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처럼 이제 겨우 스물네살된 건장한 청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백수&백조님들께.. 님들도 할수 있다라는걸..알려드리기위해!! 세상 많이 산놈아니지만.. 님들보다 인생선배도 아니지만.. 여기에 쓰신 글들을 읽으면서.. 저보다 나이 많으신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한심하고.. 안타까움에 이렇게 한번 글남겨 봅니다.. 절대 제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올리는 글은 아니라고 밝히고 싶네요 ^^* 일단 제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 태어난지 정확히 21개월만에 저희 부모님 두분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저를 대려간다는 조건으로 10원의 위자료도 없이 저를 데리고 아버지댁을 나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돈을 버셔야 했기때문에.. 저는 초등학교졸업을 할때까지 외할머니 댁에서 커왔고.. 중학생이 되면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3년만 아버지댁에 가있으라며.. 돈벌어서 행복하게 살자며.. 그렇게 아버지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대구 지역에 내노라 할정도로.. 부자십니다.. 아버지.아줌마.저.. 이렇게 3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죠.. 저희 아버지 평상시에는.. 세상에서 최곱니다.. 자상하시고.. 돈도 많이 주시고.. 다정하시고.. 근데 문제는 술만 드시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술드시고 들어오셔서 새벽 3~4시에 들어오셔서는 자고 있는 저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들어오기도 전에 자는 호로새끼라고.... 술드시는날마다 맞았습니다.. 안자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이유로 때리십니다.. 지난일을 들먹이면서.. 무슨 이유를 만들어내서 때리십니다.. 공부를 안한다.. 엄마를 만나러 갔다..등등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렇게 미친듯이 맞고 커왔습니다.. 어느정도로 맞냐하면은.. 제머리에 상처가 있습니다 16바늘 꿰매었습니다.. 아버지가 무방비상태로 자고 있는 저를 에프킬라통으로 찍어서 찢어졌습니다.. 허벅지에는 던진 가위에 꽂혀서 생긴 상처도 있습니다.. 손에 잡히는건 일단 던지고 봅니다.. 그게 설사 칼이든 가위든 에프킬라통이든 뭐든지간에..일단 던집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곳은 오로지 학교 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170/65로 또래들중에 덩치가 있는편이고 매일 학교에 나가면 애들괴롭히고 때리고 돈뺏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말하는 일진이란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가출.술.담배.성관계까지 배우면서.. 제가 생각해도 완전 양아치짓을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어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고.. 3년동안 생겨온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생각해보면.. 고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학교에서 애들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것을 반복하며 살았고.. 1998년 9월 2학기 시작과동시에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할짓도 없었고.. 집에도 있기 싫었고.. 영웅심에 깡패라는걸 했습니다.. 깡패라고 해봐야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거 전혀 없습니다.. 주말에 다른 동내 사람들이랑 축구나 하고.. 동내 순찰 다니고.. 동내 업소들 뒤봐주고.. 수금하고.. 고작 그게 전부였죠.. 그러다가 98년 12월.. 징역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구치소에서 4개월 미결수 기간을 거치고 소년분류심사원에서 3주.. 재판을 받고 6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가서 4개월 20일을 살고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살고 나와서도 역시나.. 깡패 생활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어느날.. 어머니께서 한통의 문자를 남기시고는 저를 버리시고 어디론가 가버리셨습니다.. 엄만내아들이깡패인걸용납할수가없어서떠난다.. 니스스로 떳떳해졌을때 엄마를 찾아라... 이문자와함께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되었고.. 세상엔 이제 저혼자 뿐이었습니다.. 2000년 밀레니엄이라고 교육청에서 모든 자퇴생들을 복학 시켜준다는 공고를 보고 복학 신청을 했었고 20살의 나이에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을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제가 깡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저와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해선 학교 적응이 힘들겠다 생각해서.. 일부러 애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1학년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죄로 또다시 징역을 들어갔습니다.. 제가 폭력을 행사한건 전혀 없었지만.. 대한민국 희안한 법상으로 폭행하는 현장 뒤에서 말리지 않고 바라만 보고있어도.. 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공범이 되어버립니다.. 형님이 다른사람을 구타 하는데 어떻게 말릴수가 있겠습니까... 구치소에서 4주..소년분류심사원에서 3주..재판을 받고 무죄처분을 받았습니다... 학교에는 아버지가 돈을 써서 짤리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2학년으로 어렵게 올라가고.. 3학년친구들이 모두 졸업하고 없으니.. 