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나의 외침...

세상을사랑하자...2005.10.23
조회141

아.. 정말 세상 살기 힘이 듭니다.

 

이제 나이가 먹어 성인이 되니, 그 동안 덮어져 있던 보호막이 없어지며

뜨거운 세상이라는 햇살 앞에 여린 속살을 내놓는 기분이랄까요..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매달 많은 이자를 내시며,

전전긍긍 하시는 모습을 보아 오면서, 솔직히 제 가슴으로는 어머니의

고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 세상은 참 살기 힘들구나. 만만한 대상은 아니다.. 이런 느낌 정도만..

 

불쌍하신 우리 어머니,, 오늘 어머니께 정말 나쁘게 굴었습니다.

어머니의 걱정되신 말에 그만, 더 걱정되시게 만들고 말았으니......

오로지 저와 제 오빠 잘 교육시키고 키우시려고

손가락과 발가락 마디마디에 굳은 살이 배이실 정도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시면서

책 외판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오빠와 전 철없이 그저 어머니가 벌어오신 것으로 받아먹고, 받아 입고

공부하고.. 가끔씩 죽은 것과 다름없는 아버지란 분이 어머니를 미칠 듯이 괴롭힐 때

어머니를 붙들고 너무 불쌍하여 하염없이 운 것뿐..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아버지가 없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그때는 아직 처녀이셨던 막내이모도 저희 집에 같이 있었죠)

집에 와보니, 어머니는 거실과 안방을 오가며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계셨고, 이모는 저를 보고

아무 말씀도 못하셨습니다.  전 어머니가 어딘가를 여기저기 전화하시는 소리를 들었지요

'아버지가 그 동안 집에 안들어 오신것이 어떤 사람이랑 사느라고 안오신거라고?'

어린 제가 이해한 내용이였습니다.  아직도 뚜렷하게 생각납니다. 책가방만 벗은, 상태에서

초록색 소파에 앉아 두 주먹을 쥐어짤 듯 쥐며 마구 울던 기억......

아마 그게 제가 태어나서 가장 크게 받은 충격이자 실망감 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거짓말이 오가고 어머니의 명의로 지은 엄청난 양의 빚들만 쌓일 동안, 저와 오빠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고, 어느새 아버지 (사실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습니다. 아버지란 분에 대한 정이 없어서..)없는 일년이 아주 당연한 듯 느껴지게 됐지요.  그때 기억으론 아버지가 갑자기 잦은 지방출장을 가셨습니다. 아주 자주,, 그리곤 가실 때마다 많은 옷과 짐을 챙겨가셨는데, 한 달에 한번 오실 때쯤이면 빈손이셨지요..

 

그러던 중 빚의 빚을 얻어, 살던 집마저 내놓고, 이사를 가게 됐었습니다.  집을 보러 다니시다가 너무 속이 상해 눈물콧물 흘리며 다시 집에 돌아오시던 어머니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제가 어렸을 땐 남부럽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림만 하시며 사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가게 됐고, 오빠는 사춘기시기로 접어들게 되고, 아버지의 모든 행적은 밝혀지게 됐지요.. 정말 혼란의 시기 였습니다. 정말......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마르는 것을 보지 못했고, 아버지의 미안하단 소리 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 모든 빚을 안겨준 채로 어린아이처럼 '우린 사랑해서 같이 사는 거야, 정정당당하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는데 왜 그래!!' 이런 말을 내뱉는 아버지는 이세상에서 가장 쓸모 없는 쓰레기, 아니 쓰레기보다도 못한 인간이었고, 입니다.

같이 살림을 차렸단 여자는 어머니와의 결혼 전에 잠시 만났던 술집 여자랍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 10개월쯤 됬을 무렵, 그 여자와의 동거는 시작됐고, 그 둘 사이, 지금은 중학생인, 아들도 낳았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싫은 사람이죠. 집에는 토끼 같은 자식과 배부른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그런 벼락맞을 짓을 하게 됐는지...... 어머니가 그 집에 찾아가 보셨을 때, 물론 모두 찢어버리고 부수셨지만, 그 동안 집에서 아버지가 가지고 나갔던 온갖 옷이며 가방이며를 모두 그 집 옷장에서 보셨답니다. 

엄청난 양의 사진 앨범들엔 그 둘 사이 낳은 아들과 전국 팔도를 여행하며 찍은 단란한 가족사진들.. 가끔 의심스럽게 수영복 모습으로 탄 아버지 등이며 다리들의 이유를 말해주는 사진들......

어머니를 앞에 두고 '그러니깐 이혼해 알았지?' 그 여자가 이리 지껄였다는군요.

