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천하 - (2) 최악의 날 - 그를 만나다.

아랑200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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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당천하 ********

 

 


2. 최악의 날 - 그를 만나다.


정확히 일주일전 대학동창의 부탁으로 대타아닌 대타를 뛰었다. 일명 가짜 맞선 女.  그녀에게 대타 맞선을 주선한 친구는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 그 자리에 그녀가 대신 나가 줄 것을 부탁해 왔다. 사실 요즘 들어 흔하디 흔한 24시 체인점 대타 아르바이트에 신물이 난 그녀로써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앞뒤 재보지도 않고, 옷 한 벌과 구두 게다가 덤으로 멋진 핸드백까지 얻으며, 그 참한 맞선 男을 만나러 우리 나라서도 꽤나 유명하다던 무궁화 5개 짜리  인터블호텔로 향했다.

 

딸랑!

 

그녀는 TV에서 보던 것처럼 예쁘장한 호텔 여직원이 그녀가 찾는 사람의 이름을 백 보드 판에 가지런히 적어서  딸랑, 딸랑거리며, 호텔커피숍 라운지를 누비고 있는 모습을 유유히 지켜보았다. 그때 그녀의 등뒤에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날 찾는 겁니까?”

 

생소한 느낌. 그 남자의 저음은 그녀를 무척이나 설레게 했다. 적어도 그와 대화를 시작하기 5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네?  그럼 댁이 ........ 전 그러니까..... ”

 

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그녀는 그의 이름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맞선볼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나오기는 한 건지 그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눈만 말똥거리는 맞선女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실소가 새어나왔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최대한이 맞다 면, 내가 바로 최대한이오.”

 

그녀가 남자의 이름을 초조하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 남자가 더욱더 허스키 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그의 이름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아! 라는 감탄사가 그녀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네! 아 저기 그러니까.  저   저는  유..?”

 

그녀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평소 명석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신의 머리가 서서히 마비되는 것처럼 자꾸만 말을 더듬어야 했다. 게다가 친구의 이름을 말한다는 게 그만 자신의 이름을 말할 뻔했다고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나 보다. 그런데 혹시 이 여자 머리가 무척이나 나쁜 건 아닌지..... 여자의 말투나 행동이 의심이 들 정도로 어색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는 속으로 혀를 찾다.

 

“성함이 조 소희씨 맞습니까?”

 

그가 친구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에도 하마터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하려 했다는 생각에 뜨끔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행이 그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내참, 자신의 이름을 남이 말해줘야 알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여자네.’

 

그는 더 이상 그녀의 이상스런 행동에 개념 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별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나온 게 아니었으니까.  그는 호텔커피숍 창가로 걸음을 옮기며, 생각보다 다소곳해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자리를 했다.

 

“뭐 라도 마실까요?”

 

어제 밤 그의 어머니가 들이미는 사진 한 장을 제대로 보지 않고 나온 게 후회될 정도로 그만큼 그는 그녀에게 지루함을 느꼈다.  너무도 평범한 그녀의 외모와 모습에 건성으로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려 맘먹은 대한은 그래도 어머니의 당부를 생각해 자신의 이름처럼 최대한 그녀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냥 아무 거 나요.”

 

그녀는 당연히 알아서 시키지 ‘뭘 뭍 냐’는 듯 멀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아무 거 나요’라는 식상한 말을 던졌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데로 너무도 다소곳하고, 참(?)해 보여서 정말 자신이 선을 보러 나온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한은 그녀의 다소곳하다 못해 평범해 보이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것도 소신 없게 음료수를 시키는 뭇 여성들과 같다고 생각하니 그녀와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지루하고 실증이 났다.

 

“그래요..  아무 거 나라..  그러지 말고, 진짜 좋아하는 거 시키지 그래요?”

 

그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녀에게 물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의 말에 놀랐다는 듯 다소곳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홱~하고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 신지....”

“아무 것도. 그냥 정말 좋아하는 걸로 시키라고 하는 말이요. 신경쓰지 말아요.”

