지 끼고 가야할 여자라고 생각했다. 24시간 식당에 들어가서 갈비탕을 시켰다. 그녀는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내가 뜨는 수저에 놓으며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도취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먹어. 왜 안 먹고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어?”

내가 던진 퉁명스런 말에 그녀는 툭 치며 씩 웃었다. 갈비탕 국물을 몇 번 후룩후룩 들이마시더니 그녀는 곧 수저를 놓았다. 입맛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그녀와 운동 삼아 한참동안 이리저리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서서 빤히 눈을 뜨고 저쪽으로 난 어두컴컴한 길을 주시했다. 그러더니 별안간 다리를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운을 느낀 내가 그녀를 얼른 부축해 끌어안았다. 그녀는 내 목에 매달리더니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눈을 꽉 감고 바들바들 떨었다.

“왜 그래? 지금 왜 그러는 거야?”

깜짝 놀라서 그녀를 꼭 안은 채 자꾸 물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아까 바라보던 길을 가리키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기...... 저기...... 땡언니가 죽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잖아.”

그러나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땡언니는 동네에서 일수놀이를 하는 여자였다. 과거에 모델광고에 출연한 적도 있는 미모를 가진 여자였는데, 지금은 사십 중반의 나이로 돈이 필요한 가게에 일쑤를 놓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는 턱을 덜덜 떨면서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내 팔을 끌어당겼다. 방에 들어온 그녀의 눈빛은 그전처럼 파란 광기를 내뿜고 있었다. 미친 듯이 소주병을 따더니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를 침대로 끌어들이고는 내 품을 자꾸 파고들며 무섭다고 덜덜 떨었다. 또 그녀의 표정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다음 날도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았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그녀는 술에 만취된 채로 비몽사몽 헤매고 있었다. 말을 붙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켜고 그녀 곁에 비스듬히 누웠다. 시선을 무심히 텔레비전 화면에 두고 있다가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땡언니라고 말하던 여자가 살해된 지 일주일 만에 자동차 트렁크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땡언니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노름꾼이 살인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는 장면이 뒤따라 나왔다. 화면에 나온 사진은 내가 전에 몇 번 본적이 있는 땡언니의 얼굴이 분명했다. 더구나 발견된 시각이 오늘 새벽 4시경이라고 했으니 그녀가 땡언니가 죽은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하얗게 질리던 시간과 딱 맞아 떨어졌다. 내 입에서 신음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이제부터는 미신이 정말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 같아보였고, 그녀를 사이에 두고 나와 귀신이 게임을 벌이는 것 같았다. 나는 소주를 큰 잔에 따라서 한꺼번에 입속에 털어 넣었다. 눈을 감았다. 사람의 목숨까지 창조하는 과학이 판치는 이 세상에 정말로 그녀를 괴롭히는 귀신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나에게서 그녀를 뺏어가려고 이 방까지 쫓아 들어와 농간질을 해대는 것인가,


나는 잔뜩 취한 채 비틀거리며 침대에 올라앉았다. 곤히 잠에 떨어진 그녀의 얼굴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퉁퉁 부었던 얼굴에서 붓기가 다 빠지자 그녀의 얼굴은 한 주먹도 안 될 정도로 작게 보였다. 지금 내가 느낀 섬뜩함, 등줄기를 꿰뚫는 전율, 그리고 정체모를 그림자가 눈앞을 오락가락하는 영상에 십여 년간 시달린 그녀의 애처로움이 처절함으로 가슴에 꽂혀왔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구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끊임없는 싸움에 지쳐가면서 나를 향하여 손을 내밀어 구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먼 불빛처럼 까뭇까뭇하게 내가 내미는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냉정해지려고 애썼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니 정말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땡언니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그녀가 본 환상은 귀신이 나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를 직접 꼬여서 데려가려 했지만 말을 안 듣고 자꾸 그녀가 나만 찾아들자 이번에는 직접 나를 들이치며 한판 해보자고 달려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흥, 좆같은 잡귀신들이 까불어.”

