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일도 많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늘 바쁘고 시간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녁 식사는 거의 엄마와 나 둘만의 조촐한 자리였고, 가끔의 나들이도 엄마와 나 둘뿐이어서 아빠와 마주지면 낯선 아저씨처럼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하루 종일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하다니요. 피하고 싶은 친구와 짝꿍이 되었을 때처럼 아주 거북한 기분이었습니다. 바쁘기만 하던 아빠를 집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은 꽤 여러 날 전입니다.
그 후부터 아빠 엄마의 말다툼이 잦아지더니 어젯밤에 엄마는 큰 결심을 한 듯했습니다. "당신, 일도 없이 나가는 거 경비도 많이 들고 괴로운 일이라는 거 잘 알아요. 마침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다니 내일부터 나가겠어요.
진수가 봄방학을 해 걱정도 덜 되고요. "그 동안 부자지간에 서먹했던 것도 풀고 잘 지내 보아요." 엄마가 나가고 아빠와 둘이 남게 되자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커다란 벽이 눈앞을 가로막은 것 처럼 답답했습니다. 아빠는 아까부터 신문만 보고 있습니다. 나도 책을 펴 들었지만 눈이 자꾸 문쪽으로 갔습니다. 차라리 아빠가 나가기라도 했으면 싶었습니다. 그 많던 아빠 친구들은 뭐 하는 거야. 이럴 땐 전화도 안 하고. 괜히 아빠 친구에게까지 부아가 났습니다.
화장실 가는 척 슬며시 나가 보니 구부려 앉아 신문만 내려다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친구가 없어 쪼그리고 혼자 노는 아이처럼 쓸쓸하고 안돼 보였습니다. 잘못 걸린 전화라도 왔으면......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요. 그때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기다렸던 것처럼 벨이 두번도 울리기전에 아빠가 급히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아...그래 기다려라." 반가움에 찼던 아빠 목소리가 잦아들어 갔습니다. 내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친구는 아빠 목소리에 놀라 "너희 아빠 왜 회사에 안 갔냐?" 회사에서 잘렸냐?"고 물었습니다. "임마, 잘리긴 뭐가 잘려. 우리 아빠가 무슨도마뱀 꼬리인 줄 알아, 잘리게." 화가 나 꽝 소리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데도 아빠는 여전히 신문만 내려다봅니다. 아빠의 모습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신문을 다 외우시려나, 원. 아빠한테 무슨 재미있는 일 없을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두툼한 오백 원짜리 동전 한 개와 백 원짜리 동전 여섯 개가 들어있는 호주머니를 털어 단숨에 비디오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숨이 턱에 찬 걸 보니 새로 나온 만화 영화 소식을 듣고 왔구나. 오늘 아침에 나온 거야, 아주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모험 이야기지." "새로 나온 만화 영화가 있다고요?" 갑자기 마음이 막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힘껏 저었습니다. "저-저, 그게 아니고요. 어른이 좋아하는 비디오 한 편 골라주세요. 무지 재미있는 걸로요." 좋아할 아빠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싱글벙글 웃음을 날리며 집에 들어가니 아빠는 우두커니 베란다에 서 있었습니다. 뜻 맞는 아이에게 지우개 한 번 먼저 빌려 줘서 단짝이 되었던 것처럼 내 작은 정성 한 번으로 아빠와 나는 많이 친해진 것 같았습니다. 점심엔 이마를 맞대고 라면을 먹기도 했으니까요.
한참 먹다가 이마를 부딪혀 고개를 들으니 아빠 눈에도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나는 너무 뜨겁고 매워서 눈물이 나왔는데 아빠는 왜 그랬을까요? 비디오도 아빠와 나란히 앉아 같이 보았습니다. 우습지 않은데 마구 웃어대는 어른 비디오는 하나도 재미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기분이 나아 보여 다행이었습니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뽀뽀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허 이건 엄마랑 봐야 하는 건데` 하며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 농담도 했으니까요. 내 눈을 가린 커다란 손, 갑자기 그 손을 꽉 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오늘 고생했을텐데 우리가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놓자. 엄마가 뭐 좋아하지?" 저녁 메뉴는 동태 매운탕으로 정했습니다. 아빠가 낚시터에서 익힌 솜씨를 발휘한다고 했지요.
맛은 몰라도 냄새는 근사했습니다.
엄마가 오고 정말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피곤함도 모른 채 엄마는 참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무언가 부드럽고 달콤한 기운이 우리 집 가득 차 오르는 듯해 나는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그런데 당신, 어떻게 이럴게 많이 달라졌지요?" "비디오 덕분이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비디오였어." "제목이 뭔데요? 내용은요?" 놀란 엄마가 거푸 물었습니다.
"`아빠와 아들` 아니 `아들과 아빠` 야.. 절망한 한 아빠가 아래로 콱 떨어져 버리고 싶은 참담한 심정으로 베란다에 서 있는데.............. 그 아래로 아빠에게 보여 줄 비디오를 가슴에 안고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달려오는 아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맨 마지막에 아빠는 그 아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돼................. 아들이 가져다 준 건 비디오가 아니라 가슴 가득한 봄볕이었는지 몰라. 아니면 희망이었는지도, 사랑이었는지도. 시리기만 했던 아빠 가슴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어-어, 내가 빌려 온 비디오는 그런 거 아니었는데..."
그날 밤 걷어 차낸 이불을 엄마가 아닌 아빠가 덮어 주는 걸 잠결에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내 머리를 쓸어 준 건 아빠의 커다란 손이였습니다.
아빠에게 보여줄 비디오
아빠는 일도 많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늘 바쁘고 시간도 없었지요.
