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잠도 푹 자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의 상담실을 다녀오는 정도의 생활만 하던 퇴원 후 2주가 지난 어느 날 오후, 현관의 벨이 울리고 인터폰을 통하여 들려오던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지연의 목소리였다.
" 지연이니?"
" 그래, 나야. 문 열어. 할 말 있어."
수연이 현관문을 열자 156 센티미터의 작고 여린 몸매를 노란색의 짧은 무스탕으로 덮은 지연이 조금은 굳어진 샐쭉한 표정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 왠일이야?"
" 한 번은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어? 할 얘기도 있고..."
" 그래... 그렇지..."
" 앉으라고도 안해?"
" 그래. 앉아. 뭐 마실래? "
" 됐어. 언니도 앉아."
수연은 지연의 새침한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자꾸 깊은 한숨만 푹푹, 올라오고 있었다.
" 휴-우, 그래 할 얘기는 뭔데? "
" 나와 이야기하기 싫겠지만 참아. 오늘 이후로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 할 일 없을테니까..."
" 이야기 해... 들을 테니까..."
" 그래. 한 번만 말할께...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되어서. 그리고 나, 창훈씨랑 결혼해."
" 후--, 둘이서 이야기는 끝냈니? 엄마에게는 말씀드렸고? "
" 아니, 이제 말해야지. 우선 언니랑 말 끝내고 "
" 끝낼게 뭐 있어? 할 말 다 한거 같은데... 아님 뭐 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하던가..."
" 넌 꼭 그렇게 차갑게 말해야겠니? 그래, 너 잘났어. 정말... 언제나 늘 혼자 잘났지...
그런데 어쩌니? 네 남자 내게 뺏겨서... 안됐다... "
" 됐어... 하고 싶은 얘기 그것 뿐이니? "
" 아니, 많아... 그래, 이번 참에 이야기 하는 것도 좋겠지... 아니,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실히 하자. 창훈씨랑 완전히 끝낸거 맞지? 사랑한거 아니지? 분명하게 말해줘. "
" 그래, 맞아... 됐니? "
" 응... 분명한건 내가 너와 이젠 안 만날거란 거야. 가족들? 글쎄...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늘 언니만 우선인 엄마가 이번 일로 난리치면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겠지... 자기 속으로 난 딸도 아니잖아? 어차피... 늘 반쪽짜리 동생... 밖에서 낳아 데려온 찬밥 덩어리 아니겠어? "
"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 엄마는 최소한 널 아기때부터 자신의 막내딸로 기르시면서 널 아꼈는데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하니? "
" 웃기지마... 너야 늘 다 가진 사람으로 날 내려다 보니 그렇게 보였겠지만 그 속에서 난 늘
숨막혔고, 뛰쳐 나가고 싶었어. 넌 모르겠지... 그런 절망감을..."
" 왜 말하지 않았니?... 그런 이야기들을... 나가보지, 나가지 그랬니? 네 소원대로? "
" 내가 안 나간것 같아? 내가 중2 때 잠시 나갔던 것도 넌 기억못하는 구나... 그 때 날 낳아준 엄마를 찾아 나갔었어. 아버지에게 듣고... 찾아가서 만났지... 다른 늙은 남자랑 방 한칸만 있는 좁은 곳에서 가난하고, 추하게 늙어가는 엄마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아줌마 한 분이 있더라... 왜 찾아 왔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같이 산다던, 옆에 있던 그 아줌마의 남편... 그 때 나를 쳐다보던 그 남자의, 그 침을 삼키며 느글거리던 눈빛... 네가 뭘 알아? 늘 사랑받기만한 네가... 그래, 내 엄마라는 사람 그렇게 살더라. 구역질이 날 정도로... 난 그렇게 살기 싫었어... 다 커서 당당하게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돌아왔지... 그래, 나라고 사랑받고 싶지 않았겠니? 어릴땐 나도 너처럼 예쁨 받아보고 싶어서... 한 때는 널 따라서 얌전히 굴어보려고도 했어... 얌전히 굴면 너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을것 같았지....그런데 아니었어. 공부도, 운동도, 행동도... 늘 너와 비교당하며 난 비참하기만 했어. 난 늘 천덕꾸러기였을 뿐이야... 가게에서 도둑질 했을때도 엄마는 날 안혼냈어. 너라면 혼냈겠지? 왜? 내가 데려온 딸이라서?... 난 나일뿐, 네가 아니니까?....흑... 흑..."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하면서, 지연의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 유리알처럼 반짝이며 광기마저 담은 듯 수연을 사납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울브짖기 시작했다.
