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들 사이에서 치직거리고 있는 뇌전의 저지를 당하지 않고, 결계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놀란 한영이 소리쳤다. 소년의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투명한 피부를 통해 보랏빛 안개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약과 한영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상 결계 안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들어선 도화도, 나체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검은 기운이 요동치는 골반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퍼덕이는 몸통과 다리 덕에, 시간을 조금만 더 지체 한다면 여인의 허리가 곧 끊어 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도화는 단전을 중심으로 몸 전체를 통해 주변의 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텅 비우고, 손이, 발이, 그리고 가슴이..마지막으로 머리가 주변의 일부가 되었다. 소년의 하얀 피부는 서서히 투명하리만큼 창백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는 유난히 자연의 기와 친화력이 높은 특이체질의 도화를 위해 단영과 백아가 고안한 호흡법으로, 신체를 주변의 기를 일시적으로 담아두는 그릇으로 생각하는 이치와 흡사했다. 무형의 기가 소년의 몸 모양의 틀 속에 가득하자, 신비스러운 보랏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왔다.
도화는 머릿속으로 단영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화야, 내공이란 모든 수련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내공이 실할 때 비로소 술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가 있단다. 텅 비운 네 몸이 충만할 때, 뜻하는 바를 실천에 옮겨 보아라.’
여인의 배에 웅크린 아귀가 남아있는 하나의 작은 빛 무리마저 힘을 가해 막 소멸시키려는 참이었다. 도화가 급히 입술을 들썩이며 무엇인가를 나지막이 읊조리자, 녀석의 팔목에 작은 고리 모양의 빗줄기가 얽히기 시작했다.
“신(神)- 소마는 달의 본성이니, 그의 자비가 인간을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하리라!!
미천한 아귀여! 여인을 자유롭게 하라! 견파이접무(繭破而蝶舞)!“
소년은 힘찬 일갈과 함께, 주머니에서 한줌의 하얀 쌀알을 꺼내어 아귀를 향해 내던졌다. 손목에 감긴 고리 모양의 빗줄기를 통과한 쌀알들은, 한 무리의 흰나비가 되어 아귀를 향해 날아갔다. 뿌연 빛 무리를 동반한 수백 마리의 나비 때의 출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몹시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가슴 떨리도록 섬뜩한 장면이기도 했다.
도화의 술법을 가장 먼저 알아본 한영이 탄성을 내질렀다.
“헉....! 저것은 소마신의 호접(蝴蝶) ......!!”
“옳거니! 고치는 깨어지고 나비는 춤춘다라..? 그래! 일단은 아귀를 아이의 몸에서 몰아내고는 것이 먼저인 게야!”
“누나! 할머니! 저 나비 떼가 아귀를 누나의 몸 밖으로 몰아 낼 거예요! 그때를 노려서 놈을 제압해야 해요!”
파다닥 파다닥-
파다다닥-
흰 나비 때는 해루의 몸을, 특히 배 부근을 감싸며 여인의 골반을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 앉혔다. 아귀는 몹시 괴로운 듯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나는.. 나는... 먹어야해....크아아아-」
“어서 그 몸에서 나왓! 안 그러면 소마신의 나비가 널 소멸시켜 버릴테닷!”
“고얀 놈! 썩 물러 나오거라!”
「크큭! 캬오오오!」
마지막 발악을 하던 아귀의 눈과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왠지 그 놈의 눈빛이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화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히얍!”
팔목을 감은 밧줄모양의 빛줄기로 더욱더 힘을 불어 넣었다. 뿌연 빛 무리가 눈에 띠게 커지더니, 수백 마리의 나비 때가 순식간에 수천마리로 불어났다. 해루의 나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 나비 때로 고치를 말은 듯한, 모골이 송연해 지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무리한 힘을 써서인지, 단전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상실감과 함께, 빈혈이 이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땅을 딛고 선 작은 두 발에 더욱 힘을 실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자신이 이대로 무너졌다가는 해루라는 저 누나 뿐만이 아니라, 술법에 약한 한영과 작약까지도 위험했다.
힘을 불어 넣는 도화와 버티는 아귀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도 잠시, 아귀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에 띄게 형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꾸우우웁! 꾸룩!」
마지막으로 전각을 뒤흔들던 끔찍스런 비명소리와 함께, 아귀의 검은 안개 같은 손과 팔이 쑥쑥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작은 환단 만한 크기만큼 줄어들어 버렸다.
해루의 몸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얌전히 침상위에 놓여져 있었고. 살아있는 듯 요동치던 검은 멍의 기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제 임무를 끝낸 나비 때도, 은빛의 가루가 되어 허공에서 신기루처럼 부스러지는 빛 먼지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작약은 얼른 해루에게 다가가 맥을 짚으며 외쳤다. 그녀의 맥은 이제 막힌 곳이 없이, 작약의 기운에 힘입어 쉬이 자궁을 중심으로 일 주천 되었다.
“이런, 이제 되었다...이런 괴이한 일을 보았나!”
“헉! 어떻게 된 일이지? 끝난 거니?”
“헉헉..단지 소마의 힘으로 아귀를 일시적으로 제압했을 뿐이에요! 아귀는 아직 저 누나의 몸 안에 있어요!”
“그럼 어찌 해야 해!”
“아마도, 저 환단 속에 누군가가 아귀를 가두어 둔 모양이에요! 그걸 저 누나에게 먹인 거고,
그러면서 아마 주문을 외워... 아귀의 봉인을 풀었을 거에요...헉헉...“
무리하게 힘을 써서 인지, 작은 도화의 몸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얀 안색이 더욱 창백해 진 것 같았다. 소년은 습관처럼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일렁이던 검은 곱슬머리가 땀에 젖어 뺨이며 얼굴에 추욱 달라붙은 모양이 장대비라도 한차례 맞은 것 같았다. 팔다리가 천만근쯤 되는 듯 무거웠다.
