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도로 중앙선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사는 것 같습니다. ========================== CF가 사람 망친다 =========================== ?? -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면 날갯짓 하는 법을 잊어버려. 기억 - 난 그런 적 없어요. ?? - 내가 볼 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걸. 기억 - 다들 날 무서워해요. 그런데 내가 왜 웅크려요? ?? - 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다고 할까? 고슴도치...... 흐릿한 지난 기억의 한 파편이 미끄러지듯 손 안을 빠져나가며 난 무거운 눈을 떴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아있으니 어제의 떠들썩했던 축제가 방금 꾼 꿈의 일부분인 것처럼 눈앞에 어른어른 거렸다. 나도.... 그 무대 위에 있고 싶었다. 그건 굉장히 뜬금없는 목표였다. 멋있어 보인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동경(憧憬). 평생 인연도 없을 것 같던 연극부에 들어간 것만 해도 당장 구속되어 마땅할 이 상황에서 한술을 더 떠도 너무 크게 떴다. 하지만 그런 충동적인 욕구가 사람을 움직이는 법. 난 그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습실로 직행했다. ‘끼이이이....’ 여전히 묵직한 느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땐 넓은 연습실 바닥에 축제의 잔해들만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월요일이면 연습이 있는 날인데..... 왜 사람이 아무도 없지?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마냥 혼자 앉아있는 것도 좀 뭐하다는 생각에 난 주변을 정리하기로 했다. 소품들은 소품끼리 한쪽으로 몰아놓고 커튼 같은 것들은 둘둘 말아 놓고.. 하지만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서도 아직 시간은 좀 이른 듯 했다. 어디보자... 뭔가 할만한 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소품을 만드는 데 쓰던 반짝반짝 거리는 포장지였다. 뭐건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이걸 어디다 쓸까?’ 아니면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같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게 공대생의 천성인지라 난 포장지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재질 상 종이접기는 무린 것 같고... 바람개비! 브라보. 난 포장지 조각 중 적당한 것을 오려 핀에 꽂은 뒤 볼펜 뒤에 박아 바람개비 하나를 만들었다. 후우~ =파라라라락. 후우~ =파라라락 입김을 불면 작게 떨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바람개비. 그 작고 영롱한 소용돌이 속에서 난 어린 날의 동심을 찾고 말았다. 기억 - 슈슈슈슈~. 돌아라~. 그래. 나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혼자 바람개비 만들어서 들고 뛰어다녔다. .... 어쩌라고. 필이 꽂히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끼익.’ 바로 그 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 모습을 들키면 구속 내지 사회적으로 매장이다. 그제야 현실의 벽을 깨달은 난 재빨리 바람개비를 등 뒤로 숨기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민아 - 어머나? 기억 - 하....하이?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민아였다. 그녀는 내 어색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해 보이곤 연습실을 휘 둘러보았다. 아 씨.... 인사가 ‘하이’가 뭐냐 ‘하이’가.... 민아 - 혼자 뭐하고 있었어요? 기억 - 아, 뭐... 여기.. 정리 좀 하고... 그러고...기다리고 있었죠. 민아 - 에.... 보통 연극 끝난 다음날은 사람들이 피곤해서 안 모여요. 기억 - 아...그렇군요. 그렇게 대화가 끊기고 나자 뻘쭘한 침묵이 5초정도 계속되었다. 아....어떡하나... 무슨 말이라도... 기억 - 그, 그럼 그쪽은 뭐 하러 오셨어요? 아, 제길. 그쪽이 뭐냐 그쪽이... 그리고 무슨 말투가 이래? 아 나 이거 참 애가 개념이 없어요! 민아 - 아, 소품 사이에 제 신발이 딸려가서 찾으러 왔어요. 혹시 까만색 요렇게 네모난 구두 못 봤어요? 기억 - 아... 구두들은 저쪽에 치워놨는데요. 난 몸을 돌려 내 등 뒤쪽에 있는 구두 더미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바람개비가 그 자태를 나타내고 말았다. 민아 - 응? 뒤에 그건 뭐예요? 기억 - 에,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상황을 깨달은 난 수업시간에 쪽지 돌리다 걸린 학생처럼 정색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뭔지는 못 본건가? 아니면 ‘그 바람개비는 뭐예요?’를 함축한 말인가? 그럼 뭐라고 대답하지? ‘원래부터 여기 있던 거예요.’ 