" 네가... 네가 뭔데... 왜? 왜야? 왜 너만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거지? 창훈씨도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네가 언니라는 이유로... 늘 너만 더 사랑받고, 너만 다 좋아하고... ...
네가 되고 싶었어. 언제나. 늘... 그래, 난 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더 예쁘고 귀엽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 그래, 난 네 남자를 일부러 유혹했어. 쉽더라. 너보다 휠씬 빨리 그와 같이 잤지. 네 결벽증적인 성격에 그와 결혼 전에 안잘걸 알았으니까... 그랬더니 그가 어땠는지 알아? 내게 홀딱 빠져선 날 사랑한대. 넌 그에게 그런 소리 못 들어 봤지? 당연하지! 널 사랑한 적이 없다고 했거든. 넌 너무 요조숙녀라서 내게 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없었대. 난 그 앞에서 울면서 네게 미안하다고 했지. 내가 떠나겠다고... 정말 그럴까 생각도 해 봤어... 그거 알아? 시작은 나였지만 날 잡은건 그이야. 이젠 내 남자야. 네게 안 줘. 나만의... 나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난 너처럼 뺏기지 않을 거야! ... 그래, 잠시 네게 미안했어. 네가 그와 잤고,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흐.흑... 그대로 죽지 그랬니? 죽어 버리지!... 그대로 죽었으면 영원히 너에게 미안해 하면서 살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살아난거니... 흑..흑..."
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지연과 마주하고 창훈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아도 먼 세상의 낯선 이야기처럼 ... 격해지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마음에... 이젠 정말 창훈에 대해 남아있던 감정들이 많이 정리된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창훈에 대한 감정보다... 상처입은 동물의 울브짖음같이... 통곡처럼 쏟아지는 지연의 그 작은 가슴에 담겨있던 격한 애증에... 수연은 자신의 가슴이 조이는 것을 느끼며 눈물이 쏟아졌다.
" ..흑... 너에 대한 미움이 다시 생기고 있어... 그가 흔들려...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너만 없으면 되는데... 불안해... 혹시라도 내가 그의 껍데기만 껴안고 살게 될까봐... 그대로 죽지!...죽어 버리지... 난 네가 너무 싫어... 너만 없었다면...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그이도 ... 나 하나만 사랑해 줄 텐데...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윽..흑흑.. ... ...흑...
이제 엄마가 될거야. 그와 둘이서 사이좋게 엄마 아빠가 되는 거야. 그래, 우린 결혼할거야. 그인 떠날 수 없어. 날 책임져야 하니까... 그가 흔들리던 말던 상관없어. 안 놔줄테니까... 우리 근처에 얼씬대지마. 난 갈 수 있지만, 넌 오면 안돼. 왜냐고? 너 다 가졌으니까 그래도 돼. 그래 줄 수 있지? 아니, 꼭 그래야 돼!.. 너도 나 싫어하잖아. 늘 새침한척 하면서 차가운 눈으로 비웃듯 날 보는걸 내가 모를것 같니? ...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난... 네 얼굴만 보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 너에 대한 미움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 올라와 터져버릴 것 같아...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 흐. 흑.흑... ... "
수연은 서럽게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채 울다가, 화내다가, 불안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터져 나오는 원망과 울음으로 그 작은 어깨를 들썩이는 자신의 동생 지연이 견딜수 없이 불쌍하고 안타까왔다.