“저는 그저 소마신의 정화의 힘으로 다시 그놈을 봉인했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풀석-
마지막 말을 남긴 도화는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무리한 힘을 쓴 탓인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도 도화가 쓰러진 곳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도하듯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홍루의 치마폭이었다.
“아-아!”
“도화야!”
기녀 홍루의 탄성과 놀란 한영의 외침은 거의 동시였다. 한영은 급히 홍루에게 뛰어와 도화를 안아들었다. 홍루라는 여인은 의외로 심지가 굳은 여인 인 듯싶었다. 모든 광경을 지켜본 여인은, 용케도 정신을 잃지 않고 이를 악물며 동생의 안위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이내 달려온 작약이 한영의 품에 안긴 도화의 맥을 조심스레 짚었다. 잠시 후 노파의 꿈틀거리던 아미가 펴지며, 이내 안색이 풀어졌다.
작약은 곁에 선 홍루를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단지, 무리한 기운을 써서 지친 게야. 그냥 쉬게 두면 될게다. 아가, 네가 보살피어라.”
“아니, 내가 할게요! 우리 도화는 내가..,!”
“이 아이에게 맡겨 둬! 너는 날 도와야지. 저기 누워있는 아이를, 그냥 포기할 셈이냐!”
“......!”
작약이 대뜸 호통을 치자, 해루를 한번 돌아본 한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품안의 도화의 얼굴에 뺨을 한번 대고는 홍루를 향해 눈짓을 했다. 눈치가 빠른 홍루는 얼른 한영을 잡아끌었다. 방 한 편에 해루가 누워있는 침상보다는 작지만 아늑해 보이는 작은 침상하나가 더 있었다.
“여기에요! 이리로 도련님을 모시어요!”
한영은 조심스럽게 도화를 노란 비단위의 침상에 눕혔다.
홍루를 향해 부탁의 말을 남기고, 그녀는 작약과 해루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홍루는 더운 물과 수건을 준비해 와서 도화를 정성스럽게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쉴 새 없이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한낱 길가의 들풀보다 못한 이름 없는 자신들을 위해, 모든 걸 걸어 최선을 다해 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끌끌..아귀 녀석이 요동을 쳐댄 덕에 이 녀석의 장기를 온통 헤집어 놨어!”
“심각..해요?”
“봉인되어 있다는 환단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지,”
“전 무얼 할까요?”
“거기 가장 작고 날카로운 칼을 줘 보거라. 순서대로 내게 다오.”
“푸른 선이 있는 이것이요?”
“오냐.. 쯧쯧쯧.. 인명은 제천이야.. 제천....”
“작약 어른이 그리 말씀하시면, 이 여인은 어찌해요? 좀 잘해 봐요!..”
“메, 메야? 말 본새하고는... 끌끌..”
작약이라는 말에 그들과 한참 떨어진 곳의 마루바닥에서, 이제야 정신을 차린 노모를 안정시키고 있던 왕국주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티격태격 거리고 있는 노파와 무사에게 고정되었다.
‘자,작약! 의선 작약이라는 그 작약? .......!’
놀람으로 크게 떠진 왕국주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요동쳐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 버린 듯-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왕국주는 홍루가 보살피고 있는 누워있는 공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그래. 가능성이 있어. 전설상의 나비무리... 곤륜산의 어느 선인은 언제나 나비무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그걸 다루는 소공자와 함께 동행하는 이라면.. 그럴 수도.... 옆에 선 여무사의 저 활도 왠지 예사로워 보이지 않고...’
이제 작약은 거침없이 누워있는 해루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기가 위중혈이다. 흐음..”
노파의 손이 방광경 위의 요혈을 눌러 집고 있었다. 위치는 다리의 오금 한가운데였다. 오금이라면 다리가 접히는 곳, 즉 무릎 뒤쪽의 옴폭한 곳이다. 이 혈은 경골신경을 마비시키는 곳으로, 작약의 집게와 엄지손가락이 그곳을 적당한 힘으로 눌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여인의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위중혈을 가격하여 일단은 온몸을 마비시킨 후, 다시 거친 손바닥은 여인의 발목부터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올라갔다. 자연스럽고 빠르면서도 적당히 힘이 배분된 손놀림이었다. 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작약의 엄지손가락이 장딴지 한 가운데의 요혈을 강한 힘으로 꾹 눌렀다. 누워있는 여인은 앞으로 한 시진은 다리를 쓰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승근혈이야. 시술하는 사이 아이가 깰 수도 있으니,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마비를 시켜 두어야 하지.”
“의술을 배울 일도 아니고, 설명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빨리 하라니까요!”
“끄응.......!”
작약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아무튼, 얌전하고 속이 깊은 손녀 현과 늘 같이 다니다가, 이런 왈가닥에 성질 급한 왈패와 함께 하려니 하루하루가 폭삭 늙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 그나마 위로가 되는 도화 녀석도, 지금은 무리를 하고 저리 깊이 잠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저쪽에 떨어진 왕국주의 눈동자는 급히 돌아가고 있었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속도만큼 그의 머릿속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틀림없지! 이런...세상에! 내가 죽기 전에 전설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정신을 차린 노모에게는 왕국주가 대략 상황을 설명했다. 50년간 노련하게 기녀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노모이니 만큼, 심지가 굳은 홍루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화가 쓰러지고 난 후로 소년이 걸었던 결계는 힘은 잃고 4장의 부적만이 바닥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노모는 그것을 챙겨들고 힘겹게 홍루에게 다가가 작은 침상에 고이 누워있는 소공자의 품안에 넣어 드렸다. 그리고 다시금 물을 끓이고, 해루를 치료하고 있는 작약을 돕기 위해 분주히 지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국주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 봤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인인 홍루나 노모도 의연하게 잘 견디는데, 굿은 일 다 겪어 보았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다니!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아무도 못 본 눈치다. 처소에 가서 갈아입고 올까 하다가 그는 그냥 참기로 했다.
자신이 눈에도 해루는 이미 반쯤 죽은 시체와 다름없어 보였다.
‘어쩌면 인간이 행하는 기적을 보게 될지도!’
