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사내는 졸린 눈을 부비며, 크게 하품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뉘엿뉘엿 저물던 해가 벌써 산 아래로 쑤욱 떨어져 내린지도 이미 한참 전이었다. 아직은 노을의 기운이 남아, 하늘은 검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이 박힌 몇 개의 큰 별들이 흰 쌀밥에 박힌 콩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에라이.. 이런 날 딱 번(番)에 걸리다니! 녀석들은 한판 술상이 벌어졌겠구나! 쓰읍.....!’
혼자 투덜거리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는, 손에 쥔 창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발아래의 보따리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어 들기 시작했다. 보초를 서기위해 교대하러 나오기 전에, 마누라가 품에 찔러준 잔치음식이었다. 하북성의 저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사내는 탁주를 손에 쥐고, 한 사발 가득 따라 부었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막 들이키려던 참이었다. 술맛을 음미하려 지그시 눈을 감으려던 그는, 순간 너무나도 놀라 손에 든 탁주 사발을 땅에 떨어트렸다.
철렁-
쨍그랑!
“누, 누구냐!”
그의 눈앞에서 낯선 네 명의 이방인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땅위를 나뒹구는 사발 그릇의 요란한 소리가 그의 경직된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사내는 성 안쪽에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네 명의 낯선 사람들 중, 가운데 선 붉은 경장 차람의 여인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서 활을 겨냥하는 것이 사내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오른손으로는 재빠르게 창을 집어 들어 경계자세를 취하고, 왼손으로는 더듬더듬 호각을 찾아 입에 물었다.
창자의 뱃심까지 끌어 모아 입으로 호각을 불려는 순간!
피슈우웅!
서걱- 푸우욱-
‘으아아아악!!’
두 팔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사내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의 비명소리는 목구멍을 통해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했다. 공포로 가득한 사내의 눈은 튀어나올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떨리는 그의 눈동자는, 귀신처럼 순식간에 다가와서 어느새 자신의 앞에 딱 버티고 선 노파를 향했다. 팔을 뚫는 고통과 함께 눈앞에 선 노파는 자신의 목 부근과 몇 군데 요혈을 순식간에 점혈 했다.
“조용히 해라. 아혈을 짚었다. 용을 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을 터이니.......쯧쯧”
노파의 말대로, 사내의 목 부근의 성대와 턱이 합쳐지는 곳의 좌측부터 혀가 뻣뻣하게 굳어 오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고함을 지르려는 듯 필사적으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자신에게 활을 쏜 여인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 당도한 여 무사의 표정은 너무나도 당당해 보였다. 자신의 왼손에 들린 호각을 빼앗아 들고는,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으로 홱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선 노파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죽이지 않았으니까 된 거죠?!”
여인의 호통소리와 함께, 사내는 자신의 좌우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화살두개가 자신의 피부 가죽을 가르고 근육사이를 헤집으며 양 팔을 꿰뚫고 있었다.
벽에 걸어둔 박제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두 팔도 사정없이 기둥에 박혀있었다. 분명히 양팔에 느껴졌던 벼락같은 고통은 같은 순간 이였다. 아마도 호각을 불려는 순간 여무사가 내 쏜 두 대의 화살이 동시에 자신의 두 팔을 관통하였으리라!
허나 희한하게도 노파가 몇 군데 혈을 짚고 나자, 아까까지 전신을 짓누르던 엄청난 고통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단지 지금 그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굳어 있을 뿐이다.
‘빨리 알려야 해! 이, 이들은...!’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잠시 자두어라. 내가 지혈을 해 두었으니 내일 아침 치료를 받으면 될 것이다.”
‘살, 살려.........!’
무엇이라고 항변하려는 듯이 괴기스럽게 입을 벙긋거리던 보초병은, 노파가 수혈을 짚음과 동시에 앞으로 고개가 푹 고꾸라졌다.
“생명을 귀이 여기어야 한다. 매 순간마다, 다 네 업보가 쌓이고 있음이야!”
“흥! 저자가 호각을 불고 난 후에도 그리 말씀하실 거 에요?”
팩하고 토라졌지만 당당하게 고개를 꼿꼿이 든 한영이다. 그녀를 바라보며, 작약은 노기를 띤 음색에 걱정을 실었다. 화제를 돌리려는 듯 시선을 돌린 한영은 문득 저기 떨어진 구석에서 현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도화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도화야 거기서 머하고 있는 거야! 서두르자! 이리와!”
‘그나저나 이 팽가는 어찌된 것이 현판을 세로로 세워 걸어 둔 것이지?’
소년을 향해 대뜸 한마디 내뱉은 한영도 소년과 마찬가지로 잠시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화는 현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슬며시 손을 대어보고는, 화들짝 놀라 다시 손을 급히 뺐다. 소년의 얼굴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현판은...! 끔직한.....!”
“도화도령 무슨 일이야!”
“......왜?”
급하게 일행 쪽으로 뛰어 온 도화는, 작약과 한영 그리고 비형랑을 차례로 돌아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누나, 할머니 그리고 형! 이 성은 지금 지독한 음기를 빨아들이는 마른 솜과 같아요! 오는 내내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풍수상 이곳은 해가 뜨는 양지라서 음기가 흐트러지지 마련이지요. 하지만 지금 여기는 묘하게 뒤틀어진 기운들이 음기를 오히려 급히 끌어 모으고 있어요! 저 현판은 누군가 엄청난 공력을 실어 넣어, 사기(邪氣)가 몰리는 여기 입구에 세워서 박아 넣은 것 같아요! 글자 하나하나가 엄청난 부적(符籍)이에요!!”
“사기를 누르는 부적?!”
“네. 형! 허나 지금,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부적만으로는 버티기 힘들 거 에요! 놀라워요! 이렇게 엄청난 음기가 몰릴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를 잇는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영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서 가요! 일단 서문탁 그놈을 먼저 잡아서...!”
“위소저 그렇게 쉽게 생각 할 일이 아니에요! 상대는 일개 세가입니다. 마침 가주의 생일 연이라 방비가 허술하니, 그 틈을 노리고 내부로 잠입해야 해요.”
“겁이 나면, 비형랑 당신은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해! 나 혼자로도 충분하니까! 내가 끝장을 본다!”
“아, 아니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니라.......!”
독기를 띤 매서운 눈으로 비형랑과 하북성을 차례로 노려본 한영은, 이어지는 도화의 말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활을 떨어뜨릴 뻔 했다.
“저는 일단 이 음기를 쫒아 갈게요! 누나와 할머니는 정문 쪽에서부터 위로 치고 들어가세요. 분명히 이 기운의 끝은 제가 쫒아 가야 할 것 같아요.”
“화야! 너 혼자 어떻게 간다는 말이냐! 누나랑 같이 움직이자!”
“아니야 누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도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에 단단한 각오의 빛을 띠었다. 그리고 흰둥이와 함께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며 주변의 기를 훔치기 시작했다.
‘...... 어차피 주술전이라면 내가 해야 할 싸움이에요!’
“좋아! 일단 작약 어른과 위소저는 정문으로부터 치고 올라가서 가주가 있는 곳 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시지요! 될 수 있는 데로 이목을 피하시구요. 저는 도화도령의 뒤를 따르지요! 넷이 함께 움직인다면 오히려 표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두 패로 나뉘어져 움직이는 것이 좋겠군요.”