" 지연아. 오해야...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가끔씩 네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줄 몰랐던 것 뿐이야... 그래, 걱정마. 난 그를 사랑하지도 않고, 그를 빼앗을 일 같은건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연은 자신의 얼굴에 눈물이 넘쳐 흐르는 것도 무시한 채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지연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 됐어... 내게 손대지마... 동정하지마... 너한테 동정받을 만큼 난 불쌍하지 않아.... 왜 그가 흔들린다니까 내가 불쌍해? 아니, 난 네가 못 가진걸 가졌어. 난 아이도 있고, 결혼도 할거거든... 그이도 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걸거야... 괜찮아... 두고봐... 보란 듯이 살아줄거야... 너보다 더..."
수연을 한 손으로 밀치며 눈물로 범벅된 눈으로 노려본 후, 지연은 현관문을 세차게 '꽝' 열고, 문짝을 던지듯 닫으며 떠나버렸다.
수연은 충격속에 쌓인 채 멍해진 상태에서 눈물만 나왔다. 수연은 문득 이런 상황까지 일을 끌고 오게한 창훈이 원망스러워졌다. 자신과 정리한 후... 아니, 결혼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와 그에 대한 원망이 새삼스럽게 가슴속에 차올랐다..... 아니, 그보다 늘 느껴지던 지연과의 거리 속에 그런 애증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런 결과까지 나타난 지금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파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왔다.
붉은 여우-14 ( 제 2부. 새로운 출발 - 대화 -)
- 대화 -
" 나야..."
집 안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잠도 푹 자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의 상담실을 다녀오는 정도의 생활만 하던 퇴원 후 2주가 지난 어느 날 오후, 현관의 벨이 울리고 인터폰을 통하여 들려오던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지연의 목소리였다.
" 지연이니?"
" 그래, 나야. 문 열어. 할 말 있어."
수연이 현관문을 열자 156 센티미터의 작고 여린 몸매를 노란색의 짧은 무스탕으로 덮은 지연이 조금은 굳어진 샐쭉한 표정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 왠일이야?"
" 한 번은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어? 할 얘기도 있고..."
" 그래... 그렇지..."
" 앉으라고도 안해?"
" 그래. 앉아. 뭐 마실래? "
" 됐어. 언니도 앉아."
수연은 지연의 새침한 모습을 보면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자꾸 깊은 한숨만 푹푹, 올라오고 있었다.
" 휴-우, 그래 할 얘기는 뭔데? "
" 나와 이야기하기 싫겠지만 참아. 오늘 이후로 이렇게 마주보고 이야기 할 일 없을테니까..."
" 이야기 해... 들을 테니까..."
" 그래. 한 번만 말할께... 미안해... 일이 이렇게 되어서. 그리고 나, 창훈씨랑 결혼해."
" 후--, 둘이서 이야기는 끝냈니? 엄마에게는 말씀드렸고? "
" 아니, 이제 말해야지. 우선 언니랑 말 끝내고 "
" 끝낼게 뭐 있어? 할 말 다 한거 같은데... 아님 뭐 더 해야 할 말이 있으면 하던가..."
" 넌 꼭 그렇게 차갑게 말해야겠니? 그래, 너 잘났어. 정말... 언제나 늘 혼자 잘났지...
