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입니다.... (#2. 부고)

비상을 꿈꾸는가..2005.08.02
조회511

내가 과연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난 도데체 무엇으로 쓰이기 위해 태어났을까?.. 난 뭘 해먹고 살아야지만 행복을 느끼는 가..

 

 

간만에 뒷산에 올랐다. 산이라면 좀 우습기도 하겠지만 운동부족인 나한테는 무조건 산이다. 그래도 올라갔다가 내려오기까지 대략 1시간 반정도나 걸리는 곳이다. 매서운 바람이 옷속으로 스며들었지만 올라가는 동안은 몸의 열기로 후끈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디딜때 마다 계속해서 자문을 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돈.. 명예..? 어떤 것일까?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한다. 어렸을 적 돈이 없어서 유치원을 못 갈 뻔 했었던 적도 있다. 난 가난이 싫었다. 무섭도록 가난 하진 않았지만 없는 살림에 눈치보며 겨우 16색 크레파스를 살 때는 어린마음에 무척이나 상처를 많이 받았었나 보다. 적어도 나의 자식에게 그런 아픔은 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떠는 바람에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저기 멀리 북한산 자락에 걸려서 태양이 춤을 춘다. 저 북한산에서는 태양이 춤추는 것이 보일까..? 저기선 일출이 어떤 모습일지 갑자기 궁금하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 어떤 기대감. 이건 평생의 숙제일 듯하다. 차가운 공기를 한 모금 깊이 들이 내 쉬니 속이 후련해 진다. 하지만 아직 답은 찾지 못했다. 내가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뭘 해야 행복할 지.. 조금 시간이 걸릴 듯 하다.

 

이 산은 올라갈 때 보다 내려올 때가 더 가파르다. 산은 오르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울 아버지가 늘 상 말씀하셨다. 힘들지 않다고 칠렐레 팔렐레 내려오면 다음날 근육통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그래서 조금 더 조심해서 한발자국 한 발자국 내려가고 있다. 내려가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젠장.. 올라섰을 때의 감동은 이미 물러간 것 같다.. 벌써 그것조차 과거가 되어 버렸나보다. 서글프다. 내가 내 딛었던 한 발자국이 벌써 과거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요즘 시간이 너무 아쉬운 탓이다.

 

아침부터의 험난한 산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먹더니 철들었다고 연신 싱글벙글이시다. 음.. 효도하는 거.. 참 간단하다.

 

 

" 효민아~ 희영이 한테 전화 왔었는데? "

 

" 엉? 뭐.. 핸드폰으로? "

 

" 너 핸드폰 안된다고.. 집으로 전화 왔더라구 "

 

" 아.. 핸드폰 안 가져갔었거든.. 근데.. 아침부터.. 집까지 왠일? "

 

" 급한 일인거 같더라. 얼른 전화 넣어줘.. "

 

" 웅.. "

 

 

 

아침에 출근해서 정신 없을텐데.. 집에까지 전화 오다니.. 보통 건수가 아닌가부다. 헉.. 부재중 전화 15통.. 무슨 일이지..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 엥...? "

 

 

 

회의 중인가..? 다시다시..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

 

" 뭐야.. 흠.. "

 

" 효민아 밥 먹어라~ "

 

" 네~~ "

 

 

궁금증을 우선은 뒤로 하고 식탁으로 향하려는데 벨이 울린다.

 

 

" 엥..? 척이네.. "

 

" 효민!!!!!! 전화를 왜케 안받어? "

 

" 아니.. 산에 댕겨 오느라.. 아침부터 넌 또 왠일이삼..?"

 

" 효민아.. 어떻게.. "

 

" 에..? 왜 울어?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울고 난리야.. 재섭게..!!"

 

" 효민아.. 여기 병원.. "

 

" 에..? 왜..... "

 

" 희영이 어머니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

 

".................................................. "

 

" 효민아.. "

 

" ............ "

 

" 짐 민영이랑 나랑 둘이 우선 있는데.. "

 

" 내가 다시 전화 할께... "

 

 

 

주저 앉아 버렸다.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어떤 것도 잠시 동안은 멈춰있는 듯 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척에게 전화를 했다.

