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은 서둘러 화살다듬기에 여념이 없었고, 작약도 잡념이 무성했는지, 약초를 캔다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봉우리를 헤집고 다녔다. 백아도 무언가를 만든다고 며칠째 창고에서 두문불출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바쁜 사람은 바로 단영이었다.
낮에는 옷이며 간단한 먹을 거리등.. 여행 짐을 마련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질이 좋은 고기를 잘 저며 햇볕에 말려 육포를 만들어두고, 햇곡식만을 이용하여 벽곡단도 넉넉히 준비했다. 한영과 도화의 갈아입을 옷이며 속옷도 여분으로 두어 벌 새로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현이 말없이 도왔다. 또한 밤이면 도화를 앉혀놓고 끝내지 못한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4개월간 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도화에게 법술의 활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실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그날의 교훈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도화를 재우고 나서는 며칠 밤을 새어 부적(符籍)을 준비했다. 두 아이 모두, 길을 떠나서 여정을 겪다보면 어떤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그 부적들에게 자신의 남은 삼년의 수명을 쏟아 부었다. 드디어 마지막 부(符)에 법력을 담고 약지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단영이다.
현은 그런 그녀의 옆에 조용히 앉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부적들을 정성스레 노란 비단 천에 담아 붉은 실로 매듭짓고는 곁에 잘 두었다. 그리고는 하얀 한지를 꺼내어 펼쳤다. 옆에서 조용히 벼루에 먹을 갈던 현이 붓과 벼루를 내밀었다. 단영은 말없이 붓을 받아 들고 한지에 한자 한자 써내려 갔다. 붓을 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노안에도 어느덧 눈물 한 방울이 걸렸다.
‘아버지...’
단영은 사흘 전의 일을 떠올렸다. 저녁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작약과 현이 천외봉에 도착했던 그날 저녁이다. 도화와 한영, 현이 나란히 앉고 그리고 맞은편으로 자신과 백아 작약 이렇게 여섯이 둘러 앉아 막 밥술을 뜨려던 참이었다.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 어색함이 가득 흘렀다.
푸드드득!
푸덕
푸더덕!
괴이한 소리에 놀란 이들은 초가 밖으로 한걸음에 달려 나갔다. 어색함이 한 목 단단히 했는지 아무도 지체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단영은 소리를 내는 대상을 곧 알아보고는, 몹시 반가웠고 또 한편으로 그만큼 놀랐다.
‘......아! 솔아! ...... 네가 어찌?’
그놈은 ‘솔’이였다. 솔은 자신의 위씨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특출한 매였다. 특히나 솔이 이 녀석은 어린시절부터 단영과 마음이 통했던 오랜 친구였고 또한 아버지 환사의 평생의 반려자였다. 그 녀석이 지금 한영과 단영 주위를 한바퀴 돌고는 단영의 팔에 내려앉았다.
영물인 녀석은 30년이 지나도록 옛 친구의 얼굴을 잊지 않은 듯 단영의 팔에 앉아 그녀의 뺨에 제 머리를 비벼댔다. 제 딴에도 몹시나 반가운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솔이네? 그렇다면..... 아!”
“......아!”
한영과 단영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녀석의 발에 작은 쪽지가 단단히 매여 있었다. 단영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매의 다리에서 끌러낸 후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불(火)의 기운을 일으켜 쪽지를 태웠다.
“진리로 명한다. 들어나라! 후옴(視)!”
화르륵!
흰 종이는 덧없이 타버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재는 땅으로 떨러지지 않고 공중에서 둥글게 회오리쳤다. 회오리가 점점 커지며 그들의 중앙에 크게 원을 그릴 무렵이다.
「아이를 소북으로 보내어라. 영이도 함께.」
공기의 파공음과도 같은 묘한 목소리가 초가 앞을 가득 메웠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 환사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온 그가, 그녀가 보낸 편지와 한영의 쪽지를 보았으리라...... 염치없는 딸년을 내치지 않고 도화를 보듬어 안겠다는 말이다. 단영은 흐느꼈고, 그런 그녀를 백아가 다독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현을 바라보았다. 현은 깊은 눈으로 그의 시선을 되받아쳤다.
