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해가 나와서 따스하게 느껴지네요. 너무 오랫동안 비가 와서 그런지 이렇게 해가 고맙게 느껴진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 사람들은 오늘부터 다 정상 출근이라서 8시 반까지 시내에 있는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곳은 출근을 하니 지금은 동네 안이 조용하네요. 오토바이 소리도 그렇게 시끌벅적하더니 참새들 짹짹거리는 소리만 들리네요. 땡삐네가 제일 가슴에 한이 되는 일이 뭐냐고요? 그럼 1996년 10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1996년 10월 13일 저희 아저씨가 완전히 중국에 파견들어오는 날이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8월달쯤 들어와 있었답니다. 울 아저씨가 중국은 제일 먼저 들어오고 출장도 거의 매달 들어 왔는데 본사에서 쫄병 노릇한다고 좀 늦게 들아왔거든요. 울 아저씨 중국 들어온다고 울 시어머니 단감 5개 시골에 있는것 따서 주머니에 담아가지고 오셨더군요. 저희 시댁 마당에 단감 나무가 세그루 밖에 없어서 울 아저씨 좋아해도 울산 살때는 사먹으면 된다고 시골에 있는것은 부모님 드시라고 잘 안 들고 왔거든요. 근데 울 시어머님 평생에 자기 이름 한자도 못 쓰고 읽는 그런 문맹이셨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시골에서 농사 뼈빠지게 지어서 정말 정직하고 바르게 잘 키우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울 시어머니 정말 존경한답니다. 자식들을 바르게 잘 가르키는것이 학벌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것을 울 시어머니 보면서 느꼈거든요. 12일날 저녁에 울 시어머니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기에 비자금 다 털었는지 돈 10만원을 만원권 새것으로 농협에서 바꿔오신것 같더군요, 아들 손에 쥐어 주면서 중국 들어가면서 맛있는것 사 먹고 가라고 그러더군요. 그러니 울 아저씨가 중국 가면 한국돈도 못 쓰고 이것 가지고 가도 아무 쓸모 없는 무용지물이라고 그러니 울 시어머니 아들한테 "내가 니 이렇게 돈 주면 다시 니한테 돈 한푼 들려줄수 있을란지" "다시 니 얼굴 한번 더 볼란지" 이렇게 혼잣말로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엄마도 참 내년 설 되면 나오고 내년 여름에 엄마랑 아부지 중국 들어오시면 되는데 무슨 그런 말씀를 하냐"면서 제가 시어머니께 잔소리를 했답니다. 울 시어머니 한 10여년 전부터 간이 안 좋아서 계속 부산 백병원에서 약을 받아서 잡수고 계셨거든요. 96년만해도 중국에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 있지 않고 시골 오르신네들 생각에는 상사들에게 아부 안 하고 뇌물을 상납을 안 해서 좌천 되어서 간다고 그렇게 생각 하셨나 보더군요. 다음날 아침 일찍 김포공항으로 울 아저씨 아침 비행기 타는데 배웅을 하고서 돌아와서 저희가 사는 집 전세를 복덕방에 내 놓아서 사람이 집에 없으면 안 되기에 울 시어머니 부산 형님이랑 김포 국내선까지만 배웅하고 다시 돌아왔답니다. 저도 11월까지 기다려서 전세 빼고 시골에 갔다가 울 친청 엄마가 쓰러져서 입원해 있는동안 병간호 하다가 여기로 12월에 들어왔거든요, 중국 들어올때도 울 엄마 아파서 울 시어머니 제대로 뵙지도 못 하고 들어왔답니다. 여기 와서 2월달이 설날인데 저희 아저씨 공장 설계한 사람들 데리고 한국 간다고 음력 15일쯤 되어서 들어간다고 구정에는 못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아직 음력 보름날이 안 되었는데 시골에 전화하니 울 시어머니 부산에 병원에 입원하러 가셨다고 그러더군요, 며칠전에도 전화했을때 엄마랑 얘기 잘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병원 전화번호 알아내서 전화 하니 울 시어머니 목소리가 힘이 하나도 없으시더군요. 그래서 울 아저씨 부랴부랴 비행기표 예약을 해 놓았거든요. 