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영웅이 대거모이는 시기가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그러하였고 시대적 이변이라 할만큼 영웅이 많이 모인 삼국시대가 그러하였다. 많은이들이 재미로 세계최고의 누구 세계최고의 누구를 꼽길 좋아한다. 흔히들 세계 4대 미드필더란 말은 없다는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한다. 쉽게 얘기하겠다. 세계 4대 미드필더는 없다. 대신 불과 몇년전.. 세계에는 98년 이후로 좀더 부각될수 있었던 미드필더란 자리에서 특출난 재능으로 세계를 호령하며 지휘하던 2명이 있었다 전하고 싶다. 포르투갈과 프랑스.. 두팀모두 파격적인 뉴에이지 토탈사커를 선보이며 세계에 더이상 단순한 토탈의 개념으로는 강자로 군림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포르투갈의 멤버를 살펴보면 일명 골드 제네이레이션이라 불리는 멤버들이 대거 포진해있고 멤버들의 기량도 물이 오른때였지만 항상 1%가 부족해서 메이저 대회에 뛰어난 족적을 못남겼으며 기껏해봐야 유로96 8강이 전부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은 아주 작게나마 이들의 재능을 볼수 있었다. 98년 월드컵 3위에 빛나는 크로아티아를 박살냈던건 실로 놀라운 성과라 할만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루이코스타가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지배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그는 바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상대의 진영을 초토화 시키는 공포의 존재 "언터쳐블"이라 불렸던 루이스 펠리페 페레이라 피구였다. 피구는 당대 최고의 브레인이라 불리던 요한 크루이프가 짧지만 강력하게 빚은 역작이었다. 피구 본인의 재능도 있었지만 그를 윙으로 만든것도 그였으며 그에게 플레이상의 다재 다능함을 안겨 주었다. 후에 그가 어느 포지션 어느 위치던지 유기적으로 뛰어난 플레이를 펼치는 원동력이 되었다할수 있는 경험들이었다. 그는 환상적인 돌파력과 패싱력 정확하고 빠른 크로스 저돌성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였는데 아쉽게도 크루이프와 피구는 1년후에 크루이프 대신 들어온 반갈로 인해 아쉬운 작별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감독인 루이스 반갈 또한 피구와 뜻이 맞아 피구는 프리메라리그안에서 점점 독보적인 선수로 군림하게 된다. 반갈감독이 말하기를 당시 피구의 재능은 세계 그누구도 따라올수 없을정도라며 혀를 내둘렀고 피구는 시간이 갈수록 파죽지세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최강 바르셀로나의 서포터즈 이름이 "RIVALDO"가 아닌 "FIGO"였던것만 보아도 피구의 존재가 어떻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후에 유로2000에 출전하여 포르투갈은 파격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곧바로 세계 축구계의 최강대국 대열에 합류 하게 된다. 당시 펠레는 이런말을 하였다. 포르투갈은 "피구. 그 한명으로 이미 우승대열에 낄수 있는 강팀이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피구는 세계인으로부터 대회 MVP를 수상하며 자신이 세계최고라는걸 온 세계에 알린다. 이 대회 프랑스전 포르투갈로서는 억울할수도 있는 판정을 받게된다.
바로 윌토르의 크로스가 사비에르에게 닿아 연장전에서 패널티 킥을 준것이다. 여기서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패널티 킥이란것이 핸들링에 적용하려면 그 선을 긋는 가장 큰 잣대가 고의성 여부란 것인데 윌토르의 크로스는 바로 코앞에서 사비에르의 손에 피할수 없는 속도로 찬것으로 다른 일반적인 경기의 통례를 보더라도 패널티 킥이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만일 패널티 킥이 주어지려면 최소한 사비에르가 손으로 공을 방해하는 동작이 있어야하는데 윌토르의 크로스는 그 아래에 있던 손등을 맞춘것이었다. 당시 프랑스팬들은 패널티 킥이란 고의성 여부와는 상과없이 공의 진로를 방 해하면 주는것이다라고 옹호해 주었지만 그말이야말로 누워서 침뱉기 격인것이 2년후 한국과의 대전에서 벌어진다. 한국이 3대2로 뒤지던 시점 프랑스의 수비수 한명이 볼경합중 땅으로 떨어지면서 공에 손바닥을 대버린다. 하지만 당시 일본 주심은 이를 보고도 묵인한다. 오히려 더 패널티 킥과 가까운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가장 중요한점은 축구에서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불지않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 만일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손에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패널티가 남발한다면 약삭빠른 선수들은 패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상대의 손으로 크로스를 맞추는 일이 빈번해질것이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 포르투갈은 패널티 킥으로 결승이 좌절되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성과는 놀라웠다. 여기서 누노 고메즈 사비에르등 주전 선수들의 보이콧 파동으로 인한 경기 출장중지가 눈에 띄었고 이들이 후에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빌미가 된다. 이시기에 일본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상식밖의 말을 하게 된다.
