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지기 티코를 보내고 울다

까막토끼2005.07.26
조회928

별걸 다 여기다  주절거립니다.^^;;

 

오늘 아침까지 제차는 티코. 각설탕같은 하얀 티코였습니다.

한푼도 없는 형편에 아이하고 직장은 다녀야 살겠기에 4년 전액할부로 그어서 15만원돈 내는데

거의 초임에 보육비로 50만원 들어가는 그때에 그돈은 정말 허리가 휘더군요.

 

엔진이 명을 다했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아 엔진을 두번 바꾸어가며

차소리가 대체  왜 이러냐  차 바꿀때 된거 같으네..소리 무수히 들으며 9년

우리 아기들은  태어나 계속 "우리차=이쁘고 쪼그만 티코" 라고 의식하고 살았죠.

 

무모한 결정을 지켜보셨고 또 그 결정을 엎도록 힘에 겨운 생을 사는 딸을 더 아프게 지켜보시던 중

두번째 엔진 갈았단 소리 들으시고 역시 무시무시한 엔진소리, 닳아버린 등속조인트 소리에

도저히 아버지가 안되겠다  하시고 형제들(언니,여동생2) 불러모아서

저몰래 돈을 추렴하고 공작을 하셨더군요.

팔순을 코앞에 두고도 생계를 위해 농삿일을 놓을 수 없는 분이 말이죠..

 

어제 판매하시는 분이 내일(즉 오늘) 아침에 새차를 인도하마 하시기에

아들들에게 내일 우리 티코와 작별한단다 하였더니

제 아빠 닮아서  정이 깊은 울 큰아들놈이 한없이 슬퍼하는 겁니다.

그래서 청소하고 사진찍고 보내자고 달래어 재웠죠.

근데 정작 제가 잠이 안오는 겁니다.

그 차와 함께 한 9년 동안에 너무나 힘겹고 서러웠다는 게 새삼 기억이 나서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울었습니다.

 

그 티코는 제가 처음 가졌던 차이고

동시에 처음 가졌던, 또 유일한(부끄...) 재산이었습니다.

아기들을 태우고 어디든 가 주었던 친구였었고 

무서운 밤길엔 내 철갑이었고

무력한 나의 빠른 발이었고 

가슴속에서 천불이 날때, 서러움에 가슴이 무거울 때, 외로움에 어깨가 빠질 때

어디든 쏘다니게 해주었던 정말 소중한 친구였단 것을

어려운 세월을 나를 도우며 함께 해준 하나님의 도구였단 것을

자는 아들 옆에서 소리죽여 울며 깨달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직원도 안 나온 세차장에 가서 진공청소를 하고 창문과 본네트만 닦았습니다.

목욕은 시켜서 보내야 하는데 고작 고양이세수만 시켰습니다.

한달동안 야근한다고 차를 전혀 못돌봤더니 본네트에 얼룩이 꼭 검버섯처럼 안 닦입니다.

 

아들하고 섭섭하다고 차하고 이리저리 기념사진 찍었습니다.

자기는 평생 그차를 잊지 못할 거라네요.

 

새차를 판매하신 분은 팔아주마 하시는데 너무 낡아만 보여서

정말로 그 차라도 사야만 하는 분이 있다면 속히 그 형편에서 일어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들놈은 더 큰 새차를 보고도 낡은 티코를 아쉬워합니다.

저도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물건을 향해 이렇게 고맙고 섭섭한 날이 있을 거라곤 제 성격에 생각도 못해보았습니다.

 

고마워, 티코야..

그냥 부스러지지 말고 더 요긴한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

사랑받는 소중한 물건으로 화생하렴.

(애고 눈물이 주책없이 쏟아만집니다. 사람은 잘도 내팽개치던 뇬이..... )

     

 

(뱀다리 : 아들의 부친은 정만 깊습니다. 저는 이놈을 정도 깊은 남자로 키울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