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74. 23살 남편,,22살 아내,,, (571) 영원히(ajax-00) 2005/10/19 06:05 조회 : 67833 추천 : 25 오늘의 톡이라,, 처음엔 당황했으나 많은분들의 답변을 읽으며 많은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자랑스레 쓴 글이 아닙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저 자신도 지극히 잘 알고 있습니다. 못나디 못난 제가 과분한 여자를 만나 호강은 시켜주지 못할망정 고생만 죽도록 시키고... 제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또한 못되고 이기적이란것 잘 알고 있지요. 허나, 그녀에게 속죄의 마음과 굳은 다짐의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꼭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 동안의 몸고생 마음고생, 한평생 다 갚겠다는 그런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채찍질입니다. 그동안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저의 무능함, 저의 잘못들을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지요... 그녀의 소중함과 함께 말입니다. 처음엔 저 역시 그녀를 놔주는것이 그녀를 위한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더군요. 네, 저의 이기심 때문이었지요. 그녀없인 단 하루도 못 버틸것 같은... 허나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그녀를 붙잡기만 한채 뭐 하나 그녀에게 해주는것없이 지켜보며 그저 그녀에게 사랑한단 말밖에 해줄수 밖에 없던 저 자신을 보며, 생각하고 다짐했죠. 그녀를 놓아 주는것만이,더 좋은사람에게로 보내는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그게 꼭 사랑은 아니라고... 어찌보면 저의 합리화적인 생각일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그랬지요. 다 망가진 몸, 지친 마음... 그런 그녀를 어찌 다른사람에게 보낼수 있겠습니까. 저와의 과거로 인해 그녀가 불행해 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행복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로인해 그렇게 변해버린,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그녀, 제 힘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에게 떳떳한 남자가, 남편이 되고 싶었던거죠. 저 하나만 바라본 그녀의 믿음 헛되고 하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제 마음조차 그녀인생에는 이기적인게 되어버릴수도 있는거겠지요.. 병원에 왜 빨리 데려가지 못했냐는 많은분들... 님들이 걱정하시고 속 터져 하시는 만큼, 그 당시의 저는 더 했습니다.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병원에도 못데려가고, 찜질만 해줘야 했던 제 마음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 역시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만큼 아팠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지요. 돈 한푼없이 병원에가서 당장 수술은, 당장 입원은 어떻게 한답니까. 진작 가불하고 싶었지만 저희 부모님이 저지른 가불건으로 쉽게 가불도 할수 없었던 그당시의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심했던 제 마음도 이해해주는 분이 계셨으면 하는 제욕심입니다.. 그리고 장모님더러 이상하다 하시는분도 많으신데, 장모님은 당신의 반대로 딸자식이 가슴아파하는것을 바라지 않으셨던 것 뿐입니다. 장모님이 바라시는 사윗감에 못미쳐도 한참을 못미치는 저, 그저 당신 딸의 선택을 믿는다 하시며 저를 받아들이신것 뿐입니다... 그리고 혼자 속앓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게 다 제 잘못인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어낸 이야기, 소설 아닙니다... 제가 고3에 만나 시작되었던 사랑, 5년여간의 일들... 정말 꿈같고 정말 힘들었던, 그녀에겐 악몽같았던 시간들이었지만 저와 그녀의 행복한 미래의 밑거름이 될 시간이었다 생각하렵니다. 꼭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래서 고생만 한 그녀, 한평생 호강시켜 줄겁니다.. 따끔하고도 귀한 고견들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녕하세요, 간혹 휴가때마다 글만 보다가 이렇게 올리게 되었네요. 전 군인입니다^^ 다음달에 부사관학교 입교하는 예비하사지요ㅎ 22살말 늦은나이에 군입대를 한 덕분에,, 결국은 부사관 지원을 했답니다. 지금 제뒤에는, 어여쁜 그녀가 쌔근쌔근 곤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세상 단 한명뿐인, 소중한 제 와이프지요...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너무나도 착찹하고 아픕니다. 저로 인해 변해가는, 변해버린 그녀,,, 여전히 사랑스럽고 여전히 가냘픈, 애달픈 그녀이지만요. 어디다가 제 마음 터놓을곳 없어 그냥 막연히 주저리주저리 끄적여봅니다.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질듯하네요... 5년여 가량의 세월에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와의 일들..... 와이프와의 첫만남,,, 아직도 생생하군요. 그때의 그 느낌.. 표현하자면 " 빛 " 이었습니다. 고3 어린나이에, 그녀를 본 첫 느낌은 환한 빛이었죠. 그저 막연한 느낌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바꿔줄 여자, 내 여자,,, 후배녀석의 친구였던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제게로 성큼 다가왔더랬습니다. 그당시 저는, 집안사정으로, 철없는 부모님때문에 대학진학도 포기하여야 했고, 유일한 제 인생의 낙이었던 제 꿈이었던 농구생활도 그만두어야했기에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던 때였지요. 그런 제게 와이프의 미소는, 그 웃음은 구세주와 같았습니다. 그 웃는모습만 봐도, 그 웃음이 저를 향한것이 아니라해도, 힘이 절로나는 그런 밝음... 그녀 주위는 그녀로 인해 항상 환했고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죠. 얼굴도 이쁜편이라 인기도 많았고, 공부며 운동이며 정말 못하는게 없는 만능재주꾼인 그녀,, 무엇보다 그녀의 알수없는 매력,, 그 환한 밝음은 주위사람들까지 밝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 그녀와 전 어울리지 않았지요... 그냥 막연히 지켜만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웠던건, 그 많은남자와 많은 이성친구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생활은 깨끗했고 애인도 없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로인해 더욱 매력적이고 더욱 인기가 많았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저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떳떳하고픈 그런 생각에, 마음에도 없었던 기술을 하나 배웠고, 차츰차츰 하다보니 그 기술에 재미를 느껴 열심히 했었죠. 고3이었던 그녀, 자주 볼순 없었지만 그래도 간혹 만나 밥 한끼라도 사줄수 있다는것이, 영화 한편 보여줄수 있다는것이 너무나도 좋았지요. 대학생활하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지만, 제 집안사정에 너무도 암울했지만, 그녀에게 조그만것이라도 해줄수 있다는것에 그녀의 미소를 얼굴을 볼수있다는것에 정말 열심히 일했드랬죠. 힘들때면 그녀얼굴 떠올리면서, 그 밝은 웃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뎠습니다. 그 결과 실력도 월급도 제 또래들에 비해선 과할정도로 올랐죠. 그녀 덕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수능일이 지나고, 궁금한 마음에 갖은핑계를 대서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었죠. 수능도 그럭저럭 쳤더랬죠. 하지만, 그녀 얼굴은, 와이프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웃고 있어도 걱정거리가 있다는것쯤은 항상 그녀만 바라본 저로선 쉽게 알수 있었지요.