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일을 하다 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곳으로 내 시선이 쏠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에 새로 만들어진 청계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빌딩의 27층에서 내가 보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여자>
예전인가, 내가 좋아했던 동생이 나에게 알려줬다. 그 친구는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연예에 관한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튼 그 동생이 말하길, 자신을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좋으니,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라고 그러다 눈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동안 이 이야기를 잊고 있었지만, 최근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래 그는 나를 좋아한다.
<그 남자>
어떻게 말을 건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해 본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뒤로 미룬채. 나는 메모지와 연필을 잡고 고민하고 있다.
그녀는 나보다 4살이 많다. 그리고 알고 있다. 얼마전 돌아온 기획실장이 그녀의 남자였다는 것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여자>
쉽사리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아마 이 회사를 처음으로 들어왔던 그때였다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연애보다는 결혼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고, 결혼은 현실이니까.
<그 남자>
점심시간, 지하에 있는 사내 식당에 팀직원들이 모두 나가려는 순간, 우리 팀의리더인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또 그 사람에게 가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남자의 구애를 그녀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왜 일까.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다. 그 실장은 왜 그녀와 헤어지고 미국의 지사로 떠났던 것일까. 그리고 왜 그녀는 그 실장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하긴 그녀가 그렇게 아직은 빈틈을 보이고 있으니 나는 희망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여자>
그 사람의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에서 나는 투명한 유리너머로 보이는 길가의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그렇다. 나도 불과 몇년 전에는 저렇게 바쁘지만 즐겁게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알았다. 길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잡을 수 있는 다정한 남자의 팔보다는 배기량이 높은 차의 가죽시트가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속물일지도 모른다.
3년전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남자>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 가장 기뻤던 순간은, 지난 해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우리회사의 신제품 홍보행사중에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팀장이 되어 준비한 프로모션이 갑작스러운 정전사고로 행사장에서 아무런 일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눈가에 보인 눈물을 보고 무엇인가 머리와 가슴에 스위치가 들어가는 듯 했다.
<그 여자>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오너의 후계자인 그는 나를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자리에 앉았다.그는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에 대한 칭찬으로 말을 시작했다.
곧 이어서, 자신을 3년간이나 묵묵히 기다려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 사람 조금은 착각하고 있다. 나는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굳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만나려고 해도 가슴에 무엇인가 걸린듯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그 남자>
지하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1년차 선배와 함께, 자판기 커피를 들고 빌딩 밖으로 향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팀장에게 마음이 있냐고?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갛게 변해갔다. 정말 자신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은 회사. 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거리로 제공되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에 불을 붙이던 선배는 나즈막한 소리로
듣고서 잊어버리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 같은 빌딩 1층 로비
"자기야, 오늘 일찍 끝나고 영화보러가자."
"그래, 알았어. 내가 끝나면 전화할께."
서현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과 사귀기 시작한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갔다. 같은 직장 동료인 민혁은, 호남가는 얼굴에 훤칠한 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회사에 오너 가족의 일원이였다.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민혁이기에 서현은 그저 그런 그가 자신의 남자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서현은 갓 입사한 회사에서 많은 시련을 겪을 뻔했다. 상사에게 혼나고 혼자 집에 울면서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능한 민혁을 만나면서 서현은 회사 일도 배우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도 키울 수 있었다.
꿈같이 멋진 남자와의 결혼, 그것은 서현에게는 곧 잡을 수 있는 현실이였다. 그렇게 즐거운 얼굴로 서현은 사무실로 향하는 엘레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움직이지마."
검은 복면을 쓴 한 남자가 서현의 뒤에서 나타나, 서현을 움켜잡고 보기에도 날카로운 군용 나이프를 서현의 목에 갖다 대었다.
"거기 너, 당장 사장실에 전화해서 사장 나오라고 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웅성거렸다.
"조용히해. 너네들. 너네들은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일하니까 살 맛 나지. 하하. 너네들도 다 죽었어. 내 몸에는 폭탄이 있다. 지금부터 이 로비에서 움직이는 놈 있으면 바로 다 같이 죽는 거야. 모두 제자리에 앉아."
서현의 얼굴을 점점 창백해졌다. 서현은 급하디 급한 눈길로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여기저기 흐날리다 멈춘 곳. 민혁이 서있던 곳이였다.