더 이상 일행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일 분 일초라도 아껴야 했다. 논리적으로 작전을 이야기하는 비형랑을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던 한영은, 체념한 듯 짧은 숨을 내쉬고는 그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도화를 부탁해.”
비형랑은 한영의 중얼거림을 알아듣고, 멋지게 웃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짙은 눈썹과 시원스러운 눈매가 한영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돌아서서 기를 더듬으며 멀어져 가는 도화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작약은 말없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별빛에 반사되어 은빛의 털을 휘날리는 야호를 한번 보고는 한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신이 봉인된 야호 그리고 검선의 제자인 비형랑. 저 둘이라면 안심이다!
작약과 한영은 긴장된 눈으로 서서, 성 안쪽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라져 드는 셋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이윽고 짙은 어둠이 그들의 그림자를 삼키자, 한영은 작약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죠!”
“제발 사람의 목숨을 귀이 여기 거라. 알겠지?”
“귀에 딱지가 앉겠네~! 알겠다고요! 가요!”
고함을 빽 지른 한영은 등을 둥그렇게 굽혔다. 곧바로 내쏘아진 활처럼 상체를 쫙 편 그녀는 탄력을 이용해 몸을 위로 솟구쳤다.
화악-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허공에 내질러졌다. 최상의 경공인 궁신탄영(弓身彈影)!
한영은 늘씬하게 한바퀴 제비를 돌아 사뿐히 지붕위에 올라섰다. 그녀의 옆에는 어느새 귀신같이 다가온 작약이 말없이 서 있었다. 음산한 큰 문의 기와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눈 아래에는, 웅장한 하북성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내부의 지도를 머리에 새겨 두려는 듯, 잠시 동안 보초와 인원, 전각의 위치 등을 굽어 살피기 시작했다. 한영의 두 눈은 더 없이 차갑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조용한 그녀의 음성이 밤하늘을 갈랐다.
“서북북 방향으로 이백여 장 간 후, 곧장 동쪽 다시 오십여 장이면 되겠군요. 저기가 가주와 그 서문탁이라는 자가 있는 곳이 틀림없어요.”
한영의 말을 따라 작약의 시선도 옮겨졌다. 확실히 그곳이 전각의 배치 상으로 보아도 하북성의 심장부였다. 또한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이, 틀림없는 중심부로 보였다.
찬 밤공기를 한 움큼 들이키고 기를 전신으로 끌어 올린 한영은, 다시 한번 등을 둥글게 굽혔다. 아까보다 더욱 깊은 자세다. 궁신탄영! 활처럼 내쏘아진 그녀의 몸은, 솟아오른 가슴을 중심으로 탄력을 받아, 반대쪽 어둠을 향해 날아올랐다.
쉬이익-
타앗-
허공으로 날아오른 몸은, 박쥐처럼 어둠을 가르며 지상위로 사라져 갔다. 말없는 작약의 노신(老身)또한 거리낌 없이 그녀의 그림자를 따라 한 줄기 빛을 남기며 허공으로 쏘아졌다.
* * *
도화와 비형랑은 한적한 뒷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게 도화가 음기를 쫒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길은, 하북성 내부에서도 가장 은밀하고도 으슥한 곳이었다. 따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딱히 길을 지키고 선 초병이라든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주인공이 비형랑 하나라는 것이지만.
‘이상한 일이군. 정말로 희한해. 이 큰 세가에서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구나!’
비형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동안,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도화의 표정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꽉 쥔 소년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발을 멈추어 제자리에 우뚝 섰다. 그 자세 그대로 꼼짝도 않고 흠칫 몸을 떨었다.
뒤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도화를 따르던 비형랑은, 덩달아 깜짝 놀라 서둘러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곁에 선 야호도 소년을 지키려는 듯 도화의 앞쪽으로 달려와, 몸을 낮게 숙이고 사납게 그르릉 거리기 시작했다. 도화는 어둠을 향해서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요망한 놈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분명하거늘, 어찌하여 산 사람을 헤치려 하느냐!”
푸스스스-
소년의 낮은 일갈에, 오솔길에 흩어진 낙엽들이 음산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도화는 서둘러 오행의 기운 중 토(土)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급히 뒤를 돌아보며 비형랑을 향해 외쳤다.
“형! 길을 지키는 파수꾼인 모양이에요! 도대체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분노한 원한령(怨恨靈)들을 심어 두었어요! 조심하세요!”
“제길...! 원한령???!!! 무언가 대단한 것들이 버티고 있으리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오냐! 이리로 오거라! 한바탕 신명나게 휘저어대 보자꾸나!!!”
“오행(五行)의 기운 중 토(土)의 이름으로 명한다! 갈!!”
도화가 발을 딛고 선 땅을 중심으로 그 안의 단단했던 흙바닥이 수면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작은 원의 중앙에 선 도화는 지신(地神)의 힘을 빌려 두 다리를 굳건하게 대지게 못 박았다. 일렁이는 흙바닥에서 모락모락 뿌연 안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부적을 꺼내어든 도화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비형랑을 돌아보고는 외쳤다.
“형! 개안부(開眼符)에요!! 받아요!”
“좋아! 그래, 뭐든 보여야 일단 이야기가 되지!”
“가라! 갈!”
휘리릭-
파앗-
도화의 외침과 함께 비형랑 쪽으로 날아든 부적은, 그의 이마 부근에서 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소멸되는 부적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푸른 기운이, 그의 정수리로 빨려들 듯 쭉 스며들었다. 동시에 비형랑은 이마부근이 시원해짐을 느끼며 갑자기 두 눈에 뿌연 막이 낀 것처럼 몹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벼락같은 느낌과 함께 덮여있던 시야가 한 순간에 화악! 트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본 순간, 벌어져 있는 끔찍한 광경에 그만, 그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눈이 트인 비형랑은, 그제야 오는 길 내내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화의 기운을 받은 개안부의 힘은, 그에게 소년이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저 쪽 앞으로부터 어둠을 뚫고 수십 개의 인영이 서서히 자신들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비형랑은 큰 숨을 들이켜서 잠시 동안 온 몸에 찬 공기를 머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몰려오는 이 지독한 음기들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나같이 모양이 끔찍했다. 팔이 잘린 자, 머리가 반쯤 뜯겨 나간 자, 몸통의 세로로 절반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간 자! 개중에는 풀어헤쳐진 머리의 여인으로 보이는 령(靈)도 있었고 어린아이나 사내로 보이는 령도 섞여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비형랑은 온몸으로 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펄떡이는 심장소리가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항상 알 수 없는 웃음을 끈이지 않고 달고 다녔던 비형랑이다. 그만큼 누구도 그 속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이 더없이 맑고 깊었다. 비형랑은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허름한 가죽 주머니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비형랑의 손에 쥔 검에는, 분명히 청룡검(靑龍劍)이라는 힘 있는 필체가 양각으로 용과 함께 조각되어있었다.
부웅-
웅웅웅웅-
웅웅-
놀랍게도 주변의 사기(邪氣)에 반응한 검은 스스로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었다. 명검(名劍)!!
푸르스름하게 날이 곧게 선 검날은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짜릿한 쾌감에 저절로 검신을 떨고 있었다. 비형랑은 검의 기운을 달래어 누르고는, 가슴높이에서 검을 옆으로 횡으로 누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도화는 등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의 파동을 느끼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대상을 보았다. 다행이도 비형랑은 몰려오는 원한령들을 보고도 두려움으로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또한 검을 쥔 그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벌써 원한령의 무리들이 서너 장을 앞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무리지어 내뿜는 사기가 도화의 영역을 침범해 왔다. 성질 급한 한 놈이 도화를 향해 순간적으로 덮쳐들었다.