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바다만큼 사람을 감성적이고, 또 솔직하게 만드는곳은 없더군요. 무슨일인진 모르지만, 그녀를 쉬게 하고싶었죠. 딱히 멋드러진곳엔 데려가지 못해도 바닷바람의 쐬이게 하고싶어 제가 즐겨찾던 제 동네쪽의 작은 바닷가로 데려갔지요. 아무말이 없던, 그저 저 멀리 바다만 바라보던 와이프..... 제가 왜 그랬을까요. 말없는 그녀를 옆에두고 저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했었드랬죠. 제 아픈 기억들, 집안 이야기들, 이루지못한 못다펼친 꿈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제 속마음을 다 내보였던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 바보처럼 그녀를 위로해주고자 갔던 바닷가에서 제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거죠. 저희 부모님나이. 이제 40대초반이십니다. 42살... 사고쳐서 저를 낳았드랩니다. 저만 보면 그러지요. 너만 아니었음 너만 안 낳았으면... 제가 자신들의 인생에 족쇄가 되어 인생 망쳤다고 저를 원망하십니다. 젊은나이에 아직 창창한데, 철없이 시작한 준비없이 꾸려진 가정이라 그런지 항상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빚만 지고 있지요. 저희 어머님만 해도 한달에 200~300은 거뜬히 법니다. 아버님은 랜덤이시고요. 그런데도 빚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중상위급 집안사람처럼 펑펑 써제끼니 말입니다. 결국은 제 대학진학도 못하고, 제가 번 월급까지 눈독 들이는터라 월급 뺏기지 않는것에 급급하죠. 왜 빚을 갚을 생각 않하냐 했더니, 아버님 앞으로 보험을 어마어마하게 들어놨는데, 그 보험금 타는날 다 갚을거랍니다... 아버님이 알콜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좋아하셔서 고혈압에 협심증에, 간부종에 종합병원이거든요.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 애정이 그리웠고,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밝은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바보처럼 그녀앞에서 눈물을 보였지요... 말없이 있던 그녀는 갑작스레 놀이동산에 가자 하더군요. 예의 그 밝은 웃음으로. 모르는척 제 아픔을 감싸주고 받아준듯한 느낌에 너무나도 고마웠고, 그로인해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은, 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답니다... 그날 이후, 그녀와 전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도 힘든일 아픈일, 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고, 밝게만 보이던 그녀에게도 많은 아픔과, 갖은 상처들, 집안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그럼에도 항상 자신감있고 해맑고도 밝은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강인함에 감탄했고 더욱더 빠져들었습니다. 속물근성에 빠져사는 많은 여자들과는 차원이 틀렸으니까요. 그렇게 저희 사랑은 조금씩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겐 너무나도 과분한 여자였기에 행여나 깨어질까 행여나 사라질까, 마음을 졸이면서도 너무도 행복했지요. 그리고 그녀의 대학교 입학... 불행이었을까 행운이었을까. 저희 교제사실을 알고 계시던 그녀의 어머님이 절 부르셨드랬죠. 여느 부모님이었다면 저희집안같은 저 같은 별볼일 없는 놈과의 교제를 죽어라 반대하실텐데,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리도 밝게 그리고 바르게 자랄수 있었던건 어머님의 힘이었던입니다. 오직 제 마음, 볼것없는 저 하나만 믿고, 그리고 자신의 딸인 그녀의 선택을 믿는다 하시며, 저에게 웃어주셨습니다. 그날로 그녀의 어머님은 저의 어머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녀를 저에게 맡기셨죠... 집안일로 한동안 그녀 혼자 둘수밖에 없다며, 절 믿는다고.. 간곡히 부탁하셨지요... 그로부터 한달여쯤 후... 그녀는 저의 이모댁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혼하신 이모에겐 3살 5살의 어린 두딸뿐이라, 이모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셨죠. 그리고 저도 이모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거죠. 같이 살게 된 그녀...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죠. 정말 그녀처럼 완벽한 여자는 처음 봤습니다. 20살의 철없는 나이, 여느 또래의 여자들과는 정말 틀렸지요. 너저분했던 애들방도, 항상 쌓여있던 빨랫감들도, 인스턴트 식품으로 가득했던 밥상도,.. 그녀가 온 이후 달라졌지요. 거기다 아이들은 또 어찌나 잘 돌보던지... 아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할 뿐더러 정말 잘 돌보더군요. 오죽하면 애들이 엄마보다도 더 그녀를 따르고 좋아했을까요. 3개월간의 짦은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애들은 와이프를 잊지 못하고 항상 찾지요. 간혹 들리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가보면 와이프의 자식인줄로 알 정도랍니다.. 3개월간의 짧은 저희 이모댁 생활, 저에겐 그녀를 한평생의 배필로 생각하게끔 하기엔 충분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힘들게 그녀 어머님께 얻어낸 승낙.. 이른나이에 너무 빨리 보내는것 같다며, 결혼식과 혼인신고는 일단 미루지만, 저희를 믿는다며 살아보라 하시었죠. 모아둔 돈이 얼마없어.. 시작은...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저희집이었습니다. 술쟁이인 아버지, 저에게 집착아닌 집착에 철없는 어머니... 하지만 그녀는 군소리 없이, 힘들다는 시집살이 견뎌내더군요. 오히려 부모님을 배척하고 피하는 저보고 뭐라하면서 저 대신 더욱더 제 부모님을 챙기는, 그런 천사같은 그녀였죠. 너무 미안했습니다. 남들 다하는 커플링 하나 못해줬고, 기념일 한번 챙겨준적 없으며, 선물하나 건네주지 못하는 그런 못난놈인데, 그녀는 이런 못난 저 하나만 믿으며 웃더군요. 하지만, 제가봐도... 완전 식모살이였습니다. 대학생인 그녀, 학교 다니기만도 벅찰텐데 고단할텐데,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랴, 옆집사는 작은아버지의 꼬맹이들 챙겨 어린이집 보내랴, 학교가랴, 마치면 칼같이 집에와서 또 다시 집안일들... 거기다 제 아버지 술주정까지. 문제는 저희 부모님들이 당연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네 학비며 용돈까지 다 내주는데 이정도는 당연한거 아니냐' 라는... 제가 와이프 학비등을 대주는건 허락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녀 집... 결코 못사는 집은 아닙니다. 잘사는것도 아니지만 그녀 공부시킬 정도의 여력은 있는 집안입니다. 제 여자의 뒷바라지, 제가 하는건 당연했고 제겐 너무도 과분한 그녀를 얻는것에 대한 그만한 댓가는 얼마든지 치를 각오에 제가 먼저 그녀학비를 대겠다는 약조를 해드린것이었는데... 강한 정신력을 가진 그녀도 한계였나봅니다. 어느날부터 자주 앓기 시작했지요. 약해보이긴 해도 건강했던 그녀였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수척해지는 얼굴... 학교도 제대로 못가는 날이 빈번해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야위어 갔드랩니다.. 167cm의 키에 48kg의 날씬하고도 건강했던 그녀... 42kg까지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저희 부모님의 구박.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보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필요없다고 쫒아내기에 이르렀지요. 그리고 그즈음 알게된 그녀의 임신사실, 저에겐 너무나도 반갑고 너무나도 기쁜소식 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아무런 기반도 잡지 못한채 제 아이와의 조우는, 그녀에게도 저에게도, 무엇보다도 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될수 밖에 없는것이 현실이었던 겁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그녀, 그리도 강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제앞에서 눈물을 보였드랬죠. 