포르투갈이 매우 억울하지 않겠냐는 기자의 일대일 회답에서 그녀는 원래 강대국에 대한 편파판정은 솔직히 존재하고 그게 싫으면 포르투갈이 좀더 강대국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잠깐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 언급하면 일반적으로 국내팬들에게는 바티스투타에게 연민을 품고 있는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맨으로 분장하여 골대뒤에서 바티스투타가 슈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란 말로 유명한 작가인데 흔히 그녀가 축구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녀는 델피에로와 이탈리아를 어린애라고 부르고 말디니를 국가대표 주장 자리를 맡을 능력도 없는 선수라 칭할만큼 축구에 대해 아는척만 하는 여자이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이다. 선수들을 논할때에도 항상 외모가 개입되며 자신의 전문분야인 고대 로마의 역사와 전혀 관계없는 축구에 그것을 말도 안되게 대입시키고 있는데 정말 터무니없다. 그알맹이를 들여다보면 A,B,C등의 선수가 있으면 이기고 D,E,F등의 선수(델피에로등)가 있으면 그팀은 진다는 형편없는 논리다. 어쨌든 그 당시 포르투갈은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피구는 당시 실력에 비해 극렬히 낮았던 인지도를 올리며 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 프랑스의 전설 미셸 플라티니 같은 경우 자국의 지단을 제치고 피구를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선수라 평가한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만했다. 상승세를 탄 포르투갈은 2002 한일 월드컵 유럽예선에서도 그 여세를 몰아 네덜란드와의 원정경기에서 2대0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줄곧 1위 자리를 고수한다. 네덜란드와의 2연전에서 네덜란드의 수비수들은 피구를 막지 못해 시종일관 속수무책으로 뚫리며 라이지거를 비롯한 여렇선수들이 이 피구하나를 막기 위해 옐로카드가 줄줄이 나오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당시 피구의 평가는 마라도나에까지 이루어 지는데 마라도나는 지단 피구 히바우도를 최고의 선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의 수비수 코스타 쿠르타의 말을 빌려보면 "포르투갈의 피구는 정말 무서운 선수이다. 특히 유로 2000에서 그는 마라도나같은 선수들이 갖고 있는 그 무언감을 느낄수 있었고 차원이 달랐다. 내가 본 최고의 재능은 비록 같이 뛰어본적은 없지만 피구다." 당시 피구의 위용은 말그대로 언터쳐블. 아무리 축구의 황제, 축구의 신이라 칭하던 선수들도 언터쳐블이란 칭호는 받지 못했다. 분명한것은 피구는 당시 윙으로서 플레이메이커역활의 스위치 시스템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역대최강의 윙이었다는것이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피구였지만 2002년 초반 프리메라리그에서 발목부상을 당하게 되며 후에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복귀하지만 그는 심각할 정도의 경기감각을 잃게 된다. 그당시의 피구는 돌파력과 크로스의 정확도가 불과 1년전인 2001년도에 비해 너무 떨어져서 같은 선수일지 의심이 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건 아닐까. 피구는 당시 부상이 약간 나아지자 대표팀 동료들과 파티를 열어 축잔을 들었다. 분명 당시 축잔을 들 상황은 아니었다.. 피구를 담당했던 닥터는 피구가 월드컵에서 자신의 기량을 30프로도 발휘할수 없을것이라 말했고 이글을 쓰는 필자도 피구의 부상이후 포르투갈을 월드컵전에 이미 자멸한 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연일 언론에서는 포르투갈안에서의 고름현상을 묵과한체 선전에만 열을 올렸고 많은 한국인들은 망가진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며 이선수를 평가했다. 그렇게 피구의 월드컵은 실패로 끝이난다. 그 이후에 피구는 세계적인 기량을 뽐내긴 하지만 예전의 언터쳐블이라 불리던 그때로 돌아가진 못한다. 순식간이라면 순식간인 기량의 쇠퇴였다. 적어도 2001년 올해의 선수상을 타며 지단에게 축하받던 피구는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가진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 피구가 있다면 유벤투스에는 지단이 있다."
