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영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회한과 진득한 슬픔이 가득 묻어난다. 과거에 그녀도 그러했다. 아버지- 환사 위제혁에게 법술을 배우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수련이 대부분 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만큼, 하나하나 이뤄가는 성취감에 푹 빠졌었다. 지금의 도화 이 녀석처럼 말이다.
“신을 불러내어 자신의 몸에 담는 것이 강신이란다.”
강신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백아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아마도 과거의 30년 전 그날이 떠올랐을 터였다. 아들을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단영의 얼굴도 깊게 그늘져 있다.
“...반면에 소환이란... 신을 불러내되, 자신의 몸에 담는 것이 아니란다.
공간을 일그러트려서 그의 육신과 정신을 모두 불러오는 것이지.. ”
“음... 그러면 강신은 신을 받아들여 자신의 의지까지 모두 잃게 되는 거네요?”
“그렇지..그 순간만큼은 그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는 네가 바라는 바를 이뤄줄게야..그것이 강신을 이루는 염원이란다.”
“잘 모르겠어요... 상상이 안 되어요~! 내 몸을 누군가가 지배하는 기분이란..”
검은 곱슬머리를 긁적이며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는 녀석이었다. 그런 도화를 다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한영이다.
“접신(接神)이 절정을 이루었을 때는, 비로소 술사의 신체에 완전히 신이 들어와, 그의 자아마저 지배하게 된단다. 이때 도리어 자아는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야...”
“완전한..접신?”
“그래.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환이 강신 보다는 훨씬 상위의 술법이지. 소환은 본인의 몸을 빌리지 않고 눈앞에 온전히 ‘신’ 그대로를 구현시키는 것이니..”
“소환이 그럼 훨씬 어려운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소환할 수 있는 존재는 한정되어 있어. 최하위의 자연신이나 아니면 작은 신수들 정도란다..”
“아~! 그래서 강한 신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강신이 오히려 더 최고의 술이란 말이네요?”
“그런 셈이 되는 게야..”
여기까지 말을 마친 단영은, 도화에게 이것저것 소환과 강신을 이루는 의식과 절차 등에 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의 두 눈동자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번 일러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또한 하나를 가르치면 백가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깨우쳤다. 단영도 하늘이 내린 수재라지만, 도화는 그런 단영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자연의 기와 너무나도 친숙해 했고, 가끔 말하는 바를 가만히 보면, 정말로 우주의 이치를 깨우쳐 가는 것 같았다. 그 경지는 60수를 넘어보는 단영도 겨우 어렴풋이 짐작만 되는 벽이다. 단영은 정말로 궁금했다. 버선발이라면 도화의 작은 머릿속을 열두 번도 더 뒤집어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평생의 도력을 아이에게 집중해서 쏟아 부었다.
딱 3년.
지난 3년간 아이는 그녀의 모든 것을 흡수해서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가장 최후의 술이자 가장 무서운 술인 강신을,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중이다. 그녀의 교육관은 철저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百聞不如一見)
백번 입 아프게 설명해 봤자, 한번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천만 배 낫다는 말씀!
물론 단영이 술의 핵심을 설명하고는, 곧바로 눈앞에 펼쳐 보일 만큼, 실력이 뒷받침되는 스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허나 강신이라는 술의... 그 무서움과 결과의 처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다.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그 두려운 술을 펼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교육철학을 마지막에 와서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계속 묘한 표정으로 자신과 도화를 노려보고 있는 백아의 시선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도화야 강신은 진정한 염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단다. 절실한 바램이지.
대신 오늘은 처음이고 하니, 소환을 같이 해 보도록 하자꾸나.“
이번엔 도화의 작은 고개가 크게 끄덕여 졌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다른 존재를 직접 불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백아의 가슴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백아는 겉으로만 투덜거릴 뿐 매일 저녁 이 시간을 은근히 재미있어 했다. 도화가 검(劍)이나 무공에 소질이 없음은 그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제자를 성장시켜 나가는 기쁨도 온전히 단영에게 양보했다. 처음에는 약도 오르고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그들의 옆에서 투덜거리며 지켜본 것이 한달 쯤 될 때였다. 그들 사제지간은,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단영의 간단한 수인과 주문이 이어졌다.