적응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2학년이 된지 한달만에 학교를 다시 그만두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구미라는 도시로 도망을갔습니다 가지고 있던돈 23만원 입고있는 옷한벌.. 그게 제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당장에 숙식을 해결해야했고 숙식제공을 해주는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식당일을 했고.. 오후 8시 30분에서 새벽 2시까지 주점웨이터를 했고 새벽 2시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 미친듯이 돈만 벌었고.. 입을 옷을 사는거 이외에 다른어디에도 돈은 쓰지 않았습니다. 90kg였던 몸무게가 58kg까지 빠졌습니다.. 몸이 너무 혹사를 당해 쓰러지고 병원에 2주일동안 입원을 했었습니다.. 어느정도 돈도 모였고.. 월세방을 하나 잡았습니다.. 그시절에..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점에 일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호스트빠에 출근을 하고 있었구요 소위말하는 빠돌이 빠순이 커플이었습니다.. 비록 더러운 일을 했지만.. 정말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여자가 어머니가 아프다고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를 몇번 뵌적이 있는데.. 몸이 약하셔서 병원을 상당히 자주 가십니다.. 전화가 와서 하는말이.. 어머니께서 백혈병에.. 걸리셨다고.. 맞는 골수는 있는데.. 수술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제통장에 있는 1400만원중에 1200만원을 빌려주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죠..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때당시 정말 잡아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습니다.. 그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으니깐은요.. 지금이라도 만나게되면..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한거냐 내돈을 사랑한거냐..... 그렇게 저에게 남은돈 200만원과 방보증금 300.... 제나이 21살 12월에 병역특례업체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력미달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이었는데.. 도저히 공익생활을 할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2시간 30분을 일하는 2교대 근무였고.. 10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이었습니다.. 한달에 82만원 1년 천만원짜리 적금을 들었고.. 남은 18만원으로.. 휴대폰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썼습니다.. 남들은 저를 "돈환" 이라고 불렀죠.. 좀 있어보이는 별명인지 몰라도 그냥 단순히 "돈에 환장한놈"의 줄임말일 뿐입니다.. 그렇게 미친듯이 돈을 모았고 2년2개월동안 특례생활을 하면서 적금과 퇴직금을 합쳐 2500만원을 모았습니다.. 첨에 가지고 있던돈과 좀 쓴돈을 제외하고 재대를 할때 잔고가 3천만원정도였습니다.. 특례생활을 하면서..펀드매니저라는게 너무너무 되보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돈을 아끼기위해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돈받으면서 공부 했습니다.. 제돈을 10원도 들이지 않은체로.. 전형적인 B형이기에 무언가 한군대에 꽂히면은 앞뒤안가리고 몸을혹사 시켜서라도 끝을 보고마는 그런 성격입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고.. 올해 3월 신한은행의 신입사원을 뽑는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펀드쪽은 아니지만은.. 그냥 제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학력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 이게 제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단하나의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제외하면요.. 재수가 좋았던걸까요?? 다른 대졸자들을 이기고 59:1이라는 경쟁률 속에서 살아남아 대한민국 최고의 연봉이라는 신한은행에 당당히 입사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입사 하게 되면서.. 저희 어머니를 찾아뵈었고.. 어머니는 저를 용서 해주셨습니다.. 특례시절에 만난 여자친구와 내년이면 결혼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이직장도 평생 다닐건 아닙니다.. 남들은 저보고 미첬다고 합니다.. 그직장 왜그만두냐고... 제꿈은 펀드매니저가 되는겁니다.. 이곳에서 딱 5년만 벌어서 유학도 좀 다녀보고.. 대학도 가보고 제꿈을 위해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나이가 30이되든 40이 되든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은게 제 욕심입니다.. 지금 제글을 보시는분들중에 90%이상이 저보다 잘나시고 학벌 좋으시고.. 학창시절 곱게 보내시고 따뜻한 가정에서 사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님들보다 훨씬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었지만.. 내 삶에 IF 라는 단어는 없다 라는 좌우명 하나로 이렇게 살아가는 놈도 있습니다.. 어떤분들 정말 벌써 포기해버리고..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채.. 전문직..정직원.. 바라는분들 그런글들 참 많이 본것 같습니다.. 제글을 보고 무언가 조금이라도 느꼇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어린나이지만.. 님들보다 잘난거 하나도 없지만.. 제가 이렇게 살아온 방법을 말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좀 드리고 싶네요.. 대한민국 백수&백조 여러분 힘내십시오!! 아직 결코 늦은게 아닙니다...
제나이 24살에 4000만원을 모았습니다..
제목에서 처럼 이제 겨우 스물네살된 건장한 청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백수&백조님들께.. 님들도 할수 있다라는걸..알려드리기위해!!
세상 많이 산놈아니지만.. 님들보다 인생선배도 아니지만..
