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딸과 결혼하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이건 사실이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중학교때까지 아주 내성적이고 말이없던 나는 새로이 시작되는 학교생활에 겁이났다. 중학교를 다닐때에는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항상 암기식 위주에 교육을 시키고 소위 '빽빽이' 라는 것을 매일 한장씩 하게해서 교장선생이라는 사람이 한달에 한번 상을 줄 정도였으니.. 나는 어릴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 여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우연히 보게되는 친구 누나의 속옷을 보면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표시를 내지 않기 위해 교복도 직접 세탁하여 다려입고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부자집 아들로 인식하였다. 중 3 때 얻은 별명이 '빨간 벽돌 양옥집 소년' 이었다. 사실은 수도시설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있던 나였는데.. 아무도 집에 데려오지 않았기때문에 그 사실을 몰랐다.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그렇게 위장인생을 사는 셈이었다. 도시락을 준비해가도 난감하였다.돈이 없어 일년내내 분홍색 반찬 소세지를 싸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외국산 소세지일거라며 맛있다고 항상 나의 도시락에 젓가락을 가져대었다. 굳이 싸구려 소세지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중 1때 초등학교 동창인 같은 반 친구가 어느 날 도시락을 안싸워 매점에 가면서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하였기 때문에.. " 밥 맛있게 먹어라, 콩자반! ㅋㅋ" 그렇다.당시에는 일년내내 나는 콩자반을 싸갔다.친척이 저렴하게 양이 많은 반찬을 보내준게 그거였다.맛은 없었지만 반찬통을 비울수느 없었기에.. 중3이 되어서 나는 이지매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편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반장은 무조건 공부 잘하는 사람이어야하고 체육대회를 하면 무조건 일등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체육대회때에 줄다리기를 하면 당기지 말고 그냥 누워버리라고 아이들에게 지시하였다. 한마디로 승리를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였고 결국에 1등을 거머쥐었다.다른 종목도 무조건 잘하는 아이를 내보내 점수를 따서 좋합 1위를 차지하였다.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종합 1위를 하였지만 다른 반 아이들의 비난을 들으며 아이들은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어차피 삶에서는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공부도 그렇고..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담임의 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그 중학교는 군대식으로 삭발을 시키고 운동화도 1만원이하로 신게하는 그런 교도소같은 곳이었기 때문에..입학하는 날 빨리 졸업하고 싶다고 내가 생각할 정도였으니.. 이지매를 당한 이유는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당시 담임은 성적순으로 분단별로 2~4분단까지 자리에 앉혔다. 성적이 좋은 나였지만 나는 일년을 거의 4분단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유는 부모없는 자식이었기 때문에..당시 그런 아이들이 많았는데 4분단 전체가 그런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부잣집 아이로 그렇게 착각을 하고 돈을 빌려달라는 둥 학용품을 달라면서 나를 괴롭혔다.학용품 살 돈도 없는 나였는데..질이 나쁜 양아치같은 아이들이 전부여서 그 괴롭힘의 강도는 엄청났다.어쩌다가 고개를 돌리면 문제집을 훔쳐가기도 하였다. 거기에도 짱은 있었다.하필 그 아이가 나의 짝궁이였다.확실히 짱이라 작은 일로는 괴롭히지 않았다. 대신 소위 '좃밥'이라는 양아치 녀석들이 단체로 와서 괴롭히니 정말 힘들었다. 나는 결심하였다.어느 날 짱이라는 그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 그래 더 이상 참으면 안되겠다..' 그리고 나는 결심한 행동에 들어섰다.앞으로 일어날 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채..
나는 내딸과 결혼하였다..
나는 내딸과 결혼하였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이건 사실이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보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중학교때까지 아주 내성적이고 말이없던 나는 새로이 시작되는 학교생활에 겁이났다.
중학교를 다닐때에는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항상 암기식 위주에 교육을 시키고 소위 '빽빽이' 라는 것을 매일 한장씩 하게해서
교장선생이라는 사람이 한달에 한번 상을 줄 정도였으니..
나는 어릴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 여자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우연히 보게되는 친구 누나의 속옷을 보면
당황하여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 표시를 내지 않기 위해
교복도 직접 세탁하여 다려입고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부자집 아들로 인식하였다.
중 3 때 얻은 별명이 '빨간 벽돌 양옥집 소년' 이었다.
사실은 수도시설도 없는 초가집에 살고있던 나였는데..
아무도 집에 데려오지 않았기때문에 그 사실을 몰랐다.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그렇게 위장인생을 사는 셈이었다.
도시락을 준비해가도 난감하였다.돈이 없어 일년내내 분홍색 반찬 소세지를 싸갔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외국산 소세지일거라며 맛있다고 항상 나의 도시락에 젓가락을 가져대었다.
굳이 싸구려 소세지라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중 1때 초등학교 동창인 같은 반 친구가
어느 날 도시락을 안싸워 매점에 가면서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하였기 때문에..
" 밥 맛있게 먹어라, 콩자반! ㅋㅋ"
그렇다.당시에는 일년내내 나는 콩자반을 싸갔다.친척이 저렴하게 양이 많은 반찬을 보내준게
그거였다.맛은 없었지만 반찬통을 비울수느 없었기에..
중3이 되어서 나는 이지매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편견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반장은 무조건 공부 잘하는 사람이어야하고
체육대회를 하면 무조건 일등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준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체육대회때에 줄다리기를 하면 당기지 말고 그냥 누워버리라고 아이들에게 지시하였다.
한마디로 승리를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였고 결국에 1등을 거머쥐었다.다른 종목도 무조건 잘하는 아이를 내보내 점수를 따서
좋합 1위를 차지하였다.하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종합 1위를 하였지만 다른 반 아이들의 비난을 들으며 아이들은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어차피 삶에서는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공부도 그렇고..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말하는 담임의 말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그 중학교는 군대식으로 삭발을 시키고 운동화도 1만원이하로 신게하는 그런
교도소같은 곳이었기 때문에..입학하는 날 빨리 졸업하고 싶다고 내가 생각할 정도였으니..
이지매를 당한 이유는 정말 어이없는 이유였다.
당시 담임은 성적순으로 분단별로 2~4분단까지 자리에 앉혔다.
성적이 좋은 나였지만 나는 일년을 거의 4분단에 앉히는 것이었다.
이유는 부모없는 자식이었기 때문에..당시 그런 아이들이 많았는데 4분단 전체가 그런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부잣집 아이로 그렇게 착각을 하고 돈을 빌려달라는 둥 학용품을 달라면서
나를 괴롭혔다.학용품 살 돈도 없는 나였는데..질이 나쁜 양아치같은 아이들이 전부여서
그 괴롭힘의 강도는 엄청났다.어쩌다가 고개를 돌리면 문제집을 훔쳐가기도 하였다.
거기에도 짱은 있었다.하필 그 아이가 나의 짝궁이였다.확실히 짱이라 작은 일로는 괴롭히지 않았다.
대신 소위 '좃밥'이라는 양아치 녀석들이 단체로 와서 괴롭히니 정말 힘들었다.
나는 결심하였다.어느 날 짱이라는 그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 그래 더 이상 참으면 안되겠다..'
그리고 나는 결심한 행동에 들어섰다.앞으로 일어날 큰 사태를 예견하지 못한채..