 

어느 날은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우시다가 그 속이 얼마나 답답하고 죽고 싶으셨는지, 갑자기 두 주먹으로 당신의 가슴을 쿵쾅쿵쾅 때리고 있으시더군요. 너무 놀란 저는 미친 듯이 어머니께 달려가 멈추게 하고, 보니 어머니의 가슴은 금새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시퍼렇게 든 멍에는 시커멓게 피 멍도 들어있었고, 왜 어머니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고, 왜 아버지란 사람은 우리가족을 파탄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내내 아버지의 비정상적인 이중생활과 (가끔 한 달에 한번씩 어머니와 밤새 싸우고 나갔죠) 매달 적자인 집안 제정...... 오빠와 전 중고등학교를 학교 등록금 보조로 다녔고, 어머니는 한 달에 60만원의 월세 비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자들은 내시며 살게 됐지요. 그 와중에 그 아버지란 사람은 10원한 푼 안 보태더군요. 자식 같지 않은 거죠...... 자식이라 생각했으면,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갈 때 교복 하나 사줬을 텐데...... 저는 그나마 어렸었으나, 3살 터울인 오빠는, 가장 예민한 시기인, 중고등학교 사춘기시기를 그렇게 비정상적인 생활로 보냈습니다.  정말 오빠,, 똑똑한 아이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주변사람들이 큰사람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던 오빠였는데,, 한 순간에 그렇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마음이 참 여린 오빠는 그 아버지란 사람에게 나쁜 소리 하나 못했습니다. 전 정말 오빠가 답답했지만, 알고 보니 오빠는 겉으론 꺼내지 못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더군요..

 

그러던 중, 오빠는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다던 고등학교 2-3학년 시절에 여태껏 숨겨왔던 혼란감을 모두 내뿜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빠의 비뚤어진 모습에 놀라 쓰러지시기도 하시고, 전 오빠에게 이유 없이 많이 맞기도 했습니다......  방학 때마다 어머니는 일 나가시고 오빠와 단둘이 있게 되면, 오빠가 어딘가 또 트집을 잡아 칼로 위협할까 걱정하며 무서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 아버지란 사람, 오빠가 칼을 들고 엄마와 저를 죽이려 했던 일을, 'XX야 (xx는 오빠이름)그러지마,'이런 식으로 가라앉히더군요.  오빠가 고3때, 더 이상의 위협은 받지 않기 위해, 어머니의 요구로 아버지는 오빠를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도 근 1년간 남몰라라, 내자식 아닌척 하면서 피하다가 결국엔 결정한 거지요. 전 그때 오빠를 매정히 내보내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오빠가 나가고 난 직 후, 당신의 두 눈에서 동시에 끊임없이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생각하기가 차마 싫군요......

자신이 데리고 살겠다고 데리고 나간 아버지는 오빠를 단칸방 고시원에 쑤셔 넣고 자신이 살던 집에 들어갔습니다.  고3시절을 암흑 속에서 보낸 오빠..

이제 23살이 된 오빠는 나이가 먹어선지, 예전같이 생명의 위협은 주지 않으나, 아직도 따로 나와 살며, 어머니께 못된 소리는 여태껏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 중3이 끝나갈 무렵,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공부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과학수학외국어 배우기를 좋아한 저는(혼자 초등학교 때 일본어문법도 거의 마스터 했었습니다.), 정말 외고 과학고가 집에서 혼자 준비하여 가는곳 인줄 알고, 외고를 지원했으나, 저보다 훨씬 전부터 두루두루 여기저기서 실력을 쌓아두며 준비해온 학생들 사이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해 겨울 낙방한 실망감에 앞이 캄캄했던 저에게, 어머니는 한 신문기사를 내미셨습니다. 미국 교환학생프로그램에 관한 기사였지요.  그 혼란한 당시 어머니는 교육은 똑바로 시키셔야 한다고 믿으셨기에, 저희 집엔 온갖 신문과 교육자료로 가득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것 하나를 목표로 세상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그 때쯤, 아직 6기의 학생을 모집할 때였고 (일년에 2번씩 학생들을 보냄), 미국 정부에서 J-1비자를 외국학생에게 부여해주고 무료로 미국 자원봉사 가정에 일년간 머물며 공립고등학교에 다닐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래도 비행기 삯이며, 생활비며, 또 미국 내 관리해주는 기관에 내는 소정의 기관비가 걱정이었지만, 어머니는 집안사정은 잠시 접어둔 채 프로그램 소갯글에 눈이 휘둥그래 저를 위해 '그래 한번 테스트 보고, 합격하면 엄마가 꼭 보내줄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XX례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테스트와 인터뷰를 치려고 모인 백 명 가량의 학생들 중 10명중에 들어 합격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유학의 길로 오르게됬지요.  미국에 온 이후로 2년 동안 어머니는 저를 위해 힘들게 일하셨습니다. 제가 불효자이죠...... 남들이 보면 돈 없는 집에서 잘하는 꼴이다.. 하고 비웃을 일일지 몰라도, 어머니는 제게 '네가 성공하는 게 엄마한테 보답하는 길이야. 열심히 하거라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도록 너자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성공하거라.'라고 말씀하셨죠. 유학의 첫해에, 전 하늘의 축복인지, 정말 가족 같은 미국 분을 만나, 지금은 저의 미국어머니가 되신 분과 정해진 1년보다 한 해를 더 보내며, 고등학교를 일찍 졸업했습니다.  졸업 전 어머니께서, 어느 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라고 하시더군요. 물론 저도 정말 정말 원했구요 철없이...... 그저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용서되리라 믿었습니다....

