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26)

운운200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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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소리(3)-

 

 

 

 


웅성웅성-

지금 하북성 중앙에 위치한 손님을 맞이하는 빈전은, 방문한 이들로 인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일렬로 쭉 늘어선 그들은 다들 손에 한 보따리씩 짐을 들고 있었다. 어떤 이는 겉으로 보기에도 번쩍 번쩍 빛이 나는 누런 비단 보퉁이를 들고 있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작은 궤짝을 품안에 소중히 감싸 안고 있기도 했다. 간혹 기이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새어나와 지켜보는 이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꺄르르르-

한 무리의 꼬마들이 연신 웃음을 흩날리며, 이리저리 틈새를 비집고 도망 다니는 중이다.


“이 놈들! 가주님이 보고 계시거늘~! 썩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할까?!”

“싫어요. 태어나서 처음 하는 구경거리인걸요? 킥킥킥”


20년 만에 처음으로 열린 대외적인 행사인 만큼, 이곳을 찾은 손님들뿐만 아니라 하북팽가의 가솔들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방문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뛰어노는 아이들이나, 그를 말리는 어른들이나 모두들 이 신기한 방문객들과 진귀한 선물들에게서 눈을 때지 못했다. 이번 행사는 마신의 강림 이후 20년 동안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던 하북팽가가, 가주의 생일연을 출발점으로 대외적인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신호탄과 같았다.

따라서 온 무림의 이목이 이 곳 하북성에 집중된 터였다. 은밀한 정탐이나 혹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무림의 각 중소문파들과 세가들은, 오늘 이곳 하북팽가를 찾았다.


  북적이는 빈전의 한 가운데에는 비교적 높은 제단이 있었고, 그리고 그 위에는 큰 보료가 놓여져 있었다. 지금 그 녹색의 보료에는 팽용화가 앉아 손님들이 전하는 물건을 받으며, 넓은 빈전을 한눈에 굽어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용화의 옆에는 노부가 흐뭇한 얼굴로 뒷짐을 진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은 남궁세가에서 보내온 비단이옵니다.”


보료 바로 아래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물건을 받아들며 손님께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하고는, 돌아서서 팽용화를 향해 아뢰었다.


“아아... 고마운 일이다. 빛깔이 참으로 곱구나. 그래 감사하다고 꼭 전하여주게.”

“예에, 가주어른. 저희 남궁가에서만 전해져 내려오는 공예법으로 여섯 달에 걸쳐 수를 놓은 귀한 물건입지요. 저희 남궁가주 어른께서도 급한 일이 계시어 참석하지는 못하사오나, 축하의 말씀을 꼭 아뢰어라 하셨습니다.”

“그래. 고맙네. 가주께도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시게나.”


노인은 남궁가에서 받아든 물건을 다시 곱게 여민다음, 저만큼 떨어진 재단의 뒤쪽에서, 장부를 들고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사내를 가리키며, 곁에선 시비에게 작게 일렀다.


“집주 어른께 가져다 드리어라.”

“예에. 총관나리!”


시비는 품안의 비단 보퉁이를 소중히 안아들고는, 쪼르르 집주에게로 달려갔다. 집주는 호탕한 얼굴로 웃으며 비단을 장부에 기록하고, 적절한 장소에 옮기도록 지시를 내렸다.


“자자 다음 분 드시지요!”


검은 가죽으로 두 팔목과 양쪽 종아리를 덧댄 가벼운 경장차림의 여인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인의 뒤로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과 훤칠한 키의 장정이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사천당문의 설희라 하옵니다.”

“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당가의 설희라면 당 가주님의 셋째 따님이 아닌가?”


팽용화는 반가운 얼굴로, 보료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의 숙부인 노부도 이채로운 눈동자로 앞의 여인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젊은 여인의 뒤에 선 노인이, 흰 수염을 흩날리며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은색의 작은 상자가 들려져 있었다.


“팽가주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천세를 누리소서!”


노인은 축하의 인사와 더불어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눈이 시린 은으로 사방이 덧칠해져 있어 전체적으로 차가운 느낌을 주는 상자의 안은, 의외로 핏빛의 붉은 비단으로 덧대어져 정열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풍성한 붉은 비단의 한 가운데에는 옥으로 된 작은 호로병이 놓여져 있었다.


“이것은 저희 당가에서만 만들어 지는 독주이옵니다. 공력 증진에 큰 효과가 있지요.”

“그것이 말로만 듣던 사천화독주(火毒酒)인 모양이군. 내 오늘 크게 견문을 넓히네.”

“과찬이옵니다. 다만, 저희 세가에 액운이 들어 가주님께서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저희 셋째 아가씨께서 대신 오셨사옵니다.”