퍼억!
허나 원한령보다는, 도화의 앞을 막고 선 야호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크허허엉!”
야호는 사나운 울음을 울부짖으며 원한령을 날카로운 이빨에 잡아 물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허나 독기를 품은 원령도 두 눈을 번쩍이며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크아아악-
자신의 허리춤을 야호에게 내주고도 입으로 덥썩 야호의 목덜미를 물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야호! 날카로운 영물의 이빨은 마침내 원령의 허리를 끊어, 두 동강 내어버렸다. 허나 아직 흰둥이의 목덜미에 붙은 원령의 머리통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끈질기게도, 반으로 찢긴 원령은 물고 있는 힘을 아직 풀지 않고 있었다. 야호의 목 줄기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화는 순간 눈에서 불꽃이 확 일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준비해 두고 있던 부적을 원령 쪽으로 내던졌다.
“가라! 아그니는 불(火)! 양기의 밝음이여!!”
도화의 외침과 함께 날아간 부적은 흰둥이의 목을 물고 있던 원령의 머리통에 철썩 달라붙었다.
콰츠츠츠-
요란한 전격음과 함께, 비로소 떨어져 나온 머리통은 허공에서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붙어 있는 찢긴 몸통은 몹시 괴로운지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다가 부적과 함께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잠시 후 원한령은 부르르 떨리더니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주춤하던 나머지 수십의 원한령들은 다시금 하나 둘 모이더니, 더욱 거세고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일행을 옥죄이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피 냄새를 맡은 원한령들은, 한층 더 음산한 목소리로 고함치고 있었다.
「네 몸을 내놔라!」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너는 내 것이다!」
「아니야! 내꺼야! 저리 비켜!」
「아이야... 이리 온... 크크크」
「배가고파.... 」
「네놈이 날 죽인거지! 그래 네놈이야! 널 찢어발기겠다!」
수십의 악귀가 달려드는 모골이 송연한 광경에, 잠시 동안 도화도 피가 멈추어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낮게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수십의 원한령이 한꺼번에 덮쳐든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익-
하나의 원한령이 도화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물리적인 타격보다도, 사악한 기운이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엄청난 사기가 정신을 침범해 와서 버티고 서 있는 것도 힘들만큼 몸이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도화의 몸에 열댓 개의 원한령이 들러붙었다.
크크크크-
팔에, 다리에, 그리고 어깨에 여기저기 들러붙은 원귀들은 사정없이 도화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는 중에도, 도화는 힘겹게 실눈을 뜨고 비형랑과 흰둥이의 안부를 살폈다. 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흰둥이는 스무 개가 넘는 원령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비형랑도 수십 개의 원령의 공격을 검으로 간신히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귀들은 살아생전의 무기와 주된 공격 방법으로 마구잡이로 돌진해 들어왔다. 도화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주문을 읊조렸다.
“오행(五行)의 기운!! 토(土)!! 사기를 잡아두라!! 갈!!”
힘찬 일갈과 함께, 원령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도화를 중심으로 일렁이고 있던 땅위의 물결은 순식간에 반경을 화악 넓혔다.
그리고 지면에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점점 더 진하게 몽클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 집결된 기운들은, 재빠르게 윤곽을 드러냈다. 마치 거미줄처럼 끈끈히 연결되어, 원혼령들을 단단히 옭아매었고, 몸이 붙잡히자 원귀들은 고통의 표효를 내질렀다.
꾸우우읍-
크아아-
잠시 틈이 생기자 도화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재차 법문을 외웠다.
“불의 신(神) 아그니의 화염이다! 마귀를 태워 죽이는 정염의 불길(火)!”
도화는 손바닥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불덩이를 있는 힘껏 원귀 무리를 향해서 내던졌다. 또한 정순한 불꽃은 도화의 온몸을 타고 은은하게 피어올라 소년의 몸 전체가 작은 불덩이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년의 몸을 갉아 먹던 악귀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후두두둑 떨어져 나갔다.
치지치칫-
원귀 무리사이에 떨어진 아그니의 화염은, 연쇄적으로 불꽃을 일으키며 삽시간에 영혼들을 태워 들어갔다.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 일대를 휘감았다.
머리털 나고는 처음 접하는 귀신(鬼神)과의 싸움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비형랑이었다. 단순히 검으로 베고 찌르는 동작으로는 원혼들에게 작은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허나 자신은 원혼령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당하며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화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도화야! 대체 이놈들을 어찌해야 되는 것이야!”
“형! 이들은 살아서 원한이 많았던 사람들의 혼(魂)이야! 자신의 원한을 피로 즐기며 화풀이 하고 있어! 빙의(憑依)당하지 않도록 사념이 파고들어오는 걸 조심해야 해!”
비형랑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행히도 사부가 하사한 곤륜의 보물인 청룡검은 천하의 보검이었다. 검 스스로 내뿜고 있는 기도에 겁먹은 원령들은 함부로 그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무리지어 압박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허나 그 역시 미처 방어하지 못하는 발등이나 등과 같은 곳을 여기저기 뜯어 먹히는 중이었다. 그 중 한 놈은 살아생전 검으로 악명이 높았던 원혼인 듯, 검날과 같은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허벅지를 가르고 들어왔다.
챙강!
유연하게 자세를 낮추며 검을 세로로 세워 가까스로 공격을 막았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등허리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때 마침, 도화의 법문과 함께 원령들의 움직임이 땅에 붙들리며, 한숨 돌릴 여유가 왔다. 소년의 몸으로 혼신을 다하는 도화를 바라본 비형랑은, 가슴속으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 기회다!!
‘곤륜의 정신이 깃든 검(劍)은 하늘을 가른다! 마귀 따위는 장애가 될 수 없는 법!’
“곤륜의 천하제일검, 태청검(太淸劍) 제1장 비문!”
타앗-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비형랑의 몸이 훌쩍 위로 솟구쳤다. 허공을 밟고 재차 도약하는 그의 모습은 곤륜이 상징하는 한 마리의 용과 같았다. 비형랑의 몸을 물고 있던 대여섯 마리의 원혼들은, 미처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멀리 튕겨져 나갔다.
흘깃 그 모습을 본 도화는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누비는 모습이구나! 저것이....... 용형보(龍形步)!”
허공에서 양팔을 벌리고 두 다리를 굽힌 자세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은 비형랑은, 다시 한번 기합을 내지르며 전신의 기운을 청룡검을 향해 쏟아 부었다.
“태청검(太淸劍) 제2장 운룡!”
동시에 그의 몸은 마치 용오름의 회오리처럼 회전하며 지상을 향하여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비형랑의 주위로 몰아치는 광풍은, 회오리 꼭대기의 검 끝으로 집중되었다.
휘오오옹-
웅웅웅-
청룡검이 검신을 떨며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잠시 뒤, 그의 발이 땅위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어 큰 반원을 그리며 내리쳤고, 청룡검의 검풍은 그의 허리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수직으로 꺾었다.
“태청검(太淸劍) 제3장 쇄마!!!”
슈아아악-
검끝에서 몰아친 검풍은 비형랑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십의 원령들의 허리를 반 토막 내며 폭풍처럼 지나갔다. 원령들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털썩.