이말만 유추해 보아도 당시 유럽축구계의 쌍두마차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쉽게 알수 있다. 지네딘 지단. 설명이 필요없는 아트 사커의 지휘자로 그의 크루이프턴의 창시자 크루이프 이상이다라고까지의 평을 들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마치 음악에 맞춰 예술적으로 행위 예술을 하는 이의 그것과 같았다. 축구역사상 지단만큼 완벽한 모습의 플레이메이커는 없었다. 그는 단하나의 결점도 가지고 있지않던 컴퓨터였다. 그는 사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전까지만해도 실력에 비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었던 선수가 아닌데 월드컵이 끝난후 축구에서의 개념마저 흔들어 놓았다. 기존의 스타는 분명 스트라이커였다. 펠레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90년대로 이어지는 호마리우 로베르토 바지오등 축구에서는 그어떤 포지션보다도 스트라이커들의 평가가 높았다.
하지만 지단은 그렇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바로 미드필더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고 그정점에 선 두선수는 피구와 지단이었고 어떤이들도 이들과는 비교가 꺼려졌다. 지단은 완벽한 양발 사용과 넓은시야 그리고 단거리 안에서의 쓰루 패스의 기능을 극한으로 살렸는데 패스를 받는 선수는 말그대로 발만 대어도 들어가는 류의 것들이었다. 이후 유로2000에서마저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며 프랑스 축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프랑스내에서도 지단의 대체 선수로 프랑스의 바지오 조르카예프, 패스만큼은 월드클래스라던 미쿠등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지단을 대신하지는 못하였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지단을 주축으로 한 4-5-1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너무나 강한 나머지 70년 브라질 대표팀과도 종종 비교되곤 했다. 공격의 선봉은 아넬카였고, 백업으로 요원으로는 당시 수퍼 서브였던 트레제게 왼쪽엔 앙리가 버티고 있었다.
트레제게는 결국 놀라운 결정력으로 주전자리까지 꿰차게 된다. 미드필더에는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실력만큼은 제2의 지단이라 평가받던 비에이라가 있었고 수비쪽에 주목할 선수들은 막강한 오버래핑에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한 리자라쥐, 칸이 최고의 키퍼라고 칭하던 바르테즈가 버티고 있었다. 2001년 당시까지 프랑스의 순항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 월드컵을 앞두고 언론은 하나의 명칭을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4대 미드필더이다. 기복없는 꾸준함과 놀라운 성적 거기다 최고의 스타성까지 갖춘 데이비드 베컴. 뛰어난 천재성으로 이미 98년 부터 싹수가 보였다는 아르헨티나의 지휘자 베론. 이당시 4대 미드필더란것은 2002 월드컵을 겨냥할수 있는것이라고 쉽게 알수있는데 그것이 바로 루이코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기복없는 플레이와 높은 득점력 거기다가 세계최고의 "정확성"을 자랑하던 그의 패스는 미들로서 너무나 이상적이었던 것인데 그에게는 국내팬들에게 어필할수 있던 스타성이 없었고 무엇보다 피구와 같은 포르투갈 대표팀이란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같은 팀에 두명의 선수를 내세운다면 명칭의 색이 바래질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명칭이란것이 공격형 미드필더만 모두 내세울만큼 그 정당성이 부족했다. 당시 로이킨은 세계 제일의 보란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왼쪽의 황태자 긱스 그외에도 여렇선수들이 제외되었는데 그면면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보인다.
