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2월 19일.. 추운겨울 어느날 새벽 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산모의 고통이 시작되고..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8시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제왕절개로 8달만에 세상에 빛을본 팔삯둥이... 그게 바로 나다.. 내나이 3살이 되던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시고.. 어머님과 둘이 살게되었다.. 어머님께서 벌이를 하셔야 했기때문에..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 지극히도 평범한.. 정말 말그대로 공부만 하는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잠시 아버지집으로 가게 되었고.. 아버지.아줌마(새로재혼하신분)과 같이 살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평상시에는 정말 좋으신분이다.. 대구 지역에서는 내놓아할정도로 부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14살의 나이에 하루용돈 만원씩 쓰면서 돈에 대해 전혀 걱정없이 살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술을 드시게 되면은..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수도 없다.. 새벽 3시쯤에 들어오셔서 자는 놈을 깨워서 막 때리기 시작한다.. 아버지 들어오기도 전에 처자빠자는 호로새끼라는 이유로... 그렇게 아버지께서 술을 드신날마다 맞았다.. 물을 잠그고 자도 소용없었다.. 창문을 돌로 깨고 들어오셔서 때렸다.. 맞지 않기위해 새벽 4시 5시까지 어쩔때는 밤을 샌적도 잇었다.. 그렇지만 맞았다.. 아무 이유없었다.. 그냥예전 지난일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맞고 자랐다.. 그렇게 맞고 내 스트레스를 풀곳은 오로지 학교 뿐이었다.. 내가 맞은만큼 이유없이 같은반 친구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키 170 몸무게 65kg 또래중에 상당히 큰몸집이었고.. 그렇게 한명 한명을 괴롭힐수록... 학교에서 나의자리는 소위말하는 일진이 되어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만난 친구가 있다.. 지금까지 나의 세상하나뿐인 제일 소중한친구.. 영기와 가출을 시작하게 되었고.. 술..담배..성관계까지 하게 되었던 시기이다.. 그렇게 삐뚤어질때로 삐뚤어저있던..나.. 중학교 3학년때 결석일수 70일이 되면서..학교에서 퇴학처리 당할뻔했지만.. 아버지의 돈과 담임선생님이 카바를 해주셔서 짤리지 않을수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IQ테스트때 희안하게도 146이라는 수치가 나오게 되었다.. 교무회의에서 나를 짜르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이.. 이놈은 하면되는놈이라고 반드시 자신이 나를 잡을것이라고 그렇게.. 책임 진다고 하시게되어.. 나는 퇴학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3년동안의 만행을 뒤로한체.. 아버지집을 나와 다시 어머니집으로 오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생겨나게된 못된 버릇들은 고칠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시절의나를 돌이켜보면.. 고치기 싫었던 것일줄도 모른다.. 매일 학교가서 누워자고 애들 괴롭히도 돈뺏고..그돈으로 술마시고..다시 가출하고.. 학교 나가지 않고.. 그렇게.. 학생 신분으로는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해왓었고.. 1998년 6월 학교로 부터 퇴학처리를 당하게 되었다.. 영기와난 학교를 같이 그만두게 되었고.. 어린마음에 영웅심이란거에.. 할짓도 없는데 우리도 건달이란거 해보자..이런식으로 건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더욱더 집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한참 우리 또래들중에서는 형님들에게 인정받는 생활을 할때쯤..내나이 18살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더이상은 내가 건달생활을 하는것을 볼수 없다는 편지 한장만을 남겨둔체.. 핸드폰 번호도 바꿔버리시고..나를 버린체로 어디론가 떠나버리셨다..그러다가 조폭으로 연류되어 경찰에 입건되었고..구속되어..대구구치소로 갔다.. 구치소에서 미결수 4개월을 채우고 소년분류심사원으로 가서 다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6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총 10개월여의 징역을 살고 나온후..여전히 나는 건달 생활을 하였었다.. 19살이 되던 2000년..밀레니엄이라고 교육청에서 모든 자퇴생들을 받아주라는 통보가 있었고 나는 19살의 나이에 2살어린 동생들과 학교를 다니기위해 영기와함께 복학을 했다.. 어머니도 안계셨기때문에 학비와 용돈은 아버지께 손을 벌렸고.. 