무리하게 진기를 내뿜었던 비형랑의 두 무릎이 땅위로 꺾였다. 청룡검을 땅에 박아 넣어 몸을 기대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아..하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비형랑은 고개를 돌려 도화 쪽을 바라보았다. 도화의 몸에서는 하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서 내쏘아진 정갈한 불의 기운은 차례대로 원령들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무리를 지어 공격해 올 때, 숫자상으로 밀리고 또한 당황하여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지, 일단 우세를 점하고 난 다음은 비교적 해볼만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의 원령도, 흰둥이의 앞발에서 내쏘아진 날카로운 검강을 바라보며 악을 써대고 있었다.
썽둥-
반으로 잘려진 마지막 원령의 몸뚱이는 허공에 검은 연기를 남기며 푸스스 사그라졌다.
비형랑은 곧 일어서서 도화 쪽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의 가냘픈 육신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안쓰러운 얼굴로 도화를 들여다 본 비형랑은 다급히 물었다.
“도화야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네에! 형은요?”
“이 형님 꼴을 좀 봐라.. 허허 그것 참.”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 어깨를 으쓱하는 비형랑을 바라본 도화는 그의 몰골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디 한곳 성한 곳이 없이 여기저기 찢겨있고 상처투성이였다.
물론 도화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넝마가 된 옷하며, 검게 그을린 자국까지!
도화의 안위를 확인한 비형랑은 허리를 숙여 흰둥이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도 잠깐 핏물이 베였을 뿐 걱정할 만한 위험은 없었다.
비형랑은 도화의 등을 토닥이며 기운을 북돋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위소저가 날 가만두겠냐! 하하”
“........”
희미한 미소를 지은 도화는 말없이 돌아서서 반대편의 어둠을 직시했다.
“아까보다 나아진 상황은 없어요.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걸음을 서둘러요.”
“그래. 서두르자. 어서 여기 일을 마무리 짓고 위소저와 작약어른께 힘을 실어드려야지!”
일행은 서둘러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라고 짐작되어 지는 곳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진해지는 음기와 사기(邪氣)로 인해, 피부 속까지 스산한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도화와 비형랑은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혼령들 혹은 죽은 시체들과 싸우며 길을 뚫어 나가야했다. 어둠속에서의 격전은 일행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주었다.
“이런 제길! 이 밟아 죽일 놈! 도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로 사령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거야!”
“일종의 진과 같아요. 아마도 이곳 하북성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에 이런 원령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할 걸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여기와 조금 떨어진 곳에 나 있을 거 에요. 우리가 지나온 자리는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관문일 꺼 에요.”
“일단은....... 맞게 가고 있다는 말이겠군?”
“.......그렇죠.”
비형랑이 오솔길 옆의 큰 바위를 막 지나려 할 때였다.
발목에 무엇인가가 걸렸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순식간에 쏘아져 나오는 매서운 기운에 깜짝 놀라, 한발을 든 채로, 그는 급히 허리를 뒤로 꺾었다.
슈욱-
다행히도 날카로운 쇠침하나가 그의 배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뒤의 나무에 툭하고 박혔다.
“이런...!”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들고 있던 발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잠깐! 멈춰요!”
눈썰미 있게 주위를 둘러본 도화가 급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어렵지 않게 다시 균형을 잡은 그는, 의문이 담긴 눈길로 도화를 보았다. 도화는 손가락으로 그의 발등을 가리켰다. 내려다본 자신의 발등에는 가느다란 은사가 간당간당하게 걸려있었다.
“아차!”
아마도 그가 피한 하나의 쇠침에 안심하고, 마저 한쪽 발을 내딛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그는 벌집이 되어있을 터였다. 조심스럽게 비형랑은 몸을 뒤로 빼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헉!”
“저것은?!”
은사의 아래에는 웬 해골바가지 두개가 떡하니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어둠속이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머리통만 덩그러니 놓인 해골은 턱을 벙긋벙긋 거리며 무엇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돌아가라! 돌아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운이라면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음을 부른다! 돌아가!」
「크크크 죽어라! 죽어!」
지독한 사념에 흠칫 놀란 비형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도화가 가만히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해골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휑하니 텅 빈 눈을 조용히 주시했다.
“저 어둠의 끝에 무엇이 있어, 나에게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것이냐?”
「어둠의 끝에는 힘의 주인이 있지! 돌아가라!」
“힘의 주인?”
「돌아가라! 돌아가라!」
해골은 더 이상 아는 바가 없는 것인지, 가타부타 딴 이야기를 하기 싫은 것인지 계속해서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해서 되풀이 하고 있었다.
해골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도화의 손길에 하얀 빛 무리가 잠깐 일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턱뼈를 움직이던 해골은, 반쯤 바스러진 하얀 백골 덩어리로 돌아갔다.
도화의 눈에 잠시지만 물기가 묻어났다.
“불쌍한 혼령들을 마구잡이로 이용하고 있어. 저번의 아귀의 경우도....... 지금까지 우리가 헤치고 올라온 원령들도....... 모두들 죽어서도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이곳에 붙잡혀 있어, 형! 이곳 하북성에서는, 지금 새로운 지옥이 열리고 있는 거야!”
도화의 이야기를 듣던 비형랑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짙은 눈썹과 시원스러운 눈매가 찌푸려지며 사납게 떨렸다.
“놈! 가만히 두지 않는다!”
비형랑은 저벅저벅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자 도화도 얼른 그를 따라 걸었다. 이제 앞으로 뻗어 있는 길은 하나였다. 어둠너머로 도화가 중얼거렸다.
‘놈...이 아닐지도 몰라......... 형! 인간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을 테니......’
이윽고 출발한지 두 시진쯤 후에 그들은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화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는 길 내내 지독했던 음기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거짓말처럼 싹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대신 음산한 전각 하나가 두 사람의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도화는 아마도 모든 음기가 이 건물의 지하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기에도 어두운 기운을 가득 내뿜고 있는 이 건물은, 방금 전에 사형들과 자리를 잠시 비운, 바로 서문탁- 그의 전각이었다.
『도화』 (27)
-나를 부르는 소리(4)-
하아-흠.......!”
큰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사내는 졸린 눈을 부비며, 크게 하품을 내지르는 중이었다.
뉘엿뉘엿 저물던 해가 벌써 산 아래로 쑤욱 떨어져 내린지도 이미 한참 전이었다. 아직은 노을의 기운이 남아, 하늘은 검붉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이 박힌 몇 개의 큰 별들이 흰 쌀밥에 박힌 콩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에라이.. 이런 날 딱 번(番)에 걸리다니! 녀석들은 한판 술상이 벌어졌겠구나! 쓰읍.....!’
혼자 투덜거리며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내는, 손에 쥔 창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발아래의 보따리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어 들기 시작했다. 보초를 서기위해 교대하러 나오기 전에, 마누라가 품에 찔러준 잔치음식이었다. 하북성의 저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듯 했다. 사내는 탁주를 손에 쥐고, 한 사발 가득 따라 부었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막 들이키려던 참이었다. 술맛을 음미하려 지그시 눈을 감으려던 그는, 순간 너무나도 놀라 손에 든 탁주 사발을 땅에 떨어트렸다.
철렁-
쨍그랑!
“누, 누구냐!”
