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4)

운운200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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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햇살이 가장먼저 닿는 곳 (3)-

 

 

 

 


신궁선녀 한영.

그녀는 조준한 과녁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녀의 시야는 매보다도 넓었고, 빠르기는 범과도 능히 견줄 법 할 것이라고 호사가 들은 말한다. 신궁이라는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활을 다루는 궁사다. ‘신궁선녀’는 그녀의 무서운 활의 정확도와 상상을 초월하는 사정거리, 더불어 그녀의 활을 쏘는 자태가 선녀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이다.

30대 초반의 한영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 한 편이었다. 활을 쏘기 위해 적당히 붙은 팔과 다리의 근육 그리고 봉긋한 가슴, 탄력적이고도 늘씬한 복근은 그녀의 수련의 깊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몸에 착 달라붙어 유감없이 멋진 몸매를 드러내주는 핏빛의 붉은 경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선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또한 찰라 간에 이루어지는 매끈한 탈궁과 과녁의 머리만을 정확히 가격하여 수박처럼 터트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그녀의 출수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된다.

손속에 인정이 없고 얼음같이 냉정하기로 소문난 그녀!

그런 그녀가 지금 평범해 보이는 예닐곱 살짜리 꼬마아이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향기로운   내음이 유혹하는 복숭아밭 속으로 걸어들어 가고 있었다. 간혹 조잘거리는 꼬마를 향해 잠시지만 미소를 보이기도 하면서.


“여기가 입구에요. 따라오세요!”


‘헉!’

꼬마 녀석을 따라 한걸음 도원 안에 발을 들여 놓은 한영은 순간 너무 놀라, 혼이 달아 날 뻔 했다. 지옥의 광경이 이러할까!!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어린시절의 끔찍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는 그녀였다.


펄펄 끓는 용암이 군데군데 솟아오르는 음산하고 어두운 척박한 대지.

머리통이 박살난 괴물들이 엉겨 붙어 서로를 뜯어 먹는 끔찍한 광경!

한 놈이, 누렇게 고름이 흘러내리는 다른 괴물의 팔을 덥석 뜯어먹었다.

쿠오오오- 

팔을 뜯긴 괴물이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곧바로 자신의 팔을 뜯고 있는 괴물의 눈으로 푸욱 손을 쑤셔 넣었다. 그놈의 시뻘겋고 누런 눈알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지옥의 야차들!


신궁선녀라고 불리며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냉정함을 잃지 않던 얼음마녀 한영.

그녀도 이 끔찍스러운 광경에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이를 잡고 있던 단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순간 꼬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눈을 떠요! 보이는 것을 피하지 말아요! 정면으로 쳐다보고 그것이 환상이라는 걸 계속 마음속으로 외우세요!”


그랬다. 

너무 끔찍스러운 광경에 잠시 한영이 이성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발을 내딛은 곳은 분명히 화원 이였다. 그리고 이곳 장백산, 천외봉에 이런 지옥이 있을 리가 없다. 한영은 똑바로 괴물들을 주시하고 되뇌었다.


‘이건 환영이다. 주술사인 내가 그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중원의 대부분의 무림인들이 그녀를 더욱 두려워하는 이유는 대 법술사 환사제혁의 직전 제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가 내쏘는 활에는 냉기나 화염의 주술이 함께 시전 되므로, 더욱 정확하고 무서운 위용을 내뿜는다. 한영이 무림의 공포인 환사의 제자라는 것은 이미 언급했듯이 천하에 두루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그녀의 화려한 궁술에 매료되어 그녀의 깊은 뿌리는 주술과 법술일 수 밖 에 없다는 것을 간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얼음마녀 한영의 진정한 숨겨진 힘이자 두려움이었다.


잠시 후 꼬마 녀석은 그녀의 손을 놓고, 조그마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분은 그녀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손동작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도저히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엄지와 검지와 중지가 삼합만큼 회전하여 육각의 틀을 만든 후, 다시 어지럽게 흩어지며 팔각의 괘를 그려냈다. 팔각진괘와 육합진의 수인의 모양을 정확하게 구현해 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수인이 교묘하게 섞인 놀랄만한 응용이었다.

소년의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운 수인을 맺음으로, 지옥의 야차들은 아쉽다는 듯 마지막 포효를 내지르며 희뿌옇게 안개처럼 흐려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중원의 누구도 이렇게 교묘한 합진을 시도해 본 이는 없을 것이다.

