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이혼 소송을 신청 했는데(답변서 입니다.)

ggoma1004200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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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구합니다.

먼저 원고가 신혼초에 제가 남의 지갑을 훔쳐서 직장을 짤렸다고 했는데
그것은 분명한 오해 입니다.
그때 삼성전자 협력업체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감시 카메라 시스템이 잘되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지갑을 훔쳤었다면 회사에서 결혼식날 화환도 보내지 않았을 뿐더러
축의금도 많이 주지 않았을 겁니다.
신혼 여행에 다녀와서 회사에서 선물도 주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히 대화를 나누었고 제가 아닌것도 밝혀 졌습니다.
그래서 신혼 여행 후에도 회사 직원들이 저희집에 찾아와 집들이도 했었고
기숙사 직원들도 자주 놀러오고 했었습니다. 저도 결혼 초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은 했지만 지금은 이혼한 작은 처형 남편 서명수 씨의
빚을 가지고 저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와이프의 국민은행 통장은 마이너스 통장 입니다.
여자 크래디 카드라는 사채 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있고 아직도 받고있는 상태입니다.
저와 이혼 한다고 집을 나갔는데 어느 날 와이프의 연습장 속에서
우편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와이프와 믿음이 깨졌습니다.
분명히 2003년 결혼전의 빚이지만 계약 기간이 2008년 입니다.
추가 대출을 더 받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당시 200 만원이라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다툼도 많았고 저도 많이 괴로웠습니다.
아직까지 갚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제가 벌어다준 것으로 갚았을 겁니다
그리고 원고 측에서 1년동안 제가 제대로 취직을 못했다고 하지만 5개월 입니다.
5개월 동안 집에서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 한것은 사실 입니다.
그리고 회사에서 조금 일하고 나온것은 사실 입니다
엠이씨 라는 회사에서 1개월 일하고 월급 가져다 주었고 분명히 말하면 4개월 입니다.
하지만 저도 9월에 그 당시 신설되는 공장 금호 타이어 대기업의 공채 시험에
80명 채용을 했는데 당당히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연수에 들어갔습니다.  연수기간에 의혹이 많았습니다.
연수 기간동안 40명이 해고를 당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해고 당하지 않고 공장 준공식 전날 해고 당했습니다.
10명중에 제가 있더라구요 단지 시험을 못봤다는 이유로 하지만 알다시피 대기업은 1주일에
한번씩 테스트를 합니다. 제가 시험 본날의 문제들도 거의 아는 문제 였습니다.
그러니까 의혹이 있던것은 사실 입니다.
그리고 명절을 맞이했고 저도 많이 스트레스 받은 상태 였습니다.
원고가 제시한 구정날 있었던 문제는 제가 인정 하겠습니다.
그러나 원고의 가족이 무시해서 잠시 제가 실수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붙는데 왜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고 앞으로 뭐 할거냐고 하면서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서는 썼습니다. 그 날은  처갓집 에 실수는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때부터 그러더군요 평소에도 그러는 것 아니냐고
가족중에 저희 가정만 먼 외지에 떨어져 있어서 그것은 모르는 거라고
하시면서 유난히 저를 미워했습니다
원고의 큰 오빠는 제 결혼식 날 축하도 해주지 않을거면서 오히려 술먹고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들어와서 결혼식 도중에 행패를 부렸습니다.
제 친구들과 친척의 도움으로 저지는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구정 이후로 저는 마음을 추수리고
다시 전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력 하다는 말은 인정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살고싶어서 발버둥 쳤습니다. 많이 뛰고 노력을 했습니다.
크라운 제과 영업을 하면서 저도 제 성격과 맞지는 않지만 영업을 했습니다.
한가정에 가장 으로써....
그리고 1년4개월 동안 월급은 모두 원고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월급에서 따로 받는 식비로 한달 용돈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제가 크라운 제과에 다니면서 부모님께 말씀 드려서 원고의 학원 공부도 시켰습니다.
공무원 시험도 1년동안 준비 할수 있도록 학원비는 집에서 대주었고
그리고 공부로 바쁘다면서 가정에도 소홀해 지기 시작 했습니다.
애기도 부모님이 봐주시고 둘만 생활하다 보니까 자정에 많이 소홀했습니다.
아침은 거의 굶었습니다. 그리고 빨래도 거의 빨아주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도 제가 말을 해야만 빨아 주었습니다.
유니폼을 입고 출근을 해야 되는데 어떨땐 그냥 사복을 입고가서 회사에 출근해서
본사에서 누가 내려오는 날이면 혼도 많이 났습니다.
그러나 원고의 시험공부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리고 시험 몇 달 전에는 저녁도 혼자 챙겨 먹으라고 했습니다. 라면 먹는날도 많았습니다.
원고가 공부 때문에 힘들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저녁도 못얻어 먹고 아침도 못 얻어먹고 점심때 먹는 식사가 제 한끼 식사였습니다.
