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한복판에 거대한 제국 미국을 상징하는 세계무역협회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의 테러조직 ‘알카에다’요원에 의해 납치된 민간 여객기의 기체 충돌로 전세계인이 지켜 보는 가운데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역사상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본토가 적대 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거대한 제국 미국은 테러를 배후 지원 했다는 이유로 가난한 아프카니스탄과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 뜨리기 위해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서 단시일내에 점령해 버린다.
그 당시 어느 신문에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두고 ‘현대판 십자군전쟁’이라고 표현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한창 침공 하던 2003년에 미국의 작가 ‘월리엄 모나한’은 천년 前인 1096년부터 1272년까지 대략 200여년 동안 8차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을 함축적으로 그려낸 <킹덤 오브 헤븐>의 시나리오를 완성 하였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우리에겐 <글래디 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으로 잘 알려진 ‘리들리 스콧’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 킹덤 오브 헤븐 >은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중 2차 십자군 원정 35년 뒤인 1185년부터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의 영웅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던 1187년까지 실존인물인 주인공 ‘발리안(올랜드 블룸分)’의 이야기를 헐리우드 式 블록 버스터로 표현했다.
1억 3천만 달러....우리 돈으로 1천 5백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그 당시의 시대상황부터 이야기 하는게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을 것같다.
십자군 전쟁이란 무엇인가?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 당시 東西로 나눠진 중세 카톨릭 교회를 하나로 통합 하려한 로마교회의 종교적인 야심과 인구증가로 늘어난 힘을 외부로 돌리려 했던 봉건영주들의 정치적인 야심이 결탁하여 성지순례를 빙자하여 200여년에 걸쳐 자행 되었던 학살과 파괴의 역사다.
서기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유럽사회에 비로서 인정 받게된 기독교는 왕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천년왕국을 자랑하던 로마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때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비잔티움(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긴 후 자연스럽게 종교는 로마, 정치는 비잔티움으로 갈라지게 된다.
서기395년 거대한 로마제국은 테오데시우스 황제의 두아들에게 동서 로마제국으로 분할 상속되고, 81년만인 서로마는 흉노의 침입으로 인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진후 결국 용병 ‘오도 아케르’에 의해 마지막 황제 ‘아우구스 투스’가 살해 됨에 따라 멸망하게 된다.
서로마 멸망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전한 동로마는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이교도인 이슬람제국과의 경계지점에서 방패 막이를 역할을 한다.
11세기에 접어 들어 동방 지역에 부족형태로 분열되어 있던 투르크계 부족 중에 셀쥬크 족이 여타 부족들을 제압하고 강대국으로 급성장 하게 된다.
이들은 제국을 건설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11세기 중엽에는 페리시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서기1076년에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함락 시키면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이 불가피 하게 된다.
11세기 말엽에 교황 우르반 2세는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여 문 밖에서 맨발로 3일간 빌도록 한 교황 그레고리 7세의 <카놋사의 굴욕>이후 급성장한 교황 세력을 앞세워 동로마의 비잔틴 교회를 통합하고자 했다.
교회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중 하나가 성지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이었다.
십자군 운동은 長子相續으로 할 일이 없어진 봉건 제후들의 나머지 자녀들에겐 불만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봉건제도 하에서의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회를 박탈 당한 일반 평민들에겐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었고,
또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서 늘어난 기사계급을 정리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은 봉건 제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1096년 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3개지역에서 기사계급만 10만명이 포함된 총 60만의 십자군이 Godfrey의 지휘하에 동로마를 도와 주고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기나긴 원정길에 오르면서 200백년간의
학살과 파괴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1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지 90년 정도가 지난 서기1185년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대장장이로 살아 가던 ‘발리안( 올랜드 블롬分)’은 병으로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아내마저 자살하자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 졌다며 놀리는 司祭를 살해하면서 영화는 시작 된다.
‘발리안’의 生父임을 고백하는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리암 니슨分)’를 만나 聖地 <예루살렘>을 향하는 도중 부상을 입고 죽어 가는 生父에게 기사 작위를 물려 받는다.
