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관계-(22) 이중인격자.

瓚禧2005.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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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




(22) 이중인격자.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끈질기게 주혁의 눈길이 따라 붙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효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매정히 걸음을 옮겼다. 왜 그랬을까? 그냥 뒤 한번 돌아봐 줄걸. 손 한번 잡아주고 별일 아니라고 그를 다독여 줄걸. 그래도 아직은 어린 20살 아닌가? 그 나이 때 영효는 한참 사랑의 열병을 알았었다. 지독했던, 얼굴에 난 수두자국처럼 가슴에 난 사랑의 열병을 치룬 그녀의 마음은 만신창이였다. 그때는 사랑이 전부인줄 알았고, 사랑만 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고난과 역경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 그것 또한 별것 아닌 것을. 지금은 이렇게 애달아하다가도 금세 변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정착해 버리는 게 사랑이란 녀석이 아니던가? 지금은 주혁이 그렇게 자신을 향해 목을 맨다 해도, 시간이 지나고, 세상 물정을 안다면 달라질 것이다. 막상 마음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의 마음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겼다. 사랑을 하면서 하면 안 되는 것 중 가장 으뜸인 것이 의심인 것을. 그 것임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살모사의 고개처럼 쳐드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 영효는 괴로웠다. 의심에 자꾸만 제 멋대로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상한의 얼굴. 그녀를 쫓아다니는 그의 눈빛. 무엇이 옳고 그른지 도통 모르겠다. 모르겠다.............


“도대체 난 누굴 사랑하는 것일까? 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제 고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주혁과 마음 확인을 한지 고작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만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이놈의 변덕은 어디까지 진행되고, 주인을 사지로 몰아넣어야 없어지는 것일까? 깊은 한 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주혁과 마음을 통하고 난 직후 느꼈던 가슴 아림이 이것 때문이었던 것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 며칠째,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넘어오는 언덕 끄트머리를 하염없이 쳐다보아도, 그가 쉼 없이 찾는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 걸음을 딱 끊어 버린 영효. 이대로 끊인 걸까? 라는 생각이 치밀어 들 때 마다 그녀를 잡을걸. 뒤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게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그녀 발치에 매달려 라도 볼걸. 그대로 끝이었다면. 그래나 볼걸. 매달려 그녀를 붙잡았다면 한번쯤은 돌아보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를 한번쯤 생각해 주지 않았을까?


“바보....... 바보..........”


‘그렇게 소극적인 태도로 계속 사랑이라는 것을 한다면, 상한이 넌 평생 쟁취할 수 없을 거야. 사랑은 하되 그것을 가질 수는 없을 거야. 너의 그 다 이해하고 참는다는 태도가 다가 아니야. 사랑에서는 말이지.’


언젠가 지나가는 말투로, 주리가 그렇게 그에게 중얼거렸었다. 이해하고 참는 태도가 다가 아니라고. 사랑을 가지고 싶으면 쟁취하라고. 그렇게 상대편 입장 다 따지다가는 평생 사랑은 하되 가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사랑도 습관인가?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자신의 아픔보다는 상대편을 헤아려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회스러웠다. 다시 영효가 주혁을 사랑한다고 말 했던 때로, 그날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미 뒤 늦은 후회였다. 그가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그의 삶속에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참 불공평 했다. 이렇게 아프면, 무언가 하나는 보답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프면 무언가 기쁨을 주는 것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 짝사랑, 외사랑 이별은 그런 것조차 없다. 그녀만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미친 듯 아려왔다. 이렇게 혼자 외기러기 사랑인줄 알았다면 가슴에 품지도 않았을걸.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을 것을. 그때, 끼이익- 요란한 급정거 소리와 함께 노란색 외제차가 상한의 마트 앞에 튕기듯 세워졌다. 안에 타고 있는 차 주인을 보지 않아도, 주혁임을 아는지라, 상한은 짐짓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해버렸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던 녀석이었다. 거만하고, 이치 모르고, 사리판다 제대로 할 줄 모르고. 그저 자기 자신만 위하고, 자기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 거만함. 그가 주리의 동생이 아니라 해도, 그 건방진 태도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은 충분히 사람 좋은 상한의 눈에도 좋게 보일 리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아픈 이유의 원인이 주혁이었다. 바라만 봐도 행복하고 뿌듯했던 사랑을 강탈해간 도적놈. 도대체 영효는 저 녀석의 어떤 점이 좋았던 것인지 물어라도 볼 것을. 떡하니 남의 영업장 앞에 차를 세운 주혁이 성큼 성큼 걸어, 그에게 다가왔다.