“그래, 나도 사천당문의 이야기를 은밀히 전해들은 바가 있네. 그래.. 당가주의 심려가 몹시 크시겠구나. 굳이 힘들여 오지 않아도 될 일을, 설희가 고생하였다.”

“아니옵니다. 팽가주님. 저희 당가와 팽가의 깊은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히 제가 찾아  뵈어야지요. 그런 말씀 마셔요.”

“그래, 기왕 힘들게 온 먼 길, 푹 쉬어 가도록 해라. 집주는 이리와 보게.”


뒤쪽에서 장부에 일일이 기입하며, 공물을 정리하고 있던 집주가 급히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주님!”

“여기 이분은 사천 당가의 설희 낭자이시네. 나의 아니지.. 우리 팽가의 귀한 손님이시지. 전망이 좋은 전각으로 따로 하나 내어 드리고, 머무르는바 불편함이 없도록 잘 돌보아 드리도록 하게나.”

“예에, 알겠습니다. 가주님!”


젊은 집주는 설희라는 당가의 아가씨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이름 그대로 눈꽃처럼 희고 고운 여인이었다. 서둘러 고개를 숙인, 순진한 청년- 집주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팽용화는, 급히 달려온 시비의 부름에 시선을 옮겼다.


“가주님, 공동파에서 손님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어디들 계시느냐?”


팽가주는 놀란 기색으로 서둘러 보료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의 뒤를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노부가 따랐다.


“저, 저기 서문탁 나리의 처소로 일단 먼저 발걸음 하셨습니다... 들리고 오신다고....”

“뭐야? 이런 방자한 놈들을 보았나!”


그녀의 곁에 서있던 노부가 자신의 두 주먹을 부딪치며, 발끈해서는 노성을 내질렀다.


“가주의 생일연에 참석하기 위함이고, 더군다나 하북성을 밟고자 한다면 가주에게 먼저 인사를 청하는 것이 당연한 예법이거늘! 어찌 이토록 너를 무시한다는 말이냐!”

“숙부님.....! 무언가 급하신 일이 있으신 게지요.”

“급한 일은 무슨! 지금 서가 놈도 아침부터 이 자리에 코빼기도 안보이지 않느냐!”


잔뜩 붉어진 얼굴의 팽가주는 서둘러 숙부에게 다가가, 슬며시 그의 팔을 잡아끌며 낮게 중얼거렸다.


“숙부, 보는 눈이 많습니다. 좌측으로 스무 걸음 북쪽만 해도 개방으로 보이는 자들입니다.

 언행을 낮추세요. 내부의 사정이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지요.”

“......!”


일단 분노를 거두어들인 노부는 용화가 말한 곳을 슬쩍 흘겨보았다. 놀랍게도 그녀의 말대로, 수십의 인파에 묻힌 그곳에는, 지저분한 행색을 하고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주워 먹고 있는 서너 명의 거지들이 눈에 띄었다. 과연 팽용화의 현기가 충만한 눈은 매서웠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은 분명히 보통의 거지가 아니었다.

등에 매달고 있는 부대자루의 수가 각각 1개 내지 2개 정도씩인 걸로 봐서는, 일결 혹은 이결 정도 되는 계급의 개방 방도로 보였다. 정보의 수집이 목적이리라.


  노부는, 별 감정의 동요 없이 의연한 표정으로 장내를 정리하고 있는, 조카의 우직한 뒷모습을 다시 한번 보았다. 과연 현 팽가주는 여걸중의 여걸 이었다. 그의 늙은 가슴속으로 따뜻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했다. 그녀는 살아생전 자신의 아우와 똑같은, 믿음직스런 가주의 뒷모습을 똑같이 재현하고 있었다.


“숙부님, 일단은 제 집무실로 가도록 해요. 연락을 넣었으니, 서방님과 함께 공동파 분들도 집무실로 오실겝니다.”

“........그러자꾸나.”

“설희도 이참에 나를 따라 나서지 않겠느냐? 집주가 앞장서 아가씨를 안내하도록 하게나.”

“예! 마침 적당한 전각이 비어있습니다. 청소도 되어 있고요. 아가씨, 저를 따르시지요.”

“감사합니다. 가주님”


노부는 말없이 팽가주의 뒤를 따랐다. 그의 눈은 분노로 조용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네 이놈들, 면상을 보고 소리쳐 주리라. 결코 이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테니!’


팽용화는 집주와 사천당가의 설희 일행, 그리고 노부와 함께 차분히 빈전을 빠져 나갔다. 번잡한 빈전 안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부지런히 그들의 뒷모습을 쫒고 있었다.