단지 시험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리고 공부 한다고는 하면서 밤에는 맨날 큰처형이 놀러와
저희 집에서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참지 못해서 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에는 안들어 오고 밖에서 놀다가 밤늦게 들어 온적도 많습니다.
밤에는 공부한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고의 처갓집에서 장모님이 술을 하실때면 집에 거의 안들어 오고
술만 마시면 애들을 때린다고 해서 작은 처형이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애들을
못 본다고 하여서 저의 집에 맡긴적도 몇 번이 됩니다.
그럴 때면 처갓집 식구의 거절은 절대 못하고 학원도 안나가면서 까지 애들을 데리고 와서
몇일씩 키우고 그랬습니다. 그때부터 불만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안보고 싶은지 의심도 가기 시작 했구요 그래서 한번씩 얘기하면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저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크라운 제과에 다니면서 서론에 얘기하였다 시피
아직도 갚지 못한 이혼한 작은 처형의 남편 서명수씨의 대금도 남아있지만
큰 처형의 엘지카드 대금 900만원 정도를 보증을 서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원고가 인감 증명서가 쓸곳이 있다고 띄어 달라고 해서 저는 단지 원고를 믿고
해주게 되었고 도장도 원고가 관리했기 때문에 원고를 믿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엘지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서 연체가 되어 있다는 전화를
엘지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액도 조금 부담이 되었고 큰처형 가정이 힘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가 다 갚아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 하루가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원고가 작은 처형에게 제 이름 명의로 대출은 한번 해주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처음엔 거절을 했지만 이번만 대출을 해주면
여자 크래디 카드 빚이 거의 갚았다고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저도 하루 빨리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원고의 큰처형 엘지카드 대금 보증을 서주었기 때문에
그래도 한가지라도 없어 질수 있다는 생각에
제 명의로 현대 캐피탈에서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 불행하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면허도 취소가 되었구요
그리고 제가 타고 다니던 차도 팔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차를 팔수 있었지만
원고의 작은 처형이 돈을 많이 받고 팔아준다고 하여서
저는 제가 아는 사람한테 판다고 하였지만 원고는 반대 했습니다.
그때도 다퉜습니다 회사에 빚이 남아 있어서 차를 팔아서 갚아야 하는 심정은 같았기에
제가 양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휴일에 작은처형과 남자 친구가 와서 차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170만원을 받아 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와서 100만원 밖에 못 받았다고 하면서 작은처형 남자 친구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돈 30만원을 줬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도 믿음이 가지 않았고 서서히 원고에게 믿음을 잃어가기 시작 했습니다.
면허가 취소되어 임시 면허로 회사를 다녔을 때 대우 캐피탈에서 이상한 전화가 왔습니다
마티즈 보증문제 잘 해결 되었다고 하면서
그래고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띄었던 인감증명서와 직장 의료보험 으로
마티즈 보증을 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고와 다퉜습니다. 어차피 한달 남아있는 회사에서 퇴직금도 못받고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면서 저의 자존심을 완전히 짓 밞아 버렸습니다.
하루 두조각 나는 듯이 전 정말 미쳐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죽고 싶도록 미웠고
그때부터 제가 이용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는데 보증을 세운 자체가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백수 생활을 하고 회사도 알아보고 전 정말 부지런히 뛰었습니다.
그러나 제 뜻과 다르게 직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르게 원고가 눈치를 주는 것 이었습니다.
회사가 면접을 볼곳이 없어서 집에서 쉬고 있으면 차라리 큰처형 집에가서
일이나 도와 주라고 그래서 저는 눈치 보기도 그렇고 해서
우유 일을 도와주기 시작 했습니다. 면접 볼곳이 없으면 가서 일도 도와 줬습니다.
그리고 원고의 작은 오빠의 결혼이 있었습니다.
원고 결혼때는 오빠가 50만원 해줬는데 하면서 저에게 눈치를 많이 주더라구요
저도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구요
그렇지만 저희 집에서 축의금 10 만원을 주었고 따로 저희에게 10만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0만원 준비했지만 원고는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 주지했더니 원고는 우리도 못사는 것 뻔히 아는데 많이 줬다고 욕한다고
했습니다 친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그전부터 장인 어른께서 결혼식장 앞에서 봉투 받으라고 하셨고
저도 봉사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원고의 큰오빠와 화해를 했습니다
마음 상한 것 다 잊으라고 하시면서 그리고 원고의 큰오빠가 오래전에 이혼을 했고
12살 어린 사람을 만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이상한일이 일어났습니다. 추석 때 부모님께 얘기해서
저에게 우유를 하자고 하면서 2000만원 투자해서 동업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형이 빚도 많고 힘들어서 너가 도와주면 부담도 줄어들고 지금부터 하는 것은
수입에 반절을 나눠서 갖자고 처음엔 솔깃했습니다 아직까진 그 형님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 가족 모두는 미워 하지만
저도 잘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직장도 없고 원고의 눈치가
이젠 줄어들까 싶어서 저도 고심을 많이 하고 있는 추석 이틀 전날 원고의 가족들이
저희 집에 모였습니다 조금 과하게 마셨습니다. 형님은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해야되기
때문에 그 식구들은 일찍 가고 저와 원고의 큰 오빠와 새 애인과 술을 마셨고
집에 들어와서 원고와 얘기 나누던 도중에 제가 우유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싸우게 되었습니다. 계속 눈치만 주면서 왜 반대를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고 계속 눈치만 주면서 이젠 완전히 원고에게 믿음이 사라 졌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인하여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여기에서 폭발 했습니다
그 얘기들을 하는 순간 큰언니가 와서 원고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집을 왔지만 제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추석 연휴 첫날 형님이 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과 정 때문에 문을 열어주었고
원고의 가족을 위해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도 안잠그고
형님만 믿고 와라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처갓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나 그곳에서 이상한 눈빚을 보았습니다.