나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윗옷을 다 벗기자 우유빛 유방이 눈부시게 빛났다. 잠시 유방을 더듬다가 손을 아래로 뻗쳐 그녀의 바지를 내리고 그 속의 팬티까지 천천히 벗겼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잡귀신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좆같은 새끼들아, 내가 이 여자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너희들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내가 이 여자를 끝까지 쫓아 갈 것이야. 너희 잡귀신들...... 감히 나한테 도전장을 내지 마. 그리고 이 여자는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못해. 이 여자는 나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야.”

나는 신성한 제전을 벌이듯 천천히 그녀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몸이 꿈틀대더니 음음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눈감은 채 감아든 그녀의 손이 내 허리를 꽉 안았다.


마치 사방에 쭉 둘러선 귀신들에게 시위를 하듯 그녀와 정사를 나누었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 그녀를 탐닉했다. 될 수 있으면 오만 잡귀신들의 속을 박박 긁어서 화가 치솟아, 제 풀에 펄펄 뛰다가 기진맥진하라는 듯, 그리고 그녀를 안타까운 듯, 너무도 사랑하는 듯, 그리고 감히 귀신들은 넘보지 말라는 듯이 그녀의 육체를 탐닉했다. 허깨비로 떠도는 귀신이 어떻게 살아있는 인간의 신성한 행위를 방해한다는 말인가, 사랑이란, 지극한 사랑이란 귀신도 그 길을 비켜주는 법이다. 나는 그녀의 몸에 올라탄 채 푹 꼬꾸라졌다. 저승사자가 그녀만을 데려가지 못하게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가물가물 대는 눈길에 텔레비전에서 오락가락하는 화면의 빛이 자꾸 바뀌듯 스쳤다. 눈을 번쩍 떠보니 해가 창문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옆자리가 허전함을 느꼈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벌떡 일어나서 옷걸이를 보니 그녀가 어제 입었던 청바지와 오리털 파커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귀신들이 어젯밤에 그녀를 데리고 어디로 간 것일까, 몽롱한 의식으로 사무실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이 썰렁했다. 자정쯤 된 시간에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멀리 들렸다.

“자기야, 나 지금 허주에게 끌려가고 있어. 자꾸 허주가 끌고 어디로 가.”

“뭐? 허주가 뭐야? 허주가 뭔데 너를 끌고 가는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허주란 무당이 될 사람에게 씌우는 귀신이라는 무당들의 용어였다.



13.


혹독한 겨울에서 살아남았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오장육부를 칼바람에 드러낸 채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다가 봄볕이 문턱을 넘는 어느 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죽음 같은 겨울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른다. 장롱서랍을 열면 그녀가 입었던 속옷이 새록새록 가슴에 박혔고 그 위의 옷장에 들어있는 색색의 옷 속에는 그녀의 따듯한, 또한 싸늘한 체온이 숨쉬는 듯 했다. 매일 술에 취하여 들어서는 골목에 폐부를 뚫고 솟구치는 한숨이 줄줄이 깔렸고, 그녀가 문득 오지나 않을까 하여 문마저 잠그지 않고 출근했던 방에 들어서면 탁상 위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녀, 장난감처럼 늘어선 화장품, 그녀가 입었던 벽에 걸린 잠옷이 심장을 움켜쥐고 피를 말렸다. 그녀가 떠난 후 수원에 몇 번 찾아갔지만 집안 식구들은 그녀의 행방을 숨겼다. 그나마 가족들의 보호아래 있다는 안도감으로 돌아섰지만 그녀는 자꾸 눈에 밟혔다. 그녀에게서 전화는 몇 번 왔었다. 마냥 흐느끼다가 밥은 잘 먹었느냐, 잠은 잘 자느냐, 옷은 깨끗이 빨아 입고 다니는가하는 말을 한꺼번에 토하고 끊었다. 한번의 전화를 받으면 며칠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꺼져가는 목소리, 횡성수설 사랑한다는 말, 자기 걱정은 말라는 애원,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날아드는 채찍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등짝에 핏자국을 내고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 구원을 청할 사람이 나뿐이 없었던 그녀였다. 신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인간과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어여삐 여기고, 마냥 투정부리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