사는집은 당분간은 영기집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영기와 나는 학교측의 배려로 한반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 애들에게 우리가 건달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애들은 다알고있었고 모든애들이 우리를 무서워했었다.. 우리 스스로 생각에..이렇게 되면 애들과 더멀어진다는 생각에.. 일부러 애들에게 농담도 해주고..그렇게 재미있게 지냈다.. 2000년 여름방학이 되었고..나는 여전히 건달생활을 하고 있었다..아니 말은 건달일지 몰라도 3류양아치 깡패인것이다.. 그러다가 폭행사건에 연류되어 또다시 구속영장이 떨어저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폭행이라지만.. 난 상대에게 구타를 가한적은 전혀 없었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을뿐이었다.. 대한민국 법상..말리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기만해도..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공범이되어야 했다.. 하지만.. 형님이 다른사람을 구타하는데 동생이 어떻게 말릴수가 있겠는가.. 또다시 소년분류 심사원으로 보내저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학생이라는점.. 죄질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점.. 전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점이 창작되어 무죄가 선고되었고.. 억울하게 방학 동안 내도록 징역만 살고 있었다... 학교 개학후 10일이 지나서야 다시 학교를 갈수 있게 되었고.. 역시 아버지의 돈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징역을 들어가고도 짤리지 않을수가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2학년이 되었고.. 내나이 스물이었다.. 3학년에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했고..학교에는 영기와 나 둘뿐이었다.. 2학년이 되자마자 적응이 너무 힘겨웠다.. 그렇게 결국 2001년 4월 20살의 나이에 2학년이 된지 한달만에 학교를 뛰쳐 나와버렸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되겟다 싶었다.. 그래서난 건달생활을 그만두기로 하였고.. 도망오다싶이 구미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구미로 갈때 입고있던 옷한벌..주머니에 돈 23만원..내 몸땡이... 이게 내가가진 전부였다.. 당장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고.. 아버지께 손을 벌리는것도 싫었다.. 난생처음으로 식당에서 일이란것을 해봤다..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식당에서 일을하고 식당한쪽 방에서 잠을 자야했다.. 저녁 9시부터 새벽2시까지 단란주점 웨이터를하고 2시부터 5시까지 대리운전시간알바를 뛰었다.. 하루에 3시간이상 자본적이 없었다.. 주위사람들이 돈에 환장한놈이라고 부를만큼 오로지 돈벌기에만 전념했다.. 단란주점에 일할때 손님이 버리고간 담배를 폈고..남은술을 식당에서 3끼를 다해결하고.. 주점에 누나들에게 간식얻어먹고.. 당장입을 옷을 제외한 곳에 단돈 10원도 잘쓰지 않았다..그렇게 6개월정도를 하루에 3시간정도자고 간만에 잇는 휴일엔는 실컷자고하면서.. 버텨왔다.. 6개월뒤에 몸이 너무 혹사를 당하여..90kg였던 몸무게가 58kg까지 내려갔다..180키에..58kg뼈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일을 그만두게되었고.. 꽤나 돈이 모였다.. 원룸도 잡고..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다.. 비록 유흥주점에 일하는 여자였지만..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여자와 함께 살면서.. 나도 밤에 일하는 무언가를 찾았고.. 우연한 기회에 아는 사람에 소개를 받고 호스트빠에 출근을 했다... 첫날에 출근해서 번돈은 16만원.. 하루만에 16만원을 벌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그녀는 주점..난 호빠..이렇게 소위말하는 빠순이 빠돌이커플이 되었고.. 비록 더러운일을 하지만.. 우리는 정말 사랑했다.. 내나이 21살..내통장에 천사백만원이라는 큰돈이 모이게 되었다.. 어느날..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시골에 가야한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나도 몇번 만나뵌적이 있었다.. 몸이 약하셔서 항상 아프셧다.. 몇일동안 연락이 없다가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백혈병이라고.. 골수를 이식받아야 한다고.. 일치되는 골수는 있는데 수술비가 없다고.. 단 1초동안의 고민도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내통장에 천이백만원을 빌려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뒤로 그녀와는 아직까지도 연락이 안된다.. 소위말하는공사를 당한것이다.. 지금 그녀를 만나면..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하나가 정말 궁금한것이 있다.. 