 

‘기막히다.’ 그녀는 지금 친구 대타이기에 최대한 선을 보러 나온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에 있는 좀 생긴 남자는 그녀에게 시비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 거 나’ 라고 한 게 뭐가 잘못 되기라도 한 듯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제대로 된 무언가를 다시 시키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제 와서 신경 쓰지 말라니....  그 남자의 말이 그녀를 더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하!  글쎄요. 그럼 얼음 동동 들어간 시원한 사이다나 마시죠. 뭐!”

 

그녀는 친구의 부탁으로 30분 아니 그보다 잘되는 날엔 저녁까지 먹고 갈 수 있다는 작은 기대로 나왔건만, 그녀의 기대이하로 이 남자는 생긴 거와는 영 판 다르게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는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말투에 기분이 나빴는지 조금전 보이던 다소곳한 이미지를 훌훌 벗으며, 어느새 그녀가 사이다를 주문했다. 그녀의 모습이 약간 의외라고 생각하며, 그도 얼떨결에 그녀와 똑같은 걸로 주문을 했다.

 

‘이거 뭐야. 얌전한 모드는 접대용인가? 왠지 저 여자의 실제모습이 보고싶어 지는 군. 하하하’

 

약간의 신경전을 뒤로하고, 호텔종업원이 두 사람 앞으로 투명한 얼음이 가득 들어간 사이다를 가져다 놓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고 투명한 유리잔 속의 사이다를 단숨에 들이켰다. 너무 갑자기 많이 마신 탓일까? 그녀의 입에서 난데없이 꺼 억~ 거리며, 트림이 나와버렸다.

 

“....??!!”

“흡.!”

 

그는 어이가 없었다. 난생처음 여자의 광대한 트림소리를 들어 버린 그는 ‘기막히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남자인 그도 간신히 참고 있던 트림을 여자가 먼저 해버리다니... 그의 얼굴이 황당 그 자체로 울 그 락, 불 그 락 변했다. 그녀도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스스로 놀라 늦었지만, 입을 손으로 막아 버렸다.

 

“거. 참, 혹시 내가 맘에 안 드는 겁니까?”

 

그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나름 데로 젠틀맨인 그는 한번도 이런 일을 당해 본적이 없어서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불쾌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아무리 ‘대타’라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외모에 뻑! 가버린 그녀였기에 그의 앞에서 함부로 트림을 해버린 지금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를 어디서 다시 볼까 하는 마음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막 나가 보기로 했다.

 

‘여자가 트림 좀 했다고, 저런 얼굴을 하다니..... 소희야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대학동창인 얌전한 조소희가 이 사실을 아는 날엔 별로 좋은 소리는 못 들을게 자명하지만, 어차피 그녀가 관심 있어 하는 남자가 아니 여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했다.

 

“저 그런 게 아니 라요.”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왜 그에게 변명 따위를 해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 도 없이 대한은 기분 나쁘다는 투로 자신의 말만 계속 했다.

 

“이런 경우 내가 뭐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어차피 나도 댁이 맘에 있어서 나온 건 아니지만, 이거 정말 불쾌하군요. 다른 여자들은.....”

 

그녀의 앞에 좀 생긴 것 같은 그는 어쩌면 이웃에 있는 규식 놈보다 더 쪼잔한 남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트림 한번 했다고, 다른 여자 운운하는 밥맛없는 남자를 보며, 그녀는 친구의 안위를 걱정했다.

 

‘소희야 너 오늘 안나오길 정말 잘했다. 남자 인물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고, 아무튼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네. 아!  세상에 우리 형부처럼 멋진 남자는 이 세상에 아마 죽어도 없을 거다.’

 

탕!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딴청만 피우다니 대한은 이런 경우 자신의 학생처럼 그녀를 나무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 또 한심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는 반대로 곧 죽어도 남자라고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 했다.

 

“이봐요. 그렇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어나면 될 거 아니 요!”

 

결국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녀와 헤어지 잔  말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그의 행동에 조금 미안해져서 그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렇게 여자들에게 사랑 받고 싶어요?”

 

그러나 엉뚱하게도 그녀의 입을 비집고 나온 말은 그의 뒤통수를 때리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는 양의 탈을 쓰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방금 전 그녀가 한말을 곱씹었다.

 

‘뭐..... 뭐라고,  사  사랑 받고 싶냐 구?’

