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과 부처님논쟁

은하철도 200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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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과 부처님논쟁



불교에 관한 지식이라곤 어렸을 때에 악동들하고 집근처에 있는 절에 자주 놀러 다니며 스님을 괴롭혔다고나 할까, 햇볕 따스한 대웅전 앞마당에서 몇 명이 쑤군쑤군 대다가 땅에 금을 그어놓고는 땅따먹기를 하다가 쫓겨나고, 여름에는 대웅전 뒤의 응달이 어찌 그렇게 시원하던지 까맣게 탄 얼굴의 친구들과 쭈그리고 앉아서 홀짝홀짝 하며 딱지따먹기를 하다가 어느새 다가왔는지 젊은 스님에게 꿀밤 한대씩을 얻어맞고 또 절 밖으로 끌려 나갔는데, 우리 악동들은 왜 그 절이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지만 모이기만 하면 또 절로 향했다.

어느 날, 우리들은 슬금슬금 스님의 눈치를 보며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산신각으로 놀이터를 옮겼으니, 처음에는 산신각 뒤편에서 놀다가 소나기가 몹시 내리던 날에 기어이 문틀마저 비틀어져 삐걱대는 산신각 문을 열고 그 안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악동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니, 산신령하고 부처님과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우리 악동은 산신령편과 부처님편으로 갈라져 목청을 높였다.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령이 이긴다. 아니다. 양쪽에 꼬붕을 거느린 부처님이 이긴다.

“산신령이 명령하면 호랑이가 다 잡아 먹는데?”

“부처님 양쪽에 있는 사람들 봐라.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까짓 호랑이쯤이야.”

산신각에서 얼굴마저 빨갛게 상기되어 떠드는 소리가 대웅전에서 불공드리는 스님의 염불소리를 어지럽혔을 것이다. 벌컥 산신각 문이 열리더니 우리만 보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던 젊은 스님의 승복자락이 펄럭였다. 이번에는 아주 요절을 낼 판으로 또 다른 젊은 스님까지 대동하여 양손에 한명씩 우리의 멱살을 잡아채어 끌고 내려갔는데, 바닥이 반질반질하여 파리도 미끄러질 것 같은 선방에 끌어다놓더니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번쩍 쳐들고 벌서고 있으라나, 네 명의 악동은 방구석에 나란히 앉아서 멀뚱거리며 점점 아래로 쳐지는 팔을 지탱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어깨로 나를 슬쩍 치면서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불평을 토로한다.

“니가 산신각에 들어가자고 해서 벌서잖아.”

“산신령이 부처님한테 이기는데, 니가 부처님이 이긴다고 해서 그랬잖아.”

“웃기네. 부처님이 이기지 산신령이 어떻게 이겨?
”칫. 산신령이 호랑이한테 다 물어 죽이라고 하면 산신령이 이기지.“

이렇게 하여 밖을 들락날락거리는 젊은 스님의 눈치를 보며 또 논쟁이 붙었다. 처음에는 쑤군쑤군 조그만 목소리로 시작된 논쟁이었으나, 점점 우리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지기 시작했으니, 밖에 있던 젊은 스님이 후다닥 선방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또 한대씩 꿀밤을 팍팍 먹이고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떠들고 있다나, 팔을 더 번쩍 쳐들어 올려. 하는 호령이었다. 옆에 있는 친구가 미웠다. 저 새끼는 알지도 못하면서 부처님이 이긴데......


깊이를 알 수 없는 진리 앞에서 나는 그렇게 산신령과 부처님의 싸움을 논쟁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다. 하늘이요 하면서 손을 들어 위를 가리키고, 땅이요 하면서 바닥을 가리켰지만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인식능력과 사고능력은 조그만 내 머리통만큼 주어진 것이기에, 장자의 말처럼 여름만 사는 쓰르라미가 어찌 가을과 겨울을 알겠으며, 하루살이가 어찌 어제와 내일을 알겠는가, 세상의 미물 중에는 태어난 지 몇 시간만 지나면 그 생을 다하는 목숨도 있다던데, 아침결에 태어난 목숨은 아침이 세상의 모두요, 밤에 태어난 목숨은 밤이 우주의 전부라고 말하렷다.

나와 너, 안과 밖, 선과 악, 미와 추의 이원적 개념의 설명으로부터 시작하는 화엄경의 첫 장를 펴는 심사가 편치 않다. 두려움이 앞선다. 유(有)의 세계로 치닫는 마음을 뒤로 잡아끌며 무(無)의 세계로 향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몸부림칠수록 유와 무의 거리가 점점 더 넓어진다. 갈등의 바다가 펼쳐진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깨달음도 있다던데, 그리하여 유와 무가 합치하여 이원적 개념이 일원적 개념으로 갈 수도 있다는데, 아직도 나는 산신령과 부처님의 싸움을 논쟁하며 살고 있나 보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