이런 상황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실 껍니다...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그 찢어지는 가슴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 그녀의 유산.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집어던진 선풍기에 그녀가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의.. 첫 아이를 어이없게 하늘나라로 보냈지요. 마음의 준비도 하지못한채. 그리고 더욱 심해진 저희 어머니의 구박. 퇴원한 당일,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며 몸 처신 똑바로 못한 그녀의 잘못이라 하면서 절 꼬드겨 낸 못된년이라 갖은 욕을 들은 그녀. 아직도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 어머니도 저와 같은 여자 아니세요, 어쩜 그러실수 있으세요...' ... 그날 이후 그녀는 저희 부모님께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차마 그대로 그녀를 둘수 없었습니다. 아니, 제가 부모님을 용납할수 없었지요. 그 길로 짐 싸들고 집을 나왔드랬습니다. 그리고 없는돈 긁어모아, 그녀학교 부근에 작은 옥탑방을 하나 얻었지요.. 10월중순, 유난히도 춥게 느껴지던 가을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옥탑방 하나 얻고나니 돈의 여유가 없더군요... 매일같이 먹는 라면, 텅빈 방안에 전기장판 하나, 베개 둘, 이불 한채, 이것이 제 힘으로 마련한 저희의 초라한 살림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말 울고 싶었죠. 이 세상 누구보다 호강시켜주고 싶었는데, 제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거라곤 고작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절 만나서 그녀가 얻은거라곤 갖은 고생과, 야윈 몸, 그리고 지울수 없는 크나큰 상처뿐이었으니까요... 전 그녀에게 받기만 했던 겁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텅빈 방안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했던 말들이.. ' 매일같이 먹는 라면..지겹지? 나 만나서 괜한 고생이다...' 저의 이말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죠.. ' 이렇게 추운날 삼시세끼 못먹고 밖에서 굶는 사람도 많아~ 거기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호강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발뻗고 잘수있는 우리만의 방도 있잖아. 이것만해도 고마워~ ' 세상에 그녀같은 여자 다신 없을거라 싶었습니다. 그래요,, 정말 천사였지요. 사소한것에도 고마움을 느낄줄 아는 겸손하고도 지혜로운... 그날 속으로 참 많은 눈물 흘렸습니다. 많이 약해진 그녀, 몸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사코 그녀의 아르바이트를 말리고 집 부근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이 굉장히 좋으신 분이었죠... 그렇게 저와 그녀의 추운 2003년의 겨울은 지났습니다. 새싹이 틀 초봄무렵에는 비록 중고였지만 티비와 냉장고 옷장등도 구입을 했고, 그녀 공부에 필요한 컴퓨터도 샀더랬죠. 그렇게 저희 살림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달려가면, 젤 처음 보이는 모습은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찌개를 끓이는, 반찬을 만드는 그녀... 분홍색 곰돌이원피스에 양갈래 땋은머리, 눈 동그랗게 뜨며 맛을 보여주는, 그리곤 맛있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 그녀의 미소. 여유롭진 않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이란걸 느꼈지요.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행복. 하지만 그 행복도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행패... 돈을 내놓으란거 였습니다. 저에게 통하지 않으니 그녀에게 전화해서 온갖 입에 담지못할 욕설에 집에 찾아와서 행패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말이면 찍소리 못하던 착한 아들이었는데 니년 만나고 나서 부터 우리아들이 변했다고. 저희 어머니는 저에대한 소유욕, 집착때문이었는지 그녀에 대한 구박과 질투는 더욱 심했고 그녀는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천륜은 끊을수 없다며 그리도 절 설득하던 그녀가... 그러던 그녀가 결국은 저에게 요구하더군요. 이대로는 도저히 살수가 없다고, 자길 위해서라도 제발 부모님과 인연을 끊자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 우리도 자식이 생기고 그렇게 부모님들도 철이 들때까지만 연을 끊자고 말입니다. 참 이상하더군요. 너무 싫고 너무도 꼴뵈기 싫던 부모였는데. 막상 그럴려니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부모님인데... 어찌보면 부모님도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런생각들이 드는겁니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자꾸만, 그녀도 아닌 부모님도 아닌, 그런 입장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 점차 그녀가 독해지더군요. 물론 저희 부모님 문제에서만 말입니다... 잘 지내다가도 가끔씩 부모님들이 건들면, 그녀 참지못하고 폭팔하고 말더군요. 하지만 전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속에 쌓인게 많은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지못해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꺽꺽 숨이 넘어가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저희 부모님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저 몰래 저희 사장을 찾아가 행패를 부린겁니다. 사장님은 결국 못이겨 제 월급 2달치를 부모님께 가불해 드린거지요... 저도 마음이 돌아설수 밖에 없더군요. 부모도... 아니란 생각에.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엄청난 싸움... 저보다 그녀가 더 힘들었지요. 갖은수모 갖은욕설... 그리고 부모님과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죠. 마음은 편해졌지만...... 2달치 가불.. 금전적인 어려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군요. 이런 사정 그녀의 어머님께 차마 말씀드릴수도 없고,.. 그녀는 악착같아 졌습니다... 원래 사치와는 거리가 먼, 어린나이에도 가계부를 쓰며 돈을 아끼던 꼼꼼한 그녀였는데, 정말 더욱더 악착같이 변하더군요... 더욱 가슴이 아렸던건, 저에겐 아끼지 않으면서 그녀에 대한건 뭐든지 아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삼시세끼 다 챙겨 먹이면서, 그녀는 일도 하지 않는 자신의 입이 먹는건 아깝다며 하루에 두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며, 학교가는 차비도 아깝다고 매일같이 걸어다니더군요.. 일하다가 어디 조금만 다쳐도 전 병원에 바로 직행인데, 그녀는 혼자 끙끙 앓기만 하고... 보다못해 병원에 가자고 하면 푹~ 자고 나면 다 낳는다며 손사래 치던 그녀. 결국엔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던거죠... 2004년 8월 그 무덥던 여름.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하고 얼굴이 자꾸만 허옇게 질리고, 그녀의 체력이 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복통까지 동반된겁니다. 더욱 걱정스러웠던건 하루하루 지날수록 배가 팅팅 붓는다는 것이었죠. 너무나도 걱정이되 병원에 가자 하였으나 한사코 거절하며 안가겠다 버티는 그녀,, 돈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배 따뜻하게 하면 낫는다면서 하얗게 질린얼굴로 그녀는 웃었지만 돈이 다 떨어졌다는것 정도는 눈치챌수 있었죠... 