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까지도 작약의 앞에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던 비형랑은, 한영을 보자마자 미꾸라지가 헤엄치듯 노파의 팔을 빠져나가서는, 한영 쪽으로 한걸음에 다가섰다. 순한 양의 모습을 한 그의 온 얼굴 가득히 반가움이 넘실대고 있었다.
“위소저~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이오? 하마터면 제가 큰 변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비형랑은 갑작스레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작약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원망의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작약은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저 뻣뻣하게 굳어오는 뒷목을 붙잡을 뿐.
“저, 저 저놈이!”
비형랑이 한 발짝 다가서자, 한영은 멈칫 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저리 비켜!”
“위소저, 걱정 마시오. 좋아요. 이름부터 하나씩 그렇게 시작하면 되오!”
“뭐가 이름부터 시작이란 말이냐!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하하하. 위소저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어졌구려. 내가 다 이해합니다!”
뿌직-
이마에 깊은 골이 패인 한영. 고운 아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그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횡- 하니 그를 지나쳐서 곁에선 도화의 손을 잡아끌며
홍루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화는 끌려가면서도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한영과 비형랑을 번갈아보는 중이었다.
“아니, 내가 저기 서있는 노파 때문에 큰 변을 당하게 생겼는데, 우리 사이에 그냥 모른척하기입니까? 위소저도 조심 하세요~ 저런 늙은이와는 맞서지 않는 것이 좋아요! 허나 괜찮습니다. 이제는 여기 이 비형랑만 믿으시오! 하하하하!”
“흥!!”
비형랑은 호기롭게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하는 중이었다. 기녀들을 살살 구슬린 결과 한영과 작은 도령의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었던 그는, 작약이 이들과 같은 일행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다스러운 기녀들의 이목은 온통 아름다운 소공자와 여 무사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늙은 노파는 관심 밖 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해 한영에게 환심을 사고,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 작약의 손아귀에서도 벗어나려 했다.
“뭬, 뭬라...! 늙, 늙은이? 이 놈이! 정녕!”
저쪽에 떨어져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작약이, 뒷목을 붙잡은 채 비틀거리며 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비형랑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애써 무시하려는 듯 그는 한영과 도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끝을 흐렸다.
“자자, 위소저 그리고 도령, 이제 우리는 자리를 옮깁시다. 하하. 소저가 홍루각에 머무르고 있다지요? 일단은 그리로......”
“흥! 무시하세요. 작약어른! 들어가자 도화야!”
‘정말로 얼굴에 철판을 두른 인간이구나! 어떻게 알고 또 찾아왔지?’
한영은 비형랑의 말을 썽둥 자르고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잠시 동안 비형랑은 멍하니 서있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찹차름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약어른! 들어가자 도화야.-...... -작.약.어.른!」
점차 상황이 짐작되어 가면서, 비형랑- 그의 얼굴은 갈수록 복잡하고 미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수십 가지의 표정이 한꺼번에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작약어른과 위소저가 함께한다라..?! 아아! 나는 그러면....... ’
비형랑 그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심경이 복잡한 동안, 이미 한영과 작약 그리고 도화일행은 저만치 앞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애타게 찾던 위소저를 이대로 놓칠 것인가?!
그때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개가 끼어있던 머릿속이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아진 것 같았다.
‘하하. 재미있겠어. 좋아! 인연(因緣)이라....... 그래, 피할 수 없으면 부딪힌다!’
허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들의 모습은 저만치 사라진 뒤다. 그제야 비형랑은 허둥지둥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뒤쫓으며 외쳤다.
“위, 위소저~! 같이 갑시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고 했지요? 하하하!
작약할머니~ 스승님의 얼굴을 보셔서도 절 거두어 주셔야지요!! - 작약어른!!”
‘거머리 같은 인간!’
멀리서 뒤따라오는 비형랑의 외침소리를 들은 한영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작약은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는 약간 의외라는 듯이 한영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인연의 실타래에 얽매이기 싫어 스승과 문파도 버리고 도망친 녀석이 바로 저 비형랑이다. 그런 그가, 지금 옆의 한영을 스스로 쫒아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곁에 오기도 꺼려하는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눈치 채고도 말이다. 거기에 스승의 이름까지 들먹이고 있다.
작약은 고개를 들어 해지는 노을 녘을 바라보았다. 저쪽 너머 먼 곳에 곤륜산이 있을 터였다.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작약은 그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린 아직 멀었어. 하늘의 뜻을 짐작조차 하기 힘드니. 어쩌면 자네가 원하는 바를 내가 이루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네, 검선.’
비형랑의 사부이자 자신의 오랜 지기인 검선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작약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홍루각을 기웃거리고 있는 귀엽게 생긴 작은 여인은 바로 소군각의 소소였다.
“홍루야!!! 도련님~ 무사나리~!”
‘아니 다들 어디들 가신건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전각을 둘러 봐도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제 밤 소군에게 매섭게 회초리를 맞은 소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여기 홍루각으로 달려왔다. 퉁퉁 부은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스윽스윽 어루만지며, 그녀는 전각의 툇마루에 털썩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대로 앉은 채로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소군아씨가 그리 귀이 여기시는 비형랑 나리의 행적을 놓쳤으니, 자신은 벌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형랑 나리는 정말 못 말린다니까! 괜히 나만 야단맞았잖아~! 피이.......!’
그때였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낯익은 인영이 소소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와락 뛰어가며 외쳤다. 그리고 소소는 홍루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홍루야! 어디 갔었어?? 한참을 기다렸잖아~!!! 도련님은?”
“으응......”
홍루는 대답을 잇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소소가 홍루를 잡고 흔들자, 까만 눈망울에 그렁하던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소소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셨어? 떠나신 거야? 정말 그래?!”
소소는 홍루를 놓아두고 다시 전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깨끗이 비워서 있었다. 도련님의 짐이 있던 자리하며, 무사님의 활과 화살이 놓여져 있던 자리, 그리고 신선님의 흰 보따리들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이 바보 소소야! 왜 아까는 보지 못했니! 정말로 떠나신 모양이구나! 으힉! 큰일이닷! 어서 소군아씨께 알려야해!’
“홍루야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께....! 쉬어~”
“.......”
다시 마당으로 나온 소소는 홍루에게 다가와서 몇 마디 말을 남긴 후, 재빨리 소군각 쪽으로 멀어져갔다. 허나 지금의 홍루는 소소에게 신경을 쓸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오늘 아침 길을 떠나신 은인들로 꽉 차있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이른 새벽.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노모와 해루 그리고 홍루.
한영은 해루와 홍루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손과 목소리는 초가을 새벽의 추위를 녹여줄 만큼 훈훈하고 따뜻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한영의 한마디가, 해루와 홍루의 영혼 깊숙이 각인되었다.
‘미워하는 상대가 생기면, 그 독이 너의 간부터 상하게 하는 법이야. 내 친우가 복수에 눈이 먼 날 보고 해준 말이란다.’
‘독이 나를 먼저 상하게...해요?’
‘그래. 힘을 길러. 그 대상을 부서트릴 수 있을 만큼. 허나 그럴 수 없다면,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 알겠지? 그게 이기는 거야. 초원의 들풀들을 봐. 사람과 짐승들이 그렇게 밟아대도 새로 싹이 돋아나니까. 밟힌 풀들이 더 뿌리가 튼튼한 법이야.’
