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 교육학 - 1

햇살마루2005.07.23
조회219

1.

 

아담한 크기의 창을 작은 리본이 서로 엮여 정다각형 무늬를 연출하는 하얀 커텐이 살포시 덮어 내리고, 커텐의 직물 사이사이로 따뜻한 온기가 손에 잡힐 듯한 햇빛이 새어 들어와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 하다. 머리가 가볍고 맑은 것이 꿈도 꾸지 않고 제법 긴 시간을 잔 것 같다. 잠에서 깨어 눈을 뜨자마자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지만 무진장 행복한 느낌으로 가슴이 벅차 이 느낌을 남김없이 즐기고 싶어 한참 전에 눈을 떴지만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규칙적으로 희미하게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정말 행복하다. 나의 예상이 맞다면 난 곧 구타당할 것이다. 10년 만에…… 아주 정겹고 사랑스러운 애인으로부터.  가해자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바르게 누워있던 나는 얼른 몸을 뒤집었다. 때리기 편하고 맞기 편한 자세, 그리고 맞아도 그다지 아프지 않은 곳이 당연히 등과 둔부이기 때문이다. 나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방문자를 위해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마냥 살포시 아주 예쁜 척을 하며 눈을 감았다.

 

"퍽"

 

'윽…… 이 소리가 아닌데.. 절대 이 소리와 이 힘의 세기는 내가 고대하던 그것이 아니다. 엄마의 사근사근한 손길이 결코 아니다.'

 

"아씨, 뭐야."

 

"이틀하고 반나절을 잤다. 그냥 둘까했는데 그래도 먹어야지. 먹고 또 힘내서 자라."

 

"정말 뭐냐고요. 내 등짝이 느낀 오빠의 살벌한 기운은. 아직도 귀한 이 동생을 제대로 예뻐할 줄 모르는군. 아이씨, 너무해. 고국 그것도 내 가족의 환대가 이 정도인 줄 진작 알았으면 성질 좀 죽이고 계속 뉴욕에 있을걸……"

 

"큭큭, 너 보니까 좋긴 좋다. 그동안 널 안보고 어떻게 살았나 몰라."

 

"왜 갑자기 먹다남은 피자 참기름에 빠뜨리는 소리?"

 

"큭큭, 역시 깔깔한 내 동생 수련이다."

 

"깔깔? 그거 성미가 나긋나긋하지 못하다는 거야.. 아님.. 마음이 곧고 깨끗하다는 거야?"

 

"「깔깔하다」에 그렇게 좋은 뜻도 있었냐?"

 

"그럼 그렇지. 내가 뭘 바라겠어. 휴, 댁이 말밥 먹고사는 진정 변호사란 말씀이십니까? 비켜, 나 씻고 내려갈게."

 

침대에서 폴짝 뛰어 내려 팔다리를 크게 휘적거리며, 오빠 수영을 살짝 밀치는 애교를 부리고 욕실로 갔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은 집과 가족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너무 기뻤다. 이틀하고도 반을 잤다고 하니, 귀국#3. 한달 후에 출근하게 될 직장도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여유를 갖고 한국을, 동포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세수만 하려다 내친김에 샤워까지 한 나는 물기만 대충 털어 내고, 옷장에서 꺼낸 고등학교 때 입던 학교 체육복을 얼른 뒤집어 쓴 후 일층으로 내려갔다. 벌써 오전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10년 만에 모든 가족이 함께 한 한가로운 일요일 점심식탁은 웃음이 떠날 수가 없는 자리였다. 가족들은 거실로 자리를 옮겨 느긋한 오후를 만끽하며 차를 즐기고 있었다.

 

무뚝뚝함이 묻어나는 경직된 이미지와는 달리 포근포근 따뜻한 음성으로 아버지가 수련에게 물었다.

 

"그래, 병원으로 출근하기 전 한달 동안 뭐하고 지낼 예정이니?"

 

수련은 귀국 전 이미 병원측과 인터뷰를 마치고 특별채용이 결정되어, 다음달 1일부터 서울K대학병원 SICU(surgical intensive care unit 외과중환자실)에서 미국에서 취득한 EMT(Emergency Medical Technician : 응급의학 테크니션) license 와 CCRN(Critical care nursiing : 중환자간호) license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전문간호분야여서 인정받을 수는 없지만- 덕분에 외과중환자전문간호사로 근무 예정이었다. 라이센스는 한국에서 법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병원 측에서 수련의 능력을 인정해 준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출근일 까지 앞으로 한달 여의 자유시간이 수련에게 주어져있는 것이다. 

 

"음,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엄마, 아빠한테 어리광 부리면서 결핍된 애정도 좀 채우고, 헤헤
논문이나 책 들춰보며 출근 준비도 좀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설마 할 일이 없겠어요. 시간이 없지."

 

"그래. 모처럼 여유 좀 갖고 살도 좀 찌우고, 일을 좀 쉬면 좋으련만…… 어쨌든 심신 편안하게 휴식 좀 취하거라."

 

"그래. 편하게 쉬면서 선 좀 봐라. 어머니가 갓 서른 넘긴 널 위해 준비한 '멋진남자 컬렉션'이 스탠바이 중이다."

 

수련은 큰오빠 수영이 교묘하게 빈정빈정 놀리며 선심 쓰듯 공개하는 정보에 경악했다.

