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아직 죽지는 않겠지만 그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가 걸린 병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기에 희망을 더 잃게 만든다. 그래도 아직 조금은 더 살고 싶다. 난 아직 젊은데..아직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러나 죽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떠나야겠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알고 지내온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들만을 간직한채 그렇게 웃으며 떠나야 겠다.그들이 남은 인생을 나대신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 내년까지만 살고싶다.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올해 죽으면 우리형이 얼마나 슬플까? 한해에 장례식을 2번이나 하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어머니는 원래 없는 사람이니까 상관없지만..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를 보며 사탕 사줄테니 따라가자고 손짓을 하였다.3일 연속 그 꿈을 꾸었다. 너무 겁이 났다.아버지는 나까지 함께 저세상으로 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일년전 꿈에서 저승사자를 만났다. 그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너는 이제 갈때가 되었으니 나를 따라가자고.. 꿈이었지만 너무 억울해서 내가 말했다.잘못 온 거 아니냐고.. 내 나이 아직 30살도 안되었는데 왜 벌써 데리러 왔냐고 못 간다고 그랬다. 저승사자는 책을 훑어보더니 잘못 찾아왔다면서 곧 데리러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꿈..내가 정말 갈때가 된 것일까? 난 기독교를 믿는데..개꿈일까? 올해 내가 죽으면 형은 슬퍼 가슴이 찢어지겠지..그럼 내 가슴이 아파 떠나지도 못하고 귀신이 되어 돌아다닐 것 같다.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되는데.. 일년동안의 수차례의 병원출입을 통해 이제 가진 돈도 바닥이 나서 이번에 퇴원을 하더라도 병원비를 어떻게 내야할지 막막하다.그게 오히려 더 무서운 일이라나? 주위에 친구들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한다. 평소에 돈을 빌려주면 빌려주던 나이기에,없어도 있는 자식으로 다들 알고 있었기에 사실은 수급자 아들로 차비도 없어 먼길을 통학해야 했던 나인데.. 게다가 빌려준 돈도 50만원이 넘는데 어찌된게 갚은 생각이 없는 3명.. 이럴때 갚아주면 좋을텐데..이야기해도 자기형편 어렵다는데 할말이 없다. 그 돈만 있어도 퇴원은 가능할 것 같은데 딴사람에게 돈 빌리자니 정말 부끄럽다. 형에게 말하면 될 것도 같지만 너무 미안해서 말도 못하겠다. 벌써 병원비로 300만원이나 내 주었다.또 손을 벌리면 난 뭐가 되는가.. 빨리 나아서 직장만 얻으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의 돈이거늘.. 아픈 사람에게는 적은 액수의 돈도 너무 힘겨운 골치로 다가온다. 입원한지 일주일.. 약의 부작용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다가 약을 끊고 검사를 하고 해독제를 먹고 이제야 걸을 수 있고 이렇게 겜방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약을 시도해야 한다.난 신경이 예민해서인지 몸에 받지 않는 약을 먹으면 2시간이 지나면 오바이트가 바로 나온다.이제까지 바꾼 약이 수차례.. 겨우 맞는 약을 찾아 퇴원해서 집으로 가면 다시 내성이 생겨 부작용이 생기고..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앗다. 약의 부작용으로 정신적인 문제로 짜증과 아무한테나 시비도 걸게 되고 우울증 증세로 하루 반나절을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 나서 울었다.왜 우는지 몰라 웃으면서.. 내시경,골수검사,MRI,CT검사는 물론이고 피검사,엑스레이는 기본 뇌파검사,신경생리검사,안과검사,암 조직검사,발진도 났고 다리 근육통에 저혈압으로 기어다닌 적도 있다.혈압이 60-40까지 내려갔으면 이해할거다.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인데 감기걸리면 38도는 기본,거기에 밥먹고 약 먹으면 38도 누워 이불 덮으면 40도까지 올라가는 내 몸에 이제는 적응이 되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고열로 머리가 아프고 코피도 나고 열이 39도 이상 나와도 따뜻하다고 느꼈을 정도니.. 38도가 나오면 오히려 기뻤다.높은것도 아니라고 웃으며 간호사에게 이야기 하였다. 몸이 좋아져서 집에가서 볼일보러 버스를 타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중간에 내려야했다. 내려서 오바이트를 하였다.약이 독해서 제때 밥과 약을 먹지 않으면 그랬다. 약을 타러 먼 도시까지 가면서 중간에 내린적도 있다.버스비도 비싼데.. 나의 한달 수입은 33만원.수급자 생계비가 고작인데..