세계적으로 그당시 아르헨티나는 이태리를 꺽을태부터 이미 녹이 보였고 후에도 프랑스를 견제할 팀이라며 우승후보 1순위에 자주 입에 올려지는 팀이 되었고, 잉글랜드는 당시 독일과의 경기를 비롯해서 그리스와의 영화같은 혈전으로 상당히 전력이 높음을 과시했다. 포르투갈 또한 못해도 4강이란 인식이 강했던 시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네팀의 공통점이 가장 우승에 가까운 4팀이었단걸 알수 있는데 당시 브라질의 몰락과 함께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히바우도의 이름을 찾아볼수 없는데서 쉽게 알수있다. 즉 이 베컴과 베론이 당시 지단과 피구와 어깨를 나란히하며 분할선상에 있는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4대 미드필더란 명칭에 합류한것이 바로 바로 이둘의 대표팀이 상당히 강력한 우승후보로써 월드컵에서 최소한 4강 내지 우승은 해줄것이란 계산이 깔린 토대하에서 만들어진 상당히 엔터테이먼트적인 명칭으로 이것이 당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이유인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탈락으로 곧바로 이들은 4대 미드필더에 낄 자격을 잃게된다. 어차피 그 4대 미드필더란것이 포지션상의 공정성 문제도 그렇거니와 그둘의 월드컵전까지의 커리어에 + 월드컵에서의 어느정도 해줄것이란 예상적인 성과로 만들어졌던것이기 때문이다. 지단과 피구는 다르다. 그둘은 이미 최고의 자리에서 출전한것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미드필더의 부각으로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하는 수 많은 재능들이 땀을 흘렸다. 그들의 능력도 모두 상당해 쉽게 우열을 가릴수는 없었지만 그 재능들속에서도 두명의 특출난 선수가 존재했다.
언터쳐블과 예술 [피구 그리고 지단]
인간사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영웅이 대거모이는 시기가 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그러하였고 시대적 이변이라 할만큼 영웅이 많이 모인 삼국시대가 그러하였다. 많은이들이 재미로 세계최고의 누구 세계최고의 누구를 꼽길 좋아한다.
흔히들 세계 4대 미드필더란 말은 없다는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한다. 쉽게 얘기하겠다. 세계 4대 미드필더는 없다. 대신 불과 몇년전.. 세계에는 98년 이후로 좀더 부각될수 있었던 미드필더란 자리에서 특출난 재능으로 세계를 호령하며 지휘하던 2명이 있었다 전하고 싶다. 포르투갈과 프랑스.. 두팀모두 파격적인 뉴에이지 토탈사커를 선보이며 세계에 더이상 단순한 토탈의 개념으로는 강자로 군림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포르투갈의 멤버를 살펴보면 일명 골드 제네이레이션이라 불리는 멤버들이 대거 포진해있고 멤버들의 기량도 물이 오른때였지만 항상 1%가 부족해서 메이저 대회에 뛰어난 족적을 못남겼으며 기껏해봐야 유로96 8강이 전부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은 아주 작게나마 이들의 재능을 볼수 있었다. 98년 월드컵 3위에 빛나는 크로아티아를 박살냈던건 실로 놀라운 성과라 할만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루이코스타가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지배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그는 바로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며 상대의 진영을 초토화 시키는 공포의 존재 "언터쳐블"이라 불렸던 루이스 펠리페 페레이라 피구였다. 피구는 당대 최고의 브레인이라 불리던 요한 크루이프가 짧지만 강력하게 빚은 역작이었다. 피구 본인의 재능도 있었지만 그를 윙으로 만든것도 그였으며 그에게 플레이상의 다재 다능함을 안겨 주었다. 후에 그가 어느 포지션 어느 위치던지 유기적으로 뛰어난 플레이를 펼치는 원동력이 되었다할수 있는 경험들이었다. 그는 환상적인 돌파력과 패싱력 정확하고 빠른 크로스 저돌성이 모두 갖추어진 상태였는데 아쉽게도 크루이프와 피구는 1년후에 크루이프 대신 들어온 반갈로 인해 아쉬운 작별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감독인 루이스 반갈 또한 피구와 뜻이 맞아 피구는 프리메라리그안에서 점점 독보적인 선수로 군림하게 된다. 반갈감독이 말하기를 당시 피구의 재능은 세계 그누구도 따라올수 없을정도라며 혀를 내둘렀고 피구는 시간이 갈수록 파죽지세로 성장하게 된다. 당시 최강 바르셀로나의 서포터즈 이름이 "RIVALDO"가 아닌 "FIGO"였던것만 보아도 피구의 존재가 어떻한 것이었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후에 유로2000에 출전하여 포르투갈은 파격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곧바로 세계 축구계의 최강대국 대열에 합류 하게 된다. 당시 펠레는 이런말을 하였다. 포르투갈은 "피구. 그 한명으로 이미 우승대열에 낄수 있는 강팀이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피구는 세계인으로부터 대회 MVP를 수상하며 자신이 세계최고라는걸 온 세계에 알린다. 이 대회 프랑스전 포르투갈로서는 억울할수도 있는 판정을 받게된다.