“이야기 좀 합시다!”


건들거리는 말투로, 뭐? 이야기 좀 합시다! 나이로 보자면 9살 아래이고, 후배도, 후배도 까마득한 녀석이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피라미 같은 녀석에게 건들거리는 말투를 듣자하니 배알이 꼬여버려, 상한도 적의적인 태도로 주혁을 지나쳐, 파라솔에 털썩 앉았다.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라는 눈빛으로 쏘아보는 상한의 눈빛을 피하지 않은 채, 맞받아치는 주혁도 보통은 아니었다. 상한의 맞은편에 앉은 주혁이 상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 영효랑 사귄다.”

“그런데?”


‘그런데?’라고 받아치는 상한의 말을 들으며, 주혁이 ‘건들이지 마라.’라는 무언의 경고를 날렸다. 예술의 전당 하트 분수 앞에서 그렇게 허무하고, 허탈하게 영효에게 외면을 당한 그의 머릿속에 상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그녀가 그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몰랐던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미친 듯이. 사람들 틈바구니 속으로 사라지는 영효의 뒷모습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 같아 갑자기 조급해지고 마음이 급해졌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한낱 단순한 젊은 날의 객기라고 해도,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를 다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의 여자. 변주혁만의 박영효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상한이 눈앞에서 아른 거렸다. 목에 걸려 빠지지 않는 생선가시처럼, 자꾸만 콕콕 튀어나오는 그와 담판을 지어야지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아 단숨에 달려온 그였다.


“그러니깐 건들이지 마.”

“건들이지 말라고? 그건 네 녀석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오지랖이 넓은 거냐?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냐?”


철저히 애 취급을 해 대며 피식- 비웃음을 날리는 상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주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중인격자. 영효 앞에서는 한 없이 착하고 한 없이 다정한 남자인척 온갖 폼은 다 잡고, 그녀만 없으면 저런 지극히 냉소적인 태도를 내 보이는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의 못된 행태를 지금이라도 영효 앞에 달려가 낱낱이 고해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몰래 카메라라도 찍어서 저런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영효도 저 놈의 실체를 알 텐데.


“이중인격자. 영효 앞에서는 한 없이 다감한 척은 다 하고, 세상 그렇게 다정한 사람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이중인격자.”

“하, 너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야, 당연한 거 아니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런 게 당연한 것 아니냐? 그걸 가지고 이중인격자라고 일컫는지는 처음 알았군. 아, 변주혁이 나보다 더 잘났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군.”


확실히 비꼬는 말투로 그의 말을 배배 꼬고 있는 상한을 쳐다보다 주혁이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주혁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자, 상한의 눈썹이 매섭게 휘어 올라갔다. 눈썹 사이로 새겨진 내 천(川)자가 ‘나 화났다. 더 건들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경고하는 메시지 같아 보였지만, 주혁은 그 보란 듯이 더 입 꼬리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자존심 하나로는 그 누구에게 지지 않는 주혁이었다. 어려서부터 늦둥이로 자라 곱게 오냐 오냐 하며 자라서 그런지 세상에 무서운 존재란 없었다. 그것은 앞에 죽일 듯 노려보는 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 잘난 것 이제 알았어? 머리가 상당히 나쁘군. 그런 것을 이제 깨닫다니 말이야.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깐 영효도 나에게 빼앗기는 게 아니겠어?”

“뭐? 이자식이 보자 하니깐.”


