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님(桓雄)의 구슬 - 57

내글[影舞]200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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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님(桓雄)의 구슬 - 57   - 내글[影舞]

 

 

청허자는 새삼스럽게 이십여 년 전 혈의맹이 발호했을 때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시절이 떠올라 감흥에 젖었다. 그때는 삼십대의 혈기 방장한 때였다. 취화개는 특히 술을 좋아하고 호방하여 취화, 취할 취(醉) 시끄러울 화(譁)즉 취한 꽃(花)이 아니라 취해서 시끄럽게 떠든다는 외호를 가질 정도였지만 청허자는 맑고(淸) 욕심이 없다(虛)는 외호가 말하듯 세속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취화개의 표현에 의하면 뒤로 호박씨 까는 조용한 욕심꾸러기라고 했다.

이렇게 성격이나 기질이 반대였기 때문에 만나면 잦은 다툼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반면에 둘이 뭉치면 안 되는 일이 없다할 만큼 많은 싸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 사람은 무림맹주로, 한사람은 최대방파인 개방의 방주가 되었다. 그것도 비교적 젊은 나이인 사십대에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그 후로 십오 년, 이젠 그 누구도 두 사람 앞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중량감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부와 사부의 친구를 둔 사운은 외호가 소취로 불릴 정도로 스승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다. 그가 개방출신이라는 신분적 약점과 술을 좋아하여 순찰로서 자격이 의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무림맹 순찰부의 총책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외부로 들어난 모습과는 달리 그가 그만큼 치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사부와 특별한 관계인 맹주의 후원으로 인해 중책을 맡은 줄로 알고 있지만 한 번쯤 겪어본 사람은 고개를 젓게 되고, 결코 남의 후광이나 업고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는데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사부님을 잘 아시면서 그런 말씀은 그만하십시오. 참 이번일은 이렇게 해서 일단락 된 걸까요?”

“모두들 못 믿겠지. 하지만 그렇게 놔두는 것도 좋아, 굳이 이번 일을 밝히려들지는 않을 거니까.”

“그럴까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천부정검의 무공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

청허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금까지 논의 하던 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이었지만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운은 호기심이 동했다.

“그게 뭐지요?”

“후후, 누가 주정뱅이 제자 아니랄까봐 성질이 급하군!”

“에구, 그만 하시죠, 맹주님!”

“하하하, 그러고 보니 이제 자네도 나이를 먹었군!”

“…!” 

말문이 막힌 사운이 입을 다물고 있자 청허자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남이 들으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선문답 속에서 사운은 정곡을 찔렸다. 사부의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선을 그으려는 행동은 이제 사부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은 나이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후. 자네 질문에 대답을 해야겠군. 결론부터 이야기 하지만 천부의 무공은 나 같은 사람이 익힐 수 없는 것이었어.”

“네에?” 

사운은 청허자의 예매한 대답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의 자질이 모자라서 못 익힌다는 건지, 아니면 이미 나이를 먹을 만치 먹었기 때문에 못 익힌다는 말도 되고, 사람으로서는 익힐 수 없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허자는 몸을 일으켜 서가로 다가가 꽤 두툼한 책을 한권 꺼내들고 왔다. 그의 손에 들린 책은 ‘천부무관입경’이란 무림정파에서 금서 아닌 금서가 된 책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무공의 끝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한권씩 숨겨가지고 있는 필독서이기도 했다.

“그래, 지난 십여 년 동안 그가 남긴 이 책을 가지고 천부의 열쇠를 얻으려 노력했지. 그리고 열쇠를 찾았지. 그런데 열어야 될 문을 찾을 수 없더군. 그런데 아주 최근에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됐어. 그것도 아주 우연히.”

“그가 누구죠? 혹시…!”

사운의 머릿속에는 조운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후, 역시 눈치가 빠르군! 맞아, 화산의 늙은 여우였어.”

“역시, 조운 장로님이셨군요!”

“그래! 그의 이야기를 듣자 천부의 무공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면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

사운은 잠시 청허자를 쳐다보며 지난 한 달을 회고해 봤다. 화산에서 연락을 받은 뒤로 청허자의 지시대로 직접 사천당문과 공동파로 가서 독과 화살을 구하고, 솜씨 좋은 장의사를 구해 있지도 않은 천부정검의 시신을 만들고 다시 그 시신을 가지고 장백산에 들어가 시신을 바꿔치기를 했다. 무덤을 원래대로 복구하는데 고생한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그리고 비밀이 새지 않게 하기위해 다섯을 죽여 살인멸구를 했다.

“그래서 이번 일을 꾸미셨던 겁니까?”

“맞아!” 

“그렇다면, 그는 죽었다는 것이 맞겠군요!”