“사형! 사형까지 여기 오실 필요가 뭐 있습니까?”

“조용히 하거라.”

“쳇! 퉤에-!”


바삐 걸음을 옮기던 두 남자들 중에서 키가 작은 남자가, 길바닥에 가래 섞인 침을 내뱉었다. 두 사람 보다 조금 앞서 걸으며 길을 안내하던 시비가, 그 모습을 뒤돌아보곤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저를 어째? 가주님이 아끼시는 화원인데......! 정말로 예의라고는 찾아 볼 수 가 없는 인물들이군.’

“아직 멀었느냐! 도대체 이 팽가는 어찌 된 것이 이리 내 막내 사제를 푸대접 한다는 말이냐! 한참을 깊이 들어가도 아우의 전각이 보이질 않으니!”

“예? 예에- 이제 곧 당도합니다. 워낙 안쪽에 위치한 전각이라.......”

‘제 놈이 꼭꼭 숨어 나쁜 짓을 하기 좋으니 깊은 곳을 찾아 들어간 게지! 어찌 우리 가주님 탓을 한다는 말이냐!’


급히 대답을 하며 허리를 숙이는 시비의 얼굴은 시시때때로 붉으락푸르락 색이 바뀌었다. 그런 시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만한 표정으로 뒤를 따르는 그들 중, 키가 작은 사내는 연신 툴툴거리고 있었다. 허리춤에 매여진 자신의 검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던 그는 자신의 옆에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길게 흑의를 늘어뜨려 입은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사형? 이 팽가가 어찌하여 이리 우리 공동파를 이렇게 무시한다는 말입니까?”

“........”

“저나 셋째 사형이 오면 될 것을 사부님은 어찌하여 큰 사형을 이리로 보내신 건지, 원!”

“네 입! 그 입을 조심하라고 내 누누이 일렀거늘!”

“......!”


계속 혼자 궁시렁 거리던 사내는 흑의를 입은 사내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고는, 속이 뜨끔하여 곧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사부님의 점괘가 그리하다 하지 않았느냐. 막내에게 큰 화가 덮쳐들고 있다고.. 그리하여 나와 너를 직접 이리로 보내신 게지. 사부님은 그 아이를 귀이 여기신다.”

“쳇. 이곳 하북성에서 막내사제의 신변에 큰 위험이 닥쳐든다면, 보나마나 팽가의 짓거리가 아닙니까!”

“그리 단정 짓지 마라! 쯧쯧. 너는 아직 멀었다. 지금 이 길로 향하면서 점점 더 진해지는 이 암습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느냐!”


낮게 후려치는 사형의 말에 흠칫 놀란 그는,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 진채, 그제야 주의를 기울이며 주변의 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흘렀다.


“.......어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아야겠다. 원래 하북성에 발을 들려 놓는다면 가주를 먼저 만나 보는 것이 예의이나, 시급을 다투는 일이니, 지금 우리가 막내를 먼저 만나봐야 하는 거다.”

“설마...별일은 없겠지요? 큰 사형?”

“........그것을 알아보러 급히 가는 길이 아니냐.”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있단 말이지...!’


질문을 하는 사내나, 질문을 받는 사내나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기는 매 한가지였다.


“여기입니다. 여기가 바로 서문탁 나리의 전각입지요. 저는 이만.....!”


이윽고 두 사내는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한 전각에 도착하였다. 시비는 그들을 안내하고는, 문 앞에 있는 것도 꺼려진다는 듯 서둘러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는 한낮이었지만, 전각의 모든 창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멈칫한 두 사내 중 사형이라는 자가, 서슴없이 먼저 전각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혼자 남은 키가 작은 그 남자도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사형을 뒤따라 문안으로 들어갔다.








“사제~! 막내사제? 안에 없는가?”


막상 안으로 들어간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음침하고 어두웠다. 왠지 모를 비릿한 냄새가 두 사람의 신경을 야릇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도대체 막내사제는 이 안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 사형~ 이 놈이 왜 이렇게 창을 다 가려 두었답니까?!”


창을 가리고 있던 검은 모시를 확 뜯어내며, 넷째라고 불린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사형을 향해 물었다. 어두운 적각의 내원에 창의 크기만큼 눈부신 햇살이 들어와, 그제야 내부를 훤히 밝혀주었다.


“.......아니, 이럴 수가!”

“허-억!”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몇 달 동안 걸레질 한번 하지 않은 듯 내부는 뭉쳐진 먼지 덩이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여기저기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거기에는 여인의 속옷들도 함께 뒹굴고 있었다. 먹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식들 하며, 검게 눌러  붙은 피딱지들까지! 더군다나 한 쪽 구석에는 새나 개, 고양이들의 짓이겨진 사체가 보기 흉하게 썩어가며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팽가주는 하나뿐인 남편의 전각도 돌보지 않는답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게야! 이 꼬락서니 하고는!”