저의 무능력함에 스스로 자책하며 제가 해줄수 있던건 따뜻한 시프뿐...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또다시 사장에게 가불하고 퇴근하여 돌아왔던 그날..... 다른날에 비하여 그녀는 제대로 말을 못할정도로 힘없이 누워있더군요. 입술까지 하애지며.. 답답하다며 바람을 쏘이고 싶다던 그녀. 부축해서 집앞에 바람쐬러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그녀가 잠시만 쉬자더군요. 너무 숨이 차다고. 그리곤 계단에 기대더니..... 그대로 스르르 넘어가더군요. 눈동자가 까뒤집혀 지면서, 흰자위만 치켜떠지는 그 순간... 그녀를 들쳐없고 정신없이 집에들어가 방안에 뉘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더군요. 심장도 거의 멎어있더군요...느끼기 힘들만큼의 약한박동. 아무도 모릅니다..... 순간 그때의 기분. 표현할수 없습니다. 그저 눈물만 나고 그저 두렵고 무서운... 온갖 자책들과 온갖 생각들... 이대로 그녀가 죽는다면, 저 역시 죽은 목숨... 정신없이 인공호흡에, 응급치료 들어갔습니다. 운동하던 시절 배웠던 응급처세술이 그렇게 쓰이리라 고는 생각도 못했었죠... 그 5분여간, 전 몇년은 되는듯한 그런 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없이 그녀의 뺨을 때리고 인공호흡하고,, 하얀얼굴의 그녀가 눈을 뜨더군요. 그 순간 왜 그렇게 울음이 터져나오던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그녀를 들쳐없고 자꾸만 정신을 잃으려는 그녀를 추스리며 병원으로.. 갔습니다. ... 나팔관이 터졌다더군요. 자궁외임신. 온몸의 피 1/3은 빠져나갔다며, 수술을 서두르더군요. 늦은새벽,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없이 달려오셨고, 절 붙들고 한없이 우시는데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어찌 애를 저지경이 되도록 놔둔거냐며, 그렇게 너를 믿었건만 어찌 이럴수가 있냐는 어머님께 단 한마디도 할수없었지요. 다른 집 어머님 같으면 제 뺨을 수십번을 때려도 때렸을텐데, 어머님은 그저 눈물만 보이셨지요... 그리고 단 이 한마디, ' 지금은 네가 너무도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네 응급치료 덕택에 살았으니, 고맙다, 살려줘서... ' 더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곤 의사와의 면담.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서 당장 수술은 어렵다고 얼른 수혈해야 한다고... 그리고, 너무 늦게 왔따며... 위험부담이 크다는 의사의 말. 그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두려웠을까요...? 그냥 수혈로는 모자라... 어깨쪽 심장으로 바로 향하는 혈관에 그냥 주사바늘도 아닌... 얇고도 두꺼운 철관 같은걸 그냥 바로 주사 놓듯이 쑤셔넣는데 차마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던 그녀, 그 철관에 직접 주사기로 피를 마구 넣는데... 그 비릿한 피내음이 저도 맡아지는데 그녀는 오죽했을까.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수술실로 향하던 그녀.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 위험한 수술임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는 저에게 웃어주더군요. 자기도 무서웠을텐데... ' 나 조금만 자고 나올께, 너무 걱정하지말구 기다려 ' ... 눈물이 봇물터지듯 나오더군요. 2시간 반에 걸친 수술...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더군요. 1500cc의 피가 사람의 치사량인데, 그녀는 1300cc의 피를... 흘렸더군요. 그리고 한쪽 나팔관의 제거... 폐에는 물이차서 숨도 제대로 못쉬는 그녀. 너무도 고통스런 한달여간이었지만, 그렇게 그녀는 살아났습니다. 그리곤 다시 제 곁에서 웃어줬습니다... 정말 그녀에게 제 심장이라도 다 주고픈 심정이었죠...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했습니다. 수술이후 더욱더 약해진 그녀, 조금만 걸어도 엄청난 피로에 끙끙대며 잠을 청하는 그녀,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힘들어졌지요. 못난 저로 인해... 결국 학교도 중도에 자퇴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요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날라온 영장... 군입대 영장이었지요. 하늘이 무너지는것만 같았습니다. 너무도 여리고 약한 그녀를 홀로두고 가야한다니요. 하지만 결국 2004년11월... 저보다도 더 소중한 그녀를 두고 입대를 했지요. 그녀는 어머님댁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저의 군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한 소식들은 않좋은 소식들 뿐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생을 시켰으면, 그녀의 몸은 정말 않좋아져 있었던 겁니다. 빈혈에다... 조금만 걸어다녀도 쉽게 피곤해 하며 앓아누울만큼 허약해져 있었고, 그런 그녀로 인해 그녀의 집은 휘청대기 시작했던거지요... 점점 그녀는 짜증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밝고 해맑던 모습은 어디가고, 그리도 긍정적이던 그녀가, 이제는 비관적이고... 우울해졌습니다. 꼭 예전의 저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죠. 그녀혼자 그렇게 힘들게 내버려 둘수가 없었습니다. 모든게 저로인해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녀의 창창하고 밝은 인생을 제가 다 망친것 같아 가만 있을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제가 곁에도 없는 지금 행여나 그녀가 떠나갈까... 너무도 힘들어 절 버리고 가버릴까봐 두렵기도 했구요. 전 그녀없인 살수가 없으니까요. 많이 야위고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이쁘고 매력적입니다. 예전보다 약간 신경질적이고 돈에대한 집착이 심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세상엔 둘도 없는 천사지요. 제눈에 이렇게 이쁜그녀, 다른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여전히 그녀 주변엔 그녀를 기다리는 많은친구들이 있다는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저보다 잘난사람, 좋은집안사람들,.. 그녀가 편해지겠지요. 허나, 절대 그녀를 보낼수 없습니다. 포기할수 없습니다. 그녀는, 제 와이프는 저의 목숨이니까요. 군입대이후 1여년이란 시간, 너무나도 힘겹게, 하지만 잘 버텨준 그녀. 힘든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제 평생의 꿈인 그녀와 함께 이루는 가정을 위해서... 부사관을 지원했고, 그로 인해 8월 혼인신고 먼저 했습니다. 다달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 발령나면 그녀는 집에서 편히 요양만 할수있게 말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혼인신고. 이제 그녀는 제 와이프입니다. 제 여자이자 미래의 제 아이 엄마입니다.. 비록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순서가 뒤바꼈지만, 혼인신고를 먼저 했지만 머지않아 그녀에게 면사포를 씌워줄껍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녀가 바라는... 그런 아기자기하고도 소담한 이쁜 결혼식 꼭 할겁니다. 가녀린 그녀손에.. 반지하나 꼭 끼워줄겁니다. 예전의 그 밝은모습 꼭 되찾아 줄겁니다. 너무나도 이쁜, 이 세상하나뿐인 사랑하는 제 와이프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삭방위 대신.
4974. 23살 남편,,22살 아내,,,
(571)
영원히(ajax-00)
2005/10/19 06:05
조회 : 67833
추천 : 25
오늘의 톡이라,, 처음엔 당황했으나 많은분들의 답변을 읽으며 많은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자랑스레 쓴 글이 아닙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저 자신도 지극히 잘 알고 있습니다.
못나디 못난 제가 과분한 여자를 만나 호강은 시켜주지 못할망정 고생만
죽도록 시키고... 제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또한 못되고 이기적이란것 잘 알고 있지요.