화아악!
그녀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일었다. 후끈한 열기가 자신에게 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어설프지만 도화의 손바닥 위에도 작은 불꽃이 일렁였다. 단영의 불길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그날 두 사람이 즐거워하던 모습은 아직도 백아의 눈앞에 선했다. 어떤 때는 방안이 갑자기 눈발 날리는 설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환술이긴 했지만, 모래가 뜨거운 사막이라는 곳도 사실 그때 처음 보았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또한 사랑하는 아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지금도 쿵쾅거리는 마음을 들킬 새라, 한껏 인상을 구긴 채로, 모로 누워 단영과 도화를 훔쳐보고 있다.
단영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정중동이다.
고요한 좌정속의 폭발적인 수인의 맺힘! 열두 결의 인의 형태가 빠르게 교차된다. 백아의 눈에는, 단영의 전신이 부드러운 금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녀의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네 우주의 법리로 명하니, 「간다르바」여- 내 소환에 응할지어다.
옴 스마라 마하 자가라바 훔!”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도화와 단영사이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종이가 구겨지듯 눈앞의 공간이 여러 번 일그러졌다. 그 공간에 잡힌 빛은 미처 통과하지 못하고, 일그러진 면 사이를 계속 반사되어 나갔다. 반사된 빛은 한점으로 집중되는 듯했다. 눈이 시릴 만큼 밝아진 그 지점을 중심으로,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몽클 몽클 피어올랐다. 피어나는 안개 사이에는 은빛가루가 반짝반짝 거리며 흩날려,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자욱한 안개가 구름처럼 초가의 방안을 넘실넘실 거린다.
화-악
잠시 뒤- 더 없이 밝아진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허공에 떠서 웅크린 채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두근.
그 생명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다. 눈이 몹시 크고 입과 코는 작다. 귀는 뾰족하게 길었고, 머리칼은 회백색으로,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습이 몹시 자유로워 보였다. 전체적인 크기는 대략 성인의 팔뚝 길이 정도 될까? 허공에 떠있는 그 생명체는 별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 생명체는 공중에 선채로 큰 눈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단영을 발견했다. 그리고 단영을 향해 공손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옥구슬 구르는 듯한 여러 개의 음성이 하나로 합해져 울렸다.
「저를 소환하신 분이시여-」
그를 바라보는 단영의 표정이 자비로운 부처와 같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화를 바라보았다.
“도화야, 이 녀석은 환상의 구름에 산다는 선계의 작은 심부름꾼이란다.”
“아....하아... 아름다워요!”
도화는 그 작은 생명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나도 신기해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은 저쪽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멍하니 보고 있는 백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영은 슬쩍 웃음 지으며, 그 생명체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 작은 녀석은 소환주의 마음을 읽는 듯, 쪼르르 날아와서 도화의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았다. 도화의 고개도 녀석을 따라 한바퀴 쭈욱 돌았다. 그리고 그 작은 녀석은 도화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는 ‘간다르바’라고 해요. 혹은 ‘향기를 먹는 자들’이라고도 하지요.」
그리곤 방바닥 위를 넘실거리는 구름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치며 둥실 둥실 떠다녔다. 간다르바는 소환자보다 도화가 더욱 마음에 든 모양이다. 도화의 주위에서 한참을 놀던 녀석은 단영의 목소리에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시간이 되었구나. 혹여 다음에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부르도록 하마!
질서는 본연의 진리로 통하니, 계를 어지럽힌 자 - 돌아갈 지어다.
옴 스마라 훔!“
꺄르르....
엄중한 단영의 일갈과 함께, 간다르바는 방울소리와 같은 웃음소리를 남기고는 서서히 수십만 조각으로 깨어진 유리조각과 같이 공간으로 흩어져 갔다. 마치 신기루 같은 장면이다.
“아아....!”