‘네가 말하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네에. 이르면 오늘 저녁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였지요.’
‘그래..... 정말로 이 아이들을 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로구나.’
‘망설이지 마셔요.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단영과 백아는 아이들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느라 분주한 며칠을 보낸 것이었다. 작약과 현 역시 약간 다른 의미이긴 했지만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단영은 환사에게 향하는 마지막 말을 서신에 남긴 후 풀로 단단히 봉했다. 그리고 부적을 담은 노란 비단과 함께 도화의 짐 보따리 깊숙한 곳에 잘 넣어두었다.
단영의 고요한 시선이 현에게 향했다.
“너는... 너도 같이 가는 게지? 네 마지막 임무라 하지 않았느냐..”
“아니어요. 저는 여기 천외봉에 남을 것이에요.”
단영은 속으로 몹시 놀랐다. 굳이 여기 남겠다면, 구태여 힘들여 이곳까지 올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또한 절절한 어투로 말을 잇던 며칠 전의 현이 떠올랐다. 어차피 4개월 뒤 환사에게 서신이 온다면 도화와 한영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떠날 테니 말이다. 현의 깊은 심력으로 그 정도를 예상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단영의 마음을 꿰뚫듯- 현은 조용히... 그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다.
“잠시 후면 보내야 하는 구나... 이 새벽이 영원하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영은 조용히 한숨쉬며 문밖으로 밝아오는 푸르스름한 여명을 야속하게 한탄했다.
그날 아침.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단영이다. 오늘따라 그녀의 늙은 뒷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그녀는 도화를 한참을 꽉 끌어안고 있다. 잠시 작은 아들을 품에서 떼어내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단영의 눈에서 흘러나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도화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훔쳐냈다. 도화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별이다.
마음이 심란하고 머릿속이 꽉 차서 녀석은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보던 이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 모양이다.
“화야, 엄마가 이른 말 하나하나 잘 기억하고 있지? 응?”
“네에~! 엄마.. 금방 갔다가올게요.. 울지마..”
“남들이 보면 영영 헤어진다 하겠수. 내가 잘 데리고 갔다 올께. 기다리고 있어, 이모”
한영이 그들 모자를 떼어내며 도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때 뒷짐을 지고 있던 백아가 한영의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뒤로 감추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이것... 내가 만든 것이야.. 잘 사용해라..흠흠..”
그리고 이내 백아는 반대편 하늘을 올려 보며 괜한 헛기침을 해댔다.
귀한 뱀 가죽으로 잘 재련된 편보였다. 그녀의 화살을 담아두기엔 딱 적격이다. 한영의 곁에서 그녀의 화살 만드는 요량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는, 화살의 크기와 한영의 체형을 고려하여 그야말로 딱 맞춤의 편보를 만들고 있었나보다. 좋은 화살은 기름칠이 잘된 좋은 주머니에 보관해야 나무가 휘지 않고, 그 위력이 두 세배로 붙는 법이다. 며칠동안 창고에서 밤낮을 새어가며 끙끙거리고 있더니 이것을 만들고 있었나 싶어 그녀의 얼굴 한가득 고마움이 가득했다. 안쪽을 보니 기름칠을 적어도 다섯 번은 넘게 한 듯했다. 그의 정성과 쑥스러운 애정 표현에 한영의 콧날이 시큰해졌다.
“고마워요..백아삼촌.....잘 쓸게요.”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다. 백아삼촌.
어린 한영을 구해낼 때 그를 부여잡고, 백아삼촌을 부르며 구슬피 울던 가녀린 소녀, 한영.
그녀는 백아에게도 특별한 존재였다. 백아의 가슴도 뭉클한 게 콧잔등이 시큰시큰했다.
“험험..가야 할 사람은 뒤를 보지 않고 가는 게야. 영아 어서 가거라.”
“네에.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한영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냉큼 뒤돌아섰다. 자신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저들 모자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을 듯 보였다. 그녀는 단영에게 몇 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꽉 끌어안았다.