"장난 같니? 이 년부터 죽이고 시작해야겠군."
민혁은 약간은 당황한 모습이였지만, 곧 모습을 추스리고 칼을 든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여자를 놓아주고 저랑 이야기 하시죠."
서현은 공포에 눌려있던 마음 대신, 사랑하는 민혁에 대한 경외감이 생격나기 시작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너 뭐야? 네가 사장이야."
민혁은 또박또박한 말투로
"사장은 아니지만,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면서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속 시원하게 소주 한잔 부딪히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멋지지 않습니까. 일단 놓아주시고 왜 이러시는지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사람들은 당당한 민혁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음, 그런가."
칼을 든 남자는 서현의 목을 놓았고, 복면을 벗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가려 했다. 민혁은 그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빌딩 밖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에 사람들을 우뢰와 같은 환호성을 보태주었다. 그날의 모든 사건은 서현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남자>
기획실장, 대단한 사람이였다.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그런데 더욱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멋진 남자와 왜 그녀는 헤어졌던 것일까.
<그 여자>
그 때는 그랬다. 칼을 보고 겁도 났지만, 평생 함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너무나 뿌듯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경력상 외국에 장기간 나간다고 해도, 나는 기쁘게 기다리겠노라고 말을 건낼 수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짧은 몇 년보다, 평생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 남자>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쇼크를 먹었던 나는, 이내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모름지기, 가슴이 멍할때는 어떤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설사, 그녀가 그 실장과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꼭 내 진심을 말하고 싶었더. 그녀를 좋아한다고.
바라만 보는 사랑은 경제적이지만, 늘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 부터, 나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진심을 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심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머리가 커져가면서 겪는 사회라는 곳에서 섣불리 진심을 꺼내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 여자>
실장이 칭찬했던 크리스마스 행사, 그 거대한 행사를 나는 나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망쳐버릴뻔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우리회사 전속 이벤트 기획사인 연예 매니저먼트사의 대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다.
덩치 좋은 남자. 나에게 칼을 댔던, 그 남자가. 그 회사의 스태프 아이디 태그를 목에 매고 일을 하고 있던 것이였다.
순간 나는 좋게 생각했다. 착한 실장이, 갱생의 뜻으로 그에게 일자리를 주선했다고
대표에게 물었다. 조심스럽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 숙련자인지. 대표는 허풍스러운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그는 나를 놀라게 했던 그 인간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만 하더라도 벌써 5년째,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얼이 나갔었다. 나는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다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행사 진행표를 놓아 버렸다.
하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그 남자>
갓 입사한 새내기인 나는, 우는 팀장을 뒤로 하고, 그녀 대신 무대에 올랐다. 그 때처럼 술술 말이 나온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수천명이 무대아래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격식있는 행사자리였는데, 나는 여기저기 트여진 청바지에 몸에 조금은 큰 티셔츠를 입고 나섰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여자>
그 행사에,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의 소유자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나는 이 회사에 없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행사가 걱정되어 뛰어간 무대 뒤에서 나는, 정말 빛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대본도 없이 그는 술술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호응을 얻었고, 그 많은 이벤트들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순서에 맞게 차례차례 진행시켰다.
그렇게 행사는 무사히 끝을 맺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민혁, 아니 실장이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회사내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사람을 사서 연극을 펼쳤다는 것. 사실 이 방법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면, 나는 그 어떤 연기자 보다는 멋지게 사랑하는 사람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했을 것이다.
그러난 실장은 나에게 모든 마음을 열지도 않았고, 나를 그저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던 것이였다.
그 후, 나도 그런 실장의 모습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점점 말이다.
<그 남자>
보고서를 팀장에게 제출하기 위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책상으로 향했다. 아직도 실장과 이야기 중인지,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보고서를 책상에 던져 놓고,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자판기가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 여자>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어지러운 머리로 정리할 겸 나는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고, 희미하게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
모두 일에 열중하고 있는 시간, 나는 연습해본다.
"김서현씨,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를 왜 사랑하는 것일까.
능력있고, 아름답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받는 능력있는 여자니까 사귀면 좋을까봐.