‘흐흑........!’
‘자자 어서 가자꾸나. 쯧쯧.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이야.’
마지막 말을 남긴 은인들은 그렇게 길을 떠나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홍루와 해루 그리고 노모는, 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나서야 초로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해루는 노모와 함께 누루로 갔고, 홍루는 자신의 거처인 솔원의 홍루각으로 방금 돌아온 터였다. 멀어져 가는 소소를 뒤로하고 홍루각내원 안으로 들어선 홍루는 텅 빈 방안을 보자, 그제야 그들이 떠난 것이 한층 더 실감이 났다.
‘제발 무사하시길.....!’
바닥에 스르륵 무너진 홍루는, 두 손을 꼬옥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뽀얀 뺨을 타고 굵은 눈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뚝뚝-
홍루의 눈물방울이 내원의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그녀의 붉은 장삼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뭐야? 그들이 떠나버렸다는 말이냐?”
“네, 네에 아씨. 제가 해가 뜨자마자 가 보았지만, 벌써 다들 떠나시고 아니 계셨어요.
홍루가 막 배웅을 하고 돌아 온 것으로 보아, 오늘 새벽 일찍 길을 나서신 것 같아요!”
“이, 이런...!”
소군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소소는 잔뜩 움츠린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죄송해요! 아씨... 소녀가 너무 늦게 찾아가서.. 어제 밤부터 지켜보았어야 했는데!”
“그래 어디로 간 것 같더냐?”
“아차! 우앙...죄송해요 아씨...! 깜박하고 그걸 물어 보는 것을 잊었어요! 이 바보!”
소소는 진심으로 자신의 덤벙거림을 탓하며, 스스로 제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런 소소를 바라보는 소군의 표정이 착 가라 앉았다. 그녀는 온몸으로 차가운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됐다. 주위의 눈을 피해 일찍 떠나버렸다면, 네가 물어도 행선지를 가르쳐주지 않을 테지.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다.”
“......?!”
“아마도, 분명 비형랑 나리는 그들을 따라갔을 거야.”
소군이 턱짓으로 소소를 부르며 일어섰다. 눈치 빠른 소소는 주인의 명이 닿자 잽싸게 구석 옷장 함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은사 위에 푸른 모란이 잔뜩 수놓아져 있는, 옷장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장삼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왔다.
왼팔을 소매에 끼워 넣고는, 앞쪽 장삼자락을 여미며 노리개로 앞을 고정시키면서도, 소군은 묵묵히 답이 없었다. 이제는 소소도 그런 소군의 곁에서,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로 고정시킨 후 옷맵시를 마무리 지을 뿐이다. 벽에 걸린 족자의 미인도 속 주인공이 그림 밖으로 막 튀어 나온 듯, 청초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소군의 옷에 잔뜩 수놓인 푸른 모란보다도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화중왕(花中王)은 단연 소군이다. 하지만 지금 그 꽃 중의 왕은 잔뜩 노기를 띤 눈으로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형! 날 만만하게 보아선 안돼. 꼭 찾아낼 테야. 당신은 반드시 내 시야 안에 있어야해.’
꽉 쥔 가녀린 소군의 하얀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소소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이 깊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초가을 이른 새벽.
도화일행은 이슬을 차며 산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옷깃을 흠뻑 적시는 이슬은, 밤새 하늘에서 온 것인지, 땅에서 솟은 것인지, 일행의 발걸음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흙과 풀과 나무와 돌이 향기로운 숨을 내쉬며, 온 대지가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단 한명만 제외하고는.
“왜 저 놈이랑 같이 가야하는 거죠? 네에? 말씀 좀 해보세요!”
“클클클.... 내 벗의 아끼는 제자이니, 또한 내 아이도 되는 셈이 아니냐.”
“그러니까요! 그분의 아끼는 제자라니, 그 검선이라는 분께 보내시라니까요!”
“클클클클.....”
한영은 아까 전부터 혼자서 펄쩍 펄쩍 뛰고 있었다. 저 찰거머리 같은 비형랑은 어제 저녁부터 같이 머물더니, 기어이 오늘 떠나는 길까지 함께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작약어른도 그냥 내버려 두는 눈치다. 저기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있는 비형랑을 보고 있자니 한영의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벌써 어떻게 도화를 구워삶아 놓았는지, 자신의 귀여운 동생마저도 눈이 헤-에 풀어진, 채 비형랑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제, 제길....!”
“그만 노여움을 거두고, 길을 가자꾸나. 쯧쯧. 어차피 가야 할 험한 길. 돕는 손 하나가 더 는다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그래도, 그렇지. 저 녀석과 함께하면 앞으로 일이 더 꼬이기만 할 뿐일 거라고요. 틀림없어요!”
“사람의 일을 어찌 알겠누? 힘든 일이야. 우리만으로는 어림없어. 눈앞의 적은 공동파와 하북팽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마도 더 거대한 검은 힘이 버티고 있을 게다. 비형랑 저놈은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실력은 충분히 알아. 아마 큰 도움이 될게다. 끌끌..”
“.......”
이제 한영은 체념을 하였는지 아니면 지쳐 버린 건지,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작약을 따라 걸을 뿐이다. 길을 떠난 지 딱 두시진 동안의 일이었다.
저 앞에서 한영이 혼자 방방거리는 모습과, 대수롭지 않게 조용히 미소 짓는 작약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봐오던 도화는 옆에선 비형랑에게 물었다.
“형~ 혹시 누나한테 크게 잘못한 일이 있어요?”
짐짓 앞의 한영과 작약의 대화를 조마조마하게 듣고 있던 비형랑은, 한영이 체념한 듯 더 이상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장난기 가득한 익살스러운 소년의 표정으로 도화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화야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남녀사이의 일은 오묘한 것 이란다. 크크”
“오묘한 것?”
호기심 많은 눈을 반짝이며, 도화의 귀가 쫑긋 거렸다. 호오~남녀 사이의 일이라.
그런 도화를 바라보는 비형랑은 은근히 뜸을 들이며, 소년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해쓱해졌다. 반면에 훤칠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비형랑의 뺨은 분홍빛으로 수줍게 물들었다. 한숨 돌린 도화가 갑자기 버럭 외쳤다.
“누나가 형을 좋아해요? 누나는 나도 좋아.....! 풉!”
“아,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그래, 만물은 다 서로 좋아해야하는 거야. 그, 그래! 하하하!”
비형랑이 황급하게 도화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도화의 작은 몸이 휘청거렸다. 왠지 기분 나쁜 예감에, 조용히 앞서 가고 있던 한영이 홱- 하고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비형랑을 잠시 동안 매섭게 노려보았다.
잘생기고 훤칠한 그의 이마에서 긴장한 땀방울 하나가, 짙은 그의 눈썹으로 뚝 흘러내렸다.
비형랑은 손사래를 저어대며 급히 한영을 보고 말을 이었다.
“하하...하. 위, 위소저. 사랑의 눈빛이 너무 과 하오~!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하하”
“흥! 머저리!”
“킥킥킥.......”
옆에선 도화도 대충 상황을 눈치 챘는지 비형랑을 보며 킥킥거렸다. 남녀간의 일이라.
분명히 오묘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듯하다.