“이모, 기다리고 있어. 울지 말고.”
“그래그래...내 아기.. 몸조심해야해... 할아버지한테 안부 잘 전하고. 도화도 잘 돌봐주고...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는 아이기도 하지만...”
“걱정 마. 다녀올게.”
매몰차게 고개를 돌린 한영은 도화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그때였다.
“기다리거라! 이 녀석들!!”
저쪽 멀리서 짧다막한 노파, 작약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현이 웃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작약은 손에는 얼핏 보아도 열 댓 개의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노파는 도화와 한영의 옆에선 흰둥이에게 대뜸 짐을 모두 넘기고는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내 귀한 삼을 발견해서 환단을 만드느라고 이리 지체되었다. 클클.
자.. 가자!“
작약이 흰둥이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대뜸 한영과 도화 사이에 서서 둘을 재촉했다.
“아니...어르신...!”
“흐흐흑! 어,어른!”
백아와 단영은 몹시 놀랐다. 의선작약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해준다면 한결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될 터였다. 하지만 ‘발귀리’선인의 예언과 같이 이 길은 험난하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라 했다. 단영은 너무나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작약이 성큼성큼 단영에게로 두어 걸음 걸어왔다.
“고마워 말거라. 반은 내 책임이니 내가 짐을 지마.”
“고맙습니다... 작약어른...흐흑.”
“되었다. 그런 소리 말거라. 우리 ‘현’이를 잘 부탁하느니.. 클클”
그리고 뒤로 돌아선 작약은 현에게 다가갔다. 거친 노파의 손이 보드라운 현의 손을 꼭 감아쥐었다.
“다녀오마. 운명을 괴로워 말거라.”
현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작약과 한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살이 거세어도 강을 건너야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길이니 불안해 말고 뜻을 이루셔요. 동쪽 물가로 가지 마시어요. 서북쪽이 길방 입니다.”
그리고 현은 고운 자태를 숙여 도화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도화에게 속삭였다.
“괴로움과 슬픔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셔요. 아파도 그걸 견디셔야합니다. 그래야 영혼의 성장을 이루실거에요. 만날 것입니다.
때가되면 마음이 이르는 길을 택하시면 되어요.”
말을 마친 현은 천천히 일어서서 작약을 애틋한 눈으로 응시했다.
눈물이라도 보일 새라 작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화와 한영을 재촉하여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모습이 도원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단영부부와 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석상처럼 서있는 그들이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흘렀다. 백아가 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길을 밝힌 다는 것은 어르신을 이름이었더냐..”
“네에... 이미 4개월 전 그날 할머님의 실은 도화와 엉키기 시작하였어요.
저 셋은 마지막을 결정짓는 분들이 될 테지요.“
“네가 마음고생이 심하였겠구나..”
“제가 소원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할머님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그랬을 테지.. 어찌 하늘의 뜻이 이토록 잔인하단 말이냐....”
“.............”
현은 대답 없이 서글픈 눈을 들어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할머니 저는 반드시 지옥불에 떨어질 테지요.....’
나지막이 읊조리는 ‘현’이다. 그녀의 사슴같이 까만 눈망울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침잠해 있다.
가장먼저 마음을 추스른 백아가 단영과 현을 한 팔씩 부축하고 초가 안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윽고 그들의 모습도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린 듯한 천외봉이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만이 무심하게 일렁이며 운명을 보듬고 있는 듯 하다.
-------------------------------------------------------------------------------------- 이제 1부가 막을 내립니다. 도화일행의 여행기로 이어지는 2부가 시작되겠군요. 이제는 본격적인 강호행입니다.
『도화』 (16)
-새로운 인연(9)-
그 후 며칠간 장백산 운해 위 천외봉은 매우 분주했다.
한영은 서둘러 화살다듬기에 여념이 없었고, 작약도 잡념이 무성했는지, 약초를 캔다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봉우리를 헤집고 다녔다. 백아도 무언가를 만든다고 며칠째 창고에서 두문불출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바쁜 사람은 바로 단영이었다.