 

 

 

" 나야.... 거기 어디병원이야? "

 

" 웅.. 여기 일산병원.... "

 

" 곧 갈께... "

 

 

내가 무얼 입었는지 알 겨를도 없이 우선 택시비를 챙겨들고 뛰쳐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정말 아무생각도..

 

희영이의 어머님은 말을 못하시는 분이다. 희영이가 7살 때쯤 두살정도 어린 남자 동생이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는 바람에 말을 잃었다고 했다. 가끔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놀 때는 그저 말없이 따뜻하게 웃어주시며 온갖 맛있는 간식을 내어 주시던 어머니..

철이 조금씩 들면서 부터 우린 그 녀석의 집에 종종 들렀었다. 혼자계신 어머니가 적적하실 까도.. 염려 했고 더욱이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칼국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희영이는 이제.. 고아가 되어 버렸다. 희영이의 아버지는 남동생이 태어 날 쯤 지병으로 돌아가셨댔다. 말 못하는 어머니와 살면서 단 한번도 힘들다고 소리치지 않았던 친구 희영이.. 우리 희영이가 이제.. 고아가 됐다..

 

부랴부랴 찾아간 빈소에는 힘없이 주저 앉아 있는 희영이와 이모 몇분이 계셨다. 오늘따라 그녀가 한 없이 외소해 보인다.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한 참을 멍하니 서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넋을 잃은 눈동자가 점점 나에게 향했다. 희영이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짓는다. 힘없는 그녀의 미소에 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 왔어...? "

 

" ...어... "

 

" 엄마한테 인사해.. 효민아.. "

 

" ...... "

 

 

내가 울면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주책없이 흐르고 있었다.

 

 

" 울지 말고.. 얼른 올라와서 인사해..응..? "

 

 

희영이의 미소가 너무나 슬프다. 사실 너무 흔들려서 잘 보이진 않았다.

 

 

" 왔네..? "

 

" 어..? 어.... "

 

 

척이가 와서 인사를 한다. 이 녀석도 꼴이 말이 아니다. 벌써부터 식당에서 일을 돕고 있던 모양이었다.

 

 

" 올라가서 인사해.. "

 

" 응.. "

 

 

척이가 일러준 대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했다. 어머니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하는데.. 좋은 곳에 가시라고.. 하늘에서 우리 희영이 잘 부탁 드린다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넘어오는 눈물을 삼키느라...

 

 

" 희영아.. "

 

" 응..  아침 먹었어? 얼른 가서 밥좀 먹어.. "

 

 

나쁜년.. 나 부터 챙긴다. 항상 밝은 희영이.. 남 모를 아픔이 많아서 다른 사람의 슬픔부터 챙기는 그런 녀석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고 있는 내게 오히려 위로를 해 주고 있는 녀석.. 난 이럴땐 정말 희영이가 밉다.

 

 

" 효민아 밥먹으러 가자.. "

 

 

척이가 주책없이 흐느끼고 있는 나를 잡아 끈다. 빈소에서 나와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어가서는 또 주저 앉아버렸다. 이건.. 현실이다.

 

 

" 어머니... "

 

" 울지마... 우리가 울면 안되.. 울지 말고.. 응? "

 

" 재희야.. 우리 희영이.. 저 독한년.. 독한년.. 나쁜년.. 독한년.. "

 

" 울지마.. "

 

" 독한년.. 독한년.. 천하의 독한년.. 독...한.. 년.. 불쌍한.. 년.. "

 

 

한참을 재희의 가슴에 안겨서 울부짖고 나서야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재희의 말대로 붙잡고 우는게 아니라 더 씩씩하게 일을 도와주는게 도리였다. 기운을 차리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참.. 쓸쓸해 보였다.

 

 

" 나 왔어.. "

 

" 응.. 왔어? "

 

 

미녀는 벌써부터 손님들 오시면 대접할 전이며 반찬들을 조그만 그릇에 담고 있었다.

 

 

" 손님은 좀 왔어..? "

 

 

이 녀석.. 그렁거리는 눈으로 입술을 꼭 깨문채 고개를 젖는다.