그때 당시.. 나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었는지.. 아니면 내돈을 사랑했었는지.. 그렇게 내수중에 다시 이백만원의 돈이 있었고.. 다시난 돈을 벌기위해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해겨울 나는 병역특례병으로 공장에 들어갔었고.. 한달에 100만원 안밖인 월급을 받았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잔업이 있으면 항상 특례병들이 해야했다.. 일반인들은 잔업을 피곤하다면서 하지 않는다.. 만만한게 특례병이기때문에 회사측에서는 우리에게 시킨다..그래도 잔업수당은 다준다 그렇게 하루에 거의 14시간정도의 일을했고.. 한달에 82만원씩 적금을 넣었다.. 2년 2개월을 해오면서 적금 넣은돈과 퇴직금을 합해 2천 5백만원정도를 모았고.. 그돈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전형적인 B형이기때문에 무언가 하나에 빠지기 시작하면.. 미처버리는 성격이다.. 남에게 지는걸 싫어하기때문에..공부또한 정말 미친듯이했다.. 그렇게 검정고시 공부 2개월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되었고.. 대학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외에 내가 원하던 공부를 좀했고.. 관심있는쪽이 펀드쪽인지라..펀드매니저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2005년 3월 신한은행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기에 용기를 가지고 이력서를 내었고.. 다른 대학 졸업자..대학원졸업자를 제치고 59:1이라는 경쟁률속에서 살아남아 취업을 하게되었다.. 특례병시절부터..사귀어 왔던..여자 친구와도..어느덧..2년이라는 시간이되었고.. 내년쯤에 결혼준비중이다 이렇게 어린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던게 너무나 큰도움이 되는듯하다.. 내 삶에 IF 라는 단어는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좌우명하나를가지고..이렇게 성공을했다.. 취업을 하게 됨과 동시에 떳떳한마음으로 어머니를 찾았고.. 어머니는 나를 용서해주셧다.. 그렇게 5년동안 혼자 살던 생활이 끝나고 지금은 어머니와 둘이서 함께 정말 행복하게 살고있다
내가 살아온길..
1982년 12월 19일.. 추운겨울 어느날 새벽 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산모의 고통이 시작되고..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8시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고
제왕절개로 8달만에 세상에 빛을본 팔삯둥이...
그게 바로 나다.. 내나이 3살이 되던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하시고.. 어머님과 둘이 살게되었다..
어머님께서 벌이를 하셔야 했기때문에.. 나는 외할머니 댁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 지극히도 평범한.. 정말 말그대로 공부만 하는 아이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잠시 아버지집으로 가게 되었고.. 아버지.아줌마(새로재혼하신분)과
같이 살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평상시에는 정말 좋으신분이다.. 대구 지역에서는 내놓아할정도로
부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14살의 나이에 하루용돈 만원씩 쓰면서 돈에 대해 전혀 걱정없이
살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술을 드시게 되면은..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수도 없다..
새벽 3시쯤에 들어오셔서 자는 놈을 깨워서 막 때리기 시작한다..
아버지 들어오기도 전에 처자빠자는 호로새끼라는 이유로... 그렇게 아버지께서
술을 드신날마다 맞았다.. 물을 잠그고 자도 소용없었다.. 창문을 돌로 깨고 들어오셔서 때렸다..
맞지 않기위해 새벽 4시 5시까지 어쩔때는 밤을 샌적도 잇었다.. 그렇지만 맞았다..
아무 이유없었다.. 그냥예전 지난일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맞고 자랐다..
그렇게 맞고 내 스트레스를 풀곳은 오로지 학교 뿐이었다.. 내가 맞은만큼 이유없이 같은반 친구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키 170 몸무게 65kg 또래중에 상당히 큰몸집이었고..
그렇게 한명 한명을 괴롭힐수록... 학교에서 나의자리는 소위말하는 일진이 되어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만난 친구가 있다.. 지금까지 나의 세상하나뿐인 제일 소중한친구..
영기와 가출을 시작하게 되었고.. 술..담배..성관계까지 하게 되었던 시기이다..
그렇게 삐뚤어질때로 삐뚤어저있던..나.. 중학교 3학년때 결석일수 70일이 되면서..학교에서
퇴학처리 당할뻔했지만.. 아버지의 돈과 담임선생님이 카바를 해주셔서 짤리지 않을수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IQ테스트때 희안하게도 146이라는 수치가 나오게 되었다..