마침내 도착한 聖地 <예루살렘>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황제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分)’가 평화공존파인 충실한 신하 ‘티베리아스’의 보살핌을 받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癩病에 걸린 황제의 쇠약을 틈타 전쟁광인 ‘기드 뤼시냥’과 ‘레이놀드’는 틈만나면 무슬림과의 전쟁을 확책한다.
‘기드 뤼시냥’과 정략 결혼한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分)’와 사랑이 싹튼 ‘발리안’은 生父에게 상속 받은 領地로 귀환해 살기 좋은 땅을 가꾸기 위해 신분을 초월한 노력을 기울인다.
임종을 맞은 황제는 성실한 ‘발리안’에게 공주와 결혼을 해서 전쟁광들을 제거하고 聖地 <예루살렘>을 지켜 주기를 간청하나 명분을 중시하는 ‘발리안’에게 거절 당한다.
황제의 임종으로 皇位를 물려 받은 ‘시빌라 공주’는 자시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은 ‘발리안’에 대한 반감으로 황제 자리를 ‘기드 뤼시엥’에게 물려 주면서 사막은 또다시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기드 뤼시엥’이 일으킨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 가고 지략가 ‘살라딘’으로부터 남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라딘’은 聖地 <예루살렘>을 담보로 협상을 해서 수많은 사람의 무덤이 되어 버린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다시금 프랑스의 이름 없는 대장쟁이로 돌아 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발리안’의 聖地 < 예루살렘 >
으로의 旅程은 종교적 이념이나 정치적인 야심과는 전혀 관계 없는
개인적인 속죄와 생존의 旅程일 뿐이다.
‘리들리 스콧’ 監督은 ‘발리안’의 旅程을 통해 천년 前에 일어 났던
십자군 전쟁의 성격을 규정 하고자 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수하게 출발했던 1차 원정 십자군들이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안에 살고 있던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 2만을 학살하고 나서 善을 행하려고 어쩔 수 없이 惡을 행하게 되었다는 기독교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상속 받은 메마른 領地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발리안’의 작은 노력은 어쩌면 거대한 음모 속에 학살과 파괴로 점철된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 하려 했던 서구식 사고에 대한 감독의 조롱이 담긴 장면으로 여겨졌다.
하늘의 왕국으로 생각 했던 聖地 <예루살렘>은 우르살림(Ursalim)이라 하여 <신이 평안을 주시도록>이라는 뜻이며, 아라비아어로는 이 도시를 쿠두스(성지)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만 있는 곳이 아니라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승천한 장소로 알려진 성스러운 도시이며 유대인에게는 ‘통곡의 벽’이 남아 있는 성지다.
서기 638년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 교도들은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성지 방문을 허용 했지만 종교적,정치적인 야심에 의해 “야만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유린 했으며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노예로 전락 시켰다”는 교황 우르반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200백년동안 서구 사회를 엄청 변화 시켰다.
황제까지 破門 시켰던 교황권은 거듭된 십자군 전쟁의 실패( 1차 원정이후 나머지 7차는 성지 회복 실패)로 훗날 종교 개혁의 실마리와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인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하였고,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동서간의 문화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신대륙 발견 등 대항해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지만 기독교를 대표하는 유럽과 이슬람을 대표하는 近東 지역은
십자군 전쟁후 지금까지 갈등과 반목을 겪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진정한 영웅은 서구사화를 상징하는 ‘발리안’같은 기사 계급이 아니라 차라리 그 당시 야만인으로 평가 받았던
‘살라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이슬람 교도 2만명의 흘린 피가 강물이 되도록 학살한 십자군들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이슬람의 ‘탈리오 법칙’에 의거 응징할 기회가 있었지만
‘살라딘’은 포로로 잡은 십자군들에게 관용을 베푼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어쩌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향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향 건설을 위해 일으킨 십자군 전쟁으로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이
학살 되었고 야만인의 문화라 칭했던 이슬람 문화들이 더 야만적으로 파괴 되었지만 침략전쟁인 십자군 전쟁에 대해 카톨릭이나 기독교 등 전쟁의 주체 측에서 지금까지 반성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발리안’이 침략해서 빼앗은 자신의 領地에서 善政을 베풀기 위해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땀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서구 사회의 이슬람권 침략에 대한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비록 십자군 전쟁은 800년전에 끝을 맺었지만 20세초 列强에 의한 아랍권 침략, 그리고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과의 갈등, 보스니아 사태 ,그리고 최근의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새로운 개념의 십자군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천년 前의 십자군 전쟁이 종교적,정치적인 야심의 發露 였다면
현대의 십자군 전쟁은 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는 것일까?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3차 십자군 원정을 함께 떠나자는 영국의 리처드 왕의 제안을 ‘발리안’은 ‘자신은 대장장이 일뿐이라’며 거절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스펙타클한 전쟁씬, 아름다운 공주와의 사랑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역사의 遊戱인가를 나타내지 않았나 생각했다.
