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터 뷰-1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울창하고 싱그럽게 우거진 문학의 숲을 거니는 동안 몇 번이고 눈을 감고 머릿속을, 마음속을 정리했다. 알록달록한 색연필을 양손에 쥐었다 놨다 수차례 반복하며 행여 줄이 삐뚤어질까 한껏 정성을 들여 그었다. 펜팔을 하는 기분이란 바로 이러한 설렘이 아닐까. 눈빛 마주하며 서로의 목소리를 섞는 것보다 7.5배 정도는 더 낭만적인 것 같다. 어느새 이 사람과 한껏 가까워진 뿌듯함이 밀려오는 시간, 장영희 교수가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하드커버 안쪽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그랬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앉아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읽다가, 이내 침대로 옮겨가 베개를 등뒤에 받치고 읽더니, 엎드려도 보고, 팔을 번쩍 들어도 본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시선만은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홀로 또 일방적으로 몰래몰래 장영희 교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란 참으로 쏠쏠했다. 책을 덮고 나니 ‘생후 1년 만에 1급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두 차례의 암 투병까지 꿋꿋하게 이겨낸 장영희 교수’라는 저자의 프로필보다도 ‘인간 장영희’가 언니같고, 엄마같은 모습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2시 40분에 봅시다. 내 방으로 와주겠어요?” 그녀였다. 방송사 인터뷰 스케줄 때문에 여의도에서 출발한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교수보다 먼저 그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리본, 꽃들이 자칫 적막할 뻔 한 주인 없는 방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액자들에 담긴 장 교수와 그의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가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그려줬을 장 교수의 캐리커처,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도 리포터처럼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곧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장영희 교수가 방에 들어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길을 잘못 들어섰지 뭐야. 어서 앉아요. 커피 마실래요?” 라며 허겁지겁 리포터를 챙긴다. 매주 수요일마다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그였지만 누구보다도 낭랑한 목소리와 시원한 웃음소리를 자랑했다. 높은음자리의 즐거운 멜로디처럼 장 교수는 자신의 삶을 축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곁을 늘 따라다니는 ‘장애인’과 ‘암 환자’라는 꼬리표는 참으로 무색해 보였다. 도대체 그 밝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전 의도적으로 마인드컨트롤은 하지 않아요. <희망은 본능적인 힘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희망이란 어디선가 슬며시 나타나죠>제가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건 아무리 힘든 어려움이 닥쳐와도 결국은 극복하고 말 것이라는 확신 이예요> 그렇게 장애와 병은 저를 강해지도록 훈련시켰죠.” <<넘어지면 일어서는 스칼렛...>> 2001년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보스턴에 머물던 장영희 교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까운 친지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완치를 했다고. 하지만 2004년 가을 덜컥 그 암의 흔적이 척추암으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단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또 한번 넘어졌지만 곧바로 일어설 자신을 믿었다. “신이 저의 재기를 위해 쓰러뜨리는 거라 생각했어요. 이미 이렇게 넘어져본 적은 수십 번 있었으니 늘 넘어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죠. <바로 일어설 준비도 했고요> ” 이미 어렸을 적 어머니 등에 업혀 초등학교를 다닐 시절부터 그는 단단한 벽 앞에 맞서 싸우며 살아왔다.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상급학교 입시에 응시조차 막았던 그 두터운 벽을 아버지 장왕록 박사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허물어냈단다. 첫돌을 앞두고 고열로 끙끙 앓던 어린 딸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소아마비!”를 외쳤던 아버지, 장영희 교수가 삶을 긍정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든든한 아버지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딸과 함께 ‘스칼렛’의 공역을 끝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의 딸을 ‘스칼렛’같다며 소개했다는 아버지, 그렇게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 장 교수는 아름드리 영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장영희 교수에게서 느껴지는 평화롭고 고요한 힘이란 필시 그의 동반자였던 밝고 선량한 아버지의 흔적이리라. 그가 한 일간지에 영미 시와 각종 문학 작품을 연재하면서 곁들인 에세이에 수많은 독자들이 꿈을 품고, 희망을 품었다. “교도소의 수인들이 제 글을 읽고 희망을 찾았다는 편지를 많이 보내더라고요. 