퍽- 소리와 함께, 앉아 있던 의자에서 주혁의 내동댕이쳐졌다. 맞은 입 언저리를 주먹으로 훔치고는 주혁이 일어나 상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이렇게 나와야지. 내가 이걸 기다렸던 거거든. 이렇게 나와야 같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지. 안 그래?”


퍽- 상한에게 예고도 없이 주혁의 매서운 주먹이 그의 얼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그의 주먹을 시작으로 서로 뒤 엉켜 바닥을 굴렀다. 주혁의 위에 올라탄 상한이 감정 실린 주먹으로 그의 잘생긴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소리쳤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르는 너 같은 것한테 영효 안 넘겨 줘!”


그런 상한을 넘어트리며 주혁이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릴 틈도 없이, 상대편이 항복의 깃발을 흔들 때 까지. 한 사람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릴 때까지 둘은 치고 박고를 계속했다. 물론, 날카롭게 “그만!”이라고 외치는 영효의 외침이 있기 전까지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치고 들어온 영효가 상한과 주혁을 떨어트려 놓으며 그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상한과, 주혁이 저렇게 엉켜 싸울 줄은 꿈에도 생각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참 동안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나왔던 참이었다. 상한의 마트 앞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나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그에게 나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벅차올라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던 그녀였다. 그런데 고작 싸움질이라니. 그것도 자신을 인형처럼 중간에 두고 다 큰 어른들이 싸움질이라니. 화가 났다. 그런데 그 화난 것이, 상한의 찢어진 입술을 보자, 극으로 치달아 버렸다.


 실망했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영효의 시선을 외면하며, 상한이 고개를 숙여버리자, 그녀의 등장으로 의기양양해진 주혁이 그녀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다. 지금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저 놈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주혁이 고자질 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저 놈의 실체를 알아야 해. 네 앞에서만 착한 척, 온갖 다정한 척 하는 거라고. 이중인격자야! 저 딴 놈이랑 이야기도 하지 마! 쳐다보지도 마! 앞으로 여기 근처는 오지도 마.”


주혁의 말에 영효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다고, 네 뜻대로 그렇게 하겠다고 긍정의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의 말에 살며시 동의를 해 줄 줄 알았다. 사랑하면 무조건 그 사람의 편에 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해 줄 줄 알았는데........ 영효는 아무 말 없었다. 그런 영효의 팔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냥 그대로 그녀를 놔두면 그에게 가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넌 내 여자인데, 이제 내 여자인데 나 왜 이렇게 불안하니. 나 왜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니...........’


알았다고 대답하라고 종용하는 주혁의 눈빛을 피한 채, 영효는 상한을 바라보았다. 왜 자신에게는 말 하지 못한 것일까? 사랑한다고, 저런 놈한테 너 보내줄 수 없다고 왜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왜 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에 급급한 것일까?

 영효가 오자마자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 주혁이 미친 게 부러웠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영효의 작은 손을 손 안 가득 넣을 수 있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그것이 모든 것을 다 내놓아도 살 수 없는 것 같이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난 잡지도 못하는 손인데. 바라만 봐도 행복해 지는 손인데, 그런 그녀의 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는 녀석이 더욱 밉살스럽게 보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행복이 왜 자신에게만 없는 것인지.l


“야! 너 왜 대답 안 해? 저 자식 이중인격자라고.”


이젠 아예 삿대질 까지 해 보이며, 소리를 지르는 주혁의 얼굴을 영효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주혁이 어리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별 문제 없을 줄 알았다. 이렇게 사람 부끄럽게 하고, 천지 분간 못하고 날 뛸 줄 미처 알았다면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펄펄 뛰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식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종용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를 보며 마음이 떨린 것이, 연예인을 보았을 때와 같은 감정이라면? 단순히 순간적인 그에 대한 희열 정도였다면? 순간 그와 만났을 때의 가슴 떨림이 그런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연신 그녀의 팔을 흔들며, 대답하라고 조르는 주혁의 팔을 매정히 뿌리치며, 영효가 주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대체 상한 씨가 뭐가 이중인격자라는 건데?”