<PS>
주인공인 이벨린의 ‘발리안’이나 이슬람의 지략가 ‘살라딘’은
그 당시의 실존 인물이다.
극중에서 황제 볼드윈4세가 예루살렘 城에 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정예 기사들을 이끌고 ‘살라딘’의 군대에 맞서다가 포로가 된 ‘발리안’에게
“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당신네 예언자 예수와 같은 힘이 없어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포로로 잡은 기사들은 다시 우리에게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석방할거요”라고 말했다 한다.( 타리크 알리의 小說 ‘술탄 살라딘’에서 인용 )
영화에서처럼 聖地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 함락 당하고
그 충격에 교황 우루반3세는 急死 했고 그 후 <예루살렘>은
셸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다.
후에 몽고족의 침략을 받기도 했고 16세기경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비로서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 갔으며 지금은 東西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유대교,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도가 공존하며 살고 있으니,
역사학자 ‘'E.H 카‘의 “ 歷史는 過去와 現在의 끊임없는 對話”라는 정의가 새삼 생각나기도 한다.
聖地를 둘러싼 虐殺과 破壞의 歷史(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보고..)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한복판에 거대한 제국 미국을 상징하는 세계무역협회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의 테러조직 ‘알카에다’요원에 의해 납치된 민간 여객기의 기체 충돌로 전세계인이 지켜 보는 가운데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역사상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본토가 적대 세력에 의해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거대한 제국 미국은 테러를 배후 지원 했다는 이유로 가난한 아프카니스탄과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공을 들인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 뜨리기 위해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서 단시일내에 점령해 버린다.
그 당시 어느 신문에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두고 ‘현대판 십자군전쟁’이라고 표현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한창 침공 하던 2003년에 미국의 작가 ‘월리엄 모나한’은 천년 前인 1096년부터 1272년까지 대략 200여년 동안 8차에 걸쳐 일어났던 <십자군 전쟁>을 함축적으로 그려낸 <킹덤 오브 헤븐>의 시나리오를 완성 하였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우리에겐 <글래디 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으로 잘 알려진 ‘리들리 스콧’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 킹덤 오브 헤븐 >은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중 2차 십자군 원정 35년 뒤인 1185년부터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의 영웅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던 1187년까지 실존인물인 주인공 ‘발리안(올랜드 블룸分)’의 이야기를 헐리우드 式 블록 버스터로 표현했다.
1억 3천만 달러....우리 돈으로 1천 5백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그 당시의 시대상황부터 이야기 하는게 영화를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을 것같다.
십자군 전쟁이란 무엇인가?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 당시 東西로 나눠진 중세 카톨릭 교회를 하나로 통합 하려한 로마교회의 종교적인 야심과 인구증가로 늘어난 힘을 외부로 돌리려 했던 봉건영주들의 정치적인 야심이 결탁하여 성지순례를 빙자하여 200여년에 걸쳐 자행 되었던 학살과 파괴의 역사다.
서기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유럽사회에 비로서 인정 받게된 기독교는 왕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천년왕국을 자랑하던 로마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때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비잔티움(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긴 후 자연스럽게 종교는 로마, 정치는 비잔티움으로 갈라지게 된다.
서기395년 거대한 로마제국은 테오데시우스 황제의 두아들에게 동서 로마제국으로 분할 상속되고, 81년만인 서로마는 흉노의 침입으로 인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진후 결국 용병 ‘오도 아케르’에 의해 마지막 황제 ‘아우구스 투스’가 살해 됨에 따라 멸망하게 된다.