산천에 진달래 피던 삼월 중순, 나는 그녀의 형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영이가 내림굿 하는데 오시겠습니까?”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 동안 요양원에서 몸조리하다가 산으로 기도하러 들어갔다고 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집안에서는 그녀를 신에게 바치기로 결정하고 어느 정도 몸이 좋아진 그녀를 포항에 있는 큰무당인 그녀의 고모에게 보냈다. 고모 아래서 매일 새벽기도를 하고 신통력을 전수받으며 일종의 수업을 닦았는데, 매일 눈물만 흘리며 나를 찾았다고 했다. 몇 번의 내림굿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신내림을 거부했기에 고모와 타협한 결과, 그녀 자신이 신내림을 받는 장소에 나를 꼭 참석시켜 얼굴이라도 한번 보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신내림을 받는 장소인 충청도 칠갑산으로 향했다. 큰 길을 달리다가 옆으로 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들어가서 조그만 마을을 지나, 그 뒤로 뻗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털털 차를 몰면서 올랐다. 얼마쯤 계곡을 끼고 오르자 그녀의 형부가 알려준 기암정사라는 푯말이 보였다. 그때가 밤 아홉시 경이었다. 음습한 계곡 안에 자리한 기암정사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들어서 있는 건물 안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안채로 보이는 곳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차에서 내려 천천히 큰 마당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갔다. 향내가 코를 찔렀다. 무척 규모가 큰 굿판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포항에서 신통력으로 소문난 그녀의 고모가 준비한 굿판이기에 더 그랬다. 음식을 나르던 그녀의 언니가 나를 보더니 얼른 달려와서 인사했다. 그 뒤를 그녀의 형부가 굳어진 표정으로 따라 나오더니 나를 끌고 구석으로 갔다.


“오시느냐 고생하셨어요. 지금 처제는 저기 보이는 법당에 있어요.”

큰 마당을 내려보며 언덕위에 서 있는 건물을 쳐다보았다. 총총 쌓여 올라간 돌계단 위에 넓은 터가 자리 잡았고 그 옆에 큰 건물이 있었는데, 환한 불빛이 방싯 열린 문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굿은 자정부터 시작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삼 일간 계속된다고 했다. 더구나 큰무당으로 소문난 그녀 고모의 체면이 있기에 돈도 삼천 만 원 이상 들였고, 인도하는 무당만도 열명이 넘는다고 했다. 나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수선스레 오가는 여자들을 보았다. 가끔 피리와 장구, 그리고 괭가리와 징을 든 남자들도 눈에 띠었다. 꼭 고대문명의 제전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참 처제도 대단한 여자지만 형씨도 대단합니다.”

담배를 피워 물며 그녀의 형부가 말을 던졌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처제 덕분에...... 제 아내는 신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대를 이어서 무당을 한 명씩 배출해야 그 집안이 편하다는 집안내력이라는데, 저도 이해가지 않는 일입니다. 어차피 제 아내가 아니면 처제가 그 내력을 이어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처제에게 신이 떨어졌다고 합디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네요.”

서서히 사람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굿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무당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며 돌계단을 올라가고, 그 뒤를 각종 악기를 든 화랭이들이 따랐다. 나도 그녀의 형부를 따라서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섰다. 굿판은 큰 건물 앞에 자리한 넓은 터에서 열리는 모양이었다. 습기 찬 검은 색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큰 상을 펼치고 그 위에 각종 음식을 차려 올렸고 그 앞에 켜 놓은 촛불은 너울너울 거렸다. 나는 괴기스런 풍경에 깊은 숨을 들이켰다.


드디어 무당과 화랭이들이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나이가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무당이 징을 들고 가운데로 나오더니 상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신을 부르는 모양이었다. 한참 중얼중얼 대더니 징을 덩덩 치기 시작했다. 덩덩 울리는 징소리가 가슴을 한대씩 후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썹을 찡긋했다. 너무 아팠다.

“어허허~ 천지신명이시여. 오늘 당신 딸이 인사드리려 정성들여 상을 준비하옵고......”