도화의 입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멀찌감치 떨어진 백아도 입맛을 쩍쩍 다셨다.
간다르바의 소환에도 내심 진기의 소모가 꽤 되었던 듯, 단영은 잠시 눈을 감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다시 도화를 보았다.
녀석은 설렘과 기대의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도 소환을 해보고 싶은 것이냐?”
“네에!!”
“녀석...허나 지금 네 수준에 맞는 소환물로 무엇이 적당한지를 알 수가 없구나.. ”
“하지만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보자꾸나....으음....”
단영은 잠시 말없이 고민했다.
방금은 도화의 교육상... 보기 좋아 친근감을 주고, 비교적 안전한 소환수를 찾다보니 간다르바를 선택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험하거나 해로운 소환수도 많았다. 물론 그들은 소환주에게 복종할 테지만, 어린 도화에게 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막상 아직까지는 도화의 심력을 가늠해 볼 수가 없었으니.. 적당한 소환수를 찾기가 몹시 난감한 상황이다.
『도화』 (12)
-새로운 인연(5)-
잊을 수 없는 그날.
한여름의 열기도 저무는 해와 함께 운해 아래로 사그라지고 있을 때였다.
해가 진 뒤 컴컴하기 전까지 어스레한 땅거미가 천외봉의 초가 앞에 내려앉았다.
방안에는 노부인과 아리따운 소년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앉아 있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구석에 자리 잡은 노인은, 어둑어둑해지는 방안을 밝히고자 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도화야 ‘법’이란 무엇이라 하였지?”
“법은 우주만물과 인간세상의 원리를 세우고, 그 이치를 발견하는 것이라 하셨어요.”
“그러하면 ‘술’은?”
“그 원리를 밖으로 활용하는 것!”
노부인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걸렸다. 소년은 말똥말똥한 눈망울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중이다. 한쪽 구석의 노인은 그 모습이 부럽고 샘나는지, 혼자말로 머라고 궁시렁 거리며 눈썹을 씰룩거린다.
‘사내 녀석이라면, 응당 검(劍)과 무공을 익혀야 하거늘..쳇. 저러니 도화가 희멀거니 키도 작고 몸집도 마른게지...끌끌...’
노인의 투덜거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온화한 표정의 노부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오늘은 그 술의 최고경지인 강신과 소환에 대해 ... 이야기해 보자꾸나..”
“최고경지요?”
“그래. 그중 강신은 가히 최고경지라고 볼 수 있을 게다.”
“우와아~”
“녀석... 좋으냐?”
“네에!”
단영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회한과 진득한 슬픔이 가득 묻어난다. 과거에 그녀도 그러했다. 아버지- 환사 위제혁에게 법술을 배우는 그 시간이 가장 즐거웠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수련이 대부분 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를 만큼, 하나하나 이뤄가는 성취감에 푹 빠졌었다. 지금의 도화 이 녀석처럼 말이다.
“신을 불러내어 자신의 몸에 담는 것이 강신이란다.”
강신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백아의 얼굴이 흠칫 굳어졌다. 아마도 과거의 30년 전 그날이 떠올랐을 터였다. 아들을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단영의 얼굴도 깊게 그늘져 있다.
“...반면에 소환이란... 신을 불러내되, 자신의 몸에 담는 것이 아니란다.
공간을 일그러트려서 그의 육신과 정신을 모두 불러오는 것이지.. ”
“음... 그러면 강신은 신을 받아들여 자신의 의지까지 모두 잃게 되는 거네요?”
“그렇지..그 순간만큼은 그의 꼭두각시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는 네가 바라는 바를 이뤄줄게야..그것이 강신을 이루는 염원이란다.”
“잘 모르겠어요... 상상이 안 되어요~! 내 몸을 누군가가 지배하는 기분이란..”
검은 곱슬머리를 긁적이며 머리를 좌우로 털어내는 녀석이었다. 그런 도화를 다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한영이다.
“접신(接神)이 절정을 이루었을 때는, 비로소 술사의 신체에 완전히 신이 들어와, 그의 자아마저 지배하게 된단다. 이때 도리어 자아는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야...”