바로 윌토르의 크로스가 사비에르에게 닿아 연장전에서 패널티 킥을 준것이다. 여기서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패널티 킥이란것이 핸들링에 적용하려면 그 선을 긋는 가장 큰 잣대가 고의성 여부란 것인데 윌토르의 크로스는 바로 코앞에서 사비에르의 손에 피할수 없는 속도로 찬것으로 다른 일반적인 경기의 통례를 보더라도 패널티 킥이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만일 패널티 킥이 주어지려면 최소한 사비에르가 손으로 공을 방해하는 동작이 있어야하는데 윌토르의 크로스는 그 아래에 있던 손등을 맞춘것이었다. 당시 프랑스팬들은 패널티 킥이란 고의성 여부와는 상과없이 공의 진로를 방 해하면 주는것이다라고 옹호해 주었지만 그말이야말로 누워서 침뱉기 격인것이 2년후 한국과의 대전에서 벌어진다. 한국이 3대2로 뒤지던 시점 프랑스의 수비수 한명이 볼경합중 땅으로 떨어지면서 공에 손바닥을 대버린다. 하지만 당시 일본 주심은 이를 보고도 묵인한다. 오히려 더 패널티 킥과 가까운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가장 중요한점은 축구에서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불지않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 만일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손에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패널티가 남발한다면 약삭빠른 선수들은 패널티에어리어 안에서 상대의 손으로 크로스를 맞추는 일이 빈번해질것이다.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 포르투갈은 패널티 킥으로 결승이 좌절되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성과는 놀라웠다. 여기서 누노 고메즈 사비에르등 주전 선수들의 보이콧 파동으로 인한 경기 출장중지가 눈에 띄었고 이들이 후에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빌미가 된다. 이시기에 일본인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는 상식밖의 말을 하게 된다.
포르투갈이 매우 억울하지 않겠냐는 기자의 일대일 회답에서 그녀는 원래 강대국에 대한 편파판정은 솔직히 존재하고 그게 싫으면 포르투갈이 좀더 강대국이 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잠깐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 언급하면 일반적으로 국내팬들에게는 바티스투타에게 연민을 품고 있는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맨으로 분장하여 골대뒤에서 바티스투타가 슈팅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란 말로 유명한 작가인데 흔히 그녀가 축구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녀는 델피에로와 이탈리아를 어린애라고 부르고 말디니를 국가대표 주장 자리를 맡을 능력도 없는 선수라 칭할만큼 축구에 대해 아는척만 하는 여자이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여자이다. 선수들을 논할때에도 항상 외모가 개입되며 자신의 전문분야인 고대 로마의 역사와 전혀 관계없는 축구에 그것을 말도 안되게 대입시키고 있는데 정말 터무니없다. 그알맹이를 들여다보면 A,B,C등의 선수가 있으면 이기고 D,E,F등의 선수(델피에로등)가 있으면 그팀은 진다는 형편없는 논리다. 어쨌든 그 당시 포르투갈은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피구는 당시 실력에 비해 극렬히 낮았던 인지도를 올리며 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 프랑스의 전설 미셸 플라티니 같은 경우 자국의 지단을 제치고 피구를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선수라 평가한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만했다. 