쉰 목소리로 질러대는 무당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그녀가 걸어 나올 방문을 응시했다. 천천히 울리던 징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드높아지더니 한 순간에 화랭이들이 일제히 치고 불어대는 악기소리가 사방을 흔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문이 활짝 열린 것이었다. 속이 울컥하며 손끝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얀, 너무도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린 그녀가 양쪽으로 중년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문지방을 넘어서고 있었다. 하얀 버선발로 옥색고무신을 신더니 밝은 방안의 조명을 뒤로하여 우뚝 섰다. 사방을 둘러보는 그녀는 나를 찾는 것일까, 사람 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에 그녀의 형부가 내 팔을 꽉 잡았다. 그녀는 한 발 한 발 사뿐 내딛으며 무당들이 빙 둘러 앉은 터의 가운데로 걸어 나오더니 또 한번 사방을 훑어보았다. 그녀와 나의 눈이 딱 마주쳤다. 멀리 있지만 움찔하며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는 꼭 화석 같았다. 무심히 차려진 상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깊이 숙여 엎드리며 큰 절을 올렸다. 별안간 사방에서 울리던 악기소리가 딱 멈췄다. 늙은 무당이 상 앞으로 썩 나서더니 요령을 마구 흔들었다.

“어허허, 어허허, 천지만물을 굽어보아 중생을 어루만지는 신명이시여, 곱고 고운 당신 딸이 오늘에서야 제 자리를 찾아 인사드리오니, 그 동안에 어디 있었냐고 묻지 마시옵고, 뭘 하고 돌아다녔는가도 묻지 마시옵고, 오직 불쌍하다, 가엾다 다독거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당신 딸을 어여삐 받아주시옵소서.......어허허허~”

내 눈에서 불이 번쩍 켜지는 것 같았다. 몸을 앞으로 확 기울여 뛰어 들면서 그녀를 불렀다.

“영이야.”



14.


내 눈에는 그녀만 보였다. 검은 바위틈으로 솟은 소나무에 걸린 알록달록한 천조각이 불빛 그림자와 함께 바람에 술렁이며 하얀 치마저고리에 감싸진 그녀를 삼키려는 것 같았다. 앞에 선 사람의 어깨를 밀치며 그녀에게 뛰어들려는 순간에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달려와서 내 허리와 팔을 꽉 붙잡아 막았다. 필사적으로 그들의 완강한 팔뚝을 뿌리치며 몸을 조금 더 그녀에게 가까이 하려 했지만 나는 질질 끌려 나가고 있었다.

“영이야, 나를 좀 봐. 야, 이 새끼야 내가 왔단 말이야.”

나를 둘러싼 덩치 큰 남자들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녀였지만 나는 계속 소리쳤다. 히뜩 사람들 틈으로 보인 그녀가 몸을 내가 있는 쪽으로 돌리는 것 같았다. 반쯤 몸을 돌린 채 한참 멍한 시선을 보내던 그녀는 아무런 일도 모른다는 듯이 이내 돌아서더니 제단을 마주했다. 백짓장처럼 하얀 그녀의 얼굴에 파란 서슬이 스치며 범접을 불허하는 싸늘한 냉기를 내뿜었다.


“영이야, 대답해. 나란 말이야. 내가 왔다구.”

번쩍 몸이 들려진 채 계단 아래로 끌려 내려오면서도 나는 위를 향하여 마구 소리쳤다. 당황한 그녀의 형부가 허겁지겁 나를 꼭 끌어안고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러세요? 정말 이러시면 안 됩니다.”

황급히 계단을 뛰어내려온 그녀의 엄마가 내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갈라진 음성으로 애원했다.

"선생님, 제발 그냥 영이를 놔두세요. 어느 어미가 제 딸년이 무당이 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천박한 핏줄이라서 그토록 고달프게 살고 있는 내 딸년이 아닙니까? 흑흑, 선생님 제발 제발 그 년이 제 길을 그냥 가게 내버려 두세요. 죄 많은 어미가 이렇게 빕니다. 흑흑,“

두 손을 내 얼굴에 바짝 대고 싹싹 비는 그녀의 엄마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쑥 들어간 눈가의 검은 그림자와 함께 자글자글 잡힌 주름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천벌을 받은 집안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 거친 세월에 깎이고 패인 노파의 굵은 주름살 사이로 타고 내려오다가 강물이 범람하듯 온통 얼굴을 덮어버렸다.