낮에는 옷이며 간단한 먹을 거리등.. 여행 짐을 마련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질이 좋은 고기를 잘 저며 햇볕에 말려 육포를 만들어두고, 햇곡식만을 이용하여 벽곡단도 넉넉히 준비했다. 한영과 도화의 갈아입을 옷이며 속옷도 여분으로 두어 벌 새로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현이 말없이 도왔다. 또한 밤이면 도화를 앉혀놓고 끝내지 못한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4개월간 그녀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도화에게 법술의 활용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자신의 위험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실력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그날의 교훈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도화를 재우고 나서는 며칠 밤을 새어 부적(符籍)을 준비했다. 두 아이 모두, 길을 떠나서 여정을 겪다보면 어떤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그 부적들에게 자신의 남은 삼년의 수명을 쏟아 부었다. 드디어 마지막 부(符)에 법력을 담고 약지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단영이다.
현은 그런 그녀의 옆에 조용히 앉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부적들을 정성스레 노란 비단 천에 담아 붉은 실로 매듭짓고는 곁에 잘 두었다. 그리고는 하얀 한지를 꺼내어 펼쳤다. 옆에서 조용히 벼루에 먹을 갈던 현이 붓과 벼루를 내밀었다. 단영은 말없이 붓을 받아 들고 한지에 한자 한자 써내려 갔다. 붓을 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노안에도 어느덧 눈물 한 방울이 걸렸다.
‘아버지...’
단영은 사흘 전의 일을 떠올렸다. 저녁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작약과 현이 천외봉에 도착했던 그날 저녁이다. 도화와 한영, 현이 나란히 앉고 그리고 맞은편으로 자신과 백아 작약 이렇게 여섯이 둘러 앉아 막 밥술을 뜨려던 참이었다.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 어색함이 가득 흘렀다.
푸드드득!
푸덕
푸더덕!
괴이한 소리에 놀란 이들은 초가 밖으로 한걸음에 달려 나갔다. 어색함이 한 목 단단히 했는지 아무도 지체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단영은 소리를 내는 대상을 곧 알아보고는, 몹시 반가웠고 또 한편으로 그만큼 놀랐다.
‘......아! 솔아! ...... 네가 어찌?’
그놈은 ‘솔’이였다. 솔은 자신의 위씨 가문 대대로 전해지는 특출한 매였다. 특히나 솔이 이 녀석은 어린시절부터 단영과 마음이 통했던 오랜 친구였고 또한 아버지 환사의 평생의 반려자였다. 그 녀석이 지금 한영과 단영 주위를 한바퀴 돌고는 단영의 팔에 내려앉았다.
영물인 녀석은 30년이 지나도록 옛 친구의 얼굴을 잊지 않은 듯 단영의 팔에 앉아 그녀의 뺨에 제 머리를 비벼댔다. 제 딴에도 몹시나 반가운 모양이다.
“할아버지의 솔이네? 그렇다면..... 아!”
“......아!”
한영과 단영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녀석의 발에 작은 쪽지가 단단히 매여 있었다. 단영은 쪽지를 조심스럽게 매의 다리에서 끌러낸 후 천천히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불(火)의 기운을 일으켜 쪽지를 태웠다.
“진리로 명한다. 들어나라! 후옴(視)!”
화르륵!
흰 종이는 덧없이 타버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재는 땅으로 떨러지지 않고 공중에서 둥글게 회오리쳤다. 회오리가 점점 커지며 그들의 중앙에 크게 원을 그릴 무렵이다.
「아이를 소북으로 보내어라. 영이도 함께.」
공기의 파공음과도 같은 묘한 목소리가 초가 앞을 가득 메웠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 환사의 목소리였다. 아마도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온 그가, 그녀가 보낸 편지와 한영의 쪽지를 보았으리라...... 염치없는 딸년을 내치지 않고 도화를 보듬어 안겠다는 말이다. 단영은 흐느꼈고, 그런 그녀를 백아가 다독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현을 바라보았다. 현은 깊은 눈으로 그의 시선을 되받아쳤다.
