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남편이 대담을 했습니다...

아가재우고2005.08.03
조회2,130

결혼한지 이제 2년 반이 됩니다.

 

신랑은 시누 많은 집의 외동아들.

 

한 성질하고, 늘 야심만 크고, 큰소리치기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뭐 연애할때는 그게 남자다움으로 보였었지만요.

 

결혼해서 직장 다니다가 아가낳고 그렇게 살았는데, 얼마전 드디어 폭발해버렸습니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고시 공부에 늘 밤새 오락하고 늘어져있으면서 가사나 육아는 한번도 도와주지 않았던 남편,

 

열심히 일 할 생각보다는 '인생 한방이다'라며 저축할 줄 모르고 성실히 살아갈 줄 모르는 남편,

 

화나면 물건 집어던지고, 소리지르며 욕하고 내 집이니 나가라는 남편,

 

아가는 자신이 데려갈테니 대신 위자료는 한푼도 줄 수 없다는 남편,

 

그리고 생활비를 일부 대신다는 이유로 늘 기세등등하시며 며늘 우습게 아시고, 외손주와 딸들만 중요해서 친손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나몰라라 하는 시부모님,

 

게다가 소소한 일들까지 복합되어 저는 드디어 이혼을 결심했던거죠.

 

이혼을 결심하고 이주일 정도 더 고민하고 친정어머니께 알렸습니다.

 

친정어머니 저 산 얘기를 들으시더니 무섭게 화를 내시더군요.

 

뭐 모자라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느냐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뒤에서는 제 아가와 저 때문에 무척 눈물 흘리셨지만 제 앞에서는 헤어지라고 하셨습니다.

 

제 남은 인생이 이제 절반인데 그렇게 살아가기엔 당신 딸이 너무 불쌍하다고요.

 

그렇게 엄마와 얘기하고,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 친정엄마와 얘기해본 뒤 결정하겠다더군요.

 

예전에 트러불이 있을 때 친정엄마가 아시고 저를 꾸짓으신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역할을 해주시려나 하고 기대했었나봅니다.

 

친정어머니와 남편이 만나 저희 엄마는 그간 하고픈 얘기를 다 하셨답니다.

 

친정엄마 - 자네와 자네의 가족들은 OO이를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은 하고 있나? 하고 있다면 그런 식으로 그애를 고립시키고 소외시킬 수 있는가?

 

남편 - 그건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다니요! 저희 부모님들이 OO이와 손녀에게 관심을 안보이시는 것이 아니라 OO이 편하라고 발걸음을 안하시는 겁니다.

 

친정엄마 - 편하게 해주는 것과 방치는 다르지 않은가? 아이를 가졌어도, 아이를 낳아도 발걸음 한번 안하고 들여다보지 않는게 배려인가? 그러면서 생일이나 경조사는 왜 달달이 챙기라고 하는가?

 

남편 - ...

 

친정엄마 - 그리고 자네는 공부를 1년으로 끝낸다고 하지 않았나? 왜 공부가 이렇게 길어지고 있으며 그 힘든 공부를 그렇게 태만한 자세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공부를 핑계로 OO이를 식모나 보모취급 하려고 하는가?

 

남편 - 공부가 길어지는 것은 죄송합니다만 식모취급 한 적 없습니다. 도리어 OO이가 공주병이 심해 제가 힘이 듭니다.

 

엄마 - 온갖 궂은 일 다하고 사는 공주 봤나? 자네가 OO이를 공주 대접 한 적 있는가? 살림 못하는 것이야 나도 알지만 시집 오기 전에는 집안일을 안해보던 아이이고 OO이가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공주병이 심하다고 하는데 OO이가 하지 않은일은 뭔가?

 

남편 - ...

 

엄마 - 그리고 왜 싸울때마다 소리지르고 물건 던지고 욕하고 그러는가? 배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처신을 그렇게 하는가? 싸우면 내집이니 나가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몹시 화가났네. 그나마 친정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없었다면 그 새벽에 내몰려서 OO이가 갈데도 없이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남편 - 그건 제가 너무나 화가나서 그랬지만 OO이도 한 성질 합니다.