도화와 한영 그리고 비형랑을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짓던 작약은 품안에서 누런 봉투를 하나 꺼내어 들었다. 떠나기 직전 왕국주가 달려와 조용히 작약에게 내민 서찰이다. 화란부인이 전하는 것이라 했다. 작약은 조심스럽게 서찰을 열어 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한영도 어느새 작약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어라? 서찰이네요? 아-아! 아침에 왕국주가 건네주던 것이로군요?”
“흐음... 그렇지.”
“어서 개봉(開封)해 보아요!”
“하아-하아-! 무엇을 개봉해요? 할머니? 응~ 누나?”
뒤쪽에서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던 도화와 비형랑도, 앞쪽의 작약과 한영이 갑자기 서자, 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흰 꼬리를 휘날리던 흰둥이도 도화의 옆에 믿음직스럽게 섰다. 작약은 천천히 서찰을 펼쳤다. 힘 있고 장중한 필체로 간략하게 적힌, 화란부인의 글이었다.
「죄송합니다. 가시는 걸음에 청할 말씀이 있습니다. 제 그림자가 며칠째 하북성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묵운 이라는 아이입니다. 은밀히 찾아봐 주십시오. 거래조건이 추가 되었으니 저도 그에 상응할 만큼 준비를 하도록 하지요. 꼭 부탁.... 드립니다.」
“......묵운? 검은 구름이라는 뜻인가?”
“쯧쯧. 하오문의 문주가 귀하게 여기고 우리에게 부탁까지 할 사람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일 터인데... 분명히 하북성에서 무슨 변고를 당한 게야!”
“그렇다면 그만큼 지금 거기가 위험한 곳이란 말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작약어른?!”
“끄응...... 그러한 모양이다. 끌끌끌”
“할머니, 그림자가 돌아오지 않다니요? 그림자....?”
도화가 검은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며 작약을 향해 물었다. 소년의 곁에 선 비형랑은, 가만히 대화를 들으며 도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불쑥 입을 열었다.
“그림자는 비유하는 말일거야. 화란부인의 그림자라면, 살수....정도 되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고 눈에 뛰지는 않지만, 늘 함께하는 그림자처럼..... 그동안 초로의 많은 눈들이 알아보지도 못한 채, 부인의 바로 측근에 있었다면, 특급살수정도는 될 테지.”
“살수라면,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니야? 대놓고 덤벼드는 무림인도 아니고, 숨어서 은밀하게 일을 치르는 살수라면. 그런 그가 꼬리를 잡혔다는 것은?”
한영은 처음으로 담담하게 비형랑의 말을 받아, 대화를 이었다.
비형랑의 눈동자에 감동의 물빛이 잠시 어렸다. 그 눈빛을 알아본 한영은 고개를 홱 꺾으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도도한 턱을 높이 들었다.
“흥!”
“끌끌끌.... 아마도 훨씬 더 대단한 존재를 건드렸다는 말이 되겠군. 흐음......”
작약은 나지막이 신음성을 흘렸다. 도화의 표정도 납빛으로 굳었고, 쌀쌀하게 찬바람이 부는 한영의 표정에서도 걱정이 묻어나왔다. 오직 분위기 파악 못하는 비형랑만이 빙긋이 웃으며 한영의 뒤로 한 발짝 다가섰다.
“위소저, 이제 마음이 조금 풀린 게요? 흐흐흐”
은근한 목소리.
귓가와 뒷목을 간질이는 비형랑의 비음석인 후끈한 목소리에, 순간 한영은 소름이 끼쳐 화들짝 놀라 뛰었다. 그녀가 막 뭐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타앗-!
“으악~ 아이구!!! 머리야! 작약 할머니, 그래서야 어디 제 머리가 깨지겠습니까! 헉헉!”
“곧 죽어도 입만 살았구나! 이놈아! 클클클”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비형랑이 저만치에서 머리통을 잡고 뒹굴고 있었다. 흰둥이도 백아도 수백 번 겪어 보았던 작약의 필살기! 바로 - ‘대갈 타격 신공’!
데구루루 구르는 비형랑의 눈앞에는 노란 별들이 반짝이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킥킥킥......”
“흐, 흐음!”
쪼르르 뛰어가 한영의 손을 잡은 도화도, 그녀에게 매달리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의 어이없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영도 화난표정과 웃음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약은 서슴지 않고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도화와 한영이 재빠르게 따랐다.
“쯧쯧……. 귀한 생명이 더 다치기 전에 어서 서두르자꾸나. 가자!”
“네에~ 할머니.”
“네, 이 속도로 간다면 오늘은 길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서둘러요. 잘 하면 저녁 전에 마을을 만날 수도 있어요!”
“오냐~ 출발하자.”
은행잎 내음새 따라, 한 뼘씩 쌓여 바스락거리는 가을 낙엽 길을 밟으며, 일행은 오솔길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혹이 생긴 머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던 비형랑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조금만 올라가면 곧 제법 넓고 편편한 산기슭에 이를 참이었다.
“그래, 어찌 되었다고? 해루 그년이 지금 어디에 있어?”
“예, 주인님. 그 기녀는 지금 초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힘겹게 뒤를 밟았지요. 초로에서도 쉬쉬하는 눈치인 듯, 누루라는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 이런! 이 노옴!”
거대한 도를 등에 짊어진 채로 엎드린 거구의 남자가, 앞에 선 사내의 호통소리에 흠칫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퍼억-
엎으려 있는 거구의 남자를 한발로 걷어찬 사내는, 노기를 가득 얹은 목소리로 호통 쳤다.
“정녕 네놈이 실수를 한 것이 아니냐! 아직 그년의 배속에 든 아이가 살아 있는 게지!? 그 마단(魔丹)을 그년의 아가리에 집어넣은 것이 틀림이 없다고, 지금도 우길 참이냐!”
“하, 하오나 소인은 분명히 마단(魔丹)을 먹이고 진언을 외웠습니다!”
퍼억- 퍼억- 퍼버벅-
챙그렁-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어지는 사내의 발길질에, 부복하고 있던 사내가 매고 있던 거대한 도가 바닥에 나뒹굴며 둔탁한 쇳소리를 울렸다. 인정사정없는 발길질에 사내의 얼굴 여기저기에서 핏물이 튀었다. 이빨이 부러진 채 고개를 들어 올리는 큰 덩치의 사내-
눈썹이 매우 짙고, 눈이 쭉 찢어진 그는 다름 아닌 해루를 욕보였던 사내들 셋 중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그다!
투욱-
투두둑-
그의 앞니 두세 개가 진득한 핏물과 침이 뒤범벅이 된 채로 바닥위로 툭 떨어졌다.
“뭐야? 끝까지 네가 옳다면.... 감히 그분의 권위에 .... 도전하는 것이냐! 위대한 힘 앞의 버러지 같은 놈!”
“.....헉!”
뱃속부터 끓어오르는 스산한 저음의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사내의 입을 빌려나왔다.
늘씬한 키의 나무랄 때 없는 미남,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얇은 입술- 그는 다름 아닌 서문탁이다!
순식간에 그의 동공이 화악-축소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점이 된 그 동공이 정확하게 엎드린 사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엎드린 사내는 마치 뱀 앞에서 몸이 굳은 개구리처럼 눈물만 줄줄 흘릴 뿐이다. 극심한 공포는 이미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서문탁은 오른손으로 힘껏 사내의 굵은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케엑-켁켁!”