3월 1일 삼일절날 들어간다고 그러고 전 아무래도 병세가 심상치 않기에 한국 가면 좀 오래 머물러 있다가 울 시어머니 병세가 좋아지고 나면 들어올려고 가기전날 울 아저씨 옷 찾아 입기 쉽게 스티커 다 붙여두고 가스 사용법, 밥 짓는 방법, 정수기 사용법, 세탁기 사용법 등등 온갖 갑동사니들을 적어서 준비 다 하고 12시 쯤 누웠는데 새벽 2시쯤 되었을때 갑자기 꿈인지 생시인지 온 몸에서 피가 마구 꺼꾸로 솟아오르는 그런 느낌 때문에 놀라서 깨어나니 저희 집에 전화벨이 막 울리는겁니다. 울 큰 형님 빨리 안 나온다고 난리 치는겁니다. 여기가 서울도 아니고 한국의 지방도 아닌데 제가 가고 싶다고 날아갈수를 있나요. 차를 몰고 마구 달려갈수 있나요. 비행기가 제 시간 되어서 뜰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때부터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세시 반 정도 되니 여기는 한국이랑 시차가 한시간이니 말예요. 울 작은 아주버님이 동생을 찾더군요, 전화 받으면서 울 아저씨 얼굴에 표정이 아무것도 안 나타나서 언제 오는지 그런 얘기만 하길래 아무 감도 잡지 못 했답니다. 울 아저씨 그 한국에서 같이 온 인간들이 3월 1일 한국 본사 논다고 가족들 끼리 차가지고 놀러 간다고 울 아저씨보고 회사 차 사용하지 말라고 그랬다네요. 다행이 연태 가는 조선족 무역하는 아저씨가 울 아저씨랑 사이가 좋아서 이른 시간이지만 그 차를 타고 가기로 했거든요. 공항에 도착하니 8시도 안 되어서 그 황량한 청도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서글프더군요. 회사 차 얻어 타고 왔으면 1시간 반 정도 전에 도착해서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공항에 문 열때까지 무작정 기다렸지요. 그때까지도 아침은 정말 쌀쌀했거든요. 울 아저씨 청도에서 서울로 들어올때까지 물 한모금 안 마시더군요.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내가 "엄마 아무일 없지?" 몇번을 물어도 "그래"이렇게 대답만 하고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부산에 내려서 택시 대절해서 부곡 지나서 더 들어가는 시골이라서 그날이 연휴라서 차는 얼마나 막히는지 말입니다. 부산에서 마산쪽으로 자주 가시던 분들 옛날에 그 길이 얼마나 주말이면 막히는지 잘 아실겁니다. 집앞에서 내리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더군요, 집앞에 자가용도 많이 서 있고 말입니다. 상가집에서나 걸어두는 근조도 보이고 그 순간 어디에 막 한대 맞은 느낌이더군요, 집안에 들어가서 빈소 마련된 곳에 들어서니 다른 형제분들은 다 상복을 일찌감치 입고 있더군요. 새벽에 3시 반 정도에 전화 온것이 이미 울 시어머니 하늘나라로 간 후에 전화 한것이더군요. 2시정도에 전화 온것은 의사가 환자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그래서 그런것이었고요. 울 아저씨가 좀 냉정하고 감정 표현이 바깥으로 잘 안나타나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자기 큰 형님한테 "울 엄마 얼굴 마지막으로 한번 봐도 되냐"고 그러니 벌써 입관이 끝났답니다. 그러니 갑자기 아저씨가 울면서 그자리에서 사지가 마비 되더니 기절을 해 버리는겁니다. 전 시어머니 돌아가신것 보다 그런 모습에 더 놀라서 얼마나 당황 했는지 말입니다. 다행이 누군가가 액체로 된 청심환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먹이고 진정을 하고 일어나더니 그렇게 서럽게 우는것입니다. 자식들 중에 다 같이 있다가 변소 간 사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더니 그 멀리에서 설마설마 하면서 얼마나 혼자서 가슴 졸이고 왔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만약 엄마 돌아가셨다고 그러면 이 떼순이가 울고 불고 떼 쓰면서 안 간다고 그럴까봐 그런 말도 못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없는데 입관까지 다 하고 했다는데 너무너무 속이 상하더군요. 