서로마 멸망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발전한 동로마는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이교도인 이슬람제국과의 경계지점에서 방패 막이를 역할을 한다.
11세기에 접어 들어 동방 지역에 부족형태로 분열되어 있던 투르크계 부족 중에 셀쥬크 족이 여타 부족들을 제압하고 강대국으로 급성장 하게 된다.
이들은 제국을 건설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11세기 중엽에는 페리시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강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서기1076년에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을 함락 시키면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충돌이 불가피 하게 된다.
11세기 말엽에 교황 우르반 2세는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여 문 밖에서 맨발로 3일간 빌도록 한 교황 그레고리 7세의 <카놋사의 굴욕>이후 급성장한 교황 세력을 앞세워 동로마의 비잔틴 교회를 통합하고자 했다.
교회 통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중 하나가 성지 ‘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이었다.
십자군 운동은 長子相續으로 할 일이 없어진 봉건 제후들의 나머지 자녀들에겐 불만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봉건제도 하에서의 엄격한 신분제도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회를 박탈 당한 일반 평민들에겐 신분상승의 기회가 되었고,
또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서 늘어난 기사계급을 정리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은 봉건 제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1096년 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3개지역에서 기사계급만 10만명이 포함된 총 60만의 십자군이 Godfrey의 지휘하에 동로마를 도와 주고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기나긴 원정길에 오르면서 200백년간의
학살과 파괴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1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된지 90년 정도가 지난 서기1185년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대장장이로 살아 가던 ‘발리안( 올랜드 블롬分)’은 병으로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아내마저 자살하자 그녀가 지옥으로 떨어 졌다며 놀리는 司祭를 살해하면서 영화는 시작 된다.
‘발리안’의 生父임을 고백하는 이벨린의 영주 ‘고프리(리암 니슨分)’를 만나 聖地 <예루살렘>을 향하는 도중 부상을 입고 죽어 가는 生父에게 기사 작위를 물려 받는다.
마침내 도착한 聖地 <예루살렘>은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황제 ‘볼드윈 4세(에드워드 노튼分)’가 평화공존파인 충실한 신하 ‘티베리아스’의 보살핌을 받아 다스리고 있다.
그러나,
癩病에 걸린 황제의 쇠약을 틈타 전쟁광인 ‘기드 뤼시냥’과 ‘레이놀드’는 틈만나면 무슬림과의 전쟁을 확책한다.
‘기드 뤼시냥’과 정략 결혼한 ‘시빌라 공주(에바 그린分)’와 사랑이 싹튼 ‘발리안’은 生父에게 상속 받은 領地로 귀환해 살기 좋은 땅을 가꾸기 위해 신분을 초월한 노력을 기울인다.
임종을 맞은 황제는 성실한 ‘발리안’에게 공주와 결혼을 해서 전쟁광들을 제거하고 聖地 <예루살렘>을 지켜 주기를 간청하나 명분을 중시하는 ‘발리안’에게 거절 당한다.
황제의 임종으로 皇位를 물려 받은 ‘시빌라 공주’는 자시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은 ‘발리안’에 대한 반감으로 황제 자리를 ‘기드 뤼시엥’에게 물려 주면서 사막은 또다시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기드 뤼시엥’이 일으킨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 가고 지략가 ‘살라딘’으로부터 남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발라딘’은 聖地 <예루살렘>을 담보로 협상을 해서 수많은 사람의 무덤이 되어 버린 <예루살렘>을 뒤로 하고 다시금 프랑스의 이름 없는 대장쟁이로 돌아 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발리안’의 聖地 < 예루살렘 >
으로의 旅程은 종교적 이념이나 정치적인 야심과는 전혀 관계 없는
개인적인 속죄와 생존의 旅程일 뿐이다.
‘리들리 스콧’ 監督은 ‘발리안’의 旅程을 통해 천년 前에 일어 났던
십자군 전쟁의 성격을 규정 하고자 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수하게 출발했던 1차 원정 십자군들이 예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안에 살고 있던 유대교도와 이슬람교도 2만을 학살하고 나서 善을 행하려고 어쩔 수 없이 惡을 행하게 되었다는 기독교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있다.