왕국주는 협탁 위에 놓여 있던 비단 보를 확 잡아 빼낸 후, 자신의 허리에 휘감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눈알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는 동시에 한영과 의선을 주시했다.
작약은 흰 보자기에서 고약한 미향이 나는 분가루를 꺼내어 해루의 코 주변에 흩뿌리고는 손바닥을 한번 쓰윽 홅고 지나갔다. 노파의 손바닥에 뿌연 안개가 낀다고 느껴지는 순간 벌써 노파는 상반신을 타고 내려가며 배꼽아래 반장까지 혈을 짚어 내려가고 있었다.
“헉! 이건 ..... 진해제(鎭咳劑)에요?”
“오냐. 의식을 빼앗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게지. 깨어나서도 한동안은 진통을 느끼지 못할게다. 아이의 고개를 돌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해. 호흡도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질 테니.”
“네에”
“주어진 시간은 반시진이다. 시작하자.”
한영은 해루의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리게끔 하고 기도가 옳게 뚫려 있는지 확인했다.
동시에 작약은 날카로운 짧은 칼을 들고, 망설임 없이 주욱 그어 내렸다.
막상 뱃가죽이 갈라지는 모양을 보니, 냉정하다고 자부하던 한영도 말문이 막혔다.
‘헉! 이런 걸.. 현은 매일 따라다니며 보아왔단 말이야? 그 곱게 웃는 얼굴로... 우욱!’
작약의 날카로운 눈빛이 한영을 슬깃 노려보았다. 움찔한 한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노파는 미리 준비 해둔 작은 검은 조각들로 그녀의 벌려놓은 거죽을 고정시켰다. 놀랍게도 그 조각들은 쭉쭉 피를 빨며 상처를 지혈시키고 있었다.
“말려 놓은 거머리가 지혈에는 최고지... 옆의 날카로운 대침을 다오!”
“네에!”
“어디보자... 환단을 찾아보자꾸나. 개안부가 있다면 편하겠지만... 도화녀석이 저모양이니..”
“환단을 입으로 복용한 것이라면 위장에 있지 않겠어요?”
“아니야.. 먹은 직후 일 때의 말이지.. 아까 이미 봉인이 풀렸고, 그것을 새로 봉인하지 않았느냐? 새로 봉인된 그 자리에 박혀 있을게다. 끌끌..내 아까 눈여겨보아 두었는데..”
작약은 구슬땀을 흘리며 한참을 찾았다. 시력이 유난히 좋은 한영도 안력을 돋우며 작약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바쁘게 옮겼다. 무엇인가 반짝 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한 이도 역시 한영이었다.
“아... 그러면...앗! 저기요~ 저기!! 작은 구슬이!”
“옳거니! 신장 뒤쪽에 박혀 있었구나!”
작약의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대침으로 구슬을 꺼내어 낸 작약은 큰 한 숨을 쉬었다. 일단 한영은 조심스럽게 구슬을 흰 광목천 위에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모에게 큰 대야와 데운 물을 준비시켜 둔 작약은 모든 장기의 자리를 잡아 맞추고, 여덟 장이 넘는 길이의 대장과 소장을 모두 꺼내서 깨끗이 헹구었다. 그 다음 다시 몸 안으로 제 있어야 할 자리에 질서 정연하게 꼼꼼히 메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자궁을 조심스레 꺼내어 왼손으로 받친 다음, 오른손에 쥐여진 날카로운 중간 길이의 도(刀)로 장기를 반을 갈랐다. 엄청난 진기를 쏟아 붇고 있던 작약은, 공중으로 반쯤 붕 떠 있었다. 노파의 전신으로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작약이 떨리는 목소리로 안타깝게 말을 이었다.
“이런, 이런...오장 육부가 모두 엉망이 되어있어.. 많이 상한게지..”
“그것이...자궁....이에요?”
“그래 ... 이제 마지막으로 태아를 꺼내야지. 쯧쯧”
“아.....아니!”
“왜요? 헉! 이럴 수가....둘...이에요.”
“그랬구나...쌍 태아였던 게야 끌끌끌.... 아깝도다..아까워.. 어찌 하겠느냐.. 혼마저 소멸 당했으니... 가엽다,, 광목에 고이 싸두어라. 내 곡이라도 해서 염을 해 줄 테니...”
말을 잇는 작약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두 사체를 받아 든 한영도 목이 메어왔다. 오 개월에 접어든 태아는 손이며, 발이며 사람의 형상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죽어서도 아귀에게 혼을 소멸당한 둘 중 하나는 허리가 반쯤 끊겨 있었다. 한영은 흰 광목에 잘 싼 다음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노모에게로 태아의 시신을 넘겼다. 차마 시술을 행하고 있는 작약에게 혹여 방해라도 될까봐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혀를 깨물고 있던 노모는 아이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하게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홍루의 눈에도 왕국주의 눈에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간이 너무 지체 되었다. 서둘러! 바늘과 저기 옆의 푸른 실을 다오!”
“네에!”
작약은 귀신과 같은 손놀림으로 신경과 근육, 그리고 핏줄을 하나하나 이어 맞추며, 절단한 부위를 꿰매어 맞추었다. 너무나도 빠른 신위에 곁에 서있던 한영도 작약의 손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노모(老母)나 홍루 그리고 왕국주는 그저 빛줄기와 같은 손의 잔영만을 보았을 뿐이다.
긴장된 짧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작약은 거머리를 수습하여 다시 작은 주머니에 챙겨 넣고, 한영으로 하여금 도구들을 정해진 주머니에 넣도록 지시했다. 모든 상처를 꿰맨 후, 다시 한번 마지막 상처위로 준비해 온 금창약을 사뿐히 매만지며 바르고 난 후에도, 노파는 긴장된 눈빛을 풀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혈색 하나 없는 해루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기만 했다.
작약은 숨을 멈추고 해루의 맥을 쥐었다. 그러기를 잠시.
노파의 얼굴색이 울긋불긋하게 변하더니 점점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반대로 해루는 점점 불그스레한 혈색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300수가 넘어선 그녀의 내가 진기를 아낌없이 해루의 몸 안으로 일 주천 시키는 작약이다.