 

"엄마 !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리지를 것 없어. 그럼 서른이 넘었는데도 결혼 안 하려고 했어?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해라?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넌 네 나이가 한창 같지? 아무리 내 귀한 딸이라 해도 결혼시장에서 넌 똥값도 못 받아."

 

"그러게 똥값도 못 받는 날 왜 시장에 내 놓고 그래? 연애해서 천문학적 숫자 웃도는 값 받고 알아서 갈 테니. 제발, 신경 꺼 주세요. 소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어마마마."

 

"얘가, 아직도 꿈속에 살고 있어. 넌 언제쯤 현실세계로 돌아올래?"

 

"난 꿈같은 현실이 좋아. 그러니 좀 냅둬요. 내가 집에 온지 6일이 지났어 60일이 지났어? 체 60시간도 안 지났어. 그것도 잠잔 시간 제외하면 2시간도 안됐다 구요. 그런데 이런 자리에서 선이라니…… 가당키나 한 주제야? 엄마는 하나뿐인 딸 끼고 살고 싶지도 않아?"

 

"이것아, 다 널 위해서야. 오늘 당장 선 봐서 만나다가 결혼한다해도 올해는 어려워. 내년엔 너 서른하나야. 스물 하나가 아니고."

 

"난 그냥 내버려두고, 쌍둥이 류씨 형제나 어서 어서 보내세요. 그것만으로도 벅찰 것 아냐. 그리고 난 오빠들 먼저 안가면 절대 결혼 안 할거야."

 

"아이쿠, 지금 서른 둘 먹은 네 오빠들이 급하냐?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아? 여자 서른이면 남자 마흔하고 같은 나이야. 제대로 알아들어?"

아버지 류 판사와 쌍둥이 류씨 형제는 실로 몇 년만에 벌어진 모녀의 설전을 구경하며 키득키득 웃느라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막내가 함께 함으로 심리적으로 완전한 가족애를 느낀 그들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안했고, 즐거움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마흔하고 서른이 같아? 엄마 정말 교육자 맞아? 요즘엔 남녀평등 교육이 사라졌나봐? 마흔에서 열을 빼야 서른이야. 십 년이면 예전에 강산이 변했다지만, 지금은 우주가 변하고 한낱 인간의 의식은 골백번도 더 변해. 나이 때문에 결혼 못 하나? 아무리 나이 많아도 제 인연이면 만나게 되어 있어. 엄마 의식이 그렇게 고리타분, 확고부동, 요지부동이라면 엄마 딸을 믿어봐. 그건 할 수 있지? 그런 인간바자에 딸을 헐값에 내 놓지 말고."

 

"그래. 잘난 내 딸 믿고 꼭 일년만 지켜보마. 일년 후엔 어림도 없어. 알았어?"

 

"휴, 그래. 그렇게 하자고요. 내년엔 또 어떻게 되겠지 뭐."

 

"뭐야?"

 

"흐흐흐……알았어. 내년엔 엄마 말씀에 복종하는 착한 딸 되도록 할게. 됐지?"

솔직히 적극 부인하고 나섰지만 엄마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수련 자신이 독신주의자도 아니었고,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공부 다음으로 욕심나는 꿈이었다. 물론 그 욕심을 위해 공부처럼 계획하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긴 적은 없지만 말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나이가 젊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결혼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었다. 물론 그 경험하는 과정에서 비주류인 연애와 결혼을 계획하기에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점이 이유라면 큰 이유일 것이다. 외롭고 힘겨웠던 외국 생활에서 사람이 그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기에는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첫째는 연애할 시간이 없었고-영어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대학공부를 마치고, 직장에 들어가서는 직장에서 지원해 주는 각종 라이센스와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느라 시간이 항상 부족했었다.- 둘째는 쓸만한 남자가 없었으며-어려서 미국에 온 남자들을 내가 극복하기에는 의식구조와 문화충격이 너무 심했으며, 청년기에 미국에 온 한국 남자들은 적응하고 자리잡느라 여유가 없었다. 또 유학생들은 공부가 끝나면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데, 지금은 귀국했지만 당시 미국에서의 내 커리어를 버리기엔 그동안 내가 들인 공력이 너무 아까웠다.-셋째는 내가 가장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부분이다. 결코 나를 상품으로 인식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간에 난 속된 말로 별로 인기 있는 상품이 못 된다는 것이었다. 공부와 직장생활에 치여 훌쩍 나이가 든 나는 외국인들에게나 모를까 한국 남자들이 선호하는 영계의 경계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남자들이 띠 동갑인 어린 여자와 결혼하듯, 사랑한다면 여자도 열두 살 어린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가며 만나는 타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부딪히며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인연을 만나지 못하고 한국 땅을 밟았고, 현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똥값' 한국의 모든 노처녀를 속칭하는 그리 청결하게 느껴지지 않는 단어. 이 안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에서 보다 기회는 많다. 뉴욕보다 한국 남성이 많기 때문에, 즉 나의 반쪽을 좀 더 많은 기회, 확률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요청을 거절하는 여유를 갖게 했다.  아직은 자유연애를 포기할 시기가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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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장 덥네요. ㅡㅡ;

모두 시원하게 여름 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