 

 

" 내가 할께.. "

 

" 아니야.. 밥은 먹었어? "

 

".. 아니.. 넌.. 뭐좀 먹었어? "

 

" 난 재희랑 좀 먹었어.. 얼른 앉아.. 밥 먹어야지.. "

 

" 생각 없어.. "

 

" 지금 먹어둬.. 우선은 먹고 일해야 하니까.. "

 

" ..... 그래.. "

 

" 민영아 다른 친구들 한테는 연락 했어? "

 

" 응.. 아까.. 희영이 회사 사람들이랑 애들이랑 이따 저녁때나 올 것 같아.. "

 

 

분주하게 준비한 상차림이 무색하게 빈소를 찾는 이는 거의 없었다. 저녁이나 되서야 희영이의 회사 사람들 몇몇과 친구들이 왔다. 검은색 옷들을 차려입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다시금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났다. 말을 잃은 어머니는 친구분도 별로 없으셨던 듯 했다. 그나마 이모부님들의 친구분들과 친척들이 자리를 매워 주셨다. 늦게 도착한 얼큰이는 상가집은 원래 시끄러워야 한다며 연신 떠들어 댔다. 그래도.. 남자가 있으니 든든하기는 했다. 신년회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뭉칠 수 있었다.

 

 

" 야.. 너네가 고생이 많다. 이제부턴 우리가 할께 좀 쉬어.. "

 

 

얼큰이가 데려온 남정내들이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는 직접 음식들을 날랐다. 어른들이 남자들이 하면 꼴사납다고 해도 연신 히죽거리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 희영이가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빈소에 앉아서 오시는 분들과 맞절을 하는 희영이.. 독한년.. 절대 울지 않았다.

 

 

" 희영아.. 밥 좀 먹어.. 3일장 치루려면 기운이 있어야지.. "

 

" .. 그래.. "

 

 

육계장에 밥 한 그릇을 쓱쓱 말아 먹고는 아무말도 없이 일어서는 희영이에게 어떤 위로도 해 줄 수 없는 내가 한심했다. 심장이 조여왔다. 그녀역시.. 우리 역시.. 어느 누구도 희영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3일장 내내 우린 각자의 일을 내팽겨친 채 빈소를 지켰다. 날이 궂은 날엔 가끔씩 희영이 집에 없는 날에도 어머니를 찾아가 칼국수를 말아달라며 소리치던 우리는 앞으로는 절대 칼국수를 먹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칼국수..

 

어머니는 화장을 했다. 화장하는데는 무려 1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 동안 우리는 아무말도 없었다. 희영이는 계속해서 먼 산만 보며 중얼 거렸다.

 

 

" 잘.. 가.. 엄마.. 잘가.. 잘가.. "

 

 

한 줌 재가 되어 버린 어머니의 육신을 허공에다 뿌리면서 희영이가 눈물을 흘렸다.

 

 

" 엄마.. 자꾸 내 손에 묻으면 어떻게.. 나 놓고 편히 가서 쉬어.. 내 걱정 하지 말고.. 편히 가서 아빠랑.. 동생이랑 편히 쉬어.. 자꾸.. 자꾸만 내 손에 묻으면 어떻게.. 그럼.. 어떻게.. "

 

 

재는 날아가지 않고 바람에 의해 희영이의 주위만 맴돌았다.

 

 

" 엄마.. 이제.. 가.. 나 걱정하지마.. 잘 살께.. 사랑해.. 엄마.. "

 

 

회오리 처럼.. 희영의 상복을 휘휘..돌더니 홀연 듯 사라지는 어머니.. 자기 걱정 말고 부디 편하게 쉬라고 옷이며 장갑이며 툭툭 털어버렸다. 그렇게 툭툭 털어내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희영이.. 그 동안에 알게 모르게 어머니가 자기의 짐이 되서 털어 내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희영이.. 우린 전혀 알지 못했었다. 지금 그 고백을 하면서 엄마를 잃은 강한척으로 무장했던 희영이가 흐느끼고 있다.

 

우리는 그제서야 희영의 아픔을 느꼈다. 친구라는 것들이.. 그제서야 희영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아파했는지 알았다. 아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를 물고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하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하며 자기를 더 강하게 만들었을 희영이가 안쓰러웠다.

 

27살.. 희망과 새로운 꿈을 안고 출발한 우리는 잠시 멈췄다. 어머니의 죽음은 설레임으로 가득찬 미래가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난.. 불현 듯.. 내일이.. 또 내일이.. 두려워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