좁은 공간에서 깊은 사색과 자기성찰을 하는 동안 제가 소개한 작품들이 좋은 자극제가 됐던 모양 이에요.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가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와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좌절과 실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보다 희망을 가지는 시간이 훨씬 유익하더라고요. 그걸 꼭 전하고 싶었어요” 라며 그는 ‘살아있음’ 자체가 축복이며 희망이니 절망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희망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조건이라고 얘기한다. 도대체 그의 ‘오뚝이 권법’은 어떤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장영희 교수는 이 ‘희망 찾기’에 있어서의 문학의 힘을 굳건히 믿는다. <문학은 삶의 용기와 사랑을 가르치고, 삶을 살아가고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아무리 넘어져도 곧잘 일어나는 모습 역시 그 힘을 증명해주는 거죠> 그의 말대로 문학은 우리가 처할지 모르는 위험을 한 발 앞서 감당해준다.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고, 투쟁을 하고, 승리를 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대리경험을 하고 마음속에 뜨겁게 번져오는 삶에의 열망을 느끼곤 한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염증을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장 교수는 이런 문학의 힘을 일깨워주고 싶은 듯 했다. 아름다운 이들에 둘러싸인 나는 행운아 “목소리 또 갈라지잖아~ 앞에 커피 마시면서 해. 아 참, 커피 마시면 안 되려나?” 인터뷰 시작 초반부터 옆에 앉아 연신 추임새를 붙이던 화가 김점선씨가 장영희 교수에게 걱정 어린 말 한마디를 던진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반바지와 운동화로 편안한 멋을 낸 김점선씨는 장영희 교수의 뜨뜻한 동료이자 생기 넘치는 벗이다. “장 교수가 신문에 영미시 연재했을 때 영어공부에 손놓고 지내던 아줌마들이 얼마나 열광적이었나 몰라요. 심지어서클을 만들어서 함께 시를 외우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했죠. 그 중에 하나가 나예요” 라는 김점선 화가의 말에 연구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연재했던 영미시와 에세이를 묶어 책으로 발간하는데 그 안의 삽화를 김점선씨가 그리게 됐다며 서로를 반기는 그들은 흡사 소녀들 같았다. 장영희 교수의 곁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주인 없는 그의 방을 반짝이도록 비추는 작은 소품들,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흔적이 장영희 교수의 인복을 실감케 했듯이 말이다. 장 교수의 글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사랑’에 대해 묻자 그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위는 정말 넓어요. 전 누군가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다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이라면, 서로의 존재 자체가 해롭지 않는 사이라면, 그 존재 하나로 안심이 되는 사이라면 그건 다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아서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여기는 중이에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 많은 장 교수에게도 고민되는 것이 있단다. 예전보다 학과 규모도 커지고, 수업 규모도 커지면서 제자들에 대한 꼼꼼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점이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엔 한 학생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사랑을 퍼부었건만 근래엔 그럴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단다. 영어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 개개인의 마음과 심리, 세계관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단다. “그래도 제가 3월에 강단에 복귀할 때 학생들이 많이 환영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연구실 안팎에 예쁜 종이 장식과 풍선들을 매달아놓고 ‘Happy Birthday!’ 라는 문구를 걸어놨어요. 제가 새로 태어났단 의미였던가 봐요.” 인터뷰 도중 연구실에 잠시 찾아온 한 제자에게 자신의 책을 선물하며 그 안에 메시지를 적어주는 장 교수의 왼손이 아름답게 빛났다. 몸이 불편해 활동거리가 제한적인 그에게 제자들이란 그렇게 산들바람처럼 상쾌하고 고마운 존재다. 잠시 들러 누군가의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화제 거리를 던져주고 가니 학생들과의 소통은 곧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과도 같다.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에서도 여럿 등장하는 학생들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의 제자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다. 승리의 행진이 시작된 제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강의 도중 토론 시간에 어느 학생이 던진 말을 귀 기울여 기억해 적은 것 등의 행복한 이야기도 많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제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제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어느 날부턴가 종적을 감췄어요. 