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이나 해볼까 싶은 마음에 운동화를 샀습니다. (집에 워커랑 구두 밖에 없는 관계로...) 과연.... 애물단지가 될지 든든한 웰빙의 동반자가 될 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 집에 굴러다니는 아령은 어쩔 거냐 =================== 우리 아버지는 경찰관이시다. 내가 직업이라는 개념에 눈 뜨기 전부터 그는 경찰관이었다. 아버지는 참 말이 없는 분이셨고 어려서 아버지와 대화를 해본 기억은 별로 없다. 뭐... 고작해야 ‘진지 드세요.’ ‘알았다.’ 그 정도? 하지만 난 그를 참 따르고 존경했다. 칼 같이 다려진 정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좋아했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말투를 따라하려 애썼다. 아버지 - 금일 천팔백오십시까지 전 대원 집합. 이상. 기억 - 음.... 여섯시 오십분은 천팔백오십시.... 아무튼...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굳은 얼굴로 책을 들여다보는 모습, 아침 일찍 거울 앞에서 정복 깃을 고쳐 잡는 모습. 단 몇 마디 말로 모든 상황을 마무리해버리는 파워.... 그 모든 건 내게 카리스마의 결정체였고 본받아야할 남성의 표본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최강의 남자였기에..... 난 아버지와 같이 되길 원했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깊은 산 속 옹달샘에 물 마시러 갔다가 세수만하고 돌아왔... 잠깐, 이거 뭐야. 왜 갑자기 이상한 BGM이 나오고 난리야?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던 난 갑자기 들려온 이상한 음악소리에 정수리에서 뒷목까지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무거운 눈을 떠야했다. 이게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야?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난 내가 있는 곳이 몹시도 낯선 곳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순간 가슴 속에 묘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난 감금당한 건가? 이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게 되는 건가?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지끈거리는 걸까? 마지막으로, 난 왜 세수는 안 하고 물만 마시고 왔는.... 아 제길. 대체 무슨 소리야 이건.... 소리의 발생지를 찾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난 그 소리가 이불 속에서 새어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슬쩍 이불을 들춰 안을 보았을 때 내 가슴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몹시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검은색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고 윤기나는 실이 풍성하게 덮인 검은 공 같은.... 기억 - .......... What is it? 딱히 규정지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등 뒤에 싸한 오한이 스쳤다.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우선 사정거리(?)밖으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불 안쪽에서 움찔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밑에서부터 쑥 솟아올라 검은 실들을 쓸어 올리는 하얀 손. ....... 아, 이게 머리였구나. 난 또 뭐라고........가 아니잖아!!!!! 대체 누구 머린데?! 누구 손이고?! 민아 - 으음. 오우 쒯따빡! 그제야 난 어제 있었던 상황 일체를 기억해냈다. 내가 있는 곳이 민아의 집이라는 것과 지금 내 가슴팍에 웅크리고 있는 게 그녀라는 것 까지. 이게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야? 막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돌아와서 뭘 한 거.....젠장!! 아무튼, 지금 가장 다급한 건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알람소리를 끄는 일이었다. 조심조심 힘들게 침대 밖으로 나온 난 슬쩍 이불을 들추고 안을 살폈다. 기억 - ...!! 대체, 대체 왜 치마를 입은 채 이불 속에 있는 거야?!! 화들짝 놀란 난 재빨리 이불을 덮어놓고 고개를 돌렸지만 순간적으로 보았던 하얀 다리의 잔상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게다가 치마....치마...치마....!! 악마 - 오호라, 이런 기회가 있나. 완전 무방비 상태잖아? 친구, 자신에게 솔직하라고! 인생은 즐기는 거야! 자, 이불을 들추고 손을 뻗어! 백상상은 불여일견! 악마2 - 무슨 소리야! 그대로 놔두고 봐야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 한 게 더 흥분되는 법이라고! 이불만 살짝 들추고 눈으로 즐겨!! 대체 왜 갈등이 악마 대 악마인거냐!!! 이러면 갈등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 악마 - 소심한 녀석! 20평생 아이스케키 한 번 못해봤잖아! 어차피 모를 텐데 뭐 어때!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악마2 -어른이면 어른답게 즐길 줄 알아야지! 