“크크크...죽어 볼 테냐? 죽음의 그림자가 네 이마를 타고 목으로 흘러내려 오는구나..!크크”
“크윽- 꾸르륵-”
공포로 인해 정신을 놓은 사내는 그저 부들부들 떨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에서 비린내 나는 누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사내를 벌레 보듯 하던 서문탁은 흥미를 잃었는지 갑자기 사내를 휙-내팽개쳤다.
철퍼덕-
엄청난 힘이었다. 한참을 날아가서 벽에 고꾸라진 사내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더니, 재빨리 다시 그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사내의 목에는 시퍼렇게 선명한 손가락자국이 남아있었다. 거만하게 사내를 내려다보는 서문탁의 눈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으흐흑!”
“크크 좋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번엔 반드시 그년을 잡아서 내 발 앞에 데려와. 어떠한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다. 생생하게 산 채로 데리고 와.”
“예, 예에. 주인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사내는 엎드린 양팔로 자신이 더럽힌 바닥의 핏자국을 스윽 닦고는 비틀거리며 방밖을 빠져 나갔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도(刀)도 잊지 않고 챙겨들었다. 사내의 모습이 방안에서 사라지고 나자 서문탁의 얼굴에는 한줄기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모든 창을 검은 모시로 가려 놓은 그의 방안은, 해질녘이 되자 더욱 음산함을 더하고 있었다.
‘만약 저놈이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에잇. 그런 생각은 말자. 그럴 리가 없으니. 쯧쯧.
해루년 때문에 거사가 내일로 늦추어 지겠구나! 혹여나 그 분이 노하기라도 한다면! 허억!’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서문탁은 그분의 분노를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려웠다. 그나마 다행으로 이틀 전에 우연히 거둔 수확으로, 운좋게 의식이 자꾸 늦어지는 그분의 분노를 늦출 수 있었다. 수확물을 생각하는 서문탁의 눈동자는 이미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재인양 꼽혀있던 책 중의 하나를 옆으로 누이고 나타난 검은 통로로 사라져 들어갔다.
“으으........!”
“잘 버티고 있는 군? 아직 정신을 놓지 않은 것을 보니. 크크크”
암흑이 공간을 집어 삼킨 방안.
중앙에 희미한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약한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불그스름하게 주위를 밝히고 있는 중이었다.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온 공간은 꽤 넓은 방안이었다. 서문탁은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중앙의 촛불로 천천히 다가갔다. 곧 그의 눈이 어둠에 적응되자 방안의 물건들이 어렴풋이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내부는 지옥의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잘려진 손발과 내장, 그리고 장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자욱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서문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 숨을 들이켰다. 촛불 옆의 큰 협탁 위에는 어둠에 갇힌 한 인영이 꼼짝 안고 누워있었다.
“그 분께 온전히 네 몸을 받쳐라. 크크크 선택받은 행운아여!”
“개....소리...마..라”
“크하하 좋은 정신력이군. 과연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자. 흐흐흐”
“죽.....여..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을 거다. 그 분께 선택받은 너의 운명이지. 이미 네 몸은 마신의 기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으니까- 크크크”
“.........”
화악-
서문탁은 조심스럽게 옆의 초의 심지에도 불을 붙였다. 주변이 두 배로 밝아지자, 어둠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누워있는 인영의 전신이 환히 드러났다.
쿠쿵-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누워있었다. 그의 온몸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발끝과 손끝에서부터 시작되어져 올라온 주술문은 끈이지 않고 사타구니를 거쳐 배꼽을 지나서 심장부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깨까지 목과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사내를 내려다보던 서문탁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중얼 중얼 주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양 중지를 맞댄 사내의 손가락에 희미한 검은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했다.
“크아아아-! 으으읍!”
“킬킬킬......!”
그러자 놀랍게도 사내의 몸에 새겨진 암흑의 주술문들이 작은 벌레들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주술문들이 살아 움직일 때마다 누워있는 사내는 엄청난 고통을 받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발끝부터 사내의 몸에는 불룩 불룩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녹아내리는 원래의 피부는 문드러져 벗겨지고, 그 아래로부터 시커먼 새로운 제 2의 피부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내는 지독한 사기로 인해 그의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도 대단한 듯 용케도 의기를 잃지 않고 꾹 버티고 있었다. 일체의 살려달라는 구걸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음을 참으려 할 때마다 꾹 깨물었던 듯, 그의 입술은 이미 너덜너덜 해져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푸지지직-
피부가 불에 지져지는 듯, 검게 썩어가는 그의 육신은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크크크.... 어제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부터는 꽤 힘들 거야. 이제 신선한 새로운 주술문의 재료를 곧 구해 올 것이거든.. 크크크. 그러면 네 얼굴에도 마문(魔紋)을 새겨 넣는 거지. 네 머리가 타들어 가면, 네 영혼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장소도 잃게 될 거다. 킥킥킥......”
사내가 뉘여 져 있던 협탁 옆에 앉은 서문탁은 옆에 놓인 작은 탁자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붓을 집어 들었다.
누워있던 사내는 서문탁에 의해 고개가 돌려진 채로, 눈앞의 작은 탁자에 놓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틀 전에 이것을 보았고, 그때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낸 대가로, 그는 지금 이렇게 누워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인간이....아니다!’
그의 눈에 비친 그것은 사내의 큰 주먹만한 크기로, 거무칙칙하게 말라비틀어진 작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 얼굴과 손과 발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은 태아(胎兒)!
서문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태아의 배를 갈라서 고정시키고는, 그 피로 자신의 몸에 암흑의 주술을 새겨 넣고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작은 생명이었던 만큼, 그가 하루에 새겨 넣을 수 있는 마문(魔紋)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했다. 지난 이틀간 자신이 세었던 수만 해도 벌써 셋의 태아가 희생이 되었다.
“크크크크.........”
서문탁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누워있던 사내의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도화』 (25)
-나를 부르는 소리(2)-
“비형랑,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어라? 위소저~ 제 이름까지 기억 해주고 있었군요. 역시- 감동입니다!”
방금까지도 작약의 앞에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던 비형랑은, 한영을 보자마자 미꾸라지가 헤엄치듯 노파의 팔을 빠져나가서는, 한영 쪽으로 한걸음에 다가섰다. 순한 양의 모습을 한 그의 온 얼굴 가득히 반가움이 넘실대고 있었다.
“위소저~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이오? 하마터면 제가 큰 변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비형랑은 갑작스레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작약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원망의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작약은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저 뻣뻣하게 굳어오는 뒷목을 붙잡을 뿐.
“저, 저 저놈이!”
비형랑이 한 발짝 다가서자, 한영은 멈칫 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저리 비켜!”
“위소저, 걱정 마시오. 좋아요. 이름부터 하나씩 그렇게 시작하면 되오!”
“뭐가 이름부터 시작이란 말이냐!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하하하. 위소저 부끄러워 얼굴까지 붉어졌구려. 내가 다 이해합니다!”
뿌직-
이마에 깊은 골이 패인 한영. 고운 아미가 잔뜩 찌푸려졌다.
그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횡- 하니 그를 지나쳐서 곁에선 도화의 손을 잡아끌며
홍루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화는 끌려가면서도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한영과 비형랑을 번갈아보는 중이었다.
“아니, 내가 저기 서있는 노파 때문에 큰 변을 당하게 생겼는데, 우리 사이에 그냥 모른척하기입니까? 위소저도 조심 하세요~ 저런 늙은이와는 맞서지 않는 것이 좋아요! 허나 괜찮습니다. 이제는 여기 이 비형랑만 믿으시오! 하하하하!”