그래서 저녁 식사는 거의 엄마와 나 둘만의 조촐한 자리였고,
가끔의 나들이도 엄마와 나 둘뿐이어서
아빠와 마주지면 낯선 아저씨처럼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하루 종일 아빠와 함께 있어야 하다니요.
피하고 싶은 친구와 짝꿍이 되었을 때처럼 아주 거북한 기분이었습니다.
바쁘기만 하던 아빠를 집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은 꽤 여러 날 전입니다.
그 후부터 아빠 엄마의 말다툼이 잦아지더니 어젯밤에 엄마는 큰 결심을 한 듯했습니다.
"당신, 일도 없이 나가는 거 경비도 많이 들고 괴로운 일이라는 거 잘 알아요.
마침 내가 할 만한 일이 있다니 내일부터 나가겠어요.
진수가 봄방학을 해 걱정도 덜 되고요.
"그 동안 부자지간에 서먹했던 것도 풀고 잘 지내 보아요."
엄마가 나가고 아빠와 둘이 남게 되자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커다란 벽이 눈앞을 가로막은 것 처럼 답답했습니다.
아빠는 아까부터 신문만 보고 있습니다.
나도 책을 펴 들었지만 눈이 자꾸 문쪽으로 갔습니다.
차라리 아빠가 나가기라도 했으면 싶었습니다.
그 많던 아빠 친구들은 뭐 하는 거야. 이럴 땐 전화도 안 하고.
괜히 아빠 친구에게까지 부아가 났습니다.
화장실 가는 척 슬며시 나가 보니 구부려 앉아 신문만 내려다보는
아빠의 뒷모습이 친구가 없어 쪼그리고 혼자 노는 아이처럼
쓸쓸하고 안돼 보였습니다.
잘못 걸린 전화라도 왔으면......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요.
그때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습니다.
기다렸던 것처럼 벨이 두번도 울리기전에 아빠가 급히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아...그래 기다려라."
반가움에 찼던 아빠 목소리가 잦아들어 갔습니다.
내 친구의 전화였습니다.
친구는 아빠 목소리에 놀라
"너희 아빠 왜 회사에 안 갔냐?" 회사에서 잘렸냐?"고 물었습니다.
"임마, 잘리긴 뭐가 잘려. 우리 아빠가 무슨도마뱀 꼬리인 줄 알아, 잘리게."
화가 나 꽝 소리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데도 아빠는 여전히 신문만 내려다봅니다.
아빠의 모습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신문을 다 외우시려나, 원. 아빠한테 무슨 재미있는 일 없을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두툼한 오백 원짜리 동전 한 개와 백 원짜리 동전 여섯 개가 들어있는 호주머니를 털어
단숨에 비디오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숨이 턱에 찬 걸 보니 새로 나온 만화 영화 소식을 듣고 왔구나.
오늘 아침에 나온 거야, 아주 아슬아슬하고 신나는 모험 이야기지."
"새로 나온 만화 영화가 있다고요?"
갑자기 마음이 막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힘껏 저었습니다.
"저-저, 그게 아니고요. 어른이 좋아하는 비디오 한 편 골라주세요.
무지 재미있는 걸로요."
좋아할 아빠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싱글벙글 웃음을 날리며 집에 들어가니 아빠는 우두커니 베란다에 서 있었습니다.
뜻 맞는 아이에게 지우개 한 번 먼저 빌려 줘서 단짝이 되었던 것처럼
내 작은 정성 한 번으로 아빠와 나는 많이 친해진 것 같았습니다.
점심엔 이마를 맞대고 라면을 먹기도 했으니까요.
한참 먹다가 이마를 부딪혀 고개를 들으니 아빠 눈에도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나는 너무 뜨겁고 매워서 눈물이 나왔는데 아빠는 왜 그랬을까요?
비디오도 아빠와 나란히 앉아 같이 보았습니다.
우습지 않은데 마구 웃어대는 어른 비디오는 하나도 재미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빠는 기분이 나아 보여 다행이었습니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뽀뽀하는 장면이 나오면
`어허 이건 엄마랑 봐야 하는 건데` 하며 커다란 손으로 내 눈을 가리고 농담도 했으니까요.
내 눈을 가린 커다란 손, 갑자기 그 손을 꽉 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오늘 고생했을텐데 우리가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 놓자. 엄마가 뭐 좋아하지?"
저녁 메뉴는 동태 매운탕으로 정했습니다.
아빠가 낚시터에서 익힌 솜씨를 발휘한다고 했지요.
맛은 몰라도 냄새는 근사했습니다.
엄마가 오고 정말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피곤함도 모른 채 엄마는 참 행복한 얼굴이었습니다.
무언가 부드럽고 달콤한 기운이 우리 집 가득 차 오르는 듯해
나는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느낌이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그런데 당신, 어떻게 이럴게 많이 달라졌지요?"
"비디오 덕분이지.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비디오였어."
"제목이 뭔데요? 내용은요?"
놀란 엄마가 거푸 물었습니다.
"`아빠와 아들` 아니 `아들과 아빠` 야..
절망한 한 아빠가 아래로 콱 떨어져 버리고 싶은 참담한 심정으로
베란다에 서 있는데..............
그 아래로 아빠에게 보여 줄 비디오를 가슴에 안고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달려오는 아들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맨 마지막에 아빠는 그 아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돼.................
아들이 가져다 준 건 비디오가 아니라 가슴 가득한 봄볕이었는지 몰라.
아니면 희망이었는지도, 사랑이었는지도. 시리기만 했던 아빠 가슴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어-어, 내가 빌려 온 비디오는 그런 거 아니었는데..."
그날 밤 걷어 차낸 이불을 엄마가 아닌 아빠가 덮어 주는 걸 잠결에도 다 알 수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내 머리를 쓸어 준 건 아빠의 커다란
손이였습니다.
위 내용은 감동이 깊어 옮겨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