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1)

운운200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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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라는 이름을 얻다- 

 

 

 

 

 

 

“멍멍!! 멍!! 멍멍!!!!! 멍!! 멍!!!”

“갑자기 저 녀석이 왜 저리 짓는 게야!”


노릇노릇 구워진 군밤을 꼬챙이로 벌리려 애를 쓰며 노인이 말했다.

밖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영감이 잠시 나가 보시구려.” 


누덕이불을 한껏 끌어당겨 목에 감은 채로 누워있던 노부인이 대꾸했다.

노인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꼬챙이를 쥔 양손에 한층 더 힘을 실어, 연신 군밤을 찔러대고 있었다. 노골 노골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등짝을 풀질해 붙인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하는 노부인이 마치 군밤이라도 되는 듯.

죄 없는 군밤부인은 오늘 한 시진 동안이나, 잔인하게 노란 속살을 유린당하는 중이다. 참다못한 노인은 안 그래도 가느다란 눈을 더 실같이 떴다. 그리곤 부인 쪽을 노려보며, 발가락으로 부인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며 소리쳤다.


“마눌~ 쫌 일어나 보라고! 왜 몇 시진 째 누워서만 뒹구는 게야! 가뜩이나 푹 퍼진 엉덩이로 또 부침개 부칠 일 있어?! 뱃살이 오 겹이 된지가 어제 일인데, 그 앞에 육겹님이 인사하고 있네 그려~! 쯧쯧... 걸어 다녀도, 걸어 다니는지 굴러다니는지...원..”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노인은 화들짝 놀라, 뜨뜻하게 데워진 부인 엉덩이에서 발가락을 황급히 뗄 수밖에 없었다. 말없이 누워있는 부인의 전신으로 이글거리는 화염을 본 것은 노인만의 착각이었을까? 비 맞은-처량한 강아지새끼 모양으로 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 힘없이 일어난 노인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쪽문으로 향했다.


“멍멍!! 멍!! 멍멍!!!!! 멍!! 멍!!!”

“저놈의 흰둥이 녀석 왜 이리 짖어 대고 지랄이야? 눈 손님 처음 보나..매타작을 해야 갰구먼! 끌끌.”


  애꿎은 흰둥이 녀석만 탓하며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도, 화풀이의 도구가 될 꼬챙이를 잊지 않고 나가는 노인이었다. 그렇게 한 시진 동안이나 계속되던 개기기(?)전투에서 승리한 노부인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비로써 자세를 바꾸어 돌아누웠다. 한 시진 만의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푸짐한 부인의 몸집에 화롯불이 일렁거렸다. 사실 이 저녁 무렵의 시간은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찜질 시간이었다. 이미 불구멍을 활짝 열어놓고, 장작을 가득 넣어 방안을 후끈하게 데운 후다. 노릇노릇 익은 아랫목에 허리를 지지는 시원함(?)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할멈만의 즐거움이었다. 아담하고 소박한 방안에 군밤이 숯에 타들어 가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평온한 저녁이다. 할멈이 막 달콤한 잠을 청하려고 할 때였다.


「단영 !!! 어서 나와 보오!! 어서!!!!」


노부인의 머릿속으로 영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전음이다. 

명물인 야호가 예사롭지 않게 짖어 댈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하는데! 전음으로 그가 말하는 것은 두 사람이 여기 장백산을 보금자리로 선택하고 들어앉은 후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머릿속의 울림을 털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스무 관이 넘는 노부인의 움직임은 예상 밖으로 너무나 날렵했다. 군더더기 없는 동선으로 재빨리 문을 박차고 나선 그녀는, 야호가 매어져 있는 사립문으로 달려갔다. 무슨 사단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문을 나선 노부인은, 마당에 펼쳐진 정경에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

아침에 짓눈개비가 흩날리기는 했지만, 두 시진 사이 함박눈이 쏟아졌는지 세상이 온통 흰색천지다. 그동안 매년 열 번이나 보아왔던 풍경이다. 허나 그녀는 다시 한번, 흰눈에 그 기억이 떠올라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이제 무던해 질 때도 되었건만, 너무 아름다워서, 눈부신 세상이 너무나 서글퍼서 노신(老身)은 잠시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흰 도화지위의 하나의 점처럼 굳어있는 낭군에게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백아! 무슨 일이에요~?!”