허나, 그녀에게 속죄의 마음과 굳은 다짐의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꼭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 동안의 몸고생 마음고생, 한평생 다 갚겠다는
그런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자 채찍질입니다.
그동안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저의 무능함, 저의 잘못들을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지요... 그녀의 소중함과 함께 말입니다.
처음엔 저 역시 그녀를 놔주는것이 그녀를 위한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더군요. 네, 저의 이기심 때문이었지요. 그녀없인 단 하루도 못 버틸것 같은...
허나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그녀를 붙잡기만 한채 뭐 하나 그녀에게 해주는것없이
지켜보며 그저 그녀에게 사랑한단 말밖에 해줄수 밖에 없던 저 자신을 보며, 생각하고 다짐했죠.
그녀를 놓아 주는것만이,더 좋은사람에게로 보내는것만이 다는 아니라고.
그게 꼭 사랑은 아니라고...
어찌보면 저의 합리화적인 생각일수 있겠지만, 제 생각은 그랬지요.
다 망가진 몸, 지친 마음... 그런 그녀를 어찌 다른사람에게 보낼수 있겠습니까.
저와의 과거로 인해 그녀가 불행해 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행복할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로인해 그렇게 변해버린,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그녀,
제 힘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에게 떳떳한 남자가, 남편이 되고 싶었던거죠.
저 하나만 바라본 그녀의 믿음 헛되고 하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제 마음조차 그녀인생에는 이기적인게 되어버릴수도 있는거겠지요..
병원에 왜 빨리 데려가지 못했냐는 많은분들...
님들이 걱정하시고 속 터져 하시는 만큼, 그 당시의 저는 더 했습니다.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병원에도 못데려가고, 찜질만 해줘야 했던 제 마음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 역시 눈물이 날만큼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만큼 아팠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지요.
돈 한푼없이 병원에가서 당장 수술은, 당장 입원은 어떻게 한답니까.
진작 가불하고 싶었지만 저희 부모님이 저지른 가불건으로 쉽게 가불도 할수 없었던
그당시의 답답하고 스스로가 한심했던 제 마음도 이해해주는 분이 계셨으면 하는 제욕심입니다..
그리고 장모님더러 이상하다 하시는분도 많으신데,
장모님은 당신의 반대로 딸자식이 가슴아파하는것을 바라지 않으셨던 것 뿐입니다.
장모님이 바라시는 사윗감에 못미쳐도 한참을 못미치는 저, 그저 당신 딸의 선택을 믿는다 하시며
저를 받아들이신것 뿐입니다... 그리고 혼자 속앓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게 다 제 잘못인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어낸 이야기, 소설 아닙니다...
제가 고3에 만나 시작되었던 사랑, 5년여간의 일들...
정말 꿈같고 정말 힘들었던, 그녀에겐 악몽같았던 시간들이었지만
저와 그녀의 행복한 미래의 밑거름이 될 시간이었다 생각하렵니다.
꼭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래서 고생만 한 그녀, 한평생 호강시켜 줄겁니다..
따끔하고도 귀한 고견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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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혹 휴가때마다 글만 보다가
이렇게 올리게 되었네요. 전 군인입니다^^ 다음달에 부사관학교 입교하는
예비하사지요ㅎ 22살말 늦은나이에 군입대를 한 덕분에,, 결국은 부사관 지원을 했답니다.
지금 제뒤에는, 어여쁜 그녀가 쌔근쌔근 곤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세상 단 한명뿐인, 소중한 제 와이프지요...
하지만 지금 제 마음은 너무나도 착찹하고 아픕니다.
저로 인해 변해가는, 변해버린 그녀,,, 여전히 사랑스럽고 여전히 가냘픈, 애달픈 그녀이지만요.
어디다가 제 마음 터놓을곳 없어 그냥 막연히 주저리주저리 끄적여봅니다.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질듯하네요... 5년여 가량의 세월에도, 잊혀지지 않는 그녀와의 일들.....
와이프와의 첫만남,,, 아직도 생생하군요. 그때의 그 느낌.. 표현하자면 " 빛 " 이었습니다.
고3 어린나이에, 그녀를 본 첫 느낌은 환한 빛이었죠.
그저 막연한 느낌이었습니다. 내 인생을 바꿔줄 여자, 내 여자,,,
후배녀석의 친구였던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제게로 성큼 다가왔더랬습니다.
그당시 저는, 집안사정으로, 철없는 부모님때문에 대학진학도 포기하여야 했고,
유일한 제 인생의 낙이었던 제 꿈이었던 농구생활도 그만두어야했기에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던 때였지요.
그런 제게 와이프의 미소는, 그 웃음은 구세주와 같았습니다. 그 웃는모습만 봐도, 그 웃음이
저를 향한것이 아니라해도, 힘이 절로나는 그런 밝음...
그녀 주위는 그녀로 인해 항상 환했고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았죠.
얼굴도 이쁜편이라 인기도 많았고, 공부며 운동이며 정말 못하는게 없는 만능재주꾼인 그녀,,
무엇보다 그녀의 알수없는 매력,, 그 환한 밝음은 주위사람들까지 밝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 그녀와 전 어울리지 않았지요... 그냥 막연히 지켜만 볼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웠던건, 그 많은남자와 많은 이성친구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생활은 깨끗했고
애인도 없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로인해 더욱 매력적이고 더욱 인기가 많았지만,,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저는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떳떳하고픈 그런 생각에,
마음에도 없었던 기술을 하나 배웠고, 차츰차츰 하다보니 그 기술에 재미를 느껴 열심히 했었죠.
고3이었던 그녀, 자주 볼순 없었지만 그래도 간혹 만나 밥 한끼라도 사줄수 있다는것이,
영화 한편 보여줄수 있다는것이 너무나도 좋았지요. 대학생활하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지만,
제 집안사정에 너무도 암울했지만, 그녀에게 조그만것이라도 해줄수 있다는것에 그녀의 미소를
얼굴을 볼수있다는것에 정말 열심히 일했드랬죠.
힘들때면 그녀얼굴 떠올리면서, 그 밝은 웃음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견뎠습니다.
그 결과 실력도 월급도 제 또래들에 비해선 과할정도로 올랐죠. 그녀 덕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수능일이 지나고, 궁금한 마음에 갖은핑계를 대서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었죠. 수능도 그럭저럭 쳤더랬죠.
하지만, 그녀 얼굴은, 와이프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웃고 있어도 걱정거리가 있다는것쯤은
항상 그녀만 바라본 저로선 쉽게 알수 있었지요. 힘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바다만큼 사람을 감성적이고, 또 솔직하게 만드는곳은 없더군요.
무슨일인진 모르지만, 그녀를 쉬게 하고싶었죠. 딱히 멋드러진곳엔 데려가지 못해도
바닷바람의 쐬이게 하고싶어 제가 즐겨찾던 제 동네쪽의 작은 바닷가로 데려갔지요.
아무말이 없던, 그저 저 멀리 바다만 바라보던 와이프..... 제가 왜 그랬을까요.