울 잘난 형님이 엄마 병원에서 저희랑 통화하고 나서 수혈을 세병 했는데 수혈하고 나서 곧바로 산소마스크를 꼈다고 그러더군요.수혈 3병째하고 나서부터 의식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혼수상태인데 몸안에 배설물이 얼마나 있다고 계속 관장약을 주입해서 집에 와서 산소마스크 빼니 엄마는 곧바로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그러니 몸안에 수분이 많으니 그것이 복수처럼 배가 불러오니 나무관은 규격이 거의 똑같은데 우리 오려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러니 먼저 입관을 부랴부랴 했답니다. 하지만 울 아저씨 평생에 마지막으로 엄마 임종 못하고 얼굴 한번 못 본것이 한으로 남아 있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 뱃속부터 35년동안 고생 하면서 키워 주신 분인데 말입니다. 저도 아저씨 상처라서 그런 말은 안 하고 본인도 한번도 그런말 꺼낸적이 없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먼곳에 와 사니 부모님 갑자기 그런일 당하면 정말 어쩔줄도 모르고 평생에 한이 되고 그러는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한번은 중앙방송 8번에서 새벽에 6시 좀 넘으면 드라마를 두편씩 해 주는데 아침 먹다가 울 아저씨가 갑자기 훌쩍거리면서 화장실 가서 코 풀고 오길래 감기 걸렸냐고 그러니 아니랍니다. 그래서 얼굴 쳐다보니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더군요, 그 드라마가 엄마가 간암이 걸려서 중학생 딸을 남겨 두고 하늘나라로 가는 드라마였거든요. 그 엄마가 아빠도 먼저 이 세상을 뜨고 하늘 땅 사이에 딸아이 하나를 남겨 두고 갈려고 그러니 차마 눈을 못 감는다고 딸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수학 경기 대회 참석을 하러 외국에 나가고 없을때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매일 딸에게 편지를 한통씩 붙이는 것인데 이웃의 마음 따스한 아저씨가 그 아이의 엄마 부탁을 받고서 편지를 붙여줬거든요, 그 딸아이가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걸 알고 시험을 망치거나 포기 할까봐 그런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고 딸 아이 하나 세상에 달랑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려니 차마 눈을 감을수 없다는 소재의 그런 드라마 인데 엄마 생각이 났나 보더군요. 울 아저씨 나이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래도 한국에서 부모님 가까이서 사니 그래도 그런것도 행복이라고 할수 있겠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아주 행복한 일인지 잘 못 느끼지만 세월 흐르고 난 후에는 그런것들도 다 행복이라고 느껴지더군요. 부모님들이랑 같이 산다면 더 따스하게 마음으로 정을 전해 주시고, 만약 떨어져서 지내신다면 전화 한통이라도 자주 해서 안부 묻고 하세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렇게 안 하고 나면 후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이 드신 분들은 정말 언제 저 멀리 갈지 모르더군요, 그래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나봅니다. 오늘 글이 너무 길었네요. 여러분들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은 부모님이랑 저녁 맛있게 먹는 날이나, 안부 전화 하는 날로 정해 보세요. 그럼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
땡삐의 중국살이-땡삐네의 평생에 한이 되는 가슴 아픈일
오늘은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해가 나와서 따스하게 느껴지네요.