상승세를 탄 포르투갈은 2002 한일 월드컵 유럽예선에서도 그 여세를 몰아 네덜란드와의 원정경기에서 2대0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줄곧 1위 자리를 고수한다. 네덜란드와의 2연전에서 네덜란드의 수비수들은 피구를 막지 못해 시종일관 속수무책으로 뚫리며 라이지거를 비롯한 여렇선수들이 이 피구하나를 막기 위해 옐로카드가 줄줄이 나오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당시 피구의 평가는 마라도나에까지 이루어 지는데 마라도나는 지단 피구 히바우도를 최고의 선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이탈리아의 수비수 코스타 쿠르타의 말을 빌려보면 "포르투갈의 피구는 정말 무서운 선수이다. 특히 유로 2000에서 그는 마라도나같은 선수들이 갖고 있는 그 무언감을 느낄수 있었고 차원이 달랐다. 내가 본 최고의 재능은 비록 같이 뛰어본적은 없지만 피구다." 당시 피구의 위용은 말그대로 언터쳐블. 아무리 축구의 황제, 축구의 신이라 칭하던 선수들도 언터쳐블이란 칭호는 받지 못했다. 분명한것은 피구는 당시 윙으로서 플레이메이커역활의 스위치 시스템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역대최강의 윙이었다는것이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피구였지만 2002년 초반 프리메라리그에서 발목부상을 당하게 되며 후에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복귀하지만 그는 심각할 정도의 경기감각을 잃게 된다. 그당시의 피구는 돌파력과 크로스의 정확도가 불과 1년전인 2001년도에 비해 너무 떨어져서 같은 선수일지 의심이 갈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건 아닐까. 피구는 당시 부상이 약간 나아지자 대표팀 동료들과 파티를 열어 축잔을 들었다. 분명 당시 축잔을 들 상황은 아니었다.. 피구를 담당했던 닥터는 피구가 월드컵에서 자신의 기량을 30프로도 발휘할수 없을것이라 말했고 이글을 쓰는 필자도 피구의 부상이후 포르투갈을 월드컵전에 이미 자멸한 팀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연일 언론에서는 포르투갈안에서의 고름현상을 묵과한체 선전에만 열을 올렸고 많은 한국인들은 망가진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며 이선수를 평가했다. 그렇게 피구의 월드컵은 실패로 끝이난다. 그 이후에 피구는 세계적인 기량을 뽐내긴 하지만 예전의 언터쳐블이라 불리던 그때로 돌아가진 못한다. 순식간이라면 순식간인 기량의 쇠퇴였다. 적어도 2001년 올해의 선수상을 타며 지단에게 축하받던 피구는 차원이 다른 클래스를 가진 선수였다.
"바르셀로나에 피구가 있다면 유벤투스에는 지단이 있다."
이말만 유추해 보아도 당시 유럽축구계의 쌍두마차가 존재했었다는 것은 쉽게 알수 있다. 지네딘 지단. 설명이 필요없는 아트 사커의 지휘자로 그의 크루이프턴의 창시자 크루이프 이상이다라고까지의 평을 들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마치 음악에 맞춰 예술적으로 행위 예술을 하는 이의 그것과 같았다. 축구역사상
지단만큼 완벽한 모습의 플레이메이커는 없었다. 그는 단하나의 결점도 가지고 있지않던 컴퓨터였다. 그는 사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전까지만해도 실력에 비해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었던 선수가 아닌데 월드컵이 끝난후 축구에서의 개념마저 흔들어 놓았다. 기존의 스타는 분명 스트라이커였다. 펠레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90년대로 이어지는 호마리우 로베르토 바지오등 축구에서는 그어떤 포지션보다도 스트라이커들의 평가가 높았다.