오바이트가 나도 내리지 말걸 하고 후회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버스를 타면 검은 봉지를 가지고 탑승하였다.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 몇달전 알바라도 해서 약값및 검사료를 보태보자고 시작한 알바.. 알바 며칠만에 입에서 피가 나오고 어지러워 쓰러질뻔 하였다. 다행히 다른 사람이 안 볼때 그랬고 볼때는 청소도 열심히 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맞았다. 나이가 많은데도 아주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1달도 안도 그만두어야 했다. 병원에 가니 병이 심해진 것이었다.그 후로 몇달 고생했다. 돈 몇푼 벌자고 시작한 알바였는데 핸드폰 값 2달치 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아니 오히려 약값및 병원비 차비가 들었으니 바보짓 한 것이다. 그 뒤로는 무리하지 않고 생활하려고 했지만 약의 부작용은 계속 나타나고 합병증으로 이곳저곳이 돌아가며 아팠다.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200만원.. 검사료도 나 나가고 이번달에는 영구임대 아파트 임대료,인상분및 핸드폰 값 및 각종 세금도 못내어 잘하면 쫒겨 나게 생겼다.지금 병원에 있으니 집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난 영구임대아파트에 혼자 산다.아버지는 몇달전에 돌아가셨고 형은 얼마전에 다른 도시로 직장문제로 이사를 간 상태..아버지의 유품을 치우다 보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살아보려 했는데 병이 악화되어 이렇게 입원을 또 하게 되니.. 죽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지혜롭게 찾고 말겠다.내 주위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오늘같은 몸 상태만 되어도 참 좋을텐데..앞으로 더 좋아지면 참 좋겠다. 나중에는 건강해져서 일도 하고 돈도 벌어서 형에게 빌린돈도 갚고 좋은 것도 사주고 싶다. 그리고 이 좋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 풍경들도 사진에 담으면서 느끼고 싶다. 그런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겠다.
조금만 더 살고 싶은데..
살고 싶다.. 아직 죽지는 않겠지만 그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가 걸린 병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기에 희망을 더 잃게 만든다.
그래도 아직 조금은 더 살고 싶다. 난 아직 젊은데..아직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러나 죽어야 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행복하게 떠나야겠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알고 지내온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들만을 간직한채
그렇게 웃으며 떠나야 겠다.그들이 남은 인생을 나대신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
내년까지만 살고싶다.올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올해 죽으면 우리형이 얼마나 슬플까?
한해에 장례식을 2번이나 하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어머니는 원래 없는 사람이니까 상관없지만..
얼마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데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를 보며 사탕 사줄테니 따라가자고 손짓을 하였다.3일 연속 그 꿈을 꾸었다.
너무 겁이 났다.아버지는 나까지 함께 저세상으로 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일년전 꿈에서 저승사자를 만났다. 그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나에게 와서 말했다.
너는 이제 갈때가 되었으니 나를 따라가자고..
꿈이었지만 너무 억울해서 내가 말했다.잘못 온 거 아니냐고..
내 나이 아직 30살도 안되었는데 왜 벌써 데리러 왔냐고 못 간다고 그랬다.
저승사자는 책을 훑어보더니 잘못 찾아왔다면서 곧 데리러 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 꿈..내가 정말 갈때가 된 것일까? 난 기독교를 믿는데..개꿈일까?
올해 내가 죽으면 형은 슬퍼 가슴이 찢어지겠지..그럼 내 가슴이 아파 떠나지도 못하고
귀신이 되어 돌아다닐 것 같다.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되는데..
일년동안의 수차례의 병원출입을 통해 이제 가진 돈도 바닥이 나서 이번에 퇴원을 하더라도
병원비를 어떻게 내야할지 막막하다.그게 오히려 더 무서운 일이라나?
주위에 친구들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한다.
평소에 돈을 빌려주면 빌려주던 나이기에,없어도 있는 자식으로 다들 알고 있었기에
사실은 수급자 아들로 차비도 없어 먼길을 통학해야 했던 나인데..
게다가 빌려준 돈도 50만원이 넘는데 어찌된게 갚은 생각이 없는 3명..
이럴때 갚아주면 좋을텐데..이야기해도 자기형편 어렵다는데 할말이 없다.