 

그녀는 필시 그가 맘에 안 들거나 일부러 그를 골탕먹이러 나온 사람처럼 아무런 말이나 막하는 여자였다. ‘이런 젠장! 어머니는 대체 이 여자의 어디가 참하다는 건지.... 어머니도 사람 보는 눈이 다되신 거야. 암.’

 

“이봐, 조소희씨 난 여자한테 사랑 받고 싶어 안달 난 사내가 아니라고, 난!”

 

그는 그녀에게 이런 변명 같지도 않는 말들을 늘어놓는 자체가 화가 났다. 적어도 오늘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알아주는 인물에 제법 똑똑한 선생이란 소릴 들으며,  32년 살아온 그였는데.......  그녀를 만난 지금 하루아침에 여자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남자로 전락해 버리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볼 땐 당신이란 남자는 여자한테 ‘사랑해 줘 제발‘ 이렇게 애원하는 사람처럼 보인 다 구 요. 적어도 내 눈엔...”

 

그녀는 남자들이 한평생 여자에게 함부로 말하며, 함부로 행동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여자 앞에서는 늘 사랑을 구걸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의 형부도 한 여자에게 사랑을 애걸하고 있지 않는 가...... 그녀도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 남자는 절대로 안이라고 생각했다.

 

‘허!  기막혀, 코 막혀, 목구멍까지 막히려 하다니.......... 자신을 언제 봤다고, 멋대로 말하는 군’. 그녀는 정말 그의 취미에 구미에 안 맞는 여자였다.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야단법석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녀와 맞선 같지도 안은 맞선을 당장에 쫑 내고 싶었다.

 

“그래? 그렇담 잘됐군.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고 당신이 유일한 여자라 할지라도 당신 같은 여자랑 절대로 사랑에 허우적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아, 오늘 계산은 내가 하지”

“하!  피차 일반입니다. 흥!”

 

이 상황에도 지지 않고 그에게 맞서며, 앞서 나가는 그녀의 뒤 꼭지를 보며, 그는 낮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굳이 계산을 한다는 쪼잔한 그를 뒤로 한 체 그녀는 그가 먼저 나가려 하는 호텔 커피숍의 회전문을 밀며, 서둘러 먼저 나와 버렸다.


“안녕하세요?”

 

몽상에 잠겨 있던 그녀의 귀에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파고  들었다. 그녀는 혹시나 그가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않을 까 우려해서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저,  어느 학생의 어머님 되시는지 제가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집요하게 질문을 하는 그를 보며, 난처한 그녀가 눈만 감았다 떴다. 때마침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려서 그녀는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교실로 서둘러 따라 들어가 버렸다.

 

“거 참,  선생인 나와 대화도 하기 싫다 이건가?”

 

그녀의 뒤에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여전히 그는 건방져 보였다. 그녀는 자꾸만 그를 의식하는 자신을 느끼며, 소란스런 교실을 둘러보았다. 교실 안은 자신들의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어 대는 학생들로 인해 잠시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 멀리 키가 큰 미주가 그녀의 눈에 들어 왔다. 왠지 집에서 볼 때 보다 더 반가운 마음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미주 어머님 되시는군 요?”

 

‘헉,  이 남자 뭐야. 언제부터 내 옆에 있었던 거지?‘

 

갑자기 그녀의 앞에서 말을 거는 그를 보며, 그녀는 혹시라도 그가 눈치 챌까봐 소리도 못 내고,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그는 그녀의 행동을 약간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미주의 엄마라고 생각한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미국에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들어오셨네 요.”

 

‘거참 선생이라 그런지 무척 수다스럽군. 남 이사 어떻게 들어오든 말든 나 오토바이 타고 들어 왔소, 왜!’라고 말해 주고 싶은걸 간신히 참으며, 그가 오해하도록 내버려둔 체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미주의 부모님은 외교관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외국에서 대부분을 생활하신다. 가끔 자신의 딸을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워낙에 고집이 쌘 미주가 그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삼촌인 형부 댁에 머물고 있었다.

 

“저번엔 미주 작은어머님이 오시는 바람에 참 미안했답니다. 하하하”

 

그녀가 곤란한 건 상관없다는 듯 그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기침을 하며, 개미 만한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해주었다.