“여기, 여기......!”

“......”


단영은 순간 할말을 잊었다.

그리고 노인의 품에 들려있는 자그마한 비단 보자기를 보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보자기를 살짝 헤집자, 그 안에 눈빛처럼 뽀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둘째 치고,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흠칫 놀라, 그녀는 주위를 잘 살폈다. 눈밭위로는 어떠한 발자국도 없었다. 또한 인기척도 없었다.

이곳 장백산은 중원 내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산.

게다가 여기 천외봉은 누구의 인기척도 닿지 않는 첩첩산중이다. 두 사람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후로 친우들을 제외하고는 근 십여 년간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백아와 단영, 그들의 친우라면 모두 무림의 역사 속에서 전설로 기록될 법한 인물들로, 그런 그들도 몇 해에 한번씩 이 천외봉에 올라오고 나면, 반나절은 힘들다고 투덜거리기 마련인 곳이 바로 여기다. 그런 이곳에, 보자기에 싸여진 채로 버려진 아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곧바로 단영은 단전으로 기를 모았다. 분명 아이를 두고 간 사람이 있다면, 환술을 펼쳐보면 그 흔적의 꼬리가 잡힐 터였다. 그때였다.


“소용없네. 내 이미 해보았으나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흔적이라면 흰둥이가 짓기 전에 눈치를 챘을 테니. 끌끌...”

“......” 


맞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현 무림에, 두 사람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진 아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이라고 생각한 단영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자, 일단 어찌 되었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갑시다. 이 추운 눈발을 맞으며 한 시진은 있었던 것 같으니..어찌하여 얼지 않았을꼬?

아하! 흰둥이 네 녀석이 품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주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야호는 낑낑거리며 노인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아이가 놓여있던 자리에 야호의 털이 흩어져 있고 발자국이 덮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랬던 모양이다. 노인 옆에서 뚫어져라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던 노부인은 아이를 받아 안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기자 아기는 붉은 색의 오동통한 조그만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양새가 너무 귀여워, 굳어있던 단영의 입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뽀얗고 자그마한 것이 매우 귀엽게 생기 아기였다. 백옥처럼 뽀얀 피부에 제법 오뚝한 콧날하며 붉은 입술은 마치 작은 인형을 보는 듯 했다.


“아이를 두고 간 이가 사정이 있는 선인이라면, 연유를 대답할 수 있을 때 아이를 찾으러 올 게요. 혹여 하늘이 내린 아이라도 우리의 인연이니, 그 어느 경우이든 우리가 거두어야 할 것 같구려. 우리에게 해가 될 일도 아니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 작은 생명을 모른 채 버려둘 수 없으니……. 데리고 들어갑시다. 천천히 이름도 짓...”

“도화에요, 이 고운 여자아이의 이름을 도화라고 정하겠어요!!”


노인의 말을 대번에 잘라먹은 노부인은, 혹여나 아기가 추울까 더욱 품에 꼭 안으며 말했다. 놀랍게도 아이의 뺨에는 곱고 향기로운 복숭아꽃잎 한 장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추운 겨울, 그것도 첫눈이 세상을 삼킨 오늘이다.

중원에서 도화(桃花)는 춘삼월이나 되서야 구경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이의 뺨에 놓인 꽃잎은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듯 아직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단영과 백아는 이 기이한 인연에 대해 더 고민하고 시간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빠른 결단을 내린 후, 새로 얻은 인연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연륜가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아직 여아인지, 남아인지도 모르고 도화는 쫌…….”


노인이 작은 눈을 실룩이며 혼자 중얼거리는 동안, 노부인은 이미 아이를 안고 저만치 앞서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노인은 허둥지둥 부인을 뒤쫓아 따라 들어갔다.

절경의 천외봉에 한 폭의 수묵화 같이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삼키던 날, 아담한 초가집으로 이어지던 두개의 발자국도 서서히 눈에 잠기던 그 시간- 흰둥이라고 불리는 천하의 명물 야호만이 같이 들어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듯 초가집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그해 첫눈 오던 날, 도화는 백야와 단영부부의 소중한 아들이 되었다.

이날 자신의 뺨 위에 붙어 있던 복숭아 꽃잎을 평생 원망해야만 했던 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