‘하아아-’
해루의 입술 사이로 작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곧 맥박과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작약의 표정도 한결 풀어지며, 잡았던 맥을 놓고 일어섰다. 진기의 소모가 극심했던지, 일어선 노파는 잠시 휘청거렸다. 툴툴거리던 한영도 이 때 만큼은 얼굴 한 가득 근심을 가득 안은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작약을 응시했다.
“되..었다, 죽지는 않을 게야.. 나머지는 제 의지이지..”
“수고..하셨어요.”
“되었다. 그런 소리 들으려 한 것이 아니니... 도화는 다시 한번 살펴보았느냐?”
“이제 가볼 참이에요......어른도...쉬시어요.”
“그래야 겠어 ..그래.. 수고했다.”
작약은 비틀거리며 기구들을 짐 안에 챙기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한영은 도화에게로 바쁘게 걸어갔다. 노모와 홍루는 해루의 안색을 살펴보고는 살았다 싶어 마룻바닥에 넙죽 엎드려 서럽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신선님....신선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흑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으흐흐흑”
“그런 소리 말라니까! 깨어나면 꽤 고통스러울 게야. 잘 보듬어 주도록 해라.”
노모와 홍루는 혹여나 광목에 싸둔 그것을 보면 해루가 더욱 괴로워할까 싶어 일단 따로 챙겨 두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원통함과 서러움이 가득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과연! 틀림이 없다! 저들은.....!’
감동으로 떨리는 왕국주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어서 빨리 이 일을 그 분께 알려야 했다. 그는 대충 상황이 정리되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전각 밖으로 나오자, 흰 개와 함께 의선이라는 그 노파가 보따리들을 뒤적이며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작약 모르게 살짝 뒤로 돌아서 뒷길로 나간 왕국주는, 보초를 서고 있던 검은 복장의 장이를 보았다. 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왕국주의 몰골을 보고 꿈쩍 놀라 머라고 소리치려 하다가, 왕국주가 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자 이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눈은 무슨 일이냐고 몹시 놀라 묻고 있었다.
“전각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더냐?”
“아,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다.. 그건 됐고, 밖의 동정은?”
“쥐새끼 한 마리 없었습니다요. 국주어른~”
“그래?”
“어른...혹시 바지에.......저기....”
장이라는 사내가 코를 틀어막으며, 손가락으로 비단을 두르고 있는 왕국주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당황한 왕국주는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다! 치료하다 이리된 것이지..흠흠! 계속 보초를 서고 있어라!”
“예? 아, 예에.”
‘그래..결계라는 것이 소리까지도 집어 삼켜 버리는 모양이구나!’
혼자서 나지막이 무엇이라 중얼거리던 그의 뒷모습이 바쁘게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검은 복장의 사내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사라진 왕국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주위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 구슬!!!’
도화의 곁에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한영은, 막 구슬 생각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아까 광목을 둔 곳으로 갔다. 구슬은 잘 쌓여져 있었다. 그래도 혹 여기에 봉인이 되어 있다면 까닥하면 다시 해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도화의 품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꺼내어 뒤적이던 한영은 마침 적당한 부적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도 술법가문의 후예답게 웬만한 부의 이름이나 사용법등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집어 든 부적은 봉인부(封人符)였다. 누런 부적으로 꼼꼼히 다시 한번 구슬을 잘 싼 다음 광목으로 다시 덮어두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그 위험한 광목 주머니를 일단은 자신의 경장의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도화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쌔근-쌔근-
“녀석..그렇게 걱정을 시키고는, 코까지 골며 잠만 잘 자 잔아? 풉.”
“제가.. 공자님을 잘 돌볼 테니, 무사님도 좀 쉬십시오.”
“너도 피곤할 텐데.......”
“제가 미천하여 귀한님을 맡기시지 못하시는 거예요?”
어느새 다가온 홍루가 퉁퉁 부은 눈을 들어 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힘들게 미소 짓고 있었다.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영은 말을 더듬었다. 노모는 해루의 곁에서 그녀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 그건......”
“쉬시어요. 소녀가 돌볼게요.”
“그럼......부탁한다.”
“네에. 걱정 마세요....너무나 아름다우신 분이세요.”
“그렇지..... 고맙다.”
생각해 보니 갈대숲에서부터 정신없이 여인을 업고 온 후 지금까지 한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던 것 같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바깥바람을 쐬러 전각 밖으로 나갔다.
쏴아아-
전각의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청량한 가을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상쾌하게 식혀 주었다. 저만치 앞에서는 작약이 흰둥이 옆에서 무얼 하는지 끙끙거리고 있었다.
한영은 저만치 떨어진 하늘 위에 둥글게 떠있는 커다란 달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이모, 오늘 나는 도화를 지켜주지 못했어. 오히려 도움만 받았지... 난 아직 멀었나봐..’
달 속에 비치는 단영과 백아의 얼굴이 괜찮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한영이 달을 보며 장백산의 천외봉을 그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그녀의 경장 주머니 속 광목! 그리고 그 안의 부적에 감싸인 핏빛의 구슬이, 은은한 검은 안개를 슬며시 뿌려대며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 안부인사를 올린 지 몇일 이나 되었다고, 감기 기운으로 고생하고 있답니다.(ㅠㅠ)
『도화』 (19)
-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3)-
“도화야!”
부적들 사이에서 치직거리고 있는 뇌전의 저지를 당하지 않고, 결계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놀란 한영이 소리쳤다. 소년의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투명한 피부를 통해 보랏빛 안개가 새어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약과 한영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라,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상 결계 안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들어선 도화도, 나체여인의 모습을 보고는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검은 기운이 요동치는 골반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퍼덕이는 몸통과 다리 덕에, 시간을 조금만 더 지체 한다면 여인의 허리가 곧 끊어 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도화는 단전을 중심으로 몸 전체를 통해 주변의 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을 텅 비우고, 손이, 발이, 그리고 가슴이..마지막으로 머리가 주변의 일부가 되었다. 소년의 하얀 피부는 서서히 투명하리만큼 창백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이는 유난히 자연의 기와 친화력이 높은 특이체질의 도화를 위해 단영과 백아가 고안한 호흡법으로, 신체를 주변의 기를 일시적으로 담아두는 그릇으로 생각하는 이치와 흡사했다. 무형의 기가 소년의 몸 모양의 틀 속에 가득하자, 신비스러운 보랏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왔다.