크게 흥분하며 창문에 붙은 검은 천을 죄다 떼어내는 넷째 사제와는 달리, 오히려 큰 사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이상했다. 이건 너무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원래 오만하고 방탕한 성격의 막내 사제 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음침하다거나 암울한 분위기를 풍기던 녀석은 아니었다. 그는 조용히 안쪽으로 더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안쪽은 서재인 듯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책으로 그득한 책장이 눈에 확 띠었다. 하지만 아직 그곳은 아직 어둠에 싸여 있었다. 큰 사형은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제 모퉁이만 돌면 서재의 입구에 당도할 터였다.


‘큰 사형은 혼자 어디를 가는 거야? 아무튼 문탁이 이 놈은 어딜 가나 말썽이 따른 다니까!’


넷째 사제는 서둘러 큰 사형을 따라서 께름칙한 발걸음을 옮겼다.

서재로 발걸음을 옮긴 그는, 하마터면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지를 뻔 했다.


“아니, 막내사제?! 거기서 무엇하고 있는 거야? 깜짝 놀랐잖아!!”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진 그들의 눈앞에, 한 인영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곳 서재에서는 - 어둠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서문탁이, 두 사형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짓고 있었다.


“어찌하여, 그러고 서 있는 것이냐! 문탁이 이놈아! 간 떨어 질 뻔 했다!”

“...... 막내야!”

“반갑습니다. 2년 만이군요. 큰 사형, 넷째 사형.”


큰 사형은 문탁을 알아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왠지 녀석은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던 막내사제가 아닌 것 같았다. 내뿜는 기도나 풍기는 분위기가 예전의 그 녀석과는 달라도 너무나도 달랐다.


“우리의 인기척을 듣지 못했느냐! 방 꼴이 이게 뭐야? 아무튼 정말로 오랜 만이구나! 녀석!”


공동파의 장문인인 사부 아래에서 수학(修學)하는 동안, 넷째 사형은 서문탁 자신과도 가장 가깝게 지냈던 인물이었다. 그를 보는 문탁의 눈에도 반가운 빛이 흘렀다. 넷째 사형은 일단 이런 저런 걱정은 뒤로하고, 반갑게 문탁에게 다가가 막 그와 악수라도 나누려는 참이었다. 그때 마침 밖에서 조심스럽게 외치는 시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을 몰아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이곳으로 급히 달려온 듯 했다.


“나으리! 가주님께서 공동파의 손님들과 함께 집무실로 드시라 하십니다!”


비릿한 웃음을 흘린 문탁은 두 사형들을 바라보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가시지요. 사형들. 가주가 부른다는 군요. 일단 다녀와서 긴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 그, 그래!”

“.........!”


문탁은 앞장서서 전각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원을 지나쳐 가는 동안, 넷째 사형이 검은 천을 모조리 뜯어 놓은 덕에, 눈이 부신 햇살이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서문탁의 표정이 잠시 동안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빛에 적응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전각을 나섰다. 공동파의 두 제자들도, 의뭉스러운 눈길로, 너무나도 달라진 그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조용히 따라 걸었다.

허나 그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푸스스스-

햇살에 노출된 문탁의 소매 부근은, 빛에 반응하며 슬며시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 본 그의 소매에는 미처 씻어 내지 못한 작은 혈흔들이 남아 있었다. 그 붉은 핏방울들은 빛에 반응하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다가 공기중으로 산화되어 연기처럼 흩어졌다. 서문탁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크크크. 아직은 때가 아니거든. 사형들... 이틀만 기다려 줘. 모든 걸 알게 될 테니! 하북성을 집어 삼킨 나와 우리 공동파가 무림제일문으로 우뚝 설 날이 코앞이니! 키키킥!’








도화 일행은 예상외로 수월하게 산길을 헤치고 나가는 중이었다. 거기에는 단연 비형랑의 활약이 독보적 이였다. 멀리서 땔감과 점심 먹을거리를 한 아름 구해서 안고 오는 그를 바라보는 한영과 작약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녀석은 어릴 때부터 잡기(雜技)에 능했지! 클클. 제 사부 속도 많이 섞이고 말이야.”

“어디 잡기 뿐 이겠어요? 주색에도 능하지요.”

“주색(酒色)?”

“이름 좀 있다하는 기루의 기녀치고 저자의 품을 거치치 않은 아이가 없을 거 에요. 흥!”

“클클클.... 워낙 인물이 훤칠하지 않느냐!”

