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맨

백승권2005.09.26
조회1,143

신데렐라맨


링은 피와 땀이 튀는 지옥이기 앞서 세계로 대변된다. 양극하는 두개의 축. 사회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노리는 영화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로마의 고대 올림픽과 다름없는 잔인함을 스포츠라는 오락물로 대체시키려 하면서 영화 록키4는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대립을 담아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진 결말을 보여주고 있고 비교적 최근작인 알리는 꺼지지 않는 불씨인 백인과 흑인의 갈등 속에서 약자편에서 태어나 시대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한 인간의 분투와 고뇌를 보여준다.   영화를 재미 없게 보는 방법이 아마도 영화를 재미 있게 보는 방법보다 그 가짓수가 많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영화를 접하기 전 '정보'를 경계하는 습성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 감상에 독이 된다고 여기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매스미디어의 공격에 머리와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 가드를 올려야 했던 것이다. 시대적 배경이나 그에 담겨진 의미등은 영화를 보면서 절감하거나 하나둘 놓치더라도 나름대로의 정의를 깊숙히 부여하면 그만이었다. 신작이 개봉될때마다 지면을 빼곡히 장식하는 기자들과 평론가들의 세뇌식 감상평이 나머지 모든 이들의 취향을 고려할 수 는 없던 것이기에 호기심을 꾹꾹 눌러가며 개봉을 기다리곤 했다.   "음 저건 냉전시대의 산물인 양국의 대립을 어려운 상황에서 재기한 주인공을 내세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위로 승화시키려는 의도를 제대로 담아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본래의도는 그뿐이 아닌 개인의 고뇌와 개인적 갈등을 담아냄으로써 거대한 두 세력을 대표하는 어쩌구 헉헉.." 이렇게 본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냔 말이다. 무슨 빈칸 짜맞추기도 아니고. 언론의 주입식 평가보다는 개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이 더 인정받아야 된다고 믿는다. 지식에 기대어 스크린과 마주한뒤 나올 때 음 역시 그 잡지에서 한 말이 맞았군 이러면서 채점하듯 확인해버리고 마는 감상이라면 아무리 할인혜택을 받았더라도 관람료는 아깝기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를 보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이것뿐이었다. 러셀크로우가 주연이라는 것. 론하워드가 감독이라는 것. 그리고 복싱이 소재로 나온다는 것.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두시간 반에 달하는 런닝타임동안 끊임없는 감동의 주먹에 연타당하며 흥분된 호흡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기에 이전의 수많은 리뷰들을 접했던 이들에겐 이질감이 형성될 수 도 있음을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신데렐라맨

  브래독에게는 여느 영화에서 동일한 특기를 지닌 주인공들이 느꼈던 그런 전지구인들의 고뇌를 한 등에 짊어져야 할 책임따위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순수함으로 가득찬 개인적인 희망과 열정을 땀에 흠뻑 젖은 글러브에 담아 자기자신과의 싸음을 위해 올인한다는 그런 멋진 구석도 보이지 않았다. 보였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감독의 의도와 마케팅 과정에서 나타난 영화의 메인 메시지가 무엇인지 다 알 수 없었지만 본인이 똑똑히 열린 귀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브래독이 싸워야 했던 이유는 그의 입을 빌어 단 한마디로 축약된다. 그것인 즉 바로   "milk(우유를 사기 위한 돈)"   경제공황. 15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주인공 브래너는 아무리 정의롭더라고 이웃의 굶주림까지 감싸안을 수 없었다. 손은 부러지고 어떻게든 일은 해야겠고 처와 아이들은 전기료와 난방비를 못내 컴컴한 지하실같은 집에서 지독한 겨울 바람을 맨몸으로 견뎌내야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맨주먹의 가장 브래너는 생이별을 막기 위해 눈시울을 붉히며 구걸의 손길을 내밀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데렐라맨

 

내가 살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쥔 주먹이었다. 그는 견뎌야할 이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쓰러지지 말아야 했던 자기자신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부러진 손을 감싸며 부러진 갈비뼈를 수없이 맞아가며 이를 악물었다. 그는 강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끝까지 서있는 것이 매 경기의 목적이었다. 그것은 어느 누구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수만명의 함성에 답하기 위해서 수만명의 기도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쓰러지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에겐 단지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본능 뿐이었다. 수백방을 아무리 갈겨도 몇대만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 있었던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링에 올라가야 했다. 그것은 자신이 부여한 절대적인 타당성이었고 뇌가 흔들리고 눈가에서 피가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도 더 또렷히 각인할 수 밖 에 없는 투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걸로 충분했다. 승리의 파급효과가 모두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눈을 질끈감게 할만큼 환희를 부여한다 해도 그것은 그의 소망이 아니었다. 그에겐 그저 자신과 함께 여생을 살아줄 가족의 안위를 책임지는 것이 모두 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을 위해 살아왔고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믿고 또 단하나의 의지를 걸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일단 이야기가 알려지면 극대화 시키기에 바쁘고 어떻게든 갖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들은 그저 자신의 일상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살아남고 또 먹여살릴 자기 품안의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을 뿐이다. 그것이 누가 알아주는 의미라면 훗날 언젠가 멋적은 웃음을 지어 보일 수 도 있겠지만 그건 단지 그의 개인적인 그의 단순한 생존방식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잇는 극적인 역사의 진실들은 우연을 빌어 탄생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그 우연을 만나기 위해선 입에 쓴물이 가득 고이도록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과 상처의 나날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영광을 얻기 위해 일부러 생채기를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줌의 빛을 잡기 위해 발을 딛고 손을 뻗는 순간 무수한 돌뿌리와 엉겅퀴들이 몸과 마음을 가리지 않고 거칠게 긁어 놓을 테니까. 돈을 벌기 위해 살인자의 주먹과 부딪쳐야 했다던 브래독의 대답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실제로 죽음을 무릅쓸 만큼 금전의 획득이 절실한 순간이 다가온다면 내가 그의 주름 깊은 웃음만큼이나 멋진 대답을 찾아 낼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어떻게든 포장하려는 저에 비해 그에게 그보다 더 진심어린 대답은 없었을테니까. 그당시 그에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한없이 소박하고 행여 궁핍해 뵐 정도로 초라한 것이더라도 일상이 추구하는 진실은 그것들 안에 가장 깊숙히 존재하고 있는 법이다. 돈, 별게 아닌게 아님을 새삼 되뇌어본다. 그 획득하는 과정의 가치를.

 

신데렐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