주춤주춤 물러서면서 뭐라고 대꾸라도 하려는 순간에 천둥벼락처럼 요란한 꽹과리소리가 절벽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내 머리를 후려치고, 가슴을 꿰뚫었다. 뒤이어서 장구와 피리소리가 파도처럼 마구 날뛰다가 별안간 뚝 그치면서 쉰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았다.

“그래, 그래, 이번에는 누가 내려 왔냐? 어서 말해 봐라.”

늙은 무당이 그녀에게 물었다. 가늘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뭐라고? 아하, 그렇구나. 오대산에서 신령님이 내려왔다구? 어허허, 여봐라. 오대산에서 산신령님이 오셨다고 그러는구나.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오대산이라면 얼마나 먼 길인데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산신령께서 예쁜 딸을 보러 오셨다는구나. 어허허허,”

그러자 또 풍악소리가 사방을 흔들기 시작했다. 한참 난장판처럼 계곡이 흔들리다가 뚝 그치면 또 늙은 무당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혔다.

“이번에는 아기동자가 왔구나. 아구구, 귀여운 것, 댕기매고 왔냐? 말해 봐라. 옳거니, 거기 있는 사탕과 과자를 듬뿍 주어라. 그것 참 귀엽기도 하다. 잠도 안자고 벌떡 일어나서 여기까지 아장아장 걸어왔으니 어찌 기특하지 않겠느냐, 참으로 기특하도다.”


나의 다리가 풀리면서 무릎이 퍽 꺾였다. 손톱으로 땅바닥을 긁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창칼처럼 꽂히는 풍악소리와 늙은 무당의 쉰 목소리에 눌려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온몸이 바늘에 찔리는 것처럼 마구 아파왔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이 쌍년이...... 내 오장육부를 시커멓게 다 태울 년이......”

사방에서 귀신들이 손가락질하며 마구 배꼽을 잡고 깔깔 웃는 것 같았다. 감히 신의 딸을 넘보는 어리석은 놈이라고 놀려대며 자기들이 이겼다고 춤추며 날뛰는 기분이었다.

“이 어리석은 것, 호호호...... 넘볼 것을 넘 보거라. 아무리 네 기력을 다하고 오기를 다해도 별 수 없는 짓이지, 호호호, 달걀을 던져서 바위를 깨려고 드느냐? 멍청하고 어리석기 그지없는 불쌍한 녀석, 네 계집년도 네 팔자를 타고난 계집이어야만 네 계집이 되는 법이거늘, 어찌 신령의 줄을 타고난 계집을 넘보려고 드느냐? 호호호, 미친 녀석.”

땅을 짚으며 기어가는 손등 위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풍악소리와 늙은 무당의 쉰목소리가 백만대군의 함성처럼 천지를 마구 흔들어댔다. 겨우 차를 세워둔 곳까지 기어와서 문을 열고는 안으로 기어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키를 돌렸다. 부르릉 하며 차의 시동이 걸렸다. 가속페달을 확 밟자마자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뒤뚱하던 차는 튀듯이 기암정사를 빠져 나왔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몰랐다. 나는 도끼를 찾아들어 미친 듯이 살림살이를 마구 때려 부셨다. 화장대를 두 쪽 내고 장롱을 엎어버렸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의 옷을 구둣발로 마구 짓밟으며 욕을 해댔다.

“미친년아, 어디 할 지랄이 없어서 무당질을 해 쳐 먹어? 개 같은 년, 귀신이 그렇게 좋단 말이지.”

안채에서 집주인이 뛰어나오더니 내 팔을 붙들고 뜯어 말렸다. 아침부터 소주병을 입에 물고 발광하다가 침대에 쓰러졌다.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의식에 그녀의 베개를 끌어안았다. 비몽사몽 꿈결에 그녀가 보였다. 하얀 한복대신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방을 들어서는 것이었다. 누워있던 내 곁에 앉더니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갖다대었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는 꼼짝 말고 방구석에 쳐 박혀 있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웨딩드레스를 훌훌 벗고는 침대 안으로 알몸을 쑥 들이밀었다. 그리고 눈물이 가득한 내 눈을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나는 자꾸 그녀에게 다짐을 받았다. 어디로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절대로 어디 안 갈 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비로소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안심한 듯 그녀가 끌어안는 대로 몸을 맡기고 눈감았다. 따듯한 그녀의 숨결이 내 이마에 스쳤다.