그의 눈앞에서 낯선 네 명의 이방인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땅위를 나뒹구는 사발 그릇의 요란한 소리가 그의 경직된 신경을 더욱 자극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사내는 성 안쪽에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네 명의 낯선 사람들 중, 가운데 선 붉은 경장 차람의 여인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서 활을 겨냥하는 것이 사내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오른손으로는 재빠르게 창을 집어 들어 경계자세를 취하고, 왼손으로는 더듬더듬 호각을 찾아 입에 물었다.
창자의 뱃심까지 끌어 모아 입으로 호각을 불려는 순간!
피슈우웅!
서걱- 푸우욱-
‘으아아아악!!’
두 팔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에, 사내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의 비명소리는 목구멍을 통해 밖으로 내뱉어지지 못했다. 공포로 가득한 사내의 눈은 튀어나올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떨리는 그의 눈동자는, 귀신처럼 순식간에 다가와서 어느새 자신의 앞에 딱 버티고 선 노파를 향했다. 팔을 뚫는 고통과 함께 눈앞에 선 노파는 자신의 목 부근과 몇 군데 요혈을 순식간에 점혈 했다.
“조용히 해라. 아혈을 짚었다. 용을 써도 소리가 나오지 않을 터이니.......쯧쯧”
노파의 말대로, 사내의 목 부근의 성대와 턱이 합쳐지는 곳의 좌측부터 혀가 뻣뻣하게 굳어 오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고함을 지르려는 듯 필사적으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자신에게 활을 쏜 여인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 당도한 여 무사의 표정은 너무나도 당당해 보였다. 자신의 왼손에 들린 호각을 빼앗아 들고는,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으로 홱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선 노파를 향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죽이지 않았으니까 된 거죠?!”
여인의 호통소리와 함께, 사내는 자신의 좌우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화살두개가 자신의 피부 가죽을 가르고 근육사이를 헤집으며 양 팔을 꿰뚫고 있었다.
벽에 걸어둔 박제처럼,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두 팔도 사정없이 기둥에 박혀있었다. 분명히 양팔에 느껴졌던 벼락같은 고통은 같은 순간 이였다. 아마도 호각을 불려는 순간 여무사가 내 쏜 두 대의 화살이 동시에 자신의 두 팔을 관통하였으리라!
허나 희한하게도 노파가 몇 군데 혈을 짚고 나자, 아까까지 전신을 짓누르던 엄청난 고통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단지 지금 그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으로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굳어 있을 뿐이다.
‘빨리 알려야 해! 이, 이들은...!’
“오래 걸리지 않을 터이니, 잠시 자두어라. 내가 지혈을 해 두었으니 내일 아침 치료를 받으면 될 것이다.”
‘살, 살려.........!’
무엇이라고 항변하려는 듯이 괴기스럽게 입을 벙긋거리던 보초병은, 노파가 수혈을 짚음과 동시에 앞으로 고개가 푹 고꾸라졌다.
“생명을 귀이 여기어야 한다. 매 순간마다, 다 네 업보가 쌓이고 있음이야!”
“흥! 저자가 호각을 불고 난 후에도 그리 말씀하실 거 에요?”
팩하고 토라졌지만 당당하게 고개를 꼿꼿이 든 한영이다. 그녀를 바라보며, 작약은 노기를 띤 음색에 걱정을 실었다. 화제를 돌리려는 듯 시선을 돌린 한영은 문득 저기 떨어진 구석에서 현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도화를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도화야 거기서 머하고 있는 거야! 서두르자! 이리와!”
‘그나저나 이 팽가는 어찌된 것이 현판을 세로로 세워 걸어 둔 것이지?’
소년을 향해 대뜸 한마디 내뱉은 한영도 소년과 마찬가지로 잠시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화는 현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슬며시 손을 대어보고는, 화들짝 놀라 다시 손을 급히 뺐다. 소년의 얼굴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현판은...! 끔직한.....!”
“도화도령 무슨 일이야!”
“......왜?”
급하게 일행 쪽으로 뛰어 온 도화는, 작약과 한영 그리고 비형랑을 차례로 돌아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누나, 할머니 그리고 형! 이 성은 지금 지독한 음기를 빨아들이는 마른 솜과 같아요! 오는 내내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풍수상 이곳은 해가 뜨는 양지라서 음기가 흐트러지지 마련이지요. 하지만 지금 여기는 묘하게 뒤틀어진 기운들이 음기를 오히려 급히 끌어 모으고 있어요! 저 현판은 누군가 엄청난 공력을 실어 넣어, 사기(邪氣)가 몰리는 여기 입구에 세워서 박아 넣은 것 같아요! 글자 하나하나가 엄청난 부적(符籍)이에요!!”
“사기를 누르는 부적?!”
“네. 형! 허나 지금, 지금 이제는 더 이상 부적만으로는 버티기 힘들 거 에요! 놀라워요! 이렇게 엄청난 음기가 몰릴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를 잇는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영은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급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서 가요! 일단 서문탁 그놈을 먼저 잡아서...!”
“위소저 그렇게 쉽게 생각 할 일이 아니에요! 상대는 일개 세가입니다. 마침 가주의 생일 연이라 방비가 허술하니, 그 틈을 노리고 내부로 잠입해야 해요.”
“겁이 나면, 비형랑 당신은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 뒷짐 지고 구경이나 해! 나 혼자로도 충분하니까! 내가 끝장을 본다!”
“아, 아니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니라.......!”
독기를 띤 매서운 눈으로 비형랑과 하북성을 차례로 노려본 한영은, 이어지는 도화의 말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활을 떨어뜨릴 뻔 했다.
“저는 일단 이 음기를 쫒아 갈게요! 누나와 할머니는 정문 쪽에서부터 위로 치고 들어가세요. 분명히 이 기운의 끝은 제가 쫒아 가야 할 것 같아요.”
“화야! 너 혼자 어떻게 간다는 말이냐! 누나랑 같이 움직이자!”
“아니야 누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도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에 단단한 각오의 빛을 띠었다. 그리고 흰둥이와 함께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며 주변의 기를 훔치기 시작했다.
‘...... 어차피 주술전이라면 내가 해야 할 싸움이에요!’
“좋아! 일단 작약 어른과 위소저는 정문으로부터 치고 올라가서 가주가 있는 곳 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시지요! 될 수 있는 데로 이목을 피하시구요. 저는 도화도령의 뒤를 따르지요! 넷이 함께 움직인다면 오히려 표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두 패로 나뉘어져 움직이는 것이 좋겠군요.”
더 이상 일행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일 분 일초라도 아껴야 했다. 논리적으로 작전을 이야기하는 비형랑을 긴장된 눈으로 바라보던 한영은, 체념한 듯 짧은 숨을 내쉬고는 그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도화를 부탁해.”
비형랑은 한영의 중얼거림을 알아듣고, 멋지게 웃는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짙은 눈썹과 시원스러운 눈매가 한영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돌아서서 기를 더듬으며 멀어져 가는 도화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작약은 말없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별빛에 반사되어 은빛의 털을 휘날리는 야호를 한번 보고는 한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신이 봉인된 야호 그리고 검선의 제자인 비형랑. 저 둘이라면 안심이다!
작약과 한영은 긴장된 눈으로 서서, 성 안쪽 어둠 속으로 스르르 사라져 드는 셋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이윽고 짙은 어둠이 그들의 그림자를 삼키자, 한영은 작약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했다.
“우리도 슬슬 움직이죠!”