“네에?! 지금 편드시는 거 에요? 저자는 나까지도!”

“너...까지도 라니?”

“아, 아니에요. 제 친우인 초량까지도 관계가 있다는.......”


한영은 순간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를 바라보는 작약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형랑과 한영을 번갈아 보며 의문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형랑과 한영- 둘의 인연은 서로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속 시원히 알 길은 없지만, 작약은 앞으로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묘한 웃음을 킬킬거리면서.

장작에 불을 붙이고 대충 요기를 할 자리를 마련한 비형랑은 작약과 한영 쪽으로 다가왔다. 


“왕국주가 챙겨 준 것들도 있고, 또한 홍루와 노모가 정성스럽게도 음식을 싸 주었군요. 불도 지폈으니, 잠시 여기서 요기를 하고 계속 발걸음을 옮겨도 되겠습니다, 작약어른!”

“그래, 수고했다. 클클클.”

“여기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선다면, 오늘 저녁 안으로는 하북성에 도착할 수 있을 듯 한데요?”

“좋구나. 그래 서둘러야지.”

“참, 그런데 위소저, 도화도령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아까 전에 잠시 살펴 볼 것이 있다고 저기 대나무 숲 쪽으로 갔는데?”


한영은 일행이 자리를 잡은 널찍한 공터 옆의 대나무 숲을 가리키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튼 이 녀석은 잠시라도 틈만 나면 이런다니까!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먼저 드시고 계세요. 그 호기심이 문제야! 호기심이!”


한영은 서둘러 일어서서 대나무 숲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한편 울창하고 푸르게 뻗은 대나무 숲의 한가운데에는 검은 머리를 흩날리는 소년과 눈부신 흰털의 큰 개 한 마리가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흰둥아 이쪽이 분명한데?? 이상하다. 분명히 뭔가가 느껴졌는데?”

“멍멍!!”

“앗! 여기다 여기. 이쪽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구나! 가자!!”


소년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더듬으며 한 지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쏴아아아-

소년과 야호의 움직임으로 인해, 대나무들이 몸살을 앓으며 푸른 물결을 일렁였다. 아까 전부터 소년은 마치 신들린 모양으로 어느 한 곳을 향해서 길을 더듬으며 올라가고 있었다.


“됐다.. 분명히 이쯤인데.. 여기서 딱 끊겼어!”


느껴지던 마지막 기의 흐름이 끊긴 대나무 숲 부근에 선 소년은, 오른손을 들어 시야를 가린 대나무 몇 그루를 걷어냈다.


“와아-.....!”


놀랍게도 소년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대나무 숲 한 가운데의 텅 빈 공터였다. 둥글둥글한 자갈들이 굴러다니는 공터의 중앙에는, 윗부분이 평편한 널찍한 바위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순간 소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작은 손으로 눈을 비벼댔다.

웬 노인 하나가 바위에 앉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수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년의 기척을 느낀 노인은 흠칫 놀라 바위에서 자세를 고쳐 앉고, 소년을 향해 물었다.


“아이야, 넌 누구냐!”

“으음..... 그러는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내가 먼저 물었으니, 네 녀석이 대답할 차례니라.”

“피이... 전 도화라고 해요. 묘한 기운이 느껴져서 따라와 보았더니, 그 끝이 여기 이 공터에요! 그리고 제 생각엔 기운을 흘린 이는 할아버지인 것 같은데요?”


소년의 말에 화들짝 놀란 노인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아무 이상이 없자 다시 주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도화는 그런 노인의 모습을 말똥말똥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했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 틀림없어 보였다. 노인의 온몸은 비쩍 말라서 갈비뼈들이 훤히 들어나 보였다. 손가락으로 주-욱 긁으면 퉁퉁퉁퉁 하고 악기소리가 날만큼.

또한 놀란 눈으로 도화를 쳐다보고 있는 대머리의 노인은, 희한하게도 두 눈썹 사이인 인중 부근에 삼각형 모양으로 검은 점 세 개가 새겨져 있었다.


“묘한 기운이라....?”

“음. 저도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꼭 따라가고 싶은 어떤 익숙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제가 대답하였으니 이제 할아버지 차례에요. 누구세요?”


당돌한 소년의 말에 노인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대신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혜능아. 이 막되 먹은 혜능아. 너는 아직도 멀고멀었구나! 기운을 흘리고 다니다니.’


이윽고 잠시 동안 사태를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한 노인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고금 무림에 아직까지 누구도 숨기고자 마음먹은 자신의 기운을 읽은 이는 천하에 없었다. 자신의 탓이라기보다는 분명히 이 소년에게 감추어진 무엇인가가 있을 터였다. 검고 깊은 소년의 눈동자를 바라본 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결코 악하거나 사기를 담은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추구하는 공허함과 몹시 닮아 있었다.