“흥!!”
비형랑은 호기롭게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하는 중이었다. 기녀들을 살살 구슬린 결과 한영과 작은 도령의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었던 그는, 작약이 이들과 같은 일행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다스러운 기녀들의 이목은 온통 아름다운 소공자와 여 무사에게만 집중되어 있었고, 늙은 노파는 관심 밖 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해 한영에게 환심을 사고,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듯 작약의 손아귀에서도 벗어나려 했다.
“뭬, 뭬라...! 늙, 늙은이? 이 놈이! 정녕!”
저쪽에 떨어져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작약이, 뒷목을 붙잡은 채 비틀거리며 노성을 질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비형랑은 흠칫 몸을 떨었지만, 애써 무시하려는 듯 그는 한영과 도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끝을 흐렸다.
“자자, 위소저 그리고 도령, 이제 우리는 자리를 옮깁시다. 하하. 소저가 홍루각에 머무르고 있다지요? 일단은 그리로......”
“흥! 무시하세요. 작약어른! 들어가자 도화야!”
‘정말로 얼굴에 철판을 두른 인간이구나! 어떻게 알고 또 찾아왔지?’
한영은 비형랑의 말을 썽둥 자르고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잠시 동안 비형랑은 멍하니 서있었다. 계속해서 그녀의 찹차름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약어른! 들어가자 도화야.-...... -작.약.어.른!」
점차 상황이 짐작되어 가면서, 비형랑- 그의 얼굴은 갈수록 복잡하고 미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수십 가지의 표정이 한꺼번에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어떻게 이런 인연이....... 작약어른과 위소저가 함께한다라..?! 아아! 나는 그러면....... ’
비형랑 그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심경이 복잡한 동안, 이미 한영과 작약 그리고 도화일행은 저만치 앞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애타게 찾던 위소저를 이대로 놓칠 것인가?!
그때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개가 끼어있던 머릿속이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아진 것 같았다.
‘하하. 재미있겠어. 좋아! 인연(因緣)이라....... 그래, 피할 수 없으면 부딪힌다!’
허나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들의 모습은 저만치 사라진 뒤다. 그제야 비형랑은 허둥지둥 일행이 사라진 방향을 뒤쫓으며 외쳤다.
“위, 위소저~! 같이 갑시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놓치지 않겠다고 했지요? 하하하!
작약할머니~ 스승님의 얼굴을 보셔서도 절 거두어 주셔야지요!! - 작약어른!!”
‘거머리 같은 인간!’
멀리서 뒤따라오는 비형랑의 외침소리를 들은 한영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작약은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는 약간 의외라는 듯이 한영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인연의 실타래에 얽매이기 싫어 스승과 문파도 버리고 도망친 녀석이 바로 저 비형랑이다. 그런 그가, 지금 옆의 한영을 스스로 쫒아오고 있었다.
더군다나 곁에 오기도 꺼려하는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눈치 채고도 말이다. 거기에 스승의 이름까지 들먹이고 있다.
작약은 고개를 들어 해지는 노을 녘을 바라보았다. 저쪽 너머 먼 곳에 곤륜산이 있을 터였다.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작약은 그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린 아직 멀었어. 하늘의 뜻을 짐작조차 하기 힘드니. 어쩌면 자네가 원하는 바를 내가 이루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네, 검선.’
비형랑의 사부이자 자신의 오랜 지기인 검선을 떠올리며 중얼거리는 작약은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홍루각을 기웃거리고 있는 귀엽게 생긴 작은 여인은 바로 소군각의 소소였다.
“홍루야!!! 도련님~ 무사나리~!”
‘아니 다들 어디들 가신건가?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전각을 둘러 봐도 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어제 밤 소군에게 매섭게 회초리를 맞은 소소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여기 홍루각으로 달려왔다. 퉁퉁 부은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스윽스윽 어루만지며, 그녀는 전각의 툇마루에 털썩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대로 앉은 채로 기다렸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소군아씨가 그리 귀이 여기시는 비형랑 나리의 행적을 놓쳤으니, 자신은 벌을 받아도 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형랑 나리는 정말 못 말린다니까! 괜히 나만 야단맞았잖아~! 피이.......!’
그때였다. 저만치서 다가오는 낯익은 인영이 소소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와락 뛰어가며 외쳤다. 그리고 소소는 홍루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홍루야! 어디 갔었어?? 한참을 기다렸잖아~!!! 도련님은?”
“으응......”
홍루는 대답을 잇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미소만 지었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소소가 홍루를 잡고 흔들자, 까만 눈망울에 그렁하던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소소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셨어? 떠나신 거야? 정말 그래?!”
소소는 홍루를 놓아두고 다시 전각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깨끗이 비워서 있었다. 도련님의 짐이 있던 자리하며, 무사님의 활과 화살이 놓여져 있던 자리, 그리고 신선님의 흰 보따리들까지! 모조리 사라지고 없었다.
‘이 바보 소소야! 왜 아까는 보지 못했니! 정말로 떠나신 모양이구나! 으힉! 큰일이닷! 어서 소군아씨께 알려야해!’
“홍루야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께....! 쉬어~”
“.......”
다시 마당으로 나온 소소는 홍루에게 다가와서 몇 마디 말을 남긴 후, 재빨리 소군각 쪽으로 멀어져갔다. 허나 지금의 홍루는 소소에게 신경을 쓸 마음의 빈자리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오늘 아침 길을 떠나신 은인들로 꽉 차있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이른 새벽.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노모와 해루 그리고 홍루.
한영은 해루와 홍루의 손을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손과 목소리는 초가을 새벽의 추위를 녹여줄 만큼 훈훈하고 따뜻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한영의 한마디가, 해루와 홍루의 영혼 깊숙이 각인되었다.
‘미워하는 상대가 생기면, 그 독이 너의 간부터 상하게 하는 법이야. 내 친우가 복수에 눈이 먼 날 보고 해준 말이란다.’
‘독이 나를 먼저 상하게...해요?’
‘그래. 힘을 길러. 그 대상을 부서트릴 수 있을 만큼. 허나 그럴 수 없다면,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 알겠지? 그게 이기는 거야. 초원의 들풀들을 봐. 사람과 짐승들이 그렇게 밟아대도 새로 싹이 돋아나니까. 밟힌 풀들이 더 뿌리가 튼튼한 법이야.’
‘흐흑........!’
‘자자 어서 가자꾸나. 쯧쯧.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법이야.’
마지막 말을 남긴 은인들은 그렇게 길을 떠나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홍루와 해루 그리고 노모는, 해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나서야 초로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해루는 노모와 함께 누루로 갔고, 홍루는 자신의 거처인 솔원의 홍루각으로 방금 돌아온 터였다. 멀어져 가는 소소를 뒤로하고 홍루각내원 안으로 들어선 홍루는 텅 빈 방안을 보자, 그제야 그들이 떠난 것이 한층 더 실감이 났다.
‘제발 무사하시길.....!’
바닥에 스르륵 무너진 홍루는, 두 손을 꼬옥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뽀얀 뺨을 타고 굵은 눈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뚝뚝-
홍루의 눈물방울이 내원의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그녀의 붉은 장삼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뭐야? 그들이 떠나버렸다는 말이냐?”