 

“콜록! 네.. 네...  그렇게 되었답니다. 콜록~”

 

드디어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약간 감기기가 있어서 그런지 얼마 전 듣던 전화 목소리답지 않게 그의 귀에 속속 들어오는  미주엄마의 목소리는 정말로 감미로웠다. 게다가 미주의 엄마는 아이를 낳은 몸 같지 않게 아가씨 같은 몸매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물 먹은 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든 티가 전혀 나지 않는 게 그의 눈을 여러모로 즐겁게 해주었다.

 

‘흡,  최대한 너 몇 일 전 본 맞선 때문에 많이도 망가졌구나. 어디 여자가 없어서 학부모를 넘보는 거냐?’

 

그녀는 눈앞의 남자가 필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혼자서 히죽거리며 얼굴까지 붉히는 게 여간 맘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혹시나 그녀를 알아 본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보다 먼저 저 멀리 있던 미주가 어느새 급식을 하고 있는 그녀의 앞으로 쑥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바람에 당황하고 말았다.

 

“아줌마, 우리 선생한테 무슨 수작이야?  내가 침 발라 논 최대한선생한테 눈 좀 때시지... 그 리 고 입 좀 다물어 반찬에 침 떨어지겠다.”

 

평소보다 더 버릇없게 말하는 미주. 그것도 그녀의 귀에만 얄밉게 속 닥 거리는 미주의 행동에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정말 침 떨어질 정도로 입을 아!  하고 벌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하!  그런데 미주가 방금 한말이 무슨 말이었지?  뭐,  이런 왕 싸 가지를 침 발라놨다고! ’ 그녀의 머릿속이 온통 옆에서 국을 퍼주는 남선생 때문에 윙! 윙! 윙! 경고음이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싹싹 하게도 (적어도 다른 어머니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그는 그녀를 비롯한 수고하신 어머니들에게 시원한 드링크를 건 내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가 건 내는 드링크를 마시지 않고,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그대로 넣어 버렸다.

 

“아니 왜 드시지 안구요. ”

 

그는 학교에서 준비한 드링크가 그다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고하신 어머니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건 내 주었다. 그런데 미주의 엄마는 외국물을 먹어서 그런가 그가 봐도 상관없다는 듯 그따위 허 접한 비타민제는 필요 없다는 듯 바지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어 버렸다. 그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시를 내지 않고, 또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 아씨,  왜 자꾸 말을 걸고 그래.  내가 마시던지 말던지 그냥 냅  두고 당신 볼일이나 보라구. 제발.....’

 

그녀는 아직도 쓰고 있는 마스크를 벗지 않으며, 고개만 가로 저었다. 그는 생각했다. 미주의 어머니는 평소에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왠지 오늘은 아무런 ‘고작 한마디 정도  들은 게 다’라는 생각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껴야 했다. 아무래도 전화 상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담임인 그를 신뢰하고 싶지 않아 진 게 분명해 보였다. 나름 데로 잘생긴 담임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부심이 넘쳐나는 그에게 이처럼 매몰차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가 정말 못마땅했다.

 

“저 혹시 제가 무슨 실수라도......”

 

그는 다른 어머니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지금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고, 그녀에게 말을 시키려 했다. 그녀는 생각 같아선 그 날 일만 아니었다면, 미주의 엄마노릇을 당장에 그만 두고 싶었지만, 여태껏 한 거짓말이 아까워 도저히 발 킬 수 없었다.  때마침 울린 그의 전화가 그녀를 살려 주었다.

 

“여보세요. 네.  아...  네?!”

 

그는 무슨 전화를 받고 있는지 그녀가 조용히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댔다. 아마도 그가 따라다니는 여자 중 한 명 일거라 생각하며, 그녀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규식의 애마에 가뿐히 올라타고 누가 볼세라 성남고등학교를 재빨리 등지고 사라졌다.

 

“에고, 삭신이야!  규식아 어디에 있냐?”

 

아파트 앞 놀이터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를 두드리며, ‘바람이’의 주인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까지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대답을 했다.

 

“우리 ‘바람이’는?”

“이 놈이  이 누나는 걱정이 안 되고 고작 고철 덩어리 하나에 벌벌 떨다니 네가 정녕 내 단 매에 죽고 잡냐?”