교무회의에서 나를 짜르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우리 담임선생님이.. 이놈은 하면되는놈이라고
반드시 자신이 나를 잡을것이라고 그렇게.. 책임 진다고 하시게되어.. 나는 퇴학당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3년동안의 만행을 뒤로한체.. 아버지집을 나와 다시 어머니집으로 오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생겨나게된 못된 버릇들은 고칠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그시절의나를 돌이켜보면.. 고치기 싫었던 것일줄도 모른다..
매일 학교가서 누워자고 애들 괴롭히도 돈뺏고..그돈으로 술마시고..다시 가출하고..
학교 나가지 않고.. 그렇게.. 학생 신분으로는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해왓었고.. 1998년 6월
학교로 부터 퇴학처리를 당하게 되었다.. 영기와난 학교를 같이 그만두게 되었고..
어린마음에 영웅심이란거에.. 할짓도 없는데 우리도 건달이란거 해보자..이런식으로
건달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더욱더 집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한참 우리 또래들중에서는
형님들에게 인정받는 생활을 할때쯤..내나이 18살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더이상은 내가 건달생활을
하는것을 볼수 없다는 편지 한장만을 남겨둔체.. 핸드폰 번호도 바꿔버리시고..나를 버린체로
어디론가 떠나버리셨다..그러다가 조폭으로 연류되어 경찰에 입건되었고..구속되어..대구구치소로 갔다..
구치소에서 미결수 4개월을 채우고 소년분류심사원으로 가서 다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6호 처분을 받고 소년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총 10개월여의 징역을 살고 나온후..여전히 나는
건달 생활을 하였었다.. 19살이 되던 2000년..밀레니엄이라고 교육청에서 모든 자퇴생들을 받아주라는
통보가 있었고 나는 19살의 나이에 2살어린 동생들과 학교를 다니기위해 영기와함께 복학을 했다..
어머니도 안계셨기때문에 학비와 용돈은 아버지께 손을 벌렸고.. 사는집은 당분간은 영기집에서
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영기와 나는 학교측의 배려로 한반이 되었다
하지만 학교 애들에게 우리가 건달이었다는 사실은 우리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애들은 다알고있었고
모든애들이 우리를 무서워했었다.. 우리 스스로 생각에..이렇게 되면 애들과 더멀어진다는 생각에..
일부러 애들에게 농담도 해주고..그렇게 재미있게 지냈다.. 2000년 여름방학이 되었고..나는 여전히
건달생활을 하고 있었다..아니 말은 건달일지 몰라도 3류양아치 깡패인것이다..
그러다가 폭행사건에 연류되어 또다시 구속영장이 떨어저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폭행이라지만.. 난 상대에게 구타를 가한적은 전혀 없었고..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을뿐이었다..
대한민국 법상..말리지 않고 뒤에서 지켜보기만해도..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공범이되어야
했다.. 하지만.. 형님이 다른사람을 구타하는데 동생이 어떻게 말릴수가 있겠는가..
또다시 소년분류 심사원으로 보내저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학생이라는점..
죄질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점.. 전과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는점이 창작되어
무죄가 선고되었고.. 억울하게 방학 동안 내도록 징역만 살고 있었다... 학교 개학후 10일이 지나서야
다시 학교를 갈수 있게 되었고.. 역시 아버지의 돈으로 인해 학교에서는 징역을 들어가고도 짤리지
않을수가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2학년이 되었고.. 내나이 스물이었다.. 3학년에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했고..학교에는 영기와 나 둘뿐이었다.. 2학년이 되자마자 적응이 너무 힘겨웠다..
그렇게 결국 2001년 4월 20살의 나이에 2학년이 된지 한달만에 학교를 뛰쳐 나와버렸다...
더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되겟다 싶었다.. 그래서난 건달생활을 그만두기로 하였고.. 도망오다싶이
구미라는 도시로 가게 되었다.. 구미로 갈때 입고있던 옷한벌..주머니에 돈 23만원..내 몸땡이...
이게 내가가진 전부였다.. 당장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고.. 아버지께 손을 벌리는것도 싫었다..