어린애처럼 아이스케키가 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집요하게 관찰하는 것이야 말로~!! .......제발...제발 그만~!!! ...... 쪼금만 더 보는 정도는 괜찮을지도? 민아 - 음......? 으음.... 으아아아~!! 그 전에(?) 저 놈의 옹달샘 노래부터!! 칭얼대는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를 다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녀가 일어나면 완전 X된다. -이렇게 된 이상 책임져!! 라고 말해준다면 나야 더 바랄게 없었지만 그 전에 변태나 치한으로 몰릴 확률이 더 높았다. 살얼음판 위를 뛰노는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결국 얻은 결론은 그녀가 걸치고 있는 쉐터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외기러기 이걸 어째 이걸 어째 깨지 마라 깨지 마라 깨지 마라 레드썬!!! 기억 - 하아...하아....하아..... 간신히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끄집어낸 음파발생기의 정체는 바로 휴대폰. ...... 번호를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민아 - 으으음.... 으아아아아!! 제길, 우선 소리부터 끄자!! 이거 대체 어떻게 끄는 거지? 으음.... 1. 배터리를 뺀다. 2, 강한 충격을 준다. 3. 우선 플립을 열고 기능을 살핀다. 4. 집안 어딘가에 있을 사용설명서를 찾는다. 5. 민아를 깨워 물어본다. 1번.... 아니지, 안전하게 3번!! 그렇게 서둘러 핸드폰 플립을 펼친 순간 액정에 표시된 몇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스케쥴. 9시 30분. 수학시험 꺄아? ........ 지금 몇 신데? 9시. ............ 기억 - 민아야, 언능 일어나~!! 민아 - 응? 으응?! 응? 기억 - 빨랑, 눈 떠, 정신 차려! 시험 치러 가야지! 민아 - 누, 누구세요? 아직도 잠을 못 깬 어벙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는 그녀. 오, 제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런데.... 솔직히 너무 귀엽다. 기억 - 빨리 빨리, 지금 9시야! 민아 - 에에에엑?~!!! TIME ATTACK! START!!!!! 민아 - 아, 세수, 세수..... 기억 - 눈에 물만 찍어!! 민아 - 엄마야, 머리가 다 떴어~ 기억 - 침 발라! 민아 - 양치질도 못했는데~! 기억 - 그냥 치약을 먹어!! 난 허둥대는 그녀에게 공대식 세면법을 주입시키며 무작정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도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가방도 못 챙겼는데..’ 하며 칭얼거렸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문을 나서서 곧게 뻗은 내리막길을 뛰어가는 길. 기억 - 빨리 빨리 빨리! 민아 - 너, 넘어질 것 같아!! 몸을 뒤로 어정쩡하게 젖히고 휘청거리며 뛰어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운동치... 그 자체였다. 지금 시각 9시 12분. 이대론 승산이 없다!! 기억 - 우오오오옷!!! 민아 - 끼얏?! 난 그녀의 어깨와 무릎 뒤를 잡아 번쩍 안아들고 미칠 듯한 스피드로 내리막을 뛰어 내려갔다. 아무리 못나가도 건조중량 40kg 이상은 될 그녀였지만 그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민아 - 엄마야아아아~!! 기억 - 훅훅훅훅훅훅..... 어느새 내리막을 벗어나 도로근처까지 나온 우리. 내 목을 꽉 감고 있던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민아 - 사, 사람들이 보잖아~! 기억 - 그런데, 그래서, 무엇을, 어쩌라고!! 민아 - 나도 몰라~!!! 저기 택시! 기억 - 태에에에엑씨이이이이!!!! 난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복식호흡으로 얻은 성량으로 50m 앞에 달려가던 택시를 후진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억 - 민아야, 문열어! 민아 - 응! 그녀가 손을 뻗어 문을 열자마자 난 그녀를 택시 안으로 던져 넣고(?) 뒤따라 들어갔다. 기억 - 아저씨!! 00대학! 최대한 빨리!! 남은 시간 10여분. 과연 도착할 수 있을까? 과연....!! 민아 - 히잉.. 어떡하지? 응? 이제야 슬슬 정신을 차리고 상황의 급박함을 체감하기 시작한 그녀는 우는 소리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여기서 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했다. 평생에 한 번 외치기 힘들다는 그 한 마디. 말 더듬는 버릇이 있으면 절대 외쳐선 안 될 한 마디. 길지 않은 인생을 화려하게 불태울 수 있는 그 한 마디!! 기억 - 아저씨! 따블!!! ‘츄킹~! 슈아아아아~!!’ =엔진 임계점으로 카운트 스타트.= 나의 처절한 외침은 한 순간에 아저씨를 제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결승의 체크기를 향한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아저씨 - 가자!! 신행정수도로!! 당시 우리의 주행을 지켜본 한 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그 속도는 분명한 위헌(違憲)이었다=
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19화> 타임어택!
조깅이나 해볼까 싶은 마음에
운동화를 샀습니다.
(집에 워커랑 구두 밖에 없는 관계로...)