“네, 네에 아씨. 제가 해가 뜨자마자 가 보았지만, 벌써 다들 떠나시고 아니 계셨어요.
홍루가 막 배웅을 하고 돌아 온 것으로 보아, 오늘 새벽 일찍 길을 나서신 것 같아요!”
“이, 이런...!”
소군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예상한 소소는 잔뜩 움츠린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죄송해요! 아씨... 소녀가 너무 늦게 찾아가서.. 어제 밤부터 지켜보았어야 했는데!”
“그래 어디로 간 것 같더냐?”
“아차! 우앙...죄송해요 아씨...! 깜박하고 그걸 물어 보는 것을 잊었어요! 이 바보!”
소소는 진심으로 자신의 덤벙거림을 탓하며, 스스로 제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런 소소를 바라보는 소군의 표정이 착 가라 앉았다. 그녀는 온몸으로 차가운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됐다. 주위의 눈을 피해 일찍 떠나버렸다면, 네가 물어도 행선지를 가르쳐주지 않을 테지. 내가 직접 알아봐야겠다.”
“......?!”
“아마도, 분명 비형랑 나리는 그들을 따라갔을 거야.”
소군이 턱짓으로 소소를 부르며 일어섰다. 눈치 빠른 소소는 주인의 명이 닿자 잽싸게 구석 옷장 함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은사 위에 푸른 모란이 잔뜩 수놓아져 있는, 옷장 안에서도 가장 화려한 장삼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왔다.
촤르르르-
속이 훤히 내비치는 소군의 투명한 은빛 장삼이 잠자리의 날개처럼 쭈욱 펴졌다. 소소는 그녀의 옆에서, 풍성하고도 화려한 바깥장삼을 조심스럽게 소군에게 덧입히며 물었다.
“아씨, 혹여.... 화란 부인을 뵈러 가시려고요?”
“그래. 그 분이라면, 이곳 초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계실 리가 없지.”
“그래도... 저, 저기.....이번에 가시면 약속을 어기시는 것이 될 텐데요, 아씨?”
소소가 울상을 지으며, 더듬더듬 제 생각을 조심스럽게 소군에게 말했다.
왼팔을 소매에 끼워 넣고는, 앞쪽 장삼자락을 여미며 노리개로 앞을 고정시키면서도, 소군은 묵묵히 답이 없었다. 이제는 소소도 그런 소군의 곁에서, 조용히 그녀의 머리를 틀어 올려 비녀로 고정시킨 후 옷맵시를 마무리 지을 뿐이다. 벽에 걸린 족자의 미인도 속 주인공이 그림 밖으로 막 튀어 나온 듯, 청초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소군의 옷에 잔뜩 수놓인 푸른 모란보다도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화중왕(花中王)은 단연 소군이다. 하지만 지금 그 꽃 중의 왕은 잔뜩 노기를 띤 눈으로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형! 날 만만하게 보아선 안돼. 꼭 찾아낼 테야. 당신은 반드시 내 시야 안에 있어야해.’
꽉 쥔 가녀린 소군의 하얀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소소의 눈동자에는 안타까움이 깊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초가을 이른 새벽.
도화일행은 이슬을 차며 산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옷깃을 흠뻑 적시는 이슬은, 밤새 하늘에서 온 것인지, 땅에서 솟은 것인지, 일행의 발걸음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흙과 풀과 나무와 돌이 향기로운 숨을 내쉬며, 온 대지가 생명의 숨결을 내뿜고 있었다.
단 한명만 제외하고는.
“왜 저 놈이랑 같이 가야하는 거죠? 네에? 말씀 좀 해보세요!”
“클클클.... 내 벗의 아끼는 제자이니, 또한 내 아이도 되는 셈이 아니냐.”
“그러니까요! 그분의 아끼는 제자라니, 그 검선이라는 분께 보내시라니까요!”
“클클클클.....”
한영은 아까 전부터 혼자서 펄쩍 펄쩍 뛰고 있었다. 저 찰거머리 같은 비형랑은 어제 저녁부터 같이 머물더니, 기어이 오늘 떠나는 길까지 함께하려는 모양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작약어른도 그냥 내버려 두는 눈치다. 저기 능글맞은 표정으로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고 있는 비형랑을 보고 있자니 한영의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것만 같았다. 벌써 어떻게 도화를 구워삶아 놓았는지, 자신의 귀여운 동생마저도 눈이 헤-에 풀어진, 채 비형랑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제, 제길....!”
“그만 노여움을 거두고, 길을 가자꾸나. 쯧쯧. 어차피 가야 할 험한 길. 돕는 손 하나가 더 는다면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그래도, 그렇지. 저 녀석과 함께하면 앞으로 일이 더 꼬이기만 할 뿐일 거라고요. 틀림없어요!”
“사람의 일을 어찌 알겠누? 힘든 일이야. 우리만으로는 어림없어. 눈앞의 적은 공동파와 하북팽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마도 더 거대한 검은 힘이 버티고 있을 게다. 비형랑 저놈은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으니, 실력은 충분히 알아. 아마 큰 도움이 될게다. 끌끌..”
“.......”
이제 한영은 체념을 하였는지 아니면 지쳐 버린 건지, 풀이 죽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작약을 따라 걸을 뿐이다. 길을 떠난 지 딱 두시진 동안의 일이었다.
저 앞에서 한영이 혼자 방방거리는 모습과, 대수롭지 않게 조용히 미소 짓는 작약의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봐오던 도화는 옆에선 비형랑에게 물었다.
“형~ 혹시 누나한테 크게 잘못한 일이 있어요?”
짐짓 앞의 한영과 작약의 대화를 조마조마하게 듣고 있던 비형랑은, 한영이 체념한 듯 더 이상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도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장난기 가득한 익살스러운 소년의 표정으로 도화를 보며 중얼거렸다.
“도화야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남녀사이의 일은 오묘한 것 이란다. 크크”
“오묘한 것?”
호기심 많은 눈을 반짝이며, 도화의 귀가 쫑긋 거렸다. 호오~남녀 사이의 일이라.
그런 도화를 바라보는 비형랑은 은근히 뜸을 들이며, 소년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해쓱해졌다. 반면에 훤칠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비형랑의 뺨은 분홍빛으로 수줍게 물들었다. 한숨 돌린 도화가 갑자기 버럭 외쳤다.
“누나가 형을 좋아해요? 누나는 나도 좋아.....! 풉!”
“아, 아니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그래, 만물은 다 서로 좋아해야하는 거야. 그, 그래! 하하하!”
비형랑이 황급하게 도화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목나무에 매달린 매미처럼 도화의 작은 몸이 휘청거렸다. 왠지 기분 나쁜 예감에, 조용히 앞서 가고 있던 한영이 홱- 하고 뒤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비형랑을 잠시 동안 매섭게 노려보았다.
잘생기고 훤칠한 그의 이마에서 긴장한 땀방울 하나가, 짙은 그의 눈썹으로 뚝 흘러내렸다.
비형랑은 손사래를 저어대며 급히 한영을 보고 말을 이었다.
“하하...하. 위, 위소저. 사랑의 눈빛이 너무 과 하오~!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구려. 하하”
“흥! 머저리!”
“킥킥킥.......”
옆에선 도화도 대충 상황을 눈치 챘는지 비형랑을 보며 킥킥거렸다. 남녀간의 일이라.
분명히 오묘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듯하다.