“완전한..접신?”
“그래.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환이 강신 보다는 훨씬 상위의 술법이지. 소환은 본인의 몸을 빌리지 않고 눈앞에 온전히 ‘신’ 그대로를 구현시키는 것이니..”
“소환이 그럼 훨씬 어려운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소환할 수 있는 존재는 한정되어 있어. 최하위의 자연신이나 아니면 작은 신수들 정도란다..”
“아~! 그래서 강한 신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강신이 오히려 더 최고의 술이란 말이네요?”
“그런 셈이 되는 게야..”
여기까지 말을 마친 단영은, 도화에게 이것저것 소환과 강신을 이루는 의식과 절차 등에 관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아이의 두 눈동자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한번 일러주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아이였다. 또한 하나를 가르치면 백가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깨우쳤다. 단영도 하늘이 내린 수재라지만, 도화는 그런 단영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는 자연의 기와 너무나도 친숙해 했고, 가끔 말하는 바를 가만히 보면, 정말로 우주의 이치를 깨우쳐 가는 것 같았다. 그 경지는 60수를 넘어보는 단영도 겨우 어렴풋이 짐작만 되는 벽이다. 단영은 정말로 궁금했다. 버선발이라면 도화의 작은 머릿속을 열두 번도 더 뒤집어 보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평생의 도력을 아이에게 집중해서 쏟아 부었다.
딱 3년.
지난 3년간 아이는 그녀의 모든 것을 흡수해서 제 것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가장 최후의 술이자 가장 무서운 술인 강신을,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중이다. 그녀의 교육관은 철저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百聞不如一見)
백번 입 아프게 설명해 봤자, 한번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천만 배 낫다는 말씀!
물론 단영이 술의 핵심을 설명하고는, 곧바로 눈앞에 펼쳐 보일 만큼, 실력이 뒷받침되는 스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허나 강신이라는 술의... 그 무서움과 결과의 처참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다.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그 두려운 술을 펼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교육철학을 마지막에 와서 뒤집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도 아까부터 계속 묘한 표정으로 자신과 도화를 노려보고 있는 백아의 시선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도화야 강신은 진정한 염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단다. 절실한 바램이지.
대신 오늘은 처음이고 하니, 소환을 같이 해 보도록 하자꾸나.“
이번엔 도화의 작은 고개가 크게 끄덕여 졌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다른 존재를 직접 불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백아의 가슴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사실 백아는 겉으로만 투덜거릴 뿐 매일 저녁 이 시간을 은근히 재미있어 했다. 도화가 검(劍)이나 무공에 소질이 없음은 그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제자를 성장시켜 나가는 기쁨도 온전히 단영에게 양보했다. 처음에는 약도 오르고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루 이틀 그들의 옆에서 투덜거리며 지켜본 것이 한달 쯤 될 때였다. 그들 사제지간은,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던 것 같다. 단영의 간단한 수인과 주문이 이어졌다.
화아악!
그녀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일었다. 후끈한 열기가 자신에게 까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어설프지만 도화의 손바닥 위에도 작은 불꽃이 일렁였다. 단영의 불길에 비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그날 두 사람이 즐거워하던 모습은 아직도 백아의 눈앞에 선했다. 어떤 때는 방안이 갑자기 눈발 날리는 설원으로 바뀌기도 했다. 환술이긴 했지만, 모래가 뜨거운 사막이라는 곳도 사실 그때 처음 보았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또한 사랑하는 아들의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지금도 쿵쾅거리는 마음을 들킬 새라, 한껏 인상을 구긴 채로, 모로 누워 단영과 도화를 훔쳐보고 있다.
단영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정중동이다.
고요한 좌정속의 폭발적인 수인의 맺힘! 열두 결의 인의 형태가 빠르게 교차된다. 백아의 눈에는, 단영의 전신이 부드러운 금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녀의 나지막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네 우주의 법리로 명하니, 「간다르바」여- 내 소환에 응할지어다.