도화는 머릿속으로 단영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화야, 내공이란 모든 수련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내공이 실할 때 비로소 술법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가 있단다. 텅 비운 네 몸이 충만할 때, 뜻하는 바를 실천에 옮겨 보아라.’
여인의 배에 웅크린 아귀가 남아있는 하나의 작은 빛 무리마저 힘을 가해 막 소멸시키려는 참이었다. 도화가 급히 입술을 들썩이며 무엇인가를 나지막이 읊조리자, 녀석의 팔목에 작은 고리 모양의 빗줄기가 얽히기 시작했다.
“신(神)- 소마는 달의 본성이니, 그의 자비가 인간을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하리라!!
미천한 아귀여! 여인을 자유롭게 하라! 견파이접무(繭破而蝶舞)!“
소년은 힘찬 일갈과 함께, 주머니에서 한줌의 하얀 쌀알을 꺼내어 아귀를 향해 내던졌다. 손목에 감긴 고리 모양의 빗줄기를 통과한 쌀알들은, 한 무리의 흰나비가 되어 아귀를 향해 날아갔다. 뿌연 빛 무리를 동반한 수백 마리의 나비 때의 출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몹시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가슴 떨리도록 섬뜩한 장면이기도 했다.
도화의 술법을 가장 먼저 알아본 한영이 탄성을 내질렀다.
“헉....! 저것은 소마신의 호접(蝴蝶) ......!!”
“옳거니! 고치는 깨어지고 나비는 춤춘다라..? 그래! 일단은 아귀를 아이의 몸에서 몰아내고는 것이 먼저인 게야!”
“누나! 할머니! 저 나비 떼가 아귀를 누나의 몸 밖으로 몰아 낼 거예요! 그때를 노려서 놈을 제압해야 해요!”
파다닥 파다닥-
파다다닥-
흰 나비 때는 해루의 몸을, 특히 배 부근을 감싸며 여인의 골반을 바닥으로 서서히 내려 앉혔다. 아귀는 몹시 괴로운 듯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질러댔다.
「나는.. 나는... 먹어야해....크아아아-」
“어서 그 몸에서 나왓! 안 그러면 소마신의 나비가 널 소멸시켜 버릴테닷!”
“고얀 놈! 썩 물러 나오거라!”
「크큭! 캬오오오!」
마지막 발악을 하던 아귀의 눈과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왠지 그 놈의 눈빛이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화는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히얍!”
팔목을 감은 밧줄모양의 빛줄기로 더욱더 힘을 불어 넣었다. 뿌연 빛 무리가 눈에 띠게 커지더니, 수백 마리의 나비 때가 순식간에 수천마리로 불어났다. 해루의 나신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흰 나비 때로 고치를 말은 듯한, 모골이 송연해 지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무리한 힘을 써서인지, 단전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상실감과 함께, 빈혈이 이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땅을 딛고 선 작은 두 발에 더욱 힘을 실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자신이 이대로 무너졌다가는 해루라는 저 누나 뿐만이 아니라, 술법에 약한 한영과 작약까지도 위험했다.
힘을 불어 넣는 도화와 버티는 아귀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도 잠시, 아귀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눈에 띄게 형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꾸우우웁! 꾸룩!」
마지막으로 전각을 뒤흔들던 끔찍스런 비명소리와 함께, 아귀의 검은 안개 같은 손과 팔이 쑥쑥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작은 환단 만한 크기만큼 줄어들어 버렸다.
해루의 몸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얌전히 침상위에 놓여져 있었고. 살아있는 듯 요동치던 검은 멍의 기운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제 임무를 끝낸 나비 때도, 은빛의 가루가 되어 허공에서 신기루처럼 부스러지는 빛 먼지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작약은 얼른 해루에게 다가가 맥을 짚으며 외쳤다. 그녀의 맥은 이제 막힌 곳이 없이, 작약의 기운에 힘입어 쉬이 자궁을 중심으로 일 주천 되었다.
“이런, 이제 되었다...이런 괴이한 일을 보았나!”
“헉! 어떻게 된 일이지? 끝난 거니?”
“헉헉..단지 소마의 힘으로 아귀를 일시적으로 제압했을 뿐이에요! 아귀는 아직 저 누나의 몸 안에 있어요!”
“그럼 어찌 해야 해!”
“아마도, 저 환단 속에 누군가가 아귀를 가두어 둔 모양이에요! 그걸 저 누나에게 먹인 거고,
그러면서 아마 주문을 외워... 아귀의 봉인을 풀었을 거에요...헉헉...“
무리하게 힘을 써서 인지, 작은 도화의 몸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뜩이나 하얀 안색이 더욱 창백해 진 것 같았다. 소년은 습관처럼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일렁이던 검은 곱슬머리가 땀에 젖어 뺨이며 얼굴에 추욱 달라붙은 모양이 장대비라도 한차례 맞은 것 같았다. 팔다리가 천만근쯤 되는 듯 무거웠다.
“저는 그저 소마신의 정화의 힘으로 다시 그놈을 봉인했을 뿐이에요... 죄송해요.....”
풀석-
마지막 말을 남긴 도화는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무리한 힘을 쓴 탓인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행히도 도화가 쓰러진 곳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도하듯 두 손을 꼭 쥐고 있는 홍루의 치마폭이었다.
“아-아!”
“도화야!”
