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서늘하게 식어버린 가을바람이 저의 몸을 한번 휘감고 천천히 지나가더니 어젯밤 추위에 한잠도 못 이루고 오들오들 떨고 있다 따스한 가을햇살이 비추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빨간색 하얀색 그리고 연분홍색 코스모스에게 살며시 다가가 가만히 속삭입니다. “코스모스야!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데 너는 왜? 꾸벅꾸벅 졸고만 있니?” “바람아저씨! 어젯밤 너무 추워 한숨도 자질 못했는데 이제야 햇님이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어 막 잠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는 건가요?”
“그것은 가을이 익어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는 거란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는 내년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까만 코스모스 씨앗을 남겨 두고 꽃잎은 나와 함께 멀리 가을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까만 씨앗을 남겨두면 내년에 다시 찾아올 수 있나요?” “물론이지! 자! 그럼 나와 함께 가을여행을 떠나자꾸나!” “아저씨! 알았어요! 그럼 함께 떠나요!”하며 코스모스 꽃잎은 가을바람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멀리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길가에 피어있던 코스모스 꽃잎은 한잎 두잎 천천히 자취를 감추면서 그 자리에는 까맣고 조그만 꽃씨들만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에 행복이 가득담긴 우편물을 싣고 이제 예쁜 코스모스 대신 까만 꽃씨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도로를 지나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갑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열심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시간은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이제 화당 마을만 우편물을 배달하면 오늘의 일과도 끝이로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당 마을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화당 마을의 위쪽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서서 “할머니! 어디계세요? 등기우편물이 왔네요!”하고 할머니를 부르자 할머니께서는 집 뒤꼍에서 얼른 달려 나오시더니 “뭣이 왔다고?”하며 저를 반기십니다. “광주 병원에서 등기우편물이 왔네요!”하며 월간지 책자 보다 조금 더 크고 두꺼운 광주의 대학병원에서 보내온 등기우편물을 꺼내어 할머니 댁 마루에 내려놓자 “병원에서 왔다고? 그라문 내 사진 왔는 갑구만!”하십니다. “아니 병원에서 사진이 오다니요!
병원에서 언제 사진 촬영하셨어요?” “그 사진 말고 엑스레이 사진 말이여!” “할머니 몸은 건강하신 편인데 건강검진 받으셨어요?” “아니~이! 그것이 아니고 먼자 여름에 더울 때 내가 이 아랫집이서 부침개 했다고 그래서 부침개 한조각하고 수박 한 조각 참외 한 조각을 묵었는디 갑자기 배가 막 아프기 시작하데! 그래도 쪼금 지나고 나문 괜찮하것제! 하고 참고 있는디 배가 더 아퍼! 그래서 안 되겠기에 동네 차로 종합병원으로 갔는디 아! 병원에를 간께 나는 배가 아퍼 죽것는디 이리 돌려놓고 사진 찍고 저리 돌려놓고
사진 찍고 사진만 찍어쌓네! 그래서 의사 선생님한테 ‘아니 배가 아파 죽것는디 뭔 사진만 그라고 찍어쌓소? 사진만 찍지 말고 배 좀 안 아프게 해주란 말이요!’했드니 뭔 주사를 한대 놔 주데! 그라고 난께 쪼금 괜찮해지드만! 그란디 다시 엠블란슨가 뭔 차에 타라고 그라데! 그래서 인자 우리 집에 보낼란갑다! 그라고는 차에 타서 잠이 들었는디 잠을 깨서 본께 광주 대학병원이드만 우리 아들들이 병원에 전화해서 나를 광주로 보내라 그랬다고 그란디 광주 병원에서도 이리 눕혀놓고 사진 찍고 저리 눕혀놓고 사진 찍고
맨 사진만 찍어 쌓드만 ‘아무 이상 없응께 그냥 집으로 가씨요!’그라드만 그래서 집으로 왔는디 나중에 알고 본께 여기서 사진 찍고 저기서 사진 찍고 한 것이 돈이 5십만 원도 더 나왔다고 그라네 음식 먹고 배탈 좀 났는디 무단한 사진 만 찍고 돈 5십 만원을 받어가 불드랑께!” “그 덕분에 할머니 건강검진 한번하신 편이네요!” “아이고! 건강검진이고 뭣이고 돈이 5십만 원이 없어져 부렇는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껏이여! 그라고 쓸데없는 사진이나 보내주고!” “할머니! 그래도 이 사진은 잘 보관하세요!