그런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잠시 생각 후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장과 머리는 나에게 말합니다. 당신을 지켜주라고, 당신이 흘리는 눈물을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늘 생각합니다. 저 사람과 함께 라면 나는 늘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열심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여자>
저 남자. 단세포인가. 회사에서 무슨 짓인지. 그렇지만 나쁘지 않다. 왠지 모르게 가슴에 막혔던 무엇인가가 녹아가고 있는 느낌이였다. 나는 어떨까. 내가 다시 진심이라는 단어를 믿을 수 있을까.
<그 남자>
나는 벽에 기댔다.
그리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당신 너무 아름다워요. 나에게는 꿈도 못 꿀만큼, 멋진 당신이고 나는 한참 모자르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꼭 전하고 싶어요. 얼마나 내가 당신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거워지는지, 또 힘을 낼 수 있는지.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행복해져서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렇죠. 당신이 원래 그 사람과 잘 지내게 된다면, 나는 많이 슬플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당신이 행복해져서, 웃게 된다면, 그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전하고 싶어요. 당신을 정말로 사랑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 있는 내가 있었다는 것. 당신이 있으므로 내 하루가 더욱 더 가치있어져서, 너무나 고맙다고."
그 남자 그 여자. <거역할 수 없는 흐름속에서 던진 한마디> 11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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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요새 일을 하다 보면, 나는 나도 모르게 한 곳으로 내 시선이 쏠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울에 새로 만들어진 청계천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빌딩의 27층에서 내가 보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여자>
예전인가, 내가 좋아했던 동생이 나에게 알려줬다. 그 친구는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연예에 관한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아무튼 그 동생이 말하길, 자신을 누군가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좋으니,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라고 그러다 눈이 맞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동안 이 이야기를 잊고 있었지만, 최근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래 그는 나를 좋아한다.
<그 남자>
어떻게 말을 건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해 본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뒤로 미룬채. 나는 메모지와 연필을 잡고 고민하고 있다.
그녀는 나보다 4살이 많다. 그리고 알고 있다. 얼마전 돌아온 기획실장이 그녀의 남자였다는 것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여자>
쉽사리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주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아마 이 회사를 처음으로 들어왔던 그때였다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연애보다는 결혼이 나에게는 더 중요하고, 결혼은 현실이니까.
<그 남자>
점심시간, 지하에 있는 사내 식당에 팀직원들이 모두 나가려는 순간, 우리 팀의리더인 그녀는 미안한 표정으로 위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또 그 사람에게 가는 것인가. 하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남자의 구애를 그녀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왜 일까.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다. 그 실장은 왜 그녀와 헤어지고 미국의 지사로 떠났던 것일까. 그리고 왜 그녀는 그 실장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하긴 그녀가 그렇게 아직은 빈틈을 보이고 있으니 나는 희망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여자>
그 사람의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에서 나는 투명한 유리너머로 보이는 길가의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그렇다. 나도 불과 몇년 전에는 저렇게 바쁘지만 즐겁게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알았다. 길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잡을 수 있는 다정한 남자의 팔보다는 배기량이 높은 차의 가죽시트가 훨씬 편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나는 속물일지도 모른다.
3년전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남자>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 가장 기뻤던 순간은, 지난 해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대상으로 준비한 우리회사의 신제품 홍보행사중에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팀장이 되어 준비한 프로모션이 갑작스러운 정전사고로 행사장에서 아무런 일을 진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때, 나는 그녀의 눈가에 보인 눈물을 보고 무엇인가 머리와 가슴에 스위치가 들어가는 듯 했다.
<그 여자>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오너의 후계자인 그는 나를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자리에 앉았다.그는 작년 크리스마스 행사에 대한 칭찬으로 말을 시작했다.
곧 이어서, 자신을 3년간이나 묵묵히 기다려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 사람 조금은 착각하고 있다. 나는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다.
굳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를 만나려고 해도 가슴에 무엇인가 걸린듯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랬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그 남자>
지하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1년차 선배와 함께, 자판기 커피를 들고 빌딩 밖으로 향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팀장에게 마음이 있냐고?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만 빨갛게 변해갔다. 정말 자신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은 회사. 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거리로 제공되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에 불을 붙이던 선배는 나즈막한 소리로
듣고서 잊어버리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3년 전 같은 빌딩 1층 로비
"자기야, 오늘 일찍 끝나고 영화보러가자."
"그래, 알았어. 내가 끝나면 전화할께."