그리곤 제 연구실 방문 틈으로 쪽지를 끼워뒀더군요. 자신의 뇌가 솜으로 가득 찬 것 같다면서요. 키가 하루에 1cm씩 자란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로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였어요. 관심과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죠. ” 하지만 결국 그 학생을 구하진 못했단다. 그래서 좀 더 지혜롭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던 점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단다. 그 학생 이야기를 전하며 장 교수는 한없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가 많은 학생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이어받는 이유는 장 교수 역시 맺은 인연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서클럽, 소설 한 편의 소박한 꿈 “지난번에 부산에 저자 사인회를 갔다가 인디고서원의 청소년 독서 클럽을 들른 적이 있어요. 어린 학생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독후감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화가 대한민국 전체에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일단 서강대에 독서클럽을 만들려고 합니다. 교수님들도 벌써 몇 분 섭외 했어요. ” 장 교수는 일단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여념이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 클럽을 만들어 운영할 예정이다. 그리고 후엔 ‘어린 왕자’같은 아름다운 소설을 써보고 싶단다. 그의 손을 거친 글귀들은 금새 아름다운 멜로디가 될 것만 같다. 얼마 전 수첩을 잃어버려 학생들 연락처부터 지인들 연락처를 알 길이 없다며 답답해하는 장영희 교수는 스스로를 ‘기계치’라 부른다. 휴대전화에 연락처 저장하는 법을 몰라 수첩만 사용한다는 .... 그, 아름다운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이 지닌 강한 힘을 믿는다는 그를 만나는 동안엔 최첨단 디지털 시대 속 아날로그의 따스함을 만난 듯 더없이 푸근하고 편안했다. (내일신문:이성실 학생 리포터)
장영희 서강대 교수 인터뷰
울창하고 싱그럽게 우거진 문학의 숲을 거니는 동안 몇 번
이고 눈을 감고 머릿속을, 마음속을 정리했다.
알록달록한 색연필을 양손에 쥐었다 놨다 수차례 반복하
며 행여 줄이 삐뚤어질까 한껏 정성을 들여 그었다.
펜팔을 하는 기분이란 바로 이러한 설렘이 아닐까.
눈빛 마주하며 서로의 목소리를 섞는 것보다 7.5배 정도는
더 낭만적인 것 같다.
어느새 이 사람과 한껏 가까워진 뿌듯함이 밀려오는 시간,
장영희 교수가 펴낸 ‘문학의 숲을 거닐다’의 하드커버 안
쪽을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그랬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앉아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읽다가,
이내 침대로 옮겨가 베개를 등뒤에 받치고 읽더니, 엎드려
도 보고, 팔을 번쩍 들어도 본다.
하지만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시선만은 단단히 고정돼
있었다.
홀로 또 일방적으로 몰래몰래 장영희 교수의 마음을 들여
다보는 기분이란 참으로 쏠쏠했다.
책을 덮고 나니 ‘생후 1년 만에 1급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두 차례의 암 투병까지 꿋꿋하게 이
겨낸 장영희 교수’라는 저자의 프로필보다도 ‘인간 장영
희’가 언니같고, 엄마같은 모습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잠시 후 벨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2시 40분에 봅
시다. 내 방으로 와주겠어요?” 그녀였다.
방송사 인터뷰 스케줄 때문에 여의도에서 출발한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교수보다 먼저 그의 연구실
에 도착했다.
알록달록한 풍선들과 리본, 꽃들이 자칫 적막할 뻔
한 주인 없는 방을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액자들에 담긴 장 교수와 그의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가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그려줬을
장 교수의 캐리커처,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들도 리
포터처럼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 했다.
곧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장영희 교수가 방에 들어
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길을 잘못 들어섰지 뭐야.
어서 앉아요.
커피 마실래요?” 라며 허겁지겁 리포터를 챙긴다.
매주 수요일마다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그였지만 누
구보다도 낭랑한 목소리와 시원한 웃음소리를 자랑
했다.
높은음자리의 즐거운 멜로디처럼 장 교수는 자신의
삶을 축복이라 여기며 즐기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곁을 늘 따라다니는 ‘장애인’과 ‘암
환자’라는 꼬리표는 참으로 무색해 보였다.
도대체 그 밝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전 의도적으로 마인드컨트롤은 하지 않아요.
<희망은 본능적인 힘입니다>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희망이란 어디선가 슬며
시 나타나죠>
제가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건 아무리 힘든 어
려움이 닥쳐와도 결국은 극복하고 말 것이라는 확
신 이예요>
그렇게 장애와 병은 저를 강해지도록 훈련시켰죠.”