과연.... 애물단지가 될지
든든한 웰빙의 동반자가 될 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 집에 굴러다니는 아령은 어쩔 거냐 ===================
우리 아버지는 경찰관이시다.
내가 직업이라는 개념에 눈 뜨기 전부터
그는 경찰관이었다.
아버지는 참 말이 없는 분이셨고
어려서 아버지와 대화를 해본 기억은 별로 없다.
뭐... 고작해야 ‘진지 드세요.’ ‘알았다.’ 그 정도?
하지만 난 그를 참 따르고 존경했다.
칼 같이 다려진 정복을 입은 그의 모습을 좋아했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말투를 따라하려 애썼다.
아버지 - 금일 천팔백오십시까지 전 대원 집합. 이상.
기억 - 음.... 여섯시 오십분은 천팔백오십시....
아무튼...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굳은 얼굴로 책을 들여다보는 모습,
아침 일찍 거울 앞에서 정복 깃을 고쳐 잡는 모습.
단 몇 마디 말로 모든 상황을 마무리해버리는 파워....
그 모든 건 내게 카리스마의 결정체였고
본받아야할 남성의 표본이었다.
그는 내가 아는 최강의 남자였기에.....
난 아버지와 같이 되길 원했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깊은 산 속 옹달샘에 물 마시러 갔다가 세수만하고 돌아왔...
잠깐, 이거 뭐야.
왜 갑자기 이상한 BGM이 나오고 난리야?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던 난
갑자기 들려온 이상한 음악소리에
정수리에서 뒷목까지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무거운 눈을 떠야했다.
이게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야?
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난
내가 있는 곳이 몹시도 낯선 곳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순간 가슴 속에 묘한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난 감금당한 건가?
이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게 되는 건가?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지끈거리는 걸까?
마지막으로, 난 왜 세수는 안 하고 물만 마시고 왔는....
아 제길. 대체 무슨 소리야 이건....
소리의 발생지를 찾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난 그 소리가 이불 속에서 새어나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슬쩍 이불을 들춰 안을 보았을 때
내 가슴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몹시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검은색 물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고 윤기나는 실이 풍성하게 덮인 검은 공 같은....
기억 - ..........
What is it?
딱히 규정지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등 뒤에 싸한 오한이 스쳤다.
.......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우선 사정거리(?)밖으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불 안쪽에서 움찔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밑에서부터 쑥 솟아올라
검은 실들을 쓸어 올리는 하얀 손.
....... 아, 이게 머리였구나.
난 또 뭐라고........가 아니잖아!!!!!
대체 누구 머린데?! 누구 손이고?!
민아 - 으음.
오우 쒯따빡!
그제야 난 어제 있었던 상황 일체를 기억해냈다.
내가 있는 곳이 민아의 집이라는 것과
지금 내 가슴팍에 웅크리고 있는 게 그녀라는 것 까지.
이게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이게......!!!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야?
막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세수하러 갔다가 물만 먹고 돌아와서 뭘 한 거.....젠장!!
아무튼, 지금 가장 다급한 건
그녀가 일어나기 전에 알람소리를 끄는 일이었다.
조심조심 힘들게 침대 밖으로 나온 난
슬쩍 이불을 들추고 안을 살폈다.
기억 - ...!!
대체, 대체 왜 치마를 입은 채 이불 속에 있는 거야?!!
화들짝 놀란 난 재빨리 이불을 덮어놓고 고개를 돌렸지만
순간적으로 보았던 하얀 다리의 잔상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게다가 치마....치마...치마....!!
악마
- 오호라, 이런 기회가 있나. 완전 무방비 상태잖아?
친구, 자신에게 솔직하라고! 인생은 즐기는 거야!
자, 이불을 들추고 손을 뻗어! 백상상은 불여일견!
악마2
- 무슨 소리야! 그대로 놔두고 봐야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 한 게 더 흥분되는 법이라고!
이불만 살짝 들추고 눈으로 즐겨!!
대체 왜 갈등이 악마 대 악마인거냐!!!
이러면 갈등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 되잖아!!
악마
- 소심한 녀석! 20평생 아이스케키 한 번 못해봤잖아!
어차피 모를 텐데 뭐 어때!
동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란 말이야!
악마2
-어른이면 어른답게 즐길 줄 알아야지!
어린애처럼 아이스케키가 뭐야?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집요하게 관찰하는 것이야 말로~!!
.......제발...제발 그만~!!!
......
쪼금만 더 보는 정도는 괜찮을지도?
민아 - 음......? 으음....
으아아아~!! 그 전에(?) 저 놈의 옹달샘 노래부터!!
칭얼대는 듯한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는 그녀의 모습은
나를 다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그녀가 일어나면 완전 X된다.