여기에 쓰신 글들을 읽으면서.. 저보다 나이 많으신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한심하고.. 안타까움에 이렇게 한번 글남겨 봅니다.. 절대 제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 올리는 글은 아니라고 밝히고 싶네요 ^^*
일단 제가 살아온 과정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게 태어난지 정확히 21개월만에 저희 부모님 두분 이혼을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저를 대려간다는 조건으로 10원의 위자료도 없이 저를 데리고 아버지댁을 나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돈을 버셔야 했기때문에.. 저는 초등학교졸업을 할때까지 외할머니 댁에서
커왔고.. 중학생이 되면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3년만 아버지댁에 가있으라며..
돈벌어서 행복하게 살자며.. 그렇게 아버지 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대구 지역에 내노라 할정도로.. 부자십니다.. 아버지.아줌마.저.. 이렇게 3식구가
같이 살게 되었죠.. 저희 아버지 평상시에는.. 세상에서 최곱니다.. 자상하시고.. 돈도 많이 주시고..
다정하시고.. 근데 문제는 술만 드시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술드시고 들어오셔서
새벽 3~4시에 들어오셔서는 자고 있는 저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들어오기도 전에 자는 호로새끼라고....
술드시는날마다 맞았습니다.. 안자고 기다렸습니다.. 다른 이유로 때리십니다..
지난일을 들먹이면서.. 무슨 이유를 만들어내서 때리십니다.. 공부를 안한다..
엄마를 만나러 갔다..등등의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렇게 미친듯이 맞고 커왔습니다..
어느정도로 맞냐하면은.. 제머리에 상처가 있습니다 16바늘 꿰매었습니다..
아버지가 무방비상태로 자고 있는 저를 에프킬라통으로 찍어서 찢어졌습니다..
허벅지에는 던진 가위에 꽂혀서 생긴 상처도 있습니다.. 손에 잡히는건 일단 던지고 봅니다..
그게 설사 칼이든 가위든 에프킬라통이든 뭐든지간에..일단 던집니다.. 그렇게 맞으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곳은 오로지 학교 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170/65로 또래들중에 덩치가 있는편이고
매일 학교에 나가면 애들괴롭히고 때리고 돈뺏는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위말하는 일진이란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 가출.술.담배.성관계까지 배우면서.. 제가 생각해도 완전 양아치짓을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어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고.. 3년동안 생겨온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지금생각해보면.. 고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학교에서 애들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것을 반복하며 살았고..
1998년 9월 2학기 시작과동시에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할짓도 없었고.. 집에도 있기 싫었고.. 영웅심에 깡패라는걸 했습니다..
깡패라고 해봐야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거 전혀 없습니다..
주말에 다른 동내 사람들이랑 축구나 하고.. 동내 순찰 다니고.. 동내 업소들 뒤봐주고..
수금하고.. 고작 그게 전부였죠.. 그러다가 98년 12월.. 징역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구치소에서 4개월 미결수 기간을 거치고 소년분류심사원에서 3주.. 재판을 받고 6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가서 4개월 20일을 살고 그렇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살고 나와서도 역시나.. 깡패 생활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어느날.. 어머니께서 한통의 문자를 남기시고는 저를 버리시고 어디론가 가버리셨습니다..
엄만내아들이깡패인걸용납할수가없어서떠난다.. 니스스로 떳떳해졌을때 엄마를 찾아라...
이문자와함께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되었고.. 세상엔 이제 저혼자 뿐이었습니다..
2000년 밀레니엄이라고 교육청에서 모든 자퇴생들을 복학 시켜준다는 공고를 보고 복학 신청을 했었고
20살의 나이에 다시 고등학교 1학년을 다녔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말하지 않아도.. 제가 깡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저와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해선 학교 적응이 힘들겠다 생각해서.. 일부러 애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1학년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죄로 또다시 징역을 들어갔습니다..
제가 폭력을 행사한건 전혀 없었지만.. 대한민국 희안한 법상으로 폭행하는 현장 뒤에서
말리지 않고 바라만 보고있어도.. 공포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하에 공범이 되어버립니다..
형님이 다른사람을 구타 하는데 어떻게 말릴수가 있겠습니까...
구치소에서 4주..소년분류심사원에서 3주..재판을 받고 무죄처분을 받았습니다...
학교에는 아버지가 돈을 써서 짤리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2학년으로 어렵게 올라가고..