 

엄마 - 세상에 성질 없는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리고 OO이가 처음부터 그랬나? 자네가 그애를 막 대하기 전에도 OO이가 그랬었나?

 

남편 - ...

 

엄마 - 난 이 결혼에 처음부터 반대였네. 자네는 시골에서 좀 산다고 자랑하는데 그래봐야 서울의 집 한채값밖에 더 되는가? 또 시댁이 산다고 해 준 것이 무엇인가? 생활비야 자네가 못 버니 보태주는 것이고 그것으로 OO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 받게 하지 않았는가? OO이가 자네보다 배운게 적은가? 아니면 할일을 못했나? 아기 갖기전까지 직장 다녀 보태고 이후에도 알바하며 보태고 있지 않은가?

자네는 큰 유산이라도 받을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딸이 몇인데 자네에게 돌아올 재산이 있을 것이며,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시부모님이 정정하신데 언제 받을 지 아는가? OO이 젊음 다 간 뒤 일이억이 대수인가?

 

남편 - 장모님이 헤어지시라면 헤어지겠습니다.

 

엄마 - 자네가 변하지 않는다면 헤어지라고 말 할 수 밖에 없네. 싸움할 때 큰소리내지말고, 욕하지 말고, 물건 던지거나 나가라는 소리 절대 없게 하며 틈날때마다 집안일 돕고 많이 대화하며 살게. 나는 내 딸 아이가 이혼녀로 살길 원하지 않지만 이 결혼을 유지하는 것으로 내 딸이 불행하다면 어미로써 두고 볼 수 만은 없는일이 아니겠는가?

 

남편 - ...

 

그리고 친정어머니는 그간 제가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남편에게 모두 하셨고 남편은 고치겠다고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은 제게 미안하다고, 아직 많이 사랑하고 있으며 자신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3개월 정도 지났는데, 남편은 많이 변했습니다.

 

나중에 일이억은 물려받을 거라고, 고시 합격만 하면 돈은 문제 아니라고, 빚내서라도 여유롭게 살자던 철부지가 저랑 같이 저축하는 맛도 알고,

 

화가 나도 욕하거나 큰소리치거나 물건 던지거나 하지 않고 대화하고요.

 

물론 아직까지 집안일 안돕는 건 여전하지만 저녁에는 안마도 해주고, 또 무엇보다 공부하면서 틈틈히 시아버지 일도 도와서 수입도 조금 생겼어요.

 

그래도 넘어야 할 산은 많지요.

 

아이도 크는데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살 길은 빠듯하고,이제 남편 나이가 36살인데 시험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그래도 남편이 경비라도 서며 가족들 먹여살리겠답니다.

 

결혼 2년 반, 정말 서러웠답니다.

 

새벽에 2시간 거리 출근하면서 집에서 공부한다는 남편 도시락까지 싸놓고 나갔던 것도 힘들었고,

 

회사 근처에 재래시장이 싸다는 이유로 반찬거리 사다가 짊어지고 그 거리를 달려온 일이며,

 

임신해서 퉁퉁 부어올라 출근하고 보건소 쫓아다니던 일 - 저는 혼자 병원가고 혼자 부어오른 팔다리 주무르며 자고, 먹고 싶은 거 참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답니다 ㅎㅎ

 

아기 낳고 늘 혼자 아기보며 들쳐업고 집안일 하고 알바하던 일,

 

안부 전화만 드리면 초등학생 꾸지람 듣듯이 시부모님께 남편 그렇게 놔둔다고 야단맞던 일,

 

돈 없어 옷 한벌 못사고 언니 버린 옷 주워입고, 남 버린 장난감 주워오며 라면으로 끼니 떄우던 일 - 100만원에 알바해도 그 정도일까 하시겠지만 남편 공부한다고 쓴 돈, 경조사 치르는 일, 가끔은 끊기는 생활비에 정말 힘들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좀 숨 쉴만 하네요.

 

남편이 다행히 저희 엄마에게도 뭔가 하려고 노력하고요, 2년 반 동안 안부 전화 한통 없던 사람이었는데요..

 

엄마맘은 아프셨겠지만 전 정말 감사하고 감사했답니다.

 

친정엄마가 있음이 감사했고, 저도 울 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죠.

 

아가 자는 틈에 수다떨다 갑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