“제발 사람의 목숨을 귀이 여기 거라. 알겠지?”
“귀에 딱지가 앉겠네~! 알겠다고요! 가요!”
고함을 빽 지른 한영은 등을 둥그렇게 굽혔다. 곧바로 내쏘아진 활처럼 상체를 쫙 편 그녀는 탄력을 이용해 몸을 위로 솟구쳤다.
화악-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허공에 내질러졌다. 최상의 경공인 궁신탄영(弓身彈影)!
한영은 늘씬하게 한바퀴 제비를 돌아 사뿐히 지붕위에 올라섰다. 그녀의 옆에는 어느새 귀신같이 다가온 작약이 말없이 서 있었다. 음산한 큰 문의 기와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눈 아래에는, 웅장한 하북성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내부의 지도를 머리에 새겨 두려는 듯, 잠시 동안 보초와 인원, 전각의 위치 등을 굽어 살피기 시작했다. 한영의 두 눈은 더 없이 차갑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조용한 그녀의 음성이 밤하늘을 갈랐다.
“서북북 방향으로 이백여 장 간 후, 곧장 동쪽 다시 오십여 장이면 되겠군요. 저기가 가주와 그 서문탁이라는 자가 있는 곳이 틀림없어요.”
한영의 말을 따라 작약의 시선도 옮겨졌다. 확실히 그곳이 전각의 배치 상으로 보아도 하북성의 심장부였다. 또한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는 것이, 틀림없는 중심부로 보였다.
찬 밤공기를 한 움큼 들이키고 기를 전신으로 끌어 올린 한영은, 다시 한번 등을 둥글게 굽혔다. 아까보다 더욱 깊은 자세다. 궁신탄영! 활처럼 내쏘아진 그녀의 몸은, 솟아오른 가슴을 중심으로 탄력을 받아, 반대쪽 어둠을 향해 날아올랐다.
쉬이익-
타앗-
허공으로 날아오른 몸은, 박쥐처럼 어둠을 가르며 지상위로 사라져 갔다. 말없는 작약의 노신(老身)또한 거리낌 없이 그녀의 그림자를 따라 한 줄기 빛을 남기며 허공으로 쏘아졌다.
* * *
도화와 비형랑은 한적한 뒷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게 도화가 음기를 쫒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길은, 하북성 내부에서도 가장 은밀하고도 으슥한 곳이었다. 따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딱히 길을 지키고 선 초병이라든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주인공이 비형랑 하나라는 것이지만.
‘이상한 일이군. 정말로 희한해. 이 큰 세가에서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구나!’
비형랑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동안, 앞서서 걸어가고 있는 도화의 표정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꽉 쥔 소년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발을 멈추어 제자리에 우뚝 섰다. 그 자세 그대로 꼼짝도 않고 흠칫 몸을 떨었다.
뒤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도화를 따르던 비형랑은, 덩달아 깜짝 놀라 서둘러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곁에 선 야호도 소년을 지키려는 듯 도화의 앞쪽으로 달려와, 몸을 낮게 숙이고 사납게 그르릉 거리기 시작했다. 도화는 어둠을 향해서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요망한 놈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분명하거늘, 어찌하여 산 사람을 헤치려 하느냐!”
푸스스스-
소년의 낮은 일갈에, 오솔길에 흩어진 낙엽들이 음산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도화는 서둘러 오행의 기운 중 토(土)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급히 뒤를 돌아보며 비형랑을 향해 외쳤다.
“형! 길을 지키는 파수꾼인 모양이에요! 도대체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분노한 원한령(怨恨靈)들을 심어 두었어요! 조심하세요!”
“제길...! 원한령???!!! 무언가 대단한 것들이 버티고 있으리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오냐! 이리로 오거라! 한바탕 신명나게 휘저어대 보자꾸나!!!”
“오행(五行)의 기운 중 토(土)의 이름으로 명한다! 갈!!”
도화가 발을 딛고 선 땅을 중심으로 그 안의 단단했던 흙바닥이 수면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작은 원의 중앙에 선 도화는 지신(地神)의 힘을 빌려 두 다리를 굳건하게 대지게 못 박았다. 일렁이는 흙바닥에서 모락모락 뿌연 안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부적을 꺼내어든 도화는 왼쪽으로 몸을 돌려 비형랑을 돌아보고는 외쳤다.
“형! 개안부(開眼符)에요!! 받아요!”
“좋아! 그래, 뭐든 보여야 일단 이야기가 되지!”
“가라! 갈!”
휘리릭-
파앗-
도화의 외침과 함께 비형랑 쪽으로 날아든 부적은, 그의 이마 부근에서 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소멸되는 부적에서 새어나온 한 줄기 푸른 기운이, 그의 정수리로 빨려들 듯 쭉 스며들었다. 동시에 비형랑은 이마부근이 시원해짐을 느끼며 갑자기 두 눈에 뿌연 막이 낀 것처럼 몹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벼락같은 느낌과 함께 덮여있던 시야가 한 순간에 화악! 트였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본 순간, 벌어져 있는 끔찍한 광경에 그만, 그의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눈이 트인 비형랑은, 그제야 오는 길 내내 도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화의 기운을 받은 개안부의 힘은, 그에게 소년이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었다.
저 쪽 앞으로부터 어둠을 뚫고 수십 개의 인영이 서서히 자신들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비형랑은 큰 숨을 들이켜서 잠시 동안 온 몸에 찬 공기를 머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몰려오는 이 지독한 음기들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하나같이 모양이 끔찍했다. 팔이 잘린 자, 머리가 반쯤 뜯겨 나간 자, 몸통의 세로로 절반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간 자! 개중에는 풀어헤쳐진 머리의 여인으로 보이는 령(靈)도 있었고 어린아이나 사내로 보이는 령도 섞여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비형랑은 온몸으로 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가슴속에서 펄떡이는 심장소리가 머릿속에 울리기 시작했다.
항상 알 수 없는 웃음을 끈이지 않고 달고 다녔던 비형랑이다. 그만큼 누구도 그 속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그의 두 눈이 더없이 맑고 깊었다. 비형랑은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허름한 가죽 주머니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비형랑의 손에 쥔 검에는, 분명히 청룡검(靑龍劍)이라는 힘 있는 필체가 양각으로 용과 함께 조각되어있었다.
부웅-
웅웅웅웅-
웅웅-
놀랍게도 주변의 사기(邪氣)에 반응한 검은 스스로 구슬프게 울어대고 있었다. 명검(名劍)!!
푸르스름하게 날이 곧게 선 검날은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짜릿한 쾌감에 저절로 검신을 떨고 있었다. 비형랑은 검의 기운을 달래어 누르고는, 가슴높이에서 검을 옆으로 횡으로 누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도화는 등 뒤쪽에서 느껴지는 기의 파동을 느끼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대상을 보았다. 다행이도 비형랑은 몰려오는 원한령들을 보고도 두려움으로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또한 검을 쥔 그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벌써 원한령의 무리들이 서너 장을 앞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무리지어 내뿜는 사기가 도화의 영역을 침범해 왔다. 성질 급한 한 놈이 도화를 향해 순간적으로 덮쳐들었다.
퍼억!
허나 원한령보다는, 도화의 앞을 막고 선 야호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크허허엉!”