난생처음으로 식당에서 일이란것을 해봤다..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식당에서 일을하고 식당한쪽
방에서 잠을 자야했다.. 저녁 9시부터 새벽2시까지 단란주점 웨이터를하고 2시부터 5시까지
대리운전시간알바를 뛰었다.. 하루에 3시간이상 자본적이 없었다.. 주위사람들이 돈에 환장한놈이라고
부를만큼 오로지 돈벌기에만 전념했다.. 단란주점에 일할때 손님이 버리고간 담배를 폈고..남은술을
식당에서 3끼를 다해결하고.. 주점에 누나들에게 간식얻어먹고..
당장입을 옷을 제외한 곳에 단돈 10원도 잘쓰지 않았다..그렇게 6개월정도를 하루에 3시간정도자고
간만에 잇는 휴일엔는 실컷자고하면서.. 버텨왔다.. 6개월뒤에 몸이 너무 혹사를 당하여..90kg였던
몸무게가 58kg까지 내려갔다..180키에..58kg뼈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든일을 그만두게되었고..
꽤나 돈이 모였다.. 원룸도 잡고..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다.. 비록 유흥주점에 일하는 여자였지만..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여자와 함께 살면서.. 나도 밤에 일하는 무언가를 찾았고..
우연한 기회에 아는 사람에 소개를 받고 호스트빠에 출근을 했다... 첫날에 출근해서 번돈은 16만원..
하루만에 16만원을 벌수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그녀는 주점..난 호빠..이렇게 소위말하는
빠순이 빠돌이커플이 되었고.. 비록 더러운일을 하지만.. 우리는 정말 사랑했다..
내나이 21살..내통장에 천사백만원이라는 큰돈이 모이게 되었다.. 어느날..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시골에 가야한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나도 몇번 만나뵌적이 있었다..
몸이 약하셔서 항상 아프셧다.. 몇일동안 연락이 없다가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백혈병이라고..
골수를 이식받아야 한다고.. 일치되는 골수는 있는데 수술비가 없다고..
단 1초동안의 고민도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내통장에 천이백만원을 빌려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뒤로 그녀와는 아직까지도 연락이 안된다.. 소위말하는공사를 당한것이다..
지금 그녀를 만나면..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하나가 정말 궁금한것이 있다..
그때 당시.. 나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었는지.. 아니면 내돈을 사랑했었는지..
그렇게 내수중에 다시 이백만원의 돈이 있었고.. 다시난 돈을 벌기위해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해겨울 나는 병역특례병으로 공장에 들어갔었고.. 한달에 100만원 안밖인 월급을 받았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잔업이 있으면 항상 특례병들이 해야했다.. 일반인들은 잔업을 피곤하다면서
하지 않는다.. 만만한게 특례병이기때문에 회사측에서는 우리에게 시킨다..그래도 잔업수당은 다준다
그렇게 하루에 거의 14시간정도의 일을했고.. 한달에 82만원씩 적금을 넣었다..
2년 2개월을 해오면서 적금 넣은돈과 퇴직금을 합해 2천 5백만원정도를 모았고.. 그돈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전형적인 B형이기때문에 무언가 하나에 빠지기 시작하면..
미처버리는 성격이다.. 남에게 지는걸 싫어하기때문에..공부또한 정말 미친듯이했다..
그렇게 검정고시 공부 2개월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게되었고.. 대학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외에 내가 원하던 공부를 좀했고.. 관심있는쪽이 펀드쪽인지라..펀드매니저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2005년 3월 신한은행에서 신입사원을 뽑는다기에 용기를 가지고 이력서를 내었고..
다른 대학 졸업자..대학원졸업자를 제치고 59:1이라는 경쟁률속에서 살아남아 취업을 하게되었다..
특례병시절부터..사귀어 왔던..여자 친구와도..어느덧..2년이라는 시간이되었고.. 내년쯤에 결혼준비중이다
이렇게 어린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던게 너무나 큰도움이 되는듯하다..
내 삶에 IF 라는 단어는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좌우명하나를가지고..이렇게 성공을했다..
취업을 하게 됨과 동시에 떳떳한마음으로 어머니를 찾았고.. 어머니는 나를 용서해주셧다..
그렇게 5년동안 혼자 살던 생활이 끝나고 지금은 어머니와 둘이서 함께 정말 행복하게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