서현은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과 사귀기 시작한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갔다. 같은 직장 동료인 민혁은, 호남가는 얼굴에 훤칠한 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회사에 오너 가족의 일원이였다.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민혁이기에 서현은 그저 그런 그가 자신의 남자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서현은 갓 입사한 회사에서 많은 시련을 겪을 뻔했다. 상사에게 혼나고 혼자 집에 울면서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능한 민혁을 만나면서 서현은 회사 일도 배우고 사회에 대한 적응력도 키울 수 있었다.
꿈같이 멋진 남자와의 결혼, 그것은 서현에게는 곧 잡을 수 있는 현실이였다. 그렇게 즐거운 얼굴로 서현은 사무실로 향하는 엘레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움직이지마."
검은 복면을 쓴 한 남자가 서현의 뒤에서 나타나, 서현을 움켜잡고 보기에도 날카로운 군용 나이프를 서현의 목에 갖다 대었다.
"거기 너, 당장 사장실에 전화해서 사장 나오라고 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웅성거렸다.
"조용히해. 너네들. 너네들은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일하니까 살 맛 나지. 하하. 너네들도 다 죽었어. 내 몸에는 폭탄이 있다. 지금부터 이 로비에서 움직이는 놈 있으면 바로 다 같이 죽는 거야. 모두 제자리에 앉아."
서현의 얼굴을 점점 창백해졌다. 서현은 급하디 급한 눈길로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이 여기저기 흐날리다 멈춘 곳. 민혁이 서있던 곳이였다.
"장난 같니? 이 년부터 죽이고 시작해야겠군."
민혁은 약간은 당황한 모습이였지만, 곧 모습을 추스리고 칼을 든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여자를 놓아주고 저랑 이야기 하시죠."
서현은 공포에 눌려있던 마음 대신, 사랑하는 민혁에 대한 경외감이 생격나기 시작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너 뭐야? 네가 사장이야."
민혁은 또박또박한 말투로
"사장은 아니지만, 남자가 여자를 괴롭히면서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속 시원하게 소주 한잔 부딪히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멋지지 않습니까. 일단 놓아주시고 왜 이러시는지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사람들은 당당한 민혁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음, 그런가."
칼을 든 남자는 서현의 목을 놓았고, 복면을 벗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가려 했다. 민혁은 그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빌딩 밖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에 사람들을 우뢰와 같은 환호성을 보태주었다. 그날의 모든 사건은 서현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 남자>
기획실장, 대단한 사람이였다.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그런데 더욱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멋진 남자와 왜 그녀는 헤어졌던 것일까.
<그 여자>
그 때는 그랬다. 칼을 보고 겁도 났지만, 평생 함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너무나 뿌듯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경력상 외국에 장기간 나간다고 해도, 나는 기쁘게 기다리겠노라고 말을 건낼 수 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짧은 몇 년보다, 평생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 남자>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쇼크를 먹었던 나는, 이내 보고서 작성에 열을 올렸다. 모름지기, 가슴이 멍할때는 어떤일이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
설사, 그녀가 그 실장과 다시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꼭 내 진심을 말하고 싶었더. 그녀를 좋아한다고.
바라만 보는 사랑은 경제적이지만, 늘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 부터, 나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진심을 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심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다. 머리가 커져가면서 겪는 사회라는 곳에서 섣불리 진심을 꺼내기는 어려운 일이니까.
<그 여자>
실장이 칭찬했던 크리스마스 행사, 그 거대한 행사를 나는 나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망쳐버릴뻔했다.
최종 리허설을 마치고, 우리회사 전속 이벤트 기획사인 연예 매니저먼트사의 대표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었다.
덩치 좋은 남자. 나에게 칼을 댔던, 그 남자가. 그 회사의 스태프 아이디 태그를 목에 매고 일을 하고 있던 것이였다.
순간 나는 좋게 생각했다. 착한 실장이, 갱생의 뜻으로 그에게 일자리를 주선했다고
대표에게 물었다. 조심스럽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다 숙련자인지. 대표는 허풍스러운 목소리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러면서 그는 나를 놀라게 했던 그 인간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만 하더라도 벌써 5년째,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얼이 나갔었다. 나는 그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다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행사 진행표를 놓아 버렸다.