그 돈만 있어도 퇴원은 가능할 것 같은데 딴사람에게 돈 빌리자니 정말 부끄럽다.
형에게 말하면 될 것도 같지만 너무 미안해서 말도 못하겠다.
벌써 병원비로 300만원이나 내 주었다.또 손을 벌리면 난 뭐가 되는가..
빨리 나아서 직장만 얻으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의 돈이거늘..
아픈 사람에게는 적은 액수의 돈도 너무 힘겨운 골치로 다가온다.
입원한지 일주일..
약의 부작용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도 못하다가 약을 끊고 검사를 하고 해독제를 먹고
이제야 걸을 수 있고 이렇게 겜방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약을 시도해야 한다.난 신경이 예민해서인지 몸에 받지 않는 약을 먹으면
2시간이 지나면 오바이트가 바로 나온다.이제까지 바꾼 약이 수차례..
겨우 맞는 약을 찾아 퇴원해서 집으로 가면 다시 내성이 생겨 부작용이 생기고..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죽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앗다.
약의 부작용으로 정신적인 문제로 짜증과 아무한테나 시비도 걸게 되고
우울증 증세로 하루 반나절을 이유를 알 수 없이 눈물이 나서 울었다.왜 우는지 몰라 웃으면서..
내시경,골수검사,MRI,CT검사는 물론이고 피검사,엑스레이는 기본
뇌파검사,신경생리검사,안과검사,암 조직검사,발진도 났고 다리 근육통에
저혈압으로 기어다닌 적도 있다.혈압이 60-40까지 내려갔으면 이해할거다.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인데 감기걸리면 38도는 기본,거기에 밥먹고 약 먹으면 38도
누워 이불 덮으면 40도까지 올라가는 내 몸에 이제는 적응이 되었지만 너무 힘들었다.
고열로 머리가 아프고 코피도 나고 열이 39도 이상 나와도 따뜻하다고 느꼈을 정도니..
38도가 나오면 오히려 기뻤다.높은것도 아니라고 웃으며 간호사에게 이야기 하였다.
몸이 좋아져서 집에가서 볼일보러 버스를 타면 컨디션이 안 좋으면 중간에 내려야했다.
내려서 오바이트를 하였다.약이 독해서 제때 밥과 약을 먹지 않으면 그랬다.
약을 타러 먼 도시까지 가면서 중간에 내린적도 있다.버스비도 비싼데..
나의 한달 수입은 33만원.수급자 생계비가 고작인데..오바이트가 나도 내리지 말걸 하고 후회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버스를 타면 검은 봉지를 가지고 탑승하였다.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 몇달전 알바라도 해서 약값및 검사료를 보태보자고 시작한 알바..
알바 며칠만에 입에서 피가 나오고 어지러워 쓰러질뻔 하였다.
다행히 다른 사람이 안 볼때 그랬고 볼때는 청소도 열심히 하고 상냥하게 손님을 맞았다.
나이가 많은데도 아주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1달도 안도 그만두어야 했다.
병원에 가니 병이 심해진 것이었다.그 후로 몇달 고생했다.
돈 몇푼 벌자고 시작한 알바였는데 핸드폰 값 2달치 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아니 오히려 약값및 병원비 차비가 들었으니 바보짓 한 것이다.
그 뒤로는 무리하지 않고 생활하려고 했지만 약의 부작용은 계속 나타나고
합병증으로 이곳저곳이 돌아가며 아팠다.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200만원..
검사료도 나 나가고 이번달에는 영구임대 아파트 임대료,인상분및 핸드폰 값 및 각종 세금도
못내어 잘하면 쫒겨 나게 생겼다.지금 병원에 있으니 집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난 영구임대아파트에 혼자 산다.아버지는 몇달전에 돌아가셨고 형은 얼마전에 다른 도시로
직장문제로 이사를 간 상태..아버지의 유품을 치우다 보면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살아보려 했는데 병이 악화되어 이렇게 입원을 또 하게 되니..
죽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지혜롭게 찾고 말겠다.내 주위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오늘같은 몸 상태만 되어도 참 좋을텐데..앞으로 더 좋아지면 참 좋겠다.
나중에는 건강해져서 일도 하고 돈도 벌어서 형에게 빌린돈도 갚고 좋은 것도 사주고 싶다.
그리고 이 좋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그 풍경들도 사진에 담으면서 느끼고 싶다.
그런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