너무 오랫동안 비가 와서 그런지 이렇게 해가 고맙게 느껴진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 사람들은 오늘부터 다 정상 출근이라서 8시 반까지 시내에 있는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곳은 출근을 하니 지금은 동네 안이 조용하네요.
오토바이 소리도 그렇게 시끌벅적하더니 참새들 짹짹거리는 소리만 들리네요.
땡삐네가 제일 가슴에 한이 되는 일이 뭐냐고요?
그럼 1996년 10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1996년 10월 13일 저희 아저씨가 완전히 중국에 파견들어오는 날이었답니다.
다른 사람들은 8월달쯤 들어와 있었답니다. 울 아저씨가 중국은 제일 먼저 들어오고 출장도 거의 매달 들어 왔는데 본사에서 쫄병 노릇한다고 좀 늦게 들아왔거든요.
울 아저씨 중국 들어온다고 울 시어머니 단감 5개 시골에 있는것 따서 주머니에 담아가지고 오셨더군요. 저희 시댁 마당에 단감 나무가 세그루 밖에 없어서 울 아저씨 좋아해도 울산 살때는 사먹으면 된다고 시골에 있는것은 부모님 드시라고 잘 안 들고 왔거든요.
근데 울 시어머님 평생에 자기 이름 한자도 못 쓰고 읽는 그런 문맹이셨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시골에서 농사 뼈빠지게 지어서 정말 정직하고 바르게 잘 키우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울 시어머니 정말 존경한답니다.
자식들을 바르게 잘 가르키는것이 학벌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것을 울 시어머니 보면서 느꼈거든요.
12일날 저녁에 울 시어머니가 경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시기에 비자금 다 털었는지 돈 10만원을 만원권 새것으로 농협에서 바꿔오신것 같더군요,
아들 손에 쥐어 주면서 중국 들어가면서 맛있는것 사 먹고 가라고 그러더군요.
그러니 울 아저씨가 중국 가면 한국돈도 못 쓰고 이것 가지고 가도 아무 쓸모 없는 무용지물이라고
그러니 울 시어머니 아들한테 "내가 니 이렇게 돈 주면 다시 니한테 돈 한푼 들려줄수 있을란지"
"다시 니 얼굴 한번 더 볼란지" 이렇게 혼잣말로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엄마도 참 내년 설 되면 나오고 내년 여름에 엄마랑 아부지 중국 들어오시면 되는데 무슨
그런 말씀를 하냐"면서 제가 시어머니께 잔소리를 했답니다.
울 시어머니 한 10여년 전부터 간이 안 좋아서 계속 부산 백병원에서 약을 받아서 잡수고 계셨거든요.
96년만해도 중국에 그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들어와 있지 않고 시골 오르신네들 생각에는 상사들에게 아부 안 하고 뇌물을 상납을 안 해서 좌천 되어서 간다고 그렇게 생각 하셨나 보더군요.
다음날 아침 일찍 김포공항으로 울 아저씨 아침 비행기 타는데 배웅을 하고서 돌아와서 저희가 사는
집 전세를 복덕방에 내 놓아서 사람이 집에 없으면 안 되기에 울 시어머니 부산 형님이랑 김포 국내선까지만 배웅하고 다시 돌아왔답니다.
저도 11월까지 기다려서 전세 빼고 시골에 갔다가 울 친청 엄마가 쓰러져서 입원해 있는동안 병간호 하다가 여기로 12월에 들어왔거든요,
중국 들어올때도 울 엄마 아파서 울 시어머니 제대로 뵙지도 못 하고 들어왔답니다.
여기 와서 2월달이 설날인데 저희 아저씨 공장 설계한 사람들 데리고 한국 간다고 음력 15일쯤 되어서
들어간다고 구정에는 못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아직 음력 보름날이 안 되었는데 시골에 전화하니 울 시어머니 부산에 병원에 입원하러 가셨다고 그러더군요,
며칠전에도 전화했을때 엄마랑 얘기 잘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병원 전화번호 알아내서 전화 하니 울 시어머니 목소리가 힘이 하나도 없으시더군요.