“어...어...  그래 그래 나도 누나가 걱정되지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 바람이’도 걱정이 되는 걸.... 하하하”

“네 바람이 아무 탈없이 무고하시다. 손톱만큼 끌 키지도 않았으니까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지금 어디에 있는 지나 어서 말해”

 

그는 그녀의 말에 그제 서야 안심이 되는지 깊은 한숨을 내 쉬며, 자신이 일하는 새로운 일자리의 위치를 가리켜 주었다. 

 

“오야.  지금 그리로 가마.  점심 좀 주라”

“헉! 뭐  지  지금 온 다고?  왜?”

“이 놈이  귀가 먹었나. 왜는 배고프니까 밥 먹으러 간다는 소리 안 들려? ‘우리바람이’ 데리고 신나게 갈 테니 밥 좀 넉넉히 준비해놔라.”

 

철커덕!

 

그녀가 전화를 끊는 소리가 마치 그의 심장이 내려앉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매우 불안했다. 그녀가 ‘바람이’가 안전하다고 말해주는 것에 제대로 안심하기도전 그녀는 또다시 그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신촌거리는 제법 붐 비는 곳이었기에 여자인 그녀가 커다란 오토바이를 몰고 온다는 건 사실상 ‘나 오늘 사고 낸다’ 라고 엄포 하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 , 제발 바람아 무사히 와다오......”

 

그는 늘 제멋대로 구는 그녀를 말릴 생각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전화의 전화기는 벌써부터 꺼진 것 같았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할 정도로 ‘바람이’가 무사하길 빌고. 또 빌었다.


월요일 오후라 그런지 신촌은 무척 붐볐다.  그녀는 그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신촌거리를 지나갔다. 그녀가 지날 때마다 여기 저기서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 소리가 그녀를 더욱 우쭐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순간...  정말 아차! 하는 찰라 규식이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빠~앙!!! 끼이익!........ 쿵,  우당탕탕!!

 

우쭐한 마음에 핸들을 더 폼 나게 꺽 거 대 던 그녀의 손놀림에 골목을 막 나오는 커다란 코란도와 부닥치고 만 것.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사고였다. 그 바람에 그녀가 타고 있던 그의 ‘바람이’가 힘없이 퉁겨나갔다. 그리고 그녀 역시 서서히 의식을 잃어 갔다.

 

규식은 곳 도착 할거란 그녀의 전화를 받은 지 30분이 지났지만, 그녀가 여전히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좌불안석이 되었다. 급기야 막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손님의 말 한마디에 그의 기우는 현실처럼 불안이 엄습했다.

 

“거참, 여자 배포 한번 당차더라 어떻게 자기보다 더 큰 오토바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다니다니....”

“어머, 자기도 참 그러니까 사고가 났지. 난 아까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니까... 그나, 저나 그 여자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 ”

“저기요. 손님 밖에 무슨 일 있나요?

 

그는 속으로 통탄하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그들은 마침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상대를 만난 듯 자신들이 본 장면을 토시하나 빼지 않고 고스란히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오!  유난희 내가 너 사고 칠 줄 알았다.  도대체 너란 애는 한시도 눈을 땔 수가 없는 거냐?’

 

그는 애써 침 착 하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래도 여전히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속을 진정 시키며, 우선 그녀가 실려간 병원을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다.

 

“여보세요. 신촌 경찰서지요. 조금 전 일어난 오토바이사고에 대해 물어 보고 싶은데요?”

 


 

“저, 선생님 어떤가요. 여자 분 상태가.”

 

최대한은 교사들의 ‘밝은 사회모임’이 있어 신촌으로 나오던 길이었다.  성남에서 신촌까지 차가 워낙 많이 밀리는 통에 그는 눈앞의 약속장소를 뻔히 두고, 사고를 당했다. 아니 사고를 냈다. 아차 하는 순간 그의 앞으로 요란한 굉음을 내며, 한 대의 오토바이가 퉁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의 주인도 함께 쓰러져 버렸다. 

 

“이 이봐요. 이것 봐요. 정신 차려요!”

“바  바람아.........  미안해..........”

 

그의 팔에서 정신없이 쓰러진 그녀는 누군가에게 무척 미안해하며, 그의 가슴으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그 바람에 하필이면, 오늘따라 유난히도 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나온 그의 가슴엔 시뻘건 피가 얼룩져버렸다. 조금전 사고를 떠올리던 그의 귀가에 의사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다행이 외상만 있고, 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 보호자와 연락이 된 것 같으니 오시면 합의하시죠.”