옴 스마라 마하 자가라바 훔!”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도화와 단영사이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종이가 구겨지듯 눈앞의 공간이 여러 번 일그러졌다. 그 공간에 잡힌 빛은 미처 통과하지 못하고, 일그러진 면 사이를 계속 반사되어 나갔다. 반사된 빛은 한점으로 집중되는 듯했다. 눈이 시릴 만큼 밝아진 그 지점을 중심으로,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몽클 몽클 피어올랐다. 피어나는 안개 사이에는 은빛가루가 반짝반짝 거리며 흩날려, 보는 이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자욱한 안개가 구름처럼 초가의 방안을 넘실넘실 거린다.
화-악
잠시 뒤- 더 없이 밝아진 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작은 생명체 하나가 허공에 떠서 웅크린 채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두근.
그 생명체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다. 눈이 몹시 크고 입과 코는 작다. 귀는 뾰족하게 길었고, 머리칼은 회백색으로, 이리저리 휘날리는 모습이 몹시 자유로워 보였다. 전체적인 크기는 대략 성인의 팔뚝 길이 정도 될까? 허공에 떠있는 그 생명체는 별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 생명체는 공중에 선채로 큰 눈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단영을 발견했다. 그리고 단영을 향해 공손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옥구슬 구르는 듯한 여러 개의 음성이 하나로 합해져 울렸다.
「저를 소환하신 분이시여-」
그를 바라보는 단영의 표정이 자비로운 부처와 같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화를 바라보았다.
“도화야, 이 녀석은 환상의 구름에 산다는 선계의 작은 심부름꾼이란다.”
“아....하아... 아름다워요!”
도화는 그 작은 생명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나도 신기해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은 저쪽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멍하니 보고 있는 백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영은 슬쩍 웃음 지으며, 그 생명체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 작은 녀석은 소환주의 마음을 읽는 듯, 쪼르르 날아와서 도화의 주위를 한바퀴 빙 돌았다. 도화의 고개도 녀석을 따라 한바퀴 쭈욱 돌았다. 그리고 그 작은 녀석은 도화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는 ‘간다르바’라고 해요. 혹은 ‘향기를 먹는 자들’이라고도 하지요.」
그리곤 방바닥 위를 넘실거리는 구름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치며 둥실 둥실 떠다녔다. 간다르바는 소환자보다 도화가 더욱 마음에 든 모양이다. 도화의 주위에서 한참을 놀던 녀석은 단영의 목소리에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시간이 되었구나. 혹여 다음에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부르도록 하마!
질서는 본연의 진리로 통하니, 계를 어지럽힌 자 - 돌아갈 지어다.
옴 스마라 훔!“
꺄르르....
엄중한 단영의 일갈과 함께, 간다르바는 방울소리와 같은 웃음소리를 남기고는 서서히 수십만 조각으로 깨어진 유리조각과 같이 공간으로 흩어져 갔다. 마치 신기루 같은 장면이다.
“아아....!”
도화의 입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멀찌감치 떨어진 백아도 입맛을 쩍쩍 다셨다.
간다르바의 소환에도 내심 진기의 소모가 꽤 되었던 듯, 단영은 잠시 눈을 감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고 다시 도화를 보았다.
녀석은 설렘과 기대의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도 소환을 해보고 싶은 것이냐?”
“네에!!”
“녀석...허나 지금 네 수준에 맞는 소환물로 무엇이 적당한지를 알 수가 없구나.. ”
“하지만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보자꾸나....으음....”
단영은 잠시 말없이 고민했다.
방금은 도화의 교육상... 보기 좋아 친근감을 주고, 비교적 안전한 소환수를 찾다보니 간다르바를 선택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험하거나 해로운 소환수도 많았다. 물론 그들은 소환주에게 복종할 테지만, 어린 도화에게 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막상 아직까지는 도화의 심력을 가늠해 볼 수가 없었으니.. 적당한 소환수를 찾기가 몹시 난감한 상황이다.
그때 마침 그녀의 머리를 때리는 묘안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랬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