이젠 원고의 가족중에 정말 믿을 사람이 없구나 나를 이용했구나 정말 그날 당했던 느낌이
소름이 끼쳤고 등이 오싹 했습니다.
저녁 8시 넘어서 저희 집에 보내 주었습니다. 아무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명절을 맞이했고 오전 9시에 누군가의 전화가 왔고 10시30에
자꾸 처갓집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왠지 찜찜한 명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 간다고 하였습니다. 집에 문도 안 잠그고 왔고
오히려 원고가 좋아했습니다. 언니들이 너 꼴 보기 싫으니까 잘 생각했다고
그 말도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전화 할테니까 전주로 오라고 하였습니다
시댁에서 이상하게 생각 하니까 꼭 와야 된다고 싸주시는 것 가져가야 된다고 하면서
그러나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틀후에 오더군요 원고의 큰오빠와 작은처형 두분다 이혼 경험이 있기 떄문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 갔습니다. 역시나 집은 원고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이혼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거절했고 원고가 도장 관리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협박을 했습니다 원고 살 곳이 없으니까 오늘은 그냥 가고 내일 법원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어차피 도장을 찍었으니까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류를 저보고 쓰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것은 거부했고 원고보고 쓰라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글씨만 안쓰면 된다는 생각이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내일 만나자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안갔습니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괴로워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왜 안 왔냐고 하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순간 난 이 집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구나 난 이용당했구나
그 전날 아무 말도 못했던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내가 보증 서주었던 것 다 갚고 그러면 이혼 해준다고
분명 원고의 큰 오빠도 자신이 달러빚 내서까지 해결해줄테니까 이혼하고
집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갔습니다.
물론 원고도 그런말을 했습니다.
다음날 작은 처형하고 다시 찾아 왔습니다.
문을 안 열어주니 열쇠 집까지 불렀습니다 그리고 문을 뜯고 들어왔습니다.
아직은 계약자가 본인이니 뜯으라고 가출한 원고가 본인의 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형을 불러서 특수 열쇠로 맞췄습니다.
그런데 옷만 챙겨가고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원고가 왜 옷만 챙겨 갔는지 이제 알 것 같고 느낍니다.
결혼하고 전 옷 바지도 두벌 밖에 없습니다.
원고는 공부하면서도 멋을 많이 부렸습니다.
추석 전날도 원고 옷이 소포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저와 아기는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래서 자기를 가꾸는 것은 가져간 상태입니다
제가 원고의 집 사정을 알아서 그래서 몇 번 실수했고 해서 지금까지 참았지만
저에게 그렇게 소환장을 보낸 원고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한 집안이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 겁니다.
이젠 정말 증오스럽습니다.
마지막날 원고의 오빠가 온 날이 생각이 납니다.
다 잊고 새 출발하자고 그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원고는 아직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은 전화를 했습니다. 이지우 생각을 해서 그랬더니 하는 말 다 끝났다고
우리가 이겼다고 이젠 그 의미 그 원고의 정체를 알 것 같습니다.
결혼 때 아무것도 해 오지 않았고 그 원고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저희 가족에게
콩가루 집안이라고 했습니다 이제야 느낍니다 완전히 이용을 당한 것을 느낍니다
솔직히 소환장 오기 전까지는 용서도 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원고는 용서가 필요없는 더러운 사람입니다.
저는 이지우를 사랑해서 제 생애를 다하는 날까지 책임지고 데리고 가지만
원고는 죄책감이 전혀 없습니다. 가족의 개념이 없습니다. 원고의 가족이
지금까지 그렇게 생활을 했기 때문이겠죠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용만 했으니까
처음엔 저는 원고보다 이지우를 생각해서 용서를 하고 싶었습니다.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가 나중에 어떠한 마음을 가질까 한없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이지우 생각해서 용서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환장의 거짓이 많이 쓰이는걸
보면서 용서의 마음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이젠 내가 이지우 다른 가정처럼 키울 수 없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끝까지 책임 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