 

‘합의라....  거참, 오늘 일진이 영 말이 아니군....’

 

그녀의 보호자와 연락이 되었다는 말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상대방이 그녀로 하여금 억지를 부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앞으로 쓰러질 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환자복을 입고, 응급센터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대한은 질색하고 말았다. 일주일전 선을 본 바로 그 여자였다..  어쩐지 그 날 그녀의 말투가 의심쩍더니만, 그녀는 알고 보니 잘나 가는 오토바이 족 이였었다.

 

‘맙소사, 당신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맞선보는 자리에 당신을 내보

낼 수가 있냔 말이야.’

 

그는 속으로 그녀와 연결이 안 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럼 그녀의 이중성에 그의 어머니가 놀라서 기절하고 말았을 테니까....

 

“난희야! ”

 

허겁지겁 달려온 남자가 갑작스럽게 ‘난희야’라고 외치자 그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상대를 처다 보았다. 분명 자기가 알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조소희였다.  아무래도 이 남자가 그녀의 망가진 몰골을 보고 잘못 찾아온 게 분명해 보였다.

 

“저, 죄송하지만, 이분은 댁이 찾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규식은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를 알기라도 하는 듯 그의 절규를 막아서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대로 그녀를 다시 살피며, 자신이 찾고 있던 그녀가 맞는지 확인이라도 하듯 그녀의 얼굴에 코를 박고, 확인을 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한 그녀는 분명 유 난희가 틀림없었다.

 

“미안하지만, 제가 찾는 사람이 이 여자 맞거든요?  우허허~  난희야! 그러게 내가 조심하랬잖아!”

 

규식은 옆에서 얼쩡거리는 남자를 물리치며, 잠시 의식을 잃고 잠이 든 그녀를 흔들어 깨우려 했다. 대한은 막무가내로 그녀를 흔들어 깨우려는 상대방을 잡고, 말려야 했다. 우선은 그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다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다친 그녀가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를 적극적으로 말렸다.

 

“아니 이것 봐요. 글쎄 이 여자는 조소희 라니깐. 당신이 말하는 그 난흰지 뭔지 하는 여자는 절대 아니라고!”

 

그의 고함에 응급실이 일순 조용해 졌다. 많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입원해 있는 응급환자들이 그를 노려보았다. 마치 ‘여기가 네 집 안방이냐? 소리는 왜 질러’ 라고 말하듯 그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댁은 누굽니까?”

 

건방지게 자신에게 누구냐고 묻고 있는 젊은 청년을 보며, 대한은 어이가 없었다. 정말 그 질문은 그가 꼭 건방진 청년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러시는 댁 아니 학생은 누구야?  누군데 남의 병실에 와서 울고 그래!”

“하하 하하하 이거야 원. 여긴 내 여자친구의 병실이고, 난 여기 누워 있는 유난희의 남자친구요!”

 

때마침 소란스런 목소리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만 잠을 잔다는 것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누워 있는 꼴이 라니 그녀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으악!  난  몰라........ 바람아......흐흐흑...”

 

그녀의 신음 소리에 실랑이하던 두 남자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난희야! 괜찮은 거야?”

“조소희씨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두 남자 동시에 그녀에게 질문을 하는 통에 그녀의 머리가 욱신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해 보였다. 생전 아프지 않아서 응급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던 그녀가 하얀 가운을 입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간호사를 보며, 또 한번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그녀의 신음 소리에 두 남자가 또다시 펄쩍뛰며 걱정을 했다.

 

“으!”

“누나,  왜 그래 머리 아파?”

“소희씨 안 좋으면 말해요. 이봐요. 여기 좀 와 주세요!”

 

그녀를 소희라 부르는 남자 어디서 봤더라?  어  어   헉!  그였다. 미주의 담임선생 최대한 어떻게 된 일이지?  그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리고 규식이 놈은 왜 자꾸 울고 있는 건지. 그녀의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 되었다.  아무튼 그녀는 일단 미주의 담임부터 처리를 해야 했다. 안 그럼 일만 더 복잡해 질 테니까...