그런데 어쩌니? 네 남자 내게 뺏겨서... 안됐다... "
" 됐어... 하고 싶은 얘기 그것 뿐이니? "
" 아니, 많아... 그래, 이번 참에 이야기 하는 것도 좋겠지... 아니,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실히 하자. 창훈씨랑 완전히 끝낸거 맞지? 사랑한거 아니지? 분명하게 말해줘. "
" 그래, 맞아... 됐니? "
" 응... 분명한건 내가 너와 이젠 안 만날거란 거야. 가족들? 글쎄... 태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늘 언니만 우선인 엄마가 이번 일로 난리치면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겠지... 자기 속으로 난 딸도 아니잖아? 어차피... 늘 반쪽짜리 동생... 밖에서 낳아 데려온 찬밥 덩어리 아니겠어? "
" 그런식으로 말하지 마. 엄마는 최소한 널 아기때부터 자신의 막내딸로 기르시면서 널 아꼈는데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하니? "
" 웃기지마... 너야 늘 다 가진 사람으로 날 내려다 보니 그렇게 보였겠지만 그 속에서 난 늘
숨막혔고, 뛰쳐 나가고 싶었어. 넌 모르겠지... 그런 절망감을..."
" 왜 말하지 않았니?... 그런 이야기들을... 나가보지, 나가지 그랬니? 네 소원대로? "
" 내가 안 나간것 같아? 내가 중2 때 잠시 나갔던 것도 넌 기억못하는 구나... 그 때 날 낳아준 엄마를 찾아 나갔었어. 아버지에게 듣고... 찾아가서 만났지... 다른 늙은 남자랑 방 한칸만 있는 좁은 곳에서 가난하고, 추하게 늙어가는 엄마라고도 부르고 싶지 않은, 아줌마 한 분이 있더라... 왜 찾아 왔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같이 산다던, 옆에 있던 그 아줌마의 남편... 그 때 나를 쳐다보던 그 남자의, 그 침을 삼키며 느글거리던 눈빛... 네가 뭘 알아? 늘 사랑받기만한 네가... 그래, 내 엄마라는 사람 그렇게 살더라. 구역질이 날 정도로... 난 그렇게 살기 싫었어... 다 커서 당당하게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돌아왔지... 그래, 나라고 사랑받고 싶지 않았겠니? 어릴땐 나도 너처럼 예쁨 받아보고 싶어서... 한 때는 널 따라서 얌전히 굴어보려고도 했어... 얌전히 굴면 너보다 더 사랑받을 수 있을것 같았지....그런데 아니었어. 공부도, 운동도, 행동도... 늘 너와 비교당하며 난 비참하기만 했어. 난 늘 천덕꾸러기였을 뿐이야... 가게에서 도둑질 했을때도 엄마는 날 안혼냈어. 너라면 혼냈겠지? 왜? 내가 데려온 딸이라서?... 난 나일뿐, 네가 아니니까?....흑... 흑..."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하면서, 지연의 눈동자가 눈물에 젖어 유리알처럼 반짝이며 광기마저 담은 듯 수연을 사납게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울브짖기 시작했다.
" 네가... 네가 뭔데... 왜? 왜야? 왜 너만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는 거지? 창훈씨도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네가 언니라는 이유로... 늘 너만 더 사랑받고, 너만 다 좋아하고... ...
네가 되고 싶었어. 언제나. 늘... 그래, 난 너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더 예쁘고 귀엽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 그래, 난 네 남자를 일부러 유혹했어. 쉽더라. 너보다 휠씬 빨리 그와 같이 잤지. 네 결벽증적인 성격에 그와 결혼 전에 안잘걸 알았으니까... 그랬더니 그가 어땠는지 알아? 내게 홀딱 빠져선 날 사랑한대. 넌 그에게 그런 소리 못 들어 봤지? 당연하지! 널 사랑한 적이 없다고 했거든. 넌 너무 요조숙녀라서 내게 하는 것처럼 사랑할 수 없었대. 난 그 앞에서 울면서 네게 미안하다고 했지. 내가 떠나겠다고... 정말 그럴까 생각도 해 봤어... 그거 알아? 시작은 나였지만 날 잡은건 그이야. 이젠 내 남자야. 네게 안 줘. 나만의... 나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난 너처럼 뺏기지 않을 거야! ... 그래, 잠시 네게 미안했어. 네가 그와 잤고,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거든... 흐.흑... 그대로 죽지 그랬니? 죽어 버리지!... 그대로 죽었으면 영원히 너에게 미안해 하면서 살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살아난거니... 흑..흑..."