그래서 울 아저씨 부랴부랴 비행기표 예약을 해 놓았거든요.
3월 1일 삼일절날 들어간다고 그러고 전 아무래도 병세가 심상치 않기에 한국 가면 좀 오래 머물러 있다가 울 시어머니 병세가 좋아지고 나면 들어올려고 가기전날 울 아저씨 옷 찾아 입기 쉽게 스티커 다
붙여두고 가스 사용법, 밥 짓는 방법, 정수기 사용법, 세탁기 사용법 등등 온갖 갑동사니들을 적어서
준비 다 하고 12시 쯤 누웠는데 새벽 2시쯤 되었을때 갑자기 꿈인지 생시인지 온 몸에서 피가 마구 꺼꾸로 솟아오르는 그런 느낌 때문에 놀라서 깨어나니 저희 집에 전화벨이 막 울리는겁니다.
울 큰 형님 빨리 안 나온다고 난리 치는겁니다.
여기가 서울도 아니고 한국의 지방도 아닌데 제가 가고 싶다고 날아갈수를 있나요.
차를 몰고 마구 달려갈수 있나요.
비행기가 제 시간 되어서 뜰때까지 기다려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때부터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세시 반 정도 되니 여기는 한국이랑 시차가 한시간이니 말예요.
울 작은 아주버님이 동생을 찾더군요,
전화 받으면서 울 아저씨 얼굴에 표정이 아무것도 안 나타나서 언제 오는지 그런 얘기만 하길래 아무 감도 잡지 못 했답니다.
울 아저씨 그 한국에서 같이 온 인간들이 3월 1일 한국 본사 논다고 가족들 끼리 차가지고 놀러 간다고 울 아저씨보고 회사 차 사용하지 말라고 그랬다네요.
다행이 연태 가는 조선족 무역하는 아저씨가 울 아저씨랑 사이가 좋아서 이른 시간이지만 그 차를 타고 가기로 했거든요.
공항에 도착하니 8시도 안 되어서 그 황량한 청도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서글프더군요.
회사 차 얻어 타고 왔으면 1시간 반 정도 전에 도착해서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데 말입니다.
공항에 문 열때까지 무작정 기다렸지요. 그때까지도 아침은 정말 쌀쌀했거든요.
울 아저씨 청도에서 서울로 들어올때까지 물 한모금 안 마시더군요.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내가 "엄마 아무일 없지?" 몇번을 물어도 "그래"이렇게 대답만 하고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부산에 내려서 택시 대절해서 부곡 지나서 더 들어가는 시골이라서 그날이 연휴라서 차는 얼마나 막히는지 말입니다.
부산에서 마산쪽으로 자주 가시던 분들 옛날에 그 길이 얼마나 주말이면 막히는지 잘 아실겁니다.
집앞에서 내리니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더군요,
집앞에 자가용도 많이 서 있고 말입니다.
상가집에서나 걸어두는 근조도 보이고 그 순간 어디에 막 한대 맞은 느낌이더군요,
집안에 들어가서 빈소 마련된 곳에 들어서니 다른 형제분들은 다 상복을 일찌감치 입고 있더군요.
새벽에 3시 반 정도에 전화 온것이 이미 울 시어머니 하늘나라로 간 후에 전화 한것이더군요.
2시정도에 전화 온것은 의사가 환자 데리고 집으로 가라고 그래서 그런것이었고요.
울 아저씨가 좀 냉정하고 감정 표현이 바깥으로 잘 안나타나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자기 큰 형님한테 "울 엄마 얼굴 마지막으로 한번 봐도 되냐"고 그러니 벌써 입관이 끝났답니다.
그러니 갑자기 아저씨가 울면서 그자리에서 사지가 마비 되더니 기절을 해 버리는겁니다.