‘네가 말하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네에. 이르면 오늘 저녁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였지요.’
‘그래..... 정말로 이 아이들을 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로구나.’
‘망설이지 마셔요.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단영과 백아는 아이들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느라 분주한 며칠을 보낸 것이었다. 작약과 현 역시 약간 다른 의미이긴 했지만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윽고 단영은 환사에게 향하는 마지막 말을 서신에 남긴 후 풀로 단단히 봉했다. 그리고 부적을 담은 노란 비단과 함께 도화의 짐 보따리 깊숙한 곳에 잘 넣어두었다.
단영의 고요한 시선이 현에게 향했다.
“너는... 너도 같이 가는 게지? 네 마지막 임무라 하지 않았느냐..”
“아니어요. 저는 여기 천외봉에 남을 것이에요.”
단영은 속으로 몹시 놀랐다. 굳이 여기 남겠다면, 구태여 힘들여 이곳까지 올 필요도 없는 일이 아닌가? 또한 절절한 어투로 말을 잇던 며칠 전의 현이 떠올랐다. 어차피 4개월 뒤 환사에게 서신이 온다면 도화와 한영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떠날 테니 말이다. 현의 깊은 심력으로 그 정도를 예상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단영의 마음을 꿰뚫듯- 현은 조용히... 그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다.
“잠시 후면 보내야 하는 구나... 이 새벽이 영원하여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영은 조용히 한숨쉬며 문밖으로 밝아오는 푸르스름한 여명을 야속하게 한탄했다.
그날 아침.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단영이다. 오늘따라 그녀의 늙은 뒷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그녀는 도화를 한참을 꽉 끌어안고 있다. 잠시 작은 아들을 품에서 떼어내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단영의 눈에서 흘러나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도화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훔쳐냈다. 도화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별이다.
마음이 심란하고 머릿속이 꽉 차서 녀석은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보던 이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는 모양이다.
“화야, 엄마가 이른 말 하나하나 잘 기억하고 있지? 응?”
“네에~! 엄마.. 금방 갔다가올게요.. 울지마..”
“남들이 보면 영영 헤어진다 하겠수. 내가 잘 데리고 갔다 올께. 기다리고 있어, 이모”
한영이 그들 모자를 떼어내며 도화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때 뒷짐을 지고 있던 백아가 한영의 앞으로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뒤로 감추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이것... 내가 만든 것이야.. 잘 사용해라..흠흠..”
그리고 이내 백아는 반대편 하늘을 올려 보며 괜한 헛기침을 해댔다.
귀한 뱀 가죽으로 잘 재련된 편보였다. 그녀의 화살을 담아두기엔 딱 적격이다. 한영의 곁에서 그녀의 화살 만드는 요량을 말없이 지켜보던 그는, 화살의 크기와 한영의 체형을 고려하여 그야말로 딱 맞춤의 편보를 만들고 있었나보다. 좋은 화살은 기름칠이 잘된 좋은 주머니에 보관해야 나무가 휘지 않고, 그 위력이 두 세배로 붙는 법이다. 며칠동안 창고에서 밤낮을 새어가며 끙끙거리고 있더니 이것을 만들고 있었나 싶어 그녀의 얼굴 한가득 고마움이 가득했다. 안쪽을 보니 기름칠을 적어도 다섯 번은 넘게 한 듯했다. 그의 정성과 쑥스러운 애정 표현에 한영의 콧날이 시큰해졌다.
“고마워요..백아삼촌.....잘 쓸게요.”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다. 백아삼촌.
어린 한영을 구해낼 때 그를 부여잡고, 백아삼촌을 부르며 구슬피 울던 가녀린 소녀, 한영.
그녀는 백아에게도 특별한 존재였다. 백아의 가슴도 뭉클한 게 콧잔등이 시큰시큰했다.
“험험..가야 할 사람은 뒤를 보지 않고 가는 게야. 영아 어서 가거라.”