“물론! 그때 그는 앞으로 닥칠 혈사를 막기 위해 비밀리에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어. 난 그런 위험한 것이 사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 볼 수 없었어. 그저 그것을 막아야한다는 생각뿐이었지. 자네 담우석이란 자를 아나?”

“실종된 천사교의 교주…!”

“그래, 그 담우석은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었지. 강시를 제련하는 재주, 그것도 아주 특별한 강시를 제련하는 재주를 말이야.”

“그럼 천부정검이 그와 함께 강시를 만들려고 했단 말입니까?”

“그래, 그는 꼭 막아야 할 일을 위해 건너지 말아야할 강을 건너려했지. 그래서 난 그걸 막기 위해 당수인을 움직여 일을 꾸몄어. 그런데 이제 보니 담우석은 그걸 포기하지 않았던 거지. 그리고 자네가 알아 본대로 성공을 한 모양이야. 비록 단 한구의 강시였지만 말일세.”

“하지만 그 강시는 결국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강력한 강시라 하여도 그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온전한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폭포와 거대한 와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휘말렸다면 쇳덩이도 가루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 쇳덩이라면 가루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람의 몸은 다르네. 이걸 보게나.”

어느 틈엔가 청허의 손에는 날카롭게 날이 선 유엽비도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이건 현철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지!”

“…!” 

청허자는 망설임 없이 탁자위에 비도를 세우고 그 끝에 자신의 장심을 가져간 다음 힘을 가했다. 그러자 비도의 끝이 그대로 휘어졌다. 이를 쳐다보는 사운의 눈은 놀람보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자신도 전력을 다해 호신강기를 발휘한다면 그 정도의 흉내는 낼 수 있다다는 엉뚱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호신강기로 한 게 아니라네. 자, 보게나.”

“예에!” 

청허의 손바닥을 보고 사운은 크게 놀랐다. 청허자 정도의 고수라면 몸에 강력한 호신강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병기는 큰 상처를 주지 못한다. 그래서 비록 현철로 된 유엽비도라 할지라도 구부러트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장심은 기를 발출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아무리 호신강기로 손바닥을 보호하고 기를 발출하는 장심일지라도 현철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끝이 휘어졌다면 비도의 끝에 닿은 곳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있어야 했지만 사운의 눈에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그럴 리 없다!’

그렇단 이야기는 청허자가 오 갑자, 삼백년 이상의 내공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리인데 그럴 리는 없었다. 내공이 하룻밤사이에 어린아이가 구슬치기해서 구슬 따먹기 하듯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이건 천부의 무공을 흉내를 내본 거네. 어떤가, 감상이?”

사운은 뭐라 말을 못하고 청허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천부의 무공은 강호에 있는 무공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강호의 무공이 바람이라면 천부의 무공은 햇빛과 같아.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지. 햇빛은 볼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지. 기가 발출할 때 보이지 않지만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그 기를 보이게 되는 경지에 오르려면 막대한 내공이 필요하지만 천부의 무공은 처음부터 기가 형체를 만들어 발출되게 되어있어. 검강을 만들려면 검이 필요하지만 천부의 무공은 검 자체를 기로 만들어내는 무공이야. 지금 내가 이 비도를 구부린 것은 장심에 작은 기의 검, 아니 아직 그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해서 그냥 막을 만들어 검 끝을 눌렀다는 말이 맞겠군.”

“기로 검을 만들다니…. 그, 그게 정말인가요?”

“후후, 내가 말할 때 뭘 들었나.”

사운은 문득 욕심이 생겼다. 맹주의 설명대로라면 천부의 무공에 대적할 무공은 없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사부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쥐어주었지만 초보자들의 입문서라 생각되어 몇 장 읽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던 천부무관입경이란 책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아네. 하지만 그걸 포기하라고 하고 싶으이.”

“무, 무슨 말씀을…?”

“이 팔을 다시 보게나.”

“아, 아니!”

청허자가 소매를 걷어 올리고 보여준 왼팔은 달랐다. 마치 흰 대리석으로 조각을 해놓은 듯 핏기가 하나도 없어 살아있는 사람의 피부가 아닌 마치 죽은 자의 피부처럼 변해있었다.

“그래 이팔을 이렇게 만들고 나서야 겨우 천부의 무공을 흉내를 낼 수 있게 된 거야. 힘들었지만 이게 끝이지. 내가 이 왼팔처럼 몸 전체를 강시가 된다면 천부의 모든 무공을 해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쌓아온 무공을 전폐하고 처음부터 다시 천부의 심법을 익힌다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 하지만 시간이 문제가 되겠지. 그리고 천부의 심법은 그 누구에게도 전해진 적이 없다네.”

“그렇다면 그는 왜 제자를 두지 않고 그런 길을 가려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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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