꼬마의 파훼법으로 볼 때, 하나도 구현되기 힘든 진이, 적어도 세 개 이상 합쳐져 있음이 틀림없었다. 제갈공명이 온다 해도 진을 깨트리기는 힘드리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평범한 화원이 아니었다.

절진 중의 절진이였다.


“여기서는,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가장 무서운 것이 보인대요.

 전 여기서면, 아빠가 한 50명쯤 계속 수련하자고 쫓아와요! 헤헤. 흰둥아 너도 잘 따라와.”

"멍!!멍멍!"

부끄럽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꼬마는 다시 한영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 뒤를 흰털의 야호가 무심하게 따랐다. 인간의 눈을 현혹하는 환술도 영물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듯하다. 작은 손에 끌려가던 한영은 꼬마의 순순함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본 환영은 자신이 만든 것.

그래서 어린시절의 그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랬구나.. 이런 짓거리를 해놓을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가 않지.

자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화원에 이런 짓을 해두다니. 위가들이란!’


그녀는 위씨 집안 핏줄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대며 꼬마를 따라 올라갔다.

아마 정상에 이르는 동안 서너 번은 더 깜짝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한번은 일렁이는 불꽃이 가슴팍부터 생겨나 옷 전체로 퍼져나가 기겁을 하고 땅바닥을 굴렀다. 물론 진에 의한 환각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생생한 느낌과 온몸이 타버릴 것 같은 참을 수 없는 뜨거움! 그리고 옷가지가 타는 냄새까지! 촉각, 청각, 시각 심지어 후각까지 지배하는 진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 후로도 한영은 자신의 몸이 녹아내리는 광경을 목격해야했고, 발등을 뚫고 나오는 얼음송곳 위를 걸어야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그녀도, 그때마다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스러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뿌직!

그럴수록 이마의 십자 골이 깊이 패는 그녀였다.


‘제길! 이 위가 들을 그냥!’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속의 새로운 구역이 위협해 올 때마다 소년은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수인을 맺었다. 혹은 진의 열쇠가 되는 돌을 돌려놓기도 했다. 어떤 때는 나뭇가지를 휘어 놓기도 했으며, 개울에 돌멩이를 던져 넣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랑마냥 상냥한 설명을 조잘거리고,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모양을 보니, 제 부모에게서 그렇게 배워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환사 위제혁을 스승으로 둔 자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이런 끔찍한 절진 안에서 괴물 같은 환영을 친구삼아 성장했겠구나 싶었다. 그녀는 어린시절의 자신이 떠올라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처음에 잡기 주저했던 꼬마의 손이지만 이제는 그녀가 더욱 꼭 잡았다.


두시진. 

인생에 견주어 볼 때, 몹시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허나 얼음마녀, 신궁한영 그녀는 지금, 지난 20년간보다 더 많은 감정의 변화를 이 시간동안 경험하고 있었다.

마치 선계의 심부름꾼 같이 아름다운 소동의 외모는 물론이고, 이러한 절진을 놀이하듯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시기적절하게 수인을 응용해내는 능력은, 결코 내력이 평범한 소년은  아닐 것이라고 그녀를 직감하게 했다.

아마도 위씨 일가는 모두들 오래오래 아주 길~게 살수 있을 듯하다.

배터지게 욕을 얻어먹었을 테니.


두 시진쯤 걸어왔을까.

도원너머로 아담히 서있는 집이 하나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위에 섬. 신선이 산다는 그곳에 소박하게 서있는 작은 초가집 한 채.

그 집 앞에, 여기서는 너무 멀어서 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서있었다.


“다 왔어요! 저기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에요!! 엄마!! 아빠!!”

"멍!!멍멍!"


소년은 손님을 버려둔 채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한품에 안기려는 듯이.

그래도 아직은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꼬마임이 틀림없다.

달려가는 소년의 뒤를 충직한 충견 야호가 따랐다.


궁사(弓師)인 한영은 누구보다도 시력이 발달한 사람이다.

벌써 그들, 특히 그 중 초가집 앞에 서서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신궁선녀 위한영.

얼음마녀 위한영.

지난 삼십년간 자신의 심장을 굳어버리게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해서,

이제는 얼음마녀라는 별호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는데.

애쓴 보람도 없이…….

그녀의 뺨 위로 덧없는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그리운 얼굴.

그녀를 버려둔 채, 자신의 인생을 찾아서 나비처럼 날아가 버린-

증오하려고 수만 번 곱씹어도 결국은 눈물짓게 만드는

그 얼굴이 지금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 여러분..다들 좋은 주말, 멋진 주말되세요(^^)

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