야호는 사나운 울음을 울부짖으며 원한령을 날카로운 이빨에 잡아 물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허나 독기를 품은 원령도 두 눈을 번쩍이며 순순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크아아악-
자신의 허리춤을 야호에게 내주고도 입으로 덥썩 야호의 목덜미를 물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야호! 날카로운 영물의 이빨은 마침내 원령의 허리를 끊어, 두 동강 내어버렸다. 허나 아직 흰둥이의 목덜미에 붙은 원령의 머리통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끈질기게도, 반으로 찢긴 원령은 물고 있는 힘을 아직 풀지 않고 있었다. 야호의 목 줄기에서 한줄기 핏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화는 순간 눈에서 불꽃이 확 일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준비해 두고 있던 부적을 원령 쪽으로 내던졌다.
“가라! 아그니는 불(火)! 양기의 밝음이여!!”
도화의 외침과 함께 날아간 부적은 흰둥이의 목을 물고 있던 원령의 머리통에 철썩 달라붙었다.
콰츠츠츠-
요란한 전격음과 함께, 비로소 떨어져 나온 머리통은 허공에서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붙어 있는 찢긴 몸통은 몹시 괴로운지 괴기스러운 소리를 내지르다가 부적과 함께 바닥으로 털썩 떨어졌다. 잠시 후 원한령은 부르르 떨리더니 한줌의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주춤하던 나머지 수십의 원한령들은 다시금 하나 둘 모이더니, 더욱 거세고 요사스러운 기운으로 일행을 옥죄이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피 냄새를 맡은 원한령들은, 한층 더 음산한 목소리로 고함치고 있었다.
「네 몸을 내놔라!」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너는 내 것이다!」
「아니야! 내꺼야! 저리 비켜!」
「아이야... 이리 온... 크크크」
「배가고파.... 」
「네놈이 날 죽인거지! 그래 네놈이야! 널 찢어발기겠다!」
수십의 악귀가 달려드는 모골이 송연한 광경에, 잠시 동안 도화도 피가 멈추어 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낮게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수십의 원한령이 한꺼번에 덮쳐든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익-
하나의 원한령이 도화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물리적인 타격보다도, 사악한 기운이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엄청난 사기가 정신을 침범해 와서 버티고 서 있는 것도 힘들만큼 몸이 휘청거렸다. 순식간에 도화의 몸에 열댓 개의 원한령이 들러붙었다.
크크크크-
팔에, 다리에, 그리고 어깨에 여기저기 들러붙은 원귀들은 사정없이 도화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하는 중에도, 도화는 힘겹게 실눈을 뜨고 비형랑과 흰둥이의 안부를 살폈다. 그들도 자신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흰둥이는 스무 개가 넘는 원령에 둘러싸여 정신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비형랑도 수십 개의 원령의 공격을 검으로 간신히 방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원귀들은 살아생전의 무기와 주된 공격 방법으로 마구잡이로 돌진해 들어왔다. 도화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주문을 읊조렸다.
“오행(五行)의 기운!! 토(土)!! 사기를 잡아두라!! 갈!!”
힘찬 일갈과 함께, 원령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지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도화를 중심으로 일렁이고 있던 땅위의 물결은 순식간에 반경을 화악 넓혔다.
그리고 지면에서 피어오르던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점점 더 진하게 몽클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 집결된 기운들은, 재빠르게 윤곽을 드러냈다. 마치 거미줄처럼 끈끈히 연결되어, 원혼령들을 단단히 옭아매었고, 몸이 붙잡히자 원귀들은 고통의 표효를 내질렀다.
꾸우우읍-
크아아-
잠시 틈이 생기자 도화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재차 법문을 외웠다.
“불의 신(神) 아그니의 화염이다! 마귀를 태워 죽이는 정염의 불길(火)!”
도화는 손바닥에서 일렁이기 시작한 불덩이를 있는 힘껏 원귀 무리를 향해서 내던졌다. 또한 정순한 불꽃은 도화의 온몸을 타고 은은하게 피어올라 소년의 몸 전체가 작은 불덩이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년의 몸을 갉아 먹던 악귀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후두두둑 떨어져 나갔다.
치지치칫-
원귀 무리사이에 떨어진 아그니의 화염은, 연쇄적으로 불꽃을 일으키며 삽시간에 영혼들을 태워 들어갔다. 고약한 냄새와 연기가 일대를 휘감았다.
머리털 나고는 처음 접하는 귀신(鬼神)과의 싸움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비형랑이었다. 단순히 검으로 베고 찌르는 동작으로는 원혼들에게 작은 타격도 줄 수 없었다. 허나 자신은 원혼령들의 공격을 고스란히 당하며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도화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도화야! 대체 이놈들을 어찌해야 되는 것이야!”
“형! 이들은 살아서 원한이 많았던 사람들의 혼(魂)이야! 자신의 원한을 피로 즐기며 화풀이 하고 있어! 빙의(憑依)당하지 않도록 사념이 파고들어오는 걸 조심해야 해!”
비형랑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다행히도 사부가 하사한 곤륜의 보물인 청룡검은 천하의 보검이었다. 검 스스로 내뿜고 있는 기도에 겁먹은 원령들은 함부로 그에게 달려들지 못하고, 무리지어 압박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허나 그 역시 미처 방어하지 못하는 발등이나 등과 같은 곳을 여기저기 뜯어 먹히는 중이었다. 그 중 한 놈은 살아생전 검으로 악명이 높았던 원혼인 듯, 검날과 같은 날카로운 예기가 그의 허벅지를 가르고 들어왔다.
챙강!
유연하게 자세를 낮추며 검을 세로로 세워 가까스로 공격을 막았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등허리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때 마침, 도화의 법문과 함께 원령들의 움직임이 땅에 붙들리며, 한숨 돌릴 여유가 왔다. 소년의 몸으로 혼신을 다하는 도화를 바라본 비형랑은, 가슴속으로부터 뜨거운 덩어리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 기회다!!
‘곤륜의 정신이 깃든 검(劍)은 하늘을 가른다! 마귀 따위는 장애가 될 수 없는 법!’
“곤륜의 천하제일검, 태청검(太淸劍) 제1장 비문!”
타앗-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비형랑의 몸이 훌쩍 위로 솟구쳤다. 허공을 밟고 재차 도약하는 그의 모습은 곤륜이 상징하는 한 마리의 용과 같았다. 비형랑의 몸을 물고 있던 대여섯 마리의 원혼들은, 미처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멀리 튕겨져 나갔다.
흘깃 그 모습을 본 도화는 낮게 탄성을 내질렀다.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누비는 모습이구나! 저것이....... 용형보(龍形步)!”
허공에서 양팔을 벌리고 두 다리를 굽힌 자세로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은 비형랑은, 다시 한번 기합을 내지르며 전신의 기운을 청룡검을 향해 쏟아 부었다.
“태청검(太淸劍) 제2장 운룡!”
동시에 그의 몸은 마치 용오름의 회오리처럼 회전하며 지상을 향하여 내리 꽂히기 시작했다. 비형랑의 주위로 몰아치는 광풍은, 회오리 꼭대기의 검 끝으로 집중되었다.
휘오오옹-
웅웅웅-
청룡검이 검신을 떨며 목청껏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잠시 뒤, 그의 발이 땅위에 도착함과 동시에, 그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실어 큰 반원을 그리며 내리쳤고, 청룡검의 검풍은 그의 허리 높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수직으로 꺾었다.
“태청검(太淸劍) 제3장 쇄마!!!”