하지만 지단은 그렇한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바로 미드필더의 중요성이었다. 그리고 그정점에 선 두선수는 피구와 지단이었고 어떤이들도 이들과는 비교가 꺼려졌다. 지단은 완벽한 양발 사용과 넓은시야 그리고 단거리 안에서의 쓰루 패스의 기능을 극한으로 살렸는데 패스를 받는 선수는 말그대로 발만 대어도 들어가는 류의 것들이었다. 이후 유로2000에서마저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며 프랑스 축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프랑스내에서도 지단의 대체 선수로 프랑스의 바지오 조르카예프, 패스만큼은 월드클래스라던 미쿠등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지단을 대신하지는 못하였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지단을 주축으로 한 4-5-1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너무나 강한 나머지 70년 브라질 대표팀과도 종종 비교되곤 했다. 공격의 선봉은 아넬카였고, 백업으로 요원으로는 당시 수퍼 서브였던 트레제게 왼쪽엔 앙리가 버티고 있었다.
트레제게는 결국 놀라운 결정력으로 주전자리까지 꿰차게 된다. 미드필더에는 포지션과는 상관없이 실력만큼은 제2의 지단이라 평가받던 비에이라가 있었고 수비쪽에 주목할 선수들은 막강한 오버래핑에 최강의 수비력을 자랑한 리자라쥐, 칸이 최고의 키퍼라고 칭하던 바르테즈가 버티고 있었다. 2001년 당시까지 프랑스의 순항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후 월드컵을 앞두고 언론은 하나의 명칭을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4대 미드필더이다. 기복없는 꾸준함과 놀라운 성적 거기다 최고의 스타성까지 갖춘 데이비드 베컴. 뛰어난 천재성으로 이미 98년 부터 싹수가 보였다는 아르헨티나의 지휘자 베론. 이당시 4대 미드필더란것은 2002 월드컵을 겨냥할수 있는것이라고 쉽게 알수있는데 그것이 바로 루이코스타가 없다는 것이다. 기복없는 플레이와 높은 득점력 거기다가 세계최고의 "정확성"을 자랑하던 그의 패스는 미들로서 너무나 이상적이었던 것인데 그에게는 국내팬들에게 어필할수 있던 스타성이 없었고 무엇보다 피구와 같은 포르투갈 대표팀이란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같은 팀에 두명의 선수를 내세운다면 명칭의 색이 바래질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명칭이란것이 공격형 미드필더만 모두 내세울만큼 그 정당성이 부족했다. 당시 로이킨은 세계 제일의 보란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고, 왼쪽의 황태자 긱스 그외에도 여렇선수들이 제외되었는데 그면면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보인다.
세계적으로 그당시 아르헨티나는 이태리를 꺽을태부터 이미 녹이 보였고 후에도 프랑스를 견제할 팀이라며 우승후보 1순위에 자주 입에 올려지는 팀이 되었고, 잉글랜드는 당시 독일과의 경기를 비롯해서 그리스와의 영화같은 혈전으로 상당히 전력이 높음을 과시했다. 포르투갈 또한 못해도 4강이란 인식이 강했던 시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네팀의 공통점이 가장 우승에 가까운 4팀이었단걸 알수 있는데 당시 브라질의 몰락과 함께 뛰어난 기량을 보이던 히바우도의 이름을 찾아볼수 없는데서 쉽게 알수있다. 즉 이 베컴과 베론이 당시 지단과 피구와 어깨를 나란히하며 분할선상에 있는 최고의 선수들을 제치고 4대 미드필더란 명칭에 합류한것이 바로 바로 이둘의 대표팀이 상당히 강력한 우승후보로써 월드컵에서 최소한 4강 내지 우승은 해줄것이란 계산이 깔린 토대하에서 만들어진 상당히 엔터테이먼트적인 명칭으로 이것이 당시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던 이유인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탈락으로 곧바로 이들은 4대 미드필더에 낄 자격을 잃게된다. 어차피 그 4대 미드필더란것이 포지션상의 공정성 문제도 그렇거니와 그둘의 월드컵전까지의 커리어에 + 월드컵에서의 어느정도 해줄것이란 예상적인 성과로 만들어졌던것이기 때문이다. 지단과 피구는 다르다. 그둘은 이미 최고의 자리에서 출전한것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미드필더의 부각으로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하는 수 많은 재능들이 땀을 흘렸다. 그들의 능력도 모두 상당해 쉽게 우열을 가릴수는 없었지만 그 재능들속에서도 두명의 특출난 선수가 존재했다.
Written By SL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