상속 받은 메마른 領地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한 ‘발리안’의 작은 노력은 어쩌면 거대한 음모 속에 학살과 파괴로 점철된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 하려 했던 서구식 사고에 대한 감독의 조롱이 담긴 장면으로 여겨졌다.
하늘의 왕국으로 생각 했던 聖地 <예루살렘>은 우르살림(Ursalim)이라 하여 <신이 평안을 주시도록>이라는 뜻이며, 아라비아어로는 이 도시를 쿠두스(성지)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만 있는 곳이 아니라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승천한 장소로 알려진 성스러운 도시이며 유대인에게는 ‘통곡의 벽’이 남아 있는 성지다.
서기 638년부터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슬람 교도들은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성지 방문을 허용 했지만 종교적,정치적인 야심에 의해 “야만인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유린 했으며 성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노예로 전락 시켰다”는 교황 우르반 2세의 호소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200백년동안 서구 사회를 엄청 변화 시켰다.
황제까지 破門 시켰던 교황권은 거듭된 십자군 전쟁의 실패( 1차 원정이후 나머지 7차는 성지 회복 실패)로 훗날 종교 개혁의 실마리와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인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하였고,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동서간의 문화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신대륙 발견 등 대항해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지만 기독교를 대표하는 유럽과 이슬람을 대표하는 近東 지역은
십자군 전쟁후 지금까지 갈등과 반목을 겪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진정한 영웅은 서구사화를 상징하는 ‘발리안’같은 기사 계급이 아니라 차라리 그 당시 야만인으로 평가 받았던
‘살라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이슬람 교도 2만명의 흘린 피가 강물이 되도록 학살한 십자군들에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이슬람의 ‘탈리오 법칙’에 의거 응징할 기회가 있었지만
‘살라딘’은 포로로 잡은 십자군들에게 관용을 베푼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어쩌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이상향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향 건설을 위해 일으킨 십자군 전쟁으로 수많은 이슬람교도들이
학살 되었고 야만인의 문화라 칭했던 이슬람 문화들이 더 야만적으로 파괴 되었지만 침략전쟁인 십자군 전쟁에 대해 카톨릭이나 기독교 등 전쟁의 주체 측에서 지금까지 반성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발리안’이 침략해서 빼앗은 자신의 領地에서 善政을 베풀기 위해 현지 주민들과 어울려 땀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서구 사회의 이슬람권 침략에 대한 미안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비록 십자군 전쟁은 800년전에 끝을 맺었지만 20세초 列强에 의한 아랍권 침략, 그리고 이스라엘과 중동국가들과의 갈등, 보스니아 사태 ,그리고 최근의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새로운 개념의 십자군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천년 前의 십자군 전쟁이 종교적,정치적인 야심의 發露 였다면
현대의 십자군 전쟁은 또 어떤 명분을 내세우는 것일까?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3차 십자군 원정을 함께 떠나자는 영국의 리처드 왕의 제안을 ‘발리안’은 ‘자신은 대장장이 일뿐이라’며 거절하며 끝을 맺는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스펙타클한 전쟁씬, 아름다운 공주와의 사랑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이 얼마나 부질없는 역사의 遊戱인가를 나타내지 않았나 생각했다.
<PS>
주인공인 이벨린의 ‘발리안’이나 이슬람의 지략가 ‘살라딘’은
그 당시의 실존 인물이다.
극중에서 황제 볼드윈4세가 예루살렘 城에 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 정예 기사들을 이끌고 ‘살라딘’의 군대에 맞서다가 포로가 된 ‘발리안’에게
“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당신네 예언자 예수와 같은 힘이 없어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포로로 잡은 기사들은 다시 우리에게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석방할거요”라고 말했다 한다.( 타리크 알리의 小說 ‘술탄 살라딘’에서 인용 )
영화에서처럼 聖地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 함락 당하고
그 충격에 교황 우루반3세는 急死 했고 그 후 <예루살렘>은
셸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는다.
후에 몽고족의 침략을 받기도 했고 16세기경 오스만 터어키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비로서 영국의 통치하에 들어 갔으며 지금은 東西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유대교,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도가 공존하며 살고 있으니,
역사학자 ‘'E.H 카‘의 “ 歷史는 過去와 現在의 끊임없는 對話”라는 정의가 새삼 생각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