그래. 무(無)다! 노인의 눈빛이 번쩍 하고 빛났다.


“아이야, 난 그저 내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땡중 일 뿐이란다.”

“스님이군요! 아하! 소림? 저희 엄마가 그러시는데 소림에는 고승들이 많다 하셨어요!”

‘그래. 이것도 다 업보이고 인연(人煙)인 것이지. 아미타불........!’


노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대숲을 올려다보는 중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도화는 신이 났다. 아마도 자신이 쫒아 왔던 것은 이 스님이 흘리는 맑은 기운이었으리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화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노인에게서는 맑은 물빛의 기운이 은은하게 서려있었다. 고개를 숙인 노인은 대뜸 물었다.


“지금 내 마음이 몹시 괴롭구나.”

“....?”

도화는 뜬금없는 스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가야할 길이 있단다. 결코 정심을 흩트려서는 아니 되지. 허나 자꾸 뒤가 돌아 봐지는 게야.”

“스님의 마음을 붙잡는 무엇인가가 있나보죠?”

“그렇지! 허나 그길로 되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앞으로 영원히 내 길을 잃게 될 게다. 부처를 잃는 거지. 내 마음도 잃게 될 것이고.”


잠자코 듣고 있던 도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얼 고민하시는 거여요? 이미 마음은 그곳에 있잖아요? 그럼 가셔야 할 길은 그 곳이에요. 왜 마음이 없는 곳에 길을 두려 하시나요?”


순간 노인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어졌다. 노인은 마치 누군가가 큰 돌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친 듯 온몸으로 전율이 일었다. 그랬다. 그동안 그는 스스로 만들어 둔 틀에 자신을 가두어 둔 셈이었다.


“옳거니! 내 오늘 소공자 덕분으로 큰 깨달음을 얻었구나!”


‘달마는 수행법을 굳이 정하시지 않으셨다. 그래!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야! 다 인연의 굴레 안이니... 살생으로 업을 쌓아 성불의 길과 멀어진다 해도, 불쌍한 중생을 외면할 수는 없는 법! 그래!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따르고, 진리는 중생의 눈물 속에 있을지니!

진정으로 부처를 만나려면, 부처를 버려라!’


“하하하하하!”


큰 바위위에 서서 두 팔을 하늘로 향해 벌린 노인은 시원하게 웃어댔다. 그의 웃음소리가 푸른 대숲을 가득 울렸다. 노인을 지켜보던 도화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도 기뻤다.


“소년아 너의 이름이 도화라 하였느냐?”

“네에! 복숭아꽃이라는 뜻이에요.”

“좋은 이름이구나! 하하하!”


노인은 기운차게 바위에서 뛰어 내리며 근처에 놓아 둔 자신의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화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 소년의 손에 무엇인가를 쥐여 주었다.


“이것은? 무엇이에요? 흐음~ 염주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오냐! 염주이지. 손가락에 걸어 보거라!”


도화는 노인이 건네준 작은 구슬을 자신의 오른쪽 검지에 끼워보았다. 놀랍게도 조금 클 것 같았던 구슬은 도화의 손가락 굵기에 맞추어 저절로 스르륵 줄어들어 꽉 끼였다. 이제는 완전한 모양을 갖춘 탁한 묵빛의 반지가 되었다.

반지는 도화의 하얀 손가락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어울리고 있었다.


“자아! 이제 그것을 하늘에 비춰 보거라!”


도화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작은 손가락에 끼워진 구슬을 하늘에 비추어 보았다. 놀랍게도 구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억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던 듯, 구슬을 통과한 빛은 자갈 바닥에 묘한 무늬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촤르르르-

그것은 다름 아닌 달마대사의 초상화였다!


“하하하. 아이야, 나는 애당초 그것과 인연이 없었으니, 너에게 그 물건을 주마.”

“저에게 주신다고요?”

“오냐! 나의 깨달음에 대한 작은 선물(膳物)이다.”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요? 흐음~ 그냥 탁한 묵빛의 반지 같은데, 바닥에 그려진 그림은 너무나도 정갈한 기운을 내뿜고 있군요?!”

“역시! 내 보는 눈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네가 진정으로 그 녀석과 인연이 있다면 사용법도 스스로 깨우치는 날이 올게다!”

“할아버지! 너무 막연한 말이에요! 흐음.....!”