수연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지연과 마주하고 창훈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아도 먼 세상의 낯선 이야기처럼 ... 격해지지 않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들을 수 있는 자신의 마음에... 이젠 정말 창훈에 대해 남아있던 감정들이 많이 정리된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창훈에 대한 감정보다... 상처입은 동물의 울브짖음같이... 통곡처럼 쏟아지는 지연의 그 작은 가슴에 담겨있던 격한 애증에... 수연은 자신의 가슴이 조이는 것을 느끼며 눈물이 쏟아졌다.
" ..흑... 너에 대한 미움이 다시 생기고 있어... 그가 흔들려...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너만 없으면 되는데... 불안해... 혹시라도 내가 그의 껍데기만 껴안고 살게 될까봐... 그대로 죽지!...죽어 버리지... 난 네가 너무 싫어... 너만 없었다면... 아빠도, 엄마도, 오빠도, 그이도 ... 나 하나만 사랑해 줄 텐데... 이런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윽..흑흑.. ... ...흑...
( 지연은 한참을 서글프게 울었다 ) 너, 그거 알아? 넌 내게 이미 졌어. 나, 임신했어!
이제 엄마가 될거야. 그와 둘이서 사이좋게 엄마 아빠가 되는 거야. 그래, 우린 결혼할거야. 그인 떠날 수 없어. 날 책임져야 하니까... 그가 흔들리던 말던 상관없어. 안 놔줄테니까... 우리 근처에 얼씬대지마. 난 갈 수 있지만, 넌 오면 안돼. 왜냐고? 너 다 가졌으니까 그래도 돼. 그래 줄 수 있지? 아니, 꼭 그래야 돼!.. 너도 나 싫어하잖아. 늘 새침한척 하면서 차가운 눈으로 비웃듯 날 보는걸 내가 모를것 같니? ...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난... 네 얼굴만 보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 너에 대한 미움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 올라와 터져버릴 것 같아... 우리 이제 만나지 말자... 흐. 흑.흑... ... "
수연은 서럽게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채 울다가, 화내다가, 불안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눈빛을 보내는...... 터져 나오는 원망과 울음으로 그 작은 어깨를 들썩이는 자신의 동생 지연이 견딜수 없이 불쌍하고 안타까왔다.
" 지연아. 오해야... 난 너를 싫어하지 않아... 가끔씩 네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줄 몰랐던 것 뿐이야... 그래, 걱정마. 난 그를 사랑하지도 않고, 그를 빼앗을 일 같은건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수연은 자신의 얼굴에 눈물이 넘쳐 흐르는 것도 무시한 채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지연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갔다.
" 됐어... 내게 손대지마... 동정하지마... 너한테 동정받을 만큼 난 불쌍하지 않아.... 왜 그가 흔들린다니까 내가 불쌍해? 아니, 난 네가 못 가진걸 가졌어. 난 아이도 있고, 결혼도 할거거든... 그이도 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걸거야... 괜찮아... 두고봐... 보란 듯이 살아줄거야... 너보다 더..."
수연을 한 손으로 밀치며 눈물로 범벅된 눈으로 노려본 후, 지연은 현관문을 세차게 '꽝' 열고, 문짝을 던지듯 닫으며 떠나버렸다.
수연은 충격속에 쌓인 채 멍해진 상태에서 눈물만 나왔다. 수연은 문득 이런 상황까지 일을 끌고 오게한 창훈이 원망스러워졌다. 자신과 정리한 후... 아니, 결혼까지도 생각하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와 그에 대한 원망이 새삼스럽게 가슴속에 차올랐다..... 아니, 그보다 늘 느껴지던 지연과의 거리 속에 그런 애증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런 결과까지 나타난 지금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파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왔다.
'...선생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