<<넘어지면 일어서는 스칼렛...>>
2001년 안식년을 맞아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보스
턴에 머물던 장영희 교수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
연히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가까운 친지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완치를 했다고. 하지만 2004년 가을
덜컥 그 암의 흔적이 척추암으로 전이됐다는 진단
을 받았단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또 한번 넘어졌지만 곧바로 일어설 자신을 믿었다.
“신이 저의 재기를 위해 쓰러뜨리는 거라 생각했어
요. 이미 이렇게 넘어져본 적은 수십 번 있었으니
늘 넘어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죠.
<바로 일어설 준비도 했고요>
” 이미 어렸을 적 어머니 등에 업혀 초등학교를 다
닐 시절부터 그는 단단한 벽 앞에 맞서 싸우며 살아
왔다.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상급학교 입시에 응시조차
막았던 그 두터운 벽을 아버지 장왕록 박사의 필사
적인 노력으로 허물어냈단다.
첫돌을 앞두고 고열로 끙끙 앓던 어린 딸을 보며 무
언가를 깨달은 듯 “소아마비!”를 외쳤던 아버지, 장
영희 교수가 삶을 긍정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든든
한 아버지로부터 얻은 것이었다.
딸과 함께 ‘스칼렛’의 공역을 끝내며 주변 사람들에
게 당신의 딸을 ‘스칼렛’같다며 소개했다는 아버지,
그렇게 자신을 지켜주던 아버지의 뒤를 고스란히
따라 장 교수는 아름드리 영문학자의 길을 걷고 있
었다.
장영희 교수에게서 느껴지는 평화롭고 고요한 힘이
란 필시 그의 동반자였던 밝고 선량한 아버지의 흔
적이리라.
그가 한 일간지에 영미 시와 각종 문학 작품을 연재
하면서 곁들인 에세이에 수많은 독자들이 꿈을 품
고, 희망을 품었다. “교도소의 수인들이 제 글을 읽
고 희망을 찾았다는 편지를 많이 보내더라고요.
좁은 공간에서 깊은 사색과 자기성찰을 하는 동안
제가 소개한 작품들이 좋은 자극제가 됐던 모양 이
에요.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가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
면서 저와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
가 직접 경험을 해보니 좌절과 실망에 빠져 허우적
대는 시간보다 희망을 가지는 시간이 훨씬 유익하
더라고요.
그걸 꼭 전하고 싶었어요” 라며 그는 ‘살아있음’ 자
체가 축복이며 희망이니 절망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희망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조
건이라고 얘기한다.
도대체 그의 ‘오뚝이 권법’은 어떤 마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장영희 교수는 이 ‘희망 찾기’에 있
어서의 문학의 힘을 굳건히 믿는다.
<문학은 삶의 용기와 사랑을 가르치고, 삶을 살아
가고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제가 아무리 넘어져도 곧잘 일어나는 모습 역시
그 힘을 증명해주는 거죠>
그의 말대로 문학은 우리가 처할지 모르는 위험을
한 발 앞서 감당해준다.
그 안의 등장인물들은 참으로 치열한 삶을 살고, 투
쟁을 하고, 승리를 한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대리경험을 하고 마음속에 뜨
겁게 번져오는 삶에의 열망을 느끼곤 한다.
쉽게 좌절하고, 쉽게 염증을 느끼는 요즘 젊은이들
에게 장 교수는 이런 문학의 힘을 일깨워주고 싶은
듯 했다.
아름다운 이들에 둘러싸인 나는 행운아
“목소리 또 갈라지잖아~ 앞에 커피 마시면서 해. 아 참, 커
피 마시면 안 되려나?”
인터뷰 시작 초반부터 옆에 앉아 연신 추임새를 붙이던 화
가 김점선씨가 장영희 교수에게 걱정 어린 말 한마디를 던
진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반바지와 운동화로 편안한 멋을 낸 김점
선씨는 장영희 교수의 뜨뜻한 동료이자 생기 넘치는 벗이
다.
“장 교수가 신문에 영미시 연재했을 때 영어공부에 손놓고
지내던 아줌마들이 얼마나 열광적이었나 몰라요.