오케이, 그거야.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가 이상한 놈은 안 되잖아. ..... 잠깐, 생각해보니 볼펜에 내 이름이 써있어~!! 아니지, 그런 건 자세히 안 보면 안 보이니까 그녀 손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별 자질구레한 일로 걸로 죽도록 갈등한 다음에야 난 주춤주춤 그녀에게 바람개비를 보여주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잡아 빼기엔 오히려 더 의심만 받을 것 같고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도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민아 - 어머나.... 바람개비네요? 기억 - 그니까... 그게 또...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뭐랄까.... 필이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사 아무튼 뭐 그런..... 윤회사상을 형상화하고자... 내가 우물우물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 그녀는 바람개비에 입김을 불어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듯 했다. 민아 - ...... 설마 나처럼 들고 뛰어다니거나 하진 않겠지.... 라는 황당한 상상을 멈추게 하는 깊은 그리움이 담긴 눈동자. 약간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엔 표면에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호수가 비치는 듯 했다. 다음 순간, 그녀가 ‘반짝’하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민아 - 저.... 이거 나 주지 않을래요? 너무나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난 차마 ‘왜요?’ 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한 눈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을 뿐. 만약 그 때 그녀가 아니라 거울이 앞에 있었다면 내발로 정신병원을 향해 갔을 지도 모르겠다. 민아 - 고마워요. 정말 기분 좋은 웃음. 찡긋 짓는 눈웃음이 마치 눈을 감은 듯 하면서도 미소처럼 은은한 느낌이 드는....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 때의 기분을 말로 표현하자면 좀 어렵다. 상공 3000m에서 마하 3.98 로 날다가 ‘나 지금 떨고 있니?’를 외치며 2020원더키디 아동용 책가방을 메고 뛰어내려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아 - 맞다. 혹시 종이학 접을 줄 알아요? 기억 - .....예. 민아 - 혹시 괜찮으면... 좀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주말에 꼭 써먹어야하는데... 그림으로는 대체 이해가 안 가서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님. 그녀는 곧 가방에서 준비된 색종이들을 꺼냈고 난 순수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억지로 비틀어가며 학 접기의 오의를 더듬어갔다. 그러니까... 우선.... 마주 접기를 했다 펴고 대각선 접기를 했다 편 다음 양쪽 모서리가 대각선에 닿도록 접었다 펴기를 8방향에 대해 모두 하고 중앙을 중심으로 잘 정돈해서 오므리면 학 접기의 기본틀 완성!! (이 말만 가지고 난생처음 학접기를 성공시킨 사람은 신(神)의 한 줄을 접을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민아 - .....우와. 기억 - 이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최첨단 학 접기입니다. 민아 - 아아.... 이 다음은요? 기억 - 마주 보는 두 쪽을 위로 올려서 머리랑 꼬리를 만들고 날개를 내려주면 완성이죠. 민아 - 어머나! 다 만들었네? 기억 - 축하합니다. 짝짝짝.. 어색하기 그지없는 내 반응에도 그녀는 함께 손뼉을 쳐가며 기뻐했다. 완성된 학을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싱글벙글 웃던 그녀는 대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민아 - 아, 미안해요, 이런 일로 시간 뺏어서. 기억 - 아, 아니에요. 저한테도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완전 국어책 아니면 80년대 소설이다. 왜 이렇게 밖에 말을 못하니. ‘괜찮아요, 이제부턴 제가 민아씨 시간을 뺏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멋있게 받아서 이어가면 얼마나 좋아? 대체 알면서 왜 못하는 거야? 내가 이런 저런 후회로 마음속의 날 구타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조금 찡그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맞아... 지금 대화가 끊긴 상태지. 기억 - 아, 저기... 그러니까..... 아무 말이건 해야 하는데.... 또 무슨 말을 하지? 거북이는 접을 줄 아세요? 아냐, 캥거루 접기? 좀 더 임펙트가 강한 1:1500스케일 5단 합체 로봇 접기 같은 걸 해야 하나? 기억 - ....... 집에 어떻게 가세요? 민아 - 요 앞에서 버스 탄 다음... 전철타고 가요. 기억 - 아... 저도 전철역까지 가는데.... 지금 가실 건가요? 