 

정말 유학에 대해선 그저 신문기사만 보고 간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미국 수능 (SAT)란 존재에 대해 알고, 미친 듯이 대학입시에 들어갔습니다.  3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필수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고, 원서를 쓰고 구비서류를 준비하고, 상담하고, ...... 그렇게 보내고선, 여러 학교들에 합격을 했습니다.  어떤 학교는 매년 총장장학금으로 약400만원씩 4년간 준다고 오라고 했으나, 그 장학금을 뺀 학비마저 너무 비싸 못 가고, 물론 가고 싶었던 공대는 엄두도 못 내고, 제 미국양어머니와 다시 1년을 더 살며 그 근처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1학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곤 이대로 그 학교에 있으면, 여태 미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 쳤던 시간들이 지방 대라는 개념으로 파묻힐 것 같아, 꼭 편입을 해서, 제가 가고 싶었던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결심으로 열심히 편입준비를 했습니다.

또다시 3개월 가량의 시간만 있었던 저는 (원서가 대개 12월 1월 마감인지라..),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 그 원했던 학교에 다시 합격하고, 지금 이 학교, 미시건 주립대 물리학도 2학년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원하는 곳에 드디어 왔긴 하지만, 학비의 엄청난 액수가 제 목을 졸라오고 있습니다.  물론 알고는 있었습니다. 액수가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번 여름 동안 쉴 새 없이 아침 7시에 나가 밤 11시에 어머니와 같이 집에 들어오면서 주말도 없이, 12그룹이나 되는 아이들을 개인과외와 그룹과외를 하며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턱도 없이 모자라더군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 동안 어머니의 고통과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며, '내가 정말 보호막 속에서 살았구나. 내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세상의 쓴맛도 단맛도 모르는 어린애였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돈이란 것,, 이렇게 저의 어머니며 오빠며, 저를 이렇게 평생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

어떡해야 이 실마리를 풀고 여기서 하던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도통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포기란 글자, 정말 싫습니다.. 그 치만, 자꾸 떠오르는......

포기하면, 이건 그 동안 어머니가 저에게 들이셨던 정성과 시간, 노력, 그리고, 기대를 모두 저버리고, 저 또한 앞날을 캄캄한 채로 남겨두고 어머니께 더 큰 불효를 저지르는 짓이기에...... 포기, 절대 안됩니다.. 절대...... 혼자 외치는 이 기분...... 여러 분들한테 도와달라고 편지를 써 요청했으나, 대답하나 없더군요.. 대답하나..

그분들은 이 기분이 어떤 기분일지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카락을 모두 뽑아내는 것 같은 쓰라린 고통......걱정, 불안, 초조...... 차라리 그 돈 많은 분들이 '우리는 못 도와주겠소'라고 한마디라도 한다면 체념이라도 할 텐데. 그저 무관심 무반응 ...... 애타는 것이 뭔지 정말 보여드리고 싶습니다.그 분들에게...

 

끝까지 도전해볼 겁니다.. 꼭 성공을 해야 하기에, 원하는 꿈을, 계획해 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뛸 것 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라도 조금 달래어 지는군요..

인터넷이란 힘을 빌려, 부탁 하나 남기겠습니다.

 

저를 위해 후원을 해주 실 분들을 찾습니다. 또한 제 멘터가 되 주실 분을 찾습니다.

한번의 큰 결심과 도움으로, 한 젊은 학생의 희망의 횃불이 되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꼭 성공하여서 그 뜻을 본받아 저 또한 저 같은 학생들을 돕는 삶을 사는,

그 도움 릴레이의 2번째 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