마지막 말을 남긴 노인은 도화를 향해 부처와 같은 미소를 보여주고는, 한점의 미련도 남기기 않고, 순식간에 도화와 흰둥이에게서 멀어져갔다.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한두 걸음 내딛었을 뿐인 그의 깡마른 육신은, 벌써 저만치 떨어진 구릉을 넘고 있었다.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노인의 목소리가 대숲을 울렸다.


“나의 이름은 혜능이라고 한다. 언제고 소림에 들릴 일이 있거든, 반지와 함께 나의 이름을 한번 팔아 보거라..하하하하........!”

“그러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에요?”

“하하하하! 인연이 있다면 다시 볼 수 있을 게다!”








휘우우웅-

다시금 고요가 찾아온 푸른 대숲의 공터.

도화는 반지가 끼여진 자신의 손가락을 한번 내려다보고, 또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한번 바라보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후우. 흰둥아 우리가 꿈을 꾼 것은 아니겠지?”


“이 녀석! 꿈은 무슨 꿈이야! 자꾸 누나 속 썩일래? 애간장이 다 타들어 가겠다! 화야!”

“아, 아얏!”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한영이었다.

도화를 찾아 한참을 대숲을 헤매던 그녀는, 방금 막 자신의 동생을 발견한 참이었다.

그리고는 소년의 귀를 잡고 질질 끌며, 힘들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파아! 누나아! 미안, 미안~ 헤헤헤! 놔줘!!!”

“조금만 더 아파봐! 누나 마음 알 때까지!”


한영은 밉지 않은 눈길로 도화를 한번 노려보고는, 곧 녀석의 귀를 놓고 재촉해서 발길을 서둘렀다.


“뭐하고 다녔던 거야? 응? 어서가자. 빨리 점심을 먹고 길을 떠나야 해.”

“응...! 저기, 누나아-!”

“왜?”

“아, 아니야..... 나중에 이야기할게!”


도화는 한영의 손을 꼭 쥐고 빠른 걸음으로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모르는 숲길을 들어 올 때 보다는, 나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이윽고 한참을 걸은 그들은 푸른 대나무 숲을 벗어났다. 한영과 도화를 알아본 비형랑이 공터 앞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년이 어디로 갔는지 불어라. 이야기를 하란 말이다!”


핏발이 선 눈을 부라리며, 거구의 남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서슬 퍼런 칼날이 노모의 목에 닿아 있었다. 노모는 그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모르오... 안다고 해도 말 할 수 없는 일이고...”

“뭐라?! 정녕 네년이 피를 봐야겠구나!”


서걱-

순간 사내는 손목에 힘을 주어, 노모의 목에 들이 댄 칼날에 힘을 실었다. 섬뜩한 살 잘리는 소리가 듣는 이를 소름끼치게 했다.

주르르륵-

시뻘건 핏물이 노모의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깊이 베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대로 두면 위험한 상처였다.


“여한이 없는 목숨이니, 그만 거두어 가게나.”

“이, 이런 버러지 같은 년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는, 쭉 찢어진 눈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거구의 사내로, 다름 아닌 서문탁의 하수인인 그였다. 그의 손에 쥐여진 큰 도(刀)는, 사내의 화를 누그러트리느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일단 도를 거두고, 있는 힘껏 노모의 몸뚱이를 발길질했다.

퍼억-

퍼억-퍼억-

늙은 노모의 힘없는 몸이, 전각 내원의 바닥위에 내팽개쳐졌다. 노인의 붉은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사내는 지금 몹시 분노하는 중이었다. 그는 주인의 명으로 무조건 해루를 잡아와야 했다. 허나 지금 이곳 누루의 전각은 텅하니 비어있었다. 어제 밤 분명히 자신이 해루와 또 다른 한명의 기녀 그리고 여기 쓰러져 있는 노모가 함께 있는 것을 확인했었다.

눈치를 채고 피한 것인지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지금 해루의 행적을 놓쳤다는 것이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공포와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문득 그는 발길질을 멈추고, 떨리는 왼손으로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사내의 굵은 목덜미에는 아직도 선명하게 검은 손가락 자국이 남아있었다.


‘좋아! 여기에는 없다 이 말이지.... 이 늙은이는 죽어서도 입을 다물게고. 일단 여기를 벗어나 도망친 것이라면 여인의 몸으로 하루 밤사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진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의 사내는 말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노모의 육신을 내려다봤다. 쓰러져 있는 노모는 이미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내가 너의 목숨을 거두어 주지!”


푸우욱-

사내의 거대한 도가 노모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노모는 비명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한순간에 절명했다. 두 눈이 놀라 부릅떠진 채로.

다시 노모의 갈비뼈 사이에 박힌 도(刀)를 뽑아든 사내는, 발로 시신을 툭툭 건드려 돌려서 앞쪽으로 엎드려 놓고, 빠르게 전각 밖으로 사라졌다.