슈아아악-
검끝에서 몰아친 검풍은 비형랑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십의 원령들의 허리를 반 토막 내며 폭풍처럼 지나갔다. 원령들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털썩.
무리하게 진기를 내뿜었던 비형랑의 두 무릎이 땅위로 꺾였다. 청룡검을 땅에 박아 넣어 몸을 기대며 잠시 숨을 골랐다.
“하아..하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비형랑은 고개를 돌려 도화 쪽을 바라보았다. 도화의 몸에서는 하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서 내쏘아진 정갈한 불의 기운은 차례대로 원령들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무리를 지어 공격해 올 때, 숫자상으로 밀리고 또한 당황하여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지, 일단 우세를 점하고 난 다음은 비교적 해볼만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하나의 원령도, 흰둥이의 앞발에서 내쏘아진 날카로운 검강을 바라보며 악을 써대고 있었다.
썽둥-
반으로 잘려진 마지막 원령의 몸뚱이는 허공에 검은 연기를 남기며 푸스스 사그라졌다.
비형랑은 곧 일어서서 도화 쪽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소년의 가냘픈 육신도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안쓰러운 얼굴로 도화를 들여다 본 비형랑은 다급히 물었다.
“도화야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네에! 형은요?”
“이 형님 꼴을 좀 봐라.. 허허 그것 참.”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 어깨를 으쓱하는 비형랑을 바라본 도화는 그의 몰골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디 한곳 성한 곳이 없이 여기저기 찢겨있고 상처투성이였다.
물론 도화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넝마가 된 옷하며, 검게 그을린 자국까지!
도화의 안위를 확인한 비형랑은 허리를 숙여 흰둥이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히도 잠깐 핏물이 베였을 뿐 걱정할 만한 위험은 없었다.
비형랑은 도화의 등을 토닥이며 기운을 북돋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네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위소저가 날 가만두겠냐! 하하”
“........”
희미한 미소를 지은 도화는 말없이 돌아서서 반대편의 어둠을 직시했다.
“아까보다 나아진 상황은 없어요.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걸음을 서둘러요.”
“그래. 서두르자. 어서 여기 일을 마무리 짓고 위소저와 작약어른께 힘을 실어드려야지!”
일행은 서둘러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라고 짐작되어 지는 곳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진해지는 음기와 사기(邪氣)로 인해, 피부 속까지 스산한 기운이 스며들어 왔다.
도화와 비형랑은 그 뒤로도 몇 번을 더, 혼령들 혹은 죽은 시체들과 싸우며 길을 뚫어 나가야했다. 어둠속에서의 격전은 일행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주었다.
“이런 제길! 이 밟아 죽일 놈! 도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로 사령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거야!”
“일종의 진과 같아요. 아마도 이곳 하북성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에 이런 원령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할 걸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여기와 조금 떨어진 곳에 나 있을 거 에요. 우리가 지나온 자리는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관문일 꺼 에요.”
“일단은....... 맞게 가고 있다는 말이겠군?”
“.......그렇죠.”
비형랑이 오솔길 옆의 큰 바위를 막 지나려 할 때였다.
발목에 무엇인가가 걸렸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순식간에 쏘아져 나오는 매서운 기운에 깜짝 놀라, 한발을 든 채로, 그는 급히 허리를 뒤로 꺾었다.
슈욱-
다행히도 날카로운 쇠침하나가 그의 배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뒤의 나무에 툭하고 박혔다.
“이런...!”
잔뜩 구겨진 인상으로, 들고 있던 발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잠깐! 멈춰요!”
눈썰미 있게 주위를 둘러본 도화가 급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어렵지 않게 다시 균형을 잡은 그는, 의문이 담긴 눈길로 도화를 보았다. 도화는 손가락으로 그의 발등을 가리켰다. 내려다본 자신의 발등에는 가느다란 은사가 간당간당하게 걸려있었다.
“아차!”
아마도 그가 피한 하나의 쇠침에 안심하고, 마저 한쪽 발을 내딛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그는 벌집이 되어있을 터였다. 조심스럽게 비형랑은 몸을 뒤로 빼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몸을 숙였다.
“헉!”
“저것은?!”
은사의 아래에는 웬 해골바가지 두개가 떡하니 바닥에 놓여져 있었다. 어둠속이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머리통만 덩그러니 놓인 해골은 턱을 벙긋벙긋 거리며 무엇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었다.
「돌아가라! 돌아가!」
「여기까지 온 것이 운이라면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음을 부른다! 돌아가!」
「크크크 죽어라! 죽어!」
지독한 사념에 흠칫 놀란 비형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도화가 가만히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해골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휑하니 텅 빈 눈을 조용히 주시했다.
“저 어둠의 끝에 무엇이 있어, 나에게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것이냐?”
「어둠의 끝에는 힘의 주인이 있지! 돌아가라!」
“힘의 주인?”
「돌아가라! 돌아가라!」
해골은 더 이상 아는 바가 없는 것인지, 가타부타 딴 이야기를 하기 싫은 것인지 계속해서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해서 되풀이 하고 있었다.
도화는 가련한 눈빛으로 해골을 내려다 본 다음, 낮게 중얼거렸다.
“불쌍한 자여- 가야할 곳으로 떠나라! 소마신은 정화의 힘이니, 옴 아마라 검제이니 후옴”
해골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도화의 손길에 하얀 빛 무리가 잠깐 일었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턱뼈를 움직이던 해골은, 반쯤 바스러진 하얀 백골 덩어리로 돌아갔다.
도화의 눈에 잠시지만 물기가 묻어났다.
“불쌍한 혼령들을 마구잡이로 이용하고 있어. 저번의 아귀의 경우도....... 지금까지 우리가 헤치고 올라온 원령들도....... 모두들 죽어서도 끔찍한 고통을 당하며 이곳에 붙잡혀 있어, 형! 이곳 하북성에서는, 지금 새로운 지옥이 열리고 있는 거야!”
도화의 이야기를 듣던 비형랑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짙은 눈썹과 시원스러운 눈매가 찌푸려지며 사납게 떨렸다.
“놈! 가만히 두지 않는다!”
비형랑은 저벅저벅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져 가자 도화도 얼른 그를 따라 걸었다. 이제 앞으로 뻗어 있는 길은 하나였다. 어둠너머로 도화가 중얼거렸다.
‘놈...이 아닐지도 몰라......... 형! 인간이라면,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을 테니......’
이윽고 출발한지 두 시진쯤 후에 그들은 목적지로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화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는 길 내내 지독했던 음기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거짓말처럼 싹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대신 음산한 전각 하나가 두 사람의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도화는 아마도 모든 음기가 이 건물의 지하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보기에도 어두운 기운을 가득 내뿜고 있는 이 건물은, 방금 전에 사형들과 자리를 잠시 비운, 바로 서문탁- 그의 전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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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셨어요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실은 이번 주에 무주쪽으로 단풍놀이(^^ㆀ)를 다녀왔거든요~
대신 멋진 가을의 풍경을 선물로 드릴께요~(손가락 보조출현!)
이번 주말에는 엄청난 비축분을 마련하여,
다음주에는 자주자주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3번이상(^_^) (쿨,쿨럭! 덜덜덜...)
꼬리말 달아주신 고마운 님들!
추천 눌러 주시는 감사한 님들!
잊지않고 제글을 읽어 주시는 멋진 님들!
다들 기운찬 11월의 시작이 되시길 바랍니다!
파안의 가호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