전 시어머니 돌아가신것 보다 그런 모습에 더 놀라서 얼마나 당황 했는지 말입니다.
다행이 누군가가 액체로 된 청심환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먹이고 진정을 하고 일어나더니 그렇게 서럽게 우는것입니다.
자식들 중에 다 같이 있다가 변소 간 사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러더니
그 멀리에서 설마설마 하면서 얼마나 혼자서 가슴 졸이고 왔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만약 엄마 돌아가셨다고 그러면 이 떼순이가 울고 불고 떼 쓰면서 안 간다고 그럴까봐 그런 말도 못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없는데 입관까지 다 하고 했다는데 너무너무 속이 상하더군요.
울 잘난 형님이 엄마 병원에서 저희랑 통화하고 나서 수혈을 세병 했는데 수혈하고 나서 곧바로 산소마스크를 꼈다고 그러더군요.수혈 3병째하고 나서부터 의식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혼수상태인데 몸안에 배설물이 얼마나 있다고 계속 관장약을 주입해서 집에 와서 산소마스크 빼니
엄마는 곧바로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
그러니 몸안에 수분이 많으니 그것이 복수처럼 배가 불러오니 나무관은 규격이 거의 똑같은데 우리 오려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러니 먼저 입관을 부랴부랴 했답니다.
하지만 울 아저씨 평생에 마지막으로 엄마 임종 못하고 얼굴 한번 못 본것이 한으로 남아 있겠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 뱃속부터 35년동안 고생 하면서 키워 주신 분인데 말입니다.
저도 아저씨 상처라서 그런 말은 안 하고 본인도 한번도 그런말 꺼낸적이 없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먼곳에 와 사니 부모님 갑자기 그런일 당하면 정말 어쩔줄도 모르고 평생에 한이 되고 그러는것이 가슴이 아픕니다.
한번은 중앙방송 8번에서 새벽에 6시 좀 넘으면 드라마를 두편씩 해 주는데 아침 먹다가 울 아저씨가
갑자기 훌쩍거리면서 화장실 가서 코 풀고 오길래 감기 걸렸냐고 그러니 아니랍니다.
그래서 얼굴 쳐다보니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더군요,
그 드라마가 엄마가 간암이 걸려서 중학생 딸을 남겨 두고 하늘나라로 가는 드라마였거든요.
그 엄마가 아빠도 먼저 이 세상을 뜨고 하늘 땅 사이에 딸아이 하나를 남겨 두고 갈려고 그러니 차마 눈을 못 감는다고 딸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수학 경기 대회 참석을 하러 외국에 나가고 없을때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매일 딸에게 편지를 한통씩 붙이는 것인데 이웃의 마음 따스한 아저씨가 그 아이의
엄마 부탁을 받고서 편지를 붙여줬거든요,
그 딸아이가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난걸 알고 시험을 망치거나 포기 할까봐 그런 엄마의 마음을 표현하고 딸 아이 하나 세상에 달랑 남겨두고 이 세상을 떠나려니 차마 눈을 감을수 없다는 소재의 그런 드라마 인데 엄마 생각이 났나 보더군요.
울 아저씨 나이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래도 한국에서 부모님 가까이서 사니 그래도 그런것도 행복이라고 할수 있겠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아주 행복한 일인지 잘 못 느끼지만 세월 흐르고 난 후에는 그런것들도 다 행복이라고 느껴지더군요.
부모님들이랑 같이 산다면 더 따스하게 마음으로 정을 전해 주시고, 만약 떨어져서 지내신다면 전화 한통이라도 자주 해서 안부 묻고 하세요.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렇게 안 하고 나면 후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나이 드신 분들은 정말 언제 저 멀리 갈지 모르더군요,
그래서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있나봅니다.
오늘 글이 너무 길었네요.
여러분들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은 부모님이랑 저녁 맛있게 먹는 날이나, 안부 전화 하는 날로 정해 보세요.
그럼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