도화와 한영 그리고 비형랑을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짓던 작약은 품안에서 누런 봉투를 하나 꺼내어 들었다. 떠나기 직전 왕국주가 달려와 조용히 작약에게 내민 서찰이다. 화란부인이 전하는 것이라 했다. 작약은 조심스럽게 서찰을 열어 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한영도 어느새 작약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어라? 서찰이네요? 아-아! 아침에 왕국주가 건네주던 것이로군요?”
“흐음... 그렇지.”
“어서 개봉(開封)해 보아요!”
“하아-하아-! 무엇을 개봉해요? 할머니? 응~ 누나?”
뒤쪽에서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던 도화와 비형랑도, 앞쪽의 작약과 한영이 갑자기 서자, 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흰 꼬리를 휘날리던 흰둥이도 도화의 옆에 믿음직스럽게 섰다. 작약은 천천히 서찰을 펼쳤다. 힘 있고 장중한 필체로 간략하게 적힌, 화란부인의 글이었다.
「죄송합니다. 가시는 걸음에 청할 말씀이 있습니다. 제 그림자가 며칠째 하북성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묵운 이라는 아이입니다. 은밀히 찾아봐 주십시오. 거래조건이 추가 되었으니 저도 그에 상응할 만큼 준비를 하도록 하지요. 꼭 부탁.... 드립니다.」
“......묵운? 검은 구름이라는 뜻인가?”
“쯧쯧. 하오문의 문주가 귀하게 여기고 우리에게 부탁까지 할 사람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일 터인데... 분명히 하북성에서 무슨 변고를 당한 게야!”
“그렇다면 그만큼 지금 거기가 위험한 곳이란 말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작약어른?!”
“끄응...... 그러한 모양이다. 끌끌끌”
“할머니, 그림자가 돌아오지 않다니요? 그림자....?”
도화가 검은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며 작약을 향해 물었다. 소년의 곁에 선 비형랑은, 가만히 대화를 들으며 도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가,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불쑥 입을 열었다.
“그림자는 비유하는 말일거야. 화란부인의 그림자라면, 살수....정도 되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고 눈에 뛰지는 않지만, 늘 함께하는 그림자처럼..... 그동안 초로의 많은 눈들이 알아보지도 못한 채, 부인의 바로 측근에 있었다면, 특급살수정도는 될 테지.”
“살수라면,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니야? 대놓고 덤벼드는 무림인도 아니고, 숨어서 은밀하게 일을 치르는 살수라면. 그런 그가 꼬리를 잡혔다는 것은?”
한영은 처음으로 담담하게 비형랑의 말을 받아, 대화를 이었다.
비형랑의 눈동자에 감동의 물빛이 잠시 어렸다. 그 눈빛을 알아본 한영은 고개를 홱 꺾으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도도한 턱을 높이 들었다.
“흥!”
“끌끌끌.... 아마도 훨씬 더 대단한 존재를 건드렸다는 말이 되겠군. 흐음......”
작약은 나지막이 신음성을 흘렸다. 도화의 표정도 납빛으로 굳었고, 쌀쌀하게 찬바람이 부는 한영의 표정에서도 걱정이 묻어나왔다. 오직 분위기 파악 못하는 비형랑만이 빙긋이 웃으며 한영의 뒤로 한 발짝 다가섰다.
“위소저, 이제 마음이 조금 풀린 게요? 흐흐흐”
은근한 목소리.
귓가와 뒷목을 간질이는 비형랑의 비음석인 후끈한 목소리에, 순간 한영은 소름이 끼쳐 화들짝 놀라 뛰었다. 그녀가 막 뭐라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타앗-!
“으악~ 아이구!!! 머리야! 작약 할머니, 그래서야 어디 제 머리가 깨지겠습니까! 헉헉!”
“곧 죽어도 입만 살았구나! 이놈아! 클클클”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비형랑이 저만치에서 머리통을 잡고 뒹굴고 있었다. 흰둥이도 백아도 수백 번 겪어 보았던 작약의 필살기! 바로 - ‘대갈 타격 신공’!
데구루루 구르는 비형랑의 눈앞에는 노란 별들이 반짝이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킥킥킥......”
“흐, 흐음!”
쪼르르 뛰어가 한영의 손을 잡은 도화도, 그녀에게 매달리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의 어이없는 모습을 바라보던 한영도 화난표정과 웃음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약은 서슴지 않고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도화와 한영이 재빠르게 따랐다.
“쯧쯧……. 귀한 생명이 더 다치기 전에 어서 서두르자꾸나. 가자!”
“네에~ 할머니.”
“네, 이 속도로 간다면 오늘은 길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서둘러요. 잘 하면 저녁 전에 마을을 만날 수도 있어요!”
“오냐~ 출발하자.”
은행잎 내음새 따라, 한 뼘씩 쌓여 바스락거리는 가을 낙엽 길을 밟으며, 일행은 오솔길 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혹이 생긴 머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던 비형랑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조금만 올라가면 곧 제법 넓고 편편한 산기슭에 이를 참이었다.
“그래, 어찌 되었다고? 해루 그년이 지금 어디에 있어?”
“예, 주인님. 그 기녀는 지금 초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힘겹게 뒤를 밟았지요. 초로에서도 쉬쉬하는 눈치인 듯, 누루라는 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이, 이런! 이 노옴!”
거대한 도를 등에 짊어진 채로 엎드린 거구의 남자가, 앞에 선 사내의 호통소리에 흠칫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퍼억-
엎으려 있는 거구의 남자를 한발로 걷어찬 사내는, 노기를 가득 얹은 목소리로 호통 쳤다.
“정녕 네놈이 실수를 한 것이 아니냐! 아직 그년의 배속에 든 아이가 살아 있는 게지!? 그 마단(魔丹)을 그년의 아가리에 집어넣은 것이 틀림이 없다고, 지금도 우길 참이냐!”
“하, 하오나 소인은 분명히 마단(魔丹)을 먹이고 진언을 외웠습니다!”
퍼억- 퍼억- 퍼버벅-
챙그렁-
분함을 참지 못하고 이어지는 사내의 발길질에, 부복하고 있던 사내가 매고 있던 거대한 도가 바닥에 나뒹굴며 둔탁한 쇳소리를 울렸다. 인정사정없는 발길질에 사내의 얼굴 여기저기에서 핏물이 튀었다. 이빨이 부러진 채 고개를 들어 올리는 큰 덩치의 사내-
눈썹이 매우 짙고, 눈이 쭉 찢어진 그는 다름 아닌 해루를 욕보였던 사내들 셋 중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그다!
투욱-
투두둑-
그의 앞니 두세 개가 진득한 핏물과 침이 뒤범벅이 된 채로 바닥위로 툭 떨어졌다.
“뭐야? 끝까지 네가 옳다면.... 감히 그분의 권위에 .... 도전하는 것이냐! 위대한 힘 앞의 버러지 같은 놈!”
“.....헉!”
뱃속부터 끓어오르는 스산한 저음의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사내의 입을 빌려나왔다.
늘씬한 키의 나무랄 때 없는 미남,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얇은 입술- 그는 다름 아닌 서문탁이다!
순식간에 그의 동공이 화악-축소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점이 된 그 동공이 정확하게 엎드린 사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엎드린 사내는 마치 뱀 앞에서 몸이 굳은 개구리처럼 눈물만 줄줄 흘릴 뿐이다. 극심한 공포는 이미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서문탁은 오른손으로 힘껏 사내의 굵은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케엑-켁켁!”
