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던 그 사람, 다른 여자와 침대에 누워있더군요

바보천치200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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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지 아주 오래된 건 아니지만 스물여섯인 제 나이와 열 살 많은 그 사람 탓에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만나는 사람이었죠. 제 생각일 뿐만은 아니었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건 종종 그 사람 “내가 결혼 하자고 하면 할래?” 라든지 “내 년 쯤이면 가정 꾸릴 여유 생길 거 같아”라는 말을 했었으니까요.

 

 나이라든지 이런 저런 이유들로 피하던 제게 한결 같이 꽤 오랜 시간을 바라봐줬던 사람이었어요. 그 기간 동안의 일들은 .... 제겐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이제는 아픔이고 이제와 보니 시쳇말로 여자를 꼬실 때 그 정도의 공은 들이는 거라기에 일일이 얘기하진 않을게요. 그냥 전 제가 신데렐라라도 된 것 마냥 행복했었죠. 그렇게 본격적으로 사귀게 되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많이 바빠지더군요. 새로 시작한 일들이 너무 잘 풀려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 한 치 의심 없이 믿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일주일에 한 번 쯤 만나면 늘 피곤해 하면서도 그 동안 왜 바빴는지 제가 잘 알아듣지 못 하더라도 애기해주곤 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난 주말이었네요. 모처럼 갖는 친구들과의 모임이었고 이런 저런 얘기 중  화제는 자연스레 지금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죠. 내겐 너무 소중한 그 사람, 너무 사랑하는 그 사람 자랑에 신났죠. 못 마시던 소주를 반 병 가까이 마신 탓 인지 그 사람 얘길 해서인지 몹시 보고 싶더군요. 전화를 했더니 바쁘다고 나중에 자기가 하겠데요. 또 회사에서 날 새나 보다 했죠. 최근 들어 일이 너무 많아 회사에서 날 새고 낮에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일하러 간다고 해서 제가 많이 안쓰러워했거든요.

 

 모임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사람 오피스텔이 있었는데 번호 키라 비밀 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혼자 사는 남자 집이라는 게 맘에 걸려 언제 청소라도 한 번 해줘야 겠다 맘만 먹고 있었지 찾아가 본 적은 없었어요. 참 일이 그렇게 될려고 한 건지 오빠네 집에 가보고 싶더군요.

“나 술 취해서 택시 타기 겁나요. 오빠 집에서 자고 갈래.” 문자 보내 놓고 오피스텔에 들어갔더니 그 사람...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그 사람 옆에 여자가 모로 누워있더군요. 아니 여자 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검정 티셔츠를 입은 등만 보고 곧잘 와서 자고 간다던 후배인가보다, 깨면 민망하겠다 그냥 살금살금 나오려 했는데 현관 센서 불빛 아래 여자 신발이 보였어요. 다시 들어갔죠. 어느 틈엔가 깬 그 사람 가라는 손짓하더군요. 일어나지도 놀라지도 않더군요. 바보같이 그 와중에도 술은 깨지 않고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엘리베이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그 사람 그제서야 주섬주섬 나오더군요. 엘리베이터에 절 밀다시피 태우고, 내려서는 오피스텔에서 한참 떨어진 모퉁이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니 너무나 어이없는 상황에 되려 깔깔깔 웃음이 나오는 제게 얼른 집에 가라더군요. 이혼 서류 받으러 온 괌에서 온 부인이라고 지금 깨서 마주치면 너도 나도 모든게 엉망이 되니까 그냥 집에 가라더군요.

 

결혼 경험이 있다는 거 알고는 있었어요.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건 분명 아니었죠. 그렇게 자신있게 대쉬하는 그 사람이 결혼 경험이 있을 거라는 거 의심해 본 적도 없었고 그냥 제가 살아온 세상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이혼 경험 자체를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전 제가 그런 케이스에 있는 분들을 만난 적 없었고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는 거죠.) 한참을 사귀다 이런 저런 경험이 많은 그 사람에게 장난 말로 “오빤 참 해 본 것도 많다. 혹시 결혼도 해 본 거 아니야?” 물었더니 “응. 이혼했어. 애 엄마랑 애는 괌에 있어.”하더군요. 그 때 하늘이 무너지는 걸 처음 봤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질 수도 있더군요. 어쩜 지금 이렇게 아픈 건 그 때 끝내지 못 한 댓가인지도 모르겠네요. 넷이나 되는 딸, 잘 키워 시집 잘 보내는 게 유일한 낙이신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지만 그 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었고 전에 사업에 실패했었을 때 아이도 두고 집을 나간 전 부인과 그렇게 이혼했고 지금은 괌에서 오빠가 보낸 양육비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는 그 얘길 듣고 하루를 울다울다 지쳐 내린 결론은 그래도 헤어질 수 없다는 거였죠. 첨부터 말하려 했지만 제가 너무 순진한 거 같아 놀랄까봐 말 못 했다더군요. 뻔한 얘기죠. 그 땐 왜 믿었을까요? 그렇게 미안해하던 그 사람 얼굴이 가식인 걸 왜 몰랐을까요?

