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발가벗겨 폭행......

기가찬세상2005.08.23
조회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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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이 쓴 글을 퍼 나릅니다.

학교를 졸업한지 10여년...
학교를 간신히(그 이유는 후절에) 졸업한 저에겐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지금 같으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다 고발한다 난리법석을 떨며 치를 떤 사건입니다.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생각되는 일이지요.

91~93년 동안 한 학기를 제외하고는 86학번 수원학생인 저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답니다(우리학교는 수원,서울 두개의 캠퍼스가 있어 전부수강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도 절약되고 집도 가까운 이유에서였지요. 군복무를 마치고 1년을 휴학했던 저로서는 후배들과 학생회 활동도 하며 정말 보람있고 재미나게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답니다.

당시 학교사정을 기억하면 손00이사장은 친정체제의 전면에 나서고도 싶고 또한 총장이라는 직위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꽤나 얻고 싶었나 봅니다. 어떤 정치적 배경이었는지 몰라도 김영삼정부 출범에 맞추어 언론에서 우리 학교의 부정입학문제가 한참 불거져 있던 시절. 손00이 이사장에서 총장의 자리로 옮겨 전면에 나서려는 상황이었습니다. 재단전입금은 달랑 동전으로 셀 수준인데다 등록금을 매 년 마다 두자리 숫자로 올리면서도 부정입학에 교수채용비리로 물의를 빚고 있던 그를 이전부터 퇴진을 요구하던 학생들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였습니다.

7월 여름. 4학년 여름방학. 서울학교 - 저녁을 먹으러 도서관을 나온 나는 재단이사장실(현재의 서울 대학원건물 5층)에서 '손00 총장취임반대'를 주장하며 농성하던 후배들이 걱정되어 음료수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나는 방학중이었고 또한 대부분의 학과학생회에서 농활을 떠난 뒤라 10여명 밖에 안 되는 후배들이 걱정되어 그들과 담소하며 향후 대책을 듣고 있던 도중에 수원에서 유도부들을 앞세우고 수 대의 스쿨버스편으로 농성장을 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는 소식를 접하고 도저히 후배들을 두고는 도저히 혼자 빠져나올 수 없는 없었답니다. 나의 의지이기도 하였구요.

마침내 내 기억으로는 밤11시가 되었을 것으로 기억되는 시각에 5층 베란다에서 유도부감독과 코치가 악다구니를 쓰며 떡대같은 유도부들을 지휘하는 가운데 총 200여명쯤으로 보이는 배구부,조정부,태권도부등의 운동부(수원출신 학생인지라 다행(?)인지 몰라도 감독의 얼굴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음)와 대부분 간부급들인 서울.수원교직원과 학생과 직원 또 재단사무국장(?)(지금 이름을 잊었는데 최근의 졸업앨범을 보니까 현재 수원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음)이 현장지위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빨갱이 개자식들 내려오면 밟아죽이겠다'라는 고함을 지르는 상황에 덜컥 '정말 내려가면 맞아죽겠구나' 생각밖에 나지 않더군요.

예상이 현실이 되고 그들은 야구방망이와 소화기를 뿌려대며 우리를 공격해 왔습니다. 요새같은 재단사무실구조 덕분에 수 십분을 버틴 우리는 철제현관문에 수 백키로그램이나 나갈 법한 금고를 옮긴채 이를 마지막 보루로 그들과 대치하였으나 해머로 벽을 '퍽' '퍽' 깨부수며 쳐들어 오는 그들을 막기란 정말 불가항력이였지요. 우리는 결국 농성장을 접수당하였습니다. 그 곳 5층에서 정말 죽도록 많이 맞았습니다. 5층에서 지하강당으로 끌려 내려와야했던 우리는 소화기 분말가루를 뒤집어 쓴 몰골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게 하고는 오리걸음과 바닥을 기어가는 자세로 개처럼 끌려 내려왔습니다. 반항끝에 우리를 점령한 그들이어선지 화풀이하며 패더군요. '생지옥이란게 이런거구나'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마침내 지하강당..
우리는 1인당 3,4명의 유도부와 교직원에 들려 이곳저곳에서 몸수색을 당했습니다.그들은 저항중 찢어진 옷을 발가벗기더군요. 부상당하고 공포에 질려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우리를 '빨갱이 새끼'라며 부르며 그 증거를 찾겠다는 명분으로 말이지요. 또 발가벗긴채 군대에서 받던 원산폭격 자세로 몽둥이로 실컷 두들겨 팬 후엔 자술서을 쓰라더군요. 모든 기물은 우리가 파괴했고 그 책임이 모두 우리에게 있으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할 것과 반성할 것을 인정한다라는 내용입니다. 불러 주는 대로 쓰지 않으면 또 패고... 끝까지 쓰지 않은 한 후배는 하도 맞아서 실신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 기억이 생생한 그들만의 액션들이 있는데 그것은 교직원들이 우리가 고개를 못 들도록 주문하고 고개를 드는 듯하면 뒷통수를 갈겨댔다는 것인데 그것은 때린 이가 누구인지를 알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에서였다는 것입니다. 뭔가 그들도 발가벗긴채 폭력을 행사하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기억이 참 잘납니다. 충격과 분노가 커서 더욱 잊혀지지 않나봐요)

8월 중순경..
나를 포함한 24명 학생들에 대한 퇴학과 무기정학..
나는 그 때의 고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잊혀지지 않음이 정확할 듯 싶습니다.