심지어서클을 만들어서 함께 시를 외우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했죠. 그 중에 하나가 나예요” 라는 김점선 화가의 말
에 연구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연재했던 영미시와 에세이를 묶어 책으로 발간하는데 그
안의 삽화를 김점선씨가 그리게 됐다며 서로를 반기는 그
들은 흡사 소녀들 같았다.
장영희 교수의 곁엔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주인 없는 그의 방을 반짝이도록 비추는 작은 소품들,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흔적이 장영희 교수의 인복을 실감케
했듯이 말이다.
장 교수의 글에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사랑’에 대해 묻자
그는 “제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위는 정말 넓어요.
전 누군가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다 사랑이라
고 생각하거든요.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이라면, 서로의 존재 자체가 해롭지 않는 사이
라면, 그 존재 하나로 안심이 되는 사이라면 그건 다 사랑
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아
서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여기는 중이에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 많은 장 교수에게도 고민되는 것이 있단다.
예전보다 학과 규모도 커지고, 수업 규모도 커지면서 제자
들에 대한 꼼꼼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점이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무렵엔 한 학생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 사랑을 퍼부었건만 근
래엔 그럴 기회가 적었다는 것이 참 안타깝단다.
영어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생 개개인의 마음과 심리, 세
계관까지도 읽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단다.
“그래도 제가 3월에 강단에 복귀할 때 학생들이 많이 환
영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연구실 안팎에 예쁜 종이 장식과 풍선들을 매달아놓고
‘Happy Birthday!’ 라는 문구를 걸어놨어요. 제가 새로 태어
났단 의미였던가 봐요.”
인터뷰 도중 연구실에 잠시 찾아온 한 제자에게 자신의 책
을 선물하며 그 안에 메시지를 적어주는 장 교수의 왼손이
아름답게 빛났다.
몸이 불편해 활동거리가 제한적인 그에게 제자들이란 그
렇게 산들바람처럼 상쾌하고 고마운 존재다.
잠시 들러 누군가의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화제 거리를 던져주고 가니 학생들과의 소통은 곧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과도 같다.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에서도 여럿 등장하는 학생들 이야
기를 들여다보면 그의 제자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다.
승리의 행진이 시작된 제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강의 도중
토론 시간에 어느 학생이 던진 말을 귀 기울여 기억해 적
은 것 등의 행복한 이야기도 많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제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제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어느 날부턴가 종적을 감췄어
요. 그리곤 제 연구실 방문 틈으로 쪽지를 끼워뒀더군요.
자신의 뇌가 솜으로 가득 찬 것 같다면서요.
키가 하루에 1cm씩 자란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로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였어요.
관심과 사랑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
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죠.
” 하지만 결국 그 학생을 구하진 못했단다. 그래서 좀 더
지혜롭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던 점이 두고두고 가
슴에 남는단다.
그 학생 이야기를 전하며 장 교수는 한없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가 많은 학생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이어받는 이
유는 장 교수 역시 맺은 인연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쏟
아 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서클럽, 소설 한 편의 소박한 꿈
“지난번에 부산에 저자 사인회를 갔다가 인디고서
원의 청소년 독서 클럽을 들른 적이 있어요.
어린 학생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독후감
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이 문화가 대한민국 전체에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일단 서강대에 독서클럽을 만들려고 합니
다.
교수님들도 벌써 몇 분 섭외 했어요.
” 장 교수는 일단 입시 위주의 공부에만 여념이 없
는 청소년들을 위해 독서 클럽을 만들어 운영할 예
정이다.
그리고 후엔 ‘어린 왕자’같은 아름다운 소설을 써보
고 싶단다.
그의 손을 거친 글귀들은 금새 아름다운 멜로디가
될 것만 같다.
얼마 전 수첩을 잃어버려 학생들 연락처부터 지인
들 연락처를 알 길이 없다며 답답해하는 장영희 교
수는 스스로를 ‘기계치’라 부른다.
휴대전화에 연락처 저장하는 법을 몰라 수첩만 사
용한다는 ....
그, 아름다운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이 지닌 강한 힘
(내일신문:이성실 학생 리포터)을 믿는다는 그를 만나는 동안엔 최첨단 디지털 시
대 속 아날로그의 따스함을 만난 듯 더없이 푸근하
고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