말없는 그녀를 옆에두고 저혼자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했었드랬죠. 제 아픈 기억들,
집안 이야기들, 이루지못한 못다펼친 꿈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제 속마음을 다 내보였던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 바보처럼 그녀를 위로해주고자 갔던 바닷가에서
제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거죠.
저희 부모님나이. 이제 40대초반이십니다. 42살... 사고쳐서 저를 낳았드랩니다.
저만 보면 그러지요. 너만 아니었음 너만 안 낳았으면... 제가 자신들의 인생에 족쇄가 되어
인생 망쳤다고 저를 원망하십니다. 젊은나이에 아직 창창한데, 철없이 시작한 준비없이 꾸려진
가정이라 그런지 항상 문제가 끊이질 않았고, 빚만 지고 있지요.
저희 어머님만 해도 한달에 200~300은 거뜬히 법니다. 아버님은 랜덤이시고요.
그런데도 빚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중상위급 집안사람처럼 펑펑 써제끼니 말입니다.
결국은 제 대학진학도 못하고, 제가 번 월급까지 눈독 들이는터라 월급 뺏기지 않는것에 급급하죠.
왜 빚을 갚을 생각 않하냐 했더니, 아버님 앞으로 보험을 어마어마하게 들어놨는데,
그 보험금 타는날 다 갚을거랍니다... 아버님이 알콜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좋아하셔서
고혈압에 협심증에, 간부종에 종합병원이거든요.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
애정이 그리웠고,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밝은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바보처럼 그녀앞에서 눈물을 보였지요...
말없이 있던 그녀는 갑작스레 놀이동산에 가자 하더군요. 예의 그 밝은 웃음으로.
모르는척 제 아픔을 감싸주고 받아준듯한 느낌에 너무나도 고마웠고,
그로인해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은, 제 사랑은 더욱 깊어졌답니다...
그날 이후, 그녀와 전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도 힘든일 아픈일,
저에게 털어놓기 시작했고, 밝게만 보이던 그녀에게도 많은 아픔과, 갖은 상처들, 집안일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죠. 그럼에도 항상 자신감있고 해맑고도 밝은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강인함에
감탄했고 더욱더 빠져들었습니다. 속물근성에 빠져사는 많은 여자들과는 차원이 틀렸으니까요.
그렇게 저희 사랑은 조금씩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겐 너무나도 과분한 여자였기에
행여나 깨어질까 행여나 사라질까, 마음을 졸이면서도 너무도 행복했지요.
그리고 그녀의 대학교 입학... 불행이었을까 행운이었을까.
저희 교제사실을 알고 계시던 그녀의 어머님이 절 부르셨드랬죠. 여느 부모님이었다면 저희집안같은
저 같은 별볼일 없는 놈과의 교제를 죽어라 반대하실텐데,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그리도 밝게 그리고 바르게 자랄수 있었던건 어머님의 힘이었던입니다.
오직 제 마음, 볼것없는 저 하나만 믿고, 그리고 자신의 딸인 그녀의 선택을 믿는다 하시며,
저에게 웃어주셨습니다. 그날로 그녀의 어머님은 저의 어머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은 그녀를 저에게 맡기셨죠... 집안일로 한동안 그녀 혼자 둘수밖에 없다며,
절 믿는다고.. 간곡히 부탁하셨지요...
그로부터 한달여쯤 후... 그녀는 저의 이모댁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혼하신 이모에겐 3살 5살의 어린 두딸뿐이라, 이모도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셨죠.
그리고 저도 이모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거죠.
같이 살게 된 그녀...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죠. 정말 그녀처럼 완벽한 여자는 처음 봤습니다.
20살의 철없는 나이, 여느 또래의 여자들과는 정말 틀렸지요.
너저분했던 애들방도, 항상 쌓여있던 빨랫감들도, 인스턴트 식품으로 가득했던 밥상도,..
그녀가 온 이후 달라졌지요. 거기다 아이들은 또 어찌나 잘 돌보던지...
아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할 뿐더러 정말 잘 돌보더군요.
오죽하면 애들이 엄마보다도 더 그녀를 따르고 좋아했을까요.
3개월간의 짦은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애들은 와이프를 잊지 못하고 항상 찾지요. 간혹 들리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가보면 와이프의 자식인줄로 알 정도랍니다..
3개월간의 짧은 저희 이모댁 생활, 저에겐 그녀를 한평생의 배필로 생각하게끔 하기엔
충분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힘들게 그녀 어머님께 얻어낸 승낙.. 이른나이에 너무 빨리 보내는것
같다며, 결혼식과 혼인신고는 일단 미루지만, 저희를 믿는다며 살아보라 하시었죠.
모아둔 돈이 얼마없어.. 시작은... 너무나도 부끄러웠지만 저희집이었습니다.
술쟁이인 아버지, 저에게 집착아닌 집착에 철없는 어머니... 하지만 그녀는 군소리 없이,
힘들다는 시집살이 견뎌내더군요. 오히려 부모님을 배척하고 피하는 저보고 뭐라하면서 저 대신
더욱더 제 부모님을 챙기는, 그런 천사같은 그녀였죠.
너무 미안했습니다. 남들 다하는 커플링 하나 못해줬고, 기념일 한번 챙겨준적 없으며, 선물하나
건네주지 못하는 그런 못난놈인데, 그녀는 이런 못난 저 하나만 믿으며 웃더군요.
하지만, 제가봐도... 완전 식모살이였습니다. 대학생인 그녀, 학교 다니기만도 벅찰텐데 고단할텐데,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랴, 옆집사는 작은아버지의 꼬맹이들 챙겨 어린이집 보내랴, 학교가랴,
마치면 칼같이 집에와서 또 다시 집안일들... 거기다 제 아버지 술주정까지.
문제는 저희 부모님들이 당연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네 학비며 용돈까지 다 내주는데
이정도는 당연한거 아니냐' 라는... 제가 와이프 학비등을 대주는건 허락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녀 집... 결코 못사는 집은 아닙니다. 잘사는것도 아니지만 그녀 공부시킬 정도의 여력은 있는
집안입니다. 제 여자의 뒷바라지, 제가 하는건 당연했고 제겐 너무도 과분한 그녀를 얻는것에 대한
그만한 댓가는 얼마든지 치를 각오에 제가 먼저 그녀학비를 대겠다는 약조를 해드린것이었는데...
강한 정신력을 가진 그녀도 한계였나봅니다. 어느날부터 자주 앓기 시작했지요.
약해보이긴 해도 건강했던 그녀였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수척해지는 얼굴... 학교도 제대로
못가는 날이 빈번해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야위어 갔드랩니다.. 167cm의 키에 48kg의 날씬하고도
건강했던 그녀... 42kg까지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저희 부모님의 구박.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보고 집으로 돌아가라며 필요없다고 쫒아내기에 이르렀지요.
그리고 그즈음 알게된 그녀의 임신사실, 저에겐 너무나도 반갑고 너무나도 기쁜소식 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군요. 아무런 기반도 잡지 못한채 제 아이와의 조우는, 그녀에게도 저에게도,
무엇보다도 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이 될수 밖에 없는것이 현실이었던 겁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그녀, 그리도 강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제앞에서 눈물을 보였드랬죠.