“네에.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한영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냉큼 뒤돌아섰다. 자신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저들 모자는 영원히 헤어질 수 없을 듯 보였다. 그녀는 단영에게 몇 발자국 다가섰다. 그리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꽉 끌어안았다.
“이모, 기다리고 있어. 울지 말고.”
“그래그래...내 아기.. 몸조심해야해... 할아버지한테 안부 잘 전하고. 도화도 잘 돌봐주고...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는 아이기도 하지만...”
“걱정 마. 다녀올게.”
매몰차게 고개를 돌린 한영은 도화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그때였다.
“기다리거라! 이 녀석들!!”
저쪽 멀리서 짧다막한 노파, 작약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현이 웃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작약은 손에는 얼핏 보아도 열 댓 개의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노파는 도화와 한영의 옆에선 흰둥이에게 대뜸 짐을 모두 넘기고는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내 귀한 삼을 발견해서 환단을 만드느라고 이리 지체되었다. 클클.
자.. 가자!“
작약이 흰둥이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대뜸 한영과 도화 사이에 서서 둘을 재촉했다.
“아니...어르신...!”
“흐흐흑! 어,어른!”
백아와 단영은 몹시 놀랐다. 의선작약 그녀가 아이들과 함께해준다면 한결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될 터였다. 하지만 ‘발귀리’선인의 예언과 같이 이 길은 험난하고 힘든 과정이 될 것이라 했다. 단영은 너무나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작약이 성큼성큼 단영에게로 두어 걸음 걸어왔다.
“고마워 말거라. 반은 내 책임이니 내가 짐을 지마.”
“고맙습니다... 작약어른...흐흑.”
“되었다. 그런 소리 말거라. 우리 ‘현’이를 잘 부탁하느니.. 클클”
그리고 뒤로 돌아선 작약은 현에게 다가갔다. 거친 노파의 손이 보드라운 현의 손을 꼭 감아쥐었다.
“다녀오마. 운명을 괴로워 말거라.”
현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작약과 한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살이 거세어도 강을 건너야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정해진 길이니 불안해 말고 뜻을 이루셔요. 동쪽 물가로 가지 마시어요. 서북쪽이 길방 입니다.”
그리고 현은 고운 자태를 숙여 도화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도화에게 속삭였다.
“괴로움과 슬픔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우셔요. 아파도 그걸 견디셔야합니다. 그래야 영혼의 성장을 이루실거에요. 만날 것입니다.
때가되면 마음이 이르는 길을 택하시면 되어요.”
말을 마친 현은 천천히 일어서서 작약을 애틋한 눈으로 응시했다.
눈물이라도 보일 새라 작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화와 한영을 재촉하여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모습이 도원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단영부부와 현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석상처럼 서있는 그들이다. 그렇게 한 시진이 흘렀다. 백아가 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길을 밝힌 다는 것은 어르신을 이름이었더냐..”
“네에... 이미 4개월 전 그날 할머님의 실은 도화와 엉키기 시작하였어요.
저 셋은 마지막을 결정짓는 분들이 될 테지요.“
“네가 마음고생이 심하였겠구나..”
“제가 소원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할머님을 움직이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그랬을 테지.. 어찌 하늘의 뜻이 이토록 잔인하단 말이냐....”
“.............”
현은 대답 없이 서글픈 눈을 들어 높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할머니 저는 반드시 지옥불에 떨어질 테지요.....’
나지막이 읊조리는 ‘현’이다. 그녀의 사슴같이 까만 눈망울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침잠해 있다.
가장먼저 마음을 추스른 백아가 단영과 현을 한 팔씩 부축하고 초가 안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이윽고 그들의 모습도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니, 갑자기 모든 것이 텅 비어 버린 듯한 천외봉이다.
끝없이 펼쳐진 운해만이 무심하게 일렁이며 운명을 보듬고 있는 듯 하다.
-------------------------------------------------------------------------------------- 이제 1부가 막을 내립니다. 도화일행의 여행기로 이어지는 2부가 시작되겠군요. 이제는 본격적인 강호행입니다.
월요일 아침이네요. 힘찬 한주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