 

“저,  왜 자꾸 우리 난희를 소희라 부르는 겁니까?  정말 짜증나네요.”

 

규식의 말투가 그녀에게 더 짜증나게 들렸다. 이놈이 언제부터 ‘우리 난희‘라고 내 이름을 남발하고 다녔던 건지. 어찌되었든 규식이 덕분에 이 남자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규식아~ 어떻게 된 거니?”

 

일단은 두 남자에게 시치미를 때야 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바람이’의 주인인 규식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어야 했다.

 

“어, 그게 여차 저 차 해서 말이야. 이렇고 저렇고 말이야. 우 허엉~ 난 우리 바람이랑 네가 동시에 사라지는 줄 알고 얼마나 심장이 철렁했는지 알아!  누나가 그걸 알기나 하냐고!”

 

급기야 제 풀에 지쳐 화를 내고 마는 규식이 놈.

 

‘결국 넌 나 보다 ‘바람이’가 우선 이었단 말이지.  어디 두고 보자 강규식!!‘

 

우선은 규식의 섭섭한 발언보다도 그녀는 ‘바람이’ 걱정을 먼저 해야 했다. 그래야 우선은 그들이 조여오는 숨통을 약간이나마 트일 수 있을 테니까.

 

“흐흐 흑 그럼 우리 ‘바람이’는  ‘바람이’는 어떻게 됐는데?”

 

그녀는 그래서 일단은 규식이에게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사고 친 건 그녀였으니까.

 

“그나마 ‘바람이‘가 튼튼해서 별로 다치진 않았어. 조금 끌 키긴 했어도. 뭐 아직 쓸만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우리 ‘바람이‘ 함부로 타지마!”

 

‘쳇, 쪼잔한 놈....  그렇다고, 못 타게 할 것까지 없는데...’


그는 소란스런 응급실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본즉 그가 알고 있던 ‘조소희’란 여자는 ‘유난희’라는 이름을 가진 말썽꾼이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끈끈히 이어주는 그 ‘바람이’라는 존재는 대단하지도 않은 오토바이였다. 그는 둘의 대화에서 드디어 핵심을 알아내고는 그 바람인지 뭔지 하는 놈의 정체가 고작 오토바이였다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봐요. 그러니까 당신은 조소희가 아니란 말이오.?”

 

규식이와 오토바이에 대한 안부걱정을 하던 그녀에게 그가 정말 집요할 정도로 진지하게 그녀의 친구이름을 들먹였다. 그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해 보였는지 그녀는 웃음을 참느라 아픈 배를 움켜쥐어야 했다. 그녀가 아파하는 모습(?)에 옆에 있던 규식이 그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아씨,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되요. 아저씨가 말하는 그 ‘조소희’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무튼 내 애인은 유 난 희 라니까..   누나 민증 좀 줘봐.”

 

갑자가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는 규식이의 말에 자신의 가방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때마침 심드렁하게 서 있던 그 남자가 그녀의 소지품을 서랍에서 꺼내 건 내 주었다.

 

“이거 봐요. 여기 분명히 81년 10월 13일 유난희 맞잖아요!”

 

그녀의 애인이라는 남자가 억지로 그의 눈앞에 들이미는 주민등록증에는 정말로 그녀가 조소희가 아닌 81년 생 유난희로 되어있었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녀만 바라보았다.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똑같이 생긴 것 같아서 그만 실례를 했네 요. 아무튼 오늘 사고는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전적으로 제가 책임을 질 테니 합의를 보도록 하죠.”

 

그녀가 느낀 것 보다 그는 시원하게 일을 처리했고, 그 덕에 그녀는 무사히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돈은 좀 있나 보내 병원 비에 오토바이 수리비까지 주다니 흐흐흐”

“에고, 이놈은 돈 밖에 몰라요. 그나저나 선생이라는 사람이 돈을 너무 쉽게 쓰는군...”

“........?”