이런 상황 겪어보지 못한 분들은 모르실 껍니다...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그 찢어지는 가슴을..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 그녀의 유산.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집어던진 선풍기에 그녀가 맞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희의.. 첫 아이를 어이없게 하늘나라로 보냈지요. 마음의 준비도 하지못한채.
그리고 더욱 심해진 저희 어머니의 구박.
퇴원한 당일, 그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며 몸 처신 똑바로 못한 그녀의 잘못이라 하면서
절 꼬드겨 낸 못된년이라 갖은 욕을 들은 그녀. 아직도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 어머니도 저와 같은 여자 아니세요, 어쩜 그러실수 있으세요...' ...
그날 이후 그녀는 저희 부모님께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차마 그대로 그녀를 둘수 없었습니다. 아니, 제가 부모님을 용납할수 없었지요.
그 길로 짐 싸들고 집을 나왔드랬습니다. 그리고 없는돈 긁어모아, 그녀학교 부근에
작은 옥탑방을 하나 얻었지요.. 10월중순, 유난히도 춥게 느껴지던 가을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옥탑방 하나 얻고나니 돈의 여유가 없더군요...
매일같이 먹는 라면, 텅빈 방안에 전기장판 하나, 베개 둘, 이불 한채, 이것이 제 힘으로 마련한
저희의 초라한 살림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말 울고 싶었죠. 이 세상 누구보다 호강시켜주고 싶었는데, 제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거라곤
고작 그것 뿐이었으니까요. 절 만나서 그녀가 얻은거라곤 갖은 고생과, 야윈 몸, 그리고 지울수 없는
크나큰 상처뿐이었으니까요... 전 그녀에게 받기만 했던 겁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텅빈 방안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했던 말들이..
' 매일같이 먹는 라면..지겹지? 나 만나서 괜한 고생이다...' 저의 이말에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죠..
' 이렇게 추운날 삼시세끼 못먹고 밖에서 굶는 사람도 많아~ 거기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호강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발뻗고 잘수있는 우리만의 방도 있잖아. 이것만해도 고마워~ '
세상에 그녀같은 여자 다신 없을거라 싶었습니다. 그래요,, 정말 천사였지요.
사소한것에도 고마움을 느낄줄 아는 겸손하고도 지혜로운... 그날 속으로 참 많은 눈물 흘렸습니다.
많이 약해진 그녀, 몸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사코 그녀의 아르바이트를 말리고
집 부근에 직장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사장님이 굉장히 좋으신 분이었죠...
그렇게 저와 그녀의 추운 2003년의 겨울은 지났습니다.
새싹이 틀 초봄무렵에는 비록 중고였지만 티비와 냉장고 옷장등도 구입을 했고, 그녀 공부에 필요한
컴퓨터도 샀더랬죠. 그렇게 저희 살림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달려가면, 젤 처음 보이는 모습은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찌개를 끓이는,
반찬을 만드는 그녀... 분홍색 곰돌이원피스에 양갈래 땋은머리, 눈 동그랗게 뜨며 맛을 보여주는,
그리곤 맛있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 그녀의 미소.
여유롭진 않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이란걸 느꼈지요. 절대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행복.
하지만 그 행복도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행패...
돈을 내놓으란거 였습니다. 저에게 통하지 않으니 그녀에게 전화해서 온갖 입에 담지못할 욕설에
집에 찾아와서 행패 부리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말이면 찍소리 못하던 착한 아들이었는데
니년 만나고 나서 부터 우리아들이 변했다고. 저희 어머니는 저에대한 소유욕, 집착때문이었는지
그녀에 대한 구박과 질투는 더욱 심했고 그녀는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천륜은 끊을수 없다며 그리도 절 설득하던 그녀가...
그러던 그녀가 결국은 저에게 요구하더군요.
이대로는 도저히 살수가 없다고, 자길 위해서라도 제발 부모님과 인연을 끊자고..
나중에 세월이 흘러 우리도 자식이 생기고 그렇게 부모님들도 철이 들때까지만 연을 끊자고 말입니다.
참 이상하더군요. 너무 싫고 너무도 꼴뵈기 싫던 부모였는데. 막상 그럴려니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부모님인데... 어찌보면 부모님도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런생각들이 드는겁니다.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자꾸만, 그녀도 아닌 부모님도 아닌, 그런 입장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 점차 그녀가 독해지더군요. 물론 저희 부모님 문제에서만 말입니다...
잘 지내다가도 가끔씩 부모님들이 건들면, 그녀 참지못하고 폭팔하고 말더군요.
하지만 전 아무말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속에 쌓인게 많은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지못해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꺽꺽 숨이 넘어가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저희 부모님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저 몰래 저희 사장을 찾아가 행패를 부린겁니다.
사장님은 결국 못이겨 제 월급 2달치를 부모님께 가불해 드린거지요...
저도 마음이 돌아설수 밖에 없더군요. 부모도... 아니란 생각에.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엄청난 싸움... 저보다 그녀가 더 힘들었지요. 갖은수모 갖은욕설...
그리고 부모님과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죠. 마음은 편해졌지만......
2달치 가불.. 금전적인 어려움은 정말 견디기 힘들더군요.
이런 사정 그녀의 어머님께 차마 말씀드릴수도 없고,..
그녀는 악착같아 졌습니다... 원래 사치와는 거리가 먼, 어린나이에도 가계부를 쓰며 돈을 아끼던
꼼꼼한 그녀였는데, 정말 더욱더 악착같이 변하더군요...
더욱 가슴이 아렸던건, 저에겐 아끼지 않으면서 그녀에 대한건 뭐든지 아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삼시세끼 다 챙겨 먹이면서, 그녀는 일도 하지 않는 자신의 입이 먹는건 아깝다며
하루에 두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않으며, 학교가는 차비도 아깝다고 매일같이 걸어다니더군요..
일하다가 어디 조금만 다쳐도 전 병원에 바로 직행인데, 그녀는 혼자 끙끙 앓기만 하고...
보다못해 병원에 가자고 하면 푹~ 자고 나면 다 낳는다며 손사래 치던 그녀.
결국엔 일이 터져버리고 말았던거죠... 2004년 8월 그 무덥던 여름.
조금만 움직여도 숨차하고 얼굴이 자꾸만 허옇게 질리고,
그녀의 체력이 심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가 복통까지 동반된겁니다.
더욱 걱정스러웠던건 하루하루 지날수록 배가 팅팅 붓는다는 것이었죠.
너무나도 걱정이되 병원에 가자 하였으나 한사코 거절하며 안가겠다 버티는 그녀,,
돈 때문이 아니라, 그냥 배 따뜻하게 하면 낫는다면서 하얗게 질린얼굴로 그녀는 웃었지만
돈이 다 떨어졌다는것 정도는 눈치챌수 있었죠...
저의 무능력함에 스스로 자책하며 제가 해줄수 있던건 따뜻한 시프뿐...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렇게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보다 못해, 또다시 사장에게 가불하고 퇴근하여 돌아왔던 그날.....