전각의 나무 바닥은, 노모의 시신을 중심으로 물을 빨아들이는 한지처럼 붉게 물들어 갔다.








“해루야, 이리로 가는 길이 맞을까?”

“맞아 언니. 이 마을만 거쳐서 돌아가면 하북성에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장삼으로 얼굴을 가린 두 여인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워낙 시끄럽고 사람 많은 장터이다 보니, 딱히 두 여인을 이상스럽게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인적이 조금 드문 곳에 이르자 그들은 잠시 숨도 돌릴 겸, 얼굴을 가린 장삼을 슬그머니 내리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다름 아닌 두 여인은 바로 해루와 홍루였다.


“너 약은 다 챙겼어? 신선님이 밥 먹기 전이랑 밥 먹은 후랑 꼭 챙겨 먹이라고 당부하셨는데.......”

“응... 다 챙겼어..”


“언니야 미안해! 내가 괜히 고집 부려서...”

“됐네요. 에구... 혼자 계실 노모가 걱정이다.”


도화일행이 떠난 그날 오후였다.

갑자기 해루는, 자신도 무조건 하북성에 직접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화강암 바윗돌같이 굳건한 그녀의 의지를, 홍루도 노모도.... 누구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바람에 해루를 말리다 지친 홍루는, 덩달아 오늘 아침 같이 길을 떠나와 버렸다. 노모에게는 자신이 해루를 잘 돌볼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고, 왕국주에게도 사정이 담긴 서신을 전해주라고 맡겨두고 떠나왔으니, 지금쯤은 그도 이미 서신을 받아 보았을 것이다.

홍루는 큰 한 숨을 내쉬며 수척해진 해루의 뺨을 쓰다듬었다. 해루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해루는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을 들어 홍루를 올려다보고는 다시 하북성 쪽의 먼 하늘을 주시했다.


‘서문탁 당신! 이건 복수가 아니야.... 반드시 내 귀로 설명을 들어야겠어. 나와 우리들의 아이를 짓밟은 이유를!’








쉼 없이 도대체 몇 시진을 달려온 길인지 몰랐다. 작약의 얼굴에도, 도화와 비형랑, 그리고 한영의 얼굴에도 오랜 산행으로 인한 피곤한 기색이 완연했다. 울창한 나무들도 점점 키가 낮아지고, 무성한 덤불들도 점점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을 내려온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잘 닦여진 도로와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의 누런 벼의 물결, 그리고 드문드문 시작되는 인가(人家)였다.

마을로 깊이 들어설수록 일행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져가고 있었다. 반대로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축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점점 흥에 겨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일행은 원하는 목적지 앞에 섰다.

엄청난 크기의 큰문 앞에 선 그들은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갈한 기와가 내려앉은 비교적 키가 작은 건물의 담장은,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쭈욱 뻗어 있었다. 작약의 시선은 하늘로 솟구쳐 오를 것만 같은 멋진 기와를 향하고 있었다.

도화는 감탄의 눈길로 큰문의 오른쪽에 걸린 현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 북 팽 가」


“호오~!”


낮은 탄음성이 소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묘한 웃음을 연신 띠고 있는 비형랑, 그리고 노기를 띤 표정으로 팔짱을 꼬고 건물을 노려보고 있는 한영. 또한 현판과 건물을 둘러보기 바쁜 도화와 더 먼 곳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작약. 그리고 소년의 옆에서 굳건한 네 발을 딛고 선 야호, 흰둥이.


거대한 건물과 마주선 이들 다섯의 뒤로, 시뻘건 핏빛의 노을이 서서히 땅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다가올 혈겁(血劫)을 예고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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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지요?『도화』               (26)

다들 한주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어요~ 혹여나 감기로 고생하시고 계신 분들은 아니계신지...

잠시만 틈을 내셔서 독감예방주사를 맞으러 다녀오세요.(저도 오늘 갈 예정!)

날씨가 많이 춥지요?

다들 마음만큼은 훈훈한 하루가 되셨으면 합니다(^_^)

꼬리말 달아주시는 모든 고마우신 님들!

그리고 추천...(벌써 제가 금메달을 몇개나 달았는지 (ㅠ_ㅠ)감동『도화』               (26))꾹 눌러주시는 사랑스러운 울님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여 기대에 부흥하도록 할게요!

감사의 큰절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배경소개 부분이라 지루지루했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전투신들이 다가옵니다.

그만큼 제 글에 피냄새가 자욱해지겠지요(ㅠ_ㅠ)

하지만, 언제나 밑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가득담도록 할게요.

 

그럼 제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 감사한 님들께

파안의 가호가 함께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