나중에 혹시 할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이 사진을 병원에 제출하면 그때 병원에서 이 사진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참고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병원에서 할머니께 사진을 보내드리는 거예요!” “참말로 그래~에? 나는 아무 필요도 없는 사진을 뭣하러 보낸고? 그라고 생각했는디 아저씨 말을 들어본께 그것이 아니네!” “병원에서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사진을 보내드리지 필요가 없는 사진이라면 뭣 하러 보내드리겠어요?” “그래~잉! 나는 그란지도 몰랐제~에! 그라문 사진을 으따 잘 놔둬야 쓰것구만 잉?”
“예! 그렇게 하세요!”하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아니! 뭔 이야기를 그라고 한없이 하고 있어? 사람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고?”하시며 아랫집 할머니께서 마당으로 들어오시더니 “아저씨! 미안하제만 이것 좀 우체국에 갖다 바쳐줘!”하시며 전기요금 고지서를 저에게 내미십니다. “할머니 전기요금이 3천 2백 원이 나왔네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저에게 내미시며 “그라문 잔돈이 있는가 몰르것네!” 하셔서 “할머니! 지금 저에게 잔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내일 잔돈하고 영수증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면 안 될까요?”하였더니 “그라문 그래~에!”하십니다. 그런데 전기요금 고지서를 자세히 보았더니 납기 마감일이 매월 15일까지 입니다. “할머니! 그런데요! 전기요금 납부 마감일이 15일 내일까지 인데 제가 지금 우체국에 들어가도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없거든요! 어떻게 하지요?” “그라문 전기요금을 내일 바치문 안되야?” “내일은 토요일이라 근무를 하지 않거든요!” “왜? 토요일 날 근무를 안 해?” “요즘은 주 5일 근무제가 되어서 토요일에도 근무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음주 월요일 날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있는데 월요일 날 전기요금을 납부하면 가산세라 붙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아니! 그라문 안되제~에! 아저씨가 지금 우체국에 가서 바쳐도 가산세가 붙어?” “할머니! 지금 시간이 오후 여섯시가 다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부지런히 사무실에 들어가도 이미 사무실에서는 공과금 마감을 해 버리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있겠어요?” “그라문 벌금은 얼마를 내야 되야?” “백 오십 원 정도 되요! 할머니!” “그래~에! 그라문 어짜껏이여! 그렇게 해서라도 전기세를 내야제!”
“제가 오늘 전기요금을 납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아이고! 그런 걱정은 말어!”하시면서도 할머니께서는 자꾸 오늘 전기요금을 납부할 수 없다는 저의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입니다. 시골마을의 주민들께서 공과금 납부를 저에게 부탁하실 때면 늘 느끼는 일이지만 공과금 납기 마감일 날 저에게 부탁을 하시기 때문에 당일 공과금을 납부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고는 합니다. 미리 공과금을 챙겨놓으셨다가 납기일 하루 전 쯤 저에게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 사진은 목화 꽃이랍니다. 저의 어린시절 목화 꽃을 따서 입에 넣으면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는지 매우 귀한 목화꽃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기요금의 이자
전기요금의 벌금
* 사진은 목화 꽃이랍니다. 저의 어린시절 목화 꽃을 따서 입에 넣으면 향긋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는지 매우 귀한 목화꽃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