다른날에 비하여 그녀는 제대로 말을 못할정도로 힘없이 누워있더군요. 입술까지 하애지며..
답답하다며 바람을 쏘이고 싶다던 그녀.
부축해서 집앞에 바람쐬러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그녀가 잠시만 쉬자더군요. 너무 숨이 차다고.
그리곤 계단에 기대더니..... 그대로 스르르 넘어가더군요.
눈동자가 까뒤집혀 지면서, 흰자위만 치켜떠지는 그 순간... 그녀를 들쳐없고 정신없이 집에들어가
방안에 뉘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더군요. 심장도 거의 멎어있더군요...느끼기 힘들만큼의 약한박동.
아무도 모릅니다..... 순간 그때의 기분. 표현할수 없습니다. 그저 눈물만 나고 그저 두렵고 무서운...
온갖 자책들과 온갖 생각들... 이대로 그녀가 죽는다면, 저 역시 죽은 목숨...
정신없이 인공호흡에, 응급치료 들어갔습니다. 운동하던 시절 배웠던 응급처세술이 그렇게 쓰이리라
고는 생각도 못했었죠... 그 5분여간, 전 몇년은 되는듯한 그런 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정신없이 그녀의 뺨을 때리고 인공호흡하고,, 하얀얼굴의 그녀가 눈을 뜨더군요.
그 순간 왜 그렇게 울음이 터져나오던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그녀를 들쳐없고
자꾸만 정신을 잃으려는 그녀를 추스리며 병원으로.. 갔습니다.
... 나팔관이 터졌다더군요. 자궁외임신.
온몸의 피 1/3은 빠져나갔다며, 수술을 서두르더군요.
늦은새벽,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없이 달려오셨고, 절 붙들고 한없이 우시는데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어찌 애를 저지경이 되도록 놔둔거냐며, 그렇게 너를 믿었건만 어찌 이럴수가 있냐는 어머님께
단 한마디도 할수없었지요. 다른 집 어머님 같으면 제 뺨을 수십번을 때려도 때렸을텐데,
어머님은 그저 눈물만 보이셨지요... 그리고 단 이 한마디, ' 지금은 네가 너무도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네 응급치료 덕택에 살았으니, 고맙다, 살려줘서... ' 더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곤 의사와의 면담. 피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서 당장 수술은 어렵다고 얼른 수혈해야 한다고...
그리고, 너무 늦게 왔따며... 위험부담이 크다는 의사의 말.
그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두려웠을까요...?
그냥 수혈로는 모자라... 어깨쪽 심장으로 바로 향하는 혈관에 그냥 주사바늘도 아닌... 얇고도 두꺼운
철관 같은걸 그냥 바로 주사 놓듯이 쑤셔넣는데 차마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던 그녀,
그 철관에 직접 주사기로 피를 마구 넣는데...
그 비릿한 피내음이 저도 맡아지는데 그녀는 오죽했을까.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수술실로 향하던 그녀. 생전 처음 하는 수술이 위험한 수술임에도...
마지막까지 그녀는 저에게 웃어주더군요. 자기도 무서웠을텐데...
' 나 조금만 자고 나올께, 너무 걱정하지말구 기다려 ' ... 눈물이 봇물터지듯 나오더군요.
2시간 반에 걸친 수술...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더군요.
1500cc의 피가 사람의 치사량인데, 그녀는 1300cc의 피를... 흘렸더군요.
그리고 한쪽 나팔관의 제거... 폐에는 물이차서 숨도 제대로 못쉬는 그녀.
너무도 고통스런 한달여간이었지만, 그렇게 그녀는 살아났습니다.
그리곤 다시 제 곁에서 웃어줬습니다...
정말 그녀에게 제 심장이라도 다 주고픈 심정이었죠...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했습니다.
수술이후 더욱더 약해진 그녀, 조금만 걸어도 엄청난 피로에 끙끙대며 잠을 청하는 그녀,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힘들어졌지요. 못난 저로 인해...
결국 학교도 중도에 자퇴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요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날라온 영장... 군입대 영장이었지요.
하늘이 무너지는것만 같았습니다. 너무도 여리고 약한 그녀를 홀로두고 가야한다니요.
하지만 결국 2004년11월... 저보다도 더 소중한 그녀를 두고 입대를 했지요.
그녀는 어머님댁으로 돌아가고... 그렇게 저의 군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대한 소식들은 않좋은 소식들 뿐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고생을 시켰으면, 그녀의 몸은 정말 않좋아져 있었던 겁니다. 빈혈에다...
조금만 걸어다녀도 쉽게 피곤해 하며 앓아누울만큼 허약해져 있었고, 그런 그녀로 인해 그녀의 집은
휘청대기 시작했던거지요...
점점 그녀는 짜증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의 밝고 해맑던 모습은 어디가고,
그리도 긍정적이던 그녀가, 이제는 비관적이고... 우울해졌습니다.
꼭 예전의 저를 보는듯한 느낌이었죠.
그녀혼자 그렇게 힘들게 내버려 둘수가 없었습니다. 모든게 저로인해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녀의 창창하고 밝은 인생을 제가 다 망친것 같아 가만 있을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제가 곁에도 없는 지금 행여나 그녀가 떠나갈까... 너무도 힘들어 절 버리고
가버릴까봐 두렵기도 했구요. 전 그녀없인 살수가 없으니까요.
많이 야위고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이쁘고 매력적입니다.
예전보다 약간 신경질적이고 돈에대한 집착이 심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세상엔 둘도 없는 천사지요.
제눈에 이렇게 이쁜그녀, 다른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건 당연한 일입니다.
여전히 그녀 주변엔 그녀를 기다리는 많은친구들이 있다는것도 잘 알고있습니다.
저보다 잘난사람, 좋은집안사람들,.. 그녀가 편해지겠지요.
허나, 절대 그녀를 보낼수 없습니다. 포기할수 없습니다. 그녀는, 제 와이프는 저의 목숨이니까요.
군입대이후 1여년이란 시간, 너무나도 힘겹게, 하지만 잘 버텨준 그녀.
힘든 그녀를 위해서,.. 그리고 제 평생의 꿈인 그녀와 함께 이루는 가정을 위해서...
부사관을 지원했고, 그로 인해 8월 혼인신고 먼저 했습니다.
다달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 발령나면 그녀는 집에서 편히 요양만 할수있게 말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혼인신고. 이제 그녀는 제 와이프입니다.
제 여자이자 미래의 제 아이 엄마입니다..
비록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순서가 뒤바꼈지만, 혼인신고를 먼저 했지만
머지않아 그녀에게 면사포를 씌워줄껍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그녀가 바라는...
그런 아기자기하고도 소담한 이쁜 결혼식 꼭 할겁니다.
가녀린 그녀손에.. 반지하나 꼭 끼워줄겁니다.
예전의 그 밝은모습 꼭 되찾아 줄겁니다.
너무나도 이쁜, 이 세상하나뿐인 사랑하는 제 와이프에게 보내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