한참 그렇게 있다가 눈을 뜨니 별안간 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꿈이었다. 벌떡 일어났다. 눈을 비비니 사방에는 살림살이가 부셔진 채 흉물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밖은 컴컴했다. 하루 종일 잠을 자다 깬 시간이 벌써 저녁 아홉시를 넘긴 것이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샤워를 한 후에 부셔진 장롱 틈에서 속옷을 찾아 갈아입었다. 깨져 바닥에 뒹구는 거울조각에 언뜻 비친 내 얼굴이 십년은 더 늙어보였다.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사장이 정신 나간 놈이라고 또 소리칠 것이라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저는 영이 형부 되는 사람인데, 온양으로 오실래요? 여기는 온양에 있는 00병원인데 영이한테 급한 일이 생겼어요.”



15.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꾼 꿈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허겁지겁 차를 몰고 온양으로 달리며 그녀의 형부와 통화를 계속했다. 내가 기암정사를 빠져나온 후에 굿판은 계속되었다고 했다. 점점 고조되는 신명에 그녀는 여러 신을 모두 불러 내렸고 그녀의 고모도 흡족했다고 한다. 그렇게 새벽 네 시까지 굿은 이어졌고 신나게 모두 잘 돌아가던 중에 별안간 덩실덩실 춤추던 그녀의 입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점점 비명에 가까운 날카로운 소리로 변하더니 그녀의 고모를 향하여 마구 악담을 퍼붓는 것이었다.

“야 이 년아, 네가 조카를 팔아먹고 잘 살 줄 아냐? 이 나쁜 년."

펄쩍 뛴 고모는 그녀의 뺨따귀를 후려갈기며 잡귀신아 물러가라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자 깔깔거리며 그녀가 마구 웃더니 조금도 물러설 기색도 없이 또 악담을 퍼부었다.

“미친 년,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 서방님이 길거리에서 몰매 맞아 죽는 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다가 숨이 막혀 죽은 귀신이다. 이 년아, 어중이떠중이 다 데려다가 잡신을 더덕더덕 붙여서 길거리에 팽겨 치면 네 년의 명이 온전할 줄 아느냐? 나쁜 년.”

파란 독기를 내뿜는 그녀의 기세에 고모는 후들후들 떨다가 주저앉았다. 그녀는 휙 돌아서니 잔뜩 음식이 차려진 상을 뒤집어엎어 버렸다. 그리고 사방을 훑어보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줄줄이 토해냈다.

“나는 내가 죽고 못 사는 서방님이 더 좋아. 내 서방님한테 갈 거야. 얼른 가서 서방님에게 따듯한 밥도 해주어야 하고, 쾌재재한 옷도 빨아 주어야 해. 아유, 바쁘다. 너희들하고 여기서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서방님이 이제 돌아올 시간이거든. 야단맞기 전에 얼른 가봐야지.”

빙 둘러 앉아있던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다. 어떤 무당은 납작 엎드려 두 손을 위로하여 싹싹 빌기까지 했다. 그녀는 사람들 가운데를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돌계단을 밟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만 보던 사람 중에서 누가 소리질렀다.

"빨리 가서 잡아. 어서 잡아 오라구.“

그 소리가 떨어지자 그녀는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흰 치마저고리를 펄럭이며 마당을 가로질러 산 위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우르르 사람들이 소리치면서 쫓아가고 그녀는 어둠 속으로 마구 치달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깊은 계곡에 쳐 박힌 것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온양에 도착했다. 그녀의 형부가 말한 병원 문을 열고 처벅처벅 들어섰다. 하루 종일 의식을 잃었던 그녀가 낮에 잠시 깨어나더니 나를 찾았다고 했다. 중환자실 앞에는 그녀의 어머니와 고모가 혼절한 듯 의자에 기대있었고 내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몇 명의 무당이 서성대며 수군거렸다. 간호사는 환자가 깨어나면 면회시켜 주겠다고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녀의 몸이 조각조각 난 상태라고 의사는 말했다. 내출혈도 심하다고 했다. 나는 사태를 직감했다. 복도의 벽에 기댄 채 멍한 시선을 뿌연 형광등에 맞추고 서 있었다. 구토가 올라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대고 왝왝 토했지만 어제부터 제대로 먹은 것도 없어서 쓴 위액만 올라왔다.