민아 - 좀 더 계시게요? 기억 - 아, 아뇨, 이제 가야죠. 뭔가 대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스피드퀴즈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말에 재깍재깍 대답을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난 누가 봐도 어색했을 것이다. 기억 - 가, 가죠? 결론은 그거였다.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 안. 사람이 많았던 탓에 자리는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말없이 서 있다가 어느새 두어 정거장을 남겨놓고 있을 때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민아 - 원래 잘 안 웃는 편이세요? 기억 - 네네넷? 아....네. 민아 - ..... 저랑 있는 게 불편하세요? 기억 - 아, 아뇨! 뚱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몹시 쑥스러워진 난 고개를 피했다. 민아 - ...... 그럼 다행이고요. 그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창문 밖을 주시했다. 안 좋아... 분위기 안 좋아.... ‘끼이이익!’ 민아 - 꺗? 순간, 내리막에서 신호에 걸린 버스가 멈춰서면서 F = - ma 의 관성력을 받은 그녀가 uN의 마찰력과 손잡이의 장력 T를 이용해 무게중심을 안정시키고 있던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민아 - 미, 미안해요!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내 몸을 밀어내며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하지만 이내 뒤에서 밀려온 제 2의 물결에 부딪혀 다시 내 품 속에 폭 안겨왔다. 민아 - 어, 엄맛?! 옷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 얼굴이 화끈거린다..... 빨갛게 변해버렸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려....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기억 - 아저씨!! 내려주세요!! 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오늘의 속담 : 덩굴 째 들어온 호박에 프리킥한다.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13화> 바람개비
오늘 도로 중앙선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사는 것 같습니다.
========================== CF가 사람 망친다 ===========================
??
- 그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있으면
날갯짓 하는 법을 잊어버려.
기억 - 난 그런 적 없어요.
?? - 내가 볼 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걸.
기억
- 다들 날 무서워해요.
그런데 내가 왜 웅크려요?
?? - 음.... 말하자면... 고슴도치 같다고 할까?
고슴도치......
흐릿한 지난 기억의 한 파편이
미끄러지듯 손 안을 빠져나가며
난 무거운 눈을 떴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아있으니
어제의 떠들썩했던 축제가
방금 꾼 꿈의 일부분인 것처럼
눈앞에 어른어른 거렸다.
나도.... 그 무대 위에 있고 싶었다.
그건 굉장히 뜬금없는 목표였다.
멋있어 보인다거나, 부럽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동경(憧憬).
평생 인연도 없을 것 같던
연극부에 들어간 것만 해도
당장 구속되어 마땅할 이 상황에서
한술을 더 떠도 너무 크게 떴다.
하지만 그런 충동적인 욕구가
사람을 움직이는 법.
난 그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연습실로 직행했다.
‘끼이이이....’
여전히 묵직한 느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을 땐
넓은 연습실 바닥에 축제의 잔해들만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월요일이면 연습이 있는 날인데.....
왜 사람이 아무도 없지?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마냥 혼자 앉아있는 것도 좀 뭐하다는 생각에
난 주변을 정리하기로 했다.
소품들은 소품끼리 한쪽으로 몰아놓고
커튼 같은 것들은 둘둘 말아 놓고..
하지만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서도 아직 시간은 좀 이른 듯 했다.
어디보자... 뭔가 할만한 게....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소품을 만드는 데 쓰던
반짝반짝 거리는 포장지였다.
뭐건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이걸 어디다 쓸까?’ 아니면
‘이건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같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게 공대생의 천성인지라
난 포장지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재질 상 종이접기는 무린 것 같고...
바람개비!
브라보.
난 포장지 조각 중 적당한 것을 오려 핀에 꽂은 뒤
볼펜 뒤에 박아 바람개비 하나를 만들었다.