3학년친구들이 모두 졸업하고 없으니.. 적응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2학년이 된지 한달만에
학교를 다시 그만두었습니다..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에 구미라는 도시로 도망을갔습니다
가지고 있던돈 23만원 입고있는 옷한벌.. 그게 제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당장에 숙식을 해결해야했고
숙식제공을 해주는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태어나서 처음으로 제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8시에서 오후 8시까지 식당일을 했고.. 오후 8시 30분에서 새벽 2시까지 주점웨이터를 했고
새벽 2시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간 미친듯이 돈만 벌었고.. 입을 옷을 사는거 이외에 다른어디에도 돈은 쓰지 않았습니다.
90kg였던 몸무게가 58kg까지 빠졌습니다.. 몸이 너무 혹사를 당해 쓰러지고 병원에 2주일동안
입원을 했었습니다.. 어느정도 돈도 모였고.. 월세방을 하나 잡았습니다.. 그시절에.. 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점에 일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호스트빠에 출근을 하고 있었구요
소위말하는 빠돌이 빠순이 커플이었습니다.. 비록 더러운 일을 했지만.. 정말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여자가 어머니가 아프다고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를 몇번 뵌적이 있는데..
몸이 약하셔서 병원을 상당히 자주 가십니다.. 전화가 와서 하는말이.. 어머니께서 백혈병에..
걸리셨다고.. 맞는 골수는 있는데.. 수술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제통장에 있는 1400만원중에 1200만원을 빌려주었습니다...
그걸로 끝이었죠..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가 않습니다.. 그때당시 정말 잡아서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맙습니다.. 그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으니깐은요..
지금이라도 만나게되면.. 정말 물어보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한거냐 내돈을 사랑한거냐.....
그렇게 저에게 남은돈 200만원과 방보증금 300....
제나이 21살 12월에 병역특례업체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력미달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이었는데.. 도저히 공익생활을 할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2시간 30분을 일하는 2교대 근무였고.. 10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이었습니다..
한달에 82만원 1년 천만원짜리 적금을 들었고.. 남은 18만원으로.. 휴대폰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썼습니다.. 남들은 저를 "돈환" 이라고 불렀죠.. 좀 있어보이는 별명인지 몰라도
그냥 단순히 "돈에 환장한놈"의 줄임말일 뿐입니다.. 그렇게 미친듯이 돈을 모았고 2년2개월동안
특례생활을 하면서 적금과 퇴직금을 합쳐 2500만원을 모았습니다.. 첨에 가지고 있던돈과 좀 쓴돈을
제외하고 재대를 할때 잔고가 3천만원정도였습니다.. 특례생활을 하면서..펀드매니저라는게 너무너무
되보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돈을 아끼기위해 정말 싫었지만... 아버지집으로 다시
들어가서 돈받으면서 공부 했습니다.. 제돈을 10원도 들이지 않은체로..
전형적인 B형이기에 무언가 한군대에 꽂히면은 앞뒤안가리고 몸을혹사 시켜서라도 끝을 보고마는
그런 성격입니다.. 정말 미친듯이 공부를 했고.. 올해 3월 신한은행의 신입사원을 뽑는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펀드쪽은 아니지만은.. 그냥 제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학력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 이게 제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단하나의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운전면허증을 제외하면요.. 재수가 좋았던걸까요?? 다른 대졸자들을 이기고
59:1이라는 경쟁률 속에서 살아남아 대한민국 최고의 연봉이라는 신한은행에 당당히
입사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입사 하게 되면서.. 저희 어머니를 찾아뵈었고.. 어머니는 저를
용서 해주셨습니다.. 특례시절에 만난 여자친구와 내년이면 결혼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이직장도 평생 다닐건 아닙니다.. 남들은 저보고 미첬다고 합니다..
그직장 왜그만두냐고... 제꿈은 펀드매니저가 되는겁니다.. 이곳에서 딱 5년만 벌어서
유학도 좀 다녀보고.. 대학도 가보고 제꿈을 위해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나이가 30이되든 40이 되든 끝까지 도전해보고 싶은게 제 욕심입니다..
지금 제글을 보시는분들중에 90%이상이 저보다 잘나시고 학벌 좋으시고.. 학창시절 곱게 보내시고
따뜻한 가정에서 사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님들보다 훨씬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았었지만..
내 삶에 IF 라는 단어는 없다 라는 좌우명 하나로 이렇게 살아가는 놈도 있습니다..
어떤분들 정말 벌써 포기해버리고..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은채.. 전문직..정직원.. 바라는분들
그런글들 참 많이 본것 같습니다.. 제글을 보고 무언가 조금이라도 느꼇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어린나이지만.. 님들보다 잘난거 하나도 없지만.. 제가 이렇게 살아온 방법을 말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좀 드리고 싶네요..
대한민국 백수&백조 여러분 힘내십시오!! 아직 결코 늦은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