 

그 자리에서 돈을 받고, 흐뭇한 모습으로 열심히 돈을 세는 규식과 함께 택시를 잡으려고 병원 앞 택시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가 너무 아팠다. 사고당시 받은 충격 때문이 아니라 제법 많은 보상금을 받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끊이지 않는 잔소리를 해대는 규식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머리가 우지끈하게 아파 왔다. 병원에서는 그녀가 일찍 퇴원하려하자 몇 일 더 쉬어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병원에 오래 있으면,  병 문안이라는 핑계로 그 최대한이라는 선생과 자꾸만 부닥칠 것 같아서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에고, 규식아 누나 좀 부축해라. 허리가 너무 아프구나... 에고고..”

“그러게 누나 그 남자가 병원에 더 있으라고 할 때 얌전히 있지 왜 나오고 그래?”

 

그녀의 타는 속도 모르고, 규식이 그 남자에게 받은 돈을 자꾸만 세며 얄밉게 말했다.

 

“아프지도 않는 데 병원은 그나, 저나 너 나한테 잘못 한 거 뭐 없냐?”

 

그는 그녀의 말에 멍하게 입만 벌린 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신의 애마를 부셔 놓은 것도 모자라 이번엔 억지 소리까지 한다. 아무래도 규식이 볼 때 그녀의 다친 부위가 허리와 다리가 아닌 머리 쪽인 것 같았다.

 

“뭐?  난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아야! 왜 그래? 누나.”

“그래 나, 누나 맞다. 그런데 어째서 네놈이 내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남자친구 행세를 하고 다니는 건데?”

 

그녀는 규식이 돈을 세는 모습이 얄미워 그의 귀를 한껏 세게 잡아 당겼다. 그녀의 행동에 돈을 세고 있던, 그가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아프다고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그거야. 내가 누나의 ‘보이프렌드’가 맞으니까 그랬지.”

“글쎄! 어째서! 어째서 내가 너처럼 새파란 놈의 여자 친구냐 구.”

 

몇 일 전부터 그녀에게 ‘난희’야 라고 불러대는 놈을 막지 못한 게 화근이었는지 그는 그녀를 정말 자신의 여자친구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가 막혔다.

 

“아우!  누나 아프니까 이거는 좀 놔 주라. 다른 사람들이 보잖아.  아우 아 퍼!”

“지금 네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나와, 난 죽고 싶을 정도로 미치겠는데....  그 남자가 도대체 날 어떻게 보겠냐? 누나, 누나 하는 어린놈이 남자친구 운운하며, 말하는데....  날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그녀는 아프다며, 소리치는 그의 귀를 놓아주지도 않고, 그의 귀에 대고 고함을 질러버렸다. 그녀의 말에 이제는 아프지도 않는지 오히려 그가 얼굴 색을 바꾸며, 그녀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그래 이왕 말 나온 김에 내가 묻겠는데.  누나 혹시 그 남자 알아? 누나처럼 생긴 사람이 또 있을 리 없잖아! ”

 

그녀는 갑자기 규식의 집요함이 누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할말이 없어. 잡고 있던 그의 귀를 놓아주며, 말꼬리를 잘랐다.

“시끄러 누가 안 대! 전혀,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왜!”

 

그녀의 어설픈 변명이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를 피하며, 그녀는 때론 거짓말에 능수 능란 하지만, 왠지 그의 반짝이는 눈앞에서는 도저히 그 거짓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야! 왜 그렇게 봐, 눈 아프게 시리...  아!  피곤하고, 아프다. 아무튼 나 먼저 올라 갈 테니까 돈 좋아하는 넌 나중에 올라와라.”

 

그의 집요한 눈길을 피해 재빨리 절룩거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그가 팔을 잡아주며,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주었다. 그녀가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아무래도 안 돼 보였나 보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자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그녀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런데 누나 소희 누난 잘 있는 거지?”

“!!!  너!!!!  네가 어떻게 소희를 알고 있어?”

“이제 와서 그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누나.”

 

그는 그녀의 놀라는 모습에 실소를 터트리며, 그녀의 또 다른 거짓말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졌다. 결과 적으로 그녀는 그에게 두 가지 거짓말을 동시에 하게 된 샘이다.  하나는 고등학교, 대학교동창인 조소희를 모른다고 했다는 것과 그 조소희라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던 그 남자를 모른다고 했던 두 가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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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안의 블루를 아껴주신 분들

 

뜨거운 여름을 식혀주는 비가 오네요...

 

오늘 하루도 행복한 미소로 마감하이소.....

 

리플에 목마른 아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