-이렇게 된 이상 책임져!!
라고 말해준다면 나야 더 바랄게 없었지만
그 전에 변태나 치한으로 몰릴 확률이 더 높았다.
살얼음판 위를 뛰노는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결국 얻은 결론은
그녀가 걸치고 있는 쉐터 주머니에 무언가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외기러기 이걸 어째 이걸 어째
깨지 마라 깨지 마라 깨지 마라 레드썬!!!
기억 - 하아...하아....하아.....
간신히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끄집어낸
음파발생기의 정체는 바로 휴대폰.
...... 번호를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민아 - 으으음....
으아아아아!! 제길, 우선 소리부터 끄자!!
이거 대체 어떻게 끄는 거지? 으음....
1. 배터리를 뺀다.
2, 강한 충격을 준다.
3. 우선 플립을 열고 기능을 살핀다.
4. 집안 어딘가에 있을 사용설명서를 찾는다.
5. 민아를 깨워 물어본다.
1번.... 아니지, 안전하게 3번!!
그렇게 서둘러 핸드폰 플립을 펼친 순간
액정에 표시된 몇 글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스케쥴.
9시 30분. 수학시험 꺄아?
........ 지금 몇 신데?
9시.
............
기억 - 민아야, 언능 일어나~!!
민아 - 응? 으응?! 응?
기억 - 빨랑, 눈 떠, 정신 차려! 시험 치러 가야지!
민아 - 누, 누구세요?
아직도 잠을 못 깬 어벙한 표정으로
눈을 비비는 그녀.
오, 제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런데.... 솔직히 너무 귀엽다.
기억 - 빨리 빨리, 지금 9시야!
민아 - 에에에엑?~!!!
TIME ATTACK! START!!!!!
민아 - 아, 세수, 세수.....
기억 - 눈에 물만 찍어!!
민아 - 엄마야, 머리가 다 떴어~
기억 - 침 발라!
민아 - 양치질도 못했는데~!
기억 - 그냥 치약을 먹어!!
난 허둥대는 그녀에게 공대식 세면법을 주입시키며
무작정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도
‘옷도 못 갈아입었는데, 가방도 못 챙겼는데..’
하며 칭얼거렸지만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문을 나서서 곧게 뻗은 내리막길을 뛰어가는 길.
기억 - 빨리 빨리 빨리!
민아 - 너, 넘어질 것 같아!!
몸을 뒤로 어정쩡하게 젖히고
휘청거리며 뛰어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운동치... 그 자체였다.
지금 시각 9시 12분.
이대론 승산이 없다!!
기억 - 우오오오옷!!!
민아 - 끼얏?!
난 그녀의 어깨와 무릎 뒤를 잡아 번쩍 안아들고
미칠 듯한 스피드로 내리막을 뛰어 내려갔다.
아무리 못나가도 건조중량 40kg 이상은 될 그녀였지만
그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민아 - 엄마야아아아~!!
기억 - 훅훅훅훅훅훅.....
어느새 내리막을 벗어나 도로근처까지 나온 우리.
내 목을 꽉 감고 있던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민아 - 사, 사람들이 보잖아~!
기억 - 그런데, 그래서, 무엇을, 어쩌라고!!
민아 - 나도 몰라~!!! 저기 택시!
기억 - 태에에에엑씨이이이이!!!!
난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복식호흡으로 얻은 성량으로
50m 앞에 달려가던 택시를 후진시키는 데 성공했다.
기억 - 민아야, 문열어!
민아 - 응!
그녀가 손을 뻗어 문을 열자마자
난 그녀를 택시 안으로 던져 넣고(?)
뒤따라 들어갔다.
기억 - 아저씨!! 00대학! 최대한 빨리!!
남은 시간 10여분.
과연 도착할 수 있을까? 과연....!!
민아 - 히잉.. 어떡하지? 응?
이제야 슬슬 정신을 차리고
상황의 급박함을 체감하기 시작한 그녀는
우는 소리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여기서 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했다.
평생에 한 번 외치기 힘들다는 그 한 마디.
말 더듬는 버릇이 있으면 절대 외쳐선 안 될 한 마디.
길지 않은 인생을 화려하게 불태울 수 있는 그 한 마디!!
기억 - 아저씨! 따블!!!
‘츄킹~! 슈아아아아~!!’
=엔진 임계점으로 카운트 스타트.=
나의 처절한 외침은
한 순간에 아저씨를 제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결승의 체크기를 향한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아저씨 - 가자!! 신행정수도로!!
당시 우리의 주행을 지켜본 한 목격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그 속도는 분명한 위헌(違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