하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정신으로는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
<그 남자>
갓 입사한 새내기인 나는, 우는 팀장을 뒤로 하고, 그녀 대신 무대에 올랐다. 그 때처럼 술술 말이 나온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수천명이 무대아래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격식있는 행사자리였는데, 나는 여기저기 트여진 청바지에 몸에 조금은 큰 티셔츠를 입고 나섰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여자>
그 행사에, 나를 바라보는 뜨거운 시선의 소유자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 나는 이 회사에 없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행사가 걱정되어 뛰어간 무대 뒤에서 나는, 정말 빛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대본도 없이 그는 술술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호응을 얻었고, 그 많은 이벤트들을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순서에 맞게 차례차례 진행시켰다.
그렇게 행사는 무사히 끝을 맺었다.
나는 알게 되었다. 민혁, 아니 실장이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회사내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서 사람을 사서 연극을 펼쳤다는 것. 사실 이 방법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말을 해 주었다면, 나는 그 어떤 연기자 보다는 멋지게 사랑하는 사람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했을 것이다.
그러난 실장은 나에게 모든 마음을 열지도 않았고, 나를 그저 하나의 도구로 생각했던 것이였다.
그 후, 나도 그런 실장의 모습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점점 말이다.
<그 남자>
보고서를 팀장에게 제출하기 위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책상으로 향했다. 아직도 실장과 이야기 중인지,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보고서를 책상에 던져 놓고, 나는 사무실을 빠져나와 자판기가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그 여자>
자리에 들어가기 전에, 어지러운 머리로 정리할 겸 나는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고, 희미하게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남자>
모두 일에 열중하고 있는 시간, 나는 연습해본다.
"김서현씨,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를 왜 사랑하는 것일까.
능력있고, 아름답기 때문에. 회사에서 인정받는 능력있는 여자니까 사귀면 좋을까봐.
그런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잠시 생각 후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사랑합니다.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심장과 머리는 나에게 말합니다. 당신을 지켜주라고, 당신이 흘리는 눈물을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면서 늘 생각합니다. 저 사람과 함께 라면 나는 늘 진심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진심으로 열심히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여자>
저 남자. 단세포인가. 회사에서 무슨 짓인지. 그렇지만 나쁘지 않다. 왠지 모르게 가슴에 막혔던 무엇인가가 녹아가고 있는 느낌이였다. 나는 어떨까. 내가 다시 진심이라는 단어를 믿을 수 있을까.
<그 남자>
나는 벽에 기댔다.
그리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당신 너무 아름다워요. 나에게는 꿈도 못 꿀만큼, 멋진 당신이고 나는 한참 모자르다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꼭 전하고 싶어요. 얼마나 내가 당신때문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거워지는지, 또 힘을 낼 수 있는지.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행복해져서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래요. 그렇죠. 당신이 원래 그 사람과 잘 지내게 된다면, 나는 많이 슬플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라도 당신이 행복해져서, 웃게 된다면, 그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음을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꼭 전하고 싶어요. 당신을 정말로 사랑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 있는 내가 있었다는 것. 당신이 있으므로 내 하루가 더욱 더 가치있어져서, 너무나 고맙다고."
조금씩 쌓였던 자신없음과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채이면 어쩌냐, 꼭 오늘을 말해야 겠다.
<그 여자>
커피보다는 화장실에 가서 화장을 고쳐야 겠다.
그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차후 문제이고,
내가 그의 희망이니, 칙칙한 모습을 보일수는 없으니까.
살아가다보면,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겪을 때가 있다.
왜 거역하지 못하는 가를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만드는 수많은 진심어린 행동들이
나도 모르게 절대 피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장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인위적인 자신만을 위한 흐름
하지만, 내가 듣고 있는 저 겂없는 남자의 말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다.
그가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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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이상한가요?
11번째 그 남자 그 여자 였습니다.
악플도 좋습니다.
읽고 난 느낌을 남겨주시면
정말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다음 글 쓸때 더 좋은 글로
보답하는 센스를 보이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수정으로 덧붙입니다.
이게 11번째 이야기인데 혹시나 그 앞의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면
cyworld.com/eiji99/
에 오시면 그 남자 그 여자게시판이 따로 있습니다.
절대 잘 쓰지 않았습니다만,
혹시나 궁금하신 분들은 오셔서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