기녀 홍루의 탄성과 놀란 한영의 외침은 거의 동시였다. 한영은 급히 홍루에게 뛰어와 도화를 안아들었다. 홍루라는 여인은 의외로 심지가 굳은 여인 인 듯싶었다. 모든 광경을 지켜본 여인은, 용케도 정신을 잃지 않고 이를 악물며 동생의 안위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이내 달려온 작약이 한영의 품에 안긴 도화의 맥을 조심스레 짚었다. 잠시 후 노파의 꿈틀거리던 아미가 펴지며, 이내 안색이 풀어졌다.
작약은 곁에 선 홍루를 슬쩍 보며 말을 이었다.
“단지, 무리한 기운을 써서 지친 게야. 그냥 쉬게 두면 될게다. 아가, 네가 보살피어라.”
“아니, 내가 할게요! 우리 도화는 내가..,!”
“이 아이에게 맡겨 둬! 너는 날 도와야지. 저기 누워있는 아이를, 그냥 포기할 셈이냐!”
“......!”
작약이 대뜸 호통을 치자, 해루를 한번 돌아본 한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품안의 도화의 얼굴에 뺨을 한번 대고는 홍루를 향해 눈짓을 했다. 눈치가 빠른 홍루는 얼른 한영을 잡아끌었다. 방 한 편에 해루가 누워있는 침상보다는 작지만 아늑해 보이는 작은 침상하나가 더 있었다.
“여기에요! 이리로 도련님을 모시어요!”
한영은 조심스럽게 도화를 노란 비단위의 침상에 눕혔다.
홍루를 향해 부탁의 말을 남기고, 그녀는 작약과 해루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홍루는 더운 물과 수건을 준비해 와서 도화를 정성스럽게 보살피기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쉴 새 없이 굵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한낱 길가의 들풀보다 못한 이름 없는 자신들을 위해, 모든 걸 걸어 최선을 다해 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끌끌..아귀 녀석이 요동을 쳐댄 덕에 이 녀석의 장기를 온통 헤집어 놨어!”
“심각..해요?”
“봉인되어 있다는 환단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지,”
“전 무얼 할까요?”
“거기 가장 작고 날카로운 칼을 줘 보거라. 순서대로 내게 다오.”
“푸른 선이 있는 이것이요?”
“오냐.. 쯧쯧쯧.. 인명은 제천이야.. 제천....”
“작약 어른이 그리 말씀하시면, 이 여인은 어찌해요? 좀 잘해 봐요!..”
“메, 메야? 말 본새하고는... 끌끌..”
작약이라는 말에 그들과 한참 떨어진 곳의 마루바닥에서, 이제야 정신을 차린 노모를 안정시키고 있던 왕국주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그의 시선이 티격태격 거리고 있는 노파와 무사에게 고정되었다.
‘자,작약! 의선 작약이라는 그 작약? .......!’
놀람으로 크게 떠진 왕국주의 눈동자가 부르르 떨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요동쳐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 버린 듯-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왕국주는 홍루가 보살피고 있는 누워있는 공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그래. 가능성이 있어. 전설상의 나비무리... 곤륜산의 어느 선인은 언제나 나비무리를 대동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그걸 다루는 소공자와 함께 동행하는 이라면.. 그럴 수도.... 옆에 선 여무사의 저 활도 왠지 예사로워 보이지 않고...’
이제 작약은 거침없이 누워있는 해루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여기가 위중혈이다. 흐음..”
노파의 손이 방광경 위의 요혈을 눌러 집고 있었다. 위치는 다리의 오금 한가운데였다. 오금이라면 다리가 접히는 곳, 즉 무릎 뒤쪽의 옴폭한 곳이다. 이 혈은 경골신경을 마비시키는 곳으로, 작약의 집게와 엄지손가락이 그곳을 적당한 힘으로 눌렀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는 여인의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위중혈을 가격하여 일단은 온몸을 마비시킨 후, 다시 거친 손바닥은 여인의 발목부터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올라갔다. 자연스럽고 빠르면서도 적당히 힘이 배분된 손놀림이었다. 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작약의 엄지손가락이 장딴지 한 가운데의 요혈을 강한 힘으로 꾹 눌렀다. 누워있는 여인은 앞으로 한 시진은 다리를 쓰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승근혈이야. 시술하는 사이 아이가 깰 수도 있으니,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마비를 시켜 두어야 하지.”
“의술을 배울 일도 아니고, 설명은 필요 없으니까 빨리빨리 하라니까요!”
“끄응.......!”
작약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아무튼, 얌전하고 속이 깊은 손녀 현과 늘 같이 다니다가, 이런 왈가닥에 성질 급한 왈패와 함께 하려니 하루하루가 폭삭 늙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 그나마 위로가 되는 도화 녀석도, 지금은 무리를 하고 저리 깊이 잠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한편 저쪽에 떨어진 왕국주의 눈동자는 급히 돌아가고 있었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속도만큼 그의 머릿속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 틀림없지! 이런...세상에! 내가 죽기 전에 전설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다니!!’
정신을 차린 노모에게는 왕국주가 대략 상황을 설명했다. 50년간 노련하게 기녀들의 뒷바라지를 해온 노모이니 만큼, 심지가 굳은 홍루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도화가 쓰러지고 난 후로 소년이 걸었던 결계는 힘은 잃고 4장의 부적만이 바닥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노모는 그것을 챙겨들고 힘겹게 홍루에게 다가가 작은 침상에 고이 누워있는 소공자의 품안에 넣어 드렸다. 그리고 다시금 물을 끓이고, 해루를 치료하고 있는 작약을 돕기 위해 분주히 지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국주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 봤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인인 홍루나 노모도 의연하게 잘 견디는데, 굿은 일 다 겪어 보았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바지에 오줌을 지리다니!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아무도 못 본 눈치다. 처소에 가서 갈아입고 올까 하다가 그는 그냥 참기로 했다.
자신이 눈에도 해루는 이미 반쯤 죽은 시체와 다름없어 보였다.
‘어쩌면 인간이 행하는 기적을 보게 될지도!’