대뜸 소리를 지르며, 그가 이중인격자라고 보는 이유나 근거를 대라고 말하는 영효의 반응은 생각지 못한 것이라, 당황해 하는 주혁 대신 그동안 꿋꿋이 입을 다물고 있던 상한이 영효의 등 뒤에 대고 ‘나 이중인격자 맞아!’라고 소리쳤다. 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는 영효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상한은 그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후회 하지 않았던가? 그녀를 붙잡지 않았던 것을. 그녀의 발목 잡고 늘어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이판사판이었다.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어쨌든 고백이라도 시원스레 한 번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난 널 보낼 수 없다고. 너 없이는 나 안 된다고 철없는 주혁처럼 매달리고 싶었다. 속내를 드러내고 싶었다. 상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이 어쩌면 영효를 볼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 라는 생각에 영효를 또렷이 쳐다보며 눈 안에 담았다. 그녀의 눈, 코, 입 작은 얼굴. 고집스레 꽉 조여 묶은 머리, 하얀 목덜미 사이로 튀어나온 잔털들. 그 모든 것을 눈 안에 서서히 담고, 상한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 이제 시작이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영효와 상한과의 러브스토리. 이제 시작이다. 이것이 영영 마지막이 될지 모르고, 한 동안 가슴 아파하며 혼자 외기러기 사랑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고백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연신 그에게 묻는 영효를 향해 상한이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show time. 이왕 이렇게 된 것, 후회가 남지 않게 모두 다 털어내 버리자. 모두 다.’


“나 이중인격자 맞아. 그래. 나 이중인격자야. 널 사랑하면서 보내준다고 멋있는 척, 온갖 쿨한 척 하고서는 매일 너 넘어오는 언덕배기 목 빠져라 쳐다보고, 너한테는 다정한 척, 착한 척 하면서 사실은 너 빼앗길까봐 주혁이 저 녀석한테 도끼눈 뜨고 그랬어. 그런데, 너 사랑해서 그런 거야. 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 때문에 혹시나 너 힘들어 질까봐, 내가 아프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너 붙잡을 수조차 없는 그런 바보이기도 해. 하아. 말 하려고 했었어. 너 붙잡으려고 했었어. 그런데 그러면 너 아프잖아. 또 아파할 것 같아, 나 웃으면서 너 보냈어. 그런데 이젠 그러기 싫어졌어.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너랑 나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게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내 마음이라도 좀 알아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널 가슴에 담아버리고 새겨 버린 날 좀 봐줘. 그냥 알아만 줘도, 가끔 날 향해 눈길 한번만 돌려줘도 좋으니 알아만 줘...............”


알아만 달란다. 마음만이라도 알아만 달라고 상한이 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그의 고백을, 그의 속마음을 듣게 될 줄 몰랐다. 그가 이런 자리를 통해 고백할 줄은 주혁 역시 몰랐던 터라,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상한이 이중인격자라고 말한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상한의 고백에 세 사람 다 어색함이 흘렀다. 그의 말에 영효가 살며시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당황하면 나타나는 그녀의 버릇.


‘당황스럽겠지. 이렇게 내가 고백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겠지...............’


영효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데, 상한은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아파하고 가슴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사랑. 그 어긋난 바라봄에 서로 오해하고, 가슴 아파하고.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것일까? 그 어색한 공기를 깬 것은 영효였다. 그 어색함이 못내 견디기 힘들어, ‘나 먼저 들어가 봐야겠어.’라며 피하듯 걸음을 바삐 옮겼다. 피하듯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뒤를 따라 두 남자의 시선이 따라 이어졌다. 그때,


“어? 조심해!”


주혁의 날카로운 외침소리. 고개를 돌리는 영효.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상한.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상한의 몸이 붕- 떠버린 것은. 그의 밀침에 옆으로 엎어진 영효. 멍하니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주혁. 그 모든 것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단숨에 일어나 버렸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