후우~
=파라라라락.
후우~
=파라라락
입김을 불면
작게 떨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바람개비.
그 작고 영롱한 소용돌이 속에서
난 어린 날의 동심을 찾고 말았다.
기억 - 슈슈슈슈~. 돌아라~.
그래.
나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혼자 바람개비 만들어서 들고 뛰어다녔다.
.... 어쩌라고.
필이 꽂히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끼익.’
바로 그 때.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 모습을 들키면 구속 내지 사회적으로 매장이다.
그제야 현실의 벽을 깨달은 난
재빨리 바람개비를 등 뒤로 숨기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민아 - 어머나?
기억 - 하....하이?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민아였다.
그녀는 내 어색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해 보이곤
연습실을 휘 둘러보았다.
아 씨.... 인사가 ‘하이’가 뭐냐 ‘하이’가....
민아 - 혼자 뭐하고 있었어요?
기억 - 아, 뭐... 여기.. 정리 좀 하고... 그러고...기다리고 있었죠.
민아
- 에.... 보통 연극 끝난 다음날은
사람들이 피곤해서 안 모여요.
기억 - 아...그렇군요.
그렇게 대화가 끊기고 나자
뻘쭘한 침묵이 5초정도 계속되었다.
아....어떡하나... 무슨 말이라도...
기억 - 그, 그럼 그쪽은 뭐 하러 오셨어요?
아, 제길. 그쪽이 뭐냐 그쪽이...
그리고 무슨 말투가 이래?
아 나 이거 참 애가 개념이 없어요!
민아
- 아, 소품 사이에 제 신발이 딸려가서 찾으러 왔어요.
혹시 까만색 요렇게 네모난 구두 못 봤어요?
기억 - 아... 구두들은 저쪽에 치워놨는데요.
난 몸을 돌려
내 등 뒤쪽에 있는 구두 더미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 숨기고 있던
바람개비가 그 자태를 나타내고 말았다.
민아 - 응? 뒤에 그건 뭐예요?
기억 - 에,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상황을 깨달은 난
수업시간에 쪽지 돌리다 걸린 학생처럼
정색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직 뭔지는 못 본건가?
아니면 ‘그 바람개비는 뭐예요?’를 함축한 말인가?
그럼 뭐라고 대답하지?
‘원래부터 여기 있던 거예요.’
오케이, 그거야.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가 이상한 놈은 안 되잖아.
..... 잠깐, 생각해보니 볼펜에 내 이름이 써있어~!!
아니지, 그런 건 자세히 안 보면 안 보이니까
그녀 손에 넘어가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아무튼... 별 자질구레한 일로 걸로
죽도록 갈등한 다음에야
난 주춤주춤 그녀에게 바람개비를 보여주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잡아 빼기엔
오히려 더 의심만 받을 것 같고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도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민아 - 어머나.... 바람개비네요?
기억
- 그니까... 그게 또...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뭐랄까.... 필이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사 아무튼 뭐 그런.....
윤회사상을 형상화하고자...
내가 우물우물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
그녀는 바람개비에 입김을 불어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듯 했다.
민아 - ......
설마 나처럼 들고 뛰어다니거나 하진 않겠지....
라는 황당한 상상을 멈추게 하는
깊은 그리움이 담긴 눈동자.
약간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엔
표면에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호수가 비치는 듯 했다.
다음 순간, 그녀가 ‘반짝’하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민아 - 저.... 이거 나 주지 않을래요?
너무나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난 차마 ‘왜요?’ 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한 눈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을 뿐.
만약 그 때 그녀가 아니라 거울이 앞에 있었다면
내발로 정신병원을 향해 갔을 지도 모르겠다.
민아 - 고마워요.
정말 기분 좋은 웃음.
찡긋 짓는 눈웃음이 마치 눈을 감은 듯 하면서도
미소처럼 은은한 느낌이 드는....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 때의 기분을 말로 표현하자면 좀 어렵다.