“크크크...죽어 볼 테냐? 죽음의 그림자가 네 이마를 타고 목으로 흘러내려 오는구나..!크크”
“크윽- 꾸르륵-”
공포로 인해 정신을 놓은 사내는 그저 부들부들 떨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에서 비린내 나는 누런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사내를 벌레 보듯 하던 서문탁은 흥미를 잃었는지 갑자기 사내를 휙-내팽개쳤다.
철퍼덕-
엄청난 힘이었다. 한참을 날아가서 벽에 고꾸라진 사내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더니, 재빨리 다시 그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사내의 목에는 시퍼렇게 선명한 손가락자국이 남아있었다. 거만하게 사내를 내려다보는 서문탁의 눈은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으흐흑!”
“크크 좋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번엔 반드시 그년을 잡아서 내 발 앞에 데려와. 어떠한 조치를 취할 필요도 없다. 생생하게 산 채로 데리고 와.”
“예, 예에. 주인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사내는 엎드린 양팔로 자신이 더럽힌 바닥의 핏자국을 스윽 닦고는 비틀거리며 방밖을 빠져 나갔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도(刀)도 잊지 않고 챙겨들었다. 사내의 모습이 방안에서 사라지고 나자 서문탁의 얼굴에는 한줄기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모든 창을 검은 모시로 가려 놓은 그의 방안은, 해질녘이 되자 더욱 음산함을 더하고 있었다.
‘만약 저놈이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에잇. 그런 생각은 말자. 그럴 리가 없으니. 쯧쯧.
해루년 때문에 거사가 내일로 늦추어 지겠구나! 혹여나 그 분이 노하기라도 한다면! 허억!’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서문탁은 그분의 분노를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두려웠다. 그나마 다행으로 이틀 전에 우연히 거둔 수확으로, 운좋게 의식이 자꾸 늦어지는 그분의 분노를 늦출 수 있었다. 수확물을 생각하는 서문탁의 눈동자는 이미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빠르게 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재인양 꼽혀있던 책 중의 하나를 옆으로 누이고 나타난 검은 통로로 사라져 들어갔다.
“으으........!”
“잘 버티고 있는 군? 아직 정신을 놓지 않은 것을 보니. 크크크”
암흑이 공간을 집어 삼킨 방안.
중앙에 희미한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약한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불그스름하게 주위를 밝히고 있는 중이었다. 비밀통로 안으로 들어온 공간은 꽤 넓은 방안이었다. 서문탁은 징그러운 웃음을 흘리며 중앙의 촛불로 천천히 다가갔다. 곧 그의 눈이 어둠에 적응되자 방안의 물건들이 어렴풋이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내부는 지옥의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잘려진 손발과 내장, 그리고 장기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자욱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서문탁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큰 숨을 들이켰다. 촛불 옆의 큰 협탁 위에는 어둠에 갇힌 한 인영이 꼼짝 안고 누워있었다.
“그 분께 온전히 네 몸을 받쳐라. 크크크 선택받은 행운아여!”
“개....소리...마..라”
“크하하 좋은 정신력이군. 과연 얼마나 버틸지 두고 보자. 흐흐흐”
“죽.....여..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을 거다. 그 분께 선택받은 너의 운명이지. 이미 네 몸은 마신의 기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으니까- 크크크”
“.........”
화악-
서문탁은 조심스럽게 옆의 초의 심지에도 불을 붙였다. 주변이 두 배로 밝아지자, 어둠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누워있는 인영의 전신이 환히 드러났다.
쿠쿵-
건장한 체격의 사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로 누워있었다. 그의 온몸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발끝과 손끝에서부터 시작되어져 올라온 주술문은 끈이지 않고 사타구니를 거쳐 배꼽을 지나서 심장부에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깨까지 목과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사내를 내려다보던 서문탁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중얼 중얼 주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양 중지를 맞댄 사내의 손가락에 희미한 검은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했다.
“크아아아-! 으으읍!”
“킬킬킬......!”
그러자 놀랍게도 사내의 몸에 새겨진 암흑의 주술문들이 작은 벌레들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주술문들이 살아 움직일 때마다 누워있는 사내는 엄청난 고통을 받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발끝부터 사내의 몸에는 불룩 불룩 기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녹아내리는 원래의 피부는 문드러져 벗겨지고, 그 아래로부터 시커먼 새로운 제 2의 피부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내는 지독한 사기로 인해 그의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도 대단한 듯 용케도 의기를 잃지 않고 꾹 버티고 있었다. 일체의 살려달라는 구걸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음을 참으려 할 때마다 꾹 깨물었던 듯, 그의 입술은 이미 너덜너덜 해져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푸지지직-
피부가 불에 지져지는 듯, 검게 썩어가는 그의 육신은 뿌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크크크.... 어제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부터는 꽤 힘들 거야. 이제 신선한 새로운 주술문의 재료를 곧 구해 올 것이거든.. 크크크. 그러면 네 얼굴에도 마문(魔紋)을 새겨 넣는 거지. 네 머리가 타들어 가면, 네 영혼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장소도 잃게 될 거다. 킥킥킥......”
사내가 뉘여 져 있던 협탁 옆에 앉은 서문탁은 옆에 놓인 작은 탁자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붓을 집어 들었다.
누워있던 사내는 서문탁에 의해 고개가 돌려진 채로, 눈앞의 작은 탁자에 놓인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틀 전에 이것을 보았고, 그때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낸 대가로, 그는 지금 이렇게 누워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은 인간이....아니다!’
그의 눈에 비친 그것은 사내의 큰 주먹만한 크기로, 거무칙칙하게 말라비틀어진 작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 얼굴과 손과 발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은 태아(胎兒)!
서문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태아의 배를 갈라서 고정시키고는, 그 피로 자신의 몸에 암흑의 주술을 새겨 넣고 있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뱃속의 작은 생명이었던 만큼, 그가 하루에 새겨 넣을 수 있는 마문(魔紋)의 양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했다. 지난 이틀간 자신이 세었던 수만 해도 벌써 셋의 태아가 희생이 되었다.
“크크크크.........”
서문탁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누워있던 사내의 뺨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군!’
묵운은 그렇게 지하의 비밀공간에서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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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지요~ 죄송합니다.
다들 잘 계셨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큰 일이 있어서... 힘든 한 주였답니다.
숙부님께서 돌아가셨어요.
40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당하신 억울한 죽음이라...식구들모두 곱절로 눈물을 흘려야 했던것 같아요. 아직 어린 사촌동생이 상주라고 유골단지를 들고 나오는데 ...
정말로 가슴이 무너지더라구요.
시간이 약이겠지요.
세월의 힘은 모든 걸 잊게 하니까요.
기억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감정은 정화시켜줄 테니까요.
납골당에서 철모르게 장난치고 노는 아직 어린 조카들을 지켜보며 만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한쪽에선 삶의 끝에 이르고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생명이 커가는 걸 보고 있자니 세상이란 참 묘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오늘도 어제도 출근해서 매일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서글프고 마음이 아픕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멍하니 하늘을 보면 눈물이 나기도 하구요.(^_^)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가셨을꺼에요.
제가 매일 간절히 기도 그리고 있거든요.
날이 정말 춥지요? 겨울이 빼곰히 내다보고 있네요.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고마우신 님들
감기조심하세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