 

그날 밤 무언가 상처주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너무 화가 나서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입안에서 나오는 건 “그 동안 바쁘다는게 이런거였니? 그러니까 내가 오빠 첩이었던거야?” 오히려 제게 비수가 되어 꽂히는 말들  뿐이고 애들 봐서 다시 잘 해보려 하다 안되서 진짜 이혼 하려고 서류 받으러 들어온거라는 말에 "이혼은 왜 하니 금슬 좋아 보이던데..."비아냥만 나오고...자꾸만 나중에 얘기하자고 그냥 가라는 그 사람에게 "너 같으면 내가 다른 남자랑 옷을 벗고 누워 있다가 담에 해명하겠다고 그냥 가라면 가겠니?" 억지를 쓰다가 그렇게 그 사람 붙들고 말 같지도 않은 얘길 하려하고 들으려하는 내가 초라해 획 돌아서 걸었죠. 많이 비참하고 슬픈 거 같긴한데 이게 정말 내가 겪은 일인지 이런 유치한 이야기가 내 이야기라는게 실감 안 나더군요. 택시를 탔는데요... 그제야 술이 깼나봐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흔한 표현인줄 알았는데 정말 얼굴로 피가 솟구치는게 느껴지더군요.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군요. 택시 기사 아저씨한테 죄송하다하고 한참을 울었어요. 집에가서 가족들 앞에서 울 순 없으니까요. 이혼했단 말씀, 선입견 갖고 대하실까봐 차마 말씀 못 드리고-나중에 말씀 드릴려구 했죠. . . 잠시나마 부모님을 속이려 했던 벌을 받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방금 드네요-. 잘 해주던 것들만 말씀드려서 나이 차이가 나는게 맘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들 없는 집 든든한 맏사위 되겠다 기대하시며 조만간 한 번 보자 하시던 부모님이셨어요.  그렇게 한참 밖에서 울고 들어가 잠 한 숨 못 자고 일요일이 되었어요. 도저히 집에 있지 못 하겠기에 그 사람과 저와의 모든 만남을 처음부터 지켜 봤고 제 속내를 털어놓는 가까운 후배를 만나 또 한참을 울었네요. 정말 사람 속을 모르는 거라고 저 못 잖게 치를 떨어하죠. 혼인빙자로 고소라도 하자고 물론 저를 위로하기 위해서겠지만 더 분노하죠. 그렇게 그 후배에게 하소연하 고 위로 받으며 며칠을 보내는 동안 그 사람 하루에 딱 한 통씩만 전화 하더군요. 물론 받지 않았지만요.

 

며칠 동안을 잠 한 숨 모자고 물 한모금 못 넘겼어요. 회사에서는 실수 연발에, 순간 멍해졌다가 갑자기 심장이 갑갑하고 숨 쉬기기 힘들어 헉헉 거리며 가슴을 쥐어뜯고 자꾸만 눈 앞에  그 날 침대에서 본 모습이 떠올라 책상이든 어디든 누가 안보는 틈엔 머리를 쿵쿵 찧죠. 제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해서 미칠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니까 참 궁금하더군요. 도대체 제 어떤 점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인건지 왜 날 갖고 논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대로 덮어야하는 건지  정말 한 대만 때려주고 싶었고

상스런 욕이라도 해줘야 속이 풀릴 거 같은데 이러다 내가 미칠 거 같아 안되겠더군요.

그 사람 참 당당하더군요. 그리고 그 일 있은 지  일주일 쯤 지난 후 제 전화 번호가 뜨자 다짜고짜 "너 땜에 집에 난리났어. 어른들 올라오시고 정신없으니까 내가 전화할 때까지 전화하지마!" 전화를 끊어버리네요. 너무 어이가 없어 말도 안나왔어요. 저 때문이라뇨? 제가 그 사람이 유부남이란 걸 알고도 이해하고 만난 것도 아니었고 이혼하라고 빈 것도 아닌데. . . 나도 그 사람 장난에 희생된 피해자인데. . . 저한테는 발언권이 없네요. 오피스텔 쫓아가 따져볼까 싶다가도 그렇게한다고 나한테 돌아오는 건 뭔지 진짜 극단적인 생각으로 혼인빙자로 고소라도 할까라는 억지를 부려보다가도 내가 왜 그런 일에 연루되고 그런 일들을 겪어야하는지 어이없고 나만 이렇게 덮으면 그 사람 그 부인이라는 사람한테 거짓말 했을테니까 둘이 이혼 안 하고 살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행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참 별 걱정을 다하는 구나 어쩜 모든게 거짓말이어서 이혼할 생각조차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

 

이렇게 미쳐가고 있어요. 참 두서 없는 글, 길기만 하죠? 글 솜씨도 없는 편인데 지금 상황이 이렇다보니 ... 저 지금 충분히 초라합니다. 악플 사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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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사이 모르는 번호들로 전화가 많이 와서 한참 목소리만 듣고 끊네요. 괜한 의심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 가족들이 아닌가 싶어요. 그 사람 처가에서 증거 잡아 간통으로 고소한다고 벼르고 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그냥 끊는 전화가 열 통 가까이 되다보니 -매번 다른 번호들이네요-신경 쇠약 걸릴 거 같습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 못 했길래 제 사랑의 끝이 이렇게 추한 건지... 그 사람 쪽에서 간통으로 고소를 하든 제가 혼인빙자로 고소를 하든 마지막이라 믿었던 제 사랑은 절 죽이고 말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