나는 그들의 인권유린을 우리 사회에 고발합니다. 학생신분이었던 우리가 정녕 교직원에게 후배인 운동부 학생들에게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아야만 했나요? 그들에겐 우리가 학생이 아닌 개돼지로 보였답니까?

나는 퇴학을 맞은 다음날 나의 대학 마지막 수업이 되었던 전공수업시간에 후배들에게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정말 억울하다구요.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말입니다. 또 결코 굴복할 수 없으며 반드시 돌아오겠다구요. 저는 돌아오겠다는 그 약속-졸업장을 든 채 졸업식장에 가서 정확하게 지켰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킨 것은 퇴학무효를 주장한 소송을 제기하여 5개월의 재판을 통해 승소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학교측은 있지도 않은 징계위원회 소집과 회의록을 거짓으로 만들어 재판부로부터 망신을 당한 결과였고 또한 재판과정속에 밝혀진 폭력으로 학생들을 짓밟았던 수 년간의 학교측의 행태에 대한 종합적인 재판부의 판단이었답니다. 그덕에 저의 학적부는 퇴학-퇴학취소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답니다.(후에 퇴학처분이 무효임에 처분사실자체에 대한 기제삭제를 요구하여 새로 학적부를 만들었습니다. 학적부사진이 86년 1학년 사진이 아닌 93년 4학년의 사진이지요)

우리는 유도부를 앞세운 폭력을 몰아내는 것이 당시 지상 최대의 목표였습니다. 그들의 폭력과 억압에서 벗어나야만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후일 조00코치가 9월초에 서울학교에 머물다가 예비역들에게 붙잡혀서 사과하며 고백한대로) 손00의 지시에 따른 유도부의 폭력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유도부와 교직원이 학생들을 감시하는 동.물.농.장....제가 본 93년 7월부터 8월까지 서울학교의 모습이었습니다.

마침내 9월. 개강부터 예비역협의회를 띄우고 학우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앞세워 수 일간 밤새농성을 한 뒤 예비군복으로 무장한 복학생을 비롯한 학생들 500여명이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당시 중앙도서관 1층에 있던 총장실 입구 도로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든 채 우리를 가로막아선 유도부들. 우리는 그 날 사생결단의 의지를 가졌기에 결코 그들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릴 수는 없었습다. 백주대낮에 쇠파이프 대 야구방망이의 칼부림.. 그것은 차라리 총대신 칼을 든 전쟁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는 우리 였기에..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결사대이었기에.. 그 전쟁에서 우리는 그들의 허구와 폭력을 끝내 완벽하게 부숴버렸습니다. 그 날이 이전까지 수 차례나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학생회 간부들을 납치 감금 폭행하였던 유도부폭력을 몰아낸 최초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유도부의 폭력을 볼 수 없었지요. 학교측에서는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거칠게 나올 줄은 몰랐겠지요. 그 날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아 후일 학생회장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감옥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가장 비극인 것은 故오원택군이 그 날의 결전에서 야구방망이로 광대뼈를 맞아 입은 충격과 후유증으로 두번의 뇌수술을 받고 후유증을 호소하던중 입대하여 사망하였던 것이지요.
지난 여름 날의 캠퍼스..
2005년 8월 여름...
수원에 사는 나는 가끔씩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와 광교산에 갑니다. 학교주차장을 지나 일부러 도서관 앞을 지나는 나의 눈에 어린 회한과
나의 딸아이의 초롱한 두 눈에 비치는 평온한 학교 전경...
그 날의 기억들과 몸부림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저는 그 날의 악역들을 하나 하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앨범속에 보이는 그들이 때론 정말 미워지기도 합니다.
한 때는 죽어라 증오도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아픈 기억속에 날 놓아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학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모교가 어느 누구에게나 좋은 학교, 실력있는 학교로 성장하기를 기원하는 것이 현명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기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졸업즈음 나를 불러서 '그동안 고생했다'며 몸보신해주시려 좋은 고기 사주시며 마음을 다독여 주셨던 고마우신 교수님과 지쳐서 찾아갈때면 '다치니까 몸조심하라'는 걱정을 해주시던 누나같은 교직원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이러니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또한 이제 저는 그 지겨운 미움의 사슬을 놓아버리고자 합니다. 그 날들의 당사자 여러분께 상처가 되었던 부질없는 언어폭력에 대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혹여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이리하듯 당시의 학교당국과 교수,교직원 여러분의 진심어린 고백과 사과 또한 받고 싶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이러한 결말과 매듭을 통하여 저로 하여금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는 것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하는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온라인 공간이든 오프라인공간이든 상관없습니다. 단 한 분의 고백과 사과만이라도 있다면 저는 행복하고 희망에 찰 것입니다. 진정 따듯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