“씨팔, 잡귀신 새끼들이......”

이를 갈며 물을 한 모금 가득 들이키고 양치한 다음에 확 뱉었다. 목구멍이 퉁퉁 부었는지 물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고모는 집안내력으로 내려온 신끼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하여 끊어진다고 말했다. 이 말은 그녀가 죽음으로서 가문의 전통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뜻이었다. 나는 모든 고통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승에서 그녀와 만난 것이 전생의 깊은 인연이었다면 후생에도 그녀와의 만남은 계속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언니가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먼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나왔다. 그녀의 언니는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하여 눈짓 했다. 나는 숨을 훅 들이키고는 간호사를 따라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몸에 손대지 마세요.”

간호사는 그녀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나직한 음성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현기증이 몰려왔다. 산소호홉기를 댄 얼굴은 눈만 빼꼼 놔두고 온통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다. 딸꾹질 나오듯 울컥울컥 속이 끓어올랐다.

“나야, 영이야, 나란...... 말이야. 내 말이...... 들려?”

두터운 붕대를 감은 사이로 그녀의 눈이 가늘게 떠지는 것 같았다. 분명히 그녀는 웃고 있었다. 별안간 초롱초롱 살아난 그녀의 눈빛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애썼지만 목구멍까지 차오른 불길에 컥컥대는 소리만 났다. 억지로 웃으려 했지만 뺨만 축축하게 젖어올 뿐 얼굴 근육은 경련만 일으켰다. 어깨까지 덮은 담요가 약간 움직이는 듯 하더니 그녀의 한 손이 밖으로 삐죽 내밀어졌다. 팔을 움직일 수 없어서 겨우 팔목만 내민 것이었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모처럼 잡아보는 그녀의 손이었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물건을 쥐듯 내 손아귀를 꼭 잡았다. 별안간 그녀의 눈빛이 여울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눈가의 붕대를 축축이 적시며 끝없이 샘솟았다. 나는 여전히 말을 토하려 안간힘썼지만 목에서 자꾸 컥컥 막혔다. 그녀는 내 손을 슬쩍 밀더니 자기의 손가락을 내 손바닥에 대었다. 그리고 언젠가 차안에서 내 손등에 글을 쓰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당신, 사랑해.”

유언을 남기듯 힘들게 여섯 글자를 쓰더니 다시 내 손을 꼭 잡으려 애썼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내 입술을 댔다. 뜨거운 숨결과 체온을 온통 그녀에게 전달하려 애썼다.

“이 새끼...... 흑...... 이렇게 돌아올 새끼가...... 왜...... 왜......”

옆에서 띠띠 거리던 심장박동기소리가 별안간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펄쩍 뛰었다. 툭툭 쳐 올라 뛰던 모니터의 점선이 점점 느리게 아래로 쳐지는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우르르 달려오더니 일순간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 있던 나를 얼른 밖으로 내쫓았다.


나는 병원의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았다. 봄의 새벽은 뿌연 빛을 동쪽에서 뿌리며 밝아오고 있었다. 싸늘한 콘크리트 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새벽길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별안간 통유리로 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삐꺽하고 들렸다. 순간 등줄기가 오싹하더니 그녀의 하얀 치맛자락이 눈앞을 스치는 듯 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내 손에 들려있던 소주병이 스르르 밑으로 떨어지더니 계단을 굴러 내리다가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침통한 표정으로 나에게 무엇인가 전하려는 그녀의 형부를 거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삐쭉삐쭉 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죽...... 죽....... 죽었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내...... 내 아내는...... 죽지 않았습니다.” (끝)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