왕국주는 협탁 위에 놓여 있던 비단 보를 확 잡아 빼낸 후, 자신의 허리에 휘감았다. 그리고 부지런히 눈알을 굴리며 사방을 살피는 동시에 한영과 의선을 주시했다.
작약은 흰 보자기에서 고약한 미향이 나는 분가루를 꺼내어 해루의 코 주변에 흩뿌리고는 손바닥을 한번 쓰윽 홅고 지나갔다. 노파의 손바닥에 뿌연 안개가 낀다고 느껴지는 순간 벌써 노파는 상반신을 타고 내려가며 배꼽아래 반장까지 혈을 짚어 내려가고 있었다.
“헉! 이건 ..... 진해제(鎭咳劑)에요?”
“오냐. 의식을 빼앗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게지. 깨어나서도 한동안은 진통을 느끼지 못할게다. 아이의 고개를 돌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해. 호흡도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질 테니.”
“네에”
“주어진 시간은 반시진이다. 시작하자.”
한영은 해루의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리게끔 하고 기도가 옳게 뚫려 있는지 확인했다.
동시에 작약은 날카로운 짧은 칼을 들고, 망설임 없이 주욱 그어 내렸다.
막상 뱃가죽이 갈라지는 모양을 보니, 냉정하다고 자부하던 한영도 말문이 막혔다.
‘헉! 이런 걸.. 현은 매일 따라다니며 보아왔단 말이야? 그 곱게 웃는 얼굴로... 우욱!’
작약의 날카로운 눈빛이 한영을 슬깃 노려보았다. 움찔한 한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노파는 미리 준비 해둔 작은 검은 조각들로 그녀의 벌려놓은 거죽을 고정시켰다. 놀랍게도 그 조각들은 쭉쭉 피를 빨며 상처를 지혈시키고 있었다.
“말려 놓은 거머리가 지혈에는 최고지... 옆의 날카로운 대침을 다오!”
“네에!”
“어디보자... 환단을 찾아보자꾸나. 개안부가 있다면 편하겠지만... 도화녀석이 저모양이니..”
“환단을 입으로 복용한 것이라면 위장에 있지 않겠어요?”
“아니야.. 먹은 직후 일 때의 말이지.. 아까 이미 봉인이 풀렸고, 그것을 새로 봉인하지 않았느냐? 새로 봉인된 그 자리에 박혀 있을게다. 끌끌..내 아까 눈여겨보아 두었는데..”
작약은 구슬땀을 흘리며 한참을 찾았다. 시력이 유난히 좋은 한영도 안력을 돋우며 작약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바쁘게 옮겼다. 무엇인가 반짝 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발견한 이도 역시 한영이었다.
“아... 그러면...앗! 저기요~ 저기!! 작은 구슬이!”
“옳거니! 신장 뒤쪽에 박혀 있었구나!”
작약의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대침으로 구슬을 꺼내어 낸 작약은 큰 한 숨을 쉬었다. 일단 한영은 조심스럽게 구슬을 흰 광목천 위에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모에게 큰 대야와 데운 물을 준비시켜 둔 작약은 모든 장기의 자리를 잡아 맞추고, 여덟 장이 넘는 길이의 대장과 소장을 모두 꺼내서 깨끗이 헹구었다. 그 다음 다시 몸 안으로 제 있어야 할 자리에 질서 정연하게 꼼꼼히 메워 넣었다. 마지막으로 자궁을 조심스레 꺼내어 왼손으로 받친 다음, 오른손에 쥐여진 날카로운 중간 길이의 도(刀)로 장기를 반을 갈랐다. 엄청난 진기를 쏟아 붇고 있던 작약은, 공중으로 반쯤 붕 떠 있었다. 노파의 전신으로 비 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작약이 떨리는 목소리로 안타깝게 말을 이었다.
“이런, 이런...오장 육부가 모두 엉망이 되어있어.. 많이 상한게지..”
“그것이...자궁....이에요?”
“그래 ... 이제 마지막으로 태아를 꺼내야지. 쯧쯧”
“아.....아니!”
“왜요? 헉! 이럴 수가....둘...이에요.”
“그랬구나...쌍 태아였던 게야 끌끌끌.... 아깝도다..아까워.. 어찌 하겠느냐.. 혼마저 소멸 당했으니... 가엽다,, 광목에 고이 싸두어라. 내 곡이라도 해서 염을 해 줄 테니...”
말을 잇는 작약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두 사체를 받아 든 한영도 목이 메어왔다. 오 개월에 접어든 태아는 손이며, 발이며 사람의 형상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죽어서도 아귀에게 혼을 소멸당한 둘 중 하나는 허리가 반쯤 끊겨 있었다. 한영은 흰 광목에 잘 싼 다음 옆에서 오열하고 있는 노모에게로 태아의 시신을 넘겼다. 차마 시술을 행하고 있는 작약에게 혹여 방해라도 될까봐 소리 한번 내지 않고 혀를 깨물고 있던 노모는 아이를 받아들고, 망연자실하게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홍루의 눈에도 왕국주의 눈에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간이 너무 지체 되었다. 서둘러! 바늘과 저기 옆의 푸른 실을 다오!”
“네에!”
작약은 귀신과 같은 손놀림으로 신경과 근육, 그리고 핏줄을 하나하나 이어 맞추며, 절단한 부위를 꿰매어 맞추었다. 너무나도 빠른 신위에 곁에 서있던 한영도 작약의 손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노모(老母)나 홍루 그리고 왕국주는 그저 빛줄기와 같은 손의 잔영만을 보았을 뿐이다.
긴장된 짧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작약은 거머리를 수습하여 다시 작은 주머니에 챙겨 넣고, 한영으로 하여금 도구들을 정해진 주머니에 넣도록 지시했다. 모든 상처를 꿰맨 후, 다시 한번 마지막 상처위로 준비해 온 금창약을 사뿐히 매만지며 바르고 난 후에도, 노파는 긴장된 눈빛을 풀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혈색 하나 없는 해루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기만 했다.
작약은 숨을 멈추고 해루의 맥을 쥐었다. 그러기를 잠시.