상공 3000m에서 마하 3.98 로 날다가
‘나 지금 떨고 있니?’를 외치며
2020원더키디 아동용 책가방을 메고 뛰어내려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아 - 맞다. 혹시 종이학 접을 줄 알아요?
기억 - .....예.
민아
- 혹시 괜찮으면... 좀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주말에 꼭 써먹어야하는데...
그림으로는 대체 이해가 안 가서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님.
그녀는 곧 가방에서 준비된 색종이들을 꺼냈고
난 순수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억지로 비틀어가며
학 접기의 오의를 더듬어갔다.
그러니까... 우선.... 마주 접기를 했다 펴고
대각선 접기를 했다 편 다음
양쪽 모서리가 대각선에 닿도록 접었다 펴기를 8방향에 대해 모두 하고
중앙을 중심으로 잘 정돈해서 오므리면
학 접기의 기본틀 완성!!
(이 말만 가지고 난생처음 학접기를 성공시킨 사람은
신(神)의 한 줄을 접을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민아 - .....우와.
기억 - 이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최첨단 학 접기입니다.
민아 - 아아.... 이 다음은요?
기억
- 마주 보는 두 쪽을 위로 올려서
머리랑 꼬리를 만들고
날개를 내려주면 완성이죠.
민아 - 어머나! 다 만들었네?
기억 - 축하합니다. 짝짝짝..
어색하기 그지없는 내 반응에도
그녀는 함께 손뼉을 쳐가며 기뻐했다.
완성된 학을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싱글벙글 웃던 그녀는
대뜸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민아 - 아, 미안해요, 이런 일로 시간 뺏어서.
기억 - 아, 아니에요. 저한테도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완전 국어책 아니면 80년대 소설이다.
왜 이렇게 밖에 말을 못하니.
‘괜찮아요, 이제부턴 제가 민아씨 시간을 뺏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멋있게 받아서 이어가면 얼마나 좋아?
대체 알면서 왜 못하는 거야?
내가 이런 저런 후회로 마음속의 날 구타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조금 찡그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어색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맞아... 지금 대화가 끊긴 상태지.
기억 - 아, 저기... 그러니까.....
아무 말이건 해야 하는데....
또 무슨 말을 하지?
거북이는 접을 줄 아세요?
아냐, 캥거루 접기?
좀 더 임펙트가 강한
1:1500스케일 5단 합체 로봇 접기 같은 걸 해야 하나?
기억 - ....... 집에 어떻게 가세요?
민아 - 요 앞에서 버스 탄 다음... 전철타고 가요.
기억 - 아... 저도 전철역까지 가는데.... 지금 가실 건가요?
민아 - 좀 더 계시게요?
기억 - 아, 아뇨, 이제 가야죠.
뭔가 대화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스피드퀴즈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말에 재깍재깍 대답을 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난 누가 봐도 어색했을 것이다.
기억 - 가, 가죠?
결론은 그거였다.
전철역까지 가는 버스 안.
사람이 많았던 탓에 자리는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말없이 서 있다가
어느새 두어 정거장을 남겨놓고 있을 때
그녀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민아 - 원래 잘 안 웃는 편이세요?
기억 - 네네넷? 아....네.
민아 - ..... 저랑 있는 게 불편하세요?
기억 - 아, 아뇨!
뚱한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몹시 쑥스러워진 난 고개를 피했다.
민아 - ...... 그럼 다행이고요.
그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창문 밖을 주시했다.
안 좋아... 분위기 안 좋아....
‘끼이이익!’
민아 - 꺗?
순간, 내리막에서 신호에 걸린 버스가 멈춰서면서
F = - ma 의 관성력을 받은 그녀가
uN의 마찰력과 손잡이의 장력 T를 이용해 무게중심을 안정시키고 있던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민아 - 미, 미안해요!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내 몸을 밀어내며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하지만 이내 뒤에서 밀려온 제 2의 물결에 부딪혀
다시 내 품 속에 폭 안겨왔다.
민아 - 어, 엄맛?!
옷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
얼굴이 화끈거린다..... 빨갛게 변해버렸을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려....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기억 - 아저씨!! 내려주세요!!
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오늘의 속담 : 덩굴 째 들어온 호박에 프리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