노파의 얼굴색이 울긋불긋하게 변하더니 점점 창백해져 가고 있었다. 반대로 해루는 점점 불그스레한 혈색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300수가 넘어선 그녀의 내가 진기를 아낌없이 해루의 몸 안으로 일 주천 시키는 작약이다.
‘하아아-’
해루의 입술 사이로 작은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곧 맥박과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작약의 표정도 한결 풀어지며, 잡았던 맥을 놓고 일어섰다. 진기의 소모가 극심했던지, 일어선 노파는 잠시 휘청거렸다. 툴툴거리던 한영도 이 때 만큼은 얼굴 한 가득 근심을 가득 안은 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작약을 응시했다.
“되..었다, 죽지는 않을 게야.. 나머지는 제 의지이지..”
“수고..하셨어요.”
“되었다. 그런 소리 들으려 한 것이 아니니... 도화는 다시 한번 살펴보았느냐?”
“이제 가볼 참이에요......어른도...쉬시어요.”
“그래야 겠어 ..그래.. 수고했다.”
작약은 비틀거리며 기구들을 짐 안에 챙기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한영은 도화에게로 바쁘게 걸어갔다. 노모와 홍루는 해루의 안색을 살펴보고는 살았다 싶어 마룻바닥에 넙죽 엎드려 서럽게 통곡하기 시작했다.
“신선님....신선님....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흑흑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으흐흐흑”
“그런 소리 말라니까! 깨어나면 꽤 고통스러울 게야. 잘 보듬어 주도록 해라.”
노모와 홍루는 혹여나 광목에 싸둔 그것을 보면 해루가 더욱 괴로워할까 싶어 일단 따로 챙겨 두었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원통함과 서러움이 가득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과연! 틀림이 없다! 저들은.....!’
감동으로 떨리는 왕국주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어서 빨리 이 일을 그 분께 알려야 했다. 그는 대충 상황이 정리되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전각 밖으로 나오자, 흰 개와 함께 의선이라는 그 노파가 보따리들을 뒤적이며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작약 모르게 살짝 뒤로 돌아서 뒷길로 나간 왕국주는, 보초를 서고 있던 검은 복장의 장이를 보았다. 장이라고 불린 사내는 왕국주의 몰골을 보고 꿈쩍 놀라 머라고 소리치려 하다가, 왕국주가 급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자 이내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눈은 무슨 일이냐고 몹시 놀라 묻고 있었다.
“전각 안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더냐?”
“아,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다.. 그건 됐고, 밖의 동정은?”
“쥐새끼 한 마리 없었습니다요. 국주어른~”
“그래?”
“어른...혹시 바지에.......저기....”
장이라는 사내가 코를 틀어막으며, 손가락으로 비단을 두르고 있는 왕국주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당황한 왕국주는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다! 치료하다 이리된 것이지..흠흠! 계속 보초를 서고 있어라!”
“예? 아, 예에.”
‘그래..결계라는 것이 소리까지도 집어 삼켜 버리는 모양이구나!’
혼자서 나지막이 무엇이라 중얼거리던 그의 뒷모습이 바쁘게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다. 검은 복장의 사내는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며 사라진 왕국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도 주위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 구슬!!!’
도화의 곁에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한영은, 막 구슬 생각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아까 광목을 둔 곳으로 갔다. 구슬은 잘 쌓여져 있었다. 그래도 혹 여기에 봉인이 되어 있다면 까닥하면 다시 해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도화의 품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꺼내어 뒤적이던 한영은 마침 적당한 부적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녀도 술법가문의 후예답게 웬만한 부의 이름이나 사용법등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집어 든 부적은 봉인부(封人符)였다. 누런 부적으로 꼼꼼히 다시 한번 구슬을 잘 싼 다음 광목으로 다시 덮어두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그 위험한 광목 주머니를 일단은 자신의 경장의 주머니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도화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쌔근-쌔근-
“녀석..그렇게 걱정을 시키고는, 코까지 골며 잠만 잘 자 잔아? 풉.”
“제가.. 공자님을 잘 돌볼 테니, 무사님도 좀 쉬십시오.”
“너도 피곤할 텐데.......”
“제가 미천하여 귀한님을 맡기시지 못하시는 거예요?”
어느새 다가온 홍루가 퉁퉁 부은 눈을 들어 한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힘들게 미소 짓고 있었다. 조리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영은 말을 더듬었다. 노모는 해루의 곁에서 그녀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 그건......”
“쉬시어요. 소녀가 돌볼게요.”
“그럼......부탁한다.”
“네에. 걱정 마세요....너무나 아름다우신 분이세요.”
“그렇지..... 고맙다.”
생각해 보니 갈대숲에서부터 정신없이 여인을 업고 온 후 지금까지 한번도 긴장을 풀지 않았던 것 같다.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바깥바람을 쐬러 전각 밖으로 나갔다.
쏴아아-
전각의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청량한 가을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상쾌하게 식혀 주었다. 저만치 앞에서는 작약이 흰둥이 옆에서 무얼 하는지 끙끙거리고 있었다.
한영은 저만치 떨어진 하늘 위에 둥글게 떠있는 커다란 달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이모, 오늘 나는 도화를 지켜주지 못했어. 오히려 도움만 받았지... 난 아직 멀었나봐..’
달 속에 비치는 단영과 백아의 얼굴이 괜찮다는 듯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한영이 달을 보며 장백산의 천외봉을 그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
그녀의 경장 주머니 속 광목! 그리고 그 안의 부적에 감싸인 핏빛의 구슬이, 은은한 검은 안개를 슬며시 뿌려대며 조용히 요동치고 있었다.
-------------------------------------------------------------------------------------- 안부인사를 올린 지 몇일 이나 되었다고, 감기 기운으로 고생하고 있답니다.(ㅠㅠ)
9월을 마무리 하는 시기이다 보니, 다들 바쁘시지요?
그래도 오늘이 벌써 목요일이다...한